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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엮어보기

조선 6대 왕 단종 작은아버지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에 의해 폐위 후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임금 조선 16대 왕 인조 반정으로 왕이 되었지만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삼전도 굴욕을 치름 조선26대 왕 고종 흥선대원군에 의해 12세에 왕이 되었지만 을미사변으로 부인 명성황후를 잃고 온갖 시련 다 겪었으나 결국 1905년 을사늑약을 막지 못함 공통적으로 6으로 끝나는 왕이며 비운의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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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조류.war
요즘은 동물의 왕 갓끼리도 총알 박히면 울부짖으며 가버리는 것이 현실이지만 고대도 아니고 중세도 아니고 무려 1900년대에 동물이 인간을 전쟁으로 발라버린 사례가 존재한다 1932년에 벌어진 "대 에뮤 전쟁Great Emu War"의 승자 에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새새끼들은 그냥 소총도 아니고 기관총까지 동원한 인간군대를 당당히 물리침으로서 역사에 길이남을 기록을 세웠다. 도대체 어떻게 에뮤들은 인간을 물리쳤을까 1차대전이 끝나고 좀 지난 후의 이야기다 이 당시 호주에는 전쟁 끝나고 전역한 군바리 새끼들이 존나 많았는데 전쟁 뛰느라 기술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이 예비군들은 대부분 농부가 되었다 드넓은 호주벌판이 닌겐상의 밀밭과 울타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호주 대륙의 원주인인 대에뮤제국의 에뮤들은 닌겐상들의 인간질이 몹시 띠꺼웠는지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울타리를 발로 걷어차서 박살내고 들어와서 밀을 마구 처먹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시피 에뮤는 타조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덩치가 큰 새다. 크게 자라는 에뮤는 최대 2m까지 자라고 시속 50km로 달린다 토끼나 여우 막으려고 설치한 닌겐상들의 울타리 정도는 로우킥 한방으로 뿌수고 들어올 수 있는 막강한 피지컬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전쟁질 하느라 성질이 더러워진 예비군 닌겐상들도 가만있진 않았다 나의 밀밭을 어지럽히는 분조들은 용서치않는다며 닌겐상들이 몇 마리의 에뮤를 쏴죽이자 에뮤제국에서도 반응이 격해지고 마침내 호주의 닌겐상과 새대가리 새끼들이 전면전을 벌이는 대 에뮤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무려 일만 대군의 에뮤군대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를 침공한 것이다 아무리 깡다구가 더러운 예비군 닌겐상들이라도 이런 대군은 감당할 수 없었다 일만 마리의 에뮤들이 꽥꽥거리며 밀밭을 휩쓴다  호주 닌겐상들은 아우성을 치며 경찰서와 소방서의 전화기에 불을 내지만 경찰이나 소방관이라 해도 일만 마리의 에뮤군대에겐 기스도 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닌겐상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있었으니 바로 군대였다 호주 국방 장관 조지 피어스가 새대가리들을 섬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요즘 우리가 보기에야 웃기지만 당시 호주 닌겐상들은 굉장히 심각했던지 대 에뮤 전쟁에 군대가 출격한다는 소식을 신문 1면에다 실으며 대서특필했다. 농담이나 드립으로 전쟁으로 부르는게 아니라 진짜 전쟁이었던 것 아무튼 국방장관에게 달려간 예비군 닌겐상들은 1차대전때 좆같이 구른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나간 작전을 하나 제안한다 에뮤가 존나 많아도 기관총 앞에서 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도 기관총으로 동물 잡자고 하면 그건 좀 이런 반응이 나올 텐데 하물며 이때는 요즘처럼 기관총이 흔하지도 않았던 시대다 근데 조지 피어스 닌겐상은 뭘 잘못먹었는지 이 정신나간 제안을 승인한다. 루이스 경기관총의 출격을 혼쾌히 허락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최정예화력이었던 루이스 경기관총을 장비한 왕립포병부대가 보무도 당당히 에뮤제국을 섬멸하기 위해 출격한다 날지도 못하는 새새끼 1만 마리를 잡으려고... 조지 피어스는 통크게 1만발의 총알과 5000명의 예비군 닌겐상의 지원까지 얹어준다 에뮤 제국의 운명은 이제 바람앞의 깃털과도 같았다 아무튼 운명의 11월 2일 닌겐상들의 조류토벌부대는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평화롭게 밀을 씹어먹는 에뮤군대를 습격하고 일제사격을 날린다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해버리는 밀밭 같은 건 없었다 무적의 에뮤 군대는 기관총 탄막을 모조리 개다리 스텝으로 피해버린 것이다 대가리는 존나 작고 발도 존나 얇아서 안 맞는다 피탄면적이 존나 좁아서 몸통을 맞아야 되는데 문제는 그 몸통이었다 질기고 날카로운 깃털 수십겹이 덮여있는 에무의 몸통은 그 자체로 천연방탄복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맞추기도 힘들고 맞아도 튕겨내는 에뮤 새끼들의 시속은 50km/h. 참고로 좆간 중에서 제일 빠르다는 우사인 볼트도 44km/h에 불과하다 천마리 이상의 에뮤 군대를 향해 기관총을 하루종일 쏴갈겼지만 에뮤는 꼴랑 12마리 죽었다. 다시 말하지만 에뮤 군대는 총 1만 마리다. 