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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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상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보고 한참 웃었네요 ㅋㅋ ♤ 네이버 지식in
........ 그래, 마츠들아, 잘 깨고 있어!!! 좀 더 힘을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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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hs3 사귀자고 했는데 고백 받은 사람이 오소마츠상이라는 애니에 나오는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거절해서 생긴 일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고백한 사람은 오소마츠상이라는 애니를 몰라서 거절당한 이유를 모르는것이죠~ 혹시 유머 커뮤니티에 올려서 그러시는 건가요... 웃긴거라서 유머에 올렸더니~ 😅😅 에궁~ 죄송합니다.. 원하신다면 유머 커뮤니티에서 카드 내리겠습니다!
아낰ㅋㅋㅋ완전자랑스럽다 ㅋㅋㅋ
육진구가 뭐 어때서
난 이치파
아...뭐지 이녀석들은 진짜 똑같이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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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 원양 (夏侯惇 元讓) A.D.? ~ 220
이 칼럼에서 앞서 다뤄진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나아가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대부분, 본래의 생애와 인물됨이 평가절하 내지는 너프를 잔뜩 받거나 또는 버프를 이빠시 받은데 비해... 버프or너프를 떠나 그 실제와 소설 속의 이미지 차이가 확연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오늘의 주인공인 "하후돈"이다. 오늘날 중국 안휘성 보저우시인 "패국 초현" 출신이며 조조와 동향이고 여기는 당시 서주의 소패 인근인데, 그때의 이 곳은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과 후한의 수도인 낙양, 그리고 업과 허창과 함께 후한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인 꽤나 잘 나가는 동네였다. 도시남자 하후돈은 어려서부터 터프가이의 싹수를 뽐내며 자란 대개의 무장들과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학문을 배우던 나름 곱상한 유년~청소년기를 보냈고 대체로 학당에 나가 공부하고 교육받던 당시의 학생들과 달리 집으로 스승을 모셔 배우는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은근 좀 사는 집 아들이였던거 같다. 하기사, 파탄에 가까운 후한 말의 배곯는게 일상인 여느 백성들에게 교육이 사치였던 시절, 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중산층 이상은 되었다는 반증.(올~~) 그러던 돈이가 14세 때.... 어떤 이가 그의 스승을 하후돈 앞에서 모욕하자, 그 자리에서 패죽였다는 기록을 보건데 단순 중2병을 넘어 이미 그 나이 때부터 완력도, 의기도 남달랐던 슈퍼청소년이였던거 같다. 지금 만약 어떤 중학생이 누가 지네 담임 흉본다고 그 사람을 때려 죽이면 바로 소년원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하후돈이 강직하다며 사람들이 그의 의로움을 칭찬한걸 보면..... 진짜 후한 말 중국이 개판은 개판이였던 모양.ㅋ 어릴 때부터 조조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체구가 작고 근력도 그냥저냥이던 조조의 주먹 노릇을 했던 하후돈은 그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도 조조가 거느렸던 숱한 인물들 중 가장 드높은 충성을 바친 맹목적인 조조빠였고 조조 역시 자기 휘하의 문무에서 날고 기던 무수한 쫄자들 중 하후돈을 가장 아꼈기에 그런 하후돈은 그래서인지 항상 본인의 능력 이상의 직위와 직책을 맡았었다. 연의에서는 물불 안가리고 무예와 용맹이 대단하여 조조세력의 초창기, 전투에 앞장서는 맹장으로 그려지나 사료에는 그의 군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여포가 활개치던 시절에는 조조와 여포의 전투에서 여포군의 사항계에 속아 인질로 잡히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하후돈을 득템하여 몸값을 요구하던 적들에게 당시 조조휘하의 '한호'라는 하후돈의 부장이 협상 그런거 없이 인질범들을 그대로 공격했고 하후돈은 그 혼란을 틈타 탈출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ㅋㅋㅋ 물론, 한호 입장에서는 인질극에 휘둘리다 군세가 꺾이고 군법이 문란해져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그랬고 후에 조조 또한 한호를 매우 치하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앞으로 그 어떤 인질극에서도 절대 상대와 타협없이 인질의 생존과 구출여부 떠나 공격하라는 메뉴얼을 정했다는... (하후돈 지못미;;;) 하후돈은 이 당시 여포와의 전투에서 인질로 잡히는 것도 모자라, 화살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며 "장애인"이 되는 오지게 재수 잡치는 일까지 당하고 만다는.... T-T 우리가 알고 있는 애꾸간지폭발의 하후돈은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적장이 쏜 화살에 왼눈을 직격 당하자 화살을 뽑아, 딸려 나오는 안구를 씹어 먹으며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고 외치고는 그대로 말달려 자기 눈에 활을 쏜 고순의 부장인 조성을 한 창에 꿰어 죽이는 그야말로 개간지의 카리스마를 뿜는 장면이 나오지만.... . 이건 진정 개소리 of the 개소리가 아닐 수 없고 하후돈이 받은 역대 최고최강의 버프라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전투 중 누가 어디에서 쏜지도 알 길 없는 난전이 어딘가에 맞고 원바운드 되어 눈으로 튀었거나 또는 아슬아슬히 눈가를 스쳤거나 해서 다쳐 그리 된 것. 실제로는 눈에 화살을 맞으면 거의 즉사하거나 쌔뻑좋게 살아도 어마무시한 통증과 출혈에 의한 쇼크로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아무튼 저무튼간에, 하후돈은 이렇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요즘 기준으로 시각장애 6급에 해당하는 "단안실명 시각장애인"이 된다. 참고로 단안실명은 시각장애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고...ㅋㅋ 애꾸관련 이야기를 더해 보자면, 일단 한 눈이 저리되면 당장 원근감과 남은 눈의 시력도 크게 떨어지며 일상에서 남은 눈의 피로도 쉽게 온다. 저 당시의 전투는 거의 대개 칼과 창이 맞붙는 백병전! 사지 멀쩡해도 사소한 삑사리 한 번에 죽거나 병신이 되기 십상인 와중에 시야각이 크게 제한되는 애꾸는 엄청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설령 하후돈이 진짜 혼자 무쌍난무를 찍는 무력깡패라 할지라도 저 시점부터는 전투력이 급감했을 것이며, 실제로 하후돈은 저 시점부터 전투의 전면에 나서는 지휘관보다 주로 후방지원이나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닉 퓨리처럼 검은 안대를 차고 나와 궁예간지를 자랑하지만, 역사기록에는 안대착용에 관련된 언급이 없기에 아마 그냥 드러내고 다녔을걸로 추측한다. 