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woosim
2 years ago10,000+ Views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제목은 <문구의 모험>. 필기구를 좋아한다는 내 말에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었는데 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게 되었다. 완독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사실 하루면 충분했는데 먼저 읽어야 할 책들이 있어 미루고 미룬 탓이다. 선물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미안함도 조금 담아 후기를 쓰려 했다. 문구에 대한 책이니만큼 특별히 연필로 써야지 마음먹고 집 근처 문구점을 찾았다. 청록색 파버 카스텔 연필로 작은 사치를 부려본다. 연필이라.. 정말 오랜만이었다 (혹시 필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조심해야 할 거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고 싶은 것들이 쏟아진다. 그중 연필이 그나마 affordable한 선택이었다). 왜 아직도 사람들은 필기구를, 연필을 쓰는 걸까. 글쓰기 도구라면 워드 프로세서도 있고 요즘엔 에버노트 같은 메모 어플리케이션도 많은데 말이다. 단순히 헤밍웨이를 흉내 내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방 안 필통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필기구들과 노란색 리걸패드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왜 일까 왜 일까.. 계속해서 되뇌이며 끄적였다. 사각사각.. 귀에 들리는 소리인지 손끝에 닿는 느낌인지 모를 그 무엇이 나를 종이 위에 잡아둔다. 이거구나!! 싶었다. 기능이라면 연필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필기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사각사각 소리가, 이 느낌이 미치도록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기는 계기가 그런 것 같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다들 나사 하나쯤은 풀려 느슨한 구석이 있다. 만약 사랑에 빠지기 위한 조건이 완벽함이었다면 모두 자격 미달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며 산다. 어딘가가 마음에 안 들고 부족해 보이지만 단 한 번의 눈빛, 작은 손길.. 사각사각 하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의 연필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 써도 다시 채워 넣으면 그만인 샤프, 만년필이 아니라 연필이고 싶다. 연필깍이 같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싶다.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오래 쓰여 무뎌질 때마다 나를 어루어만져줄 것이다. 그렇게 쓰이고 무뎌지고 깍이고.. 쓰이고 무뎌지고 깍이고.. 끝내 모두 닳아 없어져 그 사람과 함께 한 편의 소설이고 싶다. 그 이야기 속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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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연필을 잊게되더란 것... 글읽고 추억까지떠오르네요^^
@jaewoosim 아하 ㅋㅋ 전 시내 근처 쪽 삽니당 대전분 반갑네요~
@queenseo 아 네 전 서구 탄방동 살아요
@jaewoosim 아 대전분이신가봐요!? ㅋㅋ
@queenseo 오 대전시티즌이신가봐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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