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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 나라와 문화마다 색깔의 의미는? What Colors Mean In Other Cultures?

색깔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장소, 특정 시기, 우리가 좋아하는 전통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방식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 색깔들이 상징하는 바는 아주 다양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른 문화권들에서 색깔들이 역사, 감정, 믿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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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녀를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어느 왕자 이야기 (feat. TMI 파티)
태초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음. 오랫동안 영국을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은 4남 5녀를 낳았는데, 공주들이 유럽 왕실 여기저기로 시집을 가고....외손녀들도 여기저기 시집을 가면서 유럽 왕실마다 자기 피를 남김. 이건 존나 큰 문제였음. 왜냐면 (대충 있어보이는 관련 사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였기 때문이다. 혈우병은 뭐고 보인자는 뭐냐면 자 일단 인간의 X 염색체에는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가 있는데, 이게 결함이 있으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혈우병이 되는 거임. 혈우병이 진짜 무서운 점은 외상이 아니라 내출혈의 경우임. 내출혈이 일어났을 때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고이면 혈종이 생겨서 장애나 사망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임. 보인자도 뭔지 설명해줌. 혈우병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X 염색체에 결함이 있는 거임. 남성은 XY라 X 하나에 결함이 있으면 바로 혈우병임. 근데 여자는 성염색체가 XX라 하나가 결함이 있어도 다른 X 염색체가 보완을 해서 본인은 혈우병 증상이 없음 ㅇㅇ 하지만 본인의 X 염색체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자식한테 그게 내려가면 혈우병 유전이 되기 때문에 보인자라고 부름. 빅토리아 여왕은 본인이 혈우병 보인자란걸 몰랐음. 그 시대에 염색체에 대한 개념도 없을 뿐더러 부모님과 남편은 혈우병이 없었고 본인도 혈우병 증상이 없기 때문에.... 참고로 빅토리아 여왕 부모님 둘 다 환자가 아닌데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보인자로 태어난건 돌연변이라서임. 문제 없던 염색체도 나이가 들면 혈액응고 인자가 자기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빅토리아 여왕 아버지가 50대에 낳은 늦둥이 딸이었기 때문에 여왕이 보인자로 태어난게 학계 정설. 여왕의 혈우병 인자는 둘째 딸인 앤 공주, 다섯째 딸 베아트리스 공주, 넷째 아들 레오파드 왕자에게 내려감. 사진이 둘째 딸 앤 공주임. 앤 공주는 독일의 헤센 대공국으로 시집 감. 앤 공주는 아주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됨.... 2남 5녀를 낳았는데 막내아들 프리드리히 왕자가 앤 공주의 혈우병 인자를 물려 받아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기 때문 ㅠ 프리드리히는 놀다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죽을 부상이 아니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서 과다 출혈로 사망함. 일곱 아이들 중에서 프리드리히를 가장 아꼈던 앤 공주는 죽을 때까지 프리드리히를 마음에 묻고 살았고, 프리드리히가 죽고 태어난 막내딸 마리 공주에게 집착하게 됨. 거기에 디프테리아 라는 전염병이 헤센 대공국에 퍼졌고 어린 마리 공주가 사망함. 막내 아들 딸을 전부 보내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앤 공주도 디프테리아로 죽음. 앤 공주의 둘째, 즉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엘리자베트는 러시아 대공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짐. 당시 러시아 황제의 동생이었던 세르게이는 엘리자베트처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 아픔을 공유하면서 가까워졌다함. 당시 러시아 황실은 불안정했고,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로 시집 가는건 이 할미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라고 난리를 쳤지만 원래 사랑에 빠지면 아무 것도 안 들리는 법. 