에뮤들은 여전히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다 전술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했다 에뮤가 존나 빠르면 우리도 존나 빨리 달리면 되잖냐는 참으로 명쾌한 발상 끝에 차량에 루이스 망가가 탑재된다 뭔가 될 것 같았던 왕립포병부대는 부릉부릉 엔진소리를 내며 밀밭으로 돌격한다 이제는 새새끼를 잡으려고 기갑부대까지 동원하는 호주군 혼비백산한 애무들이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하기 시작하는데... 어떤 정신나간 에뮤 하나가 트럭으로 돌진해서 유리창을 깨부수고 핸들에 대가리를 처박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조타가 불가능해진 기관총 트럭은 그대로 전의를 상실하고 후진으로 후퇴해버린다 그렇다 용맹한 새대가리 새끼들이 기갑부대를 격파해버린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에뮤들이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게릴라전으로 작전을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뮤들은 예전처럼 드글드글하게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 분견대로 갈라져서 밀밭을 처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키가 큰 대장이 언제나 닌겐상들이 가까이 오는지 감시했다 한 무리가 습격당하면 다른 무리가 무방비한 밀밭을 유린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새트콩이 따로 없었다 호주군은 전의를 잃기 시작한다 전쟁이 한달 째에 접어들자 동물보호단체까지 들고나서기 시작했다 호주 동물보호단체는 세금으로 만든 총알을 그렇게 쏟아부어서 에뮤를 몇마리나 잡았냐고 따졌다 뭐 에뮤를 많이 잡기라도 했으면 할 말이 있었겠지만 호주군은 가지고 있던 탄약의 전부인 9800발을 모조리 소모하고도 400마리도 못 잡았음을 실토해야 했다 이 정도면 엑스컴이랑 치열한 대결이 가능할 명중률이다 거기다 충격적이게도 어디선가 에뮤 1만 마리가 더 증원되었다는 것까지 확인되었다 이젠 2만 마리의 에뮤가 호주 벌판을 활보하고 있다 호주군은 별 수 없이 항복을 선언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에뮤제국이 대승리를 거둔 것이다 에뮤 전쟁에서 호주군은 9800발의 총알과 한 대의 트럭 핸들을 소모하고 최소 12마리에서 최대 980마리의 에뮤를 잡았지만 대패는 대패였다 에뮤제국이 장악한 밀밭은 그대로 에뮤들에게 넘어갔고 에뮤들은 계속해서 증식했다 이렇게 인류 최초의 대 조류 전쟁은 좆간의 대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구라같지만 진짜다 (출처) 만화로만 봤을 때도 이왜진 싶었는데 정리된 글로 보니 더 엄청나네요 그리고 저곳은 지금까지도 에뮤의 땅!
사극에 나오는 홀(笏), 규(圭) 지팡이 이야기.
보통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옛날 신하들이 다들 손에 이상한 막대기 하나를 쥐고 있죠 이것을 홀(笏) 이라고 합니다. 벼슬아치들이 왕을 알현할 때 손에 쥐는 판입니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 규정에 의하면 1품~4품의 고위관리의 경우 상아로 만든 홀을 쓰고 5품~9품의 관리는 나무로 만든 홀을 쓴다고 나옵니다.  생각해 보면 기이하죠 조선시대에 대체 상아를 어서 구할까요 코끼리는 중국, 한국, 일본 어디에도 안 사는 동물입니다. 네 전부 동남아에서 수입한 진짜로 진귀한 물품이죠 그럼에도 쓴 것입니다. 레알 명품이죠 근데 이게 그냥 그런게 아니라 예법에 나오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유교를 신봉하는 동아시아에서 예법은 있으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나라 시절에 예법을 정하여 주례에 박아 넣기를 천자는 옥을 쓰고 제후는 상아를 쓰며 대부는 어문수죽 사(士)는 대나무를 쓴다 이걸 기초로 당나라가 건국 되자 다시 율령을 정비해 한국, 일본, 베트남에 국가의 궁중 제도, 궁중 예법을 알려줬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전통이란게 태반이 이시기에 정비되었죠  그 당나라 예법에 따르면  5품이상은 상아를 쓰고 6품 이하는 나무를 쓴다 라고 했죠. 여기서 정해진 상아로 만든 아홀牙笏, 나무로 만든 죽홀竹笏은 그 자체로 신분의 증명입니다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관료들이 자신의 품위를 나타내고 예법에 따르고자 너도 나도 이걸 사용하였고 문인들이 쓰는 문구류, 장신구 중에 홀笏이 가장 비싸고 귀했습니다 오늘날 남자들이 시계로 명품을 삼던가요? 슈트의 마무리는 명품시계다 아니면 여자들이 명품백을 옆에 차고 나가서 신분을 과시하곤 합니다 그거랑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관리가 홀을 들었다는건 그 자체가 조정에 나가는 관료라는 상징이며 고귀한 신분을 증명하는 위신제로 일종의 명품이었습니다. 슈트의 마무리가 시계이듯 관복의 마무리는 '홀'이였습니다 "우와 저 남자 손에 아홀牙笏 들었어 쩐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느낌 입니다. 그럼 이 홀笏의 실제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주나라 예기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대부가 입조를 하여 천자를 뵐 때는 하루 전날 미리 목욕을 하고 상홀象笏을 들고 천자의 말씀을 거기에 적어 만일 까먹는 것에 대비한다. -예기 옥조편 권13- 천자를 알현 할 때는 손에서 홀을 놓치 않는다 무훗 왕의 앞에서 말할 때는 홀을 사용하고 왕의 명을 받을 때에도 홀을 사용한다. -예기 옥조편- 네 군주와 신하가 만나서 회의할 때 사용하는 수첩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왜 홀의 재질이 옥, 뼈, 대나무인지 알수 있죠 주나라, 춘추전국 시대에는 종이란게 발명 되지 않았음으로 죽간을 이용해 기록을 하였습니다. 