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oomter
2 years ago10,000+ Views
학교에대해 무척 비판적인 책.
동시에 나를 교육의 길로 빠져들게 한 책.
내인생의 전환점.
그중 인상깊었던것만 뽑아쓴거를 다시 타이핑.
학교가 진실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학생들이 부당하게 대우받고, 머리가 텅텅비며, 인품이 왜곡되고, 사물을 편협하게 보도록 길러져도 학교는 큰일나지 않는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좋은 지식과 인성을 길러주지 못해도, 학생들이 우정을 기르지 못해도 학교는 큰일나지 않는다. 학교가 큰일나는 것은 오직 '시험'을 정기적으로 무사히 치러내지 못했거나 교실에서 학생들이 '통제'되지 않을 때 뿐이다.
학교에서 국어를 배우게 되어 학생들은 진짜 책과 멀어지게 되고 책읽기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게된다. 자기생각을 믿지 못하게 되고 자기를 표현하는 말 한마디, 글 한줄도 제대로 쓸 줄 모르게된다.
흔히 '학교시험이 없으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나?'하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부가 아니다. 게다가 그런 정신노동은 오히려 지적 토양에 해를 끼친다. 정신이 똑바른 학생들이라면 그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공부를 왜 하나?'
(필기공책) 학교시험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쓰레기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공책을 다 버리는 것이다. 만약 세계사 공책에 세계사의 흐름을 정말 잘 정리해놓았다면 두고두고 보게 될 것이 아닌가?
학교는 사실 학생들이 시험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도록 통제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나뉘어지게 되어있다. 그러면 학교는 그렇게 서열이 매겨진 상태를 시험으로 측정해서 등급을 매기는 일만 하면 된다.
지금같은 학교사회에서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은 오히려 통제자에게 더 밀착된 시야를 안겨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떠드는 친구의 이름을 적게해 제일 많이 지적된 분단이 청소하거나
벌서는 사람이 다른 떠드는 사람 불러내고 들어간다든지
이렇게 연대책임.
학생들의 사회성을 기르는게 아니라 교사들의 '통제의 편의'이다.
입장을 바꿔 그렇다면 왜 만약 촌지받는 교사가 있다고 해서 모든 교사들에게 징계처분을 내리고 촌지받는 교사가 자수하고 나올때까지 모든 교사가 의자를 들고 있거나, 엎드려뻐쳐 기어가기를 시키지 않는가?
그런데도 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다고 사회성이 길러지는게 아니다.
전봇대에 오줌눴다고 그 동네 사람들을 다 벌줘야 하나?
만약 교사가 분단별로 평균 성적을 매겨 연대책임을 지우면 같이 벌을 서게 되는 분단 학생들은 증오의 화살을 그런 비교육적인 경쟁을 조장한 교사가 아니라 그 분단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쏘아대기 십상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권력자가 힘없는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배우게 되고 학교가 심어준 폭력성을 해소하기 위한 탈출구를 찾게된다. 폭력을 심어준 것은 학교이고 그 폭력을 당하는 사람은 학생들 가운데 약한 사람. 그런데 일이 터지면 학교는 어떻게 하는가?
잘못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 모두 가해자에게 떠넘기고 교내의 폭력을 교외로 옮겨놓는 일만 허겁지겁 할 뿐이다.
학교는 좋은곳이고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는 심리상담을 해서라도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문제의 원인을 완전히 헛짚고 있는 것이다. 병든것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이며 학교 밖이 아니라 학교 안이다.
학생들은 집에 가서도 자기편을 만날 수가 없다. 어딜 가도 잔소리와 꾸중과 매질과 '공부, 공부' 소리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교편이 되었다. 그들은 학교화된 신화. 곧 '학교를 통한 계층상승'을 굳게 믿고 있다. 학교는 실제로는 계층상승을 '제한'하고 있다.
계층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선전하는 학교의 인권탄압,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성적을 이유로 한 체벌, 살인적인 숙제 따위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만, 학교가 정하는 성적 산출방법이 자기 자녀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드물게 학교가 자녀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육체적으로도 괴롭힌다는 것을 알고 고민을 하는 부모도 쉽사리 학교 저항하지 못한다. (생략) 이것은 개인적으로 부모가 학교에 반대하는 생각을 품고 있어도 그것을 드러내어 표시할 수 있는 집단적인 방법이 없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구조적으로 부모는 학교의 행동에 따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학교와 결탁한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다. 이제 학부모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억압을 학교 밖에서 대행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비 인간적인 관계가 부모와 자식관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수학을 특별히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에게 수학을 책임지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학교는 '수학을 배우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려고 (실제로는 처벌하려고) 많은 '통제'비용을 쓸 것이다. 학교를 통해서 분배된 교육자금은 어디론가 흘러나가 버리고 정작 그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교사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그리고 되도록 쉽게 그 성과를 거두기 위해, 주입식 전달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모두 억누른다. 곧 정해진 교과과정을 벗어난 질문이나 학생들의 뜻밖의 반응, 종합적인 체계화, 지식의 상대성과 변화 가능성에 대한 고찰, 학생들이 그 내용을 심도 깊게 이해하기 위한 설명이나 토론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렇게 학교를 통해 '거세된' 정보다발만 지식으로 아는 학생들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독선적이고 닫힌 여론집단이 되어 올바른 사회변혁에 열린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제도화된 과학교육은 마치 어떻게든 사람들이 과학에 싫증을 느끼도록 만들어서 과학지식을 소수만이 독점하고 다양한 과학연구를 억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듯이 보인다.
등급은 객관적인 능력지표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습동기도 되지 못한다. 학생들은 등급과 직접 관계있는 것이 아니면 공부하지 않게된다. 그리고 등급이 매겨지는 시험의 출제방식과 다른 식으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법과 대학 학생들은 기존의 법학설을 암기하는 식으로만 법학을 공부하고 새로운 학설의 창안이나 기존학설의 비판, 입법 정책상의 문제 해결 영역으로 사고를 넓히지 못한다. 등급을 위한 시험은 교과서에 쓰여진 방식대로만 생각하고 암기하게 하여 여러 학문 분야의 종합, 새로운 사고와 창안을 억누른다.
제도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원래부터 제도학교의 억압을 견뎌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을뿐, 제도학교가 그들은 '견뎌낼수 있는 사람'으로 키운것은 아니다. 학교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을 파멸시키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한 비 인간적인 환경 속에서도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이 오늘날 학교가 암묵적ㅇ로 지시하고 있는 바이다. 오늘날 이 사회가 이정도라도 진보하고 있는 것은 학생들의 정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학교의 통제전략이 완벽하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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