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genii
5,000+ Views

[왕의 경영학] 인재를 파견했던 조선, 인재가 찾아오는 한국 : 1편

2015년 현재, 해외에서 유학중인 한국 대학생은 21만 5,000명에 달한다. 유학생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해외 대학의 학위나 연수 경험이 여전히 유리한 ‘스펙’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학 열기는 과거 조선시대에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왕들은 유능한 신하들을 명나라, 청나라에 보내 최신 문물을 접하도록 했다. 청과 명의 선진 문명을 습득하고 돌아온 유학생들의 지식은 국가 경영에 많은 부분 활용되었다. 이달의 왕의 경영학에서는 역대 조선 왕들이 국비 유학을 보냈던 사례를 되짚어본다. 또한 현대에 들어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의 국비 유학 상황도 함께 살펴본다. 이를 통해 국외로 나가는 유학뿐 아니라,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유학도 빈번한 현재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왕이 아꼈던 인재, 새로운 세상을 보다

세종 – 과학 인재 장영실

조선의 4대 왕이었던 세종(1397~1450년, 재위 1418~1450년)은 건국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은 조선의 정치・경제・문화・사회적 기틀을 다지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던 왕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정치・정책을 뒷받침해 줄 인재가 절실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종대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끈 중심에는 장영실이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장영실은 노비 출신이다. 세종은 장영실의 손재주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장영실을 크게 쓰기로 마음먹는다.
1421년(세종 3년) 세종은 장영실을 윤사웅, 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보냈다. 세종이 그들을 중국에 유학 보낸 경위나 이유는 실록에 기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세종이 장영실 등과 함께 혼천의(渾天儀)*를 만들면서 “중국의 각종 천문 기기의 모양을 모두 눈에 익혀 와서 모방해 만들라”고 지시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세종이 장영실을 중국에 ‘유학’하도록 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장영실이 돌아온 1423년 세종은 그의 노비 신분을 벗겨주었다.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도 내리려 했지만 아버지인 태종과 신하들의 반대로 벼슬을 내리는 데에는 실패한다.
1년 간 중국 유학을 다녀온 장영실은 본격적으로 ‘과학기술전문가’로 활약하게 된다. 유학 후 장영실이 가장 먼저 손 댄 것은 수동 물시계인 경점기(更點器)의 제작이었다. 이는 중국의 물시계를 본 따 만든 것으로 자동 물시계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물시계와 비교했을 때 그 정밀함이 한층 높아져 공로를 인정받았다. 결국 이로인해 장영실은 상의원 별좌에 임명된다. 이후 장영실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1432년(세종 14년) 시작된 천문관측 기구 제작 사업인 ‘의표창제(儀表創製)’사업에서 장영실은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사업 착수 1년 만에 혼천의와 혼상(渾象)*, 정방안(正方案)* 등을 만들어냈다. 장영실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1433년(세종 15년)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 제작에 성공했다. 1438년(세종20년)에는 더 정교한 물시계인 옥루(玉漏)를 제작에도 성공했다. 옥루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혼천의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어 시간과 계절의 변화는 물론 절기에 따라 농사일까지 알려주었다. 일명 ‘다목적 시계’인 셈이었다.
이외에도 장영실은 1434년(세종16년) 금속활자 갑인자, 1440년(세종 22년) 측우기를 제작, 정3품인 상호군까지 올랐다.
장영실의 이러한 성과의 밑바탕에는 세종의 안목과 초기의 유학이 있다. 그의 손재주와 감각이 탁월했다고는 하지만, 세종이 그의 잠재력을 알아차리지 못해 노비에 머물렀다면 이룰 수 없던 업적이었다. 또한 중국 유학이 장영실의 모든 성과의 원인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나은 업적을 이루도록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는 틀림없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조선시대 사서
*혼천의(渾天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 혼상(渾象): 하늘의 별들을 보이는 위치 그대로 둥근 구면에 표시한 천문기기 별이 뜨고 지는 것,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측정
*정방안(正方案): 방위를 바로 잡아서 동서남북을 표시하는 수평판

세조 – 문학 인재 서거정

세조(1417-1468, 재위 1455-1468) 6년인 1461년 이조 참의에 임명된 서거정은 세종, 문종, 세조, 성종대 문신이자 학자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예종, 성종까지 총 여섯 임금을 섬겼다. 서거정은 1444년(세종 26년) 문과에 급제, 1456년(세조 2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했다. 다음해에는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급제를 했다.
