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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04] 그림이 있는 인문학

제목 : 그림이 있는 인문학
저자 : 원광연
옮긴이 :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읽은날 : 2016/01/09 - 2016/01/16
융합 또는 통섭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절..
예술과 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예술세계에 대한 책이다.
예술의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이야기가 나온다.
설치미술에 적용되는 다양한 기술이야기를 비롯하여 다빈치의 과학적 기술 탐구와 예술적 심미감, 사람을 닮아가는 로봇의 이야기등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유적지의 디지털화이이다.
이미 폐혀가 된 많은 유적지를 발굴하고, 연구 조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디지털 복원을 하는 기술은 정말 흥미로웠다.
이만큼 기술이 발달했구나 하는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적들을 좀더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
이런 유적지 이야기를 보니 억울하게 불타버린 숭례문이 더 아쉽다.
기술이든 예술이든 상상력이 참 중요한것 같다.
삐삐 롱스타킹에서 읽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스케치북 내에만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규제를 몰랐던 삐삐는 스케치북을 넘어서 교실의 바닥과 벽에까지 그림을 그린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틀을 벗어나는 것이 상상력이 아닐까?
난 이미 너무 규격에 맞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아이는 그보다 더 넓게 상상력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상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교약서로 읽을만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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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 황정은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처음 읽은 황정은 작가의 소설이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소설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앨리스씨와 야만적.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얽혀 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접한 내용은 어렴풋이 상상했던 이미지를 철저히 배신했다.(심지어 앨리스씨도 안 나온다. 앨리시어씨는 나오지만.) 여장 부랑자 앨리시어의 소개로 소설은 시작한다. 사거리 한가운데 선,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앨리시어는 자신이 왜 앨리시어가 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로 파고들어간다. 눈을 뜬 채 꿈을 꾸면서. 앨리시어는 고모리라는 시골 마을에 살던 소년이었다. 남동생이 하나 있고 늙은 아비가 있으며 젊은 어미가 있다. 집은 날림으로 지은 컨테이너. 곧 개발될 땅이라 굳이 오래 살 집을 지을 필요가 없으므로 앨리시어의 가족은 컨테이너에 산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인 컨테이너의 존재 이유는 개발 이후 돈을 받아내는 것뿐이다. 늙은 아비는 컨테이너 앞 개장에 개를 키운다. 암컷 개가 새끼를 낳으면 그중 어미 역할을 할 개 한 마리만 살려놓고 나머지는 늙은 아비가 먹는다. 그렇게 늙은 아비는 어미개가 낳은 새끼가 크면 잡아먹고 남은 새끼가 커서 낳은 새끼가 크면 또 잡아먹는다. 젊은 어미는 늙은 아비의 두 번째 부인이다. 젊은 어미는 자신의 꼬여 버린 신세를 어린 앨리시어와 그 동생에게 풀어낸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어린 앨리시어는 기분이 틀어져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어미의 상태를 '씨발됨'이라고 부른다. '씨발'적인 상태의 그녀는 너무 강력해서 어린 앨리시어와 동생은 그 '씨발'에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린 앨리시어는 늙은 아비의 무관심과 젊은 어미의 '씨발됨' 아래에서 자라난다. 그러다 나이가 먹고 키가 자라고 힘이 세진다. 어미보다도 더. 어느 순간 어미의 '씨발' 상태도 곧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를 기다리던 앨리시어가 곧 '씨발' 상태의 어미보다도 강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 동생이 죽는다. 