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제비?’,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조금 갈등이 되었다. 회는 살이 안찌니까.. 하면서 조책감이 없었는데, ‘탄수화물’이 들어 오신단다. .. “그럼 국물은 뭐에요?” “아.. 고등어 찌개 죠”.. “네…”
난 원래 생선찌개 잘 안챙겨 먹는다. 그리고, 오래 끓이지 않는, 특히 강남 바닥에서 안주라고 끓여 대면서 라면스프 풀어대는 생선찌개는 쳐다 보지도 않는다. 아, 게다가 생선이 고등어. 아시다 시피 ‘피양종자’인 나는 생선 국물을 별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 수제비에 대해 좀 시큰둥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은 회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까, 수제비씨 대령하신다. 그 모습은 여느 찌개 수제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위장이 국산인지라, 술을 마시면 괜한 핑계를 대서라도 국물을 마시게 된다. 그리고 국수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겐 수제비는 그냥 못 본 척하지 못하는 음식이라 내 앞에 떠 놓은 수제비에 수저를 넣었다.
수제비 한 점을 수저에 올리고, 국물도 적당히 떠 넣은 채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수제비의 존재감이 느껴질 무렵, 국물의 맛이 확 느껴졌다.
‘어머.. !!!!’ 난 고등어 국물이 이렇게 괜찮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을 못 했다. 솔직히, 피안도 사람들은 고등어로 국물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예전 우리 아버지의 비애를 들은 게 기억이 난다.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피난을 내려와 가까스로 부산에 도착해서 처음 드신게 ‘고등어국’. “손님이요 마, 개기꾹 드시이소.” 이 말에 내려 오시면서 병을 앓으셨던 할아버지도 눈이 번쩍 뜨셨단다. 그리고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기대를 하면서 기다렸는데, 밥 상에 올려져 나온 국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고등어국. 그래서 너무 서러워, 두고 온 가족들이 생각나 두 분이 한참 우셨단다.
이런 사연도 있고 해서 난 고등어로 만든 그 어떤 국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 곳, 그것도 별 볼일없는 식당으로 가득한 논현동 바닥에서 고등어 찌개를 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개운하면서도 깊은 고등어와 들어가 있는 갖가지 식재료 맛이 어찌 그리 조화가 잘 되었는지, 묵묵히 계속 숟가락 질을 하게 만들었었다.
보통 찌개라고 하면 조금은 간간하여 밥을 땡기게 한다. 그리고, 그 맛이 좋을 경우엔, 찌개 자체가 밥 도둑이 되어 공기밥 추가를 하는 죄를 짓게 한다. 나쁜 넘들이다. 그런데 겨울바다의 공등어 찌개는 착한 녀석이다. 물론 수제비가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찌개로 달리기 시작하면 꼭 밥을 먹게 된다. 나만 그런가? 아닐 것이다. 아.. 아니길 바란다.
원 재료인 고등어의 신선도가 여기서도 발휘되는 듯. 감칠 맛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맛을 느끼는데엔 오히려 밥 맛이 방해가 될 듯하다. 그리고 이런 맛이 부르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말간 쏘주가 또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정작 이 테이블 위의 도둑놈은 다른 녀석이다. ‘깍두기!!!!’ 이런 다크 호스 흔치 않다. 진하고 간이 좀 높아 남도 식인 줄 알았었다. 제주도는 원래부터 호남쪽과 교류가 많아 비슷한 맛을 느끼게 되는 데, 이 깍두기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였으나, 우리 일행 중 누가 물으니, 그게 아니라 강원도 식이란다. 가재미를 갈아 넣어 깍두기를 만들었덴다.
이 설명으로 이 깍두기가 잡아 끄는 맛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함경도 식혜와 비슷한 맛의 조합도 전달되었다. 짭조름하지만 맛은 무와 해물에서 나오는 달큰함으로 정리가 되는게, 이 깍두기 하나로도 소주 몇 병을 비울 자신이 있었다. (아.. 배고파진다… ) 만일 옆에 밥이 있었다면, 찬 밥도 상관없다… 여튼 밥이 있었다면 염치 불구하고, ‘돼지’라는 소리를 들었어도 두어 공기는 그냥 뚝딱 했었겠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밥’먹으러 이 집을 가고 싶다.
솔직히 난 제주도 모슬포 음식을 모른다. 그래서 그 지방 사람들이 즐기는 특유의 맛의 요소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겨울바다의 맛은 성실한 재료 선택과 그에 맞는 뛰어난 솜씨로 주 매뉴 및 반찬등 모두를 매우 좋은 음식을 만드는 내는 것이 분명하다.
겨울바다에서 좋은 음식을 나누면서 우정과 사랑이 더욱 깊어졌고 또 살아갈 힘이 생겼다.
그래서 겨울바다에게 그리고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