1460년(세조 6년) 이조 참의에 임명된 서거정은 사은사로 명나라를 방문하게 된다. 사은사는 명나라와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은혜를 베풀었을 때 이를 보답하기 위해 보내던 사절 또는 그 사신이다. 수시로 보내던 임시사절 가운데 하나였지만, 왕을 대신해 감사를 전하러 떠나는 이들을 함부로 선발했을 리 없다.
서거정은 북경에서 안남국(베트남)의 사신 양곡을 만났다. 서거정이 근체시 한 율을 지어주자, 양곡이 화답했다. 그러자 서거정은 곧 연달아 10편의 시를 지어 응답했다. 이에 양곡은 “참으로 천하의 기재다”라고 감탄했다 한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명나라의 관리들을 놀라게 했던 그는 다수의 국가문학사업에 기여했다. 1469년 경국대전 찬수(纂修)*, 1476년 삼국사절요 편찬, 1478년 동문선 130권 편찬, 1480년 역대연표 찬진(撰進)*, 1481년 신찬동국여지승람 50권 찬진, 1485년 동국통감 57권 완성, 1486년 필원잡기 저술 등으로 후세에 전하고 있다.
서거정은 여섯 임금을 섬기며 여러 차례 명나라를 왕래했다. 1452년(문조 2년)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은사로 갈 때에는 종사관으로 수양대군을 수행했다. 서거정의 능력을 아꼈던 왕들은 그가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 사신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왕의 배려로 명의 사신들과 왕래했던 그의 행보는 타국으로의 이동이 많지 않았던 시절, 그에게 큰 문학적 자산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문과중시(文科重試): 10년에 한 번씩 문·무 당하관을 위하여 설치된 중시
* 문신정시(文臣庭試): 임금의 특명으로 당상관 이하 문신이 임시로 응했던 과거. 선발 인원을 정하지 않고 실력에 따라 합격시켰음
* 찬수(纂修): 글이나 자료 따위를 모아 정리함. 또는 그렇게 하여 책으로 만듦
*찬진(撰進): 글을 지어 임금에게 올림

정조 – 실학의 대표주자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정조(1752~1800년, 재위 1776~1800년)대 실학의 대표 주자였던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는 청나라를 방문하면서 문물교류의 물꼬를 튼 인물들이다. 박지원은 그가 지은 ‘열하일기’로 잘 알려져 있다. 박지원은 1765년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했다. 이후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다가 1780년 팔촌 박명원이 청의 고종 70세 진하(進賀)* 사절 정사로 북경을 갈 때 박명원을 수행한 뒤 열하일기를 써냈다. 열하일기는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면서 시작돼 청황제의 피서지인 열하, 북경으로 되돌아오는 8월 20일까지의 여행기록이다.
박지원이 청을 자원해 다녀오게 된 이유는 홍대용 때문이었다. 박지원은 홍대용과 자주 토론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홍대용이 들려주는 청나라의 산업, 과학, 신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청나라를 다녀온 박지원은 1786년(정조 10년) 50세에 음서로 관리가 된다. 그는 1805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안설’을 저술했다. 또한 청의 문명이 조선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북학 사상’을 설파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정조는 출사(出仕)하여 관료로서 정치에 입문하지 못한 연암 박지원과 직접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비중이 컸던 노론성향의 박지원 가문과 그와 학문적 성향이 같았던 연암학파들, 그가 지은 열하일기의 사회적 영향 등으로 박지원의 존재를 관심 있게 주시하였다.
또 다른 정조 대 인물인 박제가는 박지원의 제자다. 정조는 즉위 직후 규장각을 설치해 젊은 학자들을 유치했는데 박제가 또한 이 때 합류했다. 그는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과 함께 ‘건연집’이라는 사가시집을 출간해 명나라에까지 명성을 날렸다. 1778년에는 채제공*을 수행해 청나라 사은사로 청나라를 방문하기도 한다. 3개월 여의 여행 기간 동안 박제가는 많은 청나라 학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때의 경험은 ‘북학의’라는 대논문으로 묶여 나왔다. 그는 이 논문을 통해 국가 정책과 제도를 비판하고 능력에 따른 관리 등용제, 생산・소비의 중요성, 국제무역의 활성화 등을 강하게 주장했다.
