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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업이 레전드를 대하는 방법(feat.차붐)

독일에서 차범근의 명성은 우리가 상상하는것 이상입니다.
업적도 업적이지만 많은 독일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외국인 축구 선수 중 한 명이죠.
독일의 기업 벤츠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람들에게 추억을 복원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벤츠는 독일인의 사랑을 받았던 레전드 '차붐'을 선정했습니다.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당시 탔던 벤츠의 89년 모델 GE230 차량..
이 차량이 복원에 들어가
그 당시 모습을 간직한 채 레전드에게 조공들어갑니다 ㅋㅋ
그리고 하이라이트

엔진에 차붐을 수식하는 문구들을 박아넣었습니다

완벽한 공격수의 표본
머나먼 타지에서 이 나라를 드높인 영웅
한국은 차붐의 나라였다
그리고

누구도 막지 못한 단 한명의 공격수에게

이 차량을 복원한 엔지니어 분들도 굉장히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 같네요. 엔진에 저런 문구를 박아넣을 생각을 ^^ 차붐의 위엄입니다!!ㅋㅋ
차범근과 벤츠 광고 영상입니다.
8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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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독일에서 영웅인지는 알았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네요 차붐 따봉
독일의 자존심 벤츠도 살리고 ~~거대 중국시장도 동양권이니까~~ 스포츠 마케팅 차원에서 이용하는 거겠지~~자국민 찰알고 있는 차붐을 쓰겠지 ~~ 그앞세대 고생한 광부,간호사의 선배님들 영웅도 있지말아야 할것입니다
영원한 11번 차범근....100미터도 11초라는 전설. 존경합니다.
혹시나 이거 영상을 안보신분들 . 독일벤츠에서 만든영상이 아닙니다.한국벤츠에서 한국인중 과거에벤츠탓던사람중유명인을 쓴거뿐.독일현지에서 차붐을 모델로쓰자 머 이런거아닙니다. 위에 병신같은신분은 승인받았니어쩌니하는데 잘모르겠고 제논점을 이해못하는분인거같아서 대화가자신이없네요ㅋㅋ 아 물론 저는 차붐의팬입니다 차붐 홍명보 박지성 게다가 비호감 이천수까지 전 축구를 사랑하니까요.
의식수준의 차이라고 인정 해야겠지요??? 우리는 잠깐 감동으로 기억하고 영원히 잊어 버리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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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가 더이상 폭발적인 드리블을 못하는 이유
호날두를 이정도의 슈퍼스타급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던건 그의 화려한 외모보단 화려한 드리블 스킬이었습니다. 과거의 호날두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로 축구팬들을 열광케했죠. 하지만 그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신체능력의 하락이 보이기 시작했고 요즘엔 이런 스피드를 쉽사리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이 말고도 호날두가 이런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여주지 못하는데 한몫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 포르투갈 대표팀 팀닥터에 의하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호날두의 무릎상태는 최악, 그는 애초에 챔피언스결승전부터 뛰지 말았어야 했어." "그가 고통을 느끼는 곳은 과거 호나우도와 카카가 겪었던 무릎, 그의 무리한 경기출전 욕심이 더욱 무릎을 상하게 했고 나를 제외한 모든 닥터들이 그를 만류했지만 결국 그는 대회참여를 강행했고 탈락을 경험했지." "난 그 이후로 그가 더이상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발롱도르와 유로우승을 거뒀지." "그는 축구선수이기전에 인간의몸을 가장 잘 활용하는 선수야 그는 결승전에서 같은 무릎을 또 부상 당했고 그것은 최악이였지. 하지만 그는 고작 2개월에 회복하고 다시 경기출전을 감행하고 골도 넣고 있어 놀라운 일이지 " 출처 - 포르투갈 스포츠잡지 o jo go (오 조고) 번역 - 로스블랑코스인[펌] 레알마드리드코리아 로스블랑코스인님 모든 월드클래스이자 정점에 도달했던 선수들이 그렇듯 호날두 역시 높은 수준의 승부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 커리어를 망가뜨리곤 했죠. 토레스가 이와 아주 유사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을 극적으로 월드컵으로 이끈 호날두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는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죠. 