여튼 둘이 결혼하는 날.... 앤 공주의 다섯째 자식이자 엘리자베트의 여동생인 알릭스도 언니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에 참석함. 여기서 알릭스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러시아의 황태자였던 니콜라이임. 세르게이의 조카였던 니콜라이도 당연히 삼촌 결혼 축하하러 왔다가 알릭스를 만났고 둘은 사랑에 빠짐. 빅토리아 여왕 : (환장) 앤 공주가 일찍 죽은 후 빅토리아 여왕은 실질적으로 외손녀들의 어머니 노릇을 해주며 양육에 많이 관여했는데, 금쪽같이 키운 손녀들이 쌍으로 러시아라니 환장을 안 할 수가 없음. 심지어 엘리자베트는 황족이긴 해도 황위랑 관련 없는 대공이지만 알릭스는 차기 황제가 될 황태자였음. 뭐 그치만 알릭스는 이름도 러시아 식으로 바꾸고 종교도 개종해가며 니콜라이와 결혼해 러시아의 황후가 됨.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탸사, 알렉세이 5남매를 낳음. 자 여기서 잊고 있던 혈우병 인자가 ㅎㅇ 하고 나타남. 빅토리아 여왕 -> 앤 공주 -> 알릭스 -> 알렉세이 황태자 루트임. 겨우 얻은 귀한 막내아들이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으니 알릭스는 미칠 지경이었음. 알릭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 중 최악의 악수가 라스푸친....(코난에 나오는 걔) 머 이건 상관 없는 이야기니 패스 이 사람은 앤 공주의 장녀이자 알릭스의 언니인 빅토리아 공주임.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라 함. 유럽은 원래 이럼. 빅토리아 공주는 4남매를 낳는데 막내아들 루이가 존나 잘생김. (사진 오른쪽이 루이고 왼쪽은 영국 왕임) 위에서 말했듯 어머니 앤 공주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빅토리아-엘리자베트-알릭스 자매의 양육은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많이 관여함. 그래서 빅토리아 공주나 루이는 본인을 영국인으로 생각했다함. 여튼 루이는 러시아에 놀러감. 러시아 황후인 알릭스는 이모,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이모부, 러시아 황녀들은 루이에게 이종사촌이니까ㅇㅇ 루이는 한살 연상이자 셋째 황녀인 사촌누나 마리아 황녀에게 반함. 폴인럽해버린 것이에요. 사촌인데? 할 수 있는데 이거 20세기 초반 일임. 유럽, 특히 왕실은 근친혼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었음. 근친혼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된건 현대 ㅇㅇ 루이가 돌아온 후에도 둘은 종종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황제 일가는 폐위 후 유폐 당함. 마리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루이는 전전긍긍하며 마리아가 무사히 살아남길 기도했지만 1918년, 황제 일가는 모조리 총살 당함 ㅠㅠㅠ 1968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본인 피셜에 따르면 루이는 마리아 황녀와 진지하게 결혼하고 싶었다고 함. 루이는 폭탄테러로 사망했는데 죽는 날까지 서재에 마리아 황녀의 사진을 놓고 살았다고 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끗 하기 아쉬우니까 TMI 1 루이의 친누나인 앨리스는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났고 평생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수녀원을 전전했음. 앨리스는 그리스 왕자와 결혼했는데 남편도 일찍 죽음. 거기다 그리스도 왕정이 전복 되는데 루이는 그리스에서 도피한 누나랑 조카를 자기 집에 데려옴. 루이는 이 조카를 자기 친아들처럼 키웠는데 그 필립이 영국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aka 망언제조기) (아버지가 그리스 왕자라 필립도 그리스 왕족인데 여왕이랑 결혼하려고 그리스 왕위계승권 포기함. ) 따지고보면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직계후손이고, 필립 공도 빅토리아 여왕의 고손자라 둘이 8촌임 ㅇㅅㅇ 필립 아들인 찰스 왕세자도 루이를 친할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함. 여기서 존나 블랙코미디.... 원래 영국 왕실에서는 1970년대에 루이 공의 손녀인 아만다를 찰스 왕세자랑 결혼 시키려고 했음. 근데 왕실 사람들은 이미 찰스가 카밀라랑 이렇고 저렇고 하는 관계인거 알고 있었고, 루이 공의 딸인 패트리샤 부부는 "시발 안 됨 ㄴㄴㄴㄴ 내 딸을 찰스랑 결혼 시킨다고? 지랄 ㄴㄴㄴㄴ" 라고 격렬히 반대함. 때마침(?) 루이 공이 폭탄테러로 사망하면서 패트리샤 부부는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셔서 저희 부부 멘탈이 너무 힘듭니다. 이 시기에 딸 시집 보내기 싫음 ㅈㅅ" 이라고 거절하면서 결혼은 파토나고 찰스는 다이애나랑 결혼함. 존나 선견지명 오졌던 부분. 어쨌든 루이는 현 영국 왕실 모두의 존경을 받던 어른이라 최근 태어난 영국 왕자 이름도 루이라고 지음. 루이는 원래 프랑스식 이름이라 영국에서는 인기 없는 이름이기 때문에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영국 왕족임. TMI 2 마리아 황녀가 죽은 후 루이는 당대 최고의 부자 상속녀였던 에드위나랑 결혼함. 