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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끝난 허무함을 나르샤도 안나오는 육룡으로 겨우 채우고 있는.. 1. 응팔에서 가장 길게 울었던 대목은, 성동일이 쇠고기 한덩이를 신문지에 싸 들고 퇴근하던 날이다. 그날 따라 늦어졌던 퇴근. 없는 형편에 고기 한덩이를 들고 있는 그를 발견한 아내의 구박이 시작되자 그는 말한다. 그에게 빚보증을 서게 하여, 반지하 셋방으로 가게 만든 친구가 이제 빚을 다 갚았노라고. 더 이상 월급 차압 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들의 삶에서 매달 살점을 뚝뚝 베어가던 차압이 사라지자, 악다구니로 일관되던 그들의 대화는 한결 부드러워 졌다. 꿈을 자진반납해야 했던 큰 딸 보라에게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라 말할 수 있었다. 돈이 특별히 많이 들지 않는, 개천용들의 유일한 승천길로 알려진 사법고시도, 당장 안전하게 목구멍에 들어갈 양식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닿을 수 없는 사치였음을 작가는 알고 있었다. 가난이 사악한 것은, 꿈 자체를 지우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꿈 뿐 아니라 아무 죄없는 자식들의 꿈까지 지워버렸고, 그로 인해 부부는 서로에게 악을 질러대며 살았던 것이다. 그 기쁜 날, 발목에 매달려있던 쇠사슬이 일순간 사라진 날, 성동일은 덩실덩실 춤추기 보다, 비장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그가 명예퇴직을 "당"하고 온 날의 표정과도 비슷했다. 살얼음 판 위를 걷던 사람이 비로소 땅위를 걷기 시작했을 때, 그 평범한 삶에 도달한 감격은 호들갑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감히 바랄 수도 없어 보였던 평범함을 기적처럼 얻었을 때, 우린 기쁘기보다 비장해지고 성동일은 귀신처럼 그것을 잘 표현했다. 2. 라미란 연기의 압권은, 사천으로 내려가는 정팔을 다정한 말로 보내고, 현관 문이 닫히자 마자, 남편 팔에 꺾이듯 파묻혀 우는 대목이다. 아들은 꿈을 힘차게 이뤄가고, 그들의 삶에 이제 걱정거리는 아무 것도 없어보이지만, 품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갈 수 밖에 없는 아들을 다시 떠나 보내는 순간, 더 격하게 생성되던 사랑의 감정은 절벽으로 꼬꾸라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닥쳐온 폐경처럼 일순간 가슴을 후려치며 달려들었다. 3. 무뚝뚝한 정팔의 잘 드러나지 못했던 짝사랑이 고백됨과 동시에 폐기되자, 그 사랑에 감정이입하던 사람들의 성난 목소리가 인터넷에 넘쳐났다. 그러나 만약 반대였다면, 그 적나라한 고백이 마침내 덕선의 심장을 꿰뚫고 둘의 사랑을 잇게 만들었다면, 택이의 사랑을 응원하던 사람들의 통곡이 대신 인터넷을 덮었을 것이다. 어릴 때 엄마를 잃고, 아빠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 택이는 그 때부터 쭉 덕선이를 좋아했다. 성동일에게 고백한 적이 있듯, 엄마는 언제나 보고싶고 그리운 존재였고, 덕선은 그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이었다. 긴 대국을 끝내고 난 택에게 덕선은 한 번도 "이겼어?"라고 묻지 않았다. "너 괜찮아? 이제 쉬어." 라고 말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한번도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안녕과 평안. 그것을 물어주고, 챙겨주고 지켜주는 것이 덕선이였다. 둘의 스킨쉽은 키스가 아니라, 덕선의 어깨에 풀석, 머리를 기대는 택의 몸짓에서 시작되었다. 한 번도 위악을 떨지 않고, 고스란히 좋아하는 맘을 보여준, 덕선을 향해선 언제나 환한 미소만을 보여주던 택의 투명한 사랑이 덕선의 마음에 먼저 가 닿는 것은 당연했다. 둘이 처음으로 맨 정신으로 키스하고 난 후, 택은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 쭉, 그는 수면제 없이 잠들 수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 곳에 차분히 안착했던 것이다. 택의 사랑은 절대절명의 것이었다. 4. 만옥 아빠의 실체는 동대문 원단 장사였다. 많은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던, 그 아빠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난 다시 한 번, 배역에 똑떨어지는 배우를 골라낼 줄 아는 제작팀의 세심함에 고마워했다. 만옥 아빠를 연기한 배우는, 그 짧은 분량에서도, 온전히 그가 처해 있는 계급의 욕망과 아쉬움, 성공에도 불구하고 느껴야 하는 비애를 표현했다. 그리고 그런 아빠를 부끄러워하던 자신을 나무라며, 당당히 그 모습 그대로를 남자친구에게 드러낸 만옥을 통해서, 사랑과 행복을 거머쥐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작가는 설파해 주었다. 5. 질투하지 않는 인간 관계.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이 쌍문동 골목에서 피어나는 톡톡한 정의 본류는 세 엄마들 간의 돈독한 우정이라고 봤다. 그들의 우정은 아이들에게로, 그리고 가장 힘든 지대인 남편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질투는, 결단코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그것은 만인이 만인을 향한 경쟁을 통해 단 하나 뿐인 줄에 일렬 종대로 서서 우열을 겨뤄야 한다고 믿는 이데올로기에서 작동되는, 자본주의에 의해 학습된 어리석은 사회적 태도다. 만인에겐 만인의 길이 있으며, 우린 그 길들을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허락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인디언 사회, 중국의 모쒀족,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로 인간의 본성이 침해되는 참사를 겪지 않은 인류는 경쟁하고 질투하며 살지 않았다. 인생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란 걸 그들은 잘 알았으니까. 원문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03408873165878&id=100004903086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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