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love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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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6탄!)

여러분! 또 왔어용! ㅋㅋㅋㅋ
5탄 반응 진짜 좋아서 ㅠㅠ
기쁜 마음으로 6탄도 가져왔습니당!!!
기다려주시는 분들 감사해용!

맥주 금지령 이후 버려지는 맥주

아름다운 자살



23살의 Evelyn McHale,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3가에서 리무진으로 떨어짐.1947년

스티븐 호킹과 그의 첫 아내

히틀러의 마지막 사진, 1945년 4월 30일

플로리다의 마지막 미국 남북전쟁 베테랑, Bill Lundy.

제트 전투기 앞에서, 1955

18살 프랑스 레지스탕스 Simone Segouin (가명 Nicole Minet)

그녀는 샤르트르에서 수도를 해방시키기 위해 참전했다.
8월 19일, 1944
*레지스탕스란 프랑스어로 ‘저항’이라는 뜻이다. 점령군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행위를 일컫는데, 보통 레지스탕스라 하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저항운동을 의미한다.

한국전쟁 때 서로를 안고 있는 군인들

수영복 길이를 재는 중, 너무 짧으면 벌금 부과, 1920년대


자유의 여신상 머리 부분을 꺼내는 중, 1885


군대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1962

반응 좋으면 7탄!!! 럭키 7 갑니당!!

