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Cruy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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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레전드들의 한국 방문 할때의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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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와 인터뷰가 어쨌든간에 그때 바르셀로나 주전급 다나올꺼같이 해놓고 표팔이하더니 갑자기 나오니안나오니하드만 마지못해 나오는 메시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네ㅋㅋㅋ글 자체에서 호날두랑 비교는 분쟁유도가능성이 있지만 저때 메시행동은 욕먹어야지
한마디로 악마의편집
이거 페북에 올라왔던건데 글에서는 알베스가 무시했다고 나오지만 싸인도 다열심히 해주었고 메시도 기자회견에서 태도가 좋았습니다 이글은 짜집기한거에요
걍 다분히 비하의도가 강한 글이죠
아니 뭔 태도랑 인터뷰 싸인 이런거 다필요없고 경기를 뛰겠다고 했다가 안뛴건 메시잘못이맞는거지 이게 호빠잘못이다면 제대로된 해명을 해보시오 계속 악마의편집이라하지말고 뭐가진실인지 내생간인데 진실이 저거랑 별반차이 없을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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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기중 이기는 와중에 코스타가 빡친 이유
어제 첼시가 레스터를 3:0으로 꺾은 경기에서 후반 중반 디에고 코스타의 이상징후가 포착됐습니다(또..?) 분명 스코어도 2:0으로 이기고 있는데다가 코스타는 1골까지 넣었던 상황인데 콘테 감독에게 강하게 불만을 표출합니다. 사실 이 안에는 굉장히 웃픈 정황이 있습니다. 경기 후 이 상황에 대해 안토니오 콩테 감독은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만약 경기가 끝날 때까지 디에고 코스타가 뛸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코스타는 이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합니다. 팀에게 있어서 코스타는 훌륭한 개성을 가진 선수 입니다. 만약 모든 경기에서 그가 끝까지 뛸 수 있다면 그렇게 할거에요." "우리가 오늘 위험을 안고 경기에 뛰었다는거 알고 있습니다. 만약 코스타가 이번 경기에서 옐로 카드를 받았다면 다음 맨유 경기에는 결장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나에게 있어 다른 경기보다 정말 중요했던 경기였습니다." 출처 http://metro.co.uk/2016/10/15/chelsea-manager-antonio-conte-explains-why-he-refused-to-subsitute-diego-costa-6194058/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 디에고 코스타는 자신이 이 상태로 계속 있다가는 또 다른 옐로 카드를 수집할 것이라는걸 직감적으로 알아챈 모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옐로 카드를 받을 행동을 하기 전에 빨리 교체 시켜달라는 사인을 보낸 것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이 경기에서 옐로 카드 받으면 다음 맨유 경기에 결장) 사실 디에고 코스타 성질 머리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지난 시즌 초 이미 비매너 플레이로 한차례 홍역을 겪었던 디에고 코스타였습니다. 히딩크 감독에 이어 콘테라는 조련사까지 만나게 되더니 이제는 자신의 성질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서다니.............ㄷㄷㄷㄷ 저렇게 썽내고 경기 끝나고는 다시 밝은 모습 보여주더군요 ㅋㅋㅋㅋ 본인의 성질머리를 자각하고 있었다는게 너무 웃프네요 ㅋㅋㅋ
오늘자 리버풀이 근본 중의 근본 구단인 이유
비록 4:2로 패배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라는 결과물을 낸 리버풀. 경기 후 선수들은 이탈리아까지 원정온 팬들과 함께 결승 진출의 기쁨을 마음껏 나눴습니다. 그런데 이때 핸더슨이 뭔가 굉장히 급하게 UEFA 관계자와 무언가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더슨은 손에 뭔가를 들고오더니, 선수들을 모두 모이게 합니다. 헨더슨이 가져온걸 본 리버풀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핸더슨을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사진찍기에 좋은 대형으로 곧바로 헤쳐모였습니다. 헨더슨이 가져온 플래카드에는 션 콕스라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아마 눈치 빠르신 분들은 눈치 채셨을 겁니다. 션 콕스는 지난 챔스 4강 1차전 당시 로마팬들의 묻지마 테러를 당해 중태에 빠진 오래된 리버풀 팬입니다. 4강 2차전이 진행되기 전날 까지도 콕스씨는 여전히 코마 상태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리버풀 팬들은 원정길에 콕스씨를 기리는 플래카드를 만들었고 핸더슨이 이 플래카드를 보고 관계자에게 저 플래카드를 빌려올 수 있는지 문의했던 것입니다. 참 리버풀은 주장감을 잘 뽑은거 같습니다. 헨더슨은 로컬보이는 아니더라도 리버풀을 정말 사랑하는 주장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런 주장을 가지고 있는 팀의 팬들은 정말 행복할거 같아요. *션 콕스씨의 쾌차를 빕니다.
