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언제부터 러시아 가스를 수입했을까?
사진(참조 1)부터 설명하겠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2011년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의 상징적인 개통식을 하는 광경이다. 사실 참조 1의 링크를 읽어 보면, 독일과 소련이 언제부터 가스를 수입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아실 수 있으니 매우 좋은 기사가 되겠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빌리 브란트와 바이에른이 공동 주범이다. 브란트가 등장하는 이유는 매우 잘 아실 것이다. 서독에서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SPD의 브란트는 그유명한 동방정책을 추진한 총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이에른은 왜 등장할까? 잠깐 여기서 큰 맥락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서유럽의 천연가스 시장이 커지면서 서유럽 각국은 보다 저렴한 천연가스를 찾았고, 처음에는 네덜란드 (기사에는 안 나오지만 흐로닝언 가스전을 의미한다) 가스를 수입했으나 결국은 러시아산으로 귀결되더라는 내용이다. 경쟁이 생겨야 가격도 내려갈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바이에른은? 바이에른이 어떤 지역인가? 전후 집권당이 지금까지도 전혀 바뀌지 않은 CSU이고, 어지간한 독일 대기업 본사가 모두 바이에른에 위치하는 보수 가톨릭 란트이다. 게다가 한창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나갈 때, 바이에른은 생각했다. (바이에른 입장에서) 서쪽 놈들로부터 석탄을 너무 비싸게 수입하는 것 같으니 러시아산 가스가 어떨까? 당시가 바로 1960년대, 빌리 브란트는 아직 총리로 올라가기 전, 외교부 장관이었고 소련의 가스는 동방정책 추진에 있어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바이에른(특히 Otto Schedl 란트 경제장관)은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SPD와 손잡고 적극적으로 소련의 가스를 수입하기로 나선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한 가스관 연결이었다(참조 3).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쉽게,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소련/러시아 가스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는 있을 텐데, 실제로 그 문을 연 것은 좀 더 이르다. 다름 아닌 콘라트 아데나워와 베르톨트 바이츠(Berthold Beitz, 1913-2013) KRUPP 회장님이었다(참조 2). 아니 반공주의자 아데나워에 전범기업 크루프는 또 뭡니까? 그 디테일은 독일 동방경제인협회(OA: Ost-Ausschuss der Deutschen Wirtschaft e.V.)의 발간물, “가스 파이프 50년(참조 4)”과 1963년 슈피겔 기사(참조 5)에 나온다. 콘라트 아데나워는 미국이 세우다시피 한 서독 최초의 총리인 까닭에 미국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데나워는 50년대 말부터, 서독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고(그 첫 타자가 폴란드와 화해였다), 정식 사절 대신 베르톨트 바이츠를 폴란드로 보낸다. 폴란드와 사적인 관계를 튼 그 다음 바이츠의 행선지는? 소련의 흐루쇼프였다. 결국 서독과 소련은 1958년 무역관계를 회복한다. 소련은 왜? 혹한에 견딜 수 있는 독일의 가스 파이프라인이 절실했기 때문이다(KRUPP는 지금도 최고의 철강회사 중 하나다). 서독 입장에서는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던 영국에게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소련과 관계를 터야 했다. 바로 50년대 말에 아데나워와 바이츠가, 그 다음에는 바이에른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빌리 브란트가 최종 종점을 찍은 것이 소련산 가스 수입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제2차대전 후, 미국이 대공산권 민감품목 금지 목록을 만든 것을 다들 아실 텐데 우연찮게도 1958년에 가스 파이프가 목록에서 해제되기도 했었다(참조 4). 이 사실을 안 미국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다. 이미 케네디 정부 때부터 서독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 그러나 곧 베트남 전쟁이 터지고, 케네디와 존슨 그리고 뒤를 이은 닉슨 행정부(라 쓰고 헨리 키신저라 읽는다)가 중국과 화해를 추진하면서 이 문제가 상당히 애매해진다. 미국 입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소련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헤맬동안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 각종 중동전쟁과 오일쇼크입니다.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 정부는 가스 수입 다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겼고, 서독-소련 파이프라인은 더 규모를 늘리게 된다. 그런데 70년대 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사건이 터진다. 카터 정부는 소련에 대해 제재를 대폭 늘리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도 거부한다. 이때 헬무트 슈미트가 미국을 설득시킨 것은 지금봐도 대단하다. 일단 SS-20 및 퍼싱 미사일이 일으키는 위기에 있어서 슈미트는 냉전 덕들이 많이들 알고 계실, 소위 NATO의 이중트랙결정(Double Track Decision, 서유럽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별도로 신형 미사일을 개발)에 있어 핵심 역할을 했었다(정권을 잃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파이프라인만은 살려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한다. 레이건 행정부를 말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서독이 소련에게 건네주는 외화로 소련이 미국으로부터 곡물을 수입하는 네트워크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미국상공회의소(United States Chamber of Commerce)가 레이건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도 했다. 서독(유럽)이 중동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이다. 1982년 11월, 레이건은 결국 양보한다. (1) 미국 기업들이 저항했고, 미국이 가스를 제공하기도 어려웠으며, (2) 슈미트가 NATO를 강력히 지지하면서도 정교한 논리로 미국을 설득했고, (3) 유럽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를 냈었다(참조 6). 지금 평가하자면?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본다. 소련은 외화를 벌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보다는 제값을 쳐주는 서유럽 국가들에 가스를 제공하는 데에 더 열심이었고, 유가와 가스 값이 크게 하락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소련에게 타격을 꽤 많이 줬었다. 소련 붕괴에 일부 기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과 직접적인 비교는 좀 불가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1980년대 초 즈음 소련은 폴란드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해 폴란드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줄인다. 만약 그때 폴란드를 동독 혹은 소련이 1968년 체코처럼 쳐들어갔다면? 이건 선을 넘는 것이라 슈미트가 경고한 적 있다(참조 7). 그래서 폴란드가 당시 계엄령을 스스로 선포한 것은 안자랑이기는 한데, 지금의 러시아는 분명 선을 넘었다. ---------- 참조 1. 짤방 출처, Wie Europa im Kalten Krieg von russischem Gas abhängig wurde (2022년 2월 28일): https://www.spiegel.de/geschichte/nord-stream-2-wie-europa-im-kalten-krieg-von-russlands-gas-abhaengig-wurde-a-fed5a096-c344-44d4-99e6-00473cd93af3 2. Die Deutschen und das russische Gas(2014년 3월 31일): https://www.faz.net/-gpg-7nvoj 3. Energiewende nach Osten(2013년 10월 10일): https://www.zeit.de/2013/42/1973-gas-pipeline-sowjetunion-gazprom/komplettansicht 4. 사실 OA라는 조직 자체가 에르하르트(CDU) 총리 때 만들어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독일의 동방정책이란 것이 SPD의 전유물이라 보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독일의 주요 정당 모두가 같이 만들고 지켰다고 봐야 더 정확하다. 50 Jahre Röhren gegen Erdgas(2020년 6월 17일) : https://www.ost-ausschuss.de/de/50-jahre-roehren-gegen-erdgas 5. Star im Osten(1963년 6월 4일): https://www.spiegel.de/politik/star-im-osten-a-e536960d-0002-0001-0000-000045143681?context=issue 6. 참조 3의 기사에만 나오지 다른 곳에서 못 찾아서 본문에 안 적었는데, 프랑수아 미테랑도 한 몫 거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미테랑은 레이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이 가스를 러시아 가격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기꺼이 미국을 따르겠소.” 7. 안나 발렌티노비치와 폴란드 계엄령(1981)(2020년 8월 24일): https://www.vingle.net/posts/3083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