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ct
▲1월 5일 300여만원의 전자금융사기를 당했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 30분 안에 은행 콜센터에 본인과 범인의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그 다음엔 △본인 계좌가 있는 은행에 가서 범인이 사용한 IP와 이체 내역이 적힌 서류를 받아 △거주지와 상관없이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한 뒤 △범행 계좌가 있는 은행에서 통장 잔고를 확인해면 된다. ▲이때 잔고가 남아있으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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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6일 아침이 밝았다. 신고접수를 위한 증빙서류를 받기 위해 신한은행에 들렀다. 행원은 돈이 이체된 날짜와 시각, 그리고 범인이 이체 실행에 이용한 IP가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을 건네줬다.
“거주지 경찰서로 가라”고 했는데…
정확한 신고 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갔다. 사이버수사대 정현준 경장은 “거주지를 관할하는 경찰서로 가서 신고를 접수하라”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동작구 사당동이다. 이곳을 관할하는 경찰서는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동작경찰서다.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지하철로 40분 넘게 걸리는 곳에 있다.
답답했다. “전자금융사기는 인터넷에서 이뤄졌는데, 왜 거주지 경찰서까지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 경장은 “아무리 급해도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한시가 급한데, 동작서는 너무 멀다”고 하자 “그렇다면 가까운 종로경찰서로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종로경찰서에 갔더니, 신고 접수 담당자는 “금융사기는 아무 경찰서에서나 신고 접수가 가능하다”고 했다. 진정서를 쓰고 종로서 사이버 수사실로 갔다.
알고 보니 ‘금융사기’는 아무 곳에서나 신고 가능해
사건을 담당한 종로경찰서 전현진 경장은 “금융사기 조직은 VPN이라 불리는 가상의 인터넷망을 이용해 피해자의 계좌에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VPN은 일종의 ‘우회 IP’를 말한다. 범인이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전 경장은 “국내에서 접속이 차단된 성인사이트에 들어가기 위해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VPN은 유동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추적해 들어간다 해도, 피의자를 찾기는 어렵다고 한다. 내게 사기를 친 범인이 사용한 IP도 VPN이었다. 전 경장은 “(공인인증서 발급을 목적으로 걸려온) 전화도 외국에 있는 통신망을 통해 걸어온 것”이라고 추정했다.
“통장 명의자에게 책임 물을 수 없어”
범죄에 사용된 하나은행 계좌는 대포통장일 가능성이 높다. 전현진 경장은 “계좌를 추적하면 통장 명의자는 거의 100% 잡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통장이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빌려줬다는 고의성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했다. 범인들은 인터넷에 공지를 올려 계좌를 사들인다.
전현진 경장은 “현실적으로 범인을 잡기가 힘들다 보니 사이버 수사대는 검거보다 사기 예방책 홍보에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홍보가 강화된 이후 피해자 수가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피싱과 대출 사기를 포함, 지난해 상반기(1~6월) 월평균 금융사기 피해자 수는 3417명. 이후 7월 2969명, 8월 2158명, 9월 2120명, 10월 1200명으로 피해자가 줄어들었다. 금융사기 피해액도 지난해 상반기 월평균 261억원에서 지난해 10월 85억원으로 67.4%나 줄었다.
경찰, 검거 대신 예방책 홍보에 집중
피해 규모는 줄었지만, 사기 당한 돈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피해금액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범인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대포통장 명의자나 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2가지 방법이 있다. 전현진 경장은 그러나 “범인이 확인되지 않아 ‘성명불상’으로 기소가 중지되는 경우가 많고, 민사소송은 승패가 분명한 형사소송과 달리 책임 비율이 제각각”이라고 했다.
사건 확인서를 받아 하나은행으로 갔다. 범인이 이용한 계좌에 돈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경찰은 “범인이 곧바로 돈을 빼지 않았거나, 또 다른 계좌로 옮겨놓지 않았다면 피해금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돈이 그대로 있네요”… 고맙다! 지연이체제도
“돈은 그대로 남아있네요.” 행원이 말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돈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권이 지난해 9월 2일부터 실시한 ‘지연이체제’ 덕분이었다. 100만원 넘는 돈이 입금되면 30분이 지나야 ATM에서 돈을 뽑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이는 계좌이체에도 적용돼, 이체 받고 30분이 지나기 전까진 돈을 옮길 수 없다. 이 30분이 피해구제의 ‘골든타임’으로 작용했다. 행원은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 30분 내에 재빨리 본인과 상대방 계좌를 정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고는 본인 계좌가 있는 은행의 콜센터에 연락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고 했다. 나는 피해 사실을 알고 16분 만에 신고해 변을 피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전현진 경장은 한가지 피해 사례를 들려줬다. 지난해 중순에 나와 거의 같은 방법으로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범인은 “스마트폰 뱅킹의 보안을 점검해야 하는데 GPS가 서로 충돌해서 진행이 안된다”면서 “잠시 폰을 꺼달라”고 말했다 한다. 아예 계좌를 정지시키지 못하도록 물밑 작업을 한 셈이다. 전 경장은 “피해자는 폰을 끈 채로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무려 600여만원이 인출되고 말았다”고 했다.
통장 명의자와 협의 거쳐야 환급받을 수 있어
곧바로 은행에 환급을 요구했다. 그러나 “바로 돌려줄 수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범행에 사용된 통장 명의자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종로경찰서 송영민 경장은 “대부분의 경우엔 환급이 가능하다”면서 “만약 명의자가 지급을 거부하면 금감원이 중재에 나서 돌려받게 해준다”고 했다. 종로경찰서 백영조 경위는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은행은 바로 (피해금액을) 돌려주면 되는데도 항상 책임을 돌린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끝>
절대, 절대 속으시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