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g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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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7점이 수능 96점 된 썰

3월 모의고사 점수가 수능 점수라는 이야기, 많이들 들어보셨을텐데요. 여기 그 썰을 뒤집을 또 다른 썰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외대 장선영 공신의 칼럼을 공유합니다.
고3 3월, 여러 선생님들이 ‘수능 성적과 같다’라고 말하는 첫 모의고사를 치뤘다.
언어, 외국어, 사탐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더 한다면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수리였다. 57점, 2등급 끝에 있는 점수였다.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중요성을 강조하던 3월 모의고사에서 50점대의 수리 점수라니.
게다가 나는 목표가 굉장히 높고 꿈이 크던 학생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했다.
그때부터 수리점수를 올리기 위해 하루 3시간-4시간을 투자해서 개념서를 풀기 시작했다.
4월 모의고사가 되었다. 정말 열심히 누구보다 치열하게 수리공부를 했기에 누구보다 기대도 많이 했다. 문제도 수월하게 풀렸던 것만 같았다. 점수를 채점했다. 56점.
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꾸준하게 공부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점수와 등급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니. 너무 서러웠다. 1달동안 치열하게 했던 내가 멍청이 같았고, 내 공부법은 실패한 공부법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난 고3인데, 곧 대학을 가르는 수능을 치러야 하는데 50점대의 수리점수를 받으면 어느 곳에 가야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의 위로와 담임 선생님의 위로는 감사했지만, 난 너무 두려웠고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저녁도 안먹고 2-3시간을 엉엉 운 뒤에야 스스로를 잡았다. '아직' 4월 이었으니까. 시간은 많이 남았고 나한테는 열심히 할 의지도 있었고 바른 공부법도 알고 있었으니까.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힘겨웠고,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나는 또 다시 개념서를 풀었고, 개념 강의를 들으며 다시 또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수능 기출문제를 한번 풀고, 6월을 맞았다.
사실 많이 걱정이 되었다. 수리라는 과목이 내 발목을 잡을까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채점을 했다. 84점이었다. 시험이 쉬웠나보다, 그래도 점수가 올라서 좋았다.
재수생이 합쳐져 등급이 더 떨어질거라는 선생님들의 말에 기대하지 않고 있던 저녁시간, 친구들이 1등급 컷이 80점이라고 말해주었다. 1등급이었다. 50점대의 점수를 받고 몇시간 울던 내가 드디어 목표치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무 행복했고, 한동안 믿어지지 않았다. 무서웠지만 열심히 나아간 자신에게 너무 고마웠다. 여러 문제집을 기웃거리는 친구들의 방법에 흔들리지 않은 채 똑같은 문제집이 날이 갈수록 검게 변해가는 것에 뿌듯해하며 지나온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방학이 다가왔다. 나는 또 개념서를 풀었고, 수능 기출문제를 풀었다. 풀고 틀린 문제를 또 풀고 계속 반복했다. 지겹지는 않았다. 어떤 문제는 풀이과정부터 답까지 고스란히 생각이 났지만, 어떤 문제는 늘 새롭고 또 보아도 방법이 생각나지 않기도 했으니까.
공신 매니아 모임에서 강지석 공신님을 만나 또 공부법을 확인받았다. 확신이 들었다. 잘 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나는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했다.
9월이 다가왔다. 이제는 수리 문제시간이 두렵지 않았다. 강수진 공신님이 하셨던 ‘실수노트’를 만들어 쉬는 시간에 체크했다. 88점, 실수로 날린 4점이 아쉬웠다. 만족스럽지 못했고 계속 해나갔다. 이제 나는 수리를 못하던 3월에 나를 극복하고 멋지게 나아가고 있으니까, 남은 부분을 채우기 위해 또 열심히 하루 하루 보냈다.
