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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여성의 고단한 역사

몽고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고려시대 부터 조선초기 까지 중국의 원나라와 명나라에 공녀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 중에는 기황후 처럼 대륙을 손아귀에 쥐락펴락 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허드렛일을 하거나 대신의 첩이나 하녀로 팔려 가거나 했다고 합니다 대중에는 향수병으로 이국에서 숨을 거두었다고도 합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조선은 반청을 외치며 청나라와 싸울것을 주장했고 결국 1627년 정묘호란 과 1636년 병자호란을 겪습니다. 인조는 결국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고 그 때 청나라는 수많은 조선 여인들을 납치해서 끌고갑니다. 그 여인들은 청나라에서 탈출을 하거나 자유의 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환향녀라 손가락질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그 수모를 못 견뎌 자결을 하거나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도 납치되거나 끌려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일본은 자국 군의 사기증진을 위해 조선여성을 군에 투입시키기로 하는데 이건 정말 글로 조차 쓰기 힘들군요 자세한 내용은 저의 다른 카드를 참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서없이 쓴 내용이라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지켜줍시다 두 번 다시 먼 길을 떠나지 않도록 합시다 만약 다시금 국력이 약해진다면 그 때는 당신의 애인, 부인, 딸, 누나, 여동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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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남극 탐험
목요일은 역시 역사지. 모두들 나치 잔당이 남미로 도망갔다거나 남극에 비밀리에 기지를 세워서 UFO를 만들었다더라 하는 전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극은 무슨 남극, 달나라 쯤 되어야 음모론이지, 해서 나온 영화가 Iron Sky(참조 1)였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nazis-in-antarctica 나치의 남극 탐험은 사실입니다. 물론 UFO를 만들기 위한 비밀 기지는 아니었다. 당시 히틀러가 남극에 사람들을 보냈던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마가린 얘기부터 해 보자. 마가린은 맛은 좋지만 고가에 보관도 신경써야 하는 버터의 대용품을 위해, 프랑스 정부에서 콘테스트를 개최했을 때 나타났다. 즉, 저소득층이나 군대(특히 해군)를 위한 버터 대용품이었는데, 이 콘테스트 덕분에 식품 치고는 기록이 비교적 명확하다. 19세기 중후반,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는 버터 부족 사태 때문에 대체품 콘테스트를 했고, 여기에 메즈-무리에스(Hippolyte Mège-Mouriès, 1817-1880, 참조 2)가 발명한 마가린이 우승을 거둔다(원래 그는 황제의 개인 농장에서 연구하는 학자였다). 원래 이름은 oleomargarine. 여기서 뒷글자만 빠져나와 마가린이 된다. 물론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할 일, 이것까지 연구했지만 마가린을 제 때 공급 못 한 이유로(?!) 프랑스는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래서 프랑스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보고 오히려 특허가 네덜란드로 넘어간 건 안 자랑, 본고장인 프랑스보다는 독일과 네덜란드가 마가린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된다. 처음에 마가린을 만드는 재료는 쇠기름이었다. 이것을 식물성 기름과 동물 지방으로 바꾸는 시도가 있었고, 때마침 권좌에 올랐던 히틀러는 경제개발 4개년 계획(Vierjahresplan, 참조 3)을 발동하는데 이 계획의 주된 목표는 전쟁 준비 및 그에 따른 전략 물자의 국산화였다. 그렇다. 마가린이 전략 물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가린을 만들기 위해 제일 저렴한 동물 기름은 바로 고래였다! 게다가 고래 지방은 기계용 윤활유로 쓰이고 폭팔물을 만드는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들 때에도 유용했다. 물론 독일만 아는 사실은 아니다. 가령 영국은 1938년 고래 기름을 전략물자로 선포했다고 한다. 군비경쟁이 극심하던 당시 영국과 독일은 전세계 포경된 고래의 83%를 사들인다. 이 고래를 제일 많이 잡을 수 있는 곳은? 남극이었고 주로 노르웨이 포경선들이 맹활약했다. 그래서 남극의 노르웨이 거점, Queen Maud Land를 어떻게 좀 해보려고 한 것이 바로 나치 남극 탐험대의 목표였다. 그래서 1938년 5월, 나치는 드디어 남극 탐험대를 보낸다. Alfred Ritsche 선장을 필두로 학자와 순인, 포경업자들 82명으로 구성된 독일 탐험대는 Schwabenland라 이름 붙인 배(비행기도 탑재!)를 타고 남극으로 향했고, 다다른 Queen Maud Land를 Neu-Schwabenland(참조 4)라 이름 붙인다. 