[울산 레전드 특집]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사람들에게 있어 팀에서 '레전드' 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공통분모격으로 해당되는 기준이 '해당팀의 원클럽맨' 이라거나, 아니면 '최소 그 팀에서 오랫동안 뛴 선수' 로 클럽에서 얼만큼 뛰었는지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물론 그 클럽에서 오랫동안 뛴 시간은 중요하다. 그만큼 클럽을 지지하는 이들과 오랫동안 추억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나 국내나 레전드로 꼽는 선수들에게 '멘탈' 부분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즉,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피치 위에서의 행동이라던지,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모습이 프로의식이 투철해야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 또한 선수들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예외도 분명 존재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에릭 칸토나,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출신인 슈테판 에펜부르크의 경우에는 각각 맨유와 바이에른에서 5시즌 이상 뛴 것도 아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혈질이며, 어느 순간에는 시한폭탄같은 분노를 피치에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두 클럽의 레전드 반열에 올라있으며 팀의 영광과 함께했다.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4번째 울산의 레전드는 이것과는 정반대격인 스타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유상철, 김현석, 김병지와 달리 오랫동안 울산에서 뛴 것도 아니며, 진중하거나 겸손한 스타일이 아닌, 화끈하면서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이 선수는 울산 팬덤 내에서는 말그대로 '언터쳐블(Untouchable)' 이며, 2000년대 이후 울산 팬이 된 사람들이 울산에 빠져들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쯤되면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밀레니엄 특급' 이자, '2000년대 K리그 대표 사기유닛' 으로 언급되는 이천수다. 이천수의 일대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울산 레전드 특집 -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1. 모든 이들로부터 주목받던 '밀레니엄 특급' 10대 소년, 그렇게 2002년 월드컵까지 종횡무진 이천수는 프로 데뷔하기 전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주목받는 '슈퍼 탤런트' 였다. 그가 고등학생 신분일 당시인 1990년대 후반에 고교리그는 이천수가 다녔던 부평고가 주름잡고 있었고, 이천수와 더불어 최태욱-박용호를 '부평고 귀각 3인중' 이라 불렸다. 그들을 앞세운 부평고는 국내 대회를 제패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청소년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1999년에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방가반두 컵에 청소년대표팀 주전으로 참가하였고, 태국 올림픽 대표팀을 7대2로 대파하였고(이천수가 무려 4골을 기록하였다),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까지 격파하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비록 일본 실업리그 팀에게 2대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에서 통합 8골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올라섰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천수를 '밀레니엄 특급' 이라 불렀고, 그는 10대의 나이에도 벌써부터 전국의 축구팬들이 주목하는 유망주로 등극했다. 이천수는 곧바로 1년 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고 동시에 국가대표팀 데뷔까지 끝마쳤는데, 그 때 그의 나이 겨우 19세에 불과했다. 이천수는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고, 2년 뒤인 2002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당당히 엔트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물론 비슷한 연령대였던 박지성처럼 주전선수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대표팀이 치뤘던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 주로 그는 교체선수로 투입되곤 했는데, 득점이나 도움을 기록하진 않았지만 폭발력 있는 스피드와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역할을 하였고,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동점골을 기록하고 쇼트트랙 세러모니를 할 때 오노 역할로 전파를 타기도 하였고, 이탈리아전에서는 최고 수비수로 평가받는 파올로 말디니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등 팬들 뇌리에도 상당히 강렬하게 남았다. 거스 히딩크가 이끌었던 한국대표팀은 '월드컵 4강' 이라는 한국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23인에 대한 해외 클럽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져갔다. 월드컵 때 모두의 시선을 끌었던 박지성과 이영표는 히딩크의 부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따라 네덜란드로 날아갔고, 차두리도 아버지인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에 성공했으며, 이을용은 한국인 최초로 터키 수페르리가 진출을 하는 등 대표팀 선수들의 해외이적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에 맞물려 이천수 또한 월드컵 직후 곧바로 해외이적을 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였다(월드컵 시작하기 이전에 이천수는 2001년에도 유럽 진출할 기회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의 달리, 그는 해외보단 국내리그를 택했다. 이미 그는 월드컵이 시작하기 이전에 국내 프로팀 입단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 반시즌만에 K리그를 접수한 '사기 유닛' 으로 등극하다(2002 ~ 2003 여름) 2001년 말, 고려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천수는 학교를 자퇴하고 울산과 계약하면서 프로 선수가 되었다. 계약금 3억원에 연봉 2000만원, 당시 신인선수가 받을 수 있는 역대 최고액을 갱신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계약에 붙어있는 특별조항들이다. 우선 울산은 이천수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의 이적료 전액을 이천수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당시 이적료의 10%를 선수에게 주는 관례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뿐만 아니다. CF 광고시에도 이천수에게 전액 보장되었다. 예를 들어, 그가 이천수의 이적료가 10억원이고 CF 광고를 몇차례 촬영한다고 가정하면 그는 1년에 무려 20억원을 버는 구조인 셈이다. 사실 그는 모교였던 부평고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입단하길 갈망했었고, 함께 뛰었던 최태욱은 졸업 후 안양 입단을 확정지었다. 집안형편도 어려웠던 상황이었기에, 그는 하루빨리 집안에 큰 힘을 보태기 위해 프로전향을 강력히 원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교 진학을 택하기 되었던 케이스였다. 그렇게 오매불망 프로선수를 꿈꿔왔던 이천수는 실질적인 프로데뷔는 2002년 여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그 전까지는 히딩크 감독 지도 하에 월드컵 이전까지 대표팀 선수들을 합숙식 해외 전지훈련이 연달아 소화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반시즌간 공백이, 울산이나 이천수 양 쪽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후반기에 울산은 무시무시한 팀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가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순간, K리그 모든 클럽들은 그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는데 2002년 시즌 그의 기록이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18경기 출전에 7골에 9도움으로 데뷔 첫 해에 K리그 도움왕과 신인상, 나아가 AFC 신인상까지 거머쥐었고, 그는 유상철과 함께 팀을 리그 준우승까지 끌어올렸다. 만약 울산이 성남을 제치고 2002년에 리그 챔피언에 올랐더라면 이천수가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쥘 뻔 했을 것이다. 데뷔 첫 시즌에 보여준 그의 능력 때문에 그의 별칭이 괜히 '밀레니엄 특급' 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각인시켜주었다. 울산에서의 두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이천수, 그를 막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03년 여름이 되기 전까지 이천수가 기록한 스탯은 18경기 출전 8골 6도움, 가히 "리그를 씹어먹는다" 는 표현의 적절한 예시였다. 그렇기에 이천수를 보는 상대팀은 그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2003년 5월 21일, 상대팀이 얼마나 이천수를 견제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던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당시 울산은 수원 원정을 왔던 상황이었고 후반 23분, 이천수는 수원 수비수와 충돌하다가 어깨가 빠져 한동안 피치 위에 누워있었다. 그 때, 수원 서포터즈는 이천수를 도발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던 이천수는 화가 나서 서포터즈를 향하여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응수했다. 이에 뒤질세라 수원 서포터즈는 '삽질개천수' 라는 플랜카드를 내걸며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그 날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마쳤고, 이천수는 이후 벌금 3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수원 쪽에서 이천수를 도발했던 것은 그가 수원킬러로 유명할 정도로 수원전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지난 시즌 7골 중 2골은 수원이었고, 공교롭게도 데뷔무대도 빅버드였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천수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천수는 참지 못하고 화답해버린 셈이다. 