하후돈이 삼국지연의나 그 후의 여러 매체들에서 맹장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외눈"에서 오는 어딘가 모를ㅎ 오히려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 동서양 막론, 예나 지금이나 외눈 + 검은안대는 강력한 악당보스의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지금도 영화나 만화보면 외눈들은 약국이나 안과에서 주는 하얀안대가 아닌 어디서 샀는지 꼭 검은안대를 했고 그 대상들은 해적선장, 빌런, 주인공의 동료라도 나중에 배신 때리거나 또는 악당이였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 일행되는 놈들이 많다. (하긴, 같은 애꾸라도 하얀안대 끼면 바로 환자이미지) 애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쩔 수 없는 게..ㅋ "애꾸눈"이미지는 정사나 연의나 솔직히 별반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이 없음에도 하후돈이 조조측의 빼놓을 수 없는 장수 중 하나로 각인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고.. 당시에야 빡치고 우울했을 하후돈 본인이겠지만 눈 하나를 내준 덕에 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난 현세에서도 하후돈을 조조측의 메이커 장수가 되게 해줬으니 너무 억울해 할 건 없지 않나 싶은ㅎㅎㅎ 훗날, 후한 최고의 아가리파이터이자,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예형"이 하후돈을 "완체장군(完體將軍)"이라고 깠는데, 저 말 뜻 그대로는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는.. 이는 애꾸인 하후돈을 비꼬아 놀리는 말이다. 혹자는 비쥬얼이 좋았던 하후돈을 허우대만 멀쩡하다며 놀리는 한편, 나름 외모는 인정한다는 말이였다고도 하는데, 사료의 원문과 예형의 스타일 및 당시 분위기를 고려 시... 그냥 비꼬고 놀린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위에서 살짝 언급되었지만, 당시 기준에 하후돈은 용모가 꽤 먹어주던 모양인지 외모의 훈훈함, 멋짐을 짧막하게나마 언급된 자료들이 있다. 성격도 대단히 좋은 양반이였던 걸로 전해진다. 조조따라 거병 후, 줄곧 조조진영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훗날 무관직의 정점인 대장군에 올랐음에도 생애동안 청렴하고 검소하여 물욕을 부리지 않았고 간혹 어쩌다 포상을 받아도 자신의 부장들과 병사들에게 배분 해줬으며, 애꾸가 된 다음 하후돈이 지나가면 종종 병사들이 "맹하후(盲夏侯/장님하후돈이란 뜻)"라며 수군대고 놀려도 앞에서는 모른체하고 막사에 들어가 혼자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부장들이나 간혹 병사들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웃으며 떠들기도 하여 병사들에게는 위엄 서린 어려운 지휘관이라기보다 친근한 형님 타입이였고 한중정벌 당시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순찰 중 예상 못한 코스에서 장로의 병사들과 마주해 난전을 벌이던 생사위기에 처했을 때, 부장 하나가 "장군! 에워싼 적병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다급히 외치자, "다행히 내 눈에는 적병이 반만 보이니 괜찮네!"라며 위기상황에서도 농을 치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 조크도 날릴 줄 아는 나이스가이였다. 장수들에게는 군법을 엄정히 적용했으나 일반 병사들에게는 비교적 널럴히 대하여 큰 중죄가 아니라면 되도록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라 누가 조조에게 소원수리라도 긁었는지, 조조에게 불려가 군기강 해이유발 관련으로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군중에도 학자를 초빙해와 가르침을 받을만큼 학구열도 대단했고, 그래서인지.. 단지 야전임무뿐 아니라 다양한 군사관련 행정처리도 탁월했다고 한다. 토목에도 소질이 있는지, 진류태수 시절에는 가뭄이 들자 병사들 동원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때 본인도 같이 작업복을 입고 흙을 짊어 날랐다. 위에 나열된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병사들과 가까움 + 후방보급임무 위주 + 군무행정탁월 + 공사에 능함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져, 삼국지 좀 아시는 분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하후돈의 별명 중 하나인 "행보관" 타이틀이 생겨난 것. 실제로 군사적 업적이 거의 없음에도 조조가 그를 여러 기라성같은 명장, 맹장들의 윗자리에 앉혔던 것도 조조 역시 충성심이 드높고 관리력이 준수하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장수와 병사들을 아우르는 큰 형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그게 다행히 하후돈의 적성에도 맞았다.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출신을 떠나 거의 대부분 하후돈을 잘 따르는 편이였고 전형적 무장임에도 책사들과도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지냈던 걸로 보여진다. 서황과 장료가 조조휘하로 들어왔을 때 다른 기존 장수들에게 그들을 인사시키며 빠른 적응을 도운 것도 그였고 장합과 고람이 원소측에서 투항했을 때도 관도대전 마친 후 환영한다며 잘 해보자는 서신을 보낸 것도 그였다. 대체적인 이미지처럼 맹장은 비록 아니였으나 무장임에도 뛰어난 보급과 행정능력 및 부하나 후배들을 잘 아우름과 동시에 변함없는 조조를 향한 충성과 겸손, 청렴을 갖춘 듬직한 하후돈을 조조는 매우 아껴, 무슨 일이 있건 좋은일의 포상에서는 항상 하후돈을 챙겼고 수시로 그에게 필요한건 없는지 살폈으며 하후돈이 눈을 다쳤을 때, 하루동안 잠도 안자고 하후돈 곁을 지켰으며 하루에 세 번씩 하후돈의 부상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부득불 하후돈을 꾸짖은 후에도 몰래 하후돈에게 사람을 시켜 선물이나 술, 고기 등을 보내 하후돈을 뒤로 달랬고 공식석상에서는 직위로 부르며 군신의 예로 대했어도 사석에서는 조조가 이름을 부르며 격의없이 대한 몇 안되는 인물이였다. 그런 아낌을 받아서인지.... 조조의 죽음이 임박한 무렵 크게 상심하여 본인도 병을 얻어 앓기 시작하다, 끝내 조조가 사망하자 슬픔 속에 지내다 결국 병상에 누웠고 조조 사후 즉위한 조비가 그를 위로하고 그간의 공로를 기려 대장군에 봉했지만 이미 병이 깊어 골골대던 하후돈은 대장군 임명 후 몇 달 뒤 사망한다. 완력에서는 허저나 전위에 비할 바 아니였다. 무예가 뛰어나 장료나 하후연처럼 전술적 활용도가 뛰어난 것도 아니였다. 장합이나 서황같이 우수한 지휘관도 아니였다. 후방에서 서포트를 잘했다한들, 행정처리가 탁월했다한들, 무수한 조조 아래의 먼치킨 문관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뭐 하나 유별난 게 없이 이도저도 아니라 할 수도 있는 그였지만 주군에 대한 깊은 충정, 부장들은 물론, 당시로서는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병사들에 대한 너그러움과 관대함 그리고 고위직임에도 늘 청빈했던 참공직자의 자질이 충분했던 그였기에 자신보다 뛰어난 숱한 이들을 제치고 철저한 능력지상주의자였던 조조의 총애를 받은 그의 행보는 그 시대는 물론, 지금도 귀감이 된다. 장애를 딛고 오로지 성실함과 인성으로 대장군이 된 하후돈의 성공스토리가 부디 여러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를 바라며 지금껏 다음 칼럼까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연재하던 것을 이번은 무리해서 바짝 당겨 연재해봤다는.....ㅎㅎㅎ . 나라 망친 아줌마 투톱의 뿌리가 뽑힌 기념비적인 현시국의 첫 주말을 부디 다들 즐겁고 알차게 보내시길!
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를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와 "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당부.