옥이나 상아에 쓰고 나중에 지우면 되고 대나무, 나무는 쓰고 깍아내면 되죠 군기가 바짝 든 신하는 자고로 잘 외워야 합니다 고참인 고위관리는 더 큰 홀을 쓰고 쫄따구인 말단관리는 더 작은 홀을 썼습니다  더불어 누가 신하인지 정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나라, 춘추시절에 왕과 제후가 만나는 공간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이거나 조례를 올리는 조정에서 모이게 됩니다 해당 장소는 천자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공간이니 함부로 외부 침입자가 있으면 안되죠 "손에서 홀을 놓지 말아야 한다" 는 예법의 뜻은  왕을 위협할 다른 무기를 함부로 들어 선 안된단 말이고 동시에 참석자의 신분을 증명하는 이름표 같은 것입니다 옷에 색깔을 넣는 관복이란게 제정 된 것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 한 뒤 이후 부터입니다. 과거 도시국가 수준의 나라들이 점차 커지고 진나라 통일제국이 되면서 변했죠  중앙조정에 모이는 신하도 많아지니 황제의 입장에서는 들고 있는 홀 따위는 누군지 파악이 안됩니다. 그래서 아예 입고 있는 옷 색깔을 정해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관복의 제정은 즉 중앙집권의 강화 국가기구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이전 주나라, 춘추시대에는 들고 있는 홀을 통해서 신분과 지위를 구분을 했습니다 주나라, 춘추시대 실제로 신하의 신분을 확인하고 조정에서 왕과 대화를 하며 수첩으로 쓴 홀笏은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를 거치며 종이도 발명이 되고 관복 등의 각종 예법이 심화되면서 그 본연의 목적과 용도는 퇴화하여 사라졌고 그 대신 중요하고 예의있는 자리에서 관료의 품위와 정갈함을 보여줄 때 사용하는 격식용 의례용품이 되었습니다 그럼 홀이 신하들이 쓰는거면 왕은 수첩을 뭘 썼을까요? 주나라 시절의 기록에 따르면 왕과 제후가 쓰는 그것을 규(圭) 라고 부릅니다 규라는 한자가 흙토 土 글자 두개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왕이 제후에게 땅을 나눠준다는 의미를 담은 형성자에서 유래합니다. 왕과 제후가 쓰는 걸 특별히 규圭 라고 부르고 이걸 홀笏과 구분하게 되는 이유죠. 규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땅을 다스리는 지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의류 명품에도 급이 있어서 보통 회사들 명품 브랜드가 있지만 끝판왕은 그냥 디자이너 이름 그대로 박은 것이듯 신분의 상징으로 자질구래하게 상아니 나무니 구별할 필요가 없이 진짜 최고급은 땅을 그 자체를 상징하는 규(圭)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천자가 사용하는 물건의 명칭은 정이다 일명 대규(大圭)라고 하며 천하를 상징하기 때문에 사각형으로 곧게 만든다 제후가 사용하는 규圭는 똑같이 땅을 상징하여 사각형으로 만들지만 위에 천자가 있음으로 겸양의 뜻으로 윗 부분을 둥글게 만든다 -예기 옥조편 시간이 흘러 대규는 사라지고 천자가 사용하는 규(圭)는 진규(鎭圭)라 부릅니다. 진규란 사방을 제압한다는 뜻이며 다스리는 산하(山河)를 상징하고자 윗 부분을 삼각형으로 만들었죠. 더불어 규(圭)를 들수 있는 신분은 오직 황제와 친왕들 작위를 받은 왕, 황후 또는 공, 후, 백, 자, 남 오등관작에 따라 봉토와 작위를 받은 제후만이 사용합니다. 그 땅에 대한 정당한 통치권과 귄위의 상징으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명나라 만력제의 규(圭) 끝이 삼각형이죠 대한제국 융희황제의 규(圭)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의 격식으로 끝이 삼각형인 규를 씁니다 일본 덴노의 규(圭) 일본은 규의 법식을 늦게 받아 들였고 또 변방으로 예법이 심화되지 못했기에 당나라 시절의 옛날 커다란 규를 여전히 사용합니다 이게 신하들이 왕을 알현 할 때 수첩이자 예식용 장식으로 쓰는 홀笏 이고 이게 황제와, 왕, 제후 들이 왕권과 권력의 상징으로 들고 있는 것은 규(圭) 입니다 백옥의 백색 규는 오직 황제만 쓸 수 있고 제후나 세자는 청색의 규를 사용했습니다 그럼 이런 문화가 동양에만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상징이죠 서양의 셉터(scepter)를 말 합니다 서양도 똑같이 왕의 권위로 손에 들고 있고 그것을 왕권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동아시아 문명에서처럼 무언가를 적고 기록하는게 아니라 아무래도 말 안들으면 신하들 후드려 패는? 용도 같은데 기원은 진짜 오래되었죠 수메르르 문명에서 부터입니다. 그 기원은 대사제, 대제사장이 사용하는 왕의 지팡이입니다 '엔키나 인안나의 신화'에서 부터 권위의 상징 지팡이가 나오며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가면 더욱 심화되어  신들의 권위 제왕의 귄위의 상징으로 지팡이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후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이어받은 중세 유럽을 거치며 더욱 퍼졌죠  이런 왕의 지팡이는 일상적으로 쓰는 지팡이와 구분하여 셉터 scepter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부릅니다.  아마도 이런게 아닌가 합니다 지금 인디언 문화에서도 흔적을 알듯 고대에는 사람이 오래 장수하고 노인이 되는 것이 매우 희귀하고 어려운 일이었죠. 때문에 그 사회에서 노인은 곧 지혜의 상징이자 변화를 아는 현자로 제사장, 군장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노인들은 지팡이를 썼죠 대부분 노인들이 지팡이를 쓰지만 그 중에 특별함을 인정받은 노인은 대제사장, 대군장의 신분으로 살았고 그 지팡이는 권위와 왕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지팡이와 구분하여 일종의 상징적 의미로 쓰는 물건이니 새로운 단어로 불렀던게 아닌가 합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고대국가에서 중신이나 원로가 장수하면 황제나 왕은 그 공로를 치하 하며 궤장이란 것을 하사했죠 '궤장'은 노인이 쓰는 지팡이과 의자를 말합니다. 