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f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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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완결이라니! 2015년 한 해, 완결된 인기 만화책 총 정리!

재밌는 만화가 완결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쉬우면서도
마음껏 정주행 할 수 있다! 는 쾌감도 들지요^^
올해엔 특히 연재 기간이 길었던 피아노의 숲, 엽기인걸 스나코 등이 완결한 해였네요:)
(작년엔 여기에 나루토가 있었다죠...헛헛)
어찌됐든 당분간 저는 만화책방에서 벗어나긴 글렀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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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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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하라이드 인생만화 ㅠ
코난을 보기 시작한게 9살 때. 같은 초등학생으로 시작해서 신이치의 원래 나이랑 동갑이 되었을 때도 코난을 보고 있었고. 어느새 대학 졸업하고 직장찾고 오랜만에 서점갔다가 코난 최근에 나온 단행본 읽으니깐 인물이 너무 많이 추가되서 이해는 어렵더라. 다만 새삼스레 놀란게 내가 그 여형사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는 점. 만약에 주인공들이 실제로 존재해서 만날 수 있다면 고등학생인 코난이나 란이보다 항상 잠드는 탐정 아저씨와 말이 더 잘 통할거 같다고 생각하게 된 점. 같은 초등학생으로 시작했는데 난 어느새 어른이 되버렸네 싶어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코난이 완결나면 그게 정말 가슴 벅찰거같네요.
베르세르크도 완결 나온다는 소리 좀 들었으면 좋겠네요. 손자보게 될 즈음에 완결볼 수 있을지.. 당장 내년 여름까지 휴재라는 카더라도 돌던데 말이죠.
헐 피아노의 숲...ㅂㄷㅂㄷ 저렇게 오래 연재했는지는 몰랐네요;; 당장 만화카페 달려갑니다ㅜㅜㅜ
저도 만화책 엄청 좋아하는데요~ㅎㅎ 근데 집 근처에 있던 만화책방이 다 편의점이나 식당으로 바뀌어서ㅠ ㅠ 학교에서 등 하교 하는 길에 들러서 만화책 빌리던 그런 기억이 추억이 되버렸어요~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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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진수 승조 (陳壽 承祚) A.D.233 ~ 297
어찌보면... 이 칼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다뤘어야 할 사실상 삼국지의 가장 중요인물을 이제서야 다루게 되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삼국지정사(三國志正史)의 저자 "진수"다. 사실, 수천 여 년 이상을 자랑하는 유구한 중국문명.. 심지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와 함께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역사는 여간 장대한게 아니며 그 중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 말 ~ 삼국시대는 고작 한 세기 밖에 안되는.. 이리 말하면 좀 뭐하지만, 말 그대로 "찰나" 에 불과하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중국 본토는 물론 타이완과 동남아시아 및 중화권을 넘어 여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길고 긴 중국역사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기이자 큰 인기와 관심을 얻게 된 시대로 만들어 낸 것의 시작은 바로 진수의 공적인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토 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 뭔 개소리여, 삼국지는 나관중이지! ' ' 난 이문열꺼만 봤구만 뭔 소리? ' ' 오레노산코쿠지와요코야마미쓰테루상노산코쿠지데스 ' 다 맞다. 모두 옳다. 무엇보다 오늘날 대인기의 삼국지가 있게 된 가장 큰 공은 누가 뭐래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저자인 "나관중(羅貫中)" 및 나관중 이전에 삼국지정사의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들을 연구하여 주석을 달았던 "배송지(裴松之)", 그 밖에도 현대에 와서 이를 바탕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평역본과 흥미로운 미디어믹스들을 양산해낸 많은 이들이 오늘의 삼국지가 누리는 인기와 명성을 있게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연계물들 역시 애초에 진수가 삼국지를 집필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정사는 나관중의 연의가 창작되고 이게 또 인기대폭발하며 아주아주 근래에 그리 일컫는거지, 지금도 중국에 가서 '삼국지'라 하면 그냥 정사를 말하며 삼국지연의만 따로 연의라고 한다. 이는 마치 짜장면과 짜파게티를 구분할 때 짜장면을 가리켜 굳이 '정통짜장면'이라 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정사는 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엮은 거라 제법 많은 편수로 이루어져 있고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에 각 서들은 여러 인물들 위주의 열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의만 줄기차게 읽다 환상을 품고 접하면 그야말로 모든 불면증을 치료할만큼 노잼.. 아니, 핵노잼이다. (일단 구해보기조차 버겁다..,) 다시 진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는 당시로는 파서군(巴西郡) 안한면(安漢縣) 출신이며 오늘날 중국 쓰촨성의 난충 시에서 북쪽으로 50~60km가량 더 가면 그쯤이 대략 진수의 고향 위치다. 참고로 이 동네는 중국내에서 일조량이 매우 적은 곳 중 하나인데, 여름 기준으로 오전 8시쯤 일출, 오후 5시쯤이면 일몰로 어둑어둑하다고 한다. 구글링 해보니 이 동네 5성급 호텔 일반객실의 평균가가 우리돈 ₩ 50,000. 쯤이라는데 매우 싸다! 내가 예전 여친과 자주 가던 캘리포니아모텔의 1박이 ₩ 40,000. 주말 피크타임에 가서 일반실 없다고하면 어쩔 수 없이 가는 디럭스룸이 ₩ 50,000.이였는데... 대신 디럭스룸은 일회용품을 그냥 줘서 실제로는 ₩ 9,000. 더 비싼 셈이다. 여튼 진수의 고향을 보면 알겠지만 촉한(蜀漢)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제법 학문에 밝았다고 하며 그 덕에 초주의 휘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다고 초주가 1:1 과외를 해준 건 아닐거고 당시 트렌드상, 아마 초주가 가르치는 여러 문하생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지연의나 코에이의 게임에서 잉여노쓸모로 나와 그렇지, 초주는 촉한의 당대최고의 학자들 중 한 명이였고 명성이 대단했기에 그런 초주의 문하생은 아무나 될 수 없었다. 참고로 초주는 "도참설(圖讖說)" 이라는 일종의 예언과 관련된 이론의 신봉자인 촉한판 노스트라다무스였다..;;; 본인도 똘망진데다 스승인 초주빨이 겹쳐 꽤 일찍 벼슬에 나섰지만 원래 책만 후비는 애들이 대개 그렇듯, 사회생활은 잘 못 했는지... 