mi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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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에 대해 1

아직도 덕지덕지 묻은 모습을 비춰보며, 이건 털어내지 못하는 거라 바람이, 혹은 비가 어느정도 씻겨줄 때 까지 이렇게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으로 툭툭 털어내면 손에도 묻을거고,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더 어려워질 거라며. 어느정도 지나 조금 희미해지면 벗어내어 뜨신물에 푹 담그고 방망이질 하여 빨아야 한다며 말이다. 그렇게 빨고 널어 쨍-한 햇볕에 햇빛 냄새 베일 때 까지 바싹 말리고 입어야 한다고, 그 동안 헐벗은 채 칼날 같은 차가운 바람 견뎌낼 수 있냐. 물었지만 대답을 못 했다. 기 보단 안 했다 가 맞겠다. 그 때가 그리운건가 네가 그리운건가. 물었지만 대답을 안 했다. 기 보단 못 했다 가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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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네가 그리고 그 때의 내가 그리운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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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일기_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https://youtu.be/zlTMPWmYS-E 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허리가 아파 일어난 시간은 새벽 5시. 콩피느멍때문에 집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밤낮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밤을 지새운 채 오전 수업에 좀비처럼 앉았다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그러고도 침대에서 좀 더 등을 굴려대다가 오후 서너 시쯤 잠이 들어 밤 9시 10시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어제는 평소처럼 9시쯤 일어나 잠시 움직여 보았다가 눈이 너무 안 뜨여 다시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보통 때면 그러다가도 결국 일어나 앉아 커피 샤워를 하곤 했을 텐데 그날은 왠지 엠마도 잠이 들어 있어 그 온기에 취해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부터 시작한 하루는 무척 긴 느낌이 든다. 수업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오랜만에 배당받은 오후를 어떻게 쓸지 고민을 해 보았다. 습관이라는 중력 바꿔 걸리면 바닥이 천장이 되고 천장이 바닥이 된다. 집에만 있는 것이 너무 답답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옷을 고쳐 입고 3중 현관을 열고 나가는 일이 좁은 계단을 걸어내려 가 지하철에 올라타고 하는 일이 우주복을 껴입고서 로켓에 실려 날아가는 일처럼 버겁게 느껴진다. 연말이고 하니 어디든 한 번쯤은 나가자 했었지만 그 버거움과 조금의 두려움이 주저함이라는 문턱으로 우리를 둘러싸버려 트후티네뜨의 작은 바퀴로는 쉬이 넘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텔레비전이 되어 주면서 좁게 좁게 맞았다. 그리고 손님들은 아침이 되자 잠자리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공간으로 정 없이 돌아들 가버렸다.  그렇게 이름 난 다리 아래에서도 연결을 잃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들처럼 우리의 시간들은 어느 낚시 바늘 하나에도 걸리지 않은 채 은은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속도로 마흔이라는 이름의 강이 되었다. 마흔이라는 안내표지도 꿈에서는 무척이나 차갑고 커다랗고 그러했었지만 실제에선 좁게 선 내가 쉬이 넘어갈 만큼 구멍도 사이도 꽤나 커 나는 진동 없이 침묵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정말 나갈 거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물었고 응이라는 대답 대신 나는 늘 입던 바지를 들추고 개어진 대로 각이 지어 버린 낯선 바지를 꺼내 입었고 엠마는 마른 마스카라를 물로 풀어내었다. 마침내 우리는 외출을 했다. 조금 떨어져 있어 한동안 가지 못한 아시아 마트와 한인 마트도 들를 겸 장바구니도 3개나 쑤셔 넣고 따뜻한 차와 카메라도 같이 쌓아 넣고 대기권을 넘을 각도에 올라탔다.  파리는 야간 통행금지가 실행 중이라 멀리까진 가지 못하고 파리 식물원이 있는 에꼴 드 보따니끄 가든을 들렸다가 센 강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센 강은 구름이 비켜서 있었다. 겨울바람이 꽤 세찼지만 우리는 강에 닿아 있는 가장 아래 둑까지 내려가 강변을 따라 걸었다. 앙상한 나무 가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벌써 봄이 장전되어 있었다. 며칠 사이 추워진 날씨에 코까지 붉어진 우리는 서로를 예보 옆에다 세워두고 기점 같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어떤 일들은 이런 사진들 근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원에는 운동 겸 산책을 하는 노부부들과 경주처럼 거친 러닝을 하는 젊은이들이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센 강변을 걷자 마치 서울에 있다가 파리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스웠다. 