이는 받는다는 건 신하에게 엄청난 영광으로 나라의 원로로 대접하고 황제와 왕이 그 지혜를 배우겠단 의미를 담아 존경을 표한 것입니다 참고로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노인들의 연세가 100세가 되면 대통령 이름으로 국가에서 지팡이를 선물로 지급하게 됩니다 이런 지팡이는 과거에 시대에 나름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권위의 상징이 되었고 그 자체로 특별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scepter 셉터 그리고 이런 셉터는 특히 성경에 매우 많이 나옵니다. 일단 모세도 사용하고 성경에 나오는 각종 예언자, 지도자 전부 셉터를 들죠 근데 이런 성경의 이야기가 동아시아로 넘어 오면서 작은 헤프닝이 발생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해야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scepter를 뭔 단어로 바뀌야 하는가? 였죠 당시 동아시아에서 기독교를 수용한 계층은 지식이 해박한 계층이 아니었으며 대부분 국가적 사회적 탄압을 받았으니 예법을 알 수도 없었죠 그래서 이것을 초창기 기독교가 동아시아로 전파되며 성경을 번역할 때 셉터scepter 를 왕홀(王笏)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왕(王) + 홀(笏)의 합성어이죠 높으신 나으리들이 평소 손에 무언갈 들고 댕기는데 그게 홀이다. 근데 성경에 보니 거기에도 사람들이 비슷하게 손에 들고 다니더라. 어라? 근데 다른점은 신하나 관리가 아니라 왕이 들고 댕기네? 아하~왕이 쓰는 홀인가 보다~ 하고 '왕홀'이라 번역했지요 사실 오역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왕이 손에 드는건 위에 이미 설명 드렸듯이 이미 규(圭)라는게 있고 실제 셉터의 의미도 동아시아의 '규' 가 가장 비슷한 왕권과 위엄을 상징하는 역할을 합니다. 홀은 그냥 신하들이 쓰는 장신구거든요 이게 어떤 번역의 느낌인가 하면 영어의 'father'를 번역하며 바로 아버지라고 안하고 삼촌이라 번역한 뒤 나를 낳아준 + 삼촌 ? 친부삼촌? 이딴 단어를 만든 경우입니다. 이후 중국에서는 왕홀을 규圭라고 정정해서 성경 번역을 했으며 한국에서도 최근에 들어서야 다시 규로 고쳐 번역을 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언어라는게 한번 사용하고 다수가 쓰면 그 자체가 독자적 의미를 가지는 법이죠 우리가 핸드폰이라는 콩글리시를 쓴다고 이제와서 고치지 않듯 지금 해당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그것이 가르키는게 뭔지 알면 언어의 효용은 사실 충분히 다한거죠 왕홀이란 말은 한국, 일본 등에 이미 자리를 잡았고 많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게임에서 이렇게 생긴 물건을 특템하게 되면 왕홀 먹었다! 라고 알게되죠 뭐라 부르고 뭐로 쓰던 특템 잘하고 렙업만 잘하면 되죠 전혀 쓸데없지만 어디선가 한번은 써먹을 법한 홀, 규, 지팡이, 셉터 그리고 왕홀 이야기였습니다. 끝. 펌) 출처 저걸 홀과 규라고 부르는 거였구려! 둘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도 몰랐소. 뭐 이름조차 모르긴 했지만...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지만 재미난 역사 이야기 오늘도 한 번 가져와 봤소.
난중일기 속 원균 묘사.txt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언제 봐도 재밌는 건 싸움 구경 아니겠소. 또는 누군가의 뒷담화를 듣는 것,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재밌는 것은 영웅이 직접 쓴 뒷담화를 보는 것. 난세의 영웅 이순신 장군께서 흉물같은 원균에 대한 화를 누르지 못하고 적으신 욕, 오랜만에 같이들 보시지 않으시겠소? 1593년 2월 28일, 원균이 어부들의 목을 찾고 있으니 황당하다. 3월 2일, 원균의 비리를 들으니 더욱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5월 14일, 원균이 함부로 말하고 사람을 속이니 모두가 분개하였다. 5월 21일, 원균이 거짓 공문으로 군사들을 속이니 정말 흉측하다. 5월 24일, 중국 화전을 원균이 혼자 쓰려 꾀를 내니 우습다. 5월 30일, 위급한 때에 원균이 계집을 배에 태우고 논다. 6월 10일, 원균이 흉계와 시기 가득한 편지를 보내왔다. 6월 11일, 원균이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한다. 7월 21일, 원균이 흉측한 흉계를 냈다. 8월 2일, 원균이 나를 헐뜯어 망령된 말로 떠드니 어찌 관계하랴! 8월 6일, 원균은 걸핏하면 모순된 말을 하니 우습고도 우스울 따름이다. 8월 7일, 원균은 항상 헛소문 내기를 좋아하니 믿을 수가 없다. 8월 19일, 원균은 음흉하고 그럴 듯하게 남을 속인다. 8월 26일, 원균이 음흉하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해 해괴하였다. 8월 28일, 원균이 와서 음흉하고 간사한 말을 많이 내뱉었다. 8월 30일, 원균은 참으로 흉스럽다고 할 만하다. 9월 6일, 하루 종일 원균의 흉측스러운 일을 들었다. 1594년 1월 11일, 원균이 취해서 미친 말을 많이 했다. 우습다. 1월 19일, 원균이 남들이 마음에 두었던 여자들 모두와 관계했다. 2월 18일, 원균이 심하게 취해서 활을 한두 번 밖에 쏘지 못하였다. 3월 3일, 원균의 수군들이 우스운 일로 매를 맞았다고 한다. 3월 5일, 장수들이 이야기하던 중, 원균이 오자 가버렸다. 3월 13일, 원균이 거짓으로 왜군 노릇했던 자의 목을 잘라 바쳤다. 4월 12일, 원균이 미친 듯 날뛰니 모두가 무척 괴이쩍어 했다. 6월 4일, 임금의 꾸짖는 분부가 내려왔으니, 원균 때문이다. 8월 30일, 원균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니, 천년의 한탄이다. 9월 4일, 활을 쏘았는데 원균이 아홉 푼을 져서 술에 취해 갔다. 10월 17일, 순무어사가 원균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1595년 2월 20일, 원균의 악하고 못된 짓을 많이 들었다. 2월 27일, 원균이 너무나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1597년 5월 2일, 진흥국이 눈물을 흘리며 원균의 일을 말했다. 5월 5일, 한산도에서 원균이 저지른 못된 짓을 많이 들었다. 5월 7일, 한산도에서 음흉한 자(원균)가 한 일을 많이 들었다. 5월 8일, 음흉한 원균이 편지 조문을 했다. 5월 11일, 소문이 많이 들려오는데 모두 흉물(원균)의 일이었다. 5월 20일, 체찰사(이원익)가 '흉물 탓에 나랏일이 걱정'이라 하였다. 5월 23일, 체찰사가 원흉의 그릇된 일에 분개하였다. 