이를 알아차린 노르웨이는 왕령을 통해 1939년 Queen Maud Land가 노르웨이령임을 선포하지만 곧 일어나는 전쟁에서 노르웨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실 것이다(나치가 굳이 노르웨이를 쳐들어간 이유 중 하나가 남극이었다). 이 독일 탐험대는 독일인답게(…) 성실하게 남극을 탐험했고, 알려진 지도의 영역도 더 넓힌다. 정찰 및 촬영을 위해 날린 비행기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동 지역에 철제 슈바스티카를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남아 있을까?) 그들의 임무는 일단 히틀러의 성탄절 연설 청취(… 참조 5)였는데 남극 대기의 방해가 심해서 라디오는 껐다고 한다. 1939년 이들은 고국으로 복귀했고, 곧 전쟁이 격화되면서 아무도 이를 기억 못 하게 된다. 1958년에 일부 알려지기는 했으며, 2007년에는 논문도 하나 나온다(참조 5). 그렇다면 그동안 숱하게 나온 나치의 달기지며 UFO는 뭐일까? 신화다(참조 6). 인터뷰나 당시 기록들을 오해하거나, 일부러 오독해서 나온 도시 전설이라는 의미다. 독일은 노이-슈바벤란트에 기지를 세우지 않았으며(기지를 세울만한 물자를 싣고 가지 않았었다), 전후 미국이 남극에서 군작전을 펼친 이유는 혹한기 훈련(…, 참조 6)일 따름이었다. 역시 음모론을 만드려면 적어도 우주진출 정도는 해줘야 할 일이며, 나치보다는 소련 UFO가 더 적절하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작에는 마가린이 있었다. -------------- 참조 1. 사실 후속편은 전편에 비해 별로였다. 율리아 디체(2014년 12월 21일): https://www.vingle.net/posts/640113 2. 그의 주된 연구 분야는 빵에 색상을 입히는 방법이었다. 빵을 즐기는 분들은 모두 메즈-무리에스를 기려야 마땅할 일이다. 3. 1936년부터 1940년까지이며, 이때 재무장은 물론 아우토반 건설도 추진됐다. 4. New Swabia: https://en.wikipedia.org/wiki/New_Swabia 5. Hitler Sent a Secret Expedition to Antarctica in a Hunt for Margarine Fat(2018년 8월 31일): https://www.history.com/news/hitler-nazi-secret-expedition-antarctica-whale-oil 6. Hitler’s Antarctic base: the myth and the reality(2006년 5월: http://www.histarmar.com.ar/Antartida/Base-Hitler/LaBaseAntarticadeHitler.pdf
사전투표 하고 왔어요 + 플라톤의 명언 이야기
갑자기 웬 비닐장갑이냐고요? 이 봄에 김장이라도 했냐고요? 후후. 그게 아니라... 사전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체온을 통과하면 손소독제를 치덕치덕 바르고 다음으로 양손에 비닐 장갑까지 장착을 한 후에야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거든요 훗훗 요즘 몸살 기운이 있어서 혹시나 고로나 아닐까 매일 걱정중인데 일주일 이상 몸이 너무 안 좋은데도 체온은 매번 정상이라 오늘도 체온 측정 통과에 아쉬워하며 도장을 찍고 왔어요. 만나는 사람이라곤 가족 밖에 없는데 걸리면 너무 서럽지만 그래도 지금 너무 아픈 건 왜때문일까요? 엉엉ㅜㅜ 그냥 몸살이 오래 가는 건가 봉가... 암튼 보니까 체온 측정을 통과하지 못 하면 투표소 입구에 마련되어 있는 체온 측정 통과 못 한 분들 전용 기표소에서 투표를 하시고 바로 병원으로 가시면 되더라고요. 혹시나 전염 우려 때문에 걱정되시는 분들, 이제 걱정할 필요 전혀 없겠죠? 걱정 하덜덜덜 마시고 투표하러 가요! 참. 이 플라톤의 명언은 사실은 민주주의와는 전혀 반대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원래의 맥락을 보자면, “통치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욕심과 야망이 없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라서, 돈도 명예도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훌륭한 사람들이 통치에 나서도록 만드는 방법은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훌륭한 분들이 스스로 통치에 나서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치르는 가장 큰 대가는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이들이 정작 통치를 맡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대가에 대한 우려 때문인 듯합니다.” 재밌지 않나요? 우리가 현재 민주주의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사용중인 구절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배제한 엘리트주의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라니. 왜곡이라고는 해도 비판하고 싶지는 않아요. 누가 뭐래도 굉장한 명언을 만들어 준 거잖아요. 적극적인 정치에의 참여와 관심, 책임감을 심어주는 명언. 무엇보다 지금, 각색된, 민주주의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저 명언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 당한다는 것이다.’를 명심하고 실천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 투표해요 우리!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투표 인증샷을 올려 보겠어요? 내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한 자랑스러움! 투표하고 같이 인증해요 *_* 오늘과 내일이 사전투표일, 그리고 15일이 지역구 투표일이니 잊지 말고 가서 투표합시다!
