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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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덕후 타입은??

전 3번 인것 같아요~ 근데 어쩌다가 되게 강력한 저격물보면 보는 내내 6번 ㅋㅋㅋ 여러분은 몇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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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다리꼴?ㅋㅋ
1번~~
그룹에 따라다름..2번이나6번..
나만 6인가...
역시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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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크리드>를 기대하게 하는 4가지 꿀잼 포인트
영화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개봉 전 영화를 미리 감상할 기회가 자주 생긴다. 이렇게 미리 만나보는 영화들 중에는 '대작 스멜'이 물씬물씬 풍기는 영화들이 있다. 올 1월에 개봉하는 영화 <어쌔신 크리드>도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볼만한 영화 찾는 여러분들을 위해 스포 없는 꿀잼포인트들 미리미리 따다닥 짚어드릴테니, 덕력충만한 프리뷰 잘 참고하시라. <어쌔씬 크리드> 꿀잼 포인트 하나 - 선과 악을 오가는 입체적 소재 착해빠진 주인공 vs 이유 없이 나쁜 악당의 무매력 플롯에 질렸는가? 신박한 스토리 탑재한 <어쌔신 크리드>가 하품나오는 1차원 시나리오에 질린 당신을 구해줄 것이다. <어쌔신 크리드>에서는 두 집단이 대립한다. [암살단 vs 템플 기사단] 먼저 이름부터 흥미진진 팝콘각 나오는 두 집단에 대해 알아보자. [암살단] 인간의 '생각할 권리'마저 통제하려는 세상. 생각하고 저항하고 행동할 권리인 인간의 자유 의지를 수호하기 위해 등장한 수호자들이 바로, 주인공이 속해있는 암살단이다. "우린 어둠 속에서 빛을 섬긴다" 다크간지 폭발하는 암살단의 신조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수호하기 위해 어둠속에서 활약하는 암살단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템플 기사단] 암살단과 대적하는 집단인 템플 기사단. 템플 기사단의 목표는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이다. ("주인공의 적인데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가 목표라고?" ㅇㅇ 그렇다. 좋은놈 나쁜놈 헷갈리는 묘한 세계관이 이 영화의 신박한 매력포인트이다.)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를 위해 템플 기사단이 선택한 방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없애는 것. 혼란스러운 자유보다는 안정적인 통제가 낫다는 명목하에, 자유의지를 수호하려는 암살단과 대립한다. <어쌔씬 크리드> 꿀잼 포인트 둘 - 액션도 액션도 이런 액션이 없다. 세계최고의 스턴트맨 ‘데미안 월터스’를 아는가? 스턴트맨 계의 1인자로 꼽히는 그는 모든 액션을 섭렵한, 그야말로 스턴트맨류 갑이다. <킹스맨>의 두 주인공 (콜린 퍼스와 태론 애저튼)을 훈련시킨 액션 선생님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는 그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 이런 남자다ㄷㄷ 무려 이런 남자인 데미안 월터스가 <어쌔신 크리드>의 액션씬을 촬영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긴장'이라는 걸 했다고 한다. 아무리 다이나믹한 액션씬이라도 세계 최고의 스턴트맨을 긴장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무려 38미터 높이(13층 건물 높이)에서 줄 없이 뛰어내리는 쌩 리얼 액션 씬이라면. 솔직히 이정도 되면 긴장이 아니라 기절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싶다. 38미터 자유낙하. 스턴트맨들의 35년간의 시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의 자유낙하다. 듣기만 해도 손발이 떨리고, 스턴트맨으로 진로를 선택했던 과거를 부정할 것 같은 높이다. 보통의 스턴트맨이라면 "그냥 CG로 하면 안될까요?!"라고 울부짖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세계최고의 스턴트맨은 달랐다.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며 시원한 액션연기를 선보이는 그. 스턴트 액션 역사의 신기록을 새로 쓰며 촬영한 이 장면은 영화 <어쌔신 크리드> 안에서도 최고의 명장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손발 수도꼭지 개방해주는 리얼 액션에 더해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가 있으니 그건 바로 '유전자 기억'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최첨단 기술이다. 최첨단의 미래를 살고 있는 주인공 '칼럼'은 유전자 기억을 통해 자신의 조상 '아귈라'를 체험하게 된다. 암살단이었던 조상 '아귈라'로 돌아간 '칼럼'이 시대를 넘나드는 폭풍 액션을 통해 인류의 자유를 수호하며 싸우는 것이 메인 스토리인 것이다. 50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씬들은 오직 <어쌔신 크리드>에서만 즐길 수 있는 꿀잼요소다. 