어느 날 밤, 자해 쇼를 하는 아비와 아비에게 매달리는 어미와 동생을 놔두고 앨리시어가 집을 나간 그날 밤. 동생은 앨리시어를 찾으려 했는지 가출을 한 건지는 모르나 집을 나왔고, 공사장의 흙구덩이에 빠졌고, 하수처리장에서 흘러나온 하수와 오니토가 흙을 무너트려 흙구덩이를 메웠고, 동생은 그 흙에 묻혔고, 기도에 끈적끈적한 모래가 가득한 채로 죽었다. 그리고 앨리시어는 지금의 앨리시어가 되었다. 불쾌함 그 자체인 여장 부랑자, 앨리시어가. 소설은 과거형 문장으로 쓰이기 마련이다. '그가 문을 열었다'나 '형이 동생을 때렸다'와 같이 소설 속 상황은 읽는 그 순간 이미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철수가 동생을 때린다. 동생이 맞는다.'와 같은 현재형 문장만 줄줄이 이어지는 소설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색한지 알 수 있다.) 보통 현재형 문장은 특수한 상황 묘사나 강조하고 싶은 문장 등에 한해서 쓰이곤 하는데 이 소설은 다르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대부분의 문장이 현재형으로 쓰여 있다.(현재형 문장들의 공격에도 꿋꿋이 소설을 완성해 낸 황정은 작가의 필력에 찬사를 보낸다.) 왜 굳이 황정은 작가는 쓰기 어렵고 일반적이지도 않은 현재형 문장을 고집한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주인공 앨리시어의 상황에서 찾았다. 이 소설은 앨리시어가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앨리시어가 서술한, 독자에게 보여준 그의 과거는 그 자신에게 있어 현실이다. 아비의 무관심, 어미의 '씨발됨'과 폭력, 동생의 죽음은 앨리시어에게 과거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숨 쉬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는 아직도 동생이 죽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집을 뛰쳐나와 동생이 죽었다는 죄책감, 조금 더 빨리 어미의 '씨발' 상태에 저항했더라면 동생이 죽지 않았으리라는 후회. 그 기억과 감정들은 앨리시어가 어릴 적 동생과의 추억, 그리고 동생의 죽음에 묶여 벗어날 수 없게 했고 앨리시어가 영원히 과거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끝없이 동생의 죽음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씨발' 상태의 어미와 무관심한 아비를 떠올리며. 그렇기에 이 소설은 현재형의 문장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앨리시어에게는 과거도 현재이기 때문이다. 앨리시어의 어미는 그렇게도 폭력을 휘둘러대던 동생이 죽고 난 뒤에 거의 정신을 놓고 매일 울어댄다. 그 순간 앨리시어는 복수할 대상을 잃어버린다. 어미가 여전히 '씨발'로 남아있었더라면, 동생이 죽고 나서도 여전히 죽은 동생에게 욕을 내뱉고 앨리시어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더라면 앨리시어는, '씨발' 상태의 어미보다도 힘이 세진 그는, 어미에게 복수의 철퇴를 내려찍어 동생과 자신의 원수를 갚고 여장 부랑자가 아니라 회사원이 되었을 수도, 구멍가게나 고물상을 운영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자신과 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어미는 동생이 죽는 순간부터 진짜 어머니가 되어버렸다. 동생의 죽음에 혼을 놓고 울어대는 어미. 앨리시어에게는 어미의 폭력이나 동생의 죽음에 대해 복수할 대상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 모든 분노를, 울분을, 후회를, 화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앨리시어는 망가져 버린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 부랑자가 되어. 한 어린아이의 주변에 그 누구도 의지할 어른이 없을 때 앨리시어는 태어난다. 앨리시어가 동생에게 해준 이야기 속 앨리스 소년처럼 앨리시어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는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떨어진다. 언젠가 바닥에 닿겠지, 언젠가 끝나겠지 생각하지만 끝나지 않는다. 계속 떨어질 뿐이다. 앨리시어는 이야기 속 앨리스 소년처럼 과거의 굴 속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고 떨어진다. 지금도 앨리시어는 저 밑으로, 누군가 잡아주길, 언젠가 끝나길 기대하며 떨어지고 있겠지. 소설 속 한 문장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고 있네... 나는 다만, 떨어지고 있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계속... 더는 토끼도 보이지 않는데 줄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