안녕하세요. Three Kingdoms Generation.의 필자입니다. 일단 삼국지관련 내용의 글이 아닌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ㅎ 오늘은 이것저것 몇 가지 말씀 올리고자 타이핑을 합니다. 1. 표절. 연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데다, 아직 카드나 팔로워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이리저리 빙글을 뒤적이다보니 몇 곳에서 제가 쓴 글과 흡사한 카드들을 몇 번 목격했습니다. '삼국지'라는 역사 및 소설관련 컨텐츠를 다루다보니 당연히 내용은 비슷할 수 있는 점 십분 헤아리지만 읽어보면 제가 쓴 문장의 구성이나 표현, 어휘까지 같거나 매우 흡사한 경우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쓰는 이 칼럼은 보시는 분들의 생각 이상으로 공을 들여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제가 삼국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어린시절부터 찾아보고 조사하고 공부하며 모은 수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지며, 이것들을 알맞게 구성하여 쓰다보면 순수 작성시간만 짧게는 2~3시간, 길면 5시간 가까이 소요됩니다. '아니, 겨우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게 뭐 이리 오래 걸려???' 하실 수도 있어 의아하시겠지만... 저도 그냥 베껴 쓰거나 하는게 아닌 제가 아는 지식들을 좀 읽기 편하게, 그나마 재미있게, 되도록 자연스럽게 쓰고자 어떻게 쓸 지를 고민하고 다듬으며 쓰다보니 그리 시간이 걸리며 저도 제 생업과 사생활이 있다보니 마냥 시간을 내기 힘들어 보통 2~4일에 걸쳐 써나갑니다. 물론, 제 칼럼들을 베끼셨던 참고하셨던... 그분들이 사익을 추구하여 그러시진 않은 거 같긴 해도 어쨌건 저로서는 수일 간 공들인 제 성과물이 누군가에 의해 몇 분만에 표절 되는건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전에 어느 독자분께서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출처를 밝혀서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얼마던지 스크랩, 클립해 가셔도 좋고 오히려 그렇게 여기저기 이리저리 제 글이 퍼져나가 삼국지에 대해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끼시는 분이 늘어나는 것은 저로서도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단순 표절은 금해주셨으면 하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혹자는 '니가 첨부하는 그림과 사진은 그럼 뭐냐'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첨부하는 매체들은 누가 봐도 어디의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이고 매체의 저작권자들이 이미 이익추구가 아닌 분야들에 대한 개방을 허한 매체들이라 제 글을 베끼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 부진. 안타깝게도 점점 연재가 진행될 수록 초반에 비해 '팔로워증가', '좋아요', '클립' 등의 수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 원인으로는 첫째가 너무 더딘 제 "연재속도", 두번째는 "인기스타의 부재"가 아닌가 싶네요ㅎ 일단 연재속도에 대해서는 참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헌데 위에서 말씀 드렸듯, 글 쓰는데 걸리는 시간 자체가 길고 또 제가 전문작가가 아닌 관계로 일과 사생활이 병행되며 연재하다보니 아무래도 더뎌지네요;;, 그렇다고 스피드를 좀 내보자고 분량을 줄이자니 이 칼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치와 수준을 고려할 때, 분량의 축소는 곧 내용의 양과 질의 하락.. 다시말해, 퀄리티 하향의 우려가 생길거 같아서.. 물론, 길게 쓴다 능사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역사관련물은 내용이 디테일할수록 즉, 분량이 길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연재속도 탓에 분량을 타협할 생각은 없다보니 그런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댓글보면 조운, 조조, 장료, 여몽 등등 네임밸류 있는 인물들에 대한 니즈가 많은데, 일전에 이미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제 나름으로는 그런 인기인물, 유명인물들이 초반에 나오기 시작하면 뒤로 갈수록 이 칼럼의 위력이 반감할까 싶은 우려로 좀 아껴두던 터였습니다. 게다가 비록 우리가 잘 모르는, 혹은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의 인물들을 제가 재조명하여 그들 역시 역사 속의 주요했던 이들임을 부각시켜주고픈 마음도 컸기에ㅎㅎ 아무튼 연재속도도 최대한 스퍼트를 올려보고 앞으로는 중간중간 이쯤이다 싶을 때 유명인물들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 3. 부탁. 대신 저도(건방지게) 부탁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읽어주시는 것으로도 참 고맙습니다만..ㅎㅎ 그래도 기왕이면, "좋아요"도 좀 클릭해주시고, 또 "클립" 해가셔서 본인들 컬렉션에도 게시하여 보다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게끔 홍보도 부탁 드립니다! 나아가 아직 팔로우 안하신 분들은 "팔로우"도 해주십사 고개 숙여 청을 좀 드립니다. 허허허;;; 물론, 다양한 내용의 "댓글"들도 언제나 대환영! 길이와 내용 관계없이 댓글들은 항상 힘이 되거든요. 제가 여기에 글 써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입사지원할 때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저 취미로 쓰는 것인지라 여러분들의 "팔,좋,클,댓"의 피드백이 제 엔돌핀이고 에너지!! 또, 혹시 Three Kindoms Generation.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나 건의사항 있는 분들은 지금 이 글에 댓글을 좀 부탁드립니다. 4. 출판. 댓글 주시는 분들 중 은근 많은 분들이 해주시는 말 중에 "책 내시면 꼭 살께요!" "한 번 책으로 내보세요ㅎ" 등등이 있습니다. ..ㅋㅋㅋ 출판이라...허헣 일단 누가 책을 내줘야 저도 출판을 하는거겠지만, 제가 전문작가가 아니다보니 필력도 부족하고 또 요즘같은 모바일시대에 설령 책을 낸들, 인쇄간행물이 과연 얼마나 판매가 될지도 의문이고..ㅋ 그리고 이 칼럼독자분들이야 아니라 생각하시겠지만 요새 들어서는 워낙에 미디어가 풍년이다보니 삼국지라는 컨텐츠가 어딘가 모르게 매니악한 소제로 치부된다는 인상도 받습니다만ㅎ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와는 벗 삼지 말라"는 말까지 있던 보편적 매체였는데, 지금은 삼국지가 뭔지 모르는 분들도 적잖은 세상 같아서 좀 서글프네요...T-T 여튼 출판관련 말씀들은 그만큼 좋다는 칭찬들이시니 기분좋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엇?! 벌써 새 카드가 올라왔어!?' 하시는 마음으로 반갑게 클릭했더니 왠 쓰잘데없는 사설이냐며 실망하셨을 분들께는 다시 한 번 사과와 양해를 올리며, 삼국지관련 내용은 최대한 빨리 연재할께요! 항상 많은 관심 주시고 찾아 주시며 읽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드리고 싶네요ㅎ 고맙습니다!
허저 중강 (許褚 仲康) A.D.? ~ ?