그래 시간들은 신발 끈을 묶을 때도 흘러가지. 작년 파리 지하철의 전동차마다 서로의 건강을 위해 간격을 유지하라는 스티커가 붙었을 때만 해도 얼마 안 가서 떼야할 텐데 괜한 돈을 들이는구나 싶었는데 오늘 보니 그 스티커들이 어느새 수만 발에 닿아 닳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놓쳐 버린 걸까.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닻을 내린 채 흔들리는 배들, 다리 위에서 교차하는 전동차들, 식물로 덮여 있는 옥상, 같은 높이의 건물들, 스케이트 보드와 함께 날았다가 뒹구는 배추머리 아이, 갈비뼈를 다 내어 놓고 있는 노트르담.. 봤던 것들은 반갑게 못 봤던 것들은 신기하게 그런 자잘한 얘기들로 걸음과 걸음 사이를 충실히 즐기면서 우리는 오랜만의 산책을 꼭꼭 씹어 삼켰다. 그래 소중함은 상대적인 감각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집중하면 어느 시간 어떤 곳에서든 우리의 혀를 달랠 수 있다고.  우리와 같은 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마주치던 노부부는 30분을 돌아 한 우체통에 작은 편지를 집어넣고 발을 돌려 분명 집일 곳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도 긴 산책을 마치고 마트에 들려 어깨를 괴롭힐 것들을 잔뜩 사들고 분명 집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산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은 이런 날들일 것이다.  https://youtu.be/khJzXSqq_Qw 오늘은 파리에 함박눈이 내렸다. 눈이 드문 이곳에 하루 종일 눈보라가 쳤다. 빨간색 패딩을 입은 길건 편 집 아이가 할머니와 눈 구경을 나가는 것을 엠마와 훔쳐봤다.  산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은 이런 날들일 것이다.  W, P. 레오 2021.01.16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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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훌쩍 지나갔다. 지나가고 있다. 눈이 내렸다. 뉴스에서는 폭설로 인한 월요일 출근길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배부른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월요일의 예정된 피로함보다 이목을 끄는 것은 없다. 책장이 잘 넘어가는 재미있는 책으로 반나절 정도를 보냈다. 동네에는 폐업한 가게들이 여럿 보였다. 어떤 가게를 들어가면 업주에게 측은지심이 인다. 편집자는 저녁까지 최종적으로 시집 원고를 검토하라 일렀지만, 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자나 탈자가 후에 발견된다 해도 그것 자체로 의미 있을 것 같다. 김혜순 시인의 등단작은 '담배를 피우는 시체'라는 제목의 시인데, 당시 식자공이 '시체'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착각했던 것인지, 잡지에 시의 제목이 '담배를 피우는 시인'으로 실렸었다는 시인 당사자의 얘기는 흥미롭다. 김혜순과 식자공이 어쩌다 함께 만들어낸 엉뚱한 결과이지만, 그것도 시적인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다. 어떤 날에 우연은 꽤 많은 것을 펼쳐 보여주기도 한다. 내일은 다시 예정된 일정 속에서 생각지 못한 우연들이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결을 만들어 낼 것이다. 며칠 전 만난 시인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같은 책이 두 권이나 있다며 내게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귤과 바나나 껍질은 말렸건 말리지 않았건 음식물쓰레기다. 어제는 붉은 석류를 먹었다. 석류 껍질은 일반쓰레기다. 석류는 신나게 얻어 맞아 핏물이 잔뜩 고인, 온몸이 이빨인, 작고 아름다운 괴물 같다. 겨울이 겨울다워지는 풍경에 밑줄을 그었다. 책갈피를 꽂는다는 것을 깜빡하고, 하루를 덮는다. 그 전에 노란 등을 하나 켜두고 나는, 지나가고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짓궂게 사라지고 있는 무언가를 사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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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촬영이 있어 사무실에 Y 시인이 방문했다. 그는 나이가 50대인데 관리가 너무 잘 돼있어 좀 많이 놀랐다. 수트 핏이 너무나 좋았고, 특별히 과장할 것도 없이 그 실루엣이 MC 유재석과 흡사해보일 정도였다. 아, 그래. 사람은 관리를 해야 한다. 이런 시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시대가 변했고, 이제는 시인의 이미지가 좀 바뀔 필요가 있다. 내일은 최근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을 만나기로 했다. 그는 내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내가 한 잔 사겠다고 했다. 앞서 이미 두 명의 시인이 그에게 축하를 해줬다는 소릴 들었고, 한 명은 거금 10만 원을 들여 회를 사줬다고 한다. 나는 질 수 없어 반드시 11만원 어치를 먹으라고 했다. 그는 다음주에 시상식이라는데, 신문사에서는 반드시 혼자만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럴 거면 아예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언론에 내보낼 사진은 찍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또 다른 형태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시인은 차라리 자신 혼자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어떤 마음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시집 표지 디자인과 조판된 본문을 받아 검토했다. 