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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아이」 - 1 구니타치(国立)에서 늑대아이의 흔적을 찾다

-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중에서
"학교와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오가며 바쁘게 사는 대학생 하나는 강의실에서 늘어진 옷을 입고 책도 없이 수업을 듣는 한 남자를 본다. 측은함을 느끼던 하나는 어느새 그와 사랑에 빠지고, 둘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는 늑대인간이었다. 그는 하나에게 자신이 늑대인간임을 어렵게 고백하지만, 하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를 받아들이고 유키와 아메를 출산하게 된다."
주인공 하나가 다니던 ‘도쿄 변두리에 있는 국립대학’의 모델이 된 히토쓰바시 대학(一橋大学) 캠퍼스는 주오선 구니타치(国立) 역에서 멋진 가로수 길(東京都道 146호길)을 걸으면 몇 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대학 건물은 가로수 길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누어져 있는데, 「늑대아이」에서는 중요 문화재인 강당이 있는 서쪽 캠퍼스가 많이 등장했다. 큰 돌로 담이 쌓여 있는 모습이 작품 속 모습 그대로였다. 유럽풍 교사가 있는 고풍스러운 풍경은 대학이라기보다는 공원이나 역사적 건축물을 전시한 야외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극 중에는 강당 앞에서 어린이들이 노는 장면이 나오는데, 히토쓰바시 대학은 관계자 이외의 출입을 허가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실제로도 뛰어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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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일본이 리더를 키우는 법
기업 경영이든, 스포츠 세계든, 절대강자란 없는 법이다. 럭비 월드컵(9회 대회)으로 들떠 있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올해 1월 2일 열린 전국대학 럭비선수권 준결승전. 이날 ‘대사건’이 일어났다. 9년 연속(2009~2017) 무적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던 테이쿄대(帝京大)의 연승에 마침표가 찍혔기 때문이다. 테이쿄대는 간사이 리그 챔피언 텐리대(天理大)와의 경기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9년 전 첫 우승하던 날로부터 3279일 만에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는 충격중의 충격이었다. 테이쿄대(帝京大) 9년 연속 대학 럭비 '절대강자' 일본 대학에선 전통적으로 게이오, 와세다, 메이지, 도시샤, 텐리대 등이 럭비 명문으로 꼽힌다. 그런데 신흥강자로 급부상한 곳이 바로 테이쿄대다. 이 학교가 처음부터 강자였던 것은 아니다. 테이쿄대는 원래 간토 지방 대항전의 단골 하위팀으로, 절대약자였다. 1996년 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이와데 마사유키(岩出雅之) 감독이 부임하기까지는 그랬다. 이와데 마사유키의 조련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08년 45회 선수권부터다. 테이쿄대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전통 강호 와세다대에 패했다. 기적은 이듬해부터 이어졌다. 2009년 46회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테이쿄대는 9시즌 연속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학교의 이름에 들어간 한자(帝)처럼 '제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매년 전력이 바뀌는 ‘학생 스포츠’에서 연승 군단을 만드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은 그걸 9년 동안 해냈다. 일본 스포츠계는 그의 전략전술을 두고 ‘제왕학’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럭비 이외의 인생에서 승자가 되길 바란다” 이런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이 냉철한 승부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리더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한 스포츠 매체(산스포 1월 9일자)에 따르면,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럭비만으로 살아갈 선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 대부분의 부원들은 럭비 이외의 인생에서 승자가 되길 바란다.”(ラグビーだけで生きていける選手もいるが、それはほんの一握り。ほとんどの部員たちは、ラグビー以外の人生で勝者になってほしい) 이 말을 두고 한 스포츠 기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무적의 테이쿄대 럭비부지만, 졸업생 대부분은 한 명의 사회인으로 인생을 걸어간다. 중요한 것은 연승 군단이라는 직함이 아니라 직장에서 신뢰받고, 동료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걸 지휘관(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강해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되길 부원 전원에게 요구해 왔다. 재능 있는 선수도,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결코 대충하지 않고 묵묵히 플레이를 계속하는 것이 테이쿄대 스타일이다.> ‘왜 인사부는 럭비부 출신자를 좋아하는가’ 테이쿄대 럭비 부원들의 사회 첫발은 어떨까. 