박지원과 박제가를 비롯 홍대용 등 북학파들의 주장은 주로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자는 데 있었다. 이를 통해 국가를 부강하게 함은 물론 상공업을 장려하고, 신분적 차별을 철폐하자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현실 개혁 사상의 바탕에는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했던 왕 정조의 포용력이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청나라를 장기간 방문하며 새로운 문물과 삶의 양식에 눈을 뜬 인재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애석하게도 정조가 사망하면서 정권을 장악한 노론 벽파는 천주교를 빌미로 남인 일파를 숙청하고,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천주교를 인정해야 한다는 실학파들 또한 대대적으로 제거했다. 북학파들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접하고 돌아와 정치・경제・사회 등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기득권층의 벽을 넘지 못했다.
* 진하(進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벼슬아치들이 조정에 모여 임금에게 축하를 올리던 일
* 체제공: 영·정조때 문신
+) 정조의 경영학
+) 영조의 경영학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빗썸 농협 계좌등록 방법 및 입금 출금 방법 상세안내
빗썸 농협 계좌등록 방법 및 입금 출금 방법 상세안내 빗썸 출금방법 상세안내 다음으로 빗썸 원화 및 코인 출금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빗썸 거래소 사이트에 접속해주세요. 자세한 빗썸 농협 계좌등록 방법 및 입금 출금 방법 관련 내용은 해당 글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1. 출금 버튼 클릭 빗썸 거래소에 접속하신 후 로그인하였다면, 상단의 중앙에 있는 메뉴에 지갑 관리 버튼에 마우스를 올려주시면 됩니다. 마우스를 올리셨다면 하단에 펼쳐진 메뉴 중 출금 항목을 클릭해주세요. 2. 주의 안내문 확인 버튼 클릭 다음 간단한 안내문이 빗썸 출금 화면으로 이동하기 전에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사기 등 불미스러운 일로 고객의 금전적인 피해를 줄이고자 공지한 빗썸 안내문입니다. 해당 사항들을 자세하게 읽어보신 후 확인 버튼을 클릭해주시면 됩니다. 이때 오른쪽 아래에 있는 ‘오늘 하루 동안 보지 않기’ 버튼을 클릭하시면, 경고 알림창이 하루 동안 나타나지 않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3. 원화(KRW) 버튼 클릭 빗썸 거래소의 출금 지원은 현재 원화(KRW)와 여러 가지 코인 출금을 지원합니다. 이때 출금 하단에 있는 항목 중 코인 탭 버튼을 클릭하시면 코인 출금 페이지로 이동하며 원화(KRW) 버튼을 클릭하시면 원화 출금 페이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4. 출금 안내사항 및 유의사항 확인 빗썸 출금 서비스는 관리자 확인 후 진행되며, 그에 관련한 입/출금 실명 확인, 출금 시스템 은행별 점검 시간, 심사 결과에 따른 지연시간(72시간)에 관련된 내용이 안내됩니다. 해당 상황을 꼼꼼히 읽어보신 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5. 출금 요청금액 작성 다음 화면에서는 빗썸에서 출금 가능한 현재 잔액을 볼 수 있습니다. 원화를 출금할 때 수수료는 기본적으로 출금 최소액수 5000원과 건당 1000원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본인이 출금하고자 하는 출금 요청금액을 작성해주세요. 6. 계좌번호 입력 출금할 계좌번호와 은행을 선택 및 작성해주세요. 이때 은행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농협은행(NH)만을 지원하게 됩니다. 7. KRW 출금요청 버튼 클릭 추가적인 보안 인증을 해야만 코인이나 원화를 출금할 수 있습니다. 보안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휴대전화 인증을 진행하신 후 하단의 KRW 출금 요청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8. 빗썸 출금완료 출금 요청 버튼을 클릭하셨으면 관리자 승인 후 연동한 계좌로 원화 출금이 완료됩니다. 빗썸 농협 계좌등록 방법 및 입금 출금 방법 상세안내 오늘의 포스팅에서는 빗썸 농협 계좌등록 9가지 방법과 입금방법 및 출금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고 상세하게 알아보고 쉽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국내 및 해외의 다양한 기업들이 암호화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는 뉴스가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암호화폐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때 암호화폐는 동전이나 지폐 등의 실물로 존재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화폐를 말합니다. 일반 화폐와는 다르게 암호화폐는 처음 해당 화폐를 만든 사람이 설정한 규칙을 기반으로 가치가 매겨지게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폐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유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암호화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 중 빗썸을 이용하기 위한 자세한 가이드북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빗썸 농협 계좌등록 방법 상세안내 1. 올원뱅크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2. 