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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0일 수요일 “마거릿 대처에 대한 재평가”

풀버전 : http://bit.ly/ZeTP8u 매일 아침 7시 구독 : http://www.crossjournalism.com TINA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만이 진리라는 입장을 나타내는 발언으로 종종 인용되죠. TINA는 There Is No Alternative의 약식 표기입니다. ‘대안은 없다’는 뜻으로, 대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말입니다. 이 말로 유명한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가 어제 서거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투병생활을 이어오던 중이었죠. 향년 87세. 규탄과 애도 분위기 엇갈린 대처의 죽음(연합뉴스)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영국 헌정사상 총리직 3번 연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로 집권한 유일한 사람이죠. 정말 쥐어 짜는(?) 강력한 긴축재정으로 경제 부흥을 이뤘으며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 운영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렸습니다. 이렇게 국정을 운영하는 게 어떻게 쉽겠습니까. 대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냉소적인 평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대처가 영국 경제를 부흥시키고 잃어버린 영국의 자존심을 되찾게 하는 동안 분명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욕을 먹으면서도 자신의 소신(?)대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대처에 대한 대부분의 냉소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처가 서거한 후 ‘위대한 영국인을 잃었다’는 애도도 만만치않네요. (중부일보) 영국병 1970년대 영국에서 유행한 병(?). 과도한 사회 복지와 노조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임금은 날로 상승하고, 생산성은 날로 낮아져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한 상태.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적인 상태를 병에 빗댄 말. 이 상태의 영국은 ‘불만의 겨울(당시의 집권하던 노동당이 임금 인상률을 5%이하로 제한해 이에 대항한 노조의 장기파업이 일어났던 유난히 추웠던 1979년 겨울)’을 거치고 있었고, 지나친 세금과 고물가, 공격적인 노조들에 부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진절머리를 냈다고 함. 대처는 이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했음. “정부는 통화안정에 힘쓰고, 세금과 정부지출을 줄여야 한다. 법인세와 준조세를 줄이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기업이 활동하기에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민영화를 확대하고,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며 노동 유연성을 늘려야 한다.”(네이버 캐스트 인물 세계사)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 대처의 TINA는 만성이 된 영국병과 불만의 겨울을 타개하기 위한 연설에서 나온 말.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고통스러운 결과를 감수해야 합니다 (…) 차악의 선택이라고 하겠지요. 지금 그냥 더 많은 돈을 찍어내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결국 물가는 엄청나게 뛰고 실업률도 치솟을 것입니다. 완전한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 결국 현실적인 경제원리가 작동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안은 없습니다(There Is No Alternative).” - 마거릿 대처, 1980년 6월 25일, 런던 주재 미국 언론인 회견에서- 그리고는 국영 사업을 민영화하고, 노조 활동을 규제하고, 정부 주도의 금리 통제를 중지하고, 주택 구입 보조비를 폐지하고, 고등교육 지원금을 폐지하는 등 자신이 비효율적인 지출이라고 판단했던 부분을 모조리 줄였음. 심지어 무료로 배급되던 우유까지 유료로 바꾸어 학부모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음.(이에 대해 대처 자신은 ‘최소한의 효용 때문에 최대한의 정치적 희생을 겪은 일”이었다고 회고.(네이버 캐스트 인물 세계사) 강경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초에는 성장률과 물가는 조금 나아졌지만 실업률은 개선되지 않았고, 무주택자 비율은 오히려 늘기만 하여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반발만 샀음. 그래서 어느 해 여름에는 런던과 리버풀 등지에서 폭동과 파업이 일어났음. “불만의 겨울이 끝나나 했더니, 이제는 무더운 여름이다”라고.(국민일보) 뭐든 스스로 하는 사고방식 “결국 개인이 노력하기 나름입니다. 사회가 개인의 처지를 일일이 돌봐줄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개인이 있을 뿐입니다 (…) 개인은 반드시 스스로를 도와야 하며, 누가 당연히 뭘 해주리라고 기대하면 안됩니다” 대처의 이런 ‘남에게 기대지 말고, 뭐든 자기 힘으로’의 사고방식은 대처의 어린 시절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 대처는 식료품집 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대처의 아버지는 대처가 두 살일 때 시의원에 당선되고, 대처가 대학생이 될 때 쯤에는 시장이 돼 있었음.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 시장까지 된 아버지 밑에서 보고 배웠음. 정치하는 과학도가 된 대처 대처는 옥스퍼드 대학의 화학 전공으로 입학. 입학 후 바로 정치에 뛰어드려 했으나 당시 대학가는 진보파가 절대로 우세했기에 학생회에서 활동할 수는 없었고, 소수 동아리인 옥스퍼드 보수협회에 가입함. 당시 옥스퍼드에는 마거릿 같은 중산층 출신은 드물었고, 어려움이라곤 전혀 모르고 자란 상류층 자제들이 대부분이었음. 그런 사람들이 미중이니 혁명이니, 체제를 뒤엎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마거릿은 냉소적으로 보았음. 보수적인 영국 정치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대처는 변호사가 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난 후 정치에 진출했으나 집에서 애나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보수적인 정치인들 사이에서 작은 기회조차 얻지 못함. 그래도 선거 유세장마다 따라다니며 보수당의 선거운동을 도운 결과 런던의 한 선거구에서 출마해 하원의원이 될 수 있었음. 대처는 의원이 된 지 2년 만에 에드워드 히스의 보수장 정권에서 차관 제의를 받았으며, 이후 주택장관과 연금장관, 에너지장관, 교육장관, 교통장관, 다시 교육장관을 지내는 등 화려한 공직 이력을 쌓음. (한국경제) 히스 내각이 1974년에 무너지면서 대처는 자동으로 야당 소속이 되었으나, 이것은 크나큰 기회가 되었음. 정권을 빼앗긴 책임을 물어 히스의 당권에 도전하고, 이듬해 보수당 당수가 되는 데 성공한 것. 이후 보수당 최초의 당수에 이어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음. 대처는 이 때 주목을 많이 받아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정치인이 되었지만 정치인 세계 안에서는 입지가 튼튼하지 않았음. 정치가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에 발목잡혀 대처가 뭐만 하면 꼬투리를 잡고 못하게 했음. 그러나 대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매스컴을 이용해 자신을 위대한 정치인으로 부각시키는 한편 자신을 싫어하는 정치인들의 뒷조사를 해서 비리를 폭로한다고 협박하는 등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데에 최선을 다함. 대처의 은퇴 대처는 1979년에 처음 집권한 후 4년 후, 8년 후 총선에서 연속으로 승리. 그러나 1980년대 말이 되어 유럽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대처에게도 위기가 옴. 처음 집권했을 때 마이너스였던 성장률을 1988년 5.2%까지 올렸으나, 이후 점점 낮아져 1990년에는 다시 0.8%가 됨. 물가상승률도 오르고, 실업률과 주택보급률에서는 임기 내내 큰 개선이 없었음. 경기가 심하게 나빠지자 대처는 머릿수대로 똑같은 세금을 걷는 인두세를 도입함. 이건 너무 저소득층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세금이었음.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었고, 여기에 유럽연합 가입 문제가 겹치면서 대처의 인기는 곤두박질 쳤음. 결국 1990년 대처는 자진 사임했고 이듬해 정계를 은퇴했음. (한국경제) 신문은 하나만 읽으면 안됩니다, 행간읽기 편집인 : publisher@crossjournalism.com 배달인 : hangganread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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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님이 생각하시는 대처는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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