당시 실세였던 환관 황호를 비방하는 상소를 올리다 좌천 세 번에 파면 한 번을 먹었다. 보드게임 하다 주사위 잘못 던지면 "처음으로 돌아가시오" 이런거 여러 번 걸리는거랑 비슷한 사회생활을 했다..... 내내 이렇듯 정권실세에게 개김질 하다 파면크리 먹고 백수생활 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량처럼 살 때 촉한은 위나라가 낳은 클리프행어 등애의 손에 멸국을 맞고 검각에서 버티던 강유마저 종회에게 항복하며 진수는 집에서 노는 사이, 국적이 촉한에서 위로 바뀐다. 그리고 여전히 노는 동안 사마염이 위를 멸망시키고 진을 건국하며 백수진수의 국적은 위에서 진으로 또 한 번 바뀐다. 이런 복잡한 귀화사를 가진 진수는 진사람이 되서야 장화라는 한 문관이 한 때 꽤 날렸던 그의 학문을 아까워해 천거해주며 다시 벼슬아치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솔직히... 인성 자체는 그닥이였던 듯 싶다. 촉한시절 임관동기였던 자와 술자리 계산문제로 다툰 후 원수지간 되었는데 진수가 재임관 후 마침 그 자도 다른 이의 천거로 다시 벼슬에 나오려는걸 진수가 혼신의 뒤끝으로 막았고... 당시 촉한출신 벼슬아치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 모두 진수와 사이가 다들 별로였다. 꼭 그렇다고 어디 나와 있는건 아니지만.. 아마도 진수는 저런 직장내 왕따도 당하고, 별 다른 공적이 없으니 인사고과가 별로라 승진도 잘 안되어 그랬는지... 그 후부터 촉한의 이런저런 자료와 기록들을 모으고 엮어서 역사서 저술이라는 히키코모리나 해낼 법한 일을 해내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가 된다! T-T 진수가 만약 직장동료들과 막 사이 원만하고 일도 열라 잘 해서 제갈량처럼 온갖 거 다 떠맡고 그랬으면 그렇게 한가롭게 자료 모아서 역사서 만들 생각도 안했을거고 여유도 없었을거다. 물론 진수 본인의 삶이야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겠지만 그야 내알바 아니고, 따당하는 일못인 덕에 우리가 오늘도 삼국지를 볼 수 있는 것. 물론, 내가 반 년이나 쉬다 이제 와서 다시 이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가 결코 직장내 왕따 및 인사고과 하위자여서가 아님을 명시한다. 이렇듯, 인성이 별로인 진수의 삼국지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한창 위와 촉의 기록을 모으던 터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던 오나라까지 망하며, 거기서 유입된 오출신 학자들과 공동으로 오의 역사기록들까지 합쳐 엮으며 삼국지는 완전체가 되었고 보통 당시에는 인정 못 받는 경우가 많음에도 진수의 삼국지는 이미 당대에도 여러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본인도 내 길은 이거다 싶었는지 더욱 삼국지 편찬에 집중... 심지어 본인을 재임관 하도록 추천해준 장화가 다시 더 높은 직위에 천거하자 장화의 반대파에서 태클이 들어왔는데, 진수는 그걸 핑계 삼아 승진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반대파의 집요한 태클에 또 다시 파면 당하여 백수가 되고 만다. 허나 그간 정력을 다해 삼국지를 짓고 또 어머니도 여의고 게다가 정치적인 태클도 워낙 심히 받다 기어이 파면까지 되며 그가 받은 스트레스도 적잖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안되어 본인도 병을 얻고 사망하고 만다..... 그가 죽자, 그가 지은 삼국지를 읽었던 학자와 고위관리들은 그와 그 책을 잊지 못하여 당시 천자에게 상서를 올려 진수가 지은 삼국지가 겁나 명작이니 그냥 저렇게 없어지는건 아니될 말이라며 애원했고 이에 천자도 사람들을 진수의 집으로 보내 이들로 하여금 인간복사기가 되라는 어명을 내려 이렇게 수작업으로 베껴진 삼국지는 세상의 빛을 본다. 위에서 말했듯 그 분량이 대단하지만.... 근 100년의 역사를 엮은 것치고는 간소한 부분도 많았다. 그런 아쉬움에 훗날 송나라의 3대 황제인 유의륭이 부족한 부분을 좀 더 기록과 자료 및 민담 등을 걸러 주석을 달게 하였으니 이 때 주석을 달았던 것이 배송지다. 일부 떠도는 소문에... 제갈량에게 처형 당한 촉한의 장수인 진식이 진수의 부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픽션! 그냥 픽션도 아니고 개픽션!! 저 진수가 지은 삼국지정사에 의하면 진식은 3차 북벌 당시 참전했다는 기록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그리고 연의에서 진식이 처형되는 4차 북벌 자체가 나관중이 지어낸 뻥인데다, 그 연의가 맞다셈쳐도 연의 속 진식의 사망시점이 230년이니... 233년생인 진수가 3년 전 사망한 진식의 아들이 되는 방법은 현대에서나 가능한 냉동정자보관 기술만이 정답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그 긴 시간 피나는 노력과 정성으로 온갖 자료들을 끌어모아 역사서를 저술하는데 자기 부친의 기록만 하필 부실한 것도 말이 안된다. 여튼 그가 촉한출신에 위를 거쳐 진의 신하가 된 관계로 당시부터도 명서라는 호평과는 별개로 기록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 및 이에 대한 가십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서에 좋은 기록으로 넣어줄테니 뇌물을 요구했다던가 (그런데 이건 나였으면 진짜 이랬을 듯.ㅎㅎㅎ) 사마가문에 대한 비판이 유독 없다거나 등등... 특히 이 사마가문의 비판관련 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애초에 진수도 결국 사람인지라 현 정권의 시초 및 그 가문 사람을 객관성있게 표현할 깡은 없었다는 주장과 또 하나는 위에 진수 사망 후 인간복사기들이 가서 진수가 쓴 삼국지를 베끼는 과정에서 누락 시켰다는 주장이다. 뭐 그런데 이건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니.. 혹여 독자분들 중 근시일내로 안타깝게 운명하시는 분이 저승가서 진수를 만나거든 물어본 후 내 꿈에 나타나서 알려 주시기로 하자. 여튼 당시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출신이나 정치성향에 따라 어땠는지는 모르나 현대에 와서는 그의 저술방향에 있어 두드러지는 편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 받고 있다. . . . 가장 마지막이 7월 2일에 올린 노숙편이니 그날부터 거의 만 반 년만에 올리네요...ㅎㅎ (하필 컴백편 주인공이 노잼 진수...;;;) 제가 4월에 이직을 했는데, 새 회사가 제가 지금껏 살며 다닌 그 어떤 회사들보다 일이 더 많고 어렵네요.. 맨날 일에 치이다 집 와서도 일하고 새벽 3~4시에 자고 제가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공부 중인데 그것도 벅차고 가장 큰 이유는 빙글의 인터페이스가 제 입장에서는 좀 직관적이지 않고 불편하더라구요.,.. 사실 여러 번 썼다 말았다를 반복 했었어요. 그렇게 저도 삶에 치여 잊고 살았는데, 간간히 뜨는 알림에 들여다 보면 꽤 긴 시간 놓고 있음에도 저와 제 글을 잊지 않아 주시고 돌아오라는 기다린다는 댓글 남겨 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며 완전 진짜 마음 울컥 했습니다....T-T 제 바쁜 삶이 달라지진 않다보니 꾸준한 연재는 약속 드릴 수 없지만(뭐 이건 전에도 그러긴 했죠ㅋ) 그래도 텀이 길지언정, 예전처럼 많은 분들이 봐주시지 않는다해도 연재는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사실 이 6개월도 제가 글을 안쓰겠다 마음 먹은 건 아니였고 어쩌다 저쩌다보니 진짜 시간이 쏜살처럼 간거예요ㅋ 아무튼 이제 솔크도 지났고 곧 새해니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날 추우니 감기들 조심하세요! 