심각한 부상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닥터들의 만류에도 호날두는 뛰었고 전문가들은 이제 호날두의 커리어는 내리막길로 향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날두의 무릎은 유로 2016에서 또 다시 말썽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호나우도나 카카가 어떻게 커리어 내리막길을 맞이했는지 가늠해본다면 호날두가 더이상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 것이란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오히려 2016년 챔스 우승과 유로 2016 제패 그리고 4번째 발롱도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렸습니다. 호날두는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켰습니다. 때로는 피니쉬에 집중하며 어마어마한 득점력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맨유시절로 회귀한 듯한 플레이로 동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축구팬들에게 이번 시즌 초반 호날두는 무수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호날두의 폼은 끔찍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린 유로 2016 결승전에서 터진 무릎부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절반쯤 흐른 지금 호날두는 다른 모습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2경기 덜치른 현재 승점 1점차로 여전히 바르셀로나에 앞서 있고 호날두는 이번 시즌 모든 경기 통틀어 36경기 24골 10도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역대급 내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평소 친분이 있던 마이클 잭슨을 취임식에 초청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국민들은 ‘에이, 설마’라고 의심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까지도 열광해 마지않던 그 마이클이 ‘진짜’ 취임식에 왔다. 부시가 취임식 초청해도 안가던 마이클 잭슨이 DJ가 취임식 초청하니까 스케쥴 제쳐두고 전세기타고 수행원 5명과 한국으로 날아왔던 사건 원래 자신의 절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데려오려 했는데, 당시 암투병중이던 테일러가 갑작스런 두통으로 힘들어서 오지 못함. 대신 테일러는 DJ에게 친서를 썼고, 마이클은 추후 DJ에게 그것을 전달해줌. (마이클 잭슨이 전달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친서를 읽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 취임식이 끝나고 DJ와 포옹하는 MJ 실제로 마잭은 DJ가 대선후보로 나오자 미국에서 DJ 공개 지지까지 할만큼, 열렬하게 응원함. 취임식 다음날엔 접견실에서 DJ을 정식으로 또한번 만난 마이클 잭슨 이 둘이 어떻게 친해졌을까???? 무주 리조트 투자건으로 한국에 마이클 잭슨이 왔었음. 근데 마이클 잭슨은 DJ가 미국에 망명하던 시절을 알고 있었고, 그 당시 세계평화를 위해 애쓰던 DJ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았음. 그래서 한국에 왔던 마이클 잭슨은 자신을 초대했던 유종근에게 DJ를 만나고 싶다고 부탁함. 그래서 그렇게 마이클 잭슨과 DJ가 비공개로 만나게 됐는데 여기서 마이클 잭슨이 나중에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면꼭 취임식에 참석하고 싶고, 한국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공연을 하고 싶다고 약속함. 그리고 이후 DJ는 정말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마이클 잭슨은 DJ 취임식에도 참석하고, 이후 마이클 잭슨의 친구들 공연을 서울에서 개최하면서.. DJ에게 했던 두가지 약속을 모두 지킴. 그리고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음. 마치 영화같은 스토리네요, 두 사람 모두 너무 보고싶은 날입니다...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다이어트 이론] 호르몬도 모르면서 다이어트 한다고?
생후 9개월 울아들도 CF에 나오면 정신 못차리는 설현.. 제가 봐도 너무너무 예쁜거 같아요. 다이어트 하고 나더니 더 예뻐진거 같아요. 그럼 나도 한번 다이어트? 연중행사처럼 말하는 우리.. 여러분들께 물어볼게요. 얼마나 감량하고 싶으세요? 왜 감량하고 싶으세요? 마음속으로 답하셨나요? 제가 많은 분들을 영양상담 해드리고 살을 빼드리는데 도움을 드렸지만.. 성공한 분들과 성공하지 못한 분들의 가장 큰 차이.. 뭘까요? 바로 자기 합리화예요.. 너무 뻔한 얘기 같다구요? 제가 다이어트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상담하면 정말 사연없는 사람이 없어요. 모두가 절실하죠.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서 다시 상담해보면 핑계대느라 너무너무 바빠요. 가족 모임, 친구 모임, 임신한 와이프가 야식 먹고 싶어해서, 회사 근처에 먹을데가 없어서 등등.. 아주 많고 다양해요~ 잊지마세요. 다이어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니다. 거창한 목표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잡으세요. 