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gy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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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Viewing]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May I come in?

맷 리브스, LET ME IN (2010, remake)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


1.
한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이런 질문을 했다.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걱정되고 보고 싶은 마음부터가 사랑일까?
잠을 설칠 정도로 생각이 난다면, 그건 사랑일까?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뒤돌아봐도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면,
그게 사랑이었을까?”
그러게 말이다. 대체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내가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이 언제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그 때만을 후회하면 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나는 오늘도 모든 추억들에 <푹푹> 찔린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사랑의 형태가 다양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러니까 어떤 남자는 특유의 애교가 귀여웠고 어떤 남자는 뒷모습이 고독한 게 섹시했다. 애교 많은 남자는 늘 쓰다듬어주고 싶었고, 외로움이 멋졌던 남자는 그 고독을 함께 곱씹으며 같이 섹시해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 사랑의 방법 또한 그 시작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방법과 시작들이 어찌되었건 나는 결국 몇 번의 이별을 거듭했고 이제는 사랑의 시작이 두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그래서 지금의 내게 이렇게 묻는다.
어디서부터가, 사랑이었을까?
왜 그들은 내게 한 번도 영화 속의 ‘그녀’처럼 내가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나를 네 마음속으로 들여보내주지 않겠냐고 내게 묻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지나간 사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처음을 알기가 좀 더 쉬웠을 텐데. 폐허가 된 이 연애의 가시밭길을 꽁꽁 언 맨발로 걷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질긴 오징어 다리를 짝짝 씹듯, 이 질기고 비효율적인 이별의 시간들을 되새김질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2.
소년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 그녀는 달빛보다 눈부시고 눈보다도 청초하다. 그리고 오래오래 열 두 살 이었다. 소년은 외롭고 나약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에 분노하지만, 초라한 그에게는 이 깡패 같은 세상에 저항할 힘이 없다. 그러니까 '필연적인 고독' 이 공통점을 통해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영화를 [외로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이야기]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을 통한 한 소년의 잔혹한 성장기]라고도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 그대, 혹시 이 영화의 엔딩에서 ‘지독하게’ 쓸쓸해지지 않았냐고. 정말 이 둘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만 끝났다고 생각하느냐고.
아마 선뜻 ‘물론이지!’라는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같은 인물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그 남자.