일본 기업은 인사 채용에서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한 럭비부 출신들을 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야구보다 우선 순위다) 협동심과 조직의 힘을 배우는 경기 특성 때문이다. 럭비의 발상지 영국에서도 럭비는 리더를 키우는,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스포츠로 여겨져 왔다. 과거 영일동맹(1902년)을 맺는 등 영국과 강한 유대감을 가져온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럭비를 육성해 왔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재계에는 럭비부 출신 CEO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취업 분위기를 반영하듯 ‘왜 인사부는 럭비부 출신자를 좋아하는가’(なぜ人事部はラグビー出身者を好むのか)라는 매체의 기사도 있다.(아래 URL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sankeibiz.jp/econome/news/170820/ecd1708201304001-n1.htm?ref_cd=RelatedNews 종주국 영국이 럭비로 리더 키우던 것처럼, 일본도 다시 ‘럭비 월드컵’. 1987년 1회 대회를 시작한 럭비 월드컵은 이번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열렸다. ‘아시아속 유럽’을 추구하는 일본이 들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쿄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대대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 멤버 31명 중 ‘절대강자’ 테이쿄대 출신자가 7명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9년 연속 우승하다 덜미를 잡힌 테이쿄대 이야기는 적잖은 교훈을 주고도 남는다. 절대강자도 패배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 이는 절대약자도 승리하는 날이 온다는 걸로 바꿔 말할 수 있을 터. 아울러 “럭비 이외의 인생에서 승자가 되길 바란다”는 테이쿄대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의 말도 무겁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일본이 리더를 키우는 법,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에디터 이재우(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86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아베 새빨간 거짓말" 日 시민도 올림픽 '보이콧'
시민단체 도쿄올림픽 방사능 위험 경고하는 서적 출판 도쿄올림픽 개최 중지 요구 온라인 서명운동 벌이기도 SNS에서는 도쿄올림픽 풍자한 '상상도' 10만 공감 육박 (사진=change.org, 세븐넷 캡처) 논란투성이인 2020 도쿄올림픽에 일본 시민들의 내부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 13일 일본의 한 시민단체는 '도쿄올림픽이 가져올 위험'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은 통제 가능하고 도쿄에는 어떤 영향도 없었고 없을 것"이라는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을 정면 반박한다. 일본 내 전문가들과 피난민들의 인터뷰를 실어 도쿄올림픽의 방사능 피폭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해당 서적은 17일 현재 일본 유명 온라인 음반·서적 구매사이트인 세븐넷의 '사회 문제 기타' 분야에서 판매량 6위를 차지했다. 그런가하면 SNS 상에서는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개최 중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등장했다. 이 서명운동을 제의한 네티즌은 개최 중지 이유로 황당한 폭염 대책, 지나치게 높은 올림픽 예산, 뇌물 의혹,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문제 등을 꼽았다. 특히 방사능 문제의 경우 "오히려 부흥을 방해하는 올림픽이다. 아베 총리의 새빨간 거짓말에 유치한 올림픽인데 피난민들은 현재 다른 지역 방사선량의 몇십 배에 달하는 후쿠시마로 귀환해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SNS 캡처) 자신을 정신과 의사라고 밝힌 한 일본 네티즌은 '도쿄올림픽 상상도'를 트위터에 올려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도쿄올림픽을 풍자한 이 그림은 4만6천번 공유됐고, 9만2천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도쿄올림픽의 각종 문제점을 압축시킨 내용에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공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4개 섹션으로 구분된 그림에는 '똥물' 논란을 빚은 오다이바 수영장, 땡볕에 지친 선수들, 관중석에서 휘날리는 욱일기, 뇌물을 손에 쥔 도쿄올림픽 관계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깃발까지 등장해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가 일맥상통한다는 의미를 전했다. 이 그림을 올린 네티즌은 "어느 정도의 개연성으로 현실이 될 이 지옥도를 회피할 간단한 해결법이 있다. 중지 혹은 2개월 정도의 연기"라고 조언했다. 반발하는 네티즌들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정확한 표현력에 감탄했다. 설마 21세기 일본이 여기까지 추락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상이나 소설이 아니라 현실적인 미래의 광경" 등의 동의가 이어졌다.