그리고 본의 아니게 긴 휴재에 대해 사과 드리며 그럼에도 여태 기다려 주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제 글 때문에 빙글 안지운다는 분들과 돌아오라고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어차피 노총각이라 주말에 시간이 남으니 최대한 빨리 연재 해보려 노력할께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결말 해석[두 세계를 오가게 된 치히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스튜디오 지브리) 몇 가지 감상 겸 비망록 겸 적습니다. 미야자키가 항상 관심을 가졌던 자연과 환경에 관해서, 감독은 이전과 다르게 직접적으로 이를 언급하거나 관객들의 인식전환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처음 이런 인식이 화면에 나온 장면은 이름 있는 강신이 오물을 뒤집어 쓰고 왔던 장면입니다. 그것을 센의 순수한 손길이 치유해 주었지요. 지금 우리가 깨끗이 하지 못한다면 우리 다음 세대가 그 더러운 것을 치워야 합니다. 자전거부터 낚시줄까지 엉켜있는 그곳을.. 그리고 이 신이 남겨준 '환약'은 세 명이 먹습니다. 센이 조금 베어먹었고,그 다음으로 하쿠가 반, 가오나시가 반을 먹었지요. 센은 이 씬 이후로 조금씩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기 시작합니다. 바다(?) 건너서 날아오던 백룡이 하쿠라는 것을 봤지만, 그게 하쿠인지는 확신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환약을 먹은 다음에 백룡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하쿠'라는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하쿠가 다쳐 돌아왔을 때, 부모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보낼 유일한 희망이었던 환약 반쪽을 아낌없이 나누어줍니다. 그 환약이 하쿠에게 효험이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 환약이 하쿠에게 효험이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 덕에 하쿠는 마녀의 도장과 하쿠 몸 안에 남아있던 마녀의 주술까지도 몸밖으로 뱉어냅니다. 마녀의 도장 하나 남은 주술, 마녀의 도장에 남아 있던 저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 센이 환약을 조금 먹었던 이후부터 센에게는 마법이 듣지 않게 됩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은데요. 따라서 센이 마녀의 도장을 집어든 다음에는 마녀의 도장에 남아 있던 저주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센은 유바바가 남겨둔 주술벌레가 그 저주라고 생각했나 봅니다만. 게다가 센은 유바바의 주술벌레를 한 큐에 날려버리지요. 누군가의 주술을 깨려면 그에 맞먹는 마력을 지녀야 하는데, 센은 이미 이때붙어 유바바에 맞먹는 마력을 지니게 되었거나, 아니면 센에게는 더 이상 마법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는 애기지요. 센은 이후에도 가오나시가 폭주할 때, 가오나시의 본질이 무었인지 알고 있었기에 싸우거나 무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섭니다. 가오나시에게 남은 반쪽의 환약을 주었던 것도, 가오나시의 뱃속에 있던 점원들과 연관되어 있었겠지요. 또한 가오나시는 단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일본어로 사비시가리야)일 뿐이라는 것도 압니다. 가오나시가 주는 금덩어리 같은 것도 신기루와 비슷한 가짜라는 것을 압니다. 가오나시가 온천을 나와야 얌전해진다는 것도 압니다. 참, 센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오나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가오나시가 하는 짓이, 제가 재작년부터 어떤 사람에게 했던 행동과 무척 닮아 있다는 것을.. 두번 째로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답니다. 외로워하는 그 몸짓이,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선물로 그 사람의 환심을 끌려 했던 점이,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을 거부할 때 폭주했던 몸짓이..왜 그리 닮았는지. 보고 있자니 참 부끄럽더군요. 여튼, 센은 폭주하던 가오나시를 온천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 혼자 제니바의 집으로 향합니다. 제니바의 집 앞에 도착해서 외발등이 마중을 나와도 전혀 놀라지 않지요. 기특한 것^^; 제니바의 집에 도착하여 여러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하쿠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 못합니다. 여기서 뚱땡이 쥐(보오)와 파리새, 가오나시와 제니바가 같이 만든 머리띠를 건네 주지요. 이거 참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냥 주는 선물이 아니거든요. 이거 놓치면 엔딩까지 놓치더라구요. 하쿠, 들어줘. 엄마한테 들은거라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나 어렸을 때 강에 빠진적이 있대. 그 강엔 맨션이 들어와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지금 생각났어. 그 강의 이름은..강의 이름은 코하쿠강. 네 진짜 이름은 코하쿠강이야. 하쿠와 돌아오면서, 치히로는 어렸을 적 이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 개천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이야기, 그리고 지나가듯이 '그 하천은 매립되어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역시, 감독의 의도가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장면인데, 이 대사가 의미하는 것은 하쿠가 이제 돌아갈 집도 없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하쿠와 치히로의 추억이 어린 그 개천은 이미 사라졌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삶을 위해 우리는 자연뿐만 아니라 초자연의 영역까지 파괴하고 있다는, 미야자키 감독의 메세지가 아닐까요?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그 많던 전설과 설화가 사라져가고(물론 일제치하에 일본인들 때문에 많이 사라졌겠지만) 그 많았던 귀신과 산신령들이 사라져갔습니다. 아마도 일본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을 것이고, 미야자키 감독은 이것이 참 안타까웠나 봅니다. 예전의 미야자키라면 이것을 좀 더 친절하게 '회상'하는 장면으로라도 집어넣었겠지만(가령 아파트 매립 과정 같은), 요즘 미야자키 감독은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더군요. 개인적인 상상을 덧붙이자면, 하쿠가 처음 유바바를 찾아오게 된 계기도, 자신이 살게될 집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쿠가 그렇게 마법을 원하게 된 계기도, 인간의 간섭 없이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집을 파괴한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쿠는 유바바의 제자가 되었고, 그렇게 기억을 잃어갔습니다. 