그 후, 이천수는 수원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천수가 울산 선수로 있는 동안 수원은 거의 이겨본 적이 없었다. 이 당시엔 서로가 몰랐을 것이다. 몇 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이다. 3. 한국인 최초 프리메라리가 1호, 하지만 순탄치 않았던 스페인 생활(2003 여름 ~ 2005 여름) 워낙 국내무대를 손바닥 위를 내다보듯이 마음껏 휘젓고 있던 이천수, 그는 분명 국내에서 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이천수에게 뜻하지 않는 손님이 스페인에서 찾아왔다. 그를 보러 멀리서 온 손님은 바로 레알 소시에다드. 소시에다드는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줄곧 이천수의 모습을 지켜봤었고, 그의 K리그 활약상을 보고 확신을 가져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기본 3년 계약에 이적료 42억원에 연봉 6억원, 의식주 부분 모든 것을 지원받게 되었다. 먼저 유럽으로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이었고, 울산 입단 시에 체결한 계약 조건이 발효되어 그는 이적료의 70%인 27억 3천만원을 챙기게 되었다. 성남과 리그 우승경쟁을 벌이고 있던 울산 입장에서는 전력상 상당한 타격이지만, 울산 성향이 선수들의 해외진출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의 스페인 진출은 마치 1990년대 후반에 안정환이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하는 것과 맞먹을 만큼의 이슈를 몰고 왔다. 등번호 19번을 받은 이천수, 때마침 레알 소시에다드가 지난시즌 리그 2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무대까지 진출한 상황이었기에 그는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출전할 수 있는 영광까지 누렸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렀는데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진출하는 것이 꿈" 이라는 발언이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레알 마드리드와 앙숙 관계였는데 이천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인터뷰 도중 실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가 입단할 당시 매우 환영했던 현지 팬들과 구단은 그의 인터뷰 때문에 소시에다드를 그저 "거쳐가는 클럽"으로 생각한다며 반감이 생겼다. 논란 속에서 레알 소시에다드 선수로서 라리가에 모습을 드러낸 이천수, 하지만 K리그에서 보여줬던 이천수 특유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오히려 위축되어 있었다. 2003/04 시즌, 그는 총 13경기에 무득점으로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쳤고, 팀 또한 중위권으로 추락하며 시즌을 마쳤다.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소집될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2004/05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 2부리그에서 갓 승격된 팀인 누만시아로 임대가게 되었다. 당시 소시에다드에선 Non-EU 규정 때문에 카르핀, 니하트, 코바체비치 등에 밀려 출전기회가 다소 적었고, 반면 누만시아는 스쿼드가 빈약했기 때문에 다소 출전기회는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누만시아로 임대가서도 이천수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누만시아와의 임대가 끝난 후, 국내로 복귀할 준비를 하였다. 그의 유럽 진출기는 실패로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4. 한국으로 돌아온 '사기 유닛' 울산의 제2 전성기를 만들다(2005 여름 ~ 2007 여름) 국내 복귀를 모색하던 이천수, 그에게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바로 친정팀이었던 울산이었다. 이천수가 떠난 이후, 울산은 막강한 수비를 앞세워 최강방패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경기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거나 상대의 심장을 꿰뚫을 창끝이 무뎠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울산이 번번히 우승으로 가는 문턱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고, 팀을 이끌던 김정남 감독의 발목을 잡고 있던 주요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김정남은 이 문제를 이천수로 해결하기로 결심한 셈이다. 그렇게 2005년 여름, 그는 호랑이굴로 컴백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으로 컴백할 때, 사람들은 과연 이천수가 스페인 생활동안 잃어버렸던 감각과 자신감을 재빠르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고 보통 웬만한 선수들은 복귀하고 난 뒤에 적응하는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이것은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론의 상식을 완전 뛰어넘어버렸다. 이천수를 다루는 법을 잘 알았던 김정남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고, 그는 최대한 이천수를 최전방에 배치하면서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천수는 그에 보답하는 듯한 모습으로 반시즌 밖에 소화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7골 5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 선보였던 그의 모습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플레이오프 3경기동안 무려 3골 2도움을 기록했고 그 중 챔피언결정전이었던 인천과의 홈&어웨이 경기 중 1차전에서 3골 1도움으로 혼자서 인천을 초전박살내는 말그대로 끝판왕의 아우라였다(이것이 후에 제작된 인천의 다큐멘터리인 '비상'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졌다). 결국 울산은 이천수의 맹활약 덕분에 2005년 두번째 별을 달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이천수처럼 반시즌동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건 이전에도 없었고, 오늘날까지도 찾아볼 수 없다. 리그 MVP와 베스트 11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이천수, 그 다음해인 2006년에도 선봉장에 선 그는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들을 여러가지 만들어냈다. 짧고 굵직한 족적이 바탕이 되어 그는 딕 아드보카트의 간택을 받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첫 경기인 토고전에서는 안정환이,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서는 박지성, 그리고 마지막 조별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는 심판판정 논란이 부각되긴 했지만, 이천수는 박지성에 버금가는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였고, 토고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4년 전 무득점의 한을 풀기도 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가 나오니 바로 A3 챔피언스컵 대회였는데, 울산은 한국 대표로 출전하였고, 감바 오사카와 제프 유나이티드, 그리고 다롄 스더와 풀 리그 형식으로 치뤘다. 특히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가 이천수라는 이름을 아시아 전역에 떨치는 경기가 되었는데, 당시 이천수는 감기기운으로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교체출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전에 무려 해트트릭을 달성하면서 감바 오사카를 6대0으로 격파하는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다롄 스더 경기에서도 2골을 쓸어담아 울산이 대회 우승을 하는 데 1등 공신으로 떠오르면서 득점왕과 MVP까지 싹쓸이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울산은 '아시아 깡패' 라는 별칭까지 탄생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울산의 위용은 대단했다. 특히나 8강전이었던 알 샤밥(사우디)와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로, 1차전에서 6대0 대승, 그리고 2차전에 1대0 승리로 통합 7대0 승리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선사하였다. 이천수는 역시나 이 경기에서도 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록 4강전인 전북과의 두 차례 경기에서 통합 6대4로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천수의 역량이 가장 만개하던 시기가 아니었나하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2007년 2월,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그리스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골은 후에 팬들이 선정한 아름다운 골이 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못다 핀 꿈이었던 유럽 진출을 다시 한 번 노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 무대였고, 송종국이 뛰었던 페예노로트였고, 그 해 8월에 이적완료하였다. 5. 날개가 꺾인 비호(飛虎), 악마의 재능으로 불리게 되다(2007 여름 ~ 2012) 페예노르트에서 등번호까지 부여받은 이천수, 하지만 그는 페예노르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새 팀에 적응해야할 시기에 한국에서 소송문제로 심적으로 묶여있는 상태였고, 이천수가 여기에 신경쓰다보니 페예노르트에 제대로 녹아들 리가 없었다. 그의 부진한 모습에 네덜란드 현지 언론들과 팀에서는 당연히 그를 곱게 보질 않았다. 결국 2008년 7월, 이천수는 한시즌만에 페예노르트를 떠나 다른 팀으로 임대가야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그는 K리그 무대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울산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를 가장 껄끄러워했던 수원이 당시 차범근 감독의 요청 하에 그를 임대영입한 것이다. 