완벽한 시대고증과 CG를 최소화하고 리얼리티를 한껏 살린 액션씬들은 '무한한 세계관'과 '리얼 액션'의 묘미를 동시에 담아낸다. <어쌔씬 크리드> 꿀잼 포인트 셋 - 그 어려운 걸 '이 남자'는 또 해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섬기는 정의의 수호자 + 과거에서도 싸우고 미래에서도 싸우는 화려한 전투스펙의 소유자 이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마이클 패스벤더 그렇다. 헐리우드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바로 그 남자 마이클 패스벤더. 그는 이 영화를 보는 남녀관객 모두의 안구에 은혜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증명된 명품배우인 마이클 패스벤더가 ‘빛의 암살자’라는 매력 터지는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연기내공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패스벤더의 클라스를 입증한 대표작 <엑스맨> 시리즈를 보자. '비운의 히스토리를 가진 인간'과 '소름돋는 광기를 지닌 빌런'을 오갔던, 그의 매그니토 연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악당이라는 역설적인 타이틀까지 만들며 팬을 대량생산 하기도 했다. 이렇게 엑스맨에서 성숙시킨 그의 양면적 매력은 <어쌔신 크리드>에서 정점을 찍는다. 자유의 빛을 수호하는 어둠속의 암살자 캐릭터인 '아귈라'는, 패스밴더의 매력을 입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300>의 식스팩 단디 박힌 스파르타산 훈남 ‘스텔리오스’를 연기한 배우도 마이클 패스밴더였다. 과연 시대를 가리지 않고 관객의 눈과 심장을 사로잡는 액션 연기는 패스밴더의 주특기라 할만 하다. <어쌔신 크리드> 속 패스밴더 또한, 화면을 압도하는 이국적인 미장센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 리얼 액션으로 액션/판타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카운슬러> 등의 영화에서 댄디간지 물씬 풍기며 쌓은 현대시대의 전투스펙도 <어쌔신 크리드>에서 총동원된다. 패스벤더는 이렇게 수많은 필모를 통해 쌓은 다양한 액션 경험을 폭발시키며, 명품배우와 명품연출이 만났을 때 어떻게 액션이 ‘예술의 경지’로 승화되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쌔씬 크리드> 꿀잼 포인트 넷 - 그 어려운 걸 '이 여자들'도 해냅니다. <어쌔신 크리드>를 볼 관객은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바로 심장과 무릎이다. ※ 심장주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스킬 동시사용 하시면서 심장 저격하시는 이 여신. <어쌔신 크리드>의 '마리아'역을 맡은 배우 아리안 라베드다. 그리스 출신 여배우의 깊은 눈동자를 보다보면, 웬만한 철벽남의 심장도 디폴트 선언하고 넘어가 버린다. 여자친구가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넋이 나가더라도 침착하게 기다리자. 아리안 라베드가 곧 공평함을 선사 해준다.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프랑스의 보물’ 마리옹 꼬띠아르도 여주인공 '소피아'로 등장해 당신의 심장에 무리를 줄 예정이다.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 세자르,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싹 휩쓴 명배우 마리옹 꼬띠아르. 믿고 보는 연기력과 함께 트레이드 마크인 ‘고전적 섹시함’을 <어쌔신 크리드>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영화 속 그녀는 의사로 등장한다. 첨단 기술로 주인공 칼럼에게 500년전 '암살자 유전자'의 기억을 경험시켜주는 의사 소피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가 되어 영화의 핵심역할을 소화하는 그녀의 존재감은, 그녀가 어린 나이에 '명배우'라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 무릎주의 아리안 라베드가 맡은 '마리아'의 직업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녀 또한 암살단에 속해 있는 암살자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여배우가 연기하는 암살자라니. 보통과는 다른 의미로 심쿵하달까? 그리스 초원에서 흰 옷 입고 꽃 딸 것 같았던 누나가 알고보니 목따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뻔 했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여자 어쌔신’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주무기인 단검과 함께 거침없는 리얼 액션을 소화하는 쎈언니 마리아. 시크도도한 여암살자의 마성의 매력에 수많은 여자 관객들의 걸크러쉬도 예정되어 있다. 캐릭터가 담고 있는 히스토리, 화려한 액션, 신비롭고 매력적인 설정. 이 모든 것을 소화하는 아리안 라베드의 '마리아'를 보면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의 탄탄한 연기력에 감탄하게 됨은 물론이다. 내가 본 <어쌔신 크리드>는 영화팬이라면 열광할 요소들이 가득했다. 식상함따윈 날려버리는 입체적 소재와 독창적 세계관 철저한 고증 + CG없는 리얼 액션으로 완성한 극한의 리얼리티 매력적인 캐릭터를 더욱 빛내주는 명품배우들의 열연 영화팬인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 여러분들의 의견도 함께 들려주길 바란다.