치히로에게 마법이 듣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치히로가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부모를 찾은 것으로 영화 끝 무렵에 다시 한번 증명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으로 변신한 돼지 중에 자기 부모가 없다는 것을 한 큐에 알아봤지요. 기특한 것. 그리고 엔딩을 잘~보면..정말 끝날 때까지 방심하지 않고 보면..이 마법의 나라에서 받은 머리띠가 나옵니다.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하쿠의 말 때문에,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 치히로의 머리에, 마법의 나라에서 묶었던 머리띠가 살짝 빛나는 것이 보입니다. 저는 처음 볼 때 이 장면을 놓쳤고, 많은 사람들이 놓치더군요. 그냥 엔딩이 너무 허무하다고들 생각하나 보던데, 저도 처음에는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보면서, 머리띠를 확인한 순간, 너무 기뻤습니다. 치히로는 이제 마법의 나라와 현실세계에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하쿠랑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치히로가 처음 마법의 나라에 갇혀, 몸이 사라져 갈 때 하쿠가 음식을 주지요. 이 음식을 먹어야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면서. 즉,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 쪽 세계의 사람이 다른 쪽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치히로가 묶었던 마법의 머리띠가, 현실 세계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치히로와 마법세계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겠지요. 처음에는 하쿠가 치히로를 마법나라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이제 치히로가 하쿠를 현실세계로 데리고 온 게 아닐까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던 것도, 하쿠가 치히로의 머리띠에 붙어서 나올라구 그랬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치히로의 머리띠가 두 세계를 이어주는 어떤 문인지도 모르지요. 오즈의 마법사를 보더라도, 도로시가 신고 온 마녀의 구두 때문에, 도로시는 나중에 다시 오즈로 떠날 수 있습니다. 역시 치히로도 마찬가지겠지요? 치히로의 다음 모험은 아마도 머리띠에서 시작할 것 같습니다. 이 머리띠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감독은 아마도 모노노케히메에서 너무 허무하게 끝낸 것이 맘에 걸렸나 봅니다. 두 청춘남녀(?)가 아무런 인연의 끈도 남겨두지 않고 헤어진 것이 너무 안쓰러웠겠죠? 그나저나 모노노케히메의 엔딩에도 이런 여운이 있는지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아무생각없이 봐도 재밌지만, 군데군데 박혀있는 암시와 복선을 잘 살피면서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나중에 디비디로 나오면, 다시 보면서 또 다른 보석이 있는지 살펴 봐야겠네요. 개인적으록 극장에서 울어제끼던 애들과, 뛰어다니던 유치원생들, 개봉 날에도 비가 오던 화면 같은 것 때문에 제대로 감상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비디로 꼭 구입해서 두고두고 봐야겠습니다. “진짜 세계로 나도 돌아갈 수 있을거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응, 꼭이야” “약속했어?” “응, 반드시. 어서 가. 뒤돌아보면 안돼” 출처
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노숙 자경 (魯肅 子敬) A.D.172 ~ 217
이 칼럼을 시작하며 대략 스무 명 가량의 인물들을 다뤘지만 거의 매번 붙는 수식어가 바로 "연의의 피해자"라는 타이틀. 피해자가 있으면 반대로 수혜자도 있어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의도치 않게 피해자들만 줄줄이 다루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 역시 비록 그 피해가 앞선 다른 이들에 비해 경미하기는 하나, 그래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인 인물. 바로 "노숙"이다. 적벽대전 앞두고 항복론자들이 대다수였던 오에서 가장 앞장서서 항전을 외쳤고, 유비세력과 오의 연합에 있어 일등공신에, 주유 사후 오의 군권을 총괄했던 그의 숨겨진 그리고 연의의 각색 전의 본모습에 대해 알아보자! 양주 임회군 동성현.. 오늘날 중국의 안후이성 딩위안 출신이며, 없어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양주의 대호족 출신 금수저였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오냐자식이였으며 대대로 있는 집 아들내미라 마음의 여유가 넘쳐나다보니 재산을 들여 인근의 빈자들을 돕고 베풀며 뜻 통하는 명사들과 사교나 하며 근심없이 살던 양반이였다. 정사의 노숙전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이미지와 달리 체격이 제법 큰 편이였던 것으로 보이며, 난세에 걸맞는 스킬을 보유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려서부터 궁술, 마술, 검술 등을 익히고 가난하지만 힘 좀 쓰던 장정들을 어깨로 고용하여 적잖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주유와의 인연도 이때 맺었으며, 당시 이미 공직에 있던 주유가 군량을 좀 협찬 받으러 노숙을 찾아가자 아예 곳간을 들어내다시피 퍼줬고 이에 뻑간 주유와 비즈니스를 넘은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고...ㅎ 이래저래 재산과 명성을 다갖춘 노숙을 가장 먼저 리쿠르팅한 것은 역시 당시에 상당한 유력군주였던 "원술". 그렇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노숙이지만 원술의 하는 꼬라지를 보니 얘는 아니다 싶었고 당시는 무슨 사직서내고 마음대로 퇴사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였어서 원술의 스타일상, 그냥 그만둔다하면 뒤끝작렬이 예상되었던터라... 노숙은 일가친척 다 이끌고 짐을 싸서 '도망'을 친다. 그럼 그렇지, 빡친 원술은 애들을 풀어서 도망치는 노숙을 잡아오게 하였는데, 추격대와 마주친 노숙은 이들을 설득하는 한 편, 방패를 세워놓고 활로 이 방패를 꿰뚫는 슈퍼파월을 보여주며, 호락호락 잡혀가진 않겠다는 경고를 했고, 설득도 설득이지만 그 궁술을 보고 쫄아붙은 추격대는 그대로 되돌아 가버렸다. (벌써 이 대목부터 노숙이 문약한 선비가 아님이 드러남) 이러고 도망가서 의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과다협찬을 받고 베프를 먹은 '주유'였다. 이 때, 주유는 자신이 모시던 "손책"과 노숙의 미팅을 주선, 손책도 노숙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헤드헌팅을 하려던 때 노숙의 사실상 부모님에 진배없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셔, 노숙은 할머니의 장례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와중에 노숙의 친구였던 "유엽"이 마침 인근에서 세력을 키우던 '정보'(여러분이 아는 그 정보 아님)가 인재를 구한다니까 같이 가보자는 청을 받고 가려는데 (그냥 별 생각없이 아무나 섬기고 보는 스타일인가....) 