가장 싫어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빅버드에서 뛰게 되었으니 당시 수원팬들은 말그대로 '충격' 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이천수가 부진과 부상으로 3경기 밖에 소화하지 못한데다가 팀 내 항명사건까지 일으키니 그를 증오 수준으로 배척하였다. 항명 도중 팀 내 동료 폭행을 저질러으니 차범근 또한 억누르던 분노를 참지 않고, 그를 임의탈퇴로 공시해버렸다. 임의탈퇴 처분을 받게 된다는 것은, 사실상 이천수는 더이상 K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고, 그의 선수생활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위기에 봉착했던 이천수를 구원해준 인물은 바로 과거 2002년 월드컵 때 함께했던 전남의 박항서 감독이었고, 극적으로 임의탈퇴까지 가진 않았다. 이천수는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전남으로 임대가는 모양새로 광양에 둥지를 틀었다. 7경기 4골을 기록하는 등 기량은 서서히 예전의 모습으로 찾아나가는 듯 했지만, 다른 문제가 이천수의 발목을 잡았다. 쉽게 설명하면, 2009년 2월, 이천수가 전남에서 뛰기 직전에 선수 본인 동의 없이 에이전트와 전남이 말도 안되는 계약을 체결했었다. 그러던 와중, 원소속팀인 페예노르트는 그 해 여름 사우디의 알 나스르로 이천수를 이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천수 또한 알 나스르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이 사실을 안 전남은 이천수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껴 그의 이적에 제동을 걸려고 했었고, 이천수는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려고 하는 전남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한 번 그는 코치스태프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고,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면서 전남의 뒤통수를 쳤다. 전남은 이에 이천수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였고, 연맹은 그것을 받아들여 그를 임의탈퇴로 처분하였다. 사실 이 문제는, 양 측의 잘못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전남은 선수가 알지 못하게 어떻게 해서든 갑의 입장에 서기 위해 치졸한 모습을 이적과정에서 보여주었고, 이천수는 전남에서 뛸 때에도 적잖게 사건사고를 일으킨 데다가 떠나는 과정까지도 트러블을 만들어 모든 이의 비난을 샀던 것이다. 모든 논란을 만들고 사우디로 떠났던 이천수, 알 나스르 선수로서의 삶도 그렇지 평탄치 못했다. 알 나스르에서 15경기 출장하여 3골을 기록하며 나쁘진 않았으나, 문제는 구단에서 급여를 제 기한에 맞춰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 체불이 길어지자, 이천수는 이 명목 하에 무단 이탈하였고, 다음 행선지는 J리그의 오미야로 정했다. 이천수는 오미야에서 연습생 신분부터 시작하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했었던 시절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말 계약이 종료되면서 그는 무적신세가 되어 새로운 팀을 알아봐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듬해 호주 A리그의 어느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이천수는 거절했다. 그는 K리그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타향살이가 힘들었던지, 이천수의 마음 한 켠에는 'K리그에 복귀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국내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바로 전남과의 틀어진 관계를 되돌려놓아야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가 간단해보이면서도 쉽지 않았다. 비록 전남 또한 잘못한 점은 있지만, 이천수가 전남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부분 등이 합리화시킬 수는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고, 전남의 공식 입장 또한 "진정성이 부족하다" 고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전남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감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그러던 2012년 10월, 이천수는 직접 광양까지 내려가 전남의 홈경기를 보러온 관중들 한 명 한 명 대상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것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천수는 이후에도 본인이 용서받을 때까지 홈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와서 사과하겠다고 말했으나, 축구인 상당수는 그의 진정성을 여전히 의심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3년 2월 5일, 프로축구연맹에서 그의 임의탈퇴 신분을 풀어주었고, 22일에는 전남도 그를 풀어주기로 확정지은 것이다. 드디어 이천수의 고난의 연속이 끝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6.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마음으로, 고향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2013 ~ 2015) 극적으로 K리그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천수, 전남이 임의탈퇴를 풀어주기로 한 소식과 동시에 그의 입단소식이 보도되었다. 팀은 자신의 고향팀인 인천이었고, 등번호는 10번을 받았다. 4년만의 복귀라 그런지, 이천수는 절주선언에 이어 오로지 가족과 축구에만 전념하겠다고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1년동안 무적신세였던 탓이 예전같은 기량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당시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절실히 필요했던 인천 입장에서는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팀 전력에 충분히 보탬이 되었다. 그러던 4월 16일,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풀타임 소화한 후에 전남 서포터들이 포진하고 있던 원정석으로 다가가 깍듯이 인사하였고, 이에 박수로 화답하는 등 서로간의 앙금이 완전히 풀렸다. 그 후 4일 뒤에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면서 1,428일만에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급작스런 현역복귀로 몸이 적응안되었는지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적도 있지만, K리그 복귀 후 첫시즌은 19경기 2골 5도움으로 팀 성적을 고려하면 제법 괜찮은 스탯이었다. 그리고 이천수는 연봉 삭감까지 감수하면서 인천과 2015년까지 함께하며 인천과의 의리를 과시함과 동시에 팀 내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풍미하던 사기유닛도 나이에는 장사 없었고, 예전과 달리 날카로움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가 부상 빈도 또한 높아져서 출전 횟수조차 점점 줄어들었다. 부상으로 인천이 FA컵 결승전에 진출하던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5년 11월 5일 JTBC 뉴스룸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고, 11월 28일인 마지막 홈경기는 부상으로 인해서 은퇴식으로 대체하여 그의 파란만장했던 선수로서의 생활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이천수는 "게으른 천재", 또는 "트러블메이커" 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는 적합하지 않다. 그가 경기 때마다 번뜩이는 모습이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그는 승부욕이 강해서 그 어떤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 악바리 스타일이며 이천수 본인 또한 악바리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트러블메이커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도 조금 억울한 것이, 해외 사례만 하더라도 이천수보다도 더 심하면 심한 선수는 끝도 없다. 호마리우, 안토니오 카사노, 조이 바튼, 아드리아노, 마리오 발로텔리, 하르템 벤아르파 등 피치 밖에서 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으면서도 잘만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국내에서 이천수 같은 유형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가 비록 언론에서 보여줬던 인터뷰 방식 등이 경솔했던 것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이천수의 업적이나 기량 등을 폄하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하는 바다. 인천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통해 개과천선 했으니 이만하면 훈훈한 결말이다. 은퇴식을 치르고 나서 인천 서포터즈는 "풍운아를 품은 우리가 행운아" 라는 걸개를 내걸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플레이어를 배웅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쓰고 싶었던 것은 울산 쪽이 아니었나 싶다. 이천수의 전성기는 곧 울산의 전성기 중 하나로 꼽힐만큼 일종의 공동운명체로 함께 해왔다. 김정남 감독이 이천수에게 모든 걸 맡기듯이, 울산에게 있어서 이천수는 "쟤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이천수는 무언가 해줄 것이다." 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고, 이천수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여 결국 울산을 리그 챔피언에 올려놓은 후에 아시아 깡패라는 칭호까지 선사했다. 실제로 이천수가 임의탈퇴 신분으로 K리그에서 한동안 떠나있을 때에도 남들은 다 적으로 돌아서도 항상 그의 편에 서있었던 것은 울산 팬들이었고, 그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오더라도 집 나갔던 자식이 돌아온 것마냥 환호해주곤 했다(심지어 울산으로 돌아오라는 걸개도 걸렸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JTBC 해설위원으로 종종 울산 문수경기장을 방문할 때마다 울산 팬들로부터 이천수콜을 받는다. 누가 뭐래도 그는 울산의 또 하나의 레전드였고,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K리그 사기 유닛' 이다. 두고두고 기억하리, 이.천.수.