미드로 영어공부하는 법 + 추천 미드
빙글러 여러분, SEI 30분 전화영어입니다. 날씨가 무더운데 영어공부 다들 잘 하고 계시지요? 오늘은 미드로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1) 한글 자막+영어 자막(통합 자막)으로 미드 시청 한글 자막뿐만 아니라 영어 자막도 눈여겨보는 보면서 시청해야 합니다. 2) 전체적인 시즌의 내용 파악을 했으면 가장 재밌거나 좋은 표현이 많았던 에피소드 선정 3) 에피소드 대본을 찾아서 읽어본다. 네이버, 다음 등 각종 포털 사이트의 미드 자막 관련 카페나 클럽에서 찾아본다. 꽤 유명하고 인기 있는 미드라면 대본이 많이 있어요. 4) 선정한 에피소드, 이 상황에선 어떤 대화를 했는지 파악이 될 만큼 반복해서 돌려본다. (약 2~3번) 이때가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추천합니다. 대본하고 같이 보면서 좋은 표현을 연습장에 체크해둡니다. 5) 대본에 체크한 표현들을 연습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일상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쳤을 때, 그 동안 체크한 표현들을 직접 입 밖으로 내 뱉어봅니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가 있는 경우는, 최대한 공부한 표현들을 적용하면서 입에 익혀야 하지요. 영어공부 추천 미드 : 뉴스룸 영어 회화 공부가 어느 정도 진행된 분들 영어레벨 상위권분들이 도전하면 좋을 미드입니다. 미국 및 세계 이슈를 다루는 방송국의 뉴스룸을 그린 드라마이기 때문에 영어 공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이슈와 시사 상식까지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특종을 취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론인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더불어 제대로된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을 볼 수 있어요. 정치, 방송, 경제에 관련된 고급 어휘들이 많이 나와 영어 초보자가 보기에는 모르는 단어가 꽤 많이 들릴 수도 있답니다. 딱 봐도 어려워 보이는 뉴스룸의 영어 표현! 과연 실생활에서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미국 언론에서는 이런 어휘를 쓴다는 점,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데요, 뉴스를 다루는 드라마여서 정확한 발음과 문장을 구사하기에 영어실력에 어느정도 자신 있는 분들이 뉴스룸을 통해 공부를 하시면 됩니다!
[헌트] 역사를 재구성한 영리한 상상력
부제 : '감독' 이정재의 준수한 장편 데뷔작 세상은 영화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간의 사전 계획과 실행 과정의 우연이 결합하여 상상 속에서도 실현되기 힘들 듯한 극적인 사건이 현실에서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공의 창작물보다 더 흡인력이 강한 실화는 창작자들의 눈을 찬란한 보석을 바라보는 까마귀의 눈처럼 빛나게 만든다. 구미가 당기는 실화에는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탄탄한 스토리가 잘 갖추어져 있다. 좋은 배우들만 캐스팅한다면 박스오피스 1위는 따놓은 당상일 것만 같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100% 픽션보다 실화에 기초한 시나리오를 쓰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역사책이 스포일러여서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지 않고도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헌트' 속 테러의 핵심 타깃인 전두환 대통령이 실제 아웅산 테러 당시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실화 기반의 영화는 '기승전결' 중 '결'이 아니라 '기승전' 단계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핵심 사건의 종착지를 이미 보고 온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방법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 '헌트'는 개연성 있는 허구적 이야기를 덧붙여 역사를 재구성한다. 