예컨데 "2주에 10kg 뺄래요!!" 이런거 하지 마세요. 절에 들어가서 세상과 단절할거 아닌 이상 너무 거창하고 먼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인 목표란 "매일 지하철 2정거장 먼저 내려서 걸을래요" 또는 "저녁 6시 이후엔 먹지 않을게요" 이런것을 말해요. 그리고 이 목표를 지킬수 있는지 일주일은 꾸준하게 해보세요. 일주일만 꾸준히 목표를 실천하면 그 다음 단계는 매우 쉬워집니다. 그리고 첫 일주일은 나를 이해하는 제일 중요한 시간이 되어 줍니다. 다이어트에 대한 나의 의지, 내 몸 상태 등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꼭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난 다이어트 해야겠다면? 팔로미~~ 🙌🙌 그럼 내 몸을 이해하는 첫 시간! (서두가 길었네요) 다이어트에서 꼭 알아야 할 첫 번째!! 배고픔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호르몬 이야기입니다 배고프다 배부르다 우리는 이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내뱉고는 합니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엄청난 일을 겪어도.. 3일이 지나면 (누군가는 하루일지도) 배가 고픕니다.. 난 사람이니까! 당연한거예요.. 다이어터들 중에는 배고프면 죄인같은 기분이 든다는 사람도 있어요.. 배고프면 먹으면 되고! 배부르기 전에 숟가락 놓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이게 뭐라고 힘들까요.. 배고픔이나 포만감은 뇌에서 느끼는거라서 내 뜻대로 안되는 거예요. ㅠㅠ 소화작용은 위장에서 이루어지지만 배고픔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기능은 뇌에서 이루어지거든요.. 위기 비어있을때 분비되는 그렐린호르몬은 뇌에서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물질을 자극하고, 식후에 분비가 더욱 활성화 되는 렙틴 호르몬은 뇌의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을 작동하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소위 말하는 건강한 음식을 통해 칼로리를 섭취하면 포만감이 빨리 느껴지면서 식욕이 저하됩니다. 하지만 수많은 가공식품에 함유되어 있는 단맛을 내는 대표재료, 액상과당(탄산음료, 드레싱 등에 포함)을 계속 섭취하면 배고픔이나 식욕을 억제하기 어려워지며 대체로 고칼로리 식품이 많기 때문에 체중 증가 현상을 가중시키게 됩니다. 빠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다이어트 초기의 식사조절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렙틴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 30분 걷기와 약간의 근육운동이 필요하며, 체중이 감소되면 우리 몸의 세포가 렙틴에 민감해져 식욕을 줄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 그럼 정리!! 다이어트 시작하는 분들에게 숙제를 내어드릴게요. 1.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다녀온 후 체중을 재고 기록하세요. 2. 왜 다이어트 하려고 하는지 의지를 다지세요. 3. 일주일동안 지킬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세요. (식사와 운동 한가지씩.. 예를 들어 식사: 믹스커피를 먹지 않겠다 / 운동: 점심식사 후 사무실까지 계단 오르기 하겠다) 4. 앞으로 일주일동안 꼭 지키고 느낀 점을 작성하세요. 하실 수 있겠죠? 조급해하지 말고 함께 시작해보아요~ 다음 시간에는 어떤 내용을 알려드리면 좋을지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댓글 주세요~ 참고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못 뜬 그룹들 중 '대박예감' 촉이 오는 그룹은??
뜰락말락 하지만 아직 뜨진 못한 그룹들 많죠 포텐은 빠방한데 아직 안떠서 앞으로 가장 대박 가능성 있는 가수는 누굴까요? 1. [레인보우] 멤버 한명 한명 비주얼 피지컬 다 대박인데 이상하게 못뜸ㅜㅜㅜ A라는 대박곡 버프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 몇년이 지나도 대박을 못치고 있는 아쉬운 그룹 2. [나인뮤지스] 이름대로 다 여신급인데 그에 비해서 이상하게 팬이 별로 없는듯 첫짤 경리 둘째잘 민하 웬만한 걸그룹 가면 원탑급인 멤버들만 모여있는데 아직까지 대박을 못치는중 3. [달샤벳] 이름 들으면 다 알지만 팬은 거의 없음 우희같은 경우는 이름만 쳐도 '레전드 직캠'이라면서 영상 엄청 돌지만 정작 노래랑 그룹은 잘 모르는 현실 ㅜㅜㅜ 4. [헬로비너스] 다 비주얼 쩔고 노래도 좋은데(무려 용감한 형제한테 곡도 받음) 왜 아직 안뜨는지 모르겠는 그룹 특히 '나라'라는 키 얼굴 몸매 다가진 멤버도 있음 아이돌 원탑급인듯 ㄷㄷ 5. [피에스타] 피에스타 이름은 잘 모를 수 있는데 대세 요소가 엄청많음 일단 요즘 예능 대세인 '차오루'가 피에스타 소속이고 갓예지라고 찬양받는 래퍼 예지도 피에스타 게다가 아이유랑 같은 소속사인 '로엔트리' 소속가수고 아이유가 노래 피쳐링도 해줌 근데 왜 못뜨는건지 모르겠고요? [빙글러의 촉! 뜰 것 같은 가수는?] 이 외에도 베스티, 스텔라 등등 포텐 있는 걸그룹 많고 남자 그룹도 뜰 기미만 보이고 안뜨는 그룹 많죠 위 목록에 있는 걸그룹 + 목록에 없는 걸그룹, + 남자그룹 다 포함해서 앞으로 포텐 터질것같은 가수는 누군가요?