에드위나의 개인재산이 록펠러 재산의 10분의 1....존나 부자 ㅇㅇ...... 둘의 결혼은 오픈 매리지, 즉 니가 누구랑 섹스하고 사귀든 상관 안 함. 대신 내가 누구랑 사귀고 섹스하든 상관 ㄴㄴ 라는 계약을 맺고 한 결혼이었음. 에드위나는 온갖 사람들이랑 염문설을 뿌렸는데 대표적으로 1. 자와할랄 네루 (;;;) 2.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 = 루이의 형수 = 자기 동서 (.....?) 3. 남편 루이의 섹파 (......????) 루이의 전섹파랑 사귄게 아니라 루이의 현섹파랑 사겼다함....WOW 여튼 루이의 형수이자 에드위나의 애인이었던 (.....)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은 당대 미국 최고 재벌 중 하나였던 밴더빌트 가문의 며느리 글로리아 모건이랑 사겼는데 글로리아 모건은 딸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양육권을 두고 시댁이랑 재판 뜸. 이 재판은 TV에 방영될 정도로 당대 이슈였고 존나 추잡한 폭로전이 오고갔는데, 재판에서 시댁이 양육권을 얻으려고 글로리아 모건이랑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이 사귀는걸 폭로했다함. 개막장;;;;;; 유투브에 찾으면 아직도 있음ㅋ.... 여튼 이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아들이 앤더슨 쿠퍼 ㅇㅅㅇ 앤더슨 쿠퍼는 커밍아웃한 게이인데, 자기 외할머니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자기의 동성애 성향이 유전인가 괴로워했었다구 함. - 대체 어쩌다가 앤더슨 쿠퍼까지 온 건지 모르겠지만 쨌든 끗 - 출처 : 여성시대 / 오로오로오로로
슬픈 한본어의 역사
놀라지 마세여 여러분 +_+ 지금부터 보실 글은 리얼루 해방 3년 후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기록한거라구 해여. 전 엄청 충격이었는데... 놀라서 나무위키 뒤져서 내용 좀 발췌해 왔으니까 같이 읽어보실래여? 그리구 몰랐던 내용들도 아래 캡처본으로 같이 첨부합니다! ------------------- 일제강점기라는 36년 세월이 지난 직후, 한국인의 언어생활에는 상당 부분 일본어가 흡수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말 자연스럽게 한본어가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위 내용은 1948년 엄흥섭이 거리에서 학생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채록한 것이다. 72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대부분의 현대 한국인 화자들은 알아듣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한국어가 '한본어화'된 것을 볼 수 있다.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말 한마디 서로 주고받을 때 보면 한국말, 일본말, 영어가 한데 섞여 뒤범벅이 되어 나온다. 그 심한 예시를 몇가지 참고하여 인용한다. "얘, 정숙인 이번 일요일 결혼 한다는데 아주 괜찮은 옷감이 많더라" "정숙이가 얼간이인데도 신랑이 OK했다지?" "신랑이 반한 게 아니라 정숙이가 반했대" "과연 새로운 뉴스인데" 이것은 필자가 최근에 어떤 여학생들이 가두에 서서 주고받았던 회화의 한마디를 사생한 것이다. 또 한가지 예시를 인용한다. "어이 너 너 가케우동 한턱 내라" "이 자식아 '해브 노(Have No)'다" "나도, '졘기 녜트(деньги нет)'다" "얘, 너 콘사이스 영일사전 헌책방에다 팔아서 단팥죽(ぜんざい) 사먹자!" 이것은 17, 8세의 중학생들이 하숙방에서 하는 대화의 한마디를 따온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해방 직후에 여고생 = 태나어났더니 이미 합병된지 20년. 민족 말살 통치 시기에 내선일체, 신민화 교육받고 살아옴. 일본인에 동화되도록 인식형성과 교육받음. 해방 직후에는 '나라가 망했는데 왜 어른들이 기뻐하지?' 라고 의아해 하는 학생도 많았고, 민족 최고 지성들 조차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가물가물 해서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일장기 위에 태극무늬를 덫그리고 건곤감리를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는거 보면 일제가 10년만 더 식민지배 했으면 큰일 났을듯 일본인들 중에도 내 고향은 충청도인데 왜 고향을 버리고 가야하나요? 라고 생각하던 일본인도 있던거보면 그 세대의 일본인 한국인 모두 혼란스러웠던 듯. (댓글 출처 ㄹㄹㅇ) 뭔가 너무 슬프네여. 태어났을 때 이미 일본땅이라 나라를 뺏기고 말고의 개념도 없어서 해방했는데도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했던 우리 학생들 ㅠㅠ
펌) 진정한 국모였던 마지막 황후 - 순정효황후