5월 28일, 하동현감이 원균의 하는 짓이 엄청 미쳤다고 말하였다. 6월 17일, 도원수(권율)가 원균의 거짓된 짓을 많이 말하였다. 6월 19일, 도원수는 통제사(원균)의 일이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6월 25일, 원균이 적은 한 놈도 못 잡고 두 장수를 먼저 잃었다. 7월 21일, 노량에 이르니 사람들이 모두 울면서 말하되,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났다. 여러 장수들도 힘써 뭍으로 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순신은 원균을 42회 가량 좋지 않게 기록했다. 연도별로 보면 1593년에 17회, 1594년에 11회, 1597년에 12회로 집중돼 있다. 1592년, 1595년, 1596년에 원균에 대해 적은 기록은 거의 없다. 1592년은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경상우수사 원균이 조선 수군의 지휘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면서 왜적을 무찌르던 시기였다. 1595-96년은 원균이 충청병사로 옮겨가 수군이 아니었다. 1593년은 이순신과 원균이 3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놓고 겨룬 해였다. 1594년에는 원균보다 나이가 어렸던 이순신이 3도수군통제사로서 조선 수군 전체를 지휘했다. 1597년에는 원균의 모함과 왜군의 모략으로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칠천량해전 패전 이후, 조정에서는 7월 21일 원균과 함께 탈출하다 겨우 살아 나온 김식에게 패전 보고를 듣고 크게 놀랐다. 다급해진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교서(敎書)에는 "지난번에 경의 관직을 빼앗고 죄를 주게 한 것은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잘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오, 그리 하여 오늘날 패전의 욕을 보게 된 것이니 그 무엇을 말할 수 있겠소." 라고 얼버무렸다. 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후 남해 등지를 두루 살폈으나 남은 군사는 120명, 병선은 12척이 고작이었다. - 어제 술에 취해서 헛소리하고 다음날 기억 안난다 시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구려. 원균은 정녕 흉물이었나 싶소 ㅋㅋ
펌) 냉혹한 종족전쟁의 세계 feat.뱃살
인간이랑 비슷한데 아무튼 인간이랑은 다른 오크나 귀쟁이와 목숨걸고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은 참 진부하지만 언제나 땡기는 소재다. 요즘에야 추함의 극치를 달리지만 와우가 이 로망을 잘 살려서 성공한 대표적인 예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다 해먹은 요즘에야 이런 건 게임 속의 소리지만 까마득한 옛날에는 진짜로 이런 종족전쟁이 있었다. 맹수가 아니라 인간처럼 두 다리로 걷고 말도 쓰고 무기도 쓸 줄 아는 진짜배기 유사인류 이종족과 호모사피엔스가 생존경쟁을 벌였던 시기는 바로 4만 년 전이다. 누가 인간한테 쳐들어왔냐고? 사실 인간들이 쳐들어갔다. '네안데르탈인'이 바로 그 인간들과 경쟁한 이종족이다. 일단 네안데르탈인의 스펙부터 얘기하자. 짤만 봐선 그냥 원시인이랑 뭐가 다른지 궁금할텐데 네안데르탈인은 뼈만 봐도 인간과 상당히 다른 종족이었다.  왼쪽이 네안데르탈인, 오른쪽이 인간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키 차이다. 이 당시의 인간은 존나게 부럽게도 키가 평균 180이 넘는 위너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좆만해진건 후대의 진화를 거쳐가면서다. 한편 좌측의 네안데르탈 뼈를 보면 이 새끼들한테 갑자기 유대감이 생길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키는 당시의 인간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160 이하가 평균이었거든.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에게 느낄 유대감은 딱 거기까지다. 키는 작아도 다른 모든 부분에서 현대인을 압도하는 전투종족 상남자가 바로 네안데르탈인이다. 네안데르탈인을 복원하면 이렇게 존나 쎄보이는 근육돼지가 튀어나오는데, 나약한 인간 쉐리들보다 키는 작아도 뼈가 훨씬 두껍고 흉곽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인간보다 키가 작아도 몸무게는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정도로 근육 밀도가 미쳐있었다. 현생 인류의 두 배 정도의 근육을 그 작은 키에 꽉꽉 눌러담았으니 어느 정도로 힘이 강했냐면 맨손의 악력으로 인간 뼈를 분질러 으깨버릴 수 있을 정도다.  인간들보다 대갈통이 커서 뇌크기도 더 컸지만 지능 자체는 현생인류보다 좀 떨어졌던 걸로 추측되는데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이 썼던 무기들을 보면 아무래도 인간보다는 좀 만듬새가 투박했음 그래도 일단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부터가 짐승들이랑은 차원을 달리하는 지능을 가졌다는 증거고 불도 쓸 줄 아는데다 원시적인 종교까지 있었다 도구 얘기가 나온 김에 무기 얘기도 좀 하자. 네안데르탈인의 전투방식은 그야말로 상남자 그 자체였다. 이렇게 근력이 미쳐있으니 성격도 존나 호전적이었다. 아무튼 좆간들이 쳐들어오기 전에는 네안데르탈인들이야말로 그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였을 것이다.  일단 당시 좆간들의 무기가 어땠는지 보자. 좆간들은 기본적으로 졸렬한 원딜충들이다. 좆간들의 신체 자체가 그냥 원딜을 하라고 만들어졌다. 