당시 버마 수사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웅산 테러는 북한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某)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에 의해 자행됐다. 영화 '헌트' 시나리오 작업에만 4년을 바쳤다는 이정재 감독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낼 만한 새로운 인물과 사건을 창조해 시나리오에 추가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1983년 10월 9일 버마(버마는 현재 미얀마이며 영화 속 배경은 태국이다)에서 아웅산 테러가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이 첩보 액션 스릴러 장르의 틀 안에서 흥미롭게 전개된다.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영화 '헌트'는 안전하게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편이다. 대체로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안정적이지만 개성이 도드라지거나 뇌리에 남을 만큼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 것 같다. 몇 가지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헌트'가 이정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999년 개봉한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오랜만에 한 영화의 주연으로 함께 출연한 이정재와 정우성을 보는 것은 꽤 감동적이다. '태양은 없다' 출연 당시 20대의 탱탱한 피부는 사라지고 이제 중년에 걸맞은 주름과 그늘이 얼굴을 차지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멋지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로 남아 있다. 정신없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아마도 죽을 때까지 같은 길을 걸어갈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인 것 같다. <끝>
공손찬 백규 (公孫瓚 伯圭) A.D.? ~ 199
삼국지를 워낙에 좋아해서 여기다 시간 들여가며 이런 글까지 쓸 정도다보니 나름 삼국지에 대해 좀 아는 편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여러 자료들을 지금까지 보고 듣고 하다보면 그 인물에 대한 호감도를 떠나 참 안타까운 이들이 많다. '이 사람은 왜 이럴 수 밖에 없었을까' '왜 이 인물은 이런 선택을 해야만 한걸까' '그는 결국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건가' 그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오늘 다룰 인물 "공손찬"이다. 아마 게임이건 만화건 애니매이션이건 책이건... 소설인 연의를 읽었건, 정사를 읽었건.. 공손찬을 좋아하거나 궁금해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특히 삼국지연의를 읽은 분들은 더더욱 공손찬을 좋아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데, 일단 연의에서의 그는 워낙 초반부에 등장하고 별 다른 임팩트도 없는, 드래곤볼을 예로 들자면 손오공이 어린 시절에 등장해서 잠깐 오공을 애먹이지만 얼마 못 가서 즈려밟히는 '타오파이파이' 정도의 취급... (혹시 누군지 모르면 포털사이트 검색 Go) 그나마 코에이의 삼국지시리즈를 즐기는 분들이 보다 고난도의 천하통일에 도전할 때나 선택할 인물. 하지만 역사 속에서의 그는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엑스트라급은 아니였음을 오늘 글을 통해 밝혀 보겠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나오듯 실제로도 당대의 이름 높던 학자인 '노식'의 문하에서 유비와 함께 공부한 동문이고 그 때의 인연으로 유비가 공손찬이 막장테크 타기 전까지 공손찬의 객장으로 있기도 했다. 이쪽도 생전의 라이벌이던 원소처럼 적자가 아니지만 얼자였던 원소보다는 사알짝 나은 '서자'였는데 뭐 우리가 보기에는 도찐개찐... 어쨌건 집안도 원소의 원가에는 댈 바 아니긴 해도 나름 괜찮은 집안의 은수저출신. 공손찬의 집안은 대대로 유주일대의 태수를 지내던 가문이였는데, 원소네가 일전 원소칼럼에서 소개했듯 중앙정부 고위관직자 집안이라면 공손가문은 군수집안쯤? 이걸 보고 혹자는 'ㅋㅋㅋ군수 나부랭ㅋㅋ'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여러분들이 군수를 몰라 하는 소리다. 