사람 보는 안목도 훌륭했고 용인술도 뛰어났으며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재기용 방식을 추구한 실리주의자 "조조"의 휘하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시대 당시 가장 많고 두터운 인재풀을 자랑한 삼국시대의 레알 마드리드 라고 할 수 있었고 응당 그런 조조 아래에는 뛰어난 무장들도 참 많았다. 여러모로 뛰어나거나 조조와 코드가 맞아 신임을 얻은 장수들도 여럿 있었지만, 사료를 살피고 그 모든 것들을 토대로 볼 때 조조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장 많이 받았다 느껴지는 장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진짜 "스트롱맨"인 이 인물로 간다. 오늘 날, 중국 안후이성 보저우시 출신인 허저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며 당시 온갖 히어로들.. 그중에도 특히 범인을 훌쩍 초월하는 피지컬과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차이니즈 슈퍼히어로들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진짜 '스트롱맨'이였음이 기록에 나온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는 허저 관련 에피소드들 중 허저가 조조 휘하로 임관 전... 고향에 살 당시 1만 여명 이상의 대규모 도적떼가 허저의 고향에 침공했고 대치에 지친 양측이 휴전을 합의하며 도적들의 곡식과 허저측의 소를 물물교환 하는 와중, 소가 놀라 달아나자 그 소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고 백여 걸음을 끌고 갔다는 이 말같잖고 믿기지 않는 스토리가 엄연하게도 위서의 허저전에 실려있다.... 당시 후한말에 일반적으로 사육하던 소의 품종, 암수(♂♀)여부, 소의 연령, 소의 영양상태 등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품종여부 떠나 소라는 동물 자체가 원체 크고 암수의 무게차도 상당하지만 암컷인들 일반인에게 끌어 당겨질 무게는 아니며 어린 송아지 또한 지금 이 글 쓰는 나, 읽는 댁들이 힘으로 해볼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고 당시 허저측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사람도 제대로 못 먹어 오죽하면 도적떼에게 고기를 주고 곡식을 받아오려는 시도까지 한 점등 비추면 소인들 제대로 먹어 평소의 몸상태는 아니였겠으나 그렇다한들 소는 소인지라 어쨌건 사람이 일신의 용력만으로 한 손끌이를 할 생물이 절대 결코 아님은 명백하다. 게다가 소의 꼬리를 잡아끌었다는건 소 또한 순순히 끌려가지 않고 그러지 않으려 끌려가는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용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전 중국 및 전인류사에서 최강의 파워맨이라 일컬어지는 항우가 이런 허저보다 힘 좋았을까 싶을만큼 여간 대단한 힘이 아니다. 위서에 의하면 신장도 "여덟 자 남짓" 이라 하는데, 당시 후한 말 기준의 여덟 자가 현대 기준의 거의 190cm에 가깝고 '남짓'이라는 표현은 여덟 자를 좀 넘는다는 뜻. 게다가 후한 말 관련 모든 역사서들 중 유일하게 허저는 허리둘레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시 단위로 "10위"나 되는 허리둘레를 지녔다고 나오며 이 역시 현대기준 무려 115cm(45inch가 넘는다!!)라는... 당장 이 수치는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닌 내 가슴둘레를 넘어선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인간계 끝자락급의 파워를 볼 때 엄청난 근육질이였을 것으로 보이며 저런 피지컬까지 지닌 것으로 보아, 대략 상상해보면 '브록 레스너'나 '밥 샙' 정도 되는 체구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런 거구들은 지금도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만큼 눈에 띄는 엄청난 거한들인데,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6cm 가량 정도였을 후한 말의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단순 거인을 넘어서, 방금 화장실 다녀왔더라도 마주하면 소변을 지릴 괴물이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신체조건 + 신체능력을 지닌 초인 허저는 조조가 허저의 고향 일대를 점령하자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이끌고 조조휘하로 가는데, 당시의 조조 또한 허저의 체구를 보고 심히 놀랐다는 기록이 있고 이 당시 "실로 나의 번쾌가 될만하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조조는 허저와 그가 이끌고 온 장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근위대 즉, 최측 호위대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당시같은 난세에 당시 조조가 듣보잡이 아니였음에도 그런 새로 갓 합류한 이들에게 자신의 신변경호를 맡긴 것을 보면 허저를 굉장히 좋게 보고 신뢰했던 모양인데, 이때부터 조조는 허저에게 반한 듯 싶고 조조의 알음알음 허저 챙기기가 시작되었던거 같다.ㅎㅎ 허저는 생김이나 체구,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 등을 갖추고도 전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샤이가이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해서 조조가 장수들을 집결하면 가장 구석이나 뒷편에 숨겨지지도 않는 체구를 한껏 움츠려 섰다고 한다. 조조는 장수들이 군공을 세우면 많은 이들 앞에서 당사자를 불러내 크게 칭찬하는 방법으로 당사자를 띄워주고 다른이들도 분발을 유도했는데, 부끄럼쟁이 허저는 간혹 공을 세우고도 이런 수 많은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 주목을 받고 추켜지는 것에 상당히 큰 부담을 갖고 있었고... 조조가 그를 앞으로 호명해도 못 들은체 딴청을 부리고 밍기적대다 거듭 그를 불러도 쌩까는 허저를 조조가 호통을 쳐 부른 후에야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저런 사람이다보니 말도 거의 없었던 듯. 그러나 할 말은 하는 편이였던거 같고 하루는 형주방면 총사령관이던 조인이 급한 보고를 위해 허창으로 갔는데 당시 조조가 바쁜 정무 중이였고 조인은 맡은 중책이 중책인지라 조조를 기다릴 겨를은 없어 허저에게라도 메모를 전달하려 허저를 불렀다. 허저는 조조의 인척이자 최측근이고 방면군 사령관인 조인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어 조인에게 갔는데.. 조인 : 아, 허중강! 나 지금 쫌 급한데 말 좀 전해줘! 허저 : 기다리시면 전하 곧 나오십니다.. 이러고는 조인의 대꾸도 듣지 않고 바로 휭~ 조조에게 돌아갔고 이날 이후 조인은 허저를 벼르기 시작한다. 조인은 다시 정욱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했고 정욱이 듣고 놀라 허저에게 가서 물었다. 정욱 : 중강! 사회생활 참 못하네.. 조장군 성격 몰라? 전하의 친척에 측근에 개국공신인데 왜 그러셨대? 허저 : 암만 그래봐야 저 사람은 방면 맡는 바깥사람이고 난 전하의 신변경호를 맡았는데 내가 왜 전하의 허락없이 외부인을 만납니까... 이 에피소드가 조조의 귀에 들어가자 안그래도 이쁨받던 허저는 더욱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허저와 조조는 아무래도 주군과 호위관이다보니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허저는 종종 옷매무새가 허술하거나 한 경우 조조가 이를 먼저 보면 직접 옷매를 다시 챙겨주기도 했고, 조조가 식사시에 조조곁에 서서 조조의 식사를 지켜보는 허저에게 같이 식사를 권해서 허저가 응하면 함께 먹기도 했다. 허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찬이 있으면 응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허저가 체격이 체격인지라 허저가 타는 말은 금새 지쳐 여러 마리를 번갈며 탔는데, 허저가 탈 말은 조조가 직접 선별해 골라줬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바꿔타기도 했는데, 주군이 신하와 말을 바꿔 타는 것은 당시 "말"이라는 동물의 군사적, 물질적 가치를 고려하면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였다. 