좆간들의 어깨뼈 모양을 보면 뭔가를 줘패는데는 병신인데 던지는데는 기막히게 효울적으로 잘 만들어졌다. 맨 처음에는 짱돌을 던져댔고 지금 다루는 시기 쯤 오면 투창을 발명해서 창질을 존나게 날려댔다. 이게 발전하고 발전해서 몇만 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이 되는 거다. 아무튼 원시 인간들의 사냥하면 일단 투창이었다. 아픈 것도 무섭고 맞다이하기엔 힘도 딸리니 원거리에서 와리가리치면서 슉슉 창을 던져서 짤짤이를 해대는 것이 인간들의 주요전술이었다.  반면 상남자 전투종족 네안데르탈인들은 졸렬한 원딜 따위 좆까셨다.  네안데르탈인 무기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면 원딜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거다. 이 새끼들 무기는 무조건 근접전 특화였다. 창도 존나게 두껍고 무거워서 던지는게 아니라 들고 쑤시는 전용이었고 빠따도 마찬가지였다. 네안데르탈인의 사냥은 졸렬한 인간과는 달리 멋잇감과 눈을 마주보면서 둘 중 하나가 뒤질 때까지 서로 후두려패는 로망 넘치는 맞다이였다. 이 당시에 네안데르탈인이 잡아먹었던 동물들도 공룡급으로 정신나간 몬스터들이었다. 사자급으로 덩치가 큰 시미터고양이에, 덩치가 8m를 넘고 무게가 3톤이 나가는 정신나간 땅나무늘보에 현존코뿔소보다 훨씬 크고 사납고 무거운 상위호환 털코뿔소에 원시시대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맘모스까지 네안데르탈인들은 이런 미친 괴물들이랑 정면으로 근접 맞다이를 뜨면서 살았던 것이다. 괴물 전투종족이다. 왜 이렇게 사냥방식이 극렬하게 달라졌냐면 지능보다는 그 서식지의 차이에 있었다. 인간들은 아프리카에서 번성했는데 이 아프리카는 평야가 존나 많고 시야가 탁 트여서 원딜질하기 최적화의 장소였다. 반면 네안데르탈인들은 유럽에 사는 유럽남들이었는데, 유럽은 숲이 존나게 많고 시야도 좁아 원딜질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맹수를 만나도 도망가기 쉽지 않았고 어느 한쪽이 뒤질 때까지 싸우는 전투종족이 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인간의 졸렬한 사냥질을 본다면 계집새끼들이라며 경멸콘을 마구 찍어댔을 것이다. 이렇게 전투종족이다보니 수명도 인간보다 훨씬 짧았다. 2차성징도 좆간보다 훨씬 빨리 나타나서 번식도 이른 나이에 빨리빨리 싸지를 수 있었다. 이쯤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뭔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종족이 하나 튀어나온다 인간보다 약간 멍청하지만 그래도 말하고 불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지능  덩치는 작지만 압도적인 근력과 맷집 원딜 따위 좆까는 근접 올인 상남자 전술 짐승이랑 정면에서 맞다이를 까는 미친 호전성에 짧은 수명에 빠른 번식 야 시발 딱 오크 아니냐? 그런데 오크랑 차이점이 있다면 얘들이 인간한테 쳐들어가는게 아니라 인간이 얘들한테 쳐들어간다는 것 정도다. 침략자 호드 새끼들이랑은 다르게 피해자 입장이었단 말이지. 힘도 약한 졸렬한 아프리카에 살던 원딜충들이 뭔 생각으로 유럽 살던 오크들한테 러쉬를 갔을까. 바로 빙하기가 시작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눈에 띄는 모든 동물들을 원딜로 멸종시키고 있던 좆간들은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먹을 게 없어지니까 네안데르탈인이 버티고 있는 유럽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생태적 지위가 정확히 똑같은 최상위 포식자들끼리 마주치면 한 종족은 멸종할 수 밖에 없다. 이름 그대로 종족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이겼는지는 뭐 지금 당장 키보드 뚜들기고 있는 빙글러들이 호모 사피엔스니까 다들 알겠지 좆간들은 이 전투종족 네안데르탈인을 좆처발라버렸던 것이다. 좆간들과 경쟁하기 시작한지 겨우 몇 만 년도 버티지 못하고 네안데르탈인은 처절하게 멸종하고 만다. 여기서 잠깐 의문이 들 것이다.  원딜이나 써먹는 힘도 약한 졸렬한 좆간들이 어떻게 코뿔소들 근접전에서 때려죽이는 네안데르탈인을 때려잡았을까 개나 소나 존나 많이 써서 이젠 식상하게까지 들리는 유명한 적자생존에 관한 말이 있는데 쎈 놈이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게 쎈 놈이다. 좆간들의 개별 전투력은 상남자 네안데르탈인한테는 좆도 아니었지만 종족으로서는 압도적으로 우수했다. 일단 연료 효율부터 인간이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우수했는데, 네안데르탈인은 근력도 압도적이고 맷집도 강한 대신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인간보다 훨씬 컸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네안데르탈인이 굶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인간보다 1.1배에서 1.3배는 되는 음식을 처먹어야 했다. 근데 음식도 문제였다. 네안데르탈인은 전투종족 상남자였기 때문에 풀 따위는 좆까는 육식동물에 가까웠지만 인간은 풀때기만 처먹고도 문제없이 살 수 있는 잡식동물이었다. 게다가 시점이 빙하기라는 것도 중요했다. 동물들도 먹을게 없어서 굶어 뒤져가는 판국인데 고기만 먹을 수 있는 애들보다는 아무거나 다처먹는 놈들이 유리한 건 자명한 사실이다. 거기다 이 빙하기라는 환경은 네안데르탈인에게 개같게도 인간들에게 존나 유리한 환경이었다. 온도가 존나게 내려가면서 울창한 숲을 이루던 유럽은 숲이 다 말라뒈지면서 짧은 풀들만 간신히 살아남는 초원지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네안데르탈인이 근접전 오크로 진화한 까닭은 숲에서 사냥할 때는 원딜이 필요하지 않아서였다. 근데 그 숲이 원딜충한테 최적화된 평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사냥감들이 이제 몽땅 원딜충 좆간들에게 뺏기기 시작했다. 거기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끝까지 상남자 기질을 버리지 못했는데 이게 결국 멸종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빙하기가 오면서 먹을 걸 존나 처먹어야 되는 중대형 동물들은 존나 빨리 멸종해가기 시작했다. 