나가사키 짬뽕에 녹아든 영국 상인의 이름
> 나가사키짬뽕 운영하는 체인점 ㈜링거하트 > 회사명 영국 상인 ‘프레데릭 링거’서 유래 > 나가사키 무역산업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 런던 북동쪽의 작은 도시 노리치(Norwich). 이 지역 매체 노리치 이브닝뉴스(Norwich Evening News)는 2013년 6월 26일, 이곳 출신의 한 사업가를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일본에서 유명인이 된 노리치의 비즈니스맨’(The Norwich businessman who became a star in Japan: 아래 URL 클릭하면 해당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eveningnews24.co.uk/news/the-norwich-businessman-who-became-a-star-in-japan-1-2252584 이 매체는 “노리치 공동묘지 뒤쪽, 잡초와 갈대들이 웃자란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일본에서 유명인이 된 영국 사람 프레데릭 링거(Frederick Ringer)의 무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운을 뗐다. 노리치 이브닝뉴스 "링거하트는 프레데릭 링거서 유래" 노리치 이브닝뉴스는 이어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 매장을 두고 있는 일본 음식 체인점 링거하트(Ringer Hut)는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the Ringer Hut restaurant chain, which has branches in a number of countries, including the US, was named after him)고 전했다. 링거하트(リンガーハット. 일본어로는 링가핫또). 자주 들어 본 이름일 것이다. 일본에서 나가사키 짬봉과 돈가츠 매장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회사다. 한국 관광객들이 나가사키로 여행 가면 한번은 먹게 되는 메뉴가 나가사키 짬뽕이다. (국물 요리의 절대강자 짬뽕. 일본에서 짬뽕이 생겨난 건 1899년으로 알려져 있다. 나가사키의 사해루(四海楼)라는 중국 음식점이 발상지다. 중국 복건성 출신의 종업원 입에서 짬뽕이라는 말이 연유했다고 한다.) 링거하트는 글자 그대로 ‘링거씨의 작은 오두막집’(Hut)이라는 뜻이다. 링거하트 로고에는 링거(Ringer)의 이름을 의미하는 대문자 R자 옆에 오두막이 그려져 있다. 영국 노리치 출신인 프레데릭 링거의 이름이 일본 음식점 회사 브랜드로 이어진 것이다. 프레데릭 링거와 나가사키짬뽕을 운영하는 링거하트의 인연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봤다. 프레데릭 링거와 나가사키짬뽕의 인연은 1865년 시작 프레데릭 링거(1838~1907)가 일본 나가사키 땅을 밟은 건 1865년이다. 그의 나이 스물 일곱이었다. 링거는 토마스 글러버가 운영하는 글로버 상회(Glover & Co)의 차(茶)무역 감독관으로 채용됐다. 링거는 3년 뒤인 1868년 글로버 상회를 퇴사하고 영국인 동료와 별도의 회사를 세웠다. 링거는 차뿐만 아니라 제분, 발전, 석유, 언론 등 다양한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갔고 나가사키 지역의 무역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나가사키에 있는 글로버 가든 파크 내에는 링거가 살았던 주택이 아직 남아있다. 링거는 1907년 고향으로 돌아간 후 죽었다. 노리치 이브닝뉴스 기사로 되돌아가 보자. 이 매체가 당시 관련 기사를 실은 건, 링거하트의 회장단 일행이 프레데릭 링거의 무덤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링거하트의 창업주는 요네하마 카즈히데(米濱和英) 회장이다. 링거하트 요네하마 회장은 중국 산동반도서 태어나 요네하마 카즈히데(1943년생)는 중국 산동 반도의 엔타이(煙台: 연태 고량주로 유명한 지역)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원래 돗토리현 출신이지만 아버지대에 이르러 중국에서 영화관을 경영했다고 한다. 1945년 패전으로 쫓겨나듯 중국을 떠나온 가족은 돗토리현의 어촌 마을에서 다시 터를 잡았다. 