밀로의 비너스의 발견
밀로의 비너스, 그 작품을 프랑스로 끌어온 다섯 명의 주인공이 있었다. 첫 번째부터 가 보자. https://www.ilpost.it/2020/04/08/venere-di-milo/ 때는 1820년, 약관을 넘긴 나이 스물 다섯 살의 프랑스 해군 장교. 밀로의 비너스를 캐내고 알아본 첫 번째 주인공, 올리비에 부티에(Olivier Voutier)의 프로필이다. 신고전주의에 흠뻑 빠져있던 그는 밀로스 섬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발굴해 보겠다며 나선다. 그러다가 한 지역 농부가 땅을 파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 농부(Yorgos Kentrotas)는 벽돌을 만들겠다면서 땅을 파고 있었는데, 그가 뭔가 발견한다. 두 팔이 없으면서 상반신 누드로 되어 있는 여자 상이다. https://fr.wikipedia.org/wiki/Olivier_Voutier 흥미를 느낀 부티에는 농부와 함께 땅을 더 팠고, 결과 베일을 입고 있는 하반신도 발견한다. 그러나 부티에도 그렇고 농부도 그렇고 안타깝게도 이 석상의 가치를 평가 내릴만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티에는 일기에 석상 발견을 적고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알린다. 지식이 일천하다 하더라도 압도감을 느낄 정도로 크고 완전한 석상이었기 때문이다. "밀로의 비너스를 와서 볼 수 있다면 내가 그날 느낀 경탄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티에는 이 석상을 가져가려 했는데, 타고 온 배가 너무 적었고, 농부가 제안한 좀 더 큰 배 가격은 좀 비쌌다. 여기서 두 번째 주인공이 등장한다. 루이 브레스트(Louis Brest), 밀로스 섬 주재 프랑스 연락사무소의 부영사였다. 부티에는 그 후 그리스 독립전쟁이 참여하러 떠난다. ---------- 당시 그리스는 아직 오토만 제국의 영토였고, 부티에는 브레스트에게 적당한 배를 잡아달라 부탁했하지만 연락사무소 예산으로 할 범위가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섬에는 비너스 석상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오토만 제국 정부에게 들어가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생긴다. 오토만 제국은 워낙 광대했기에, 파샤(paşa, 고위급 관료나 장군)의 통치가 닿지 않는 지역은 말이 통하는 현지관리(dragoman)에게 맡겼다. 밀로스 섬에 세금 수령하러 정기적으로 그들이 오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파샤에게 드리려 할 것이었다. 그래서 브레스트 부영사는 우연히도 때마침 그리스 군도 해역을 조사하는 중, 밀로스 섬에 온 세 번째 주인공, 쥘 뒤몽 뒤르빌(Jules Dumont d'Urville)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https://fr.wikipedia.org/wiki/Jules_Dumont_d%27Urville 석상은 아직 농부가 보관하고 있었고, 뒤르빌 제독 또한 2m가 넘는 이 석상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가져가야 한다. 뒤르빌 제독 또한 석상을 본 감동을 일기장에 보다 상세히 적는다. 게다가 부티에와는 달리 석상을 묘사하는 그림도 그렸다! 