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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쾌락> - 나에겐 역시나 암울한 시기

중세는 흔히 암흑시기라 불립니다.
서구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교권의 지배가 사회 곳곳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쳐 인성이 억압되었던 시기라는 면에서 가히 암흑시기라 불릴만 하죠.

통상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동로마제국마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점렴당하는 15세기까지의 천년의 세월입니다. 말이 천년의 세월이지... 정말로 장구한 세월 아닌가요?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굉장히 랜덤하다고 했을때 중세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저는 여러번 감사하고 오늘 이 땅에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중세말에서 근대에 걸쳐 벌어졌던 끔찍한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거의 연작수준으로 자세하게 포스팅했던 바가 있고 그 당시 마녀사냥에 대해 조사하면서 느꼈던 공포와 전율은 멘붕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중세에 태어났다면 마녀로 지목될 확률은 99% 수준이라고 자가진단했으니깐요 ㅋ
책 제목이 중세의 "쾌락"입니다.
쾌락의 사전적 정의는 "성향이나 욕구를 충족시키고, 생의 활동을 조화롭게 하기 위한 기분 좋은 감각이나 감정" (로베르 불어 사전)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쾌락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육체적 쾌락이고 성적인 즐거움이죠.
이외에서 유희적 쾌락, 미식적 쾌락, 정신적 쾌락, 종교적 희열... 그 스펙트럼은 다양할텐데요.

<중세의 쾌락>은 중세인들이 가졌던 성적 쾌락을 중심으로 위에 열거한 쾌락들의 양상.. 즉 중세인의 삶의 즐거움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다루고 있어요.
중세가 특히 암흑시대라 불릴만 한 이유는 금욕적인 스토아 학파 사상이 기독교 사상안에 자리잡음으로서 부부간의 성적 쾌락 조차도 죄악시하는 태도가 가장 크다고 할수 있겠어요.
아직 의학 - 특히 산부의과, 여성의학 등 - 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인간의 성적 쾌락의 기제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도 없던데다가 태반이 모태솔로인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혹은 모르는 척 하는 성적 쾌락을 다루다보니 내가 못즐기는데 감히 너희들이? 하는 심리도 없잖아 있었을거라 보여집니다.

육체적 쾌락에 대한 죄악시는 곧 현세에 대한 멸시 사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중세시대 전체가 신의 광휘를 위해 바쳐지는 시대가 되고 맙니다.

당시의 가이드라인이 근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있을 거에요. 자위행위를 죄악시하는 태도 - 심지어 의학적으로 성장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믿음 - 같은 것은 20세기 초중반까지도 하나의 정설로 내려오지 않았던가요?

<중세의 쾌락>에는 그동안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중세인의 먹거리, 다양한 페스티벌, 실내외 놀이, 음악, 독서 등 정신적인 쾌락에 대해서도 여러 문헌을 통해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중세인들의 삶이 그렇게 재미없지만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채로움을 보여줍니다.

