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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에대한 하이바라의 의식

코난이있는곳에 살인이일어난다. 살인이있는곳에 코난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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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년...
에도가와 : 하이바라.. 넌 너무 많은 것을 알고있어.. 그러니 이쯤에서 너도..
어쩔 수 없군, 너도 죽어줘야겠어!
김전일+코난=인류대재앙 ㅡㅡ
@SunilYun @newescape 일본 편의점이벤트로 김전일 코난 탐정학원Q주인공 이렇게3명이서 광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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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미공개 작품 : 도깨비 각시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공개 작품 ! 쓰-윽- 봤는데 영화 한 편 본 기분이 들더라고요 *_* 함께 감상하고 싶어서 카드 쇽 ! 쇽 ! 올립니다 ~ 즐감하시길 바라요 :) ▲ 도깨비 각시 (모노노케 히메) 1980 ───────────── 우리가 아는 원령공주는 1997년에 개봉한 것으로 자연을 침범하려는 인간과 신의 대립구도와 산과 아시타카를 그린 이야기. 그러나 원령공주가 개봉되기 17년 전부터 또 하나의 원령공주가 구상되고 있었음. 1997년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 1980년 모노노케 히메 TV 스페셜용 기획 기획, 이미지 보드 /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밑에 붙는 서술은 지브리연구카페에서 퍼온 걸 알린다. ▼ 전투에서 패한 한 영주가 그의 동료와 떨어져 숲 안으로 들어왔다. 한참동안 방황하던 영주는 빛이 나는 나무를 발견하였다. 거대한 나무 안에는 마치 동굴같은 집이 있었다. 파괴된 것처럼 보였지만 누군가 살고있던 흔적은 많이 남아있었다. 영주는 밥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뒤에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주인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 산의 모든 것은 도깨비의 것이었다. 이 장소도 도깨비의 굴이었다. "넌 내 음식이다. 가릴 여유도 없어." 도깨비가 말했다. 영주는 그에게 애걸하기 시작했다. "만약 저를 살려주기만 하신다면 당신의 손에 원하시는 것 무엇이든지 채워드리겠습니다." 도깨비는 칼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더니 얘기했다. "여자 하나를 주는 건 어때?" 그는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약속 잊지마" 도깨비는 동굴을 떠나며 얘기했다. 그 시각, 영주의 집. 아내는 남편의 행방을 병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녀와 가족들은 포기한 상태가 되는데.. 영주의 집에 도착하자 도깨비는 그를 하늘에다가 풀어주며 소리쳤다. "난 다음 보름달이 찰 때 올 것이다!" 영주는 떨어졌다. 영주는 높은 지붕의 콧날에 내리꽂혔다. 마을 사람들은 영주의 갑작스런 출현에 깜짝 놀랐다. "영주님이 하늘에서 떨어지셨어." 그들이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정말 당황스럽군!" 영주가 외쳤다. 영주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날 그는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당신이 싸움에서 진 것도 모자라 우리 딸을 도깨비한테 보내야 한다구요?" 아내는 단호히 소리쳤다. 안전을 위해 영주의 부인은 첫째딸과 둘째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그와 함께 남아있어준 사람은 착한 마음씨를 가진 셋째딸 뿐이었다. 도깨비와 약속한 보름달 뜬 밤이 다가오고 있는데.. 영주는 실신하듯 한 쪽 구석에 기대었다. 근심하던 그의 앞에 개구리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말했다. "영주님의 육체를 저에게 빌려주신다면 영주님께 제 마력을 드리겠어요." 셋째딸은 불길한 예감에 영주를 말렸지만 영주는 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영주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대는가 하면 과거 조상들이 썼던 갑옷을 입고 다녔다. 그 갑옷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영주의 육체를 빌린 개구리는 단신의 몸으로 적군을 물리쳤다. 그는 전쟁귀가 되어 시체의 산을 쌓았다. 영주는 셋째딸이 유일하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딸을 없애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거 얘기가 쉬워지겠는걸. 생각해보니 오늘은 도깨비가 오기로 한 날이잖아." 약속대로 도깨비는 여자를 데리러 왔다. "너는 도깨비의 신부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영주가 비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셋째딸은 자신의 아버지를 늘 걱정했다. 이 이별은 그녀에게 너무 힘든 것이었다. 도깨비는 소쿠리에 그녀를 넣고 인간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떠났다. 집으로 도착한 도깨비는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우리의 혼인날이다.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자." "나쁜 악령으로부터 아버지를 구하지 않으면 난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소녀가 반박했다. 소녀의 막무가내에 도깨비는 화를 내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잡아먹어버리겠어!" "마음대로 하세요." 거듭되는 협박 속에서도 소녀의 태도가 변하지 않자 도깨비는 결국 포기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뭔 기대를 하겠냐." "부탁입니다. 절 도와주세요. 저희 아버지 속에 있는 악령을 쫓아내주신다면 기꺼이 당신의 아내가 되겠어요." 도깨비는 소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 약속 절대 잊지 말도록." 