오래전부터 그려온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낯설었다. 감동의 눈물 같은 것은 흘리지 않았다.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 생기면 이상하게 우울감만 짙어진다. 분명 기쁘긴 하지만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코로나 블루 시대, 나는 시집 블루에 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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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출근길 대란은 빗나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는데, 정거장 문이 닫히기 직전 한 사내가 아주 간신히 지하철에 탑승했다. 사실 몸이 거의 끼는 수준이었는데, 그는 간신히, 정말 간신히 탑승했다. 그러려니 하고 음악을 듣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 사내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었다. 키가 컸고, 단발의 머리 길이에 파마를 했으며, 수염을 길렀고, 코트에 부츠를 신고 있었다. 얼핏 일본의 배우 같아 보이기도 한 그는 소설가 정영수였다. 물론 그는 나를 모른다. 나는 그저 한국 소설 애독자이고, 곧 책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직까지는 비매품 말고는 저서가 없는 사람이고, 설령 저서가 있다고 해도 그가 나를 알아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지하철을 탄 것으로 봐서 회사에 늦은 것 같았고,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한 출판사의 편집자 일을 하고 있다고 본 기억이 났다. 나는 그의 소설을 두어 편 정도 읽어보았는데, 취향에 맞는 편이었고, 느낀 바를 간단히 적어보면 깜짝 놀랄만 한 서사는 아니지만, 다루는 주제가 늘 윤리적으로 민감한 편이었으며, 문장 자체가 굉장히 안정적이고 읽기 좋아서, 목소리가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그런 기분이 되곤 했다. 페미니즘과 퀴어가 중심 담론으로 오래 부상해 온 소설 문단에서 그는 여성 작가도 아니고, 퀴어 서사를 다루지도 않으면서 그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꽤 단단히 각인시킨 작가다. 우리는 함께 합정역에서 내렸다. 피로한 월요일 폭설 대란이라도 기대했던 나로서는 재밌는 목격이었다. 최정례 시인의 사망 기사를 접했다. 어떠한 인연도 없으므로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병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서 놀랐다. 사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처음에는 혹시나 비극적 선택을 한 것인가 하고 생각도 했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이 떠났다. 좋은 시인이 떠났다. 한 남자가 비등단자를 대상으로 한 문학상 수상작품을 그대로 도용해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5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문학상들의 권위 여부를 떠나서 정말 비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비등단자의 작품을 절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특히 그렇다. 등단하지 않은 일반인의 작품이니 마음껏 도용해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너무나 늦은 발견이기는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정말 적발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면 걸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걸까. 사태가 커지자 문학상 심사위원들에 대한 비난도 커지고 있다. 나는 지금처럼 저작권에 민감한 시대에 늦게라도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문의 표절 여부를 체크하는 카피킬러가 따로 있듯이, 이 사건을 발판 삼아 문학작품 역시 등단자 대상이든 아니든 심사 전 표절 여부를 먼저 체크했으면 한다. 지적 자산을 훔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 인식에 너무나 화가 난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지적 자산의 중요성을 알리려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철저한 검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표절에 대해서 말뿐이 아니라 인식 개선을 위해 강력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심지어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표절이 아니라 완벽한 도용 아닌가. 이 자가 정말 비겁한 것은, 이것이 문학을 사랑하는 자의 어긋난 판단 수준이 아니라 말그대로 단어 하나, 제목 정도를 바꾸는 수준의 완벽한 도적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학을 비롯해 지적 자산을 완전히 우습게 본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문단이 스스로를 위한 방어벽을 만들었으면 한다. 창작자들의 자존감이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