그 소식 듣고 찾아온 주유의 설득에 당시 손책이 막 죽고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어버버하고 있던 "손권"을 섬기게 된다. (아무나 섬기는거 맞는 듯...-_-;;) 이 면접(?)에서 손권에게 노숙은 "천하이분지계"라는 테마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여기에 감명받은 손권은 바로 노숙을 임용한 뒤 최측근에 두고 쓰게 된다. 당시 노숙의 프레젠테이션의 거국적 스케일은 아직 미성년자요, 아버지를 여읜지 그리 오래지 않아, 사실상 아버지 역할하던 형까지 잃고 난 후 자기 혼자 어떻게 세력을 굴려야할지 가늠을 못 잡던 손권에게는 실로 파격적이였으며, 심지어 훗날 천하의 남쪽을 평정 후 천자의 자리까지 나가시라는 노숙의 우쭈쭈가 가미되어 손권은 기분이 째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손권의 평생 겐세이맨이였던 "장소"는 노숙이 아직 손권을 곁에서 바로 보필하기엔 젊어서 경험도 적고 태도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노숙의 임용을 반대했는데 그럼 그렇지, 손권은 장소의 말을 그냥 씹고 노숙을 중용했다. 보통 한 세력의 우두머리를 섬기기 전에는 그 휘하의 실세들과도 접견하는 시간을 갖는데, 손권의 당시 오른팔인 주유와 왼팔인 장소를 조우하던 자리에서 주유와는 그닥 코드가 안맞던 장소였던지라 주유가 왠 젊은 놈 하나 데려와서 주군 측근에 바로 꽂을라치니 장소가 노숙에게 시비를 좀 걸었나본데, 노숙 역시 손권 다음 No.2인 주유가 하도 설득을 해서 온건데, 왠 꼰대가 태클을 거니 그닥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던 모양...ㅋㅋ 이때부터 장소와 노숙은 서로를 태클거는 상호태클지간으로 둘의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노숙이 오에서 펼친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친유비정책". 당시만 해도 유비는 자체 세력은 별 볼일 없이 유표에게 의지하다 유표가 죽고, 유표의 뒤를 이은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선언하여 형주의 반조조파였던 유표의 장남 유기와 결탁한 상태였는데.... 노숙은 비록 유비세력이 당장은 부실하지만 그 강대한 원소도 조조에게 작살나고 중원의 큰 세력이던 형주의 유씨집안도 조조에게 꿇은 상황에서, 천자를 등에 엎고 승상이라는 위엄을 지녔던 조조를 도리여 역적으로 몰며 대항하는 유일한 세력이며, 당시 천자인 헌제가 직접 족보를 뒤적여 한실의 종친임을 인정 및 좌장군이라는 결코 낮지 않는 공식직함도 파준 "명분"에 주목했다. 그런 유비와 손을 잡으면 유비가 가진 포텐과 명분을 빌려 조조와도 맞서고, 조조와 맞서는 것은 후한조정과의 맞다이를 의미하여 사실상 역적이 되지만, 유비가 지닌 명분 덕에 오히려 역적을 도모하는 정의파로 이미지 세탁이 되기 때문. 사실 유비의 이 메리트는 상당해서, 비록 한실종친이라고는 해도 서민출신에 세력도 별 거 없던 유비가 공손찬, 원소, 유표, 조조 등의 당시 내로라하던 강자들의 환영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저 중 공손찬은 그런 유비가 지닌 명분보다 유비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유비를 서포트 해주긴 했지만 당시같은 난세에 인격이 꽝이던 공손찬이 단지 그저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비를 도왔을리는 없었기에... 당시 오 내부에서 이런 유비의 전략적 가치를 그리 크게 평가하는 이는 사실상 전무했다. 어쨌건 유비의 군세 자체는 당장 오에 있어 큰 전술적 가치가 없을만큼 대단치 못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건 유비의 군사력만을 놓고 보는 한정적인 '전술적' 시야에서 그런 것이고, 그 외나 그 이후의 여러모로 넓고 멀리 바라보는 "전략적" 시야에서는 유비가 지닌 가치와 그 활용도가 대단했는데, 오에서는 이런 유비의 전략적인 요소를 뚫어보는 정치적 대국안을 지닌 이가 없었다는 뜻. 노숙은 손권에게 자신과 손권이 봐야 하고 가야 하는 길은 당장의 강동수성이 아닌, 장강 이남의 세력을 규합하여 강북을 평정한 조조와 대치하며 나아가 제위에 오르는 길임을 인지시켰고 그 시작점에서 시작하는 사업이 바로 친유비정책이였던 것. 노숙은 진정으로 손권을 위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자였고 유비에 대한 부분도 오로지 자기 주인에게 도움이 되는가 여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지, 전혀 절대 유비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이였고.. 이는 내 예전회사의 김이사에게 사람들이 들러붙어 온갖 설탕발림을 쳐바르는 이유가 회식 때마다 누구도 말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와서 술빨, 안주빨 다 극대화 시키고 노래방 가자고 진상 부려서 다음날 출근할 사람들 새벽 4시까지 집 못가게 해놓고는 이사씩이나 쳐되는게 법카로 1원 아니, 1전 한 번 긁는거 없이 시발새끼 담배도 심지어 애들꺼 달래서 피우는 그 새끼를 사랑해서가 아닌, 그 새끼가 인사고과 평점을 메기는 나쁜놈의 새끼라 어쩔 수 없음과 같다. 노숙이 이러한 친유비정책을 진행하며 가장 주안점으로 삼은 것은 손권세력과 유비세력을 서로 상호의존관계로 만들어 이와 잇몸이 되게끔 유비의 세력을 어느 정도 성장시키는 것이였는데, 이러한 투자를 위해 노숙은 철저하고 꼼꼼히 유비를 패트롤 하기 시작 했으며, 유표의 사망 당시 조문을 구실로 유비를 첫 대면한 것을 시작으로 심지어 유비가 조조에게 작살나서 허겁지겁 쫓기는 상황의 장판파까지 가서 유비를 살피며 손권과의 동맹을 제시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이런 노숙의 모든 선견지명과 노력이 다 짤리고 그냥 제갈량이 손권 단물 빼먹으려 뭣도 없는 주제에 허세로 혼자 유-손 동맹을 결성시키는 듯 나오지만 사실은 이렇듯 노숙의 선노력에, 이를 합당하다 여긴 양측의 초천재인 제갈량과 주유의 납득. 그리고 이 재사 셋이 논리를 모아 손권을 설득한 결과. 결국 이 동맹의 시너지는 둘을 합친 것보다도 최소 5배 가까이 더 많고 경험많은 대군단을 거느린 조조군세를 불싸르게 되며 사실상 조조는 이날 이후로 장강 이남을 포기하고 유종의 항복으로 얻은 형주의 장강 이남도 잃게 된다. 이후 적벽대승의 지분으로 유비는 형주의 장사, 영릉, 무릉, 계양 및 남군의 공안까지 다스리는데 손권의 허가를 얻어내는데 여기서도 손권을 강하게 설득한 것이 노숙. 삼국지연의 속 노숙은 제갈량에게 놀아나고, 주유에겐 갈굼 당하며, 손권의 눈치를 보는 뭔가 강동의 빵셔틀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열라 기 쎈 주유, 손권에게 당장은 좀 손해여도 훗날을 위한 투자임을 인지시켜 유비에 대한 지원을 설득하고 또 이런 유비에 대한 서포트를 발판으로 손권을 황제로 만들려는 거국적 스케일의 정치가였던 것. 주유 사후, 주유의 간언 및 손권의 의지로 노숙은 오의 군권전체를 통솔하며 실질적인 오의 서열 2위가 되고 이 때 각 군영들을 시찰하며, 평소 글도 모르는 잡나부랭이 취급하며 무시하던 "여몽"이 니미 도리여 자기도 못 보는 부분까지 캐치해가며 자기를 가르치려들자, 그 유명한 오하아몽 & 괄목상대 사자성어가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여몽편에서 다루기로.... 하여간 이때껏, 스스로 문무겸전이여서 장소처럼 매가리도 없는게 쥐뿔 글 좀 읽었다고 앵기는 것들, 이전 여몽처럼 무슨 대가리도 근육일 것 같은 힘만 쎈 무식종자들을 모두 무시하던 노숙이였으나 이 일을 계기로 여몽과 급친해진다. 이 와중에..... 노숙의 작품이던 유-손동맹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하니 이는 바로 "유비의 익주정벌"... 일전에 주유와 감녕의 주도로 유장은 좆밥이고 형주도 비록 유비에게 임대주긴 했어도 실상 우리땅이니 이제 천하이분지계의 마지막 퍼즐은 익주를 먹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당시 손권은 익주와 맞닿은 형주의 유비에게 이를 이야기하자 당시 유비는 유장이 자신과 종친이고... 