수능이 다가왔다. 실수노트를 점검하고, 파이널 문제들을 풀면서 빈 부분을 채우며 틀렸던 기출문제들을 계속 풀었다. 기출문제집에 바를 정자로 표시를 해놓곤 했는데, 그 바를 정 표시를 맞은 것은 검은 색으로, 틀렸던 것은 빨간 색으로 표시해 알 수 있게 했었다.
수월했다. 시간이 부족해 건드리지 못한 문제도 없었고, 검토도 여러 번 했다. 채점을 했다. 96점, 수능이 쉽게 출제되어 백분위와 표준점수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치열하게 달려온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 방법과 공신을 믿었던 내 자신에게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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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정말 솔직히 문과잖아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두려움과 맞서 당당히 그리고 꾸줌히 싸우고 그리거 끝내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견하다고 느끼고 저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학력을 중시하는 것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고뇌와 도전과 자신감이 교차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도전에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 크게 공헌하는 인재가 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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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로 가득찬 '이 동물'은 누구일까? 바로!
먹이를 갈기갈기 찢을 듯한 뾰족한 돌기가 입천장과 혓바닥에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공포 괴수 영화에나 나올 법한 구조인데요. 과연 어떤 동물일까? 바로 바다거북입니다. 바다거북은 잡식성으로 가끔 동물성 먹이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주로 해조류를 먹습니다. 돌기는 먹이를 씹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죠! 그렇다면 입안이 왜 뾰족한 돌기로 나 있을까? 자세히 보면 바다거북의 돌기는 역방향인 안쪽을 향해 나 있습니다. 이 돌기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한번 먹은 먹이를 밖으로 다시 내뱉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바다거북은 먹이를 먹을 때 많은 양의 바닷물도 함께 삼키게 되는데요. 생선들은 아가미를 통해 입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을 바로 배출시키지만, 바다거북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바다거북은 삼킨 바닷물을 바깥으로 다시 배출하기 위해 토해냅니다. 이때 수많은 돌기는 바다거북이 바닷물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힘들게 잡아먹은 먹이가 입 밖으로 다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위 사진은 바다거북이 삼킨 바닷물을 다시 토해낸 사진입니다. 마치 피를 토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픈 것도 다친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극히 건강하고 정상적인 현상이죠. 즉, 돌기는 아가미가 없는 바다거북이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럴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입니다. 우리가 바다에 버린 플라스틱, 비닐봉지 등의 쓰레기를 삼킨 바다거북이를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억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인공 쓰레기들이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고,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돌기는 오히려 바다거북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레기를 절대 바다에 버려서 안 되는 이유입니다. 위 사진과 일러스트 자료는 생물학자인 헬렌 카이로가 만든 삽화 시리즈로,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는 "동물을 보호하자고 무작정 외치는 것보다는 보존하려는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말합니다. 에디터 제임수  ggori.story@gmail.com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이집트 : 고양일 너~허무 솨랑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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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후 2년 반 만에 파양 된 9살 태준이