입출금계좌개설 클릭 3. NH x 카카오페이 통장 클릭 4. 빗썸 로그인 5. 원화 입금 클릭 6. 예 버튼 클릭 7. 생년월일, 거주지, 계좌번호 입력 8. 발급 계정 확인 9. 빗썸 농협 계좌등록 완료 빗썸 농협 계좌등록 9가지 방법 상세안내 해당 거래소는 원화로 출금하거나 입금하려면 농협중앙회 계좌를 활용하여 실명 확인을 완료하셔야 가능합니다. 농협중앙회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은행에 방문할 시간이 빠듯한 분들은 농협 비대면 계좌 개설을 올원뱅크 어플을 활용하여서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비대면 계좌개설에 관한 내용은 농협 비대면 계좌개설 방법 2가지와 올원뱅크 이체한도 변경 글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1. 올원뱅크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우선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올원뱅크를 검색하셔서 어플을 내려받아 주세요. 2. 입출금계좌개설 클릭 어플을 설치한 후 상단 오른쪽에 있는 메뉴바 항목에서 상품, 입출금계좌개설 버튼을 순서대로 클릭해주세요. 3. NH x 카카오페이 통장 클릭 다음 해당 항목에서 NH x 카카오페이 통장 버튼을 클릭하여 주세요. 다음 신분증(운전면허증 또는 주민등록증)과 본인 명의 계좌정보, 본인 명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 간단하게 비대면 계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4. 빗썸 로그인 위의 방법으로 농협 계좌개설이 완료하신 후 원화 입금을 하기 위해서는 빗썸 거래소에 등록하셔야 합니다. 등록하기 위해서 우선 빗썸 거래소에 로그인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5. 원화 입금 클릭 거래소에 로그인 하셨으면 원화 입금 버튼을 클릭합니다. 6. 예 버튼 클릭 앞서 농협 입출금 계좌를 개설하였으니 '예'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7. 계좌번호, 생년월일, 거주지 입력 거주지, 생년월일, 계좌번호 등 관련 정보를 입력하신 후 ‘현재 조회될 계좌번호로 원화 입출금 계좌번호 신청을 진행합니다.’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8. 발급 계정 확인 2단계 과정에서 최종 발급 계정을 확인한 다음 발급 신청 버튼을 클릭해주시길 바랍니다. 9. 빗썸 농협 계좌등록 완료 해당 버튼을 클릭 후 약 15초~20초에 안에 계좌등록 신청이 완료됩니다. 빗썸 입금방법 상세안내 위의 방법으로 농협 계좌를 개설하고 거래소와 계좌 연동을 완료하셨으면 원화를 계좌로 입금하여 거래를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1. 원화입금 버튼 클릭 빗썸 사이트에 로그인한 다음 원화 입금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2. 빗썸 원화 입금 계좌번호 복사 해당 빗썸 계좌로 농협은행에서 입금하라는 쉽고 간단한 안내 문구가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서 빗썸 원화 입금 계좌번호를 복사해주세요. 3. 빗썸 계좌입금 농협 계좌 및 어플에 로그인하신 후 원화를 위에서 복사한 계좌번호로 입금하면 손쉽게 입금이 완료됩니다. 출처: https://oppapost.com/541
한국이 약하면 진짜 죽던 시절.gif (스압주의)
1961년, 머리카락을 가발 공장에 팔기 위해 줄을 선 여성들의 모습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를 같이 온 어머니가 달래고 있다. 1961년, 당시 서울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세대인 1954년생이 초등학교 (당시 명칭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향하는 모습. 1962년 경상남도의 장날 풍경 짐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 강원도 춘천에서 칡뿌리를 말리는 주민의 분주한 모습 1962년, 대구에서 열린 우시장 1962년, 모내기가 한창인 서울시 성동구 논현동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1동, 논현2동) 1963년, 평범한 남해 어촌의 풍경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들판으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있다. 집의 재산인 소를 배불리 먹이고 잘 데리고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모습의 학생. 달리기를 겨루며 체육 활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고무신이 닳을까봐 맨발로 운동장을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영유아사망률 1000명 당 218명. (2021년 세계 최악의 영아사망률을 기록하는 우간다의 2.3배) 신생아 5명 중 몸이 약한 1명은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시대였다.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장려하여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자는 표어가 방송되었다. 1964년, 한국전력 직원들이 경상북도 영양군에 전봇대를 설치하고 있다.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가정까지 전기가 들어가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보릿고개 넘기기 운동'이 한창인 시골의 분주한 모습 전국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군에 내려온 대학생들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늘상 문제가 되었던 쥐떼 해결을 위해 '쥐잡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잡힌 쥐를 보고 속이 시원한듯 웃는 어른들 1965년, 춘천 수력 발전소가 완공되었다. 