다만 실내외 놀이나 축제는 농민들에게 쾌락이었고, 보다 정신적인 쾌락은 식자층의 쾌락이었죠. 정신적인 쾌락은 신의 영광을 기리고 찬양하는 것에 귀결되구요. 지금도 그 아름다움에 놀라게 되는 중세 성당의 고귀한 빛과 색의 조화를 떠올려 보시면 어떤 쾌락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실것 같아요.
확실한 것은 우리가 사는 현대가... 여성에게는 물론이려니와 남성에게도 분명 행복한 시간이라는 겁니다.
이 책을 읽고난 교훈이었어요.
- 혜연
작가: 장 베르동
출판: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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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는 분명 암흑시대 (Dark age) 가 맞습니다.. 하지만 천년의 걸친 시대를 통사적으로 암흑시대라 부를 수는 있어도 중세시대의 모든것이 암흑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세시대에도 쾌락이 있었다는걸 알려주는 이 카드의 주제인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것 처럼 말입니다. 철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였음 또한 부정 못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세 암흑시대가 있었기에 르네상스가 나타날 수 있었고 지금 우리의 삶도 있는거겠죠...
와우~ 혜연님의 글들 자주 접하게 되네요. 관심있는 부분들이 곧잘 겹치는것같아 눈여겨보게 되네요. 매번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렇죠 그 당시 남자들도 권력자 그 것도 상당한 권력자가 아니면 불행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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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들, 그러니까 다른 중요한 것들은 미루고 미루는 한이 있어도, 이 글은 어떻게든 이렇게 마감일을 지켜 쓰고 있다. 나는 나와의 약속만을 중요시하는 사람 같다. 한 번쯤은 이 지면을 시 다운 시, 그러니까 분량은 그대로라도 어느 정도 보편적인 범주에서의 시 형식으로 채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이 글은 이제 내 의지와는 조금 무관하게,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흘러가는 것도 같다. 나는 거들 뿐이다. 며칠 전에는 아는 사람과 낙원상가 부근에 있는, 통나무 식당이라는 곳에 해물찜을 먹으러 갔다. 해물찜의 맛을 보기 전 그는 나를 의심했다. 과연 이번에 내가 데려가는 집은 맛집이 맞는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올해 초에 염장을 하지 않은 맛없는 튀김 닭을 먹고 나를 비난했던 그 작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튀김 닭만으로 나를 필요 이상으로 비난한 것은 아닌 것이, 하필 그날 튀김 닭을 먹기 전 데려갔던 이태원의 ‘존슨탕’이라는 음식을 파는 바다식당이란 곳에서도 형편없는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태원의 바다식당은 꽤 유명한 집이며, 유명하다고 다 절대적인 맛집은 아니겠지만, 분명 내가 전에 경험한 그곳의 존슨탕 맛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여담이지만 그날, 그러니까 맛이 괜찮았던 날, 우리 일행의 옆 테이블에는 영화 『강철비』의 감독 양우석이 그의 배우자로 보이는 사람과 그의 아이로 보이는 사람과 셋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가 과연 맛집이 맞느냐며 나를 비난했었고, 내가 생각해도 그날의 존슨탕 맛은 너무나 밍밍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주방장의 컨디션 문제였는지, 레시피 하나가 실수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비난을 막아낼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만회한다고 저녁에 데려간 양재동의 한 튀김 닭집은 테러 수준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연히 알게 된 그 닭집은 내가 가본 집은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맛집 그 자체였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했다가 호되게 당한 꼴이었다. 그곳의 분위기가 어떤가 하면, 일단 지하로 내려가며, 다소 허름하다. 을지로의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외관상으로는 최고의 통닭집이다. 아마도 함께 보았다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배웠다. 허름한 집이 꼭 맛집은 아니라는 것을. 외관이 허름한데, 맛조차 허름한 곳도 분명 있다는 것을. 이유 없이, 아니 이유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나는 그에게 이번에는 제대로 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해물찜을 먹고 만족해했으며, 앞으로 더 두고 볼 테니 잘하라는 듯한 느낌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게다가 나는 해물찜을 먹이기 전 충무로의 태극당에서 그에게 모나카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여 주었다. 그는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별걸 다 만회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대학로의 학림다방을 가자고 권했고, 그는 좋다고 했지만, 그곳은 만석이었으며, 대기자도 두세 팀이나 있었다. 창가의 한 4인용 테이블에는 여자 손님 한 명이 혼자서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70년대의 한 풍경처럼 노트에 펜을 끼적이며, 눈을 감고 과하게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었다. 시라도 쓰고 있는 것 같았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저기……, 시를 좋아하시나 보죠?”라고 하며, 은근슬쩍 착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우리는 터벅터벅 내려와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태극당에서 사 온 사라다빵을 반으로 나눠 그를 먹였다. 태극당의 사라다빵은 꽤 유명하지만, 사실 그 부피에 압도되는 것이지, 맛이 그렇게 특별한 편은 아니다. 그는 배가 부르다고 했지만, 조금 뒤 카페 건너편에 보이는, 백종원이 운영하는 한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가서 열탄불고기나 먹자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것이 진심이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그는 잠시 망설였다. 식당이 2층이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심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잠시 뒤 우리는 결국 그 식당에 갔다. 확실히 그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고