3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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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옛날희귀사진볼때마다 탐험하는 느낌ㅎ
수고 했습니다 자료 구하라 설명 하시느라 넘 편하게 보는것 같아 지송스럽네요
하 18살의 그것도 여성 레지스땅스라니...
감사합니다 처음보는 사진이 많아용
맥주 ㅋ 아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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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들이 있다길래 그 중에서 10장 가져와봤습니당 *0* 사진에 대한 자세한 이유 이런걸 적어드리고싶은데 사진들에 별다른 설명 없이 제목만 있었다는 점 참고 부탁드려용 ㅠㅠ (출처: http://coviral.com/author/corazon/) +@minbxminb 님께서 댓글에 설명을 추가해주셔서! 글에도 추가합니당 > < 불에 타는 스님 (1963년) @minbxminb: 불에 타는 스님 베트남전쟁 때 남베트남 정권의 불교탄압과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서 틱광둑 스님이 소신공양을 했는데 그 고통속에서 전혀 신음소리나 몸부림 조차 없이 버틴 모습의 사진입니다. 후에 시신에서는 손상되지 않은 스님의 심장이 나와서 현재 하노이 국립은행에 보관중이라고 합니다. 구글링 하시면 심장 사진도 찾아 볼 수 있어요. https://youtu.be/Mo_iV7kOGe4 <- 소신공양 때 영상입니다. 이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모습은 Rage Against The Machine 의 1집 앨범에서 자켓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 나치의 경례를 하지 않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1936년) 배우 소피아 로렌과 제인 맨스필드 잌ㅋㅋㅋㅋ @minbxminb: 배우 소피아 로렌과 제인 맨스필드 1958년 미국 베벌리힐스에서 육체파배우 소피아 로렌이 거대한 가슴으로 유명세를 탄 제인 맨스필드를 만나자 곁눈질로 가슴부위을 보고있는 사진입니다. 정작 맨스필드는 가슴에 묻혀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네요.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혼자 유일한 흑인인게 더 놀랍네용; @minbxminb: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오마바 대통령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하와이에 왔을때 선물한 농구공으로 매일 맹연습을 했고 푸나호우 농구부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농구는 농구선수급으로 잘 했고 팀의 에이스였지만 흑인이라서 주전은 될 수 없었다네요. 그 당시에는 몰랐다고해요 왜 자신이 주전이 될 수 없었는지. 백만개의 동물 해골 (1870) 우주인 Michael Collins가 찍은 사진 (1969년) 불이 난 건물에서 살기 위해 떨어지는 엄마와 딸 (1975년) 한명만 살아남았다고 하네용 ㅠㅠ 베트콩을 사살하는 사이공 경찰 (1968년) @minbxminb: 베트콩을 사살하는 사이공 경찰 이 사진을 촬영한 것은 미국 기자 에디 아담스입니다. 1969년 2월 1일 실제로 총을 겨누는 사람은 경찰서장이고 사살당한 사람은 사이공 도처를 찌르고 다녀던 베트콩 일원이었고 현장에서 즉결처형으로 사살당했지만 우선 사진상으론 사복을 입고있는 남자가 공포에 질린 (엄청난 공포로 얼굴이 구겨질대로 구겨져 그의 아내가 얼굴을 못알아볼 정도였다고하네요) 민간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야만스러워 엄청난 사건이 되어버린 사진입니다. 이 후 경찰서장은 미국의 압력에 의하여 직을 박탈당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피자집을 운영하다가 사람들에게 정체가 알려져 식당에 욕 낙서가 난무했다고 하네요. 기자 에디 아담스는 이 경찰서장에게 사과했다고 해요. 장군은 총으로 베트콩을 죽였고 자기는 사진으로 장군을 죽였다고.. 우주에서 떨어진 우주인 Vladimir Komarov 의 잔해 (1967년) 인형극에서 악당을 밝힐 때의 아이들의 반응 (1944년) ㅋㅋㅋㅋㅋ애들 너무 귀여워용 ㅠㅠ 재밌게 보셨나용? 댓글 달아주시면 2탄 올려드릴게용 > <! 댓글 많이 달아주셔서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2탄도 올렸어용!
조선 왕비 중에 포지션이 좀 특이했던 분들.jpg
인수대비 의경세자의 부인 세자빈 시절 남편이 요절하여 어중간해질뻔 했지만 정희왕후에 의해 둘째 아들(성종)이 왕으로 추대되자 중전을 건너뛰고 바로 세자빈 → 대비가 됨 따라서 내명부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던 시기는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방, 인수대비로 가장 알려져 있지만 수빈한씨, 소혜왕후(추존)도 공식 명칭임 정성왕후 서씨 영조의 정비이고 조선 유일의 세제빈을 거쳐 왕비가 됨 또한 조선 왕비 중에 최장기 재위를 한 타이틀도 지니고있음 (33년) 효의왕후 정조가 세손이던 시절 가례를 올리고 세손빈이 되었으며  정조가 할아버지(영조)의 뒤를 바로 잇게 됨으로 효의왕후도 세손빈 → 중전이 됨 세자빈 시절은 없었음 희빈장씨 삼불거에 의해 인현왕후 민씨가 복위되자 중전에서 빈으로 다시 강등된 유일한 사례 하지만 폐비윤씨처럼 폐서인이 된것이 아니기에 조선 최초의 무품빈 자격이 유지되었으며,  이는 훗날 비슷한 무품빈들이랑 비교해봐도 압도적으로 월등한 대우를 받은 것이 실록에 남아있음 옥산부대빈이라는 존호를 받고 묘호도 대빈묘, 대빈궁으로 왕후들만 사용하는 원형기둥 양식으로 조성됨 원래 중전과 후궁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 맞으나 희빈장씨는 조선 유일의 예외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겠음  출처
일본 가부키에 등장 하는 조선 요괴ㄷㄷㄷ