어제자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던 호날두 행동
어제 있었던 마드리드 더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3:0 완승을 거뒀습니다. 최근 부진을 거듭했던 호날두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역시 메날두 걱정은 하는게 아니라는 격언을 팬들에게 다시 한 번 더 상기시켜줬습니다. 호날두는 이날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을 2가지나 보여줬습니다. 첫번째는 호우가 아닌 호오.. 세레모니였고 다른 하나는 양보였습니다. 후반전 1: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호날두가 사비치의 태클에 걸려 패널티 박스에서 넘어집니다. 호날두에게 PK는 훌륭한 스탯 제조원 중 하나입니다. 본인이 얻어냈으니 눈치볼 것도 없을텐데 호날두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좀처럼 보기 힘든 행동을 합니다. '네가 찰래?' 그렇습니다. 호날두가 PK를 양보하려고 한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작은형 가레스 베일이었습니다. 과거에도 1번 정도는 PK 양보를 했던 적이 있긴 했는데 스타성에 영웅성까지 갖춘 호날두가 이토록 중요한 경기에서 추가골 기회를 다른 선수에게 양보한다는건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마드리드 더비였기 때문에 팀을 위해 양보를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최근 PK 성공률에 난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까요. 이유야 어쨋든 호날두는 훌륭하게 골키퍼를 속이며 PK를 성공시켰습니다. 차기 전에 계속 입벌리고 멍때리고 있길래 불안했는데 완벽히 성공시키더군요 ㅋㅋ 그리고 골 세레모니 컬렉션 하나 더 추가 ㅋㅋㅋ 아마 FIFA17에 곧 추가될 수도 ㅋㅋㅋㅋㅋ 우리형 양보 칭찬해~~
패스 성공률 100%, 이스코의 '프리롤'과 유벤투스의 전략
1 레알 마드리드는 유벤투스를 상대했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이스코'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스코의 역할은 언제나 '프리롤'로 경기장 전체를 돌아다닌다는 건데요. 이스코가 '프리롤'로 수행하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경기장을 돌아다니면서 상대 수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패스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이죠. 따라서 이스코의 활동반경을 보면 전방, 후방, 측면, 중앙 가리지 않고 경기장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코의 히트맵. 경기장 전체를 돌아다닌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지런하게 경기장 전체를 뛰어다니는 이스코의 장점은 경기초반부터 빛을 발했습니다. 경기시작 3분만에 터진 골장면을 보면, 이스코가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면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코가 워낙 자유롭게, 부지런히 뛰어다니다보니 순간적으로 유벤투스 수비진이 이스코를 놓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스코는 유벤투스의 측면을 완벽하게 무너뜨렸죠. (골장면. 이스코가 최전방을 부지런히 돌아다닙니다.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유벤투스 수비를 모두 따돌렸고, 측면을 무너뜨렸죠) (측면이 무너지면서 유벤투스의 측면 수비와 중앙 수비에 공간이 생겼고, 호날두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2 이후에도 이스코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빌드업의 핵심적인 존재였죠.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볼을 순환시켜주고, 열심히 뛰어 다니면서 동료 선수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이스코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레알 마드리드가 빌드업을 시작할 때, 이스코는 중앙에서 볼을 받습니다) (이후 크로스가 볼을 받자, 이스코는 전방 공간으로 뛰어나가면서 유벤투스 선수들이 크로스를 압박하기 위해 전진할 수 없도록 도와줍니다. 이스코가 뛰어나가자 유벤투스 선수들이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볼 수 있죠 ) (이어서 이스코는 쉬지 않고 유벤투스 선수들을 피해 측면으로 돌아나가 볼을 받아줍니다. 이스코는 계속해서 뛰어다니면서 패스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처럼 이스코는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레알 마드리드 빌드업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3 세 번째 득점 또한 이스코의 부지런한 움직임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스코가 전방으로 침투하면서, 키엘리니가 이스코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키엘리니와 바르잘리의 위치에 혼선이 생기면서 위치가 겹치게 되었죠) (마르셀로와 호날두는 이스코가 만들어준 공간을 활용해 유벤투스 수비진을 무너뜨립니다) 이처럼 유벤투스전에서 이스코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움직임 뿐만 아니라 볼을 잡았을 때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줬죠. 이스코는 74분 교체되기 전까지 54개의 패스를 시도했는데, 패스 성공률 100%를 기록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스코의 플레이 위치가 후방이 아니라 상대의 압박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최전방, 상대 수비진 사이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기록입니다. (이스코는 유벤투스전에서 54개의 패스를 시도했고, 성공률 100%를 기록했습니다) 4 그러나 이스코를 선발로 기용했을 때 발생하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바로 측면 수비가 다소 부족해진다는 것인데요. 아무래도 이스코가 공격형 미드필더로(앞선에서) 플레이하기 때문에, 좌우 중앙 미드필더인 크로스와 모드리치가 측면 공간을 수비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스코가 기용되었을 때, 레알 마드리드의 포지션 자체가 중앙지향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죠. (이스코가 선발로 출전할 때,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측면 공간을 수비해야 합니다) 5 유벤투스는 이런 점을 활용해서 좌우 측면 공간을 넓게 활용했습니다. 