독일은 언제부터 러시아 가스를 수입했을까?
사진(참조 1)부터 설명하겠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2011년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의 상징적인 개통식을 하는 광경이다. 사실 참조 1의 링크를 읽어 보면, 독일과 소련이 언제부터 가스를 수입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아실 수 있으니 매우 좋은 기사가 되겠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빌리 브란트와 바이에른이 공동 주범이다. 브란트가 등장하는 이유는 매우 잘 아실 것이다. 서독에서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SPD의 브란트는 그유명한 동방정책을 추진한 총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이에른은 왜 등장할까? 잠깐 여기서 큰 맥락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서유럽의 천연가스 시장이 커지면서 서유럽 각국은 보다 저렴한 천연가스를 찾았고, 처음에는 네덜란드 (기사에는 안 나오지만 흐로닝언 가스전을 의미한다) 가스를 수입했으나 결국은 러시아산으로 귀결되더라는 내용이다. 경쟁이 생겨야 가격도 내려갈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바이에른은? 바이에른이 어떤 지역인가? 전후 집권당이 지금까지도 전혀 바뀌지 않은 CSU이고, 어지간한 독일 대기업 본사가 모두 바이에른에 위치하는 보수 가톨릭 란트이다. 게다가 한창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나갈 때, 바이에른은 생각했다. (바이에른 입장에서) 서쪽 놈들로부터 석탄을 너무 비싸게 수입하는 것 같으니 러시아산 가스가 어떨까? 당시가 바로 1960년대, 빌리 브란트는 아직 총리로 올라가기 전, 외교부 장관이었고 소련의 가스는 동방정책 추진에 있어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바이에른(특히 Otto Schedl 란트 경제장관)은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SPD와 손잡고 적극적으로 소련의 가스를 수입하기로 나선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한 가스관 연결이었다(참조 3).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쉽게,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소련/러시아 가스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는 있을 텐데, 실제로 그 문을 연 것은 좀 더 이르다. 다름 아닌 콘라트 아데나워와 베르톨트 바이츠(Berthold Beitz, 1913-2013) KRUPP 회장님이었다(참조 2). 아니 반공주의자 아데나워에 전범기업 크루프는 또 뭡니까? 그 디테일은 독일 동방경제인협회(OA: Ost-Ausschuss der Deutschen Wirtschaft e.V.)의 발간물, “가스 파이프 50년(참조 4)”과 1963년 슈피겔 기사(참조 5)에 나온다. 콘라트 아데나워는 미국이 세우다시피 한 서독 최초의 총리인 까닭에 미국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데나워는 50년대 말부터, 서독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고(그 첫 타자가 폴란드와 화해였다), 정식 사절 대신 베르톨트 바이츠를 폴란드로 보낸다. 폴란드와 사적인 관계를 튼 그 다음 바이츠의 행선지는? 소련의 흐루쇼프였다. 결국 서독과 소련은 1958년 무역관계를 회복한다. 소련은 왜? 혹한에 견딜 수 있는 독일의 가스 파이프라인이 절실했기 때문이다(KRUPP는 지금도 최고의 철강회사 중 하나다). 서독 입장에서는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던 영국에게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소련과 관계를 터야 했다. 바로 50년대 말에 아데나워와 바이츠가, 그 다음에는 바이에른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빌리 브란트가 최종 종점을 찍은 것이 소련산 가스 수입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제2차대전 후, 미국이 대공산권 민감품목 금지 목록을 만든 것을 다들 아실 텐데 우연찮게도 1958년에 가스 파이프가 목록에서 해제되기도 했었다(참조 4). 이 사실을 안 미국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다. 이미 케네디 정부 때부터 서독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 그러나 곧 베트남 전쟁이 터지고, 케네디와 존슨 그리고 뒤를 이은 닉슨 행정부(라 쓰고 헨리 키신저라 읽는다)가 중국과 화해를 추진하면서 이 문제가 상당히 애매해진다. 미국 입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소련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헤맬동안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 각종 중동전쟁과 오일쇼크입니다.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 정부는 가스 수입 다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겼고, 서독-소련 파이프라인은 더 규모를 늘리게 된다. 