이런 가족사를 가진 요네하마 카즈히데는 스무 살인 1962년, 열두 살 많은 형이 세운‘ 하마가츠’(浜かつ)라는 돈가츠 회사에 취직했다. 형이 요절하면서 서른 둘의 나이에 사장에 취임한 요네하마는 1974년 나가사키 짬뽕을 주력메뉴로 하는 링거하트 체인점 1호를 오픈했다. 요네하마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먹은 짬뽕에 감명 받아 회사를 세웠다”고 말했다. "프레데릭의 성공과 존경 의미에서 링거하트 이름 붙여" 또 다시 노리치 이브닝뉴스 기사. 요네하마 카즈히데 회장은 당시 이 매체에 프레데릭 링거의 무덤을 찾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방문은 링거씨에게 존경을 표하는 기회의 자리가 됐다. 우리는 150년 전 링거씨가 노리치에서 일본으로 건너 왔으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용기와 성공 방식을 존경하는 뜻에서 우리 음식점 체인명을 그의 이름에서 따오게 되었다.> 링거하트는 1979년 도쿄가 있는 관동 지역으로 매장을 확대했고, 나가사키짬뽕은 일본 전국구 음식이 됐다. 요네하마 회장은 2000년 회사를 도쿄증시 1부에 상장시키고 외부 인사에게 경영을 물려줬다. 하지만 회사는 2005년부터 불어 닥친 저가 경쟁에 밀려 실적이 악화되고 말았다. 이에 요네하마는 2008년 65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복귀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50개에 달하는 적자 점포 폐쇄였다. 야채 완전 국산화, 가격 인상 전략으로 V자 경영 회복을 이뤘다.<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85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하후돈 원양 (夏侯惇 元讓) A.D.? ~ 220
이 칼럼에서 앞서 다뤄진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나아가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대부분, 본래의 생애와 인물됨이 평가절하 내지는 너프를 잔뜩 받거나 또는 버프를 이빠시 받은데 비해... 버프or너프를 떠나 그 실제와 소설 속의 이미지 차이가 확연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오늘의 주인공인 "하후돈"이다. 오늘날 중국 안휘성 보저우시인 "패국 초현" 출신이며 조조와 동향이고 여기는 당시 서주의 소패 인근인데, 그때의 이 곳은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과 후한의 수도인 낙양, 그리고 업과 허창과 함께 후한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인 꽤나 잘 나가는 동네였다. 도시남자 하후돈은 어려서부터 터프가이의 싹수를 뽐내며 자란 대개의 무장들과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학문을 배우던 나름 곱상한 유년~청소년기를 보냈고 대체로 학당에 나가 공부하고 교육받던 당시의 학생들과 달리 집으로 스승을 모셔 배우는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은근 좀 사는 집 아들이였던거 같다. 하기사, 파탄에 가까운 후한 말의 배곯는게 일상인 여느 백성들에게 교육이 사치였던 시절, 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중산층 이상은 되었다는 반증.(올~~) 그러던 돈이가 14세 때.... 어떤 이가 그의 스승을 하후돈 앞에서 모욕하자, 그 자리에서 패죽였다는 기록을 보건데 단순 중2병을 넘어 이미 그 나이 때부터 완력도, 의기도 남달랐던 슈퍼청소년이였던거 같다. 지금 만약 어떤 중학생이 누가 지네 담임 흉본다고 그 사람을 때려 죽이면 바로 소년원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하후돈이 강직하다며 사람들이 그의 의로움을 칭찬한걸 보면..... 