중앙에 쏠려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을 피해서,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는 것이죠. 이 장면을 보면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는 유벤투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전방에서 압박을 할 때, 선수들이 중앙에 몰려 있기 때문에 측면에 공간이 생깁니다) (유벤투스는 이 공간을 활용해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죠) 이 장면에서도 유벤투스가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앙에 몰려있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피해서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고, 위협적인 공격이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 이렇게 유벤투스가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볼이 중앙에서 머무르는 빈도가 적기 때문에 중앙 미드필더인 케디라가 중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방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벤투스의 패스맵을 보면 케디라의 위치가 아주 높은 것을 볼 수 있죠. (유벤투스의 패스맵을 보면, 케디라의 위치가 굉장히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케디라는 유벤투스의 공격 상황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적극적인 침투를 시도했습니다. 케디라가 공격에 가담했을 때 유벤투스의 공격숫자는 순간적으로 많아졌고,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에 혼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틈에 케디라가 동료 공격수들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주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케디라는 상대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적극적으로 침투했습니다. 워낙 부지런히 움직이다보니 레알 마드리드 수비진이 케디라를 놓치는 장면이 발생했죠) (그리고 그 틈을 활용해 케디라가 동료 선수들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줬습니다) 이 장면 또한 케디라의 전진성이 발휘되는 장면입니다. (케디라가 적극적으로 전진해서 동료 선수들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줍니다) 7 케디라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전진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카세미루를 적극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건데요.  케디라는 과감하게 전진해서 카세미루를 압박했는데, 이 과정에서 볼을 빼앗아 좋은 공격찬스를 맞이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카세미루 압박장면 1. 카세미루가 볼을 잡을 때, 케디라는 적극적으로 전진해서 카세미루를 압박했습니다. 상대적으로 탈압박에 약점이 있는 카세미루는 계속해서 실수를 했죠) (카세미루 압박장면 2. 케디라가 전진해서 카세미루의 실수를 유발하는 장면) 이외에도, 유벤투스는 카세미루가 볼을 잡는 순간을 노려서 의도적으로 강한 압박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략적으로 카세미루를 압박 타깃으로 삼은 것이죠. (카세미루가 볼을 잡는 타이밍을 노려 압박하는 유벤투스 선수들) ㅡㅡ 8 이처럼 레알 마드리드는 이스코를 활용해서 유벤투스는 측면 공간과 케디라를 활용해서 전략적인 경기를 펼쳤는데요. 경기 수준도 굉장히 높고, 내용 자체도 상당히 팽팽했지만, 유벤투스가 수비 실책으로 두번째 골을 실점하고, 곧바로 디발라가 퇴장을 당하면서 급격하게 레알 마드리드 쪽으로 승리가 기우는 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경기결과는 일방적이었지만, 경기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재미있던 경기가 아니었나 하네요. -- 분석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xfpOiXM31vc
아우터 제왕의 귀환, 피쉬테일 야상이 돌아왔다!
남자들이 정말 사랑한 그 옷, 야상 ㅠㅅㅠ 개파카부터 레플리카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야상이 이번년도 피쉬테일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피쉬...?? 물고기??? 맞아 물고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쉬테일(Fishtail)은 물고기 꼬리처럼 뒷 중심 라인이 두 갈래로 나눠진 파카 스타일이야! (이렇게 확대해서 보니까 징그럽다....) 사실 이옷의 탄생 배경은 바로 한국 전쟁에서 시작!!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의 한반도의 날씨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고 얼어붙은 땅에는 동상 사상자, 빙판길, 무기의 오작동 등의 문제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을 정도였지, 이러한 혹독한 날씨가M-51이라는 피쉬테일 파카(Fishtail parka)를 탄생하게 된거야 피쉬테일 야상은 요즘 인스타에서 난리야 난리!ㄷㄷ 아이러니포르노 비건스웨이드 크루얼티프리 셔링 피쉬테일 롱 스웨이드 자켓. (iro100 카키) 비건 스웨이드 소재를 사용한 친환경 패션 아이템으로 오버핏 실루엣에 롱 기장의 야상 스웨이드 자켓, 미니멀함과 고급스러운 무드를 동시에 연출 가능하며 노카라와 후드 스타일 2가지 중 선택이 가능하지! 또한 오버핏 실루엣을 바탕으로 여유로운 품과 기장으로 활동성이 높은 것이 아이러니 포르노의 가장 큰 장점이라구~~ 야상인데 고급스러워 보인다..ㄷㄷ 매스노운 레이어드 피쉬테일 야상 코트 (MFZCT002-KK, BK) 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명확한 스타일을 지향하는 브랜드 ‘매스노운(MASSNOUN)’의 가을 인기템, 피쉬테일 야상 점퍼로 뒷 판이 레이어드 절개 라인으로 제작되어 앞 모습도 멋있지만 당신의 뒤태를 책임져주는 진정한 피쉬테일 야상 코트지! 매스노운의 철학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트렌드'를 제안하는 것을 이 옷에서 느낄 수 있어 ㅎㅎ 철학 한번 굉장히 있어보이네...ㅋㅋㅋㅋ 킬리자로 조거 팬츠 열풍에 이어 올 가을엔 알파카 피쉬테일 점퍼 ‘킬리자로’의 알파카 피쉬테일 파카는 은은한 광의 알파카 소재를 사용한 것으로 가을에서 겨울까지 착용 가능하며 레이싱에서 느껴지는 속도감, 스키드 마크, 써킷 패널 등의 비주얼적인 요소를 표현한 제품이야 강렬하면서 자연스러운 컬러 매치와 과감한 라인을 차분한 실루엣에 섬세하게 표현한 것을 느낄 수 있어
가레스 베일 인생 골 TOP5!!!