게다가 당시의 조조가 타는 말이 예삿말들도 아니였고.. 이는 마치 내가 새로 간 회사 사장님이 외근 나가며 업무용 레이를 타는 내게 자신의 아우디 Q7을 타고 가라며 바꿔 주는 것이나 진배 없는 것이다. 조조의 경호실장이면 거의 대부분 조조의 가장 근처에 있다보니 전장에 나가 지휘를 맡은 적이 드물지만 없진 않다. 양에서의 장수와 전투 당시 돌격대를 맡아 돌진하여 적의 기세를 꺾었던 적도 있고, 관도대전과 원소 사후, 원소의 잔당들을 정벌하는 중 업군 포위전 당시에도 소수나마 병력을 이끌고 나선 적 있다. 하지만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조조가 그를 호위관으로만 거의 중용하고 전장에 내보낸 횟수가 다섯 손에 꼽히는 걸 보면 통솔능력은 별 볼일 없었던 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종종 허저의 일기토 내용들이 나오던데 올뻥이다. 허저는 누군가와 1vs1로 전투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전위와 조조의 경호패키지로 묶음처리 되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둘은 연의에서처럼 서로 맞붙은 적도 없고 심지어 둘이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다. 왜냐 하면 실제 역사에서는 전위가 이미 사망한 후에 허저가 조조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 및 이를 토대로 캐릭터들의 능력치를 데이터화시킨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 내의 허저 어빌리티만 보면, 왠지 자기 이름이나 쓸 수 있을지.. 1부터 10까지 숫자는 셀 수나 있을런지 싶을 힘 쎈 바보로 그려지지만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조조에게 임관 전에도 고향에서 도적떼를 상대로, 또 조조에게 임관 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적잖은 무리들이 있었던 점 등으로 봐서 아주 근본도 없는 사람이 아니였고 정사나 위서, 그의 열전 등 어딜 봐도 '허저는 빠가였다'는 식의 언급은 진짜 1도 없다. 다만... 워낙 별 말이 없고, 게다가 이게 좀 치명적인데 허저는 평상시에 입을 약간 벌린 눈도 촛점없는 멍한 어딜 보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 표정 탓에 그의 별명은 "호치(虎癡)"가 된 것.. 저 허저의 유명한 닉네임 호치의 호는 범 호, 다시 말해 전장이나 임무수행 및 조조곁을 지킬 때의 그의 호랑이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뜻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뒤에 붙은 저 '어리석을 치(癡)' 인데... 저 치가 바로 허저의 그런 평상시 표정 탓에 붙은 것이였다. 그치만 허저입장에서 이것도 좀 억울한게, 조조곁에 있거나 전장이거나 뭐 그러면 모르지만 진짜 아무일없는 평상시에 조조가 내전에서 업무 보거나 천자를 알현, 또는 자거나 등등 그럴 때의 허저는 혼자 긴 시간을 문앞에 서 있어야 하는데 이 당시에 무슨 스마트폰이 있어서 허저가 유튜브나 빙글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쨌건 근무시간인데 이어폰끼고 음악 들을 것도 아니고, 진짜 할 수 있는거 없이 서 있는데 누군들 표정이 저리 멍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영국 왕실근위병들처럼 뭐 교대를 하는 것도 아니였을 것이고.... 당연히 허저는 본인의 저 별명을 싫어했고 위나라 내부에도 감히 허저앞에서 저 별명을 입에 담을 수 있을 힘과 용기를 지닌 자도 없었지만 어쨌건 허저가 기피하던 저 닉네임은 훗날... 동관에서 마초, 한수와 마주할 때 마초가 바로 달려가 조조를 개 때려잡듯 하려다 조조가 데려간 허저의 비쥬얼을 보고 짐짓 쫄은 마초가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말해준 후부터 "호후(虎侯)"로 격상된다. 삼국지연의에서 업을 함락 후, 깐죽대는 허유를 빡친 허저가 죽이는 씬이 나오지만 허구다. 저런 일 자체가 없었고, 허저의 성격상 단지 저렇게 깝친다고 하여 아무나 썽큼썽큼 죽이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일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용맹무쌍했지만 평상시도 거칠고 격한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평소에는 온순하니 풀 뜯지만 맹수가 다가오면 날뛰는 아프리카 물소같은 타입이였던듯 싶다. 조조가 죽자 탈진하여 쓰러질만큼 울부짖었으며 어찌나 심신이 상할만큼 슬퍼했는지 각혈까지 했다고 한다... 조비 또한 허저를 근위로 삼았는데, 조조가 허저를 자신의 최측에서 경호하는 소수의 경호대를 이끄는 경호실장역을 시켰다면, 조비는 황실전체를 경호하는 황실근위대를 이끄는 근위대장같은 직책을 맡겼다. 허저는 생몰연대가 명확히 사료에 나와있진 않지만 조조의 죽음에 이어 그 아들 조비의 죽음도 봤다. 물론, 조비가 그리 오래 못산 탓도 있으나 아무튼 주군부자의 죽음을 모두 겪고 조조의 손자인 조예대에 사망한다. 여러 정황들 볼 때, 조예재위기에는 사실상 은퇴상태로서 원로예우를 받았던거 같고, 조예 재위 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사망한 듯. 사인에 대한 별 다른 언급도 없고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사망당시의 허저나이가 상당한 고령이였음으로 추정되기에 그냥 노환에 의한 병사였을 듯 싶다. 사실... 주군의 최측근 경호는 그리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럼에도 허저를 아끼던 조조는 그런 허저가 혹여라도 기가 죽을까, 늘 그가 있음에 자신이 마음 편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큰 공이라며 그를 치켰고. 가끔은 허저를 전장에도 내보냈다. 허저가 근위대장임에도 몇 차례 전투에 나섰고 비록 몇 차례 안된다고는 해도 어쨌건 모두 승리했는데 추측해 보건데 이는 조조가 허저를 장수로서의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별 다른 지휘통솔능력이 없어 대병을 이끌기는 무리인 그가 소수병력을 이끌고나마 충분히 승리할 법한 전투에 가려 보내 허저로 하여금 주워 먹게끔 했던 배려로 보여진다. 허저 또한 박식똘똘이까진 아니여도 자신을 아끼는 그런 조조의 마음씀씀이를 캐치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고 조조를 깊게 공경해 따랐으며 심지어 조조가 그에게 휴식을 명해도 허저는 이를 따르지 않고 거의 자는 시간을 제하면 조조의 지근거리에서 머물렀다.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통틀어도 손 꼽힐만한 막강한 피지컬과 그에 따른 용맹과 괴력을 겸한 그가 전장을 휘젓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다. 하루종일 자신의 엄청난 신체를 서 있는데 써야함이 실로 괴로웠거나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책임감과 충성으로 묵묵히 해냈다. 비록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부여받더라도 이를 최선 다해 충실히 해내는 프로패셔널. 그렇기에 조조는 늘 자신 곁에 시립해 서 있는 그를 대함에 있어, 외지의 수만 병력을 이끌고 요충지를 지키는 사령관, 전장에서 대규모 전투를 승리한 개선장군들에 못지 않게 대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허저 본인도 그런 자신의 성품 덕에 그 험한 난세에서 난전이나 내부적 정치싸움에 휘말림없이 내내 인정받다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고 사전투표 안하신 분들은 돌아오는 화요일에 꼭! 잊지 마시고 투표 하시길 바랍니다ㅎ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대의명분에 입각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후보분께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세요! 사려깊은 문후보님, 구여우신 홍후보님, 총명하신 안후보님, 기개있는 유후보님, 혁신적인 심후보님 모두 화이팅 하시길. 그리고 누가 대권 잡건 부디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참지도자 되길 기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ㅎ 무슨업적도 필요없이, 앞 둘이 워낙 10년 깽판이라 평타만 쳐도 성군소리 들을 각인데...