진짜 후한 말 중국이 개판은 개판이였던 모양.ㅋ 어릴 때부터 조조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체구가 작고 근력도 그냥저냥이던 조조의 주먹 노릇을 했던 하후돈은 그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도 조조가 거느렸던 숱한 인물들 중 가장 드높은 충성을 바친 맹목적인 조조빠였고 조조 역시 자기 휘하의 문무에서 날고 기던 무수한 쫄자들 중 하후돈을 가장 아꼈기에 그런 하후돈은 그래서인지 항상 본인의 능력 이상의 직위와 직책을 맡았었다. 연의에서는 물불 안가리고 무예와 용맹이 대단하여 조조세력의 초창기, 전투에 앞장서는 맹장으로 그려지나 사료에는 그의 군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여포가 활개치던 시절에는 조조와 여포의 전투에서 여포군의 사항계에 속아 인질로 잡히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하후돈을 득템하여 몸값을 요구하던 적들에게 당시 조조휘하의 '한호'라는 하후돈의 부장이 협상 그런거 없이 인질범들을 그대로 공격했고 하후돈은 그 혼란을 틈타 탈출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ㅋㅋㅋ 물론, 한호 입장에서는 인질극에 휘둘리다 군세가 꺾이고 군법이 문란해져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그랬고 후에 조조 또한 한호를 매우 치하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앞으로 그 어떤 인질극에서도 절대 상대와 타협없이 인질의 생존과 구출여부 떠나 공격하라는 메뉴얼을 정했다는... (하후돈 지못미;;;) 하후돈은 이 당시 여포와의 전투에서 인질로 잡히는 것도 모자라, 화살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며 "장애인"이 되는 오지게 재수 잡치는 일까지 당하고 만다는.... T-T 우리가 알고 있는 애꾸간지폭발의 하후돈은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적장이 쏜 화살에 왼눈을 직격 당하자 화살을 뽑아, 딸려 나오는 안구를 씹어 먹으며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고 외치고는 그대로 말달려 자기 눈에 활을 쏜 고순의 부장인 조성을 한 창에 꿰어 죽이는 그야말로 개간지의 카리스마를 뿜는 장면이 나오지만.... . 이건 진정 개소리 of the 개소리가 아닐 수 없고 하후돈이 받은 역대 최고최강의 버프라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전투 중 누가 어디에서 쏜지도 알 길 없는 난전이 어딘가에 맞고 원바운드 되어 눈으로 튀었거나 또는 아슬아슬히 눈가를 스쳤거나 해서 다쳐 그리 된 것. 실제로는 눈에 화살을 맞으면 거의 즉사하거나 쌔뻑좋게 살아도 어마무시한 통증과 출혈에 의한 쇼크로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아무튼 저무튼간에, 하후돈은 이렇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요즘 기준으로 시각장애 6급에 해당하는 "단안실명 시각장애인"이 된다. 참고로 단안실명은 시각장애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고...ㅋㅋ 애꾸관련 이야기를 더해 보자면, 일단 한 눈이 저리되면 당장 원근감과 남은 눈의 시력도 크게 떨어지며 일상에서 남은 눈의 피로도 쉽게 온다. 저 당시의 전투는 거의 대개 칼과 창이 맞붙는 백병전! 사지 멀쩡해도 사소한 삑사리 한 번에 죽거나 병신이 되기 십상인 와중에 시야각이 크게 제한되는 애꾸는 엄청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설령 하후돈이 진짜 혼자 무쌍난무를 찍는 무력깡패라 할지라도 저 시점부터는 전투력이 급감했을 것이며, 실제로 하후돈은 저 시점부터 전투의 전면에 나서는 지휘관보다 주로 후방지원이나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닉 퓨리처럼 검은 안대를 차고 나와 궁예간지를 자랑하지만, 역사기록에는 안대착용에 관련된 언급이 없기에 아마 그냥 드러내고 다녔을걸로 추측한다. 