이제 반드시 오토만의 수도인 이스탄불에 있는 프랑스 대사에게도 알려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대사는 아무나 만나기 힘들다. ---------- https://fr.wikipedia.org/wiki/Lodo%C3%AFs_de_Martin_du_Tyrac_de_Marcellus 네 번째 주인공, 드 마르셀뤼스 자작(Lodoïs de Martin du Tyrac de Marcellus, 기사에서는 백작으로 나온다)이다. 주오토만 프랑스 대사를 하고 있던 드 리비에르 자작(Charles François Riffardeau de Rivière)의 비서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주인공인 브레스트는 대사에게 서한을 보냈었고, 그리스 지역 내 다른 프랑스 총영사도 대사에게 서한을 보냈었는데, 처음에는 대사가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때 드 마르셀뤼스 자작의 역할이 컸다. 대사를 확신시킨 것이다. 국왕(루이 18세)께 선물로 바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뒤르빌 제독과 드 마르셀뤼스 자작이 몸소 밀로스 섬을 다시 가 보자 석상이 이미 현지 관리에게 팔렸다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 러시아 배에 실리기 직전이었다. 뒤르빌과 마르셀뤼스는 대경실색, 곧바로 대사에게 보고를 올렸고, 농부에게 원래는 브레스트 부영사와 계약을 맺잖았느냐 따졌다. 다만 석상의 러시아행은 밀로스 섬 안의 한 수도사가 중계를 했었는데, 프랑스측은 그 선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곧바로 지급한다. 해결. 게다가 때마침 가장 훌륭한 대화수단을 그들이 갖고 있었다. 50여명의 프랑스 보병이다. 게다가 뒤이어 프랑스 전함도 밀로스 섬에 진입했다. 과연 대화는 부드럽게 진행됐다. 그리고 다섯 번째 주인공, 주오토만 프랑스 대사, 드 리비에르 자작은 심지어 일단 자신이 갖고 있던 돈으로 비너스 석상을 사들였었다. 본국에 보고하고 예산 받을 틈이 없었던 것이다. https://fr.wikipedia.org/wiki/Charles_Fran%C3%A7ois_Riffardeau_de_Rivi%C3%A8re 과연 비너스 석상은 루브르 궁의 최고 인기 석상으로 바로 떠오른다. 국왕 루이 18세는 그 공으로 드 리비에르 자작을 곧바로 후작으로 올려줬고 말이다. (후에 샤를 10세가 그를 보르도 공작으로 임명한다.) 루이 18세는 통풍과 괴저로 인해 이동이 편치 않았고, 실제로 그 석상을 보지는 못 했다고 한다. 오늘의 교훈은 세 가지 정도다. (1) 두둑한 선금은 농부를 춤추게 한다, (2) 운과 신속함 모두가 우리편이어야 한다, (3) 훌륭한 대화수단을 갖춰야 일이 부드럽게 진행된다. ---------- 여담 1 : 러시아로의 판매를 주선했던 현지관리(dragoman) 역할의 그리스인은 독립전쟁시 밀로스 주민들에게 살해당한다. 여담 2: 우리나라와 관련 있는 문서나 예술품이 있는 경우, 우리 외교관들도 적극 나서야 하잖을까 싶다. 가령 모 유럽국가에서 이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우리나라 관련 문서나 물건이 나오는 경우 바로바로, 혹은 개인이 나서서 구매가 가능할까? 좀 회의적이다. 여담 3: 우리나라와 딱히 관련이 없는 문서나 예술품도...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나서서 구매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좀 더 회의적이다.