그 땅은 오에서 멀며.. 험한 산악지대에... 들어가는 길목도 좁아 대군과 물자의 수송이 어렵고... 예로부터 장거리원정이 성공한 예가 드물고... 니들 거기 갔을 때 조조의 빈집털이는 어쩔 것이며.... 등등등등등등의 이유로 손권의 익주행을 반대했는데 당근 이는 제갈량과 유비 역시 자신들의 천하삼분지계의 마지막 퍼즐을 익주로 정해서였다. 아무튼 그때는 유비의 반대도 있고 하필 주동자인 주유도 죽어서 흐지부지 되었건만 그때 그렇게 거품물고 반대하던 그 유비가 익주를 따먹었다니까 손권은 빡칠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렇듯 유비는 익주를 먹으면서 자기의 본진인 형주는 관우를 남겨 수비케 한다. 이 때부터 관우는 명줄을 재촉하는 한편, 본인 스스로의 정치역량이 얼마나 후달리며... 또 본인 스스로 한 방면의 주둔 수비사령관으로서 얼마나 부족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당시의 관우가 어땠는지는 훗날 관우편에서 자세히 언급하기로...ㅎ 아무튼 당시 형주와 오의 접경지역에서는 빈번한 충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때마다 노숙은 자기선에서 우호적으로 재량껏 처신했지만 그 도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참다 못해 관우에게 독대를 요청하고 관우도 이에 응해, 둘의 접견이 성사된다. 연의에서는 관우의 호기와 노숙의 호구의 대비로 표현하나, 실상은 절대 달랐...아니, 틀리다. 이 당시 관우와 노숙은 서로의 경호병력은 물리치고 단둘이 오로지 칼 한 자루씩만 차고서 만나 논쟁을 펼치는데, 물론 당시 장비와 함께 "만인지적" 칭호의 유이한 그레이트 관우는 맨몸이라한들 노숙이 칼 아닌 총을 차고 나갔어도 그런 노숙의 허리를 뒤로 접을만큼의 위력을 지닌 사나이긴 했으나 노숙 또한 풍체가 작지 않고 힘과 패기가 없는 이가 아니였기에 전혀 쪼는 기색없이 관우를 만나 언성을 높이며 따박따박 할 말을 한다. 숙 : 니네형 익주 먹었으니 형주 돌려줘. 우 : 뭔소리냐... 숙 : 땅없어서 가여워 빌려준거잖아. 돌려줘. 우 : 우리형이 가엽다니!!! 숙 : 조조한테 작살나 쫓겨온거 우리가 땅 빌려준거임. 그런데 익주도 생겼으니 꽁으로 빌리던 형주 줘. 우 : 우리 없었으면 니들도 못 먹을 땅이였어. 숙 : 하아.. 주유가 거의 다 차린거, 밥숟갈만 얹었잖아. 그럼 저번에 익주는 형제의 땅이라 우리보고 치면 안된다더니 남인 우린 못 하게 하고 형제라는 너희 형은 왜 그랬음? 그리고 형주 다 내놓을 거 없이 계약상 우리에게 빌린 지역만 달라는데 뭐 문제 있음?? 우 : 천하는 덕 있는 자의 땅이거든!!?! 숙 : 오호라? 그럼 지금 제일 넓은 땅 가진 조조는 니미, 니네형과 우리 마스터보다 덕이 더 많아 땅부자 되신거임? 그럼 그 전 너희형은 덕이 부족해서 땅이 없었다 갑자기 덕폭탄 맞음? 아니 그리고 관우 니는 세상에 땅크기로 사람덕을 측정하는 덕투력측정기였음!??! 와.. 세상이 관우를 의사랬는데 이거 뭐 그냥 복덕방 아저씨였네.. 대실망 우 :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숙 : 그게 아니면?? 우 : 날씨가 좋군! 숙 : 뭐래는거야 이 수염쟁이가... 땅내놔! 우 : 씨팔 형한테 말해!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결국.... 오는 익주의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강력 컴플레인을 걸고 유비측은 자신들이 실효지배 하고 있으나 영유권을 주장하는 오에 장사, 강하, 계양 세 군을 되돌려 주게 된다. 사실, 유비측 입장에서도 노숙의 저 논리에 마냥 데꿀멍되버릴만큼 명분 없는게 전혀 절대 아니였으나 늘 춘추를 지니고 다니신다는 관운장께서는 그저 폼으로 춘추좌씨전을 갖고 다니신건지, 매번 첫 페이지만 읽다 잠드셨는지는 모르나... 노숙의 어거지에 제대로된 대꾸 몇 마디 못 해보고 리타이어 되버리는게 바로 정사! 아무튼 다 떠나서 이번은 노숙편이니만큼 노숙이 주인공이니, 노숙입장에서 보자면 그 무력깡패인 관우와 독대하고도 일절 위축없이 자기주장을 내세워 관우를 그로기상태로 몰아간 그의 패기와 용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부잣집 금수저에 어려서부터 베풂을 좋아했다고는 하나,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는 검소했고 스스로에게 있어서 상당히 엄격했던 사람이였다. 다만, 남에게도 엄격했던거 같다... 기록을 보면 거의 활자중독에 가까운 사람이였는지, 시국이 안좋고 격무에 시달릴 때조차 책을 읽었다. 주량이 약한건 아니였던듯 보이나 필요해서가 아니면 좀처럼 입에 대지는 않았던거 같다. 본인이 인정할만하다 싶으면 스스로를 낮추며 공경하는 자세로 대했으나 그렇지 않다면 단호박이였다. 그리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나 당장 그러한 이미지들의 결실인 첨부던 일러스트들만 보더라도 그냥 문관필이지만, 일반 행정관련 내정을 본 적이 없는 군무만 봐왔던 인물로, 전장에도 수 차례 출전하며 야전경험도 적잖았던 사람이였다. 주유 사후에 대도독을 맡으며 오의 No.2였으나... 안타깝게도 장수하진 못 했다. 사망원인으로는 과로에 의한 급성사와 위암설이 있으나 둘 다 유력하진 않다. 언변이 워낙 좋았다고 하는데, 말을 길고 화려하게 하진 않았지만 할 말만 조리있게 딱딱 짚어 하는 스타일이였다. 오와 손권의 미래전략에 있어 오의 마지막 진보주의자였다. 주유와 노숙만이 진정한 오의 팽창주의자였기에 오의 물리적 확장을 추구하며 그와 관련된 전략들을 제시하며 준비했었으나 그 후의 여몽과 육손 등은 물론 훌륭한 인재들이긴 했어도 오세력의 유지와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을뿐 사실상 오의 대외진출에는 소극적이였다. 물론, 훗날 제갈각이 있긴 하나 주유 & 노숙과는 조금 다른 사례이기도 하고... 사실상 노숙의 사망과 함께 오는 천하이분지계나 노숙이 주장하던 개념의 천하패권은 물건너 간 셈이다. 물론, 천하이분은 아니여도 삼분은 했다지만 이는 위와 촉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오의 의지와는 별개로 형성된 것에, 손권이 제위에 오른 부분 역시 천하의 패권을 쥐고 기성국가의 권한을 이양받으며 제위에 오른 조비나 그 기성국가의 명맥을 이어 부흥을 꾀하고 기성국가를 패망시킨 국가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제위에 오른 유비의 그것에 비해... 딱히 세가 커진 것도, 명분도 없는 그냥 날치가 뛰니 짱뚱어도 뛰는 식의 미투제위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한 친유비정책은 단기적으로야 오에 손실 또는 이익의 저하를 가져오긴 했으나 바로 그 전략덕에 오는 물론 유비세력 역시 초반의 그 엄청난 기세로 남하하는 조조에 맞서 이길 수 있었던 것. 노숙 사후와 맞물려, 유손동맹이 와해되고 관우의 사망이 겹치며 이는 또 이릉대전으로 옮아가는 와중에.... 훗날 제갈량의 고군분투로 촉오동맹이 재건되기까지 안그래도 둘이 합쳐 위에 못 미치는 촉과 오는 서로간의 싸움으로 적잖은 국력을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노숙은 어느 조직에나 있진 않지만, 어느 조직에나 필요한 "미래와 성장"을 내다보는 진취적인 인물이였다. 열 명, 백 명의 현상유지자들보다 이런 한 두 명의 진보주의자들이 있을 때 그 조직은 나중을 준비하고 또 그 나중을 준비하고자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되며 투자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물론, 미래에 대한 투자의 불확실성은 어쩔 수 없는 리스크지만 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뛰어난 컨설턴트가 필요한데, 오와 손가에게 있어 바로 그 마지막 컨설턴트였던 노숙이였다.
허저 중강 (許褚 仲康) A.D.? ~ ?
