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에이드 = 윤희재 기자] MBC ‘한번 더 해피엔딩’이 닻을 올렸을 때,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미국 HBO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를 떠올렸을 것이다. 지난달 18일 제작발표회가 끝난 뒤 이 드라마를 ’섹스 앤 더 시티‘에 빗댄 기사가 쏟아진 점은 이를 방증한다.
사실 구도만 보면 ‘한번 더 해피엔딩’은 ‘섹스 앤 더 시티’와 상당 부분에서 유사성을 띤다. 먼저 30대를 훌쩍 넘긴 4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 이들이 둘도 없는 친구로서 끈끈한 동지애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한번 더 해피엔딩’은 ‘섹스 앤 더 시티’와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섹스 앤 더 시티’에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었다면, ‘한번 더 해피엔딩’에는 놀랍도록 시대착오적인 네 명의 여성만이 존재한다.
# 불편함1. ‘행복의 종착역= 결혼’이라는 공식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드라마에서 행복은 ‘결혼’으로 귀결된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행복은 이제 낡은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선택 사항이다’라고 답한 직장인이 무려 66.5%에 달한다는 최근 설문조사 결과(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 미혼 직장인 1015명 대상)는 ‘한번 더 해피엔딩’이 외면하고 있는 현주소를 일깨운다. 성별에 따른 조사결과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결혼은 선택사항이다’라고 답한 여성이 74.2%로 남성(60%)보다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처녀’ 캐릭터로 등장해 인생 최대의 목표가 ‘결혼’인 양 결혼에 모든 것을 매진하는 고동미(유인나 분) 캐릭터는 현 시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 번 결혼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 말하는 한미모(장나라 분) 또한 불편함을 야기한다.
산후 우울증으로 인해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 백다정(유다인 분)은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성 불평등을 그나마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곤두박질치는 여성의 삶에 이 드라마는 관심조차 없다. 그저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다정에 대한 연민뿐이다. 다정의 처지를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면서도 오로지 ‘행복’을 위한 ‘결혼’만을 꿈꾸는 판타지 속의 여인들만이 존재한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대표적인 성차별적 속담이다. ‘한번 더 해피엔딩’은 이 성차별적 속담을 그대로 재현한다. 행복을 향한 선택지는 오로지 단 하나. ‘성공적인 결혼’ 뿐이다. 이런 주인공들을 보는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면, 단지 필자가 아주 ‘까칠하고 예민한’ 탓일까?

# 불편함2. 꾸미지 않은/나이 든/비혼/이혼 경험 있는 여성 = 퇴물?
극 중 한미모와 백다정은 재혼 컨설팅 업체의 대표다. 두 사람이 고객을 ‘평가’ 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방송된다. 이 때 재력, 자녀유무, 이혼 횟수, 외모 등이 평가기준으로 작용한다.
여기까지는 그리 새롭지 않다. 결혼 시장에서 인간이 사회적 조건에 따라 서열화되는 풍조는 이미 사회에 만연하다. ‘현실적’이라며 무릎을 칠 수도 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외모, 재력 등등 각종 조건을 나열하여 인간을 등급화하는 행태가 과연 옳은가? 성역할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한 ‘평가기준’은 과연 평등한가? 작가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나열만 할뿐 성찰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혼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미모와 다정은 이러한 의문을 단 한 차례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무비판적으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더 나아가 이를 성공 비결로 꼽는다.
이러한 세계관은 일상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미모는 ‘결혼을 하지 못했고’, ‘나이가 들었으며’, ‘이혼 경험이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비슷한 처지의 동료에게 조언과 위로를 건넨다. 미모의 시선이 곧 이 드라마의 시선이다. 비혼, 이혼 경험 있는, 나이 든 상태는 비관적인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의 여성은 조언과 위로의 대상이라는 것.
또한, 한미모의 친구인 고동미는 남성들에게 항상 괄시받는 존재로 등장한다. ‘곰 같은 여성’으로서 남성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스킬’이 부족하고, 꾸미지 않은 촌스러운 외모를 지녔으며, 평균 결혼연령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동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줄 남성’을 찾아 헤맨다. ‘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 불편함3. 주인공들의 삶은 사랑으로 ‘일방통행’
그래도 ‘한번 더 해피엔딩’의 주인공들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여성들이다.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 초등학교 교사, 인터넷 쇼핑몰 대표인 이들은 분명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성공을 거둔 듯 ‘보인다’는 점. 이들의 직업은 설정을 위한 소도구에 그칠 뿐이다. 재혼 컨설팅은 고객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로만 작용할 뿐이고, 교사라는 직업은 남성들이 ‘만만한’ 고동미에게 접근하게 만드는 유인일 뿐이다. 이 드라마에 ‘일하는 여성’은 없다.
‘한번 더 해피엔딩’과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드라마에 섹스 칼럼니스트로서 자신의 경험을 글로 녹여내던 캐리, 유명 로펌 변호사로서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던 미란다는 없다.

사랑 외에 다른 삶이 삭제된 주인공들은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 모든 열정을 쏟기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이들은 그렇지도 않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주인공들은 사랑 앞에서 너무나도 수동적이고 온순하다.
산후 우울증으로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 다정은 심지어 유방암에 걸렸어도 남편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다정이 할 수 있는 말은 “나를 안아달라”는 애처로운 한 마디 뿐이다. 미모는 좋아하던 사람과 연인이 되었음에도 하고픈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로 많은 사람에게 독설을 퍼붓는 그지만, 사랑 앞에서는 ‘온순한 어린양’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주인공이 곤경에 빠졌을 때는 여지없이 그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여성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사랑으로써 구원받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줄곧 ‘낭만’으로 포장되는 수동적인 여성-쟁취하는 남성의 구도는 이 드라마에서도 반복된다. 30대 여주인공 4명을 앞세운 ‘한번 더 해피엔딩’은 결국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재현하는 데 그쳤다.
이렇듯 ‘한번 더 해피엔딩’은 시종일관 시대착오적 여성상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연히 드라마는 클리셰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를 기대한 ‘한번 더 해피엔딩’의 자리에 남은 건 유물이 되어버린 ‘낡아빠진 판타지’ 뿐이다.
사진= 최지연 기자, ‘한번 더 해피엔딩’ 방송화면 캡처,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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