그들은 산 건너에 사는 전설 속 거북을 만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 도깨비는 그녀가 쉽게 포기할거라 생각했지만 소녀의 의지는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중간에 만난 폭설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던 도깨비는 그녀를 향한 감정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산의 협곡을 지나고 긴 시간을 감내한 나무숲도 지나 마침내 그들은 거북과 조우하였다. 소녀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거북이 말했다. "악령은 남자에게 매우 위험한 야심을 가져다주지. 너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다면 짧은 순간이나마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물건을 주겠다." "이 호수 깊은 곳에는 보물들이 묻혀있어. 그 중 네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을거야." 그들은 물건을 찾기 위해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물체는 물 속에서 빛을 내던 청동거울이었다. 거북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충고를 해 주었다. "네 의지의 힘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들은 거북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영주를 구하러 성으로 향했다. 그 시각, 영주는 자신의 곁으로 청동거울이 다가오고 있단걸 느꼈다. 도착한 성의 풍경은 어느새 무섭게 변해있었다. 악령의 힘이 거대해진 것이다. 갑옷과 무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반대로 백성들의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백성들을 돕다가 병사들과 조우한 소녀. 도깨비는 소녀를 구하고 그녀를 위해 병사들과 싸웠다. 병사들과의 전투로 부상을 당한 도깨비. 소녀는 그를 계속 간호해주었다. "더이상 너한테 내 아내가 돼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도깨비가 말했다. 그가 잠든 사이, 소녀는 조심스럽게 청동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는 자고 있는 어느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이는 도깨비의 진실된 모습으로, 야생동물처럼 행동하던 그가 어느샌가 도깨비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소녀는 그에게 슬픈 사연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혼자 아버지의 성으로 향했다. 그 시각 잠에서 깬 도깨비는 소녀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자 변장하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소녀를 찾으러 갔다. 영주의 성에 다다른 도깨비는 자신을 저지하는 병사들을 모두 밀쳐내고 전진했다. 소녀는 이윽고 아버지의 앞에 당도했다. 영주가 검을 빼내어 소녀에게 다가가려하자 소녀는 재빨리 청동거울을 그의 앞에 들이댔다. 그 순간 영주의 몸이 굳어지고 악령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영주의 육체에서 빠져나간 악령은 갑옷과 투구 속으로 들어가 영주의 몸을 베어버렸다. 악령은 뒤이어 소녀를 죽이기 위해 불을 내뿜었다. 그 때 도깨비가 나타나 불꽃을 막아섰다. 상황이 불리하단걸 직감한 악령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도깨비는 온 몸이 불에 타는 와중에도 그를 쫓아갔다. 용감한 도깨비는 자신의 목숨을 맞바꿔 소녀와 영주를 구해내었다. 소녀는 까맣게 타버린 재를 움켜쥐며 눈물을 흘렸다. 소녀의 눈물에 부활한 도깨비. "울지마." 힘 빠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도깨비는 절대로 아내를 남기고 떠나지 않아." 그들은 웃으며 서로 포옹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영주는 딸의 품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윽고 영주의 폭정에 참다못한 백성들이 성을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성문은 부서지고 불이 타올랐다. 그렇게 성은 모두 불태워졌다. 도깨비는 소녀를 데리고 자신이 사는 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훗날 이 작품은 이웃집 토토로와 원령공주로 재탄생되었다고 해요 :) 도깨비의 외형은 토토로가, 모노노케 히메 타이틀은 원령공주가, 셋째(三,さん)딸은 모노노케 히메의 히로인 이름으로 !
은행 갔다와서 뒤늦게 현타와여
얼마전에 회사가 휴가는 아닌데 2주정도 일이 멈추는 때가 있었음. 이틈을 타서 따듯한 나라로 튀기로 했음. 출국을 앞두고 환전을 해야해서 딸라통장을 열어봄 근데 잔고도 애매하고 환율검색을 해보니 3년 5년 평균환율이 평이함 (참고로 나는 달러나 외환이 생기면 환전수수료가 이중으로 나가는게 싫어서 걍 다통화통장에 넣어두고 다음에 필요할때 환율을 보고 환율이 높으면 인출해서 쓰고 환율이 낮으면 환전했다가 남은건 다시 달러통장에 넣어둠 달러뿐만 아니라 엔화 위안화 유로화 파운드화 등등도 입금가능하니까 만들어 두면 편함) 은행에 환전 예약을 해두고 깔끔한 새돈으로 환전해서 자알~ 놀다옴 근데... 현지에서 $10짜리를 $1로 현지환전을 한게 있었는데 이걸 현지 맥주집에서 쓰려니까 뭐라뭐라 하면서 안받더란 말이죠.. - 뭐지?? 위조지폐?? 😱 일단 돌아와서 남은 돈을 입금하러 은행에 감. 혹시나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게 위폐라면 내가 위폐범으로 의심받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직원분에게 이실직고함. 직원분이 키보드에 탁탁탁 쳐보시더니 사용가능한 지폐로 뜬다고 함. (영화에서는 뭔기계에 넣고 루뻬로 들여다보고 하더만 요즘은 아닌가봄) 그래서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입금해 달라고 함. 근데 새돈들만 입금하고 문제의 그돈은 입금을 안해줌! 와이?? - 방금 사용가능한 돈이라고 하셨잖아요 왜 돌려주시죠?? - 헌돈이라 저희는 매입하지 않습니다. - ?? 매입이요? 입금인데요?? - 고객님? 저희가 이돈을 가지고 있다가 다른 고객님이 오셔서 환전을 요청하시면 드려야 되는데 헌돈은 고객님들이 잘 안가져 가시기 때문에 받지 않습니다. 이 헌돈을 다음에 고객님이 고대로 다시 인출해 가실건 아니잖아요?? - 그건 그렇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집에옴)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돈과 통장을 들고가서 입금도 제대로 못하고 온 내가 너무 등신같은거임. 헌돈인건 은행사정이지 내가 걱정할바는 아니지 않음?? 외환을 중고나라 거래하듯 할꺼면 애초에 통장을 발행하지 말았어야지! 은행이 그러면됨?? 그자리에서는 음... 듣고보니 그러네요 라며 맞장구 까지 치고 앉았던 나를 떠올리니 술생각남😭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