군수는 3급 공무원이며 군으로 치면 준장(★)에 준하는 정말 높은 자리다. 아무튼 저런 집안 출신이지만 서자인 관계로 지분을 이어받지 못한 Mr.공손은 첫 사회생활을 유주의 말단관리로 시작하는데, 이 때 맡은 업무는 각종 공문서를 필사, 즉 베껴 쓰는 일이였다. 당시는 복사기도 없고 이메일, 팩스 뭐 그런거 다 없으니 공무에 있어 이리저리 나가고 들어오는 문서들을 누군가 직접 보고 필사를 했는데, 그 일을 했다. 인간복사기로서 공손찬은 꽤 유능하여 문서들을 취합 후 요점을 추려 알아보기 쉽게 잘 정리하여, 그가 정리한 문서는 누가 봐도 업무현안이 눈에 잘 들어왔는데, 게다가 공손찬은 말도 조리있게 잘 했고 인물도 좋은데다 "목소리도 좋았다"고 한다. 이런 점들이 소문나며 어느 태수가 그를 점 찍어 사위삼고, 그 후 그를 노식에게 유학시키는 등 이때부터 공손찬의 포텐이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헌데 어느 날 저 공손찬의 장인되는 태수가 비리죄목으로 파직당해 유배를 가게 되었다. 저 당시가 워낙 나라꼴 개판이라 털어 먼지 안나는 태수가 몇이나 있겠냐만... 저 때는 매관매직도 흔했는데 이를테면 A : 저 이거 받으시고 저 벼슬 좀 ㅎㅎ 고위관리 : 오~ 1억전?!! 뭐 하고 싶은데? A : 영릉태수요! >_< 고위관리 : 콜! 조또마떼! (영릉태수 공석 시 발탁, 헌데 기존 태수 재직인 경우...) 고위관리 : 영릉태수 이놈개새끼, 2억전 세금 바쳐. 영릉태수 : 아.... (2억전 입금 시 유임 및 A에게는 다른 자리 물색! 미입금시....) 영릉태수 : 제가 2억전이 어디 있어요... 고위관리 : 넌 디졌어 (뭐가 되건 털어 난 먼지로 파직 또는 처벌, 그 자리에 A) 저런 경우가 적잖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당시 이런저런 지방의 한 자리를 했던 이들은 위로 올려 보낼 세금(명목의 뇌물)을 채우고자, 또 저런 썩은 정부 휘하에서 일하다보니 본인도 썩어 대체로 백성들을 심하게 수탈하는 일이 다반사. 아무튼, 공손찬의 장인인 태수 '유기'(유표아들 아님)가 당시 일남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본인 또한 자기를 알아보고 키워준 은혜를 갚고자 유배가는 장인을 따라가기로 하고 살아 돌아오진 못할거란 생각에 본인의 "셀프 장례식"을 올리고 유배길을 따라나서는데... 위의 저 유배지 일남, 바로 지금의 베트남이다... 지금 아무 세계지도나 펴고 당시의 유주라 불리던 중국의 베이징 동북부 아무곳이나 찍고 거기서 베트남까지의 거리를 찍어보면 ㅎㄷㄷ... 심지어 그 당시의 베트남은 '오지 Of The 오지'였으며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던 유배령이였거늘, 공손찬은 은혜와 의리로 그곳을 죽는 각오로 따랐던 것. 다행히 유배 가는 도중 뭔 일인지 또 사면이 되는 덕에 공손찬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사면되지 못했다면 대단한 의리남아인 공손찬을 삼국지 게임에서 선택 못할 뻔.-_-;; 고향으로 돌아와 그전의 평판 덕에 다시 벼슬길에 오른 공손찬은 그때부터 포텐이 만개하며 당시 유주 인근의 소수민족들 중 가장 세력 크던 "오환족"의 학살자로 이름 얻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오환족들의 분노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이 실로 잔인했는데, 공손찬은 단순히 '접경지역의 이민족을 축출한다' 이상의.. 몹시 뒤틀린 인종관을 갖고 오환족은 모조리 박멸하여 그 씨를 말려야 한다는 한족중심의 인종차별론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오환족의 투항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으며, 애어른이나 남녀노소없이 오환은 물론, 그 2세나 3세의 혼혈에게조차 가차 없었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반 후한 백성들의 원성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오환 및 그 일대 소수민족에 대한 홀로코스트는 중화사상에서 비롯된 한족 우월주의가 당연시되던 여타 한족의 입장에서조차 이해를 얻기 힘들만큼 극심했다. 강족들을 토벌하기도 했으나, 그들과 결탁하기도 했던 동탁, 마등, 한수, 마초 등등이나 흑산적 및 오환족들과는 밀당을 통해 견제와 화친을 번갈던 원소나 조조, 무릉만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훗날의 유비 등 아무리 소수민족을 오랑캐 취급하며 천대했던 당시라도 무조건 다 싸잡아 죽인다기보다는 필요시에는 협력대상으로 봤던 경우도 많았거늘... 