하후돈이 삼국지연의나 그 후의 여러 매체들에서 맹장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외눈"에서 오는 어딘가 모를ㅎ 오히려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 동서양 막론, 예나 지금이나 외눈 + 검은안대는 강력한 악당보스의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지금도 영화나 만화보면 외눈들은 약국이나 안과에서 주는 하얀안대가 아닌 어디서 샀는지 꼭 검은안대를 했고 그 대상들은 해적선장, 빌런, 주인공의 동료라도 나중에 배신 때리거나 또는 악당이였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 일행되는 놈들이 많다. (하긴, 같은 애꾸라도 하얀안대 끼면 바로 환자이미지) 애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쩔 수 없는 게..ㅋ "애꾸눈"이미지는 정사나 연의나 솔직히 별반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이 없음에도 하후돈이 조조측의 빼놓을 수 없는 장수 중 하나로 각인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고.. 당시에야 빡치고 우울했을 하후돈 본인이겠지만 눈 하나를 내준 덕에 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난 현세에서도 하후돈을 조조측의 메이커 장수가 되게 해줬으니 너무 억울해 할 건 없지 않나 싶은ㅎㅎㅎ 훗날, 후한 최고의 아가리파이터이자,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예형"이 하후돈을 "완체장군(完體將軍)"이라고 깠는데, 저 말 뜻 그대로는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는.. 이는 애꾸인 하후돈을 비꼬아 놀리는 말이다. 혹자는 비쥬얼이 좋았던 하후돈을 허우대만 멀쩡하다며 놀리는 한편, 나름 외모는 인정한다는 말이였다고도 하는데, 사료의 원문과 예형의 스타일 및 당시 분위기를 고려 시... 그냥 비꼬고 놀린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위에서 살짝 언급되었지만, 당시 기준에 하후돈은 용모가 꽤 먹어주던 모양인지 외모의 훈훈함, 멋짐을 짧막하게나마 언급된 자료들이 있다. 성격도 대단히 좋은 양반이였던 걸로 전해진다. 조조따라 거병 후, 줄곧 조조진영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훗날 무관직의 정점인 대장군에 올랐음에도 생애동안 청렴하고 검소하여 물욕을 부리지 않았고 간혹 어쩌다 포상을 받아도 자신의 부장들과 병사들에게 배분 해줬으며, 애꾸가 된 다음 하후돈이 지나가면 종종 병사들이 "맹하후(盲夏侯/장님하후돈이란 뜻)"라며 수군대고 놀려도 앞에서는 모른체하고 막사에 들어가 혼자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부장들이나 간혹 병사들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웃으며 떠들기도 하여 병사들에게는 위엄 서린 어려운 지휘관이라기보다 친근한 형님 타입이였고 한중정벌 당시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순찰 중 예상 못한 코스에서 장로의 병사들과 마주해 난전을 벌이던 생사위기에 처했을 때, 부장 하나가 "장군! 에워싼 적병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다급히 외치자, "다행히 내 눈에는 적병이 반만 보이니 괜찮네!"라며 위기상황에서도 농을 치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 조크도 날릴 줄 아는 나이스가이였다. 장수들에게는 군법을 엄정히 적용했으나 일반 병사들에게는 비교적 널럴히 대하여 큰 중죄가 아니라면 되도록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라 누가 조조에게 소원수리라도 긁었는지, 조조에게 불려가 군기강 해이유발 관련으로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군중에도 학자를 초빙해와 가르침을 받을만큼 학구열도 대단했고, 그래서인지.. 