산 능선에 올라선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의 수업 모습 교련 시간에 M1 총기 분해조립, 맨손으로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전국에 큰 비가 내렸다. 잠긴 집과 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머리를 다친 동생을 돌보는 형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중부지방에서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청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서고 있다. 흙을 퍼내는 아버지들과, 갓난아이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복구를 돕는 어머니들 범람 위기의 청주 무심천에서 청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손보고 있다. 교복을 입은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삽을 들고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필리핀이 2배 이상 앞서던 시절,  거액을 들여 초빙한 필리핀 경제사절단이 내방했다. 일렬로 도열한 한국 관료들의 90도 인사와 환대에 경제사절단 단장인 필리핀 농림상 로드리게스와 필리핀 사절단이 흡족하게 웃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어이없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이다. 1965년, 한국은 방글라데시를 2달러 차이로 처음으로 제쳤다.   파독 광부 예비소집에 모인 인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서독 탄광으로 떠나기 위한 광부 모집에 최종 합격한 20대의 젊은 광부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배웅하는 가족, 지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파독광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한복을 입고 가족들을 향해 손수건을 흔드는 파독 간호사들 이륙 준비를 하는 여객기. 공항에 모인 시민들과 가족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파독 간호사들이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탄광의 끝자락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당시 파독 광부 평균연령은 25세, 파독 간호사 평균연령은 23세였다.  (출처 :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국군의 남베트남 파병이 결정되었다. 만 38세의 나이에 맹호부대 사단장 겸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소장(당시 38세, 6.25 참전)이 수통과 탄띠를 착용하고  출발 전 현충원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수도사단 맹호부대 사단장 - 소장 채명신 (당시 38세, 6.25 참전)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 - 소장 이소동 (당시 38세, 6.25 참전)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여단장 - 준장 이봉출 (당시 39세, 6.25 참전) 1965년, 파병을 위해 도열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병력 전선으로 떠나는 제 9보병사단 (백마부대) 장병들의 결연한 표정 부동자세의 해병대 수색대 병사들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파병 장병들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노인과  부채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화여대 총장 김옥길 여사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파병 장병들을 위해 쓴 문구가 방송되었다.  '조국 떠나 만릿길  온 겨레의 마음이  그대들의 방패가 되리  아세아 (아시아)의 최정예,  우리 국군 가는 길  오직 승리뿐이다.' 베트남 전선으로 향하는 국군 수송을 위해 36개편의 열차가 동원되었다.  수송 열차가 지나는 역, 마을 어귀마다 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 대구역에서 잠시 정차한 수송열차. 국군 장병을 위해 기차역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중년 여성 한 병사가 역까지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항에서 승선 전, 부하들을 향해 악수하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해병 소위 이학철 (당시 23세) 파월 1진 해병 청룡부대 제3대대 9중대장 김종세 대위 (중앙, 당시 28세),  박준교 상병 (왼쪽, 당시 22세), 정명국 일병(오른쪽, 당시 21세)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세 대위: "월맹 정규군 (북베트남 정규군)이 밀림에서 미군도 위협할 만큼 맹위를 떨치고 있고, 국군 장병들에 대해서 '단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고 비방하고 있지만   산악에서 단련된 소부대 전술, 체력과 같은 신체능력, 실제 전투에서의 호전성은 우리 병사들이  크게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두렵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않습니다." 