교과서에서 배운 독립운동사의 한 시점 그래서 제목이 주는 무게감,엄중한 한일관계, 광복절을 앞둔 시기, 주위의 반응 등을 살폈을 때 이 영화는 보고 넘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친구들의 모임 날이라 모임을 끝내고 2차로 단체관람을 제안했으나 애국심(?)이 없는 탓인지 시쿤등한 반응이라 아는 사람과 보았다. 마누라는 오전에 회사에서 단체관람을 했기에 제외 하고 그렇다면 누구랑...ㅋ 반일 정서에 편승한 이른바 ‘국뽕’(지나친 애국심을 비하하는 속어) 영화라는 비판과 ‘우리가 기록해야 할 승리의 역사’라는 평이 팽팽하게 맞선다는 영화다. 봉오동은 두만강에서 40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령의 험준한 산줄기가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장 수십 리를 뻗은 계곡 지대이다. 봉오동에는 100여 호의 민가가 흩어져 있었는데 독립군 근거지의 하나로서 최진동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최진동 부대가 일본군 정규군을 대패시켜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전과 중 하나이다. 이것은 역사의 팩트다. 영화는 여기에 스토리텔링을 입힌 가상이다. 유준열이라는 주목받는 배우도 있지만 국민 조연 유해진이 모처럼 주인공이다. 이들 두명이 종횡무진 하며 일본군을 다 죽인다. 요즘의 한일감정에 이입했을 때 어마 무시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텐데 별로다. 그 원인은 개인적 생각에 대사에 무게감이 없다는 거다. 산만한 전개, 춘추전국시대도 아닌데 등장하는 큼지막한 칼의 무기 마지막 신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같은 무게감이 없다. 그래서 재미없다. 개인적인 견해다. 마누라 말을 빌리면 재미를 떠나 이 시기에 그냥 봐 주어야 할 영화란다. 유해진이 영화 내내 외쳐대는 쪽바리 새끼들 때문에... 요즘 핫 한 '영혼구매'가 그런 거다. 내가 못 가는 상황이면 영혼이라도 보낸다는 응원 그냥 봐 주자. 실제 전투에 사용했다는 태극기가 등장할 땐 뭉클했다. 광복절인 이 아침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영영들에 묵념의 예를 갖춘다.
상처 입은 꽃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빨래터에서 얼굴에 젖살도 빠지지 않은 여자아이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빨래는 아주 힘든 노동입니다. 하지만 답답한 날씨에 시원한 물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범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별 대단치도 않은 일에 까르륵 웃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일본인들이 여자아이들을 강제로 데려갔고, 그 이후 아이들은 다시는 환하게 웃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부산과 일본, 대만을 거쳐 홍콩,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끌려다니며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은 소녀들의 삶을 모두 무너뜨렸고, 새하얗던 소녀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일본군에게 다시 잡혀 때릴 데도 없는 어린 소녀를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빨래터에서 친구들과 끌려간 이효순 할머니. 21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고 미치도록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집에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 그리고 2015년 5월 27일, 91세의 이효순 할머니는 마음속 한을 풀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살고 싶었어.” ===================================== 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말합니다. ‘어떤 강제도 없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스스로 자원한 것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했다. 지금 이러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 앞에 당당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어떠한 것에도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당연한 진실을, 분명한 역사를, 당당한 사과를 그들에게 원할 뿐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어린 소녀는 어느덧 주름과 백발이 가득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캐던 소년은 자식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8월 15일 74주년 광복절입니다. 잘못된 역사는 잊히는 순간 또다시 반복됩니다. 다시는 짓밟힌 할머니와 착취당한 할아버지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 김학순 할머니 – =Naver"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역사왜곡 #다시일본패망 #일본망언 #진실 #8월15일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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