(펌) 일본인: 한국 여자들 성형 많이해 스고이 www
난 일본인들과 펜팔을하기도 하면서 알게된 한가지가 걔네랑 교류하면서 대부분 다 한국인만 보면 저지랄하는걸 처음 알게됨. 예? 제가요? 길만지나가는 한국인들보고 어케 성형했냐 안했냐 얼평질이죠...?? 나나 내 지인들이 길거리 걸어가도 우리 얼굴만 보면 저렇게 얼평질하고 난리인가봄 더알아보니까 일본애들이 유독 저런성향이 심한걸 어디서든 아주 쉽게 볼 수가 있는데 ㄷㄷㄷ니혼진들은 성형을 아예 안해서 한국이 신기해서 저러는거긔?? ㄷㄷㄷㄷ 하도 일본애들이 뜬금없이 한국인한테 성형으로 집착 하길래 나도 일본은 대체 왜저지랄인지 일본 성형 실태를 찾아봤다 ㅎ ? 일본 의학계에서 말하길, 10년도 더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의 70퍼센트 정도가 다 무쌍이였고, 일본인의 30퍼센트정도 비율만이 순수 쌍커풀을 가지고 있었음 일본인 = 무쌍 보유율 70% >>>>>쌍커풀 보유율 30% ㄷㄷ 그렇군ㅎ 뭐 그게 이상한건 아님 ㅇㅇ 동양인인데 무쌍비율이 높은건 자연스럽고 이상한게 아니지... 그런데 10년이 지나자 쌍커풀 가진 일본인 비율이 70퍼센트로 확 오름. 롸?? **10년이 지나자 짧은기간내에 일본인 무쌍보유율 30% <<<<< 쌍커풀 보유율 70%로 변함. 그짧은기간내에 갑자기 혼혈이 우순죽순 생길리도 없고.... 보편적으로 가장 정확한 이유는 <쌍커풀 성형> 임. 일본은 성형붐이 한국보다 매우 일찍 시작한 나라임ㅋㅋ 90년대부터 성형은 일본의 전지역에 퍼지기 시작했고, 그후로 쌍커풀 성형률이 올라가면서 일본인들의 쌍커풀 보유율은 30퍼센트에서 70퍼센트까지 확 올라감. ㄷㄷ 일본인 너네 안하는거 아니엿어??ㄷㄷㄷ 일본 방송에서 소개된 한 일본인 여성. 일본에서 어떤 눈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 서양인마냥 크고 뚜렷한 눈을 한.. 전형적인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니혼st <미소녀,미소년> 스타일로 성형과 화장을 하는 일본인들. 얼굴이 짧고 눈은 세로로 매우 크게 강조되는걸 좋아하는거 같다. 애니메이션이 생각난다 ㅋ 일단 일본의 미의 기준은 남자 역시도 쌍커풀진 눈을 가진 미의 기준을 추구함. 서양인같은 눈을 원해서 서양인이 되려고 성형하는 일본인이 있을정도.... 방송에서도 혼혈을 많이쓴다. 일본 연예인들의 과거와 현재모습 사진. 매우 서양적인 아웃라인 쌍커풀을 추구하는거같다. 눈도 커보이게 속눈썹도 진하게 위로위로 컬링빡!!! 일본인 남자도 마찬가지. 쌍커풀있는 일본식 미남 스타일로 변했다. 이걸본 일부 국까 한국인들: 아니 그래도 한국애들이 성형을 얼마나 많이하는데 빼애애액!!! 논점 벗어난짓 하지말고 ㅋ ㅋ 게다가 일본애들은 세계 성형통계만 봐도...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은 미국과 중국 사이로 항상 모든 성형순위 5위권내에 껴있는나라는..... 일본. 일본. 일본 이요... 이건 내가 세계성형순위 사이트 가서 다운받은 자료인데, 참고로 인터넷에 함부로 돌아다니는 성형통계는 일부 동남아나 중궈들이나 일본애들이 뿌려놓은 주작이 하도 많아서 전문사이트 가서 찾아보길 추천한다. 또한 일본의 각종 특이한 셀프 성형 기구들... 코성형 기구. 쌍커풀 테이프? 쌍커풀 만드는 각종 기구들? 다 일본에서부터 처음 시작함. 사실 저런건 부작용 크니까 비추천ㅋㅋ 그래도 저걸 상품으로 내놓는거보면 잘팔리나보다. 일본의 특이점이 또 있는데, 얘넨 성형을 해놓고도 성형을 <치부>로 생각해 숨기는 일이 매우 많은게 특이한 케이스임. 이런건 사실 일본성형관련해서 조금만 찾아보면 알수있는것들이라 따로 첨부는 안하지만, 성형을 많이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는건 한마디로, 외모를 많이 의식하고, 성형에 대해서도 많이 의식한다는 말임 성형을 성형이라 말못하고 정형.이라고 빙빙 돌려서 말하고, 오죽하면 한국인들은 성형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해서 부럽다는 일본인도 있었다. 성형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된다고 함ㅇㅇ 그래서 그렇게 음침하게 한국인들한테만 존나 지랄했구나...ㅜ 그래서 그런가 그결과는 일본인 지들끼리의 지들이 치부라 생각하는 성형을.. 이상하게도 본인들 성형사실보단 한국의 성형에만 집착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성형과 화장관련된 특집에 정말 관심이 많은 일본채널들.) 