역사상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본명은 윤증순임  순종이 동궁이었을 때 태자비 민씨가 죽자 열세살의 나이로 무려 스무살 연상인 순종에게 시집을 감. 태자비로 간택된 뒷얘기에는 아버지 윤택영이 황실에 거액의 뇌물을 바쳐서 됐다고는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순정효황후와 순종> 순종은 아버지 고종처럼 커피를 즐겨마셨는데 어느 날 역관 김홍륙이 황제와 태자가 마시는 커피에 독을 타 넣음 개씨발 그걸 몰랐던 순종이 먼저 커피를 마심 "아바마마, 오늘 커피가 유난히 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고종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이미 삼킨 뒤였음 ㅠㅠ 해서 순종은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ㅠㅠ 아이에 대한 소망이 간절했던 어린 부인에게 평생 미안해했음... 새 태자비의 집안은 엄청난 친일파 집안이었음 특히 아비 윤택영과 큰아버지 윤덕영이 대표적인 친일파개새끼 였음 하지만 황후와 오라비 윤홍섭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음 윤홍섭은 독립운동가였는데 황후는 오빠를 돕기 위해 자신의 내탕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내기도 하고,  유학생들의 학자금으로도 몰래 주었음 순종이 즉위하고 황후가 되자 만백성이 기뻐했음. 백성들은 황후를 보고 '백옥으로 만든 관음보살'이라고 칭송함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순종과의 결혼 생활은 매우 순조로웠음. 둘은 서로를 아끼며 매우 존중해주었음 하지만 순종은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외세의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갔음 게다가 황후의 아비랑 백부랑 매일 같이 찾아와 합방을 종용함씨부럴 그러던 어느 날 황후가 된지 3년후인 1910년, 황후가 17살일 때 일이었음 한일합방의 조약을 맺는 어전회의가 열리는 날이었음 "폐하! 제국을 위해서라도 합방 조약을 맺으셔야 하옵니다!" 대신들은 순종을 계속 압박해왔음 황후는 모든 걸 병풍 뒤에서 듣고 있었음 합방을 체결할 때 반드시 옥새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던 황후는 몰래 빠져 나와 덕수궁에 갇혀 있던 고종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일본 군인들이 전화선을 끊은 뒤였음 그 때 명을 받든 내시가 옥새를 가지고 지나갔음 황후는 옥새를 빼앗아 치마폭에 꽁꽁 감췄음 그러나 황후가 옥새를 빼돌렸다는 걸 대신들이 아는건 시간문제였음 ㅠㅠ 백부 윤덕영이 황후에게서 옥새를 강제로 빼앗았고, 이후 국권은 피탈되고 대한제국은 몰락하였음... <순종의 장례 행렬>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황후는 창덕궁 낙선재로 거처를 옮김 이후 광복 때까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음 마침내 광복이 찾아오자 황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음 그러나 기쁨도 잠시,  5년 후 한국전쟁이 터짐 <서울을 침공한 인민군 5사단> 인민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황후가 있던 창덕궁에 들이닥침 상궁들은 혼비백산하여 황후에게 피신할 것을 요청함 "마마! 저 해괴한 놈들이 언제 옥체를 해할 지 모릅니다 속히 피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황후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매섭게 뜬 채 꼼짝도 하지 않았음 마침내 인민군이 낙선재에 들이닥침 황후는 꼿꼿하게 앉은 채 인민군들에게 소리쳤음 "이 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다. 물러들 가지 못할까!" 인민군들은 황후의 위엄에 놀라 깨갱 하고 물러감 아직 정부보단 황실에 대한 인식과 존경이 강한 시대였기에  군말 없이 물러선 것이 아닐까 싶음 어찌됐든 진짜 멋있음....bbbbbbb 하지만 이듬해부터 전세가 심해지자 황후도 피난길을 피할 순 없었음 그러나 어느 시골 농민 가족의 덕분에 무탈없이 지낼 수 있었음 마침내 휴전 협정이 맺어지자, 황후는 다시 낙선재로 돌아가려 했음 하지만 이승만은 황후를 두려워했음 애초에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아왔고 인민군을 쫓아냈다는 일화가 퍼진 이후로 황후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은 하늘을 찔렀음 게다가 전국적으로 황실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퍼져있었음 결국 이승만의 방해로 황후는 정릉 수인제에서 머물게 됨 ㅠㅠ 그러던 1960년, 전 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의 도움으로 다시 낙선재로 돌아올 수 있었음 1962년에는 정신병으로 오랫동안 일본 병원에 갇혀있던 덕혜옹주가 귀국함 덕혜옹주는 이미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아 사람을 못알아 볼 정도였는데 황후가 버선발로 뛰어나오자 황실의 예법대로 협배를 올리고 황후의 눈을 올려다보지 않았다고 함... <1960년 내빈을 접견 중인 순정효황후> 황후는 이후 죽을 때까지 낙선재에서 지내며 소일거리로 피아노 연주를 즐겨했으며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함 그 실력이 타임지를 읽을 정도였다고;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이라는 법명을 받기도 함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장례 행렬> 그리고 1966년 2월 3일, 창덕궁 석복헌에서 73세에 노환에 의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남 그리고 경기도 남양주시 유릉에 순종과 순명효황후(순종의 태자비 였으나 후에 황후로 추존 됨)와 함께 합장됨 죽는 그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당당함과 냉철함으로 남은 황실의 식솔들을 이끌었던 순정효황후. 