단지 야전임무뿐 아니라 다양한 군사관련 행정처리도 탁월했다고 한다. 토목에도 소질이 있는지, 진류태수 시절에는 가뭄이 들자 병사들 동원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때 본인도 같이 작업복을 입고 흙을 짊어 날랐다. 위에 나열된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병사들과 가까움 + 후방보급임무 위주 + 군무행정탁월 + 공사에 능함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져, 삼국지 좀 아시는 분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하후돈의 별명 중 하나인 "행보관" 타이틀이 생겨난 것. 실제로 군사적 업적이 거의 없음에도 조조가 그를 여러 기라성같은 명장, 맹장들의 윗자리에 앉혔던 것도 조조 역시 충성심이 드높고 관리력이 준수하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장수와 병사들을 아우르는 큰 형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그게 다행히 하후돈의 적성에도 맞았다.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출신을 떠나 거의 대부분 하후돈을 잘 따르는 편이였고 전형적 무장임에도 책사들과도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지냈던 걸로 보여진다. 서황과 장료가 조조휘하로 들어왔을 때 다른 기존 장수들에게 그들을 인사시키며 빠른 적응을 도운 것도 그였고 장합과 고람이 원소측에서 투항했을 때도 관도대전 마친 후 환영한다며 잘 해보자는 서신을 보낸 것도 그였다. 대체적인 이미지처럼 맹장은 비록 아니였으나 무장임에도 뛰어난 보급과 행정능력 및 부하나 후배들을 잘 아우름과 동시에 변함없는 조조를 향한 충성과 겸손, 청렴을 갖춘 듬직한 하후돈을 조조는 매우 아껴, 무슨 일이 있건 좋은일의 포상에서는 항상 하후돈을 챙겼고 수시로 그에게 필요한건 없는지 살폈으며 하후돈이 눈을 다쳤을 때, 하루동안 잠도 안자고 하후돈 곁을 지켰으며 하루에 세 번씩 하후돈의 부상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부득불 하후돈을 꾸짖은 후에도 몰래 하후돈에게 사람을 시켜 선물이나 술, 고기 등을 보내 하후돈을 뒤로 달랬고 공식석상에서는 직위로 부르며 군신의 예로 대했어도 사석에서는 조조가 이름을 부르며 격의없이 대한 몇 안되는 인물이였다. 그런 아낌을 받아서인지.... 조조의 죽음이 임박한 무렵 크게 상심하여 본인도 병을 얻어 앓기 시작하다, 끝내 조조가 사망하자 슬픔 속에 지내다 결국 병상에 누웠고 조조 사후 즉위한 조비가 그를 위로하고 그간의 공로를 기려 대장군에 봉했지만 이미 병이 깊어 골골대던 하후돈은 대장군 임명 후 몇 달 뒤 사망한다. 완력에서는 허저나 전위에 비할 바 아니였다. 무예가 뛰어나 장료나 하후연처럼 전술적 활용도가 뛰어난 것도 아니였다. 장합이나 서황같이 우수한 지휘관도 아니였다. 후방에서 서포트를 잘했다한들, 행정처리가 탁월했다한들, 무수한 조조 아래의 먼치킨 문관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뭐 하나 유별난 게 없이 이도저도 아니라 할 수도 있는 그였지만 주군에 대한 깊은 충정, 부장들은 물론, 당시로서는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병사들에 대한 너그러움과 관대함 그리고 고위직임에도 늘 청빈했던 참공직자의 자질이 충분했던 그였기에 자신보다 뛰어난 숱한 이들을 제치고 철저한 능력지상주의자였던 조조의 총애를 받은 그의 행보는 그 시대는 물론, 지금도 귀감이 된다. 장애를 딛고 오로지 성실함과 인성으로 대장군이 된 하후돈의 성공스토리가 부디 여러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를 바라며 지금껏 다음 칼럼까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연재하던 것을 이번은 무리해서 바짝 당겨 연재해봤다는.....ㅎㅎㅎ . 나라 망친 아줌마 투톱의 뿌리가 뽑힌 기념비적인 현시국의 첫 주말을 부디 다들 즐겁고 알차게 보내시길!
