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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김광석과 철학하는 김광식이 엮는 씨줄과 날줄 『김광석과 철학하기』

故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평소보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워크맨으로 김광석 테이프를 줄기차게 들었던 제 입장에서도 20주기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김광석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김광석과 철학하기』라는 책은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묘하게도 저자의 이름마저 김광석을 떠오르게 하는 ‘김광식’입니다. 책의 부제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12가지 행복 철학’이지만, 오히려 저자는 ‘아픈 마음’을 이야기하고 책에 등장하는 김광석의 노래에서는 대부분 ‘슬픔’이란 감정이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을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이미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한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기에 행복을 논하기에 앞서 슬픔을, 불행을 논합니다. 그리고 김광석의 슬픈 노래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슬픔을 꺼내고 치유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됩니다.
김광석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애절한 발라드를 들으며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껴본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아픈 경험, 힘든 경험은 있겠죠. 하지만 사실 현재의 저는 깊은 곳의 슬픔과 불행을 꺼내 치유하고 행복에 이르는 철학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책을 읽은 이유도 김광석과 철학을 연결하는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첫 번째였습니다.
다만 행복철학이라는 거창한 개념을 잠시 뒤로 밀어두고 그 대신 김광석의 노래 가사에서 서양철학을 거침없이 설명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따지자면, 철학은 늘 어렵다고 느끼는 제겐 참 놀라운 책입니다. 마치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키워드 하나만 띄워놓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강의를 이어가는 전문가를 보는 느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고대철학부터 칸트, 헤겔, 하이데거, 그리고 저자 김광식의 철학까지 김광석(과 다른 작사가들)이 대단한 철학적 사유를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철학적 사유와 연결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철학과 결합하는 순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 등장하는 ‘창(窓)’은 마음의 창, 즉 이성(理性)과 연결됩니다. 데카르트와 연결되는 이성의 철학을 영화 <데미지>와 <매트릭스>, <오디세이>의 세이렌 신화 등을 통해 설명하며, 슬픔을 넘어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물론 오랜 기간 우리의 뇌리에 남는 노래를 만든 작사가, 작곡가와 김광석의 목소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철학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노래와 철학이라는 새로운 조합이 서양철학을 조금은 수월하게 이해하는 힌트가 되긴 하지만 철학을 이해했다고 하기엔, 그리고 궁극적으로 저자가 전하려는 행복 철학을 받아들이기엔 힘겨운 게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테이프로 듣던 김광석의 노래를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듣습니다. 그만큼 세월은 많이 흘렀고, 제 생활환경도 달라졌고,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지금 느끼는 감정도 당연히 다릅니다. 한참 김광석의 노래에 빠졌을 때 이런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제가 훨씬 소중하게 여길 책 목록에 포함됐을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최신가요보다 많이 들었던 김광석의 노래를 오랜만에 무한반복 한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저자가 전하는 행복철학과는 다르지만,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전 행복했으니 방식은 달라도 저만의 행복철학을 한 가지 더 찾은 셈이죠.