격동의 현대사에 지친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기둥이고 절대적인 나라의 상징이었는지 상상이 됨 이런 순정효황후의 일대기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순정효황후 [ 純貞孝皇后 ] (1894 ~ 1966)
낯선이를 모델로 만드는 사진작가 : Alex Stemplewski
사진작가 알렉스틑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이들을 유명 화보 속 모델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사진작가입니다 :) 샌프란시스코의 길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알렉스는 사람들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내 정중하게 물어보죠 "저의 모델이 되어주시겠어요?"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하고 귀엽답니다 *_* 처음 카메라를 장만한 알렉스는 당장 사진이 찍고 싶었지만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알고 있는 모델도, 스튜디오도 없었죠 ㅠ.ㅠ 보통 사람들이라면 포기하고 스튜디오와 모델을 섭외하려 했겠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 길거리로 뛰어나가 모르는 이들을 무료로 촬영하는건 어떨까 ? 생각한거죠 자신은 사진 연습을, 사람들은 고퀄의 인생샷을 무료로 얻을 수 있으니 모두에게 이득아니겠어요 ?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부탁을 들어줬고 그의 포토폴리오는 다양한 매력의 모델들로 반짝이게 되었어요 :) 지금 알렉스는 인스타와 틱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인스타에만 253k의 팔로워, 틱톡 팔로워는 무려 8백만명이 넘는다고 해요 +_+ 아주 대성공 아닙니까 ! 이제 그의 마법과도 같은 사진 작품들을 함께 만나봐요 >.< https://www.instagram.com/alexanderthegreat/ https://www.tiktok.com/@alex.stemp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자동화 기계로 물건을 생산하는 어떤 공장에서 갑자기 공장 기계가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장 하루만 공장이 멈춰도 엄청난 손해를 입어야 하는 공장 담당자는 서둘러 기계가 멈춘 원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동화 생산 기계를 납품한 회사에 기계를 고칠 기술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공장을 재가동시켜야 하는 공장 담당자는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기술자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반갑게 맞이하려던 공장 담당자는 당황했습니다. 기계를 고치러 온 기술자는 너무도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일 분 일초가 급한 공장 담당자는 납품 회사에 전화를 걸어 화를 냈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나이 어린 초보 기술자를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오늘 공장을 재가동해야 한단 말입니다." 공장 담당자는 전화기를 붙잡고 자신의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하는 담당자 뒤에 젊은 기술자가 불쑥 다가와 말했습니다. "다 고쳤습니다. 그런데 저희 기계 문제가 아니라 제품 원료에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생긴 문제였으니 앞으로 조심하시면 됩니다." 공장 담당자가 돌아보니 그 짧은 시간에 다시 공장 기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담당자가 놀라는 사이에 통화하던 납품 회사 사원이 전화로 설명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지금 찾아간 기술자는 초보자가 아니라 그 공장의 자동화 기계를 직접 개발하고 설계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평가하게 된다면 큰 실수를 하게 되거나 어떤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가 모두 편견을 비난하지만 아직은 모두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 - H. 스펜서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