공손찬은 이들에 대해 철저한 배척 및 멸종을 도모했고 당연히 오환들도 공손찬에 대한 항복 역시 항전의 끝과 다름없는 죽음뿐이란 것을 알고는 최소한 싸우다 죽자는 결론을 택하며 후한 백성들 역시 오환족들의 침략 또는 병사로 차출되는 등의 피해가 나날이 늘어갔다. 심지어 공손찬은 소수민족들과의 전투에서는 앞장서서 무쌍난무를 찍었고 결국 그의 군사적 재능과 이 오환족 제노사이드가 결합하여 후한의 동북부지역은 어쨌건 가장 소수민족의 평탄화가 잘 된 지역이 된다... 종종 연의 내에 등장하던 공손찬의 "백마장사"라는 닉네임과 그에 따른 업적이 이 소수민족 학살로 얻어진 것이다. 결국 어찌보면 단순히 치안을 위해서가 아닌 본인의 가치관에 따른 삐뚤어진 행태의 결과. 이러던 어느 날, 유주자사(쉽게 말해 우리의 도지사 개념)로 한실종친이자 인망 높고 덕이 있기로 소문난 "유우"가 부임해오며 공손찬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지는데... 유우는 군사일변도의 공손찬 플랜에 대해 상당한 회의감을 표출하며 막대한 군비지출을 최소화하고 그 여유분 + 중앙 재정지원을 그간 숱한 전투에 황폐화된 농지개간 및 유랑민들의 정착지원 등의 복지와 지하자원 개발로 인한 산업다각화 및 재정확대, 오환과의 화친 및 교류와 교역의 증대를 통한 경제구조 변혁 등 다분야에 걸쳐 진짜 유주를 위한 각종 계획들을 내세워 추진했는데.. 공손찬은 위에 언급한 자신의 뒤틀린 인종관 + 그런 위기감 조성을 통한 군비확장 및 국방비 사유로 자신의 세력과 야망을 키우던 터에 유우의 저런 정책들은 일절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유우와 공손찬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으며, 공손찬이라면 치를 떨던 오환들도 유우측으로 투항 및 교섭을 시도했다. 이미 드높던 덕망이 이 때 더 높아지며 백성들의 칭송이 줄 이어, 후에 반동탁 전선 측의 맹주인 원소가 그를 새 천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던 것이다. 그 결과 그런 원소가 주도하던 '반동탁 연합에도 불참'한다. 하여간 이때부터 유우와 공손찬은 거의 각자노선을 걸으며 갈라선다. 이후 공손찬은 잠시 오환족 박멸을 미뤄두고 하북을 휘젓기 시작하는데, 삼국지연의에는 묘사가 안되나 공손찬의 용병술, 군지휘능력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이들 중 가히 TOP10에 들만한 수준이다. 일단 먼저 말한 오환족 박멸 역시 마찬가지로, 원소나 조조같은 강자들이 오환이나 선비족, 흉노같은 북방 소수민족들을 괜히 회유하고 화친하려 든 게 아니다. 그만큼 버거웠던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허나 공손찬은 이런 이들을 거의 지워버리다시피 했으며, 191년에는 비록 훈련없는 오합지졸이라고는 하나 무려 30만(삼국지 특유의 뻥이 아닌 역사기록에 의함)의 황건적 잔당이... 현 대한국군의 절반 가량의 저 대병력이 유주에 침공하자, 겨우 고작 2만의 병력만으로 저들을 궤멸에 가깝게 타격한다. 솔직히 저 열 다섯 배의 전력차는 진짜 황건적이 모두 맨손이였어도 버거울 지경이거늘.. 공손찬은 해냈다. 심지어 유우와의 대립이 극에 달에 결국 공손찬의 군사행동에 수시로 겐세이 놓던 유우와 공손찬은 다이를 붙게 되며 이때도 무려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고작 겨우 "100명"만 선발해 지휘부까지 뛰쳐 들어가 와해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렇듯 당시의 공손찬은 원소가 제대로 득세 전까지는 당시 전 중국을 통틀어도 맞상대로 당해낼 재간이 없던 최강의 세력이였다. 공손찬군은 병력 수는 물론, 각종 장비와 물자도 상당히 최신이였으며 유독 기병대에 집착을 했던 공손찬의 고집 때문에 전 중국에서 가장 많고 잘 훈련된 기마군단을 거느리고 있기도 했다. 비록 우리가 알만한 네임드 장수나 모사는 없었으나 공손찬은 오로지 자신의 무력과 지휘력 및 전술능력으로 커버업 하고도 남았으며 기마군단 특유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평야지역이 넓던 유주와 요동 일대의 정복자가 되어 심지어 당시의 원소조차 공손찬의 이름을 들으면 쫄지 않을 수가 없던 상황.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갖고 서출의 그가 오로지 맨주먹으로 하북을 주름잡으며 소수민족과 한족 통틀어 무적으로 이름을 날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서서히 그에게는 그림자가 들고 있었으니...... 1. 과격함. 그의 정복 및 전투방식은 심히 거칠고 잔인했다. 소수민족들 상대로는 항복 or 항전 여부 무관하게 모조리 죽였으며 사로 잡힌 이들은 곱게 죽이지도 않고 온갖 모질고 잔인한 방법을 통해 죽였으며, 그렇다고 관할지내의 백성들에게 선심을 베푼 것도 아니다. 공손찬의 병사들은 유주일대의 그 어떤 도적떼보다 약탈과 겁탈이 잦다고 악명이 떨쳐져 있었다. 2. 