뱀파이어 소녀가 외로운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했던 그 남자. 그녀에게 피를 제공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살인행각이 발각되자 혐의를 없애기 위해 얼굴에 염산을 붓고는,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소녀에게 자신의 목덜미를 내밀던 ‘그 남자’
소년과 가까워지는 그녀를 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애와 친하게 지내지 말아줘.”
- 아마 이 말 뒤에는, ‘네가 없다면 나는 다시 철저하게 외로워져야만 할 거야.’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을지도.
하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빨아 해치운 그녀는 소년에게 돌아가 이렇게 묻는다.
"May I come in?”
그러니까 얼굴만 예뻤지. 세상에 이런 어마어마한 X년이 따로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이미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듯 그녀를 자신의 공간 속으로 들인다.
괜찮아, 괜찮아, 들어와도 괜찮아.
3.
그렇게 친해진 소녀의 집에서 소년은 ‘그 남자’의 어릴 적 사진을 발견한다. 아마 소년은 그 때 짐작했을 것이다. 자신도 그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그녀와 영화의 끝까지 함께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그녀가 못 견디게 아름다워서’라는 평범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불같은 안도감. 내 상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치명적인 동질감. 내 인생의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를 얻었다는 충만감.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가 가진 결핍의 일시적인 충족을 애정과 사랑으로 착각한다. 물론 나에게 찾아온 사랑이 이러한 심리적 빈 공간의 성숙한 충족을 통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사랑들은 대체로 ‘콩깍지’를 동반한다. 그게 이 열정적인 사랑의 가장 난해하고도 결정적인 문제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내가 가진 결핍이 무엇인 줄도 모르면서 그것을 누군가가 대신 채워주기를 기대하는 것.
물론 그게 바로 ‘사랑의 역할’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던 적도 분명 있다. ‘나의 모자람을 이해하고 품어 줄 수 있는 게 진정한 더 파워오브러브 아니겠어?’라며,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진탕 설교를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게 시작했던 내 사랑의 끝은 불행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나는 끊임없이 불행했고 외로웠으며, 그 불행을 상대방에게 모두 전가시켰다. 그에게 한 없이 기대했고, 그가 채워주는 나의 외로움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그를 사랑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결국 나 조차 모르는 미성숙한 나의 [결핍]들은 그들을 지치게 했고, 내가 그와 어떤 사랑을 시작했건, 그 과정이 어찌되었건, 나는 결국 그들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를 어여삐 여기지 않아 생겨난 나의 존재론적인 ‘고독’은, 그 ‘이별’은, 외롭고 쓸쓸하던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데에서부터 시작된 대참사였던 것이다.
4.
나는 이제 안다. 그 소년의 미래가 내 사랑의 끝과 너무도 닮아있었음을.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에서 그토록 지독히 쓸쓸해질 수 밖에 없었음을.
사랑은 중립적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성숙도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외로운 소년은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일시적인 구원, 결핍에 의한 끌림, 그리고 그 끝의 지독한 허무함.
결국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내 맘 속의 빈 공간을 채워줄 사람’을 찾아 헤맸으며 끊임없이 그에게 기대했고 그의 숨통을 조였다. 사랑해. 사랑한다니까? 사랑한다고! 라는 말 같지 않은 이유로 내가 그들에게 선사한 사랑의 착취성, 효용성, 실용성.
나는 이제 내가 외로운 소년이었는지, 그 외로운 소년을 꼬드겨서 피를 착취해 냈던 뱀파이어 같은 인간이었는지 마저 헷갈린다.
하지만 이 글의 끝에서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사실 유혹이란 내 스스로가 처절할 때 더욱 달콤해지는 법이니까. 그녀가 어떤 존재였건, 사랑이 얼마큼 중립적인 것이 건. 어쨌든 내가 외로울 때 나에게로 찾아와서, 한 때는 내 삶의 가장 큰 위안으로 머물러 주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내게 또 다시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온다면, 그 때는 좀 더 현명해져야 할 것이다. 그 때는 나를 사랑할 줄 아는, 그리하여 나의 결핍을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고도 그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 지 알아보는 안목 또한 키워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를 대비해 이 영화의 풀 네임을 꼭 기억해 두기로 한다. 나를, 너를, 그리고 훗날에 만날 우리를 위해서.
영화 Let Me in의 원 제목은

Let the right one in.







5.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中






piggy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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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angbba 위에서 말한 '결핍'이란 개개인 마다 상이한 것이기에, 물 한잔을 바라보는 가치 기준으로 일반화 시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에요. 그러니까 당장 내 앞에 물도 없는 상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_' 좀 더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마음의 움직임을 뜻합니다. 공지영의 글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저 종이 한장 차이일 뿐이란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그 종이 한 장을 뒤집는 것이 지구를 들어올리는 일 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성숙한 사람들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쓸 뿐,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요... 물론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반복적으로 생겨나는 인생의 문제들에는 분명히 무의식적인 상처나 결핍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니, 저는 그들이 연애를 시작하거나 끝내면서 생기는 아픔과 상처들을 우선 나 자신을 돌봄으로써 극복하기를 원했습니다. 말씀하신 성숙한 인격과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피기님덕에 영화 관람리스트가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가요!
@piggy8894 당장 앞에 물이 없는 상태라.. 그렇게 표현해주시니 확 와닿네요.ㅠ 맞아요. 피기님 생각 응원해요~ 항상 어디서든 피기님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뒤에 있다는거 잊지마시고 밝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화이팅이요!!!
@zzangbba 성숙한 인격과 뒤에 사리깊은 판단들은 이라는 글이 빠졌네요ㅠㅠ!
@piggy8894 목걸이는 됬습니다...몸에 좋은 마늘 쥬스로 ㅋㅋㅋㅋ 클로이 이뿌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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