근데 이 중대형 몬스터들이 바로 네안데르탈인들의 먹잇감이었다. 이제 땅에는 존나 큰 몬스터들 대신 토끼나 사슴처럼 좆만하고 날쌘 새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힘만 쌘 네안데르탈인들은 이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러면 함정을 만들던가 인간처럼 원딜테크를 타던가 해야 하는데 네안데르탈인들은 끝까지 상남자스럽게 존나 큰 몬스터들만 찾아다녔다.  곧 극심한 기아가 찾아왔고 이 시점부터 네안데르탈인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시기를 맞게 된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애새끼들까지 잡아먹었는데, 식량부족을 해결하려고 뼈를 부수거나 구멍을 뚫어서 안에 있는 골수까지 빨아먹으면서 처절하게 버텼다. 이미 좆돼가고 있던 네안데르탈인들에게 결정타를 먹인 건 개뜬금없게도 개의 등장이었다. 인간들은 이 시점부터 개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상남자 네안데르탈인은 좆목질이나 해대는 인간들의 졸렬함에 치를 떨었다. 네안데르탈인들에게 댕댕이는 빠따로 대갈통을 부숴야 할 먹잇감이지 동업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있어 개의 등장은 도구의 등장만큼이나 엄청난 혁명이었는데, 빙하기의 척박한 환경에서 댕댕이들의 후각과 청각은 엄청난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개를 기르지 않는 인간의 사냥 성공률보다 개를 기르는 인간의 사냥 성공률이 50%이상 높았다고 하니 안 그래도 병신 다 된 네안데르탈인이랑은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이쯤에서 그럼 두 종족 사이에 직접적인 전면전이 있었느냐는 궁금증이 들 텐데 유감스럽게도 화석 증거는 아직 없다. 존나게 옛날이라 전쟁질을 해도 흔적이 남기가 힘들다.  근데 전투를 한다고 가정해도 네안데르탈인이 유리하진 않았을건데 왜냐면 머릿수가 존나게 딸리거든. 사실 아프리카 살던 좆간놈들이 막 러쉬왔을 때는 당연히 네안데르탈인이 머릿수가 더 많았는데, 얘들은 문제가 전투종족 답게 협동을 존나 안 했다. 네안데르탈인은 3,30명 정도의 씨족 단위끼리 독자적으로 사냥해서 생활했고 씨족들끼리 연계는 앵간하면 안 했다. 반면 인간들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백 수천명씩 뭉칠 정도로 활발하게 좆목질을 했다.  이러니 네안데르탈인이 주먹질 한 방으로 좆간 뚝배기를 조사버릴 수 있어도 전체적인 판도에서는 존나게 밀릴 수 밖에 없다. 결국 좆간들이 유럽에 나타난 순간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이미 결정되어 있던 것이다. 뭐 그렇게 좆간들은 지구상에서 이종족을 전멸시키고 유일한 문명종족이 되게 된다. 근데 네안데르탈인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건 또 아니다. 신박하게도 이 새끼들은 인간이랑 잠자리가 가능했다. 이종간 오크 교배 ㅗㅜㅑ 즉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빙글러들을 비롯한 인간한테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까 좆간들이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했지? 그 아프리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지 않고 쭉 눌러산 인간들을 빼면 다른 모든 인간들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조금씩 남아있다. 아무래도 이종간 교미가 꽤 인기있었나보다. 참고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종족이 아시아인이다. 그래서 키가 작나... 그리고 이 유전자의 대표적인 특성은 뱃살을 유발한다는 거다. 이 시발 새끼들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다니 (출처) 오늘도 열심히 순화해서 퍼왔습니다. 빙글이니까 화자를 빙글러로 설정도 하고, 좆간 -> 인간 변경은 사실 중간에 귀찮기도 하고 네안데르탈인들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넘어가기도 했고요 ㅋㅋㅋㅋ 하지만 킹받네 뱃살로 복수하다니 ㅂㄷㅂㄷ
특이하게 죽은 수학/과학자들.dead
프랜시스 베이컨 실험을 위해 닭의 배를 가르고 추운 날씨에 눈을 닭에 넣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 칼 빌헬름 셀레 산소, 바륨, 염소 등 많은 원소를 발견했는데 새로 발견한 원소마다 맛을 보는 습관이 있어 결국 납, 술산, 비소 중독으로 1786년에 사망 석주명 6.25로 인해 국립과학관이 소실되자 어떻게 재건할지 논의하러 가던 중 술취한 군인에게 북한군으로 오인받아 사살 쿠르트 괴델 생전 편집증 때문에 아내가 주는 밥밖에 먹지 않았는데, 아내가 수술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아사 알프레트 베게너 자신의 대륙이동설을 증명하기위해 그린란드로 조사 갔다가 조난당해 사망 샤를 에두아르 브라운 세카르 정력 좋아지려고 반려견 고환을 떼어내고 갈아서 그걸 주사함. 얼마 안 가 뇌졸중으로 사망 지롤라모 카르다노 자신이 죽는 날을 예언했는데, 그 예언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날에 딱 맞춰서 자살 아르키메데스 땅바닥에 그려놓은 도형을 로마군 병사가 밟자 항의하다가 살해당함 아브라암 드무아브르 하루에 15분씩 수면시간이 늘어가고 있다는걸 발견, 1754년 11월 27일에 수면시간이 24시간에 이르러 죽을 것이라는 계산을 함. 그리고 그날에 사망. 튀코 브라헤 파티에 나가서 오줌 참다가 급성 방광염으로 사망. 펌) 출처 아아 지롤라모씨 당신은... 아브라암씨의 수면시간 설은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구려. 석주명 선생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고 통탄스럽고... 참 죽음이란 덧없지 않소.
