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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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의 고백 2회 작업의 시작

2. 작업의 시작
오피스텔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신디, 반디, 상미는 왁자지껄 웃는 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 역할 분담이 이미 정해져 있는 듯 좁은 오피스텔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웅성 거리는 소리에 미키는 잠이 깨었고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인사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제가 늦잠을 자서 죄송해요... 며칠 동안 잠을 못 자서 그만....”
“빨리 와서 여기 모아논 쓰레기 갖다 버리고 오세요. 그리고 시간 남으면 좀 씻던지요. 이 이상한 냄새... 작가님 거였군요.”
반디가 소리치며 말했다. 그녀는 기념품으로 받은 것 같은 빛바랜 티셔츠와 헐렁한 반바지 차림이었다. 상미는 자루를 뒤집어쓴 쓴 것 같은 모습에 날씬한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신디는 머리에 대충 수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비치는 속옷 차림이었다.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노출 때문에 미키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모아논 쓰레기를 버리러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의 열린 창문 틈으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의 마음은 어제보다 한결 가벼워졌다. 밤새 꾸었던 꿈 때문인지 세 명의 여자들을 쳐다보는 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지낼만한 방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갔다 돌아오자 아침 먹을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뭐 해요? 쓰레기 버렸으면 빨리 손 씻고 이리 와 앉아서 아침 먹어요. 내일부터 집안 청소는 미키 작가님이 하면 되겠다."
반디는 청소부를 구했다며 신이 난 듯 말했다. 아침 식사를 다 먹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번개같이 식탁을 치우고 나자 테이블은 다시 작업대로 변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지난번 드라마 실패였어요. 평도 좋지 않았고 시청률도 저조했고.”
신디가 창밖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 특유의 콧소리는 듣기에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도도한 태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건 사실 운이 없었어요. 방영 시기도 나빴고요.”
“첫 번째가 너무 잘 돼서 기대치가 다들 높아서 그래요. 그만하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잖아요.”
반디가 변명하듯 말했고 상미도 볼멘소리로 불평했다. 창밖을 보던 신디가 획 돌아서며 눈을 크게 떴다.
“우리 처음 모였을 때 생각 안 나요? 우린 프로이고 실력자라는 거 남들한테 보란 듯이 증명하기로 했잖아요. 우리는 히트작이 아니면 쓰지 않아요!”
“그건 맞지만요... 글 쓰는 건 자신 있는데 이제 기약 없이 아이디어 짜고 기획만 하는 거... 너무 힘들어요.”
반디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여기 우리 미키 작가님을 모시고 온 건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신디가 미키를 쳐다보며 입 끝에 미소를 띠었다.
“사실 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대표님. 미키 작가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요 솔직히 글이 너무 난잡해요. 진짜 좋은 웹 소설 작가들도 많은데...”
반디는 미키를 째려보았다.
“저도요. 근데 이 작가님이 남들보다 뛰어난 게 있다면요...”
상미는 우울해하는 미키를 보며 조심스럽게 그의 장점에 대해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반디의 부릅뜬 눈을 보고 기죽은 듯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작가님이 뛰어난 건요 글보다는... 넓은 어깨? 움... 큰 키? 그런 거? 크크크”
“자자! 잘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이분을 모시고 온 건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거란 믿음 때문이에요. 우리에게는 미키 작가님의 새로운 소재와 시각이 필요해요."
신디의 콧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미키는 방송 작가로 잘 나가던 그녀의 기사를 몇 번 본적 있었다. 그런 그녀가 페북으로 먼저 연락을 주자 몹시 놀랐었다. 그녀는 한참 넋두리를 풀어 놓았었다. 방송국 사장이 바뀐 후 물먹은 이야기, 한직으로 밀려서 고생하다가 회사를 나온 얘기, 그리고 추근대는 남자들이 많아서 일하기 힘들었던 얘기, 어릴 때부터 꿈꾸던 드라마 작가가 되려고 일을 시작한 얘기 등을 한참 설명했었다. 그리고 여기 작가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함께 일하게 되었고 드라마를 처음 올려 히트친 얘기, 드라마 작가의 산실이 되어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공작소가 되고 싶다는 등등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사실 미키는 그녀의 신념이나 작가로서의 철학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그가 신디를 따라온 건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게다가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에게 끌린 것 때문이었다.
"제가 대표님과 여러분께 보답하는 방법은 글을 잘 쓰는 것 밖에는 없군요.”
미키가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반디가 받아쳤다.
“아 작가님 죄송한데요. 글 말고 다른 재주가 있으면 그 길이 보답하는데 더 빠를 것 같아요.”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의 의견 잘 들었어요. 물론 작가님이 글솜씨는 여러분에 비해 부족하고 경험도 한참 모자란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해요. 알겠죠?”
신디가 손뼉을 치며 정리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네...”
작가들은 마지못해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송국에서 감독님이 곧 보자고 할지 몰라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작업은 우리 세명이 나눠서 합시다. 자... ‘신필’은 누가 맡을래요?”
“대표님 그건 제가 할게요. 그나마 신화, 갤러리, 뉴욕, 화가, 미술상... 볼거리가 있으니까 써볼 만한 것 같아요.”
반디가 재빨리 손들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감각’편 이건 누가?”
“그건 제가 맡아 볼게요. 재벌 3세, 출생의 비밀, 회사 비리, 그리고 러브라인... 드라마 공식에 그나마 가깝네요.”
상미가 볼펜을 똑딱 거리며 말했다.
“그럼 ‘민지’는 자동으로 제가. 전 처음부터 ‘민지’ 이야기가 맘에 들었어요!”
신디는 미키를 쳐다보며 미소 짓고는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맞췄다.
“자 서두릅시다!”
그들은 커다란 테이블에 마치 선이라도 그어있는 듯 자기의 영역에 앉아 물건을 정리하고 노트북을 켰다. 신디는 탁자 옆 화이트보드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고 다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미키는 자기도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무엇을 하면 되나요?”
“우리가 준비되면 부를게요. 그냥 그때 옆에서 설명해 주시면 돼요. 그리고 냄새 여전하거든요. 좀 씻고 오세요.”
반디가 쏘아붙였다.
“네...”
남의 사무실에서 먹고 자던 미키였는지라 정말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자신의 글이 드라마가 된다는 상상에 즐거웠는지 샤워하는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씻고 옷을 입으려고 하는데 냄새의 근원이 갈아입은 지 며칠 지난 속옷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도저히 그 속옷을 다시 입을 수는 없었다. 수건으로 살짝 허리를 감싸고 화장실을 살금살금 빠져나와 백팩 속에 있는 속옷을 가지러 나왔다.
그때 자판을 두드리던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무언가 이상해서 뒤돌아 보자 신디와 작가들은 일제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린 채 정지된 영상처럼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매우 발달한 다리 근육과 쩍 벌어진 어깨, 윤곽이 뚜렷한 팔, 단단한 가슴 그리고 무엇보다 찰흙으로 빚어서 조각한 것 같은 식스팩... 그들은 미키의 예술적인 몸을 쳐다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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