몰인정. 그는 부하들에게도, 병사들에게도,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도, 다른 군주들에게도, 당연히 적세력에게도... 오직 자기자신의 욕심과 야망의 성취에 소모되는 도구 또는 그에 방해되는 장애물로만 여겼다. 응당 그런 사람냄새 나지 않는 그에게 인재가 몰릴 리 없고 있는 인재조차 떠나는 경우가 잦았다. 당장 공손찬은 그 부덕함으로 조운, 전예 및 유비 등의 특급인재들을 얻고도 놓친다. 그가 성공가도를 달릴 때야 그렇다셈쳐도 그가 위기를 맞자, 그의 휘하세력들은 이탈에 가속이 붙어 더욱 비참한 몰락을 부채질 하는 계기가 된다. 3. 고집. 그는 말 했듯이 '서자'였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실력, 운으로 성공을 쟁취했는데, 동서고금 막론하고 이런 이들은 자신이 옳고 맞다 여기는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그도 모자라 남을 무시하는 경향도 강하고 이런 부류들이 대개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독단적인 아집부리기다. 공손찬 역시 이를 극복하지 못한체, 오로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고집대로만 처리했다. 역시 이런 이들 아래로는 자신의 뜻과 재주를 펼칠 수 없기에 인재가 모이거나 성장할 수 없다... 4. 별종. 공손찬은 각종 다양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였음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물론, 삼국지속 영웅들이 응당 평범한 이들이 아님은 맞으나, 공손찬은 좀 희한한 면이 많은 이였다. 유별나던 인종차별적 면모도 그렇거니와, 장인어른의 유배지를 따라가며 굳이 자신의 장례를 스스로 치른 점, 게다가 공손찬은 놀랍게도 참모나 책사에 점술인, 상인, 건축가 등등.. 일절 군사, 행정과 무관해 보이는 이들을 단지 자신과 코드 맞고 복종하며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채용했다.... 저런 여러 큰 결점들 탓에... 그 놀랍고 빛나는 군사적 재능을 토대로 후한의 동북일대를 독차지 하고도 결국 당시로서 자신보다 모로 보나 뒤쳐지고 모자르던 원소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만다. 당시 원소는 객관적 전력으로는 공손찬에 댈 바가 아닌 걸 파악했기에 정면승부를 피하고 공손찬의 전력을 싸우지 않고 약화시키는 전법을 쓰는데, 예전 원소의 칼럼에서 말했듯 원소는 정치정략의 고수였는데 이를 십분 활용! 인심을 잃은 공손찬의 영지였던 유주일대를 비롯, 여기저기 사람을 보내 공손찬의 직간접적 세력권이던 요동, 기주 북부일대, 청주와 병주 등에 공손찬에 대한 네거티브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린다. 공손찬을 적대시하는 이들 및 세력들을 적극 포섭했으며, 공손찬에게서 전향해 오는 인재들은 더욱 크게 포상했다. 시간이 지나자 공손찬의 세력권에는 그간 공손찬의 폭정 탓에 더욱 그에 대한 비방과 괴담이 날개를 달고 퍼졌으며 공손찬을 따르던 적잖은 이들이 타세력으로 전향 및 하야하는 등 이탈자들이 줄을 이었다. 공손찬세력의 레임덕은 곧 군기강해이로도 이어져 군자금 및 관련 장비나 물자의 횡령도 횡행했으며 일부 장수들은 군마를 빼돌려 파는 일도 생겨났고 병사들도 더욱 백성들을 심히 약탈하게 되었으며 나날이 공손찬의 세력은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저물어가던 공손찬... 이런 와해작업이 무르익었다 판단한 원소군의 총공세에 공손찬세력은 언제 그리 강했냐는 듯 무너져 내렸으며, 그 강하다는 공손찬군의 기마군단 역시 이에 대한 자부심에 변화없던 전술 탓에.. 대기마군단용 요격전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원소군에 의해 박살나고 만다. 세가 기울자 공손찬은 수 많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노역에 동원해 지은 최강의 방어요새인 "역경"으로 피신.. 여기에서 짱 박힌 체, 히키코모리처럼 허송세월을 보낸다. 이 부분 또한 실로 안타까운게, 이 역경은 당시의 냉병기로만 무장된 재래전력으로는 사실상 수년 이상의 시간으로도 함락이 쉽지 않은 요새였고, 기세가 꺾여 그럴 뿐 적잖은 병력과 그 병력들이 수 년간 먹을 식량도 비축되어 있었으며 내부에 둔전이 가능할 정도의 농토도 있는 등. 거의 이 역경이란 요새는 당시의 건축토목술의 정점을 찍는 요새로 만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월마리아같은 거대장벽에 둘러쌓인 궁극의 방어요새였던 것. 