성균관 유생이 좌의정에게 개기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정조임금이 다스리던 1790년에 있던 일이다. 채제공 초상화 정조의 손꼽는 충신이자 명재상으로 좌의정을 역임했다. 좌의정은 조선시대 관료 18품계 중 정1품 최고위직일 뿐 아니라 영의정과 우의정을 포함한 삼정승 중에서도 실권이 으뜸이었다. 이 좌의정 재체공이 1790년 길을 가던 중 돈의문 근처에서 담배를 꼬나문 두 명의 성균관 유생을 마주쳤다. "식후불연초하면 삼분내즉사라~" 당대 조선에는 웃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거나 안경을 쓰는 것은 예에 어긋난 일이었고 심지어 당시 이 유생들은 옷도 대충 걸쳐입고 있는 상태였다. 보다 못한 채제공의 권두(오늘날 비서/경호직)가 담배끄라고 호통치자 담배피던 유생이 한 말이 가관이다. "아저씨 요즘 애들은~ 한 성질 하거든요? 예?!" 더 정확한 표현은 "내가 무엇 때문에 저 자를 보고 담뱃대를 빼겠는가." 일개 유생이 일흔 살 먹은 좌의정 앞에서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빡이 오른 권두는 이 두 유생, 곧 김병성과 김관순을 잡아다 가둔다. 어찌되었든 크게 처벌할 일은 아닌지라 채제공은 이 둘을 적당히 벌주는 셈 치고 다음날 풀어주려 했는데 그날 밤에 일이 터진다. 성균관 유생이란 작자들이 야밤에 우르르 몰려가 관리에게 잡힌 동료 유생들을 풀어주라고 협박한 것이다. 관리가 거부하자 유생들은 옥을 부수고 꺼내가겠다거나 관리를 때려죽이겠다고 패악질을 부렸다. 아 선비님들 잠시만요.jpg 생명의 위협을 느낀 관리가 호다닥 채제공에게 보고하자 놀란 채제공은 잡혀있던 유생 둘을 형조로 넘겼다가 얼마 뒤 풀어주었다. 좌의정 앞에서 양아치짓을 한 이 두 유생이 높으신 분 자제분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김병성은 종9품 돈령부참봉 김세근의 아들이고 김관순은 종8품 동부봉사 김이의의 아들이었는데 둘 다 미관말직이었다. 결국 김병성은 아버지한테 끌려가 집안하인들 다 보는데서 빠따질을 당했고 김관순은 그 할아버지가 채제공의 지인에게 "우리집안에 병신새끼가 있다."고 돌려 사죄했다. 애초에 오늘날로 치면 외무부 말단 공무원 아들이 지나가던 국무총리한테 담배피며 개긴 꼴이니 조선시대에 그 아비가 빠따질을 안했다면 그게 용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 못차린 유생들이 사발통문을 돌려가며 채제공을 공공연히 욕하고 나중가면 유생은 "죽일지언정 욕을 보일 수는 없다."고 상소를 올려대며 채제공을 공격한 것이다. 명재상으로 이름 높던 채제공의 인내심도 여기서 그만 폭발해버리고 만다. 채제공은 정조에게 나아가 "욕보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선비가 공론을 말할 때나 할 소리인데 대낮 길가에서 양아치 새끼마냥 담배 꼬나물고 좌의정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놈을 혼내지 못한다면 이건 그냥 일하지 말라는 소리 아닙니까?" 라고 상소하고 사직서를 낸다. 당연히 정조가 이를 받아줄리 없었고 예의범절에 엄격했던 정조가 이를 묵과할 리도 없었다. 왜냐면 정조야 말로 당대 최고의 꼰대 중 하나였기 때문... 그 결과 길빵하며 좌의정에게 개긴 두 명은 어찌되었든 그 가장에게서 빠따질로 처벌을 받았으니 그걸로 넘어갔지만 야밤에 통금령 어기고 우르르 몰려가 관리를 때려 죽이겠다는 둥 패악질을 부린 유생들 중 주동자 이위호는 종신과거금지 처분을 받아 벼슬길이 막혔고 추종자들인 조학원, 윤선양, 원재형, 원재행 네 명은 10년과거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결국 이렇게 1790년의 길빵사건은 정신 못차린 유생들이 꺵판치다 자기 뚝배기 깨는 걸로 끝을 맺게 된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이따.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