저자는 “노래는 감성으로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철학은 이성으로 아픈 마음을 헤아려준다”고 합니다. 김광석과 철학을 동시에 사랑하는 분이라면 저는 미처 느끼지 못한 이 책의 또다른 진가를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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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에서 [랑종]까지 - 신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 세상이 이 모양인 것과 비대칭 오컬트에 관해 ※ 영화 <곡성>과 <랑종>의 내용이 일부 드러납니다. :) ------- 1. “가까운 가족이 죽지 않아야 할 상황인데 죽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과거 나홍진 감독은 영화 <곡성>(2016)을 만든 동기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요컨대 ‘왜 착한 사람이 불행한 일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한 추론 또는 상상. 2. 흔히들 한탄한다. 신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선한 사람들의 억울함이 반복되냐고. <곡성>은 이 불가해를 이해하고자 비이성의 경로를 택한 영화다. 방법은 소거법. 첫 번째 세부 질문 ‘신은 있는가? 없는가’에서는 부재(不在)를 지우고 존재(存在)를 남긴다. 그렇게 이 영화에는 초월자가 ‘있’게 된다. 아무렴. 3.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신은 영향력을 행사했는가? 혹은 놀았는가’ 정도 되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홍진은 지금 한 손엔 카메라, 다른 한 손엔 부적 비슷한 걸 쥐고 있다. 비이성이라는 어질어질 외길. 그렇게 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소거되고 ‘영향력을 충분히 행사했다’가 남는다. 4. 이제 신이 ①존재하고 ②액션도 취했는데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 왜 착한 종구 가족이 몰살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필연이다. 이 지점에서, 선택 가능한 답지는 하나밖에 없지 않나요, 라며 나홍진이 고개를 홱 180도 돌려 관객을 본다.(물론 실제가 아니고 영화의 태도에 관한 은유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신은, 그 신이 아니었습니다. 낄낄낄, 와타시와 와타시다, 나는 나다. <곡성>에서 넘버원 초월자의 정체는 ③재앙을 빚는 악(惡)이었던 것. ‘귀신’ 신(神)은 결코 직무를 유기한 적이 없다. 애석하게도. 5. 1선발 초월자라면 당연히 거룩하고 선하리라는 믿음은 <곡성>에서 구겨졌다. 그리고 5년, <랑종>(2021)이 그 세계관을 장착한 채 또 다른 극한으로 내달린다. 이번에도 초월적인 무언가는 모두가 멸망할 때까지 폭주한다.(나홍진의 날인) 게다가 한두 놈이 아닌 듯하다. 6. 이 귀‘신’들을 <엑소시스트>나 <컨저링> 같은 정통 오컬트 속 대립 구도, 이를테면 적그리스도로서의 대항마 계보 안에 넣기는 어렵다. 그들처럼 선(善)이 구축한 팽팽한 질서를 따고 들어와 균열을 내는 등의 목적성을 띠지 않으니까. 왜? 안 그래도 되므로. 미안하지만 <랑종>에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 법한 절대 선, 시스템의 창조자, 친인류적 초월자 등 그게 무엇이든 비슷한 것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무당인 님도 끝내 털어놓지 않았나. 신내림을 받았지만 진짜로 신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7. <곡성>과 달리 <랑종>은 현혹되지 말기를 바라는 선한 성질의 기운마저 제거했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무당 몸을 빌린 수호신이든, 공포에 벌벌 떠는 인간들에게 가호를 내려줄 이는 없다. 좋은 초월자는 꼭꼭 숨었거나 모든 초월자는 나쁘거나. <곡성>이 신의 가면을 벗겨 그 악의(惡意)로 가득한 얼굴을 봤다면, <랑종>은 악의의 운동능력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괜히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게 아니다. 8. 악의 증폭과 선이라 믿어진 것들의 부재. 억울함과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 짓뭉개졌을 인간의 비극사, 까지 안 가도 포털 뉴스 사회면을 하루만 들여다보자. 현실 세계를 오컬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랑종>의 이 궤멸적 신화보다 어울리는 콘텐츠가 있겠나 싶다. 9. 악마한테 이기든 지든, 선악 대칭 구조를 가진 주류 오컬트는 창조자나 창조자가 빛은 질서의 선의와 안전성을 여전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면 <더 위치>, <곡성>, <유전>, <랑종> 등 특정 힘에 압도되는 비대칭 호러들이 있다. 현혹되지 말자. 이 계보의 영화들은 지금 악에 들뜬 상태가 아니라, ‘악’밖에 남지 않은 실재를 도식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구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0. 이 모든 영화적 상상은 불우하고 불공평한 세계를 납득하기 위한, 차라리 가장 합리적인 접근일지도 모르겠다. 비이성의 중심에서 외치는 이성. 그렇게 원형으로서의 신은 죽었다. 다만 그럴수록 더욱 절통한 어떤 현실들. 다시, 신이시여.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