마지막 승선 인원인 맹호 혜산진부대 소속 소대장 소위 최정길(당시 24세)이  부산시 부시장을 비롯한 환송 인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당시 국내 최대의 여성단체 한국 부인회 회원들이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떠나는 장병들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들과 수송선 난간을 가득 메운 장병들. 출발하는 수송선. 부산 시민들의 응원에 군가로 화답하는 장병들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는 해병 병사의 모습 1인당 국민소득 110달러 시절. 성대한 위문공연도, 거창한 위문품도 없었지만  시민들은 장병들의 무사귀환을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첫 국내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시판되었다. 납땜질에 열중하는 어린 여공들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자' 식목일에 나무를 심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국민들. 남녀노소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가을 날, 고등학생들이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 흙바닥 위에서 유도 대결을 펼치고 있다. 1967년, 제2회 전국학생씨름대회. 씨름 프로대회가 존재치 않던 시절,  (씨름 프로대회는 80년대) 전국 고등학교에서 힘 좀 쓴다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는 서울 고등학생들. 치열한 결승전, 경북 영신고등학교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강원도 삼척시에 유례없는 대폭설이 내렸다.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는 주민들. 생활 체육으로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는 씨름이 소개되었다. 씨름 대회를 구경하는 수많은 인파들. 국군 장성들이 베트남 전선을 방문했다. 전쟁터에서 경계근무 중인 해병 병사의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웃는 육군참모총장. 주월 맹호부대 병사들이 시멘트로 만든 역기로 밀리터리 프레스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임관과 동시에 베트남 전선으로 파병될 ROTC 5기생 생도들이  대간첩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교관으로부터 산악 게릴라전 교육을 듣고 있다. '웃지않는 한국 해병들' - 미국 UPI 통신 보도 1967년, 짜빈동 전투에서 중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정예 1개연대 병력과  (호치민 휘하의 월맹군 제2사단 1연대) 맞붙어 승리한 해병 11중대 장병들이  미군의 초청을 받아 계단 위에서 미군의 위문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정경진 대위 (당시 28세, 중대장)와 김용길 중사 (좌측, 당시 26세),  중앙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어느 청룡부대 11중대 병사가 카메라에 담겼다. 서울 운동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복싱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인 '철권' 김기수 (당시 27세)가 도전자 프레디 리틀 (미국)과 15라운드까지 맞붙고 있다. 이를 악물고 덤비는 김기수의 기세에 밀리는 프레디 리틀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시민들 타이들 방어에 성공한 김기수(당시 27세)의 기념촬영 1968년, 부산시 풍경 1968년, 서울의 모습 하늘에서 본 1968년 서울 첫 개통한 아현고가의 모습.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고 있다. 1969년, 한강철교 복구공사, 작업에 열중하는 현대건설 노동자들의 모습 서울과 부산을 잇는 한반도 최초의 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모습 부족한 중장비 대신 인부들이 달라붙어 바위를 깨고 길을 닦고 있다.  1969년, 나룻배들이 경부고속도로 낙동강 방면 공사에 쓰일 석재를 운반하고 있다. 1969년 연말,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포항제철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허허벌판인 영일만의 모습 1970년 1월 1일, 영일만 앞바다에 떠오르는 일출 삼천만이 힘을 합치면 역사는 바뀐다는 내용의 표어가 방송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삼천만 하나된 힘, 역사를 바꾸리라.' 한국 평균 나이 23세 시절 출처
[토박이말 살리기]1-39 늘차다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늘차다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달인 #능수능란하다 #숙달하다 [토박이말 살리기]1-39 늘차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늘차다'입니다. 이 말을 두고 말집(사전)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능란하고 재빠르다'라고 풀이를 하고 '늘찬 일솜씨'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 (솜씨가) 아주 익숙하고 재빠르다'고 풀이를 해 놓고 "김 씨는 일솜씨가 늘차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일을 금세 해 버리더라고."를 보기월로 들었습니다.   