아버지가 딸의 결혼식 동반입장을 거부하는 이유
특별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눈맞춤'이라는 첫경험을 통해 진심을 전하는 '침묵' 예능 인 아이콘택트 “널 보낸다는 자체가 실감이 안났으니까 그걸 안느끼고 싶었던 것 같아. 좀 더 아빠랑 같이 있었어도 되지 않을까 아빠 나름 너한테 어필하려고 그랬던 것도 있었어.” “옆자리가 비어있으니까 아빠 혼자 그 자리를 지켜야하니까 동시입장을 하게 했나하고 생각했어” “다음주가 식인데 아빠 생각이 계속 나 아빠 겨울 저퍼 안에 날 넣어 다니던 것도 생각나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졸업식 가면 다른 아빠들은 소심하게 가만히 있었는데 아빠 혼자 딱 카메라 메고 와서 딸 찍을 거라고 무대 앞에 와서 사진을 찍던 것도 기억나고” “보통 결혼을 준비하면 엄마 생각이 난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빠생각밖에 안나. 그때로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 “10년전부터 너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해보니까 미안하다. 아빠가 된게 처음이라 그렇다. 아빠가 그때는 몰랐지. 네가 태어나면 당연히 알아서 클 줄 알았지. 아빠가 챙겨야하는지 그걸 몰랐어. 미안해. 다시 미안해. 아빠를 처음해보니 너한테 실수가 많았다.” 결론은 딸 손잡고 들어가시기로 하심.. (ㅊㅊ - 쭉빵카페)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3.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여기는 중국의 삼국시대와 우리의 이목을 끄는 당시의 영웅호걸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 영웅들 또한 후한 말의 난세가 만든 영웅들이며 난세와 영웅탄생의 시작은 바로 "황건적의 난"(黄巾之乱)이였다. 사실, 여러분들이 접하는 삼국지 관련 매체들에서는 황건적의 난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난은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우리가 열광하는 영웅들의 일대기들과 비교 안될만큼 중요한 사안이며 어쨌건 후한이 결국 삼분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에, 오늘의 삼.이.높 세번째 주제로는 삼국지의 서막을 올리는 결정적 계기였던 황건적의 난에 대해 다룬다. 1. 왜 "황"건적인거지??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푸른 하늘이 죽고 노란 하늘이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저 문장은 황건적의 난의 일종의 슬로건같은건데, 중국 고대의 자연철학인 "오행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첨부된 사진을 보면 오행설에서는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근원으로 '화, 수, 목, 금, 토' 라고 주장했다. (저기에 태양과 달을 넣어 일주일의 명칭이 된거다.) 마치 캡틴 플래닛을 소환하는 땅,불,바람,물,마음같은데 살짝 다르다. 아무튼 저 오행들은 서로 상생하기도, 또 서로 상극이기도 하는데... 황건적의 난의 슬로건은 저 중 상생설을 차용한 글귀이다. 잘 보면 가위바위보처럼 절대적인게 없고 서로서로 맞물려 먹고 먹히는 구조다. (첨부사진 2가 상생, 3이 상극) 오행에 의하면 중국의 한(漢)은 불(火)의 기운을 받아 이룩되고 흥한 왕조여서 그 다음의 세력은 응당 흙(土)의 기운을 받은 사람이나 세력이라 생각했고, 바로 그 흙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아이콘으로 삼은 것. 덧붙여, 불의 기운을 지닌 한나라의 상징컬러는 당근 빨간색이다.(그래서 장기에서도 한 쪽은 글씨가 레드!) 참고로 왜 한이 그럼 불의 기운이냐면.... 한이 건국 전, 진의 시황제의 꿈 속에서 커다란 태양이 자신을 들이받아 자신이 죽는 악몽을 꿨다는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저 꿈이 태양의 기운을 가진 이가 자신(진)을 제끼고 다음 황제(유방의 한)가 된다는 예지몽으로 받아들여 그렇다고.. (물론 본인에게는 흉몽) 이건 나도 정확한 학계 주장이 맞는지가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 태양은 오행설에서 당근 '불'의 기운을 지닌 것으로 본다! 하여튼 저 오행설 중의 상생설 탓인지, 후한 이후 삼국시대가 열리고 삼국의 군주들이 저마다 제위에 오르며 썼던 연호에도 이게 반영되어, 후한을 멸망시킨 위의 첫 연호도 '황초(黃初)', 오의 경우도 손권이 왕을 칭하며 사용한 첫 연호가 '황무(黃武)', 다시 황제를 칭하며 쓴 첫 연호가 '황룡(黃龍)'이다. 반대로 한의 계승을 주장한 촉한의 마지막 연호는  '염흥(炎興)'이었다. 후한이라는 불(火)이 꺼져가며 작아진 불꽃(炎)이 다시 흥(興)하여 크게 불타오르리라는 거창한 뜻이였으나 결과는......... 쉽게 말해, 위와 오는 자기들이 후한의 다음 세력이란, 촉은 자기들이 말 그대로 후한을 잇는 세력이란 주장. 2. Who Is 장각? 황건적의 난에 있어 그 시발점이 된 "장각"의 존재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오늘날의 중국 허베이 성 싱타이 시 쥐루 현 출신의 종교가이자 도사였던 그는 역시 도사였던 "우길"이 그 개념과 교리를 정립한 "태평도"라는 종교를 사실상 창시하고 전파한 인물이다. 후한 말기의 어수선한 민심을 틈타, 주술이나 부적 등으로 병을 고치는 일종의 사이비 야매 수법으로 민심을 얻었고 이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일컫는 "플래시보 효과" 였을 듯. 보통 사이비교에서 저런 주술이니 부적 따위로 병을 고치는 행위들이 대개 다 그렇듯, 플래시보가 겹쳐 나으면 내 덕, 못 고치면 니새끼 믿음이 부족하고 마음이 불경한 탓이 된다. 아무튼 그짓거리 하고 다니다, 그래도 또 난세는 난세라 그런게 꽤나 먹혔는지 일정 세력이 따르기 시작하자 결국 184년, 장보와 장량 두 동생들과 함께 대장노릇 하며 난을 일으킨다. 거의 중국의 양쯔강 이북 8주(유주, 병주, 기주, 연주, 서주, 청주, 사주, 예주)에 걸쳐 수만 여 명이 봉기했고 사실... 이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후한은 멸망이나 진배없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본다. 이때부터 후한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준했고 한황실도 통제력을 상실했다. 참고로 종교집단에 의한 황실타도의 난리가 일어난 것은 중국의 기나긴 역사상 이 때가 처음. 그리고 저런 거국적 정권타도 목표가 아닐지라도 어쨌건 "종교집단에 의한" 난도 황건적의 난이 최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장각 본인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그 해에 병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기세가 거셌고 장각의 두 동생의 리드도 있었으며 방대한 지역에 걸쳐 연쇄적으로 발생한 난이여서 그 세가 장각이 죽었다하여 바로 사그라들진 않았다. 일단 당시는 대중매체도, 통신도 전무하다보니 장각의 사망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였고 이미 당시 난의 파워가 있다보니 관성에 의해 기세는 계속 유지되었다. 3. What Is 태평도? 자, 그럼 "태평도"는 또 뭐냐? 위에서 말했듯 일종의 종교였는데, 이 종교라는게... 카톨릭이나 불교, 이슬람과 개신교, 유대교 등등등등 처럼 뭔가 반드시 절대적인 신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민족의 멘탈적 근간이 되는 "유교" 역시 무슨 유교의 신이 존재해서 엑스멘 시리즈의 뮤턴트들처럼 초능력을 흩뿌리고 그래서 생긴 종교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 만들고 정리한 여러 사상과 제약 등을 일컫는 "교리"가 생기고 이 교리를 따르고 받드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형성되는 것. 어찌 보면 사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회사동료였고 퇴사 후 거제도에 빙수집 차렸다가 거제 조선경기 망하며 같이 망한 정호형이 내세우는 이론들 중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피우는 것이다." "여자의 피임은 임신을 피하고, 남자의 피임은 임신시킨 여자를 피하는 것" "일부다처제란 말처럼 처제도 내 여자다" 뭐 이딴 개소리들이 있는데, 이것도 누군가 '오.. 