일본 에도시대는 그 시절 브로드웨이 라고 할수있는 가부키(연극)가 유행했는데 그 중에 조선 요괴 '모쿠소 호간' 이 여러 이야기에 등장한다 일본군이 산에서 머물다 가려하면,  갑자기 커다란 괴물이 솟아나서 일본군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매우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다 이 모쿠소 호간이 바로  진주 목사 김시민 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김시민의 이름을 직책인 목사로 착각 했고, 목사의 일본 발음인 '모쿠소' 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간 역시 직책인 판관의 일본 발음이다. '목사 판관' -> '모쿠소 호간'이 되었다) 또한 18세기에 일본에서는 지라이야라는 두꺼비 요술사를 다룬 텐지쿠 도쿠베 이국 이야기(天竺德 兵衛韓)라는 소설과 가부키가 유행했었다 이 지라이야의 정체가 바로 '조선의 악마 모쿠소 호간의 아들' , 즉, 김시민 장군의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에 나타난 복수의 화신인것이다 참고로 이 두꺼비 술사는 뱀에 의해 요술이 파괴되고  결국 복수는 미완에 그치게 된다  (이야기에는 뱀,달팽을 다루는 술사들도 등장한다) 충무공 김시민은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후 1583년 여진족인 나탕개의 난 진압에 참여 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 에서 왜군을 격퇴해냈다. 임진왜란 발발 하자 진주목사(정3품) 이경이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김시민이 진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김시민은 취임하자 곧바로 염초 150여 근과 총통 70여 병을 만들고 정병을 뽑아 사용법을 연마하게 하는 등 성을 지키는 방책을 강화하였다. 왜군의 진주성 공략이 시작되자 김시민은 두려움에 도망치려는  부하 장수들과 군민을 너른터에 모아놓고 싸울 것을 호소하였다. 고을 안에 사는 백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부 성으로 들어오게 하고  여자는 모두 남장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뒤 싸움에 임했다. 이후 6일동안 이어진 치열한 혈투 끝에 결국 왜군을 격퇴 하였다 진주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이다 다른 두 대첩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사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전체를 통틀어 전쟁의 판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전투이다. 다른 두 대첩은 하루동안 싸웠지만 진주대첩은 무려 6일동안 싸웠다 전쟁 초기 일본은 바다와 달리 육지에선 큰 피해를 입은적이 없었고, 진주성에의 패배는 육군 최강이라 자부했던 왜군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이후 왜군은 김시민을 모쿠소라고 부르며 두려워했었다. 만약 진주성이 뚫려 전라도가 점령 당했다면 곡창지대를 내주는것과 더불어  이순신의 수군 전력까지 큰 위험에 빠졌을것이다 거시 안목으로 볼때 임진왜란을 사실상 조선의 승리로 결정지은 대단히 중요한 전투인 것이다. 3만에 달하는 일본군을 4천 정도 규모의 조선군이 분투 끝에  극복한 것 자체로도 명량 해전 못지 않은 성과라 할수있다 일본이 명과 강화 협상할때도 진주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어  철수 못한다 라고 까지 말할정도였다. 얼마나 사무쳣는지 후에 2차 진주성 전투에는 모쿠소를 잡겠다고(이미 김시민은 죽었지만 왜군은 몰랐다), 10만에 가까운 대군을 동원하고 당시 일본 최고 네임드 장수였던 다테 마사무네까지 참전 하며 장수진을 올스타급으로 꾸려서 온다 진주대첩(1차 진주성 전투)은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당시 38세였던 김시민은 전투 중 치명상을 입고 전사하고 만다 왼쪽 이마에 총탄을 맞고 9일간 사경을 헤매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 장수는 김시민이었다. 당시 일본은 이순신의 존재를 전쟁 내내 몰랐고, 나중에 징비록이 일본에 퍼지면서 이순신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이종격투기카페 펌
웃기고 어색하고 이상한 가족 사진들.jpg
6살 때 내 여동생 쟤는 너무 피곤했고 방금 스파클링 포도 주스를 마셨대 온수 욕조를 얻은 부모님은 매우 기뻤고 할머니는 욕조 안에서 가족 사진을 찍을 사진작가를 따로 고용했음 그리고 이 사진을 150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로 보냄 옛날에 찍은 아빠의 모델 사진을 발견 이혼한 전남편이 재혼한 걸 알아버린 엄마가 가족앨범에서 아빠가 있는 사진을 모조리 찾아서 가위로 잘라버렸대 근데 나중엔 너무 귀찮아서 수정액으로 지웠다고 함 자신을 문 펠리컨을 꾸짖는 할머니 똑같이 쌍둥이를 임신한 염소와 함께 출산 사진 찍은 거래 유치원 등교 첫날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광대 분장을 했다고 함 이 날은 남동생이 태어난 날 우리는 단지 멋진 가족사진을 찍고 싶었을 뿐인데 이모 결혼식날 화동을 맡은 조카는 낮잠이 더 중요했음 1980년대 부모님 결혼사진 본인 딸은 활짝 웃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포즈를 취했대 이 사진은 헐크라고 함 자기 증조할머니와 쌍둥이 자매의 어렸을 적 사진 1978년에 찍은 증조할아버지 여권 사진 부모님 집에서 매우 이상한 아기 사진을 발견했는데 한달만에야 그게 바로 자신인 걸 알았대 1956년 아빠와 할머니 변기 안에서 폰을 발견,그리고 범인 결혼식날 신부에게 키스하세요 라고 말한 순간 똥침 날리는 아이 7살 생일날 크로아티아에서 휴가 중이던 부모님과 여동생 동생은 너무 피곤했다고 함 10살쯤 세례받았을 때인데 저 다리가 본인이래 조카랑 처음 만난 날 남편과 시어머니,시누이 사진 그땐 이걸 매우 예술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함 돼지 인형과 함께 엑스레이 사진을 찍길 원했던 딸  해연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