저렇게 당당하게 밝히고 다니는 애들도 일부분이고 연예인들한테도 성형질문하면 소스라치게 엄청나게 과장된 부정을 하면서 급 한국인의 성형으로 화제를 돌리는 방송도 있는데, 걍 한마디로 지들끼리 숨기고 싶은 치부를 억지로 남한테, 한국인한테 책임전가하는거다. 우리들은 동양인들의 수많은 미중에 쌍커풀이 없는 가느다란 눈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예를들면 우리나라가 무쌍의 동양적인 눈매의 모델을 추구하는것이나, ) 일본의 미의 기준은 동양인이 가진 작거나 무쌍눈보단 쌍커풀이 있는 혼혈같이 큰 눈과 만화 주인공처럼 커다란 눈망울에 다들 미의기준이 맞춰져있다. 일본애들 보면 무쌍미인인 한국인 아이돌한테 계속 00너무 눈 작다 ww 이러고 있음ㅇㅇ 한국인들은 그 아이돌한테 그런걸로 신경안쓰는데... 일본애들은 저럼. 눈크고 땡그런 그런눈을 매우매우매우 좋아하는 일본인들. 왜저렇게 혼혈과 서양적인 미적기준을 일본은 좋아하는걸까? 일본의 아주 옛날에 나온 모리 아리노리의 <일본 인종 개조론> 이라는 책 내용을 보면, 서구문물, 서양쪽에 갈증이 꽤나 가득한 심리가 잘 나타난다. 라는 내용이 적혀있으며, 모리 아리노리라는 일본인 스스로 백인 우월주의, 백인 동경 사상이 가득한 걸 볼 수 있다. 혼혈정책도 성행하게 되지만 그다지 크게 퍼지진 않는다. 그러나 오죽하면 저런 정책이 생기고...저런책이 나올까 싶다.... 이책이 나오자 일본인들에게 매우 큰 화제와 공감을 많이 샀는데 특히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건 일본 여자들이였다. 특히 이시기때는 심지어 사진조작까지 하는경우가 빈번했는데 보다 더 서양적이게, 예쁘게... 성행하는 일본의 사진조작. 게다가 식민지인 한국인들한테는 한국인들은 일부로 못나게 찍는 등 비열한 수법을 시전했었다ㅠㅠ (고종황제의 사진을 마치 매우 못생기게 키작아 보이도록 찍는 일본 사진기사들이나... 미국인이나 프랑스 사진기사들이 고종황제님을 찍은걸 보면 정말 일본인들이 찍은것과는 너무 다르다) 사진을 조작한 일본의 국왕ㅋ... 한국왕족 사진은 무조껀 못생겨보이게 조작했던 시절의 일본이지만... 사진의 조작따위는 필요없는 이우 왕자님^^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와서, 역시 옛날부터 서양인의 큰눈과 외적인것을 동경하던 일본인들이니 90년대에 성형이란것을 엄청나게 빨리 받아들였고, 많은 일본인들이 남녀 가리지않고 성형에 힘을 빌리고 있다. 심지어 숨기면서까지 하는 성형..... 이는 30퍼 정도밖에 안됐던 쌍커풀 비율이 70퍼센트로 육박하고 예나 지금이나 통계를 보면 얼마나 많은 성형이 일본 내에서 성행 하는지 알 수 있다. (70퍼센트나 올랐다는거도 사실 조금 옛날자료니 지금은 더 많이 오를확율이 높다) 사실 성형하는게 뭐가 잘못이겠냐만, 일본의 매스컴도 그렇고 대중들도 그렇고 지들이랑 관련없는 바다건너 한국인들한테 저짓거리하는 저런애들은 곱게 대해줄 필요 없다ㅋ 일본사이트가면 일본연예인 성형 전 후 사진이 널러퍼져있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사이트에 가지도 않고 별로 그런사진이 있는지도 모르고 관심없는게 대부분임 ㅋㅋ 어째선지 일본애들은 한국사이트에 저런게 뜨면 바로 가져와서 떵떵거린다... 이글보고 너네의 주제좀 알아라ㅜ 토탈 세계 성형 순위 4위인 일본. 인구가 많은 미국과 브라질 중국 다음으로 4위로 우뚝 서있다. 심지어 일본같은경우는 내수시장이 발달돼서, 해외사람들을 유치해 돈을 끌어들이려고 전략하는 한국시장과는 다르게(한국의 30퍼센트는 해외손님들 위주). 오직 자국민 위주로의 성형율이 유지되고 있는데 꾸준히 엄청나게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있다. 문제는 매우 옛날부터,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인 어린 아이들한테도 부모가 성형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사진은 일본의 아침방송인데 잘생겨지고 싶어? 라고 써있음. 사진에 나온 남자아이는 쌍커풀성형을 했다. https://blog.naver.com/charisma987/220963480186 일본성형외과 의사가 말하길 일본은 90년대 후반정도부터 어린애들 성형수술이 보편화됐다고 밝힌다. ㄷㄷ.. 일본의 성형 역사란것... 흥미롭다... 