아무튼 공손찬은 이 요새에 거북이처럼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았다. 원소군의 입장에서도 공손찬의 장기전은 반갑지 않았다. 어쨌건 자신의 본거지를 비우고 나온 원정이 길어지면 자신의 거점을 호시탐탐 노리던 조조나 흑산적들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으며 병참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섣불리 퇴각하다 역경내에서 별 다른 손실없이 진치던 공손찬군이 쏟아져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기 때문. 그런 이유들로 심지어 원소는 오히려 공손찬에게 먼저 화친을 제의하기도 했으나, 싸울 생각도 없었으면서도 공손찬은 제 고집에 화친에는 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대치가 계속 된 와중... 안그래도 희한한 괴짜 공손찬은 정신이상에 가까운 기행을 보이는데, 역경루라는 역경내에서 가장 높은 누각에서 지내던 공손찬은 그 누각에 두터운 철문을 달아 안에서 잠그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7세 이하의 아이만을 드나들게 하였으며 각종 서류와 공문서들과 식료품과 생필품도 이런 아이들이 셔틀을 맡았고 급한 보고사항은 밖에서 누각으로 소리치면 공손찬의 대답을 다시 누각내의 시종들이 소리쳐 대답하는 심히 박ㄹ혜스러운 행태를 보이기 시작.... 게다가 잠깐 밖으로 군사를 출격시켜 긴 대치에 루즈해있던 원소군을 기습하다 포위 당하자, 어서 구원병을 보내자는 부하들의 요청에, '저들을 구하면 모두 구원병을 믿고 열심히 싸우지 않을거다'라며 그들의 전멸을 방관한다... 이를 계기로 안그래도 저물어 가던 공손찬의 세력은 급속도로 와해되며 탈영병과 이탈자들이 늘어갔고 제 아무리 우주방어요새라도 농성병력이 없다면 함락은 시간문제.... 끝내 원소군이 방어를 뚫고 내부로 진입하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효웅 중의 하나던 공손찬은 가족들을 모두 죽인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원소는 조정에 보고를 올린다는 표면적 이유, 조조에게 경고를 보내려는 내면적 이유로 공손찬의 참수된 머리를 보내는데, 당시의 조조와 조정 대신들 모두 공손찬의 패전을 믿지 못하다 그 잘려진 머리를 보고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훗날, 그런 공손찬을 무찌르고 그의 세력을 흡수하여 하북최강의 대세력으로 거듭난 원소가 훨씬 작고 약한 조조에 의해 몰락을 맞을 때 못지 않게 이 때의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로 승리했음은 전중국 최고의 이슈였다. 이렇듯, 아무리 자신이 뛰어나도 주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집으로 가득차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불통의 인재는 어떤 끝을 보는지를 공손찬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무에 밝고 행정에 뛰어나며 바른 말이나 쓴소리 하는 전문가들을 배제한 체, 그저 자신과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비전문가들을 비선실세로 삼았던 점. 오로지 자신의 의견과 생각만을 일방통보하며 고집과 불통으로 귀를 닫았던 점. 당시 비록 인구가 많진 않았어도 비교적 타지역에 비해 이른 개발덕에 꽤나 자리 잡히고 안정된 터전을 차지하고도 자신의 부덕으로 이를 황폐화시킨 점. 화친과 교류를 했더라면 충분히 윈윈하고 자신의 세를 더욱 키울 수 있던 상대를 오로지 적으로만 삼아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대립을 했던 점. 자신의 병사들이 적들 틈에 죽어가고 있음에 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말같잖은 이유로 방관하여 모두 죽도록 방치한 점. 왜곡된 가치관 탓에 주변의 인심을 잃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그로 인해 적잖이 떠나간 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사태를 수습해야 할 위기에 홀로 외부와 단절하여 틀어박혀 골든타임을 놓친 점. 수 많은 그의 문제점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누군가와 놀랄만치 닮았다. 이렇듯, 자신의 역량과 장점들이 충분히 세상을 자기것으로 만들만 했음에도 이들을 잘못쓰게 되면 그 끝은 비참한 말로뿐이라는 것도.... 누군가와 닮았던 안타까운 영웅 공손찬편을 마친다.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