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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아시다시피 김기덕 감독님에 영화제목인데 멋있어서 제목으로 가져와 봤습니다. ^^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왔구나, 무더위에 지쳤다, 쓸쓸한 가을이네,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린 사람들... 우리가 계절을 표현하며 자주 쓰는 말들입니다. 이 계절의 변화는 옷차림부터 삶의 모습까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죠. 이번 카드는 이러한 계절의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갑을병정으로 간략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 그림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한데....추후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壬甲겨울을 상징합니다. 겨울은 물의 흐름이 땅 아래로 내려가 파고드는 속성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수기를 머금은 甲木은 물의 흐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죠. 수직 하강운동이죠. 사람의 활동은 둔화되어 내부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뜻이니 주로 연구계통이 될 것이고, 공부를 깊이 하는 것이기에 장기적으로 학문에 뜻을 두는 사람들 성향이죠. 주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서 이런 성향이 많이 보입니다.
乙癸을 상징합니다. 봄에는 물의 흐름이 역류합니다. 원래 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봄이 오면 물의 흐름이 위를 향하게 되죠.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수기가 木을 타고 땅 밖으로 오르기 때문이죠. 따라서 봄에는 사람들이 자꾸 산으로 들로 밖으로 나갈려는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기가 밖으로 펼쳐지는 속성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소위 봄바람 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꽃놀이 관광을 간다거나 해외에 자주 나가게 되는 것도 사실은 겉으로 모양만 다르지 그 속성은 동일한 겁니다. 또 연애하고픈 마음이 갑자기 동 하는 것도 모두 수기가 땅 밖으로 발산되어 밖으로 향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죠.
丙庚여름을 상징합니다. 겨울과 봄에는 수기가 관여하여 그 수기가 아래로 내려가고, 위로 올라가면서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확장했다면 여름부터는 수기가 아니라 화기가 등장합니다.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색계요 물질계에 이른 것이죠. 여름에 날씨가 더워지는 이유는 봄에 흐름이 역류된 수기가 공기 중에 크게 팽창되고 확산하면서 열이 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이죠. 이 때 땅에서는 꽃이 활짝 피어 열매가 맺히더니 어느새 그 열매의 부피가 무럭무럭 커갑니다. 다만 문제는 겨울과 봄에 수기가 아래에서 위로 오르면서 수기는 가벼워지고 증발되기에 생명수가 부족해지고 화기는 팽창되기에 과일은 딱딱해지는 반면에 인간의 육체도 점점 생기를 잃고 딱딱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의미는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딱딱해지는 속성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몸이 굳어가는 것입니다. 즉, 나이를 먹으면 몸이 굳어서 젊은 날처럼 활발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죠.
丁辛가을을 상징합니다. 가을에는 열매의 부피를 반대로 줄이기 시작하는 과정입니다. 여름에 확장하고 키웠던 열매를 오므리는 운동을 통하여 가을에 수확하게 되는 것이죠. 가을에 얻어진 열매를 보면 모두 딱딱합니다. 열매로 바꾸는 과정에 반드시 생기를 없애고 딱딱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딱딱해지니 무거워지고 자동적으로 하강합니다. 이 열매는 수기가 말라 생명체가 죽어 종자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수기가 없다는 것은 생기가 없고, 생기가 없다는 것은 목숨이 없는 겁니다. 생명체가 생명을 잃은 것이죠. 이렇게 세상은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없는 것이죠. 물질로 비유를 하면 물욕을 너무 부리면 탐욕으로 생기를 잃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삶으로 비유하면 우리의 미래를 이어갈 후대를 얻은 것이구요. 그리고 계절은 다시 겨울로..봄, 여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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