사람 보는 안목도 훌륭했고 용인술도 뛰어났으며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재기용 방식을 추구한 실리주의자 "조조"의 휘하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시대 당시 가장 많고 두터운 인재풀을 자랑한 삼국시대의 레알 마드리드 라고 할 수 있었고 응당 그런 조조 아래에는 뛰어난 무장들도 참 많았다. 여러모로 뛰어나거나 조조와 코드가 맞아 신임을 얻은 장수들도 여럿 있었지만, 사료를 살피고 그 모든 것들을 토대로 볼 때 조조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장 많이 받았다 느껴지는 장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진짜 "스트롱맨"인 이 인물로 간다. 오늘 날, 중국 안후이성 보저우시 출신인 허저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며 당시 온갖 히어로들.. 그중에도 특히 범인을 훌쩍 초월하는 피지컬과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차이니즈 슈퍼히어로들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진짜 '스트롱맨'이였음이 기록에 나온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는 허저 관련 에피소드들 중 허저가 조조 휘하로 임관 전... 고향에 살 당시 1만 여명 이상의 대규모 도적떼가 허저의 고향에 침공했고 대치에 지친 양측이 휴전을 합의하며 도적들의 곡식과 허저측의 소를 물물교환 하는 와중, 소가 놀라 달아나자 그 소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고 백여 걸음을 끌고 갔다는 이 말같잖고 믿기지 않는 스토리가 엄연하게도 위서의 허저전에 실려있다.... 당시 후한말에 일반적으로 사육하던 소의 품종, 암수(♂♀)여부, 소의 연령, 소의 영양상태 등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품종여부 떠나 소라는 동물 자체가 원체 크고 암수의 무게차도 상당하지만 암컷인들 일반인에게 끌어 당겨질 무게는 아니며 어린 송아지 또한 지금 이 글 쓰는 나, 읽는 댁들이 힘으로 해볼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고 당시 허저측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사람도 제대로 못 먹어 오죽하면 도적떼에게 고기를 주고 곡식을 받아오려는 시도까지 한 점등 비추면 소인들 제대로 먹어 평소의 몸상태는 아니였겠으나 그렇다한들 소는 소인지라 어쨌건 사람이 일신의 용력만으로 한 손끌이를 할 생물이 절대 결코 아님은 명백하다. 게다가 소의 꼬리를 잡아끌었다는건 소 또한 순순히 끌려가지 않고 그러지 않으려 끌려가는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용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전 중국 및 전인류사에서 최강의 파워맨이라 일컬어지는 항우가 이런 허저보다 힘 좋았을까 싶을만큼 여간 대단한 힘이 아니다. 위서에 의하면 신장도 "여덟 자 남짓" 이라 하는데, 당시 후한 말 기준의 여덟 자가 현대 기준의 거의 190cm에 가깝고 '남짓'이라는 표현은 여덟 자를 좀 넘는다는 뜻. 게다가 후한 말 관련 모든 역사서들 중 유일하게 허저는 허리둘레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시 단위로 "10위"나 되는 허리둘레를 지녔다고 나오며 이 역시 현대기준 무려 115cm(45inch가 넘는다!!)라는... 당장 이 수치는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닌 내 가슴둘레를 넘어선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인간계 끝자락급의 파워를 볼 때 엄청난 근육질이였을 것으로 보이며 저런 피지컬까지 지닌 것으로 보아, 대략 상상해보면 '브록 레스너'나 '밥 샙' 정도 되는 체구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런 거구들은 지금도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만큼 눈에 띄는 엄청난 거한들인데,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6cm 가량 정도였을 후한 말의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단순 거인을 넘어서, 방금 화장실 다녀왔더라도 마주하면 소변을 지릴 괴물이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신체조건 + 신체능력을 지닌 초인 허저는 조조가 허저의 고향 일대를 점령하자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이끌고 조조휘하로 가는데, 당시의 조조 또한 허저의 체구를 보고 심히 놀랐다는 기록이 있고 이 당시 "실로 나의 번쾌가 될만하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조조는 허저와 그가 이끌고 온 장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근위대 즉, 최측 호위대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당시같은 난세에 당시 조조가 듣보잡이 아니였음에도 그런 새로 갓 합류한 이들에게 자신의 신변경호를 맡긴 것을 보면 허저를 굉장히 좋게 보고 신뢰했던 모양인데, 이때부터 조조는 허저에게 반한 듯 싶고 조조의 알음알음 허저 챙기기가 시작되었던거 같다.ㅎㅎ 허저는 생김이나 체구,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 등을 갖추고도 전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샤이가이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해서 조조가 장수들을 집결하면 가장 구석이나 뒷편에 숨겨지지도 않는 체구를 한껏 움츠려 섰다고 한다. 조조는 장수들이 군공을 세우면 많은 이들 앞에서 당사자를 불러내 크게 칭찬하는 방법으로 당사자를 띄워주고 다른이들도 분발을 유도했는데, 부끄럼쟁이 허저는 간혹 공을 세우고도 이런 수 많은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 주목을 받고 추켜지는 것에 상당히 큰 부담을 갖고 있었고... 조조가 그를 앞으로 호명해도 못 들은체 딴청을 부리고 밍기적대다 거듭 그를 불러도 쌩까는 허저를 조조가 호통을 쳐 부른 후에야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저런 사람이다보니 말도 거의 없었던 듯. 그러나 할 말은 하는 편이였던거 같고 하루는 형주방면 총사령관이던 조인이 급한 보고를 위해 허창으로 갔는데 당시 조조가 바쁜 정무 중이였고 조인은 맡은 중책이 중책인지라 조조를 기다릴 겨를은 없어 허저에게라도 메모를 전달하려 허저를 불렀다. 허저는 조조의 인척이자 최측근이고 방면군 사령관인 조인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어 조인에게 갔는데.. 조인 : 아, 허중강! 나 지금 쫌 급한데 말 좀 전해줘! 허저 : 기다리시면 전하 곧 나오십니다.. 이러고는 조인의 대꾸도 듣지 않고 바로 휭~ 조조에게 돌아갔고 이날 이후 조인은 허저를 벼르기 시작한다. 조인은 다시 정욱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했고 정욱이 듣고 놀라 허저에게 가서 물었다. 정욱 : 중강! 사회생활 참 못하네.. 조장군 성격 몰라? 전하의 친척에 측근에 개국공신인데 왜 그러셨대? 허저 : 암만 그래봐야 저 사람은 방면 맡는 바깥사람이고 난 전하의 신변경호를 맡았는데 내가 왜 전하의 허락없이 외부인을 만납니까... 이 에피소드가 조조의 귀에 들어가자 안그래도 이쁨받던 허저는 더욱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허저와 조조는 아무래도 주군과 호위관이다보니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허저는 종종 옷매무새가 허술하거나 한 경우 조조가 이를 먼저 보면 직접 옷매를 다시 챙겨주기도 했고, 조조가 식사시에 조조곁에 서서 조조의 식사를 지켜보는 허저에게 같이 식사를 권해서 허저가 응하면 함께 먹기도 했다. 허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찬이 있으면 응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허저가 체격이 체격인지라 허저가 타는 말은 금새 지쳐 여러 마리를 번갈며 탔는데, 허저가 탈 말은 조조가 직접 선별해 골라줬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바꿔타기도 했는데, 주군이 신하와 말을 바꿔 타는 것은 당시 "말"이라는 동물의 군사적, 물질적 가치를 고려하면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였다. 