시발 진리다 +_+' 하며 그 가르침을 따르고 저기에 맞춰 생각하고 생활하며...(....) 심지어 그런 찐따들이 늘어나고 지들끼리 저걸 전파하며 그러다보면 저 말같잖은 소리들을 교리 삼아 정호형을 교주로 여기는 종교가 탄생하는 것. 그런데 정호형 뭐 하고 사나? 번호도 바뀌었던데... 결국 깜빵 간건가.. 어쨌건 삼천포로 빠졌는데, 태평도 역시 종교고 그 기원은 이미 여러분도 한 두 번은 들었을 "도교"에서 비롯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우길이란 도사가 도교를 베이스로 자기가 음양과 오행관련 이론 등을 믹스해서 교리를 정립한 종교다. 황건적의 난이 중국을 씹창내고 각지의 호걸들과 제후들이 다시 그 황건적들을 씹창냈지만.. 하도 호된 엿을 잡수신 후한의 지도층들은 "태평도 = 황건적"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킨 후, 황건적과 무관한 태평교도들에게도 홀로코스트를 자행, 태평도가 탄압을 받기에 이르른다. 결국 태평도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게 되었지만 이 도교라는 종교가 갖는 파급력이 당시에는 꽤나 먹어줬던 모양이다. 당장 우리가 흔히 쓰는 도 닦는 "도사"라는 표현도 본래 도교의 교리를 공부하고 또 거기 맞춰 생활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였다. 결국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 구수히 들려주시던 배추도사와 무도사도.. 탈모인들을 좌절에 빠뜨린 머털도사도... 전우주 최강의 전사인 카카로트를 키워낸 명스승 무천도사도... 도교를 연마하시는 분들이였다!!!......는건 뻘소리고 아무튼 그렇게 우리네 일상 속 단어의 유래를 꿰찰만큼 영향력이 있던 종교라는 거다. 하여간 도교는 태평도처럼 여러 아류들이 생겨났는데 또 그 중 하나가 삼국지 속 유명인사 중 한 명인 한중의 "장로"가 이끌던 "오두미도"였는데 이는 추후 따로 설명! 4. 황건이 배출한 스타들. 중국 전역에서 수 만 여 명으로 스타트하여 전성기 때 대략 추산 20여 만 명에 이르던 황건적들답게 삼국지연의 속에는 어느 정도 난이 제압된 이후 그 출신 스타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모두 다 나열할 수는 없으나 네임드들만 대충 거론해 보자면.... 관우의 사이드킥이던 주창, 역시 관우의 사이드킥 출신으로 훗날 촉의 주력 장군까지 올라갔던 요화, 관우의 사이드킥 합류 일보 직전, 조운의 한 창감으로 전락한 비운의 소시민 배원소, 관우의 오관육참 스테이지의 보스 중 하나던 변희, (뭐 이리 관우랑 엮이는 것들이 많나) 유비가 떠돌던 시절, 힘을 합쳐 조조세력과 잠시 맞다이 뜨던 여남의 유벽과 공도 콤비, 도겸의 지시를 받고 조조의 부친인 조숭을 호위하던 중 재물을 노려 조숭일행을 올킬하고 먹튀한 장개, 뭐 당연한 소리지만 장각, 장보, 장량의 삼형제 등등.. 그럼 그렇지, 이 중 반 가까이는 허구의 존재들이다. 주창, 배원소, 변희는 나관중이 지어낸 인물들이고 요화는 황건적 출신은 커녕 오히려 나름 명문가의 귀한 아드님을 나관중이 뭔 억한 심정인지 도적출신 떠돌이로 전락시킨 연의의 피해자 1... 장개도 사료에는 그냥 도겸군의 도위라는 계급의 하급 장교였다고만 나오지, 황건출신이란 언급 없다. 나머지 인물들 및 소설 속 등장하는 다른 황건출신들 역시 실존은 했으나 하지도 않은걸 했다 하거나, 반대로 한걸 안했다거나 스킵하는 등의 각색들을 당한 경우가 많다. 뭐 대개는 삼국지속 영웅들의 초창기에 경험치를 올려주는 잡몹 수준의 비중들이긴 하지만...ㅎ 5. 무엇을 원했나? 황건적의 난 이전에 저런 전국구급 대규모 난으로 진나라 말기에 있었던 "진승 & 오광의 난"이 있다. 이 또한 중국사 최초의 농민(서민)의 난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난이며 이 난의 모토는 여러분들도 들어봤을 법한 "왕후장상 따로있나, 못살겠다 갈아엎자" (박력있다ㅋㅋㅋ) 아무튼 저 난의 주동자나 모토나, 여러모로 신분 및 계급에 의한 차별과 부조리를 타파 위한 평등지향적 쿠데타였지만, 황건적의 난은 엇비슷해 보이긴 해도 근본이 다르다. 장각한테 누가 직접 인터뷰를 한 게 아니고, 장각도 어디에 딱 꼬집어서 '아, 저희 황건은 XX를 위한 서민집회입니다! 박ㄹ혜 하야!!' 했던건 아니다보니 역시 여러 정황근거들 통한 훗날 사학자들의 추측이긴 하지만, 여러 근거들과 장씨 3형제의 행태를 볼 때.... 결국 그들의 파이널은 유씨의 한 황실을 엘리시킨 후, 장씨들의 새 황실을 만들려던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들고 일어난 백성들 역시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하고 무능한 한 황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 분노하여 '장각이나 태평도가 어떤진 잘 몰라도 일단 한은 뻑큐!'라며 분기한 것이 대부분으로 판단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단 황실의 몰락과 그로 인한 권신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그런 황실의 레인지에서 벗어난 지방 제후들의 마구잡이식 백성 프레스, 설상가상의 갖은 대규모 자연재해... 이런 이유들로 전염병과 기아의 확산, 그에 따른 엄청난 인구감소... 위의 이유들에서 비롯된 1차 산업 붕괴로 인한 경제파탄, 높아지는 범죄율과 반비례하는 치안.. 이건 뭐 그야말로 헬, 그 자체. 막장궁지에 다다른 백성(농민)들은 이래죽나 저래죽나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 마침 가려운 곳 긁어주는 태평도와 인간 사이다 장각의 쇼에 넘어가게 되었던 것. 당시 백성들은 당연히 지적수준들도 낮고 정치에 관한 성숙한 의식과 식견들도 없다보니 냉철한 판단도 없었고... 6. gg........ 기세 좋게 번져 오른 황건적의 난. 그러나 여러 한계들로 인해 결국은 실패하여, 성공했다면 지금쯤 우리들은 황건혁명, 황건운동 등으로 들었겠지만 승자의 편인 역사 탓에 끝내 "난"으로 명명되고 말았다. 패인 1. 장각의 부재. 일단 장각은 이 모든 사태의 주동핵심이였다. 그런 장각이 난의 시작해에 병사함으로 인한 컨트롤타워와 구심점의 부재는 실로 치명적이였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없이 대회를 치렀어도 과연 그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해본다면 뻔하다. 황건적은 정규군대 아닌, 그냥 농사짓고 생선잡고 장사하던 평백성들... 그것도 대개 굶주림에 지쳐있던, 무기 한 번 안잡아보고 전투 한 번 못치뤄본 평민들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지휘자의 리딩이 중요했는데, 역시 군지휘관도 아니라 지휘통솔력이 검증안된 장각이 살아 이끌었어도 어떨지 모를 와중에 어쨌건 황건적들의 정신적 지주인 장각의 부재는 매우 컸다. 패인 2. 전투력. 위의 언급대로 황건적의 9할 이상이 그냥 백성들... 아무리 후한이 괴멸직전의 상태였다한들, 정규군이 있었고, 각지의 지방을 이끄는 제후들은 제법 상당한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로마군과 게르만족들의 전투,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에스파냐 콩키스타도르들과의 전투, 동학군v일본군, 광주민주화항쟁 등등 아무리 숫자 많고 기세 등등해도 체계적 군율로 통제되며 훈련된 정규군을 이기긴 매우 버겁고 벅차다. 일반 백성들이 그저 숫자 많고 기세만 높다하여 제대로 통솔도 안되는 와중에 싸움이 될 리 없고, 개개인의 전투력과 무장수준도 형편 없었으며, 또 저런 급조된 오합지졸들은 약간만 전세가 불리해지면 나 살자고 도망치다 자기들끼리 밟히고 치여 죽기 바쁘다. 패인 3. 명분. 황건적들도 쪽수가 불고 세가 오르자 결국 일반 백성들을 약탈하고 겁탈하고 죽이긴 매한가지였다. 일단 기강이 없어 제대로 된 컨트롤도 안되고 정규훈련이나 교육도 부재하니 무슨 최소한의 기본적 윤리나 규율도 없었고... 당장 배는 고픈데, 병참체계가 있길 한가, 지원시스템이 있길 하나.. 결국은 도적질이 답. 그러다보니 황건에 가담 않은 다수의 백성들의 인심도 잃고, 농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삥 뜯는 세력이 늘었을 뿐. 그렇게 명분을 잃다보니 백성들의 지원과 후원도 줄고, 가담자들 역시 실망과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여 이탈하고.. 저런 쿠데타나 혁명 등의 봉기는 구성원들의 집결과 응집을 위해 무엇보다 명분이 중요하다. 명분을 잃은 봉기는 그냥 끈 떨어진 연이 될 뿐. 정말 확실분명한 대의명분이 있고 또 그게 유지 되었다면... 유비, 조조, 손견, 원소, 동탁, 마등, 공손찬 등의 숱한 히어로들은 아마,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둘러멨을지 모른다. 이번 삼.이.높.3의 주제인 황건적의 난은 삼국지에 대한 칼럼을 다루려면 결코 생략해선 안될, 오히려 반드시 거론하고 가야할 주제라 생각해서 쓰게 되었는데... 오우, 막상 쓰려다보니 지금까지 써온 주제들에 비해 제가 아는 부분, 기억 나는 부분이 적더라구요... 그래서 이리저리 여러 자료들 다 찾고 뒤적이며 저도 공부해서 쓰느라 좀 시간도 더 걸리고 힘들었어요 T-T 다들 쉽게 이해가 갈지, 지루하고 두서 없어 노잼은 아닐런지 가장 걱정되는 카드가 될 듯 합니다. 쓰기는 제일 고생해서 썼는데...ㅎㅎ 아무튼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팔로우, 좋아요, 클립과 댓글들이 이런 힘듦과 시간할애를 아깝지 않게끔 해줍니다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추석 귀성길, 시간 순삭할만한 정주행 웹툰 추천