안녕하세요~스포츠구루 이준호 에디터입니다^^ 많은 분들이 메시, 호날두에 이어 베일 TOP5 골 좀 올려달라고 해서 준비해봤습니다~ 베일의 인생 골 BEST5!! 먼저 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나온 베일의 골입니다~ 프리미어리그 창설 이후 첫 챔피언스리천신만고 끝에 챔스 무대에 오른 토트넘은 디펜딩 챔피언 인터밀란과 같은 조에 속합니다~그리고 인터밀란과의 첫 대결(원정)에서 고메스 골키퍼의 퇴장 때문에 전반에만 4골을 허용하며 0-4까지 끌려가게 됩니다ㅠㅠ 그리고 10명으로 맞선 후반전, 베일의 원맨쇼가 시작됩니다. 후반 7분, 자네티와 마이콘을 제치고 추격골을 넣습니다! 이후 2골을 더 넣은 베일은 비록 팀이 3-4로 졌지만, MOM과 함께 평점 10점을 받습니다! 2주 뒤에 펼쳐진 홈 맞대결에서는 마이콘을 탈탈 털어버리며 2어시스트를 기록 3-1 승리와 함께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합니다!(이날도 평점 10점) 2010.10.21 두 번째 골은 웨일스 대표팀에서 넣은 골입니다~긱스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 에이스 자리에 오른 베일이었지만, 팀 전력이 워낙 약한 탓에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도 힘겨운 행보를 보입니다. 첫 두 경기에서 벨기에와 세르비아에 패한 웨일스는 3차전에서 라이벌 스코틀랜드와 만납니다. 하지만, 홈에서 전반 28분 실점하면서 패색이 짙어졌죠. 이 때 베일이 후반 36분, 페널티킥을 넣었고 경기 종료 3분전 말도 안되는 중거리 슛으로 예선 첫 승리를 가져옵니다! 찰리 아담의 파울성 태클에도 중심을 잃지 않았네요~축구에도 바스켓 카운트가 있었다면 추가 페널티킥까지 얻었겠죠?^^ 2012.10.13 세 번째 골은 12/13시즌 선덜랜드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나온 골입니다~ 골도 멋있었지만, 이 골이 토트넘 시절 마지막으로 터뜨린 골이라 의미가 배가 됐네요! 당시 아스날과 마지막까지 챔스 티켓을 놓고 싸우던 토트넘은 홈에서 강등권 싸움을 벌이는 선덜랜드와 만납니다! 반드시 승리를 거두고 아스날의 경기 결과를 봐야했던 토트넘은 후반 44분까지 0-0으로 끌려갑니다ㅠㅠ 이 때 해결사 베일이 나타납니다. 엄청 먼 거리에서 혼자의 힘으로 승점 3점을 선물했네요~결국 4스날의 과학 때문에 5위에 머물지만, 레알로 떠나기 전 유로파리그 티켓을 선물하고 간 베일이었습니다~ 2013.5.20 네 번째 골은 레알 마드리드 첫 시즌에 나온 골입니다~리그 31라운드 라요 바예카노전에서 나온 팀의 네 번째 골입니다! 무시무시한 치달로 라요 선수들의 사기를 꺾어 버리네요. 라요 바예카노는 남자의 팀으로 레알을 만나더라도 항상 라인을 올려 공격적으로 나옵니다! 베일은 현재까지 라요전에서 많은 골을 넣었지요. 이날 베일은 2득점 1도움으로 경기 MOM에 선정됩니다! 2014.3.30 마지막 골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골입니다~오늘 전체적으로 멋있는 골 위주로 뽑았는데 큰 경기에서 멋진 골들을 많이 넣은 베일이네요~영양가 굿입니다! 베일은 여태까지 코파 델 레이(스페인 FA컵)에서 단 1골만, 넣고 있습니다. 부상도 있고 주전이다보니 많이 출장하지 못했는데요~그 1골이 바로 이 골입니다. 13/14시즌 코파 델 레이 결승전! 리그 우승을 바르셀로나에 내줬지만, 코파 델 레이 만큼은 내줄 수 없던 레알 마드리드는 1-1로 팽팽하던 후반 39분, 베일의 치달골로 우승을 차지합니다! 바르샤 수비수 바르트라는 터치 라인 바깥으로 돌아가는 베일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2014.4.17 베일이 부상에서 돌아와 더 멋진 골을 넣길 기대한다면 좋아요 한 번 눌러주세요~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오늘자 상대팀 팬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은 네이마르
오늘도 하드캐리하고 후반전 종료직전에 교체되어 들어가는 네이마르 그 순간 프랑스는 관중 난입이 하나의 이벤트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난입 관중을 맞이하는 네이마르를 볼 수 있었습니다.(하물며 저 애기도 막지 못하는 시큐리티들 존재 무엇..?) 아시다시피 네이마르는 아이들에게 굉장히 관대하고 잘해주는 선수입니다. 아이돌 사생팬에 버금가는 오열을 보여주는 아이에게 능숙하게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리드하는 네이마르 정말 이벤트인양 뒤늦게 속속 등장하는 시큐리티들에게 네이마르는 괜찮다며 제지를 합니다 보통 관중이 난입하면 곧바로 시큐리티가 와서 떼어놓고 데려가기 마련인데 네이마르는 자신이 직접 데리고 가겠다는듯 시큐리티들의 난입을 제지합니다. 그리곤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에게 직접 입고 뛰었던 유니폼을 주며 한 아이를 종신 파리팬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곤 원정 경기장임에도 불구하고 렌의 홈경기장에서는 네이마르를 향한 박수갈채가 이어졌습니다. 네이마르가 사실 그간 psg로 와서 이미지도 많이 안좋아졌지만 팬서비스, 그중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팬서비스 만큼은 어느 선수를 데려와도 비교불가 수준입니다. 그래서 슈퍼스타인거겠죠.