그런데 70년대 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사건이 터진다. 카터 정부는 소련에 대해 제재를 대폭 늘리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도 거부한다. 이때 헬무트 슈미트가 미국을 설득시킨 것은 지금봐도 대단하다. 일단 SS-20 및 퍼싱 미사일이 일으키는 위기에 있어서 슈미트는 냉전 덕들이 많이들 알고 계실, 소위 NATO의 이중트랙결정(Double Track Decision, 서유럽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별도로 신형 미사일을 개발)에 있어 핵심 역할을 했었다(정권을 잃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파이프라인만은 살려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한다. 레이건 행정부를 말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서독이 소련에게 건네주는 외화로 소련이 미국으로부터 곡물을 수입하는 네트워크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미국상공회의소(United States Chamber of Commerce)가 레이건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도 했다. 서독(유럽)이 중동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이다. 1982년 11월, 레이건은 결국 양보한다. (1) 미국 기업들이 저항했고, 미국이 가스를 제공하기도 어려웠으며, (2) 슈미트가 NATO를 강력히 지지하면서도 정교한 논리로 미국을 설득했고, (3) 유럽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를 냈었다(참조 6). 지금 평가하자면?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본다. 소련은 외화를 벌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보다는 제값을 쳐주는 서유럽 국가들에 가스를 제공하는 데에 더 열심이었고, 유가와 가스 값이 크게 하락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소련에게 타격을 꽤 많이 줬었다. 소련 붕괴에 일부 기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과 직접적인 비교는 좀 불가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1980년대 초 즈음 소련은 폴란드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해 폴란드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줄인다. 만약 그때 폴란드를 동독 혹은 소련이 1968년 체코처럼 쳐들어갔다면? 이건 선을 넘는 것이라 슈미트가 경고한 적 있다(참조 7). 그래서 폴란드가 당시 계엄령을 스스로 선포한 것은 안자랑이기는 한데, 지금의 러시아는 분명 선을 넘었다. ---------- 참조 1. 짤방 출처, Wie Europa im Kalten Krieg von russischem Gas abhängig wurde (2022년 2월 28일): https://www.spiegel.de/geschichte/nord-stream-2-wie-europa-im-kalten-krieg-von-russlands-gas-abhaengig-wurde-a-fed5a096-c344-44d4-99e6-00473cd93af3 2. Die Deutschen und das russische Gas(2014년 3월 31일): https://www.faz.net/-gpg-7nvoj 3. Energiewende nach Osten(2013년 10월 10일): https://www.zeit.de/2013/42/1973-gas-pipeline-sowjetunion-gazprom/komplettansicht 4. 사실 OA라는 조직 자체가 에르하르트(CDU) 총리 때 만들어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독일의 동방정책이란 것이 SPD의 전유물이라 보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독일의 주요 정당 모두가 같이 만들고 지켰다고 봐야 더 정확하다. 50 Jahre Röhren gegen Erdgas(2020년 6월 17일) : https://www.ost-ausschuss.de/de/50-jahre-roehren-gegen-erdgas 5. Star im Osten(1963년 6월 4일): https://www.spiegel.de/politik/star-im-osten-a-e536960d-0002-0001-0000-000045143681?context=issue 6. 참조 3의 기사에만 나오지 다른 곳에서 못 찾아서 본문에 안 적었는데, 프랑수아 미테랑도 한 몫 거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미테랑은 레이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이 가스를 러시아 가격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기꺼이 미국을 따르겠소.” 7. 안나 발렌티노비치와 폴란드 계엄령(1981)(2020년 8월 24일): https://www.vingle.net/posts/3083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