게다가 당시의 조조가 타는 말이 예삿말들도 아니였고.. 이는 마치 내가 새로 간 회사 사장님이 외근 나가며 업무용 레이를 타는 내게 자신의 아우디 Q7을 타고 가라며 바꿔 주는 것이나 진배 없는 것이다. 조조의 경호실장이면 거의 대부분 조조의 가장 근처에 있다보니 전장에 나가 지휘를 맡은 적이 드물지만 없진 않다. 양에서의 장수와 전투 당시 돌격대를 맡아 돌진하여 적의 기세를 꺾었던 적도 있고, 관도대전과 원소 사후, 원소의 잔당들을 정벌하는 중 업군 포위전 당시에도 소수나마 병력을 이끌고 나선 적 있다. 하지만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조조가 그를 호위관으로만 거의 중용하고 전장에 내보낸 횟수가 다섯 손에 꼽히는 걸 보면 통솔능력은 별 볼일 없었던 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종종 허저의 일기토 내용들이 나오던데 올뻥이다. 허저는 누군가와 1vs1로 전투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전위와 조조의 경호패키지로 묶음처리 되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둘은 연의에서처럼 서로 맞붙은 적도 없고 심지어 둘이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다. 왜냐 하면 실제 역사에서는 전위가 이미 사망한 후에 허저가 조조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 및 이를 토대로 캐릭터들의 능력치를 데이터화시킨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 내의 허저 어빌리티만 보면, 왠지 자기 이름이나 쓸 수 있을지.. 1부터 10까지 숫자는 셀 수나 있을런지 싶을 힘 쎈 바보로 그려지지만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조조에게 임관 전에도 고향에서 도적떼를 상대로, 또 조조에게 임관 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적잖은 무리들이 있었던 점 등으로 봐서 아주 근본도 없는 사람이 아니였고 정사나 위서, 그의 열전 등 어딜 봐도 '허저는 빠가였다'는 식의 언급은 진짜 1도 없다. 다만... 워낙 별 말이 없고, 게다가 이게 좀 치명적인데 허저는 평상시에 입을 약간 벌린 눈도 촛점없는 멍한 어딜 보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 표정 탓에 그의 별명은 "호치(虎癡)"가 된 것.. 저 허저의 유명한 닉네임 호치의 호는 범 호, 다시 말해 전장이나 임무수행 및 조조곁을 지킬 때의 그의 호랑이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뜻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뒤에 붙은 저 '어리석을 치(癡)' 인데... 저 치가 바로 허저의 그런 평상시 표정 탓에 붙은 것이였다. 그치만 허저입장에서 이것도 좀 억울한게, 조조곁에 있거나 전장이거나 뭐 그러면 모르지만 진짜 아무일없는 평상시에 조조가 내전에서 업무 보거나 천자를 알현, 또는 자거나 등등 그럴 때의 허저는 혼자 긴 시간을 문앞에 서 있어야 하는데 이 당시에 무슨 스마트폰이 있어서 허저가 유튜브나 빙글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쨌건 근무시간인데 이어폰끼고 음악 들을 것도 아니고, 진짜 할 수 있는거 없이 서 있는데 누군들 표정이 저리 멍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영국 왕실근위병들처럼 뭐 교대를 하는 것도 아니였을 것이고.... 당연히 허저는 본인의 저 별명을 싫어했고 위나라 내부에도 감히 허저앞에서 저 별명을 입에 담을 수 있을 힘과 용기를 지닌 자도 없었지만 어쨌건 허저가 기피하던 저 닉네임은 훗날... 동관에서 마초, 한수와 마주할 때 마초가 바로 달려가 조조를 개 때려잡듯 하려다 조조가 데려간 허저의 비쥬얼을 보고 짐짓 쫄은 마초가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말해준 후부터 "호후(虎侯)"로 격상된다. 삼국지연의에서 업을 함락 후, 깐죽대는 허유를 빡친 허저가 죽이는 씬이 나오지만 허구다. 저런 일 자체가 없었고, 허저의 성격상 단지 저렇게 깝친다고 하여 아무나 썽큼썽큼 죽이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일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용맹무쌍했지만 평상시도 거칠고 격한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평소에는 온순하니 풀 뜯지만 맹수가 다가오면 날뛰는 아프리카 물소같은 타입이였던듯 싶다. 조조가 죽자 탈진하여 쓰러질만큼 울부짖었으며 어찌나 심신이 상할만큼 슬퍼했는지 각혈까지 했다고 한다... 조비 또한 허저를 근위로 삼았는데, 조조가 허저를 자신의 최측에서 경호하는 소수의 경호대를 이끄는 경호실장역을 시켰다면, 조비는 황실전체를 경호하는 황실근위대를 이끄는 근위대장같은 직책을 맡겼다. 허저는 생몰연대가 명확히 사료에 나와있진 않지만 조조의 죽음에 이어 그 아들 조비의 죽음도 봤다. 물론, 조비가 그리 오래 못산 탓도 있으나 아무튼 주군부자의 죽음을 모두 겪고 조조의 손자인 조예대에 사망한다. 여러 정황들 볼 때, 조예재위기에는 사실상 은퇴상태로서 원로예우를 받았던거 같고, 조예 재위 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사망한 듯. 사인에 대한 별 다른 언급도 없고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사망당시의 허저나이가 상당한 고령이였음으로 추정되기에 그냥 노환에 의한 병사였을 듯 싶다. 사실... 주군의 최측근 경호는 그리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럼에도 허저를 아끼던 조조는 그런 허저가 혹여라도 기가 죽을까, 늘 그가 있음에 자신이 마음 편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큰 공이라며 그를 치켰고. 가끔은 허저를 전장에도 내보냈다. 허저가 근위대장임에도 몇 차례 전투에 나섰고 비록 몇 차례 안된다고는 해도 어쨌건 모두 승리했는데 추측해 보건데 이는 조조가 허저를 장수로서의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별 다른 지휘통솔능력이 없어 대병을 이끌기는 무리인 그가 소수병력을 이끌고나마 충분히 승리할 법한 전투에 가려 보내 허저로 하여금 주워 먹게끔 했던 배려로 보여진다. 허저 또한 박식똘똘이까진 아니여도 자신을 아끼는 그런 조조의 마음씀씀이를 캐치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고 조조를 깊게 공경해 따랐으며 심지어 조조가 그에게 휴식을 명해도 허저는 이를 따르지 않고 거의 자는 시간을 제하면 조조의 지근거리에서 머물렀다.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통틀어도 손 꼽힐만한 막강한 피지컬과 그에 따른 용맹과 괴력을 겸한 그가 전장을 휘젓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다. 하루종일 자신의 엄청난 신체를 서 있는데 써야함이 실로 괴로웠거나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책임감과 충성으로 묵묵히 해냈다. 비록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부여받더라도 이를 최선 다해 충실히 해내는 프로패셔널. 그렇기에 조조는 늘 자신 곁에 시립해 서 있는 그를 대함에 있어, 외지의 수만 병력을 이끌고 요충지를 지키는 사령관, 전장에서 대규모 전투를 승리한 개선장군들에 못지 않게 대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허저 본인도 그런 자신의 성품 덕에 그 험한 난세에서 난전이나 내부적 정치싸움에 휘말림없이 내내 인정받다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고 사전투표 안하신 분들은 돌아오는 화요일에 꼭! 잊지 마시고 투표 하시길 바랍니다ㅎ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대의명분에 입각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후보분께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세요! 사려깊은 문후보님, 구여우신 홍후보님, 총명하신 안후보님, 기개있는 유후보님, 혁신적인 심후보님 모두 화이팅 하시길. 그리고 누가 대권 잡건 부디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참지도자 되길 기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ㅎ 무슨업적도 필요없이, 앞 둘이 워낙 10년 깽판이라 평타만 쳐도 성군소리 들을 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