현재 일본 열도에 퍼져있는 돼지 열병의 원인
현재 일본에 돌고있는 돼지 열병은 작년 9월에 시작 됐음. 그걸 1년이 지나도록 막지 못한 거임. 결과 10만이 넘는 돼지들이 살처분 당했고, 앞으로 그 이상이 당할 예정. 왜 이런 병크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은데, 먼저 검역 기준이 중구난방이라는 것. 농장이 크건 작건 같은 기준으로 검사하고 방역해야 하는데, 일본은 국제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자신들만의 규격에 따라서 대응했음. 지들딴에는 '소잡을 칼로 닭잡지 않는다!' 라는 명분인데, 결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되었지.... 아니, 포크래인 가져와서 살처분한 돼지 매립하는 중..... 일을 키웠지. 두 번째로 각 농장이나 지자체에서 눈가리고 아웅. 발병을 했으면 확 까버린다음에 이동을 제한하고 감염원을 확실하게 발본색원해야 하는데, 여기서 일본 특유의 '체면'이 작용했음. '우리 농장에서, 우리 동네에서, 우리 시에서, 우리 현에서 이러한 참사가 시작되었다고 밝혀지면 안된다!' 이와 같은 지역 사회의 '유도리'도. 말하자면.. 더러운 것은 덮어버린다는 사고방식이 작동했음. 결과 쉬쉬하다가 초기 진화를 못했고. 질병이 수도권 까지로 퍼져나가게 만들었지. 심지어 일본 정부에서도 이정도 사태가 되었으면 백신 접종을 통해서 추가 확산을 막아야 하는데, '청정국 지위를 잃는 것이 부담되어서' 라는 본말전도 적인 이유를 들어서 백신 접종을 망설이고 있음. 즉, 단순히 촌부나 서로 유착하고 있는 지역 이해관계가 일을 크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국가 정책. 거기에 제대로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관계 당국이 이와 같은 참사를 만들어 내고 있음. 태풍 피해 복구에도 미적거리는 것도 그렇고 축산 방역도 그렇고 예전의 철두철미한 일본이 아님. 우리는 이런 실수를 따라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올림 [출처 - 루리웹]
바다 앞에 거울을 두면 생기는 일.jpg
지난 추석에 양양에 다녀왔습죠 아주 좋더구만요? 서퍼비치인줄 알았던 서피비치에도 다녀왔는데 무진장 힙해서 외국인줄 알았습니다. 이태원에서 놀던 외국인들 다 양양 온줄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도 하고싶었지만 가족여행인지라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내년에 꼭 와서 서핑 다시 해보려고요 지난달에 제주도에 가서 서핑을 처음 배워봤는데요. 인스타에서 보던 본새나는 서퍼는 어디가고 걍 바닷물에 철푸덕 얼굴만 오지게 박았습니다. 열번중에 한두번 겨우 일어났달까요? ㅎㅎ 덕분에 아직도 허리가 쑤십니다. 어쨌뜬 이번 추석에 다녀온 양양도 너무나 좋았지요! 특히 요 바다 앞에 있는 거울을 보고요 이 갬성모야 어떤 똑똑이가 여기에 거울을 세워놨더랩니다. 누가 이런 기획을 한거야??! 덕분에 나도 보고 바다도 보고 일타이피?? 무엇보다.. 바다 앞에 거울을 세워두면 생기는 일_jpg = 셀카를 백만장 찍었지요 오랜만에 인스타 업뎃도 하고 카톡 프사도 바꾸고 아주 신이 나버렸습니다 ㅎㅎ 날씨가 좋아서 하늘이 새파랗게 보였습니다 바다도 쨍하고 건너편에 바위섬도 한몫했어요 사람도 얼마 없었구요 양양에 가신다면 서피비치 말고 이곳도 가보시길! !솔비치호텔 앞에있는 해변입니다! 날씨가 안좋으면 바다도 거무죽죽하게 보이던데 이날은 해가 쨍해서 약간씩 에메랄드 빛이 보였어여 이때 멀리서 구름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서 정면은 구름이 많은데 거울 속에는 맑았어여 멋집니다 ㅎㅎㅎ 그 다음엔 강릉으로 넘어가서 하루죙일~ 이러고 누워있었습니다 여기는 강릉 송정해변이고요 그늘막같은거 치고 바다보고 누워있으면 꿀잠이 솔솔옵니다 얼떨결에 매년 추석마다 여기와서 드러누워 있었네요 가을이 영영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여 날씨가 너무 조크등여 현실은 해 안드는 실내에 있지만... 이 날씨를 조금 더 즐기고 싶네요 ㅎㅎㅎ 마무리는 이효리 품안에서 잠드는 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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