호날두 발롱도르 수상에 카카가 유독 기뻐한 이유
호날두의 발롱도르 수상이 발표된 이 후 역대 수상자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는 중 벌써 10년이라니... 그 10년동안 메날두가 다 해먹음... 메날두 수상할때마다 기분 좋다는 카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카카가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꿀이득 본 카카 아시다시피 카카는 메날두 집권 시기가 오기전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마지막 수상자입니다. 그 후로 10년 동안 호날두와 메시가 번갈아가며 발롱도르를 독식했죠. 항상 메날두의 발롱도르 수상이 확정됐을때 마다 잊지 않고 회자되는게 바로 카카의 존재감이었습니다 ㅋㅋㅋ 신계 두명이 발롱도르 독식하는 현재 바로 직전 발롱도르 수상자인 카카의 위상 또한 덩달아 높아졌습니다 ㅋㅋㅋㅋ 실제로 당시 카카의 위상은 어마무시했습니다. 부상만 아니었어도 카카의 모든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발롱도르는 좀 특별한 연출을 사용했습니다. 바로 에펠탑을 이용했는데요. 화려하긴 했찌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바로 줌업 땡길때 뒤돌아 있던 호날두의 모습입니다... 누가봐도 호날두 뒷통수잖아!!!!!!!!!!!!!!!!!!!!!!사실 뒷통수 식별되는 시점부터 호날두인줄 팬들은 알았을겁니다 ㅋㅋㅋㅋ 뭐 그래도 에펠탑에서 수상을 하는게 나름 신선하긴 합니다 ㅋㅋㅋ 이로써 호날두와 메시의 발롱도르 스코어는 5:5 동점이 됐습니다. 참 호날두다 대단합니다. 1:4였던 트로피 갯수를 몇년만에 5:5로 다시 맞춰놓다니 정말 우린 행복한 세대인거 같아요
엇갈리고 있는 밀란 형제의 행보
이탈리아하면 떠오르는 클럽들 중 하나인 AC 밀란과, 인터 밀란. 그만큼 '밀란 형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클럽들인데요. 하지만 멤버의 세대 교체 실패와 잦은 감독 교체, 구단 내부 사정 등등 여러 문제가 꼬이며 중위권까지 내려가는 수모를 겪습니다. 이들이 참가하지 않는 '챔피언스 리그'도 이제 어색할 것이 없을 정도 입니다. 어쩌면 밀란 형제 중 한팀은 다음 시즌 별들의 무대에서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한 팀은 유로파 리그 진출도 벅차 보입니다. 우선 '5년 째'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고 있는 인터 밀란. 작년 이맘때 인터 밀란은 꾸역 꾸역 승리를 챙기며 전반기 1,2위를 다투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올해는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 프리 시즌때 부터 만치니가 구단 프런트와 마찰을 빚어왔고 결국 자진 사임 해버렸는데요. 후임자로 아약스를 이끌었던 데부어를 선임 했습니다. 아쉽게도 데부어는 짧은 기간 사이 인터 밀란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데 실패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성적 부진까지 겹치며 경질 당하게 됐습니다. 현재는 전 라치오 감독이었던 피올리가 팀을 이끌고 있으며 아직 팀은 정돈이 진행 중인 상태인데요.. 팀의 '주포' 이카르디가 꾸준히 득점을 기록하며 소년 가장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만이 긍정적입니다. 반면 AC 밀란은 인터 밀란과는 대조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즌 초 최악의 이적 시장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번 시즌도 부진이 예상 됐는데요. 하지만 몬텔라 감독의 지휘 아래에서 똘똘 뭉치며 기강 잡힌 정신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C 밀란은 사수올로에게 3-1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4-3으로 대역전극을 만들어 내거나 '디펜딩 챔피언' 유벤투스를 1-0으로 꺾는 등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거기다 이번 시즌 후반 막판에 결승골을 집어 넣은 경기도 많을 정도로 그들의 정신력과 집중력은 빛을 발하고 있죠. 스쿼드가 안정화 되있지 못하다는 점은 아쉽지만 올해 AC 밀란은 정말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최근 어느 때 보다 기대치가 높아졌습니다. 밀란 형제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이구요. 밀란 형제의 부활과 함께 세리에의 경쟁력도 다시금 높아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들이 부활하여 유벤투스의 독주를 저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빙글 유저 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그땐 그랬지 (3) 주제 무리뉴 (MU)
그땐 그랬지는 명장, 졸장 상관없는 선출 감독들이 감독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2016년, 맨유의 지휘봉을 잡는다 # W E L C O M E JOSE 05-06 시즌에 맨유가 첼시를 턱밑까지 추격하자 "내가 두려워 하는건 오직 신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게 뭐가 있나?" "나는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두렵다." -주제 무리뉴 사실 무리뉴는 별볼일없는 선수였습니다. 말 그대로 '듣보잡' 그는 축구를 사랑하는 남자였지만 애석하게도 자신이 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있었습니다. 1987년, 무리뉴는 선수 생활을 돌연 은퇴해버립니다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 넷.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면, 일류 감독이 된다." 스스로도 자신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매 순간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한 무리뉴는 체육 교사, 통역관 등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내며 단기간에 탑 클래스, 슈퍼 퀼리티의 축구 감독, SPECIAL ONE이 됩니다. 맨 앞 줄, 우측에 한 선수가 빛나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하면서 94경기 13골을 기록. 포르투갈 2부리그에서의 기록입니다. (1) 바비롭슨의 통역관 무리뉴는 축구 선수를 조기은퇴한 후, 어머니의 의사를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합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등록을 취소합니다. (벵거는 경제학 석사입니다) 이 때 등록을 취소하지 않았다면 큰 자금력을 바탕으로 팀을 완성해나가는 무리뉴의 축구가 체계적으로 자금을 조절하는 벵거의 아스날처럼 바뀌었을라나요? 결국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 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습니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합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故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너 인마, 통역 좀 하더라? 마음에 들어쓰 (2)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봅니다. 무리뉴가 담당 통역관이 된 이유도 제목처럼 그의 통역에 반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롭슨은 그의 전술적 역량에 감탄합니다.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됩니다. 여담으로 지단도 안첼로티를 보좌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하네요. "바르샤는 내 마음 속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거야" - 주제 무리뉴, 1997년 우승 축하연에서 바르셀로나 수석코치 (3)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을 만나게 됩니다. 제 2의 자아(또는 혀리뉴) 덕분인지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히 성장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바로 그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탭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됩니다. FC 바르셀로나 수석 코치 커리어를 끝으로 코치 생활을 마감하고  유프 하인케스의 후임으로 SL 벤피카에 부임하면서 첫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죠.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밌네요.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크루이프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는데 무리뉴에 대한 말, 말, 말에서 곧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 맨유 감독은 어떠십니까? 붙박이 퍼거슨이 있잖아. 갈 수 있을 것 같나? 미래의 자네라면 갈 수 있겠어? 못가죠? 우승 및 중요한 업적들 UF 레이리아 01-02 전반기 3위 수성 FC 포르투 01-02 후반기 리그 3위 기록 02-03 포르투갈 리그, 포르투갈 컵, UEFA 유로파리그 우승. 미니트레블 03-04 포르투갈 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첼시 04-05 EPL, 리그컵 우승 05-06 EPL, 커뮤니티 실드 우승 06-07 리그컵, FA컵 우승 인테르 09-10 코파 이탈리아, Seria A,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레블 레알 마드리드 10-11 코파 델 레이 우승 11-12 수페르코파, 라 리가 우승 첼시 14-15 EPL 우승 무리뉴 너란 남자. 우승 경력이 많아서 찾기 힘들었다 :'( 무리뉴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으시다면 곧 쓰게 될 무리뉴에 대한 말 말 말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