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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제의 상처’ ⇨ 피해 할머니들의 ‘위안부’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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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한 처우를 받았다. ▲차마 읽어내려갈 수 없는 이들의 증언을 옮긴다. ▲일본 사진기자 이토 다카시(伊藤孝司)가 1998년 10월, 한겨레 21에 전한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별세) 할머니의 증언과, 통일 전문지를 표방하는 매체 ‘민족21’ 2002년 3월호에 실린 김영숙(당시 75세) 할머니의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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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진기자 이토 다카시(伊藤孝司)는 1998년 10월, 한겨레 21에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별세) 할머니의 증언을 실었다. 이 글을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김성팔 운영위원이 지난 10월 페이스북에 다시 올렸다.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별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여성 발가벗겨 못 박힌 판자 위에 굴렸다”
일본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됐다. 혼자 있을 땐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1933년 8월 27일, 칼을 찬 군인이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하고 물었다. 그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을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일본 군인들은 여성을 발가벗겨 머리와 발을 잡아 못 박힌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걸려 너덜거렸다.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 군인들은 못판 위에서 죽은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나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했다. 죽은 여성의 머리는 가마에 들어가 삶아졌다. 그 삶은 물을 군인들은 나머지 여성들에게 억지로 마시게 했다.
“살해한 여성의 머리를 삶아 강제로 마시게 했다”
1933년 12월 1일, 장교가 한 여성의 자궁에 철막대를 꽂아 죽였다. 다음해 2월 4일엔 한 여성이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어, 여자가 즉사했다.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다.
혀에도 문신… 하복부에도 문신
이토 다카시는 “정 할머니가 문신 자국을 보여줬다”고 했다. “입술 안쪽엔 짙은 보라색 반점이 있었고, 좀 흐릿했지만 혓바닥에도 푸르스름한 반점이 몇 군데 있었다”고 했다. 문신의 흔적이다. 이토는 정 할머니의 가슴과 하복부에도 아이들 낙서 같은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키 150cm도 안 되는 김영숙 할머니의 증언
통일 전문지를 표방하는 매체 ‘민족21’(2012년 12월 이후 발간 중지)은 2002년 3월호에 위안부 피해자 중 한명인 김영숙 할머니(당시 75세)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김 할머니는 인터뷰 당시 북한에 있었다고 한다. 민족21은 2002년 1월 23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김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지팡이를 짚은 김영숙 할머니는 키가 150cm도 안됐다고 한다. 민족 21은 “천진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민족21’이 실은 김 할머니의 육성 증언이다.
반신불수 아버지의 둘째 딸… 지주 첩의 몸종으로 들어가
나는 평안북도 태천군 학봉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도 변변치 못해 ‘국순네’라고 불렸습니다. 생일은 1927년 1월 24일. 우리 아버지 둘째 딸입니다. 언니 하나, 남동생 둘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일본놈들한테 끌려가 광산에서 일하다가 그놈들한테 매를 너무 많이 맞아서 반신불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 데리고 짚신짝 질질 끌며 밥 얻으러 다녔습니다. 3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한 지주의 셋째 첩의 몸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고된 종살이를 한 지 3년째. 하루는 하루는 일본 순사놈이 저녁에 와서 3일 동안 쑥덕쑥덕합니다. 그러더니 그놈이 나더러 “야 국순네야. 너 나하고 돈벌이 하러 가자. 너 엄마도 만나보고 언니도 만나보고”라고 합니다.
그래서 순사 따라갔습니다. 기차 타고 배 타고 일본까지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또 배타고 며칠, 기차 타고 며칠, 마차 타고 며칠을 갔습니다.