저는 '능란하다'가 '익숙하고 솜씨가 있다'는 뜻이고 '익숙하다'는 것은 '일 따위가 손에 익다'는 뜻이니 '늘차다'를 '일 따위가 손에 익어서 솜씨가 있고 재빠르다'라고 풀이를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숙달된 조교'라는 말이 생각났는데 '숙달된 조교'를 '늘찬 조교' 라고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 '숙달하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익숙하게 통달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고 '통달하다'는 ' 사물의 이치나 지식, 기술 따위를 훤히 알거나 아주 능란하게 하다.'라고 풀이하고 있으니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일 따위가 손에 익어서 솜씨가 있게 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달인'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달인'을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통달하다'를 가지고 말하자면 '통달한 사람'이 되니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늘차다'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달인'을 '늘찬 사람' 또는 '늘찬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말집(사전)에서 '능수능란하다', '달인'이라는 말을 풀이할 때 '늘차다'라는 토박이말을 가지고 풀이를 하고 '능란하다', '숙달하다', '통달하다'와 비슷한 말에도 '늘차다'를 넣어 주면 모르는 사람들도 찾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무지개달 열아흐레 한날(2021년 4월 19일 월요일) 바람 바람
[친절한 랭킹씨] 초봉 많이 주는 직업 10 & 적게 주는 직업 10
직업을 고르는 기준, 적성도 적성이지만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 또한 핵심 잣대가 될 텐데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편한 건 직업의 세계에서도 진리. 어떤 직업의 초임 연봉이 가장 높을까요? 우선 큰 틀에서의 직업 분류로 살펴봤습니다. 한국표준직업분류를 보완, 현장에서 직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한국고용직업분류(KECO*)에 따른 조사입니다. * Korean employment classification of occupations 전체 10개로 나눈 직업군 중 초봉이 가장 높은 건 경영·사무·금융·보험직. 평균 3,456만원을 수령했습니다. 보건·의료직(3,383만원), 연구직 및 공학기술직(2,989만원) 등의 전문직이 뒤를 이었지요. 반면 미용·여행·숙박·음식·경비·청소직은 2,104만원으로 최하위에 그쳤습니다. 10개 직군 전체 평균은 2,828만원. 그렇다면 이들 직업군을 보다 잘게 쪼갠 순위는 어떨까요? 전 직업 통틀어 초봉 순위 1위를 차지한 건 정신과 의사. 8,333만원으로 유일하게 8천만원대를 받았습니다. 마음 치료란 모름지기 이 정도는 수령할 가치가 있는 일일 터. 이어 말만 들어도 엄청난 일일 것 같은 헬리콥터 조종사(7,497만원)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주로 의사들이 10위권을 장식한 가운데, 행정부 고위공무원(7,135만원)이 초임 연봉 7천대를 넘기며 5위에 올랐는데요. 반대로 초봉이 적은 직업들도 살펴봤습니다. 창작과 가난은 여전히 떼기 힘든 걸까요. 소설가가 평균 417만원으로 가장 적게 받고 있었습니다. 연극 및 뮤지컬배우(1,134만원), 가수(1,306만원), 모델(1,387만원) 등도 초봉 낮은 직업 10개 안에 들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일부 톱스타나 유명인을 빼면 문화·연예계 종사자들은 여전히 박봉에 시달리고 있는 것. 고용 상태가 불안한 방과후교사들 역시 만족스러운 첫 연봉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 어떤가요? 직업별 초봉 순위, 잘 보셨나요? 여러분이 해당하는 직군, 혹은 갖고 싶은 직업의 초임 연봉 얼마인가요? ----------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코너명 및 콘셉트 도용 금지>
[강남구]래미안 포레, 한양수자인 3억대에 입주하기 노하우 편!-실제 내부 사진
이데일리TV, 한국경제TV, 머니투데이 TV 미녀 앵커와 함께 하는 내집 만들기 프로젝트! --> 서울 강남 아파트 2억대로 살기! 노하우편! 안녕하세요! 공인중개사/투자자산운용사/장기전세주택전문가 황진경입니다. ~ 나른한 오후입니다아~ 맛점 하셨나요? 아직도 서울 강남/서초/송파에 집 20~30억 빚내서 사고, 대출이자까지 30년 동안 갚으면서, 1년에 2000만원 넘는 보유세도 내고 계세요? 이제 투자의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집 살 목돈으로 차곡차곡 재테크 하셔서 노후 준비와, 삶의 질 업그레이드 하시고 장기전세 제도 활용해서 20년동안 안정적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에 거주하시면 됩니다!! 서울 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서울시와 sh공사에서 장기전세라는 좋은 제도를 13년이나 이어오고 있었단거 알고 계신가요? 좋은 정보를 알아보는 안목과 실천에 옮기는 실천력!!만 있으면 누구나 서울의 중심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하실수 있습니다! 요즘은 거주할 집에 몇 십억씩 들이는 시대는 지난거같아요~ 20억짜리 집 하나 사서 몇 억 오르면 뭐하나요? 어차피 팔려고 하면 이사갈 곳도 이미 그 정도 올라서 내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가치가 크게 올랐다고 볼수 없습니다. 차라리 집 살 돈으로 다른 재테크를 통해 부를 축적해가는 것이 요즘 투자의 트렌드입니다.! 아래 제 블로그에 강남구에서 2억대 전세 살기 노하우편 보시면 아주 쉽고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참고하셔서 부자 되시는 지름길 저와 함께 걸어봐요^^ https://blog.naver.com/clickme6/22231528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