김상훈 목사부부 가족의 아이들은 전부 입양아 12년에 걸쳐 8명의 아이들을 입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봤던 정희씨 정희씨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것도 그 아이들이 남편을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애들 중 넷이나 먹습니다. 행복이를 빼고는 모두 세살에서 아홉살 사이에 입양을 했는데, 부모로부터 버려져 외롭게 지낸 기억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는 탓입니다. 사실 우리아이들은 모두 입양이 잘 되지 않던 아이들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심하게 휘어있던 다리가 원인이었습니다. 수술 후에도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사랑이를 입양하려는 가족도 없었습니다. 늘 그 흉터가 안쓰러운 엄마 이미 딸 셋을 입양했고 이번엔 좀 아픈아들 하지만 정희씨는 사랑이를 데려오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사랑이를 보조 신발없이 걷게 하겠다고 매일처럼 함께 연습을 하더니 마침내 정상적으로 걷는게 가능해졌습니다. 다리 힘을 길러주기 위해 시작했던 스케이트 운동 이제 사랑이는 학교의 지원을 받아 쇼트트랙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어느 아이하나 쉽게 자라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맏이 몫을 톡톡히 하는 큰 아들 요한이. 하지만 요한이야 말로 엄마를 가장 많이 울렸습니다. 친엄마가 베트남 이주노동자였던 요한이는 4살때 입양을 갔다가 한달만에 파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상처로 퇴행성발달장애를 앓게 되었습니다. 요한이를 다섯번째로 입양했으니 우리에겐 그만한 내공은 쌓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친부모, 양부모 두번 씩이나 버려진 상처는 쉽게 아물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절망에 젖은 아내에게 남편이 한마디 전했습니다. ' 그렇게 말하는 요한이 마음은 오죽했겠어...' 그 날 이후 요한이는 발달 장애를 이겨냈고 요즘은 IQ 130의 수재소리를 들으며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고있습니다. 며칠 후, 행복이의 입양이 승인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자비원에 찾았습니다. 생후 100일도 되지 않아 이곳에 맡겨졌던 행복이. 여기서 8개월 보살핌을 받았었죠. 그런데, 우리는 행복이 자랑을 하러 온것만은 아닙니다. 아홉번째 아이를 입양하기로 한것입니다. 올해 아홉살. 한번 파양의 상처가 있는 아이 조금씩 마음으로 다가가는가 싶었는데.. 태준이는 처음 입양됐던 가정에서 2년 반을 지내다가, 다시 버려졌습니다.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 입양을 다시 가야 하는 것이 너무 두렵기만 한 모양입니다. 결국 돌봐주던 선생님이 같이 가기로 하고서야 차에 탑니다. 아홉번째 입양을 서두르게 된건 태준이 때문이었습니다. 파양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컸는지, 태준이는 자비원에 들어와서도 적응을 잘 못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당황한건 우리 아이들 다같이 환영식 준비도 근사하게 해놓았었는데 낯선 집에 맡겨지고, 또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낯선 일만은 아닙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올때마나 한바탕 몸살을 겪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일부러 다니엘을 태준이 앞으로 불러 앉힙니다. 태준이, 계속 울기도 해야겠고.. 궁금하기도 하고.. 어느새 울음소리가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이쯤되면 태준이가 형들에게는 좀 넘어온거죠? 언제나 혼자였던 시간들 이제 정말 가족이 생기는 것인지.. 태준이가 어느새 울음은 다 그쳤습니다. 어쩌면 지금 태준이에게 더 미더운건 함께 놀아주는 이 형들. 환영식도 다시 준비합니다. 태준이가 반나절만에 처음으로 웃음을 보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환영하는것을 알아주는걸까요? 우리는 태준이의 새 이름을 한결이라고 지었습니다. 김한결. 그 이름에 담은 뜻대로 변함없이 한결같이 사랑하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한결이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상처가 낫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날 오래도록 한결이를 업고있었습니다. 며칠 후, 한결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파양 이후 심리치료를 받아 온 한결이. 아이가 얼마나 어떻게 힘든건지 알고싶었습니다.이제 우리가 한결이의 부모 어쩌면 이렇게 요한이와 똑같은지.. 우리 가족이 서로 많이 닮은 부분은 상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이 오면 2학년이 되는 한결이. 기본적인 한글은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을텐데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자꾸 바빠집니다. 겨울이 지나고 3월이 왔습니다. 오늘은 행복이의 돌 잔치가 있는 날입니다. 의젓하게 엄마를 위로하더니.. 그래도 조금은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어느덧 푸른 5월 요즘 행복이는 좀 바쁩니다. 걸음 걸이가 늘어 온종일 앞마당을 종횡무진 돌아가며 놀아주는 형들이 다섯이나 되서 아예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안합니다. 한결이도 바쁩니다. 수학 특훈 중이죠. 수학 담당은 맏형 요한이. 한글은 엄마와 계속 공부하는데 실력이 꽤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봄이 온듯 보입니다. 천사가 따로 있는게 아니네요.. 아이들이 닫힌 마음을 열고, 변화하는게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에요.. 부모님과 아이들이 항상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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