도착해서 문 열고 들어가니까 조선사람 하나 안보입니다. ‘여기가 어딘가’ 하는데, 총 찬 일본 장교 놈이 하나 오더니 기다랗게 늘어선 방 중에서 저 끝 방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거 다 조선말로 합니다. 지주집서 날 데려온 순사 놈이 “야 국순네야, 나 간다. 말 잘 들어라” 하기에 와락 겁이 나서 나도 쫓아가겠다고 매달렸는데, 셰퍼드(군용견으로 사용되는 사냥개)를 한 마리 내놓습니다. 모두 방에 들어갔는데 밖에서 문을 걸어 잠급니다. 위생실(화장실)에 가겠다고 할 때만 일본 놈 보초가 와서 데리고 나갔다 다시 가둡니다.
몸종으로 살다가 끌려온 12살 소녀
그렇게 사나흘 지났을까, 장교 한 놈이 들어옵니다.
“너 이름 뭐야?”
“국순네….”
“국순네가 뭐야? 넌 오늘부터 오카다다.”
그 놈은 일본 옷을 하나 던져주고 내 치마를 훌떡 들치면서 ‘이걸로 갈아 입으라’고 했습니다. 안 입고 가만 있으니 “안 입겠나” 소리치는데 무서워서 입었습니다. 툭 헤치면 벌거벗겨지는 그런 옷입니다. 한 이틀 잘 놔두더니 그놈이 또 들어왔습니다.
“나는 나카무라다. 야, 요거 조선 계집애 참 곱구나. 한번 놀아보자.”
열두 살 난 거하고 놀아보자는 게 뭡니까? 자기가 척 벌거벗고 아래를 내놓고는 “이거 안 부럽나, 안 부럽나?” 하면서 다가오는데 “엄마, 엄마” 하면서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뛰니까 “요놈의 에미나이, 말 안 듣갔나!” 소리치면서 잡으러 옵니다. 안달복달 나서 이리저리 뛰어도 누구 하나 도와줍니까? 그 놈이 날 잡아서 아래를 손칼로 이리 찢고 저리 찢고…. 난 피바다가 돼 방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민족21은 “이 대목에서 귀를 의심했다”고 했다. 할머니가 말한 ‘아래’는 질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증언이 이어졌다.
며칠 그대로 놔두더니, 그 놈이 기세등등해서 또 들어옵니다. “너처럼 천황폐하 위대한 줄 모르고 거역하는 년은 간을 꺼내먹어야 돼!” 벽력같이 소리를 내지르더니 구둣발로 내 다리를 꺾고 칼로 배를 찢어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젖까지 오려놓고….
“천황폐하 거역하는 년은 배를 갈라!”
민족21은 “할머니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고 했다. 이어 “할머니의 몸에는 가슴부터 배꼽 아래까지 일직선으로 칼자국 흉터가 뚜렷이 나있었다”며 “왼쪽 젖가슴에도 칼자국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이 매체 기자는 “60년 전 상처가 이 정도라면 당시 상처가 깊었을 텐데 치료는 해 줬습니까”라고 물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치료는 무슨 치료? 치료해 줄 놈들이 그런 짓 하겠소? 나이가 어리다 보니 한 열흘 지나니 상처가 저절로 나은 거지요. 아래는 다 헤쳐 놓고…. 그러고 나서는 일본놈들이 하루에 20~30명이 날 타고 앉으니…. 일본놈들은 이놈 저놈 다 똑같아. 나은 놈은 하나도 없어. 꺾고, 찌르고, 째고, 담배불로 지지고…. 내 몸뚱이는 몸뚱이가 아닙니다.
“성행위 위해 미리 칼로 짼 것”
김영숙 할머니는 인터뷰 당시 미혼이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래가 허궁이 돼 있으니 시집 간다 한들 누가 좋아했겠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심재식 당시 서울 보훈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민족21에 “김 할머니는 체구도 작고 영양상태도 좋지 않아 질이 성행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상태에서 성행위를 강행하면 질이 파열될 것이므로 미리 칼로 째서 질을 넓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행위”라며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김영숙 할머니는 “이대로는 억울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눈 못 감는다”며 “돈 몇푼 받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앞에 와서 무릎 끓고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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