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시민으로서의 자질이다.
이해력과 실행력은 별개의 문제다. 현장에서 일을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해력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단순무식한 검열제도의 희생자는 나뿐만이 아니었다.셸리, 입센, 톨스토이, 마테를링크, 브리외도 나와 같은 고초를 겪었다.그런가 하면 작품 수준이 경찰서나 이혼법원의 보고서 정도밖에 안 되는 극작가들은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면, 악당과 선인을 구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악당을 흠모하거나 악당에게 지배당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
미학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누리는 여가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소통했다는 착각이 소통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초보 작가는 문학적 표현을 위해 안달하지만 베테랑 작가는 문학적 표현을 없애느라 애쓴다.
남을 이해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계란을 낳을 수는 없지만, 오믈렛 평가는 잘 할 수 있다.
(저는 이 말이 요즘 공감되는 게 , 예를 들어 제가 책에 대해 이야기 하면 몇몇 이 들은 니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냐? 자격이 있느냐는 둥 말합니다. 제 생각을 조곤조곤 말했을 뿐인데.... 자격이 있어야만 말 할 수 있는건 아니 잖아요?)
2%의 사람들은 생각한다.3%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한다고 생각한다.나머지 95%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쇼의 절친이자 논쟁상대로 유명한 체스터턴은 150kg의 거구였다.어느날 그가 깡마른 쇼에게 말했다."누가 자넬 보면 영국에 기근이라도 일어난 줄 알겠군."
그러자 버나드 쇼 왈,"누가 자넬 보면 기근이 자네 때문에 일어난 줄 알겠구만." 추상적 언어로 개인적 행위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캬............. 사이다)
조금 아는 것은 위험하다.하지만 우리 중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도 그 이상 알기는 힘들다.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아는 것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다.
과거를 기억한다고 현명해지지는 않는다.
현명함은 미래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버나드 쇼 묘비명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극작가 이자 소설가 겸 비평가 였던 버나드 쇼.
1925년 노벨 문학상도 탔습니다.
그의 학력은 가난한 나머지 초등학교 졸업에 그쳤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