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ho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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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방향 청소년 캠프

얼마전 대구의 작은 사역단체인 '예수방향'팀의 청소년 겨울캠프 촬영을 다녀왔습니다. (3장) 종교적 내용으로 거부감이 드신다면 뒤로가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배팀의 모습입니다. 별다른 글은 적지않겠습니다. (10장)
함께 참가하였던 학생들의 모습들 (10장)
기도하는 모습들 (10장)
캠프의 마지막 모습 (4장) 멤버들이 6개월간 각종 알바 및 막노동을 통해 미자립교회와 같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교회 학생들을 위해 열고있는 캠프입니다. 저는 멤버가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캠프 취지에 동감하고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동역하여 섬긴 다는 마음으로 촬영하였습니다. 날씨가 다시 또 추워진다고 합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고 감기조심하세요.^^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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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ho9230 님 오랜만이에용! 잘 지내시죵??
@photolover3 네 눈이 엄청쏟아져서 삽질하느라 좀 고생했지만 잘살아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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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대한 개신교적 교리.banbak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간다." 아주 간단한 명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 명제만큼 어려운 명제도 없으며, 이 단순한 명제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신학자들이 몇인지는 샐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단순한 명제에는 그에 따르는 수많은 대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삼각김밥 하나에 1000원입니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수많은 대전제가 있다 '삼각김밥'이라는 물질적 개념 '하나'라는 수치적 개념 '1000원'이라는 경재적 개념 등 심지어 거래라는 방법적 개념까지 너무나 많은 대전제가 서로 합의를 이루어야만 이 단순한 명제는 효력을 얻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간다."를 생각해보자 이 명제는 예수, 믿음, 회개, 천국이라는 개념이 대전재가 되어야만 성립이 된다 기본적인 대전제인만큼 기본적인 개신교적 개념으로만 살펴본다면, 예수는 곧 신 그 자체이며 믿음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회개는 믿음에 대한 신자의 결과적 행위이며 천국은 신자가 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신의 나라이다 즉, 이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보충해보면 이러하다 "예수라는 신을 신적 의지에 의해 인간이 믿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밖에 없게 되며 회개한 신자는 죄로부터 자유한 신의 나라에 입성한다." 풀어쓴 명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위 사람들의 고백은 이상해진다 회개란 믿음으로부터 발산하는 결과적 행위인데 죄를 즐기는 행위는 예수를 믿는 신자의 행위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죄를 즐기는 자는 회개할 수 없다 회개는 전적으로 믿는 자가 도달하는 결론이지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즉,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이야기하는 회개와 다르다 마치 같은 숫자가 쓰여있다고 한국 화폐를 미국 달러로 쓸 수 없듯이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절대 사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회개란 신앙의 결과이지 신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예수가 이야기한 "내 명령을 듣고"는  신자가 지켜야 할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신자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설교이다 신자니 죄를 짓지말고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닌 착한 사람이야말로 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자만이 회개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진다 화자는 교리를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회를 비판할 생각도, 종교적 진리를 정확무오한 진리라고 수호할 생각도 없다 단지, 잘못된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자 설명이다 요약하지 못한 긴글을 써 미안하게 생각한다 3줄 요약 1. 기독교적 개념으로 회개는 신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2. 신자란 죄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하는 존재이지 회개할 수 있다며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3. 그러니 죄를 짓고 회개하면 천국이다라는 말은 교리적 대전제를 무시한 잡소리에 불과하다 (출처) 재밌는 글이라 퍼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나도 같은 생각 ㅋㅋ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왔습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무궁화가 보입니다. 일편단심이라는 꽃말이 떠오르며 허공으로 시선이 흩어집니다.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 귀한 세상입니다. 대한민국, 본국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던 생각이 이곳에서 죄스러웠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인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왔습니다. 위치: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시간: 3월~10월은 9시30분~18시 / 11월~2월은 9시30분~17시 /입장마감은 관람종료 30분전 /휴관일 홈페이지 참고 *코로나로 인해 예약 후 이용가능하며 전시해설, 교육프로그램 예약도 있으니 홈페이지 확인 바랍니다. https://sphh.sscmc.or.kr/reservation/reservation.php 입구를 들어서면 전시관(보안과청사)이 보입니다. 간수들이 업무를 보았던 청사 건물(1923년 건축)로서 역사실과 영상실이 있습니다. 옥사부터 사형장, 격벽장, 망루 등을 모형과 설계도, 배치도 등을 통해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최대 3,500명의 독립운동가를 수감했다는 설명에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보안과청사 지하는 수감자를 조사하고 취조했던 공간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닭살이 돋기 시작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형무소에서 고문을 견뎌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입감된 후 신체를 조사받고 대기했던 곳입니다. 위축된 어깨를 보니 마음이 슬퍼집니다.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어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입니다. 예전에 위안부 영상에서 봤던 못판 고문이 생각나면서 두 눈을 감아버립니다. 일제 검찰이 수감자들을 취조했던 취조실이 있으며, 곳곳에서 육성 증언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뒤편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울부짖던 남자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벽관 고문 기구에 들어가 봤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온몸이 뻣뻣해졌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칠흑 같은 어둠뿐입니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한 줌의 빛만 바라볼 뿐입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세사르 바예호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전시관을 나와 간수들이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근무했던 중앙사로 왔습니다. 반질반질한 간수사무소를 보니 화가 납니다.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 -존F.케네디 제 10,11,12 옥사를 방사형으로 연결하여 옥사 전체를 감시할 수 있게 파놉티콘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 소름 끼칩니다. 독방에 처음 들어가 봤는데 음산한 기운에 목이 움츠러듭니다. 성인 남성이 앉아있을 정도의 공간에 어둠만이 가득합니다. 정말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감방 곳곳에는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설명 및 영상들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유심히 보던 초등학생의 뒷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무거운 숨을 뱉어내도 여전히 팔은 닭살 돋아 있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곳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볼 때랑은 아주 다른 느낌입니다. 옥사 내 감방안에는 다양한 조형물이 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게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푸른 풀빛과 연못이 예쁘다고 생각하다가 안내 문구를 읽고 생각이 멈췄습니다. 많은 의병장이 사형집행 당한 옛 사형집행장 터였던 것입니다. 옥사에서 들었을 절규와 죽은 자의 냄새...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요. 감옥을 둘러보다 보면,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무엇이 혹은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정말 그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감자 중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 및 수용했던 한센병사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유일하게 중앙 간수소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된 옥사로, 당시 일제의 식민지배를 반대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힌 ‘사상범’을 주로 가두고서 특별 감시와 통제를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형무소에서 순국한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추모비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까지 실제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형장입니다. (사진촬영불가) 밧줄과 의자를 보는데 마음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안쪽에 시신을 바깥 공동묘지로 이동하기 위해 외부와 연결해 놓았던 시구문도 있는데 안의 어둠에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여성들이 수감되었던 여옥사에 이효정과 박진홍의 재회 장면이 있습니다. 버튼을 눌러 그들의 대화를 듣는데, 하아 아이를 잘 키울 거라는 희망찬 그녀의 목소리에 울대가 뜨거워집니다. 그 아이는 2년을 채 못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남성 독립운동가들보다 두세 배 분량의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고 합니다. 가사노동과 농사일, 독립운동의 병행.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이 나라를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픔이 없는 민족은 없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에 고통스럽지만 과거를 마주 보고 아픔에 공감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