한 일본 방송 역시... 남자 mc : "고등학교에 성형 하는사람들 많나" 일본 고등학생 : "네네 스고이하게 반에 많아요 쌍커풀성형이라든지 ?라..." 성형한 사람 손들어보라는 말에 일본 고등학생 38%가 성형했다고 손을듬 관객 : "에~~~에~~~!" 뭐 일본 고등학생도 저정도인데 사회인이나 그런사람들은 더많을테고 참고로 일본 얘네가 한국에 와서 한국 고등학생들한테도 성형하고싶냐고 물어본적 있더라ㅋㅋㅋㅋㅋ 존나 쓸데없는거 다물어봄... 30프로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하고싶다 대답햇나봄ㅇㅇ 그렇다고 한다... ㅇㅅㅇ 근데 그걸 니네가 알아서 뭘하게... 사실 저질문도 일본인들이 한국인 한테 궁금하다고 해서 저 일본 방송국이 한국학생들한테 물어본거다.. 일본 개애잔... 찌질함의 극치.... 사진 속의 여자는 일본 akb48의 타노유카. 성형했냐는 질문에 급 한국인 성형으로 뜬금없이 얘기를 하고 그후로 한국인을 후려치기 시작한다. 문제는 저런 일본인들 존나많다. 게다가 올해 한국에 성형하러 온 외국인수는 중국인 23000명이 넘고 일본인은 만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저런말하면서 왜 지들이 성형하러 오는거야...? 결국 일본애들은 성형을 자국내에서도 엄청나게 해대지만 해외로 성형하러 가기까지...... 일본애들 보면서 느낀건 성형에 집착하는건 쟤네 못이길거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본의 성형실태에 대한 결론..? 일본 성형 존나 많이한다. 일본애들 성형 많이하는거 숨기고 싶어한다 ㅜ 일본 한국에 존나 집착한다. 일본 한국보다 성형 일찍하고 어린이 성형도 옛날에 성행하기 시작한 나라다. 일본애들 존나음흉하다 ㅋ (출처: ㄷㅋ)
복원한 신라시대 경주 씨티 모습
현재 확인된 유적지와 터를 기준으로 구현함 9월 9일에 헌강왕이 좌우의 신하들과 함께 월상루(月上樓)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성 안에 초가집은 하나도 없고 서울(경주) 백성의 집들이 서로 이어져 있고 노래와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왕이 시중 민공(敏恭)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지금 민간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덮고 짚으로 잇지 않으며, 숯으로 밥을 짓고 나무를 쓰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인가?” 민공이 “신(臣)도 역시 일찍이 그와 같이 들었습니다.” 하고는 아뢰었다. “임금께서 즉위하신 이래 음양(陰陽)이 조화롭고 비와 바람이 순조로와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고 변경은 평온하여 민간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덕의 소치입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는 경들이 도와준 결과이지 짐(朕)이 무슨 덕이 있겠는가?” 산국유사 승려 일연이 쓴 권1 진한조를 보면, “신라 전성기 경주에 17만8936호, 1360방, 55리와 35개의 금입택(金入宅: 고위층 주택)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호를 가구로 치면, 5인 가구 기준 70만~80만, 심지어 100만 이상 인구를 추정할 수 있다. 방은 고대 도시 구역의 기본 단위다. 모량리 유적과 1980~90년대 경주 도심 황룡사 왕경 유적 발굴 성과까지 포함하면, 1방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각 160~120m로 추산된다. 발굴단은 모량리 일대에만 최소 200개 이상 방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른 방의 개수를 현재 경주 안팎의 땅 크기에 맞춰보면, 경주 도심은 900여방, 외곽의 모량리 방까지 합쳐 1360방에 얼추 들어맞게 된다. 방이 경주 남쪽의 불국사 근처 말방리까지 뻗어 있었다는 설(전덕재 단국대 교수)까지 넣으면, 고대 경주는 동서 30㎞, 남북 20㎞에 달하는 광역 대도시였다는 추정 또한 가능해진다. 지금 서울 한강 이남 지역의 면적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