Editor Comment 어느덧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올해 추석은 예년과 달리 연휴 기간이 짧아 귀성·귀경길 극심한 교통정체가 예상된다. 자칫 도로 위 긴 시간에 설레는 귀성길도 지루하게 느껴질 터, <아이즈매거진>이 막심한 정체에도 불구하고 귀성길을 신나게 보낼 수 있는 ‘시간 순삭’ 정주행 웹툰을 추천한다. 만화를 보다 보면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만큼 단숨에 시간이 사라지는 마법의 인생 웹툰. 주요 목적지에 따라 예상 소요시간을 확인해보며, 이번 추석 즐겁고 풍족한 한가위가 되길 바란다.  * 예상 소요시간은 9월 12일 오전 10시 출발했을 경우 * 6시간 서울 → 부산 유미의 세포들 │ 411화 │ 네이버  연재 중 수많은 웹툰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미의 세포들>. 지난 2015년 4월 네이버에 정식 연재된 작품은 남자 작가임에도 주인공 유미의 감정이나 생각을 현실적으로 담아내 독자들의 폭풍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세포로 의인화해 위트 있게 그려낸 캐릭터와 연애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스토리. 드라마로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 웹툰은 엉뚱하고 발랄한 매력의 여주인공 유미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몰입도 높은 전개에 어느새 훌쩍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좋아하면 울리는 │ 162화 │ 다음  휴재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오리지널 시리즈로 재탄생된 <좋아하면 울리는>. 누적 조회 수 4억이 넘는 인기작으로 드라마를 보기 전 정주행은 필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알 수 있는 신박한 ‘좋알람’을 테마로 많은 이들의 심리를 그린 만화는 특유의 그림체와 전개로 독자들을 두 남자 주인공 ‘선오파’와 ‘혜영파’로 나뉘게 한다. 추억 속 순정만화로 학창시절을 설레게 했던 천계영 작가님의 시간 순삭 웹툰. 마스크걸 │ 130화 │ 네이버  완결 현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신랄히 풍자한 <마스크 걸>은 에피소드마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가득하다. 평범한 29살 직장인 여성 김모미를 주인공으로 한 웹툰은 낮엔 회사원인 그녀가 저녁엔 몸매를 이용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인터넷 방송 BJ를 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담아냈다. 그 후 성형 수술을 하면서 점차 인생의 파국을 맞으며 비판조로 마무리된 <마스크걸>. 만화이지만 단순히 가벼운 흥밋거리가 아닌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아냈으며, 작가의 흡입력 있는 연출력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4시간 30분 서울 → 광주 이태원 클라쓰 │  78화 │ 다음  완결 박서준과 김다미 등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 라인업으로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불합리한 세상 속 청춘들의 인생을 그린 웹툰은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복수를 꿈꾸며 성장하는 주인공 ‘박새로이’의 이야기다. 시원시원한 전개와 허를 찌르는 방식은 물론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 또한 주옥같은 대사들로 감정선을 유려하게 표현했으며, 개성 있는 인물들을 활용한 치밀한 스토리 라인이 눈길을 끈다. TEN │ 76화 │ 다음  완결 학창시절 남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학원액션물 <TEN>은 왕따 피해자가 물리적인 힘을 가지며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스토리를 그려냈다. 괴롭힘을 당하던 ‘김현’이 폭력이 정당화되는 정글과도 같은 학교로 전학 가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내용. 장면마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넘치는 컷으로 구성됐으며, 왕따와 폭력의 안타까운 현실 사회 속 이면을 여실히 담아내 마지막까지 여운이 남는 웹툰이다. 야채호빵의 봄방학 │ 73화 │ 네이버  완결 장범준 2집 앨범의 브랜드 웹툰을 그린 작가 박수봉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야채호빵의 봄방학>. 그림체부터 왠지 모르게 장범준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 봄 같은 설렘이 느껴지는 작품은 등장인물 하나하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자극적인 학원물에서 벗어나 잔잔한 흐름으로 주인공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동글동글한 귀여운 그림체로 편안하게 정주행하기 좋다. 2시간 30분 서울 → 대전 나빌레라 │ 56화 │ 다음  완결 많은 이들의 인생 웹툰으로 손꼽는 <HUN>. 감명 깊은 장면들로 한 회마다 눈물을 빼기 일쑤지만, 한번 읽는 순간 멈출 수 없는 몰입도를 자랑한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70대 노인이 마음 깊숙이 갖고 있던 꿈 발레를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반대와 여러 상황에 부딪혀 힘겹게 도전하는 이야기. 뮤지컬로도 제작됐으며 노인과 청년의 우정, 가족과의 사랑을 오롯이 담고 있다. 아직까지 웹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벅찬 감동으로 삶의 태도를 되돌아 보게 하는 이 작품으로 시작해보길. 시동 │ 45화 │ 다음  완결 올 초 마동석과 박정민, 염정아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크랭크인 한 <시동>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가출 청소년이 세상을 적응하는 이야기로 코믹과 감동을 고루 갖춘 좌충우돌 웹툰. 스토리텔링은 물론이거니와 묵직하게 전하려는 작가의 메시지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인생에서 느껴야 할 중요 포인트와 주인공들의 솔직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 과연 영화로 어떻게 재탄생할지 개봉 전 정주행부터 하고 오자. 죽음에 관하여 │ 34화 │ 네이버  완결 네이버의 레전드 웹툰으로 꼽히는 <죽음에 관하여>는 완결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며, 보는 내내 심금을 울리는 작품.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챕터마다 복선처럼 이어지기도 하며, 흑백으로 그려진 저승과 컬러의 현세 대비로 뚜렷한 연출력이 눈길을 끈다. 죽음 직전 신적인 존재 앞에서 생을 되돌아보며 벌어지는 스토리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희대의 명작.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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