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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남은 일본식 가옥의 의미는 고통이었다(1)

여행의 의미-순례 NO.3
서울로 오가는 길에 간혹 쉬어 가거나 TV에 나오는 맛집을 들리기 위해 군산을 경유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단순히 짬뽕을 먹거나 수산시장에 들르는 그런 방문이 아니었기에 가봐야 할 곳의 목록을 짜고 효율적인 동선을 짜고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들릴 수 있도록 일정을 계획했다.
군대의 행군에 가까운 강행군의 일정이었다. 모든 것을 다 둘러보고 사진을 남겨야 할 것 같았고,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때만 해도 가능해 보였다. 자료조사 때문에 다시 올 시간은 없을 것 같았기에 모든 곳을 다 가야 했다.
군산 IC를 통과할 때까지도 자료를 찾느라 조수석에서 휴대폰과 씨름하던 나는 우연히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비눗방울을 부는 아이를 보았다.
한가롭기 그지없는 비눗방울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잠시의 따뜻함을 잊고 나는 다시 손 안의 인터넷에 빠져 들었다. 갈 곳은 많았고, 최대한 많은 곳을 가고자 하는 나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군산에 들어서자마자 군산의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임피 궁말(현 구암동)에 있는 구암 교회의 옛 건물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 없어진 곳이 많아서 잠깐 가서 사진만 찍고 오면 돼."라고 말이다. 군산 구암교회의 옛 건물들 역시 사라지고 없었고, 현재 3.1 운동 기념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1959년에 새로 지어진 석조 예배당이다.
군산은 전주에 이어 두 번째로 생긴 남장로교의 선교 스테이션이었다. 호남 지역에 왔던 남장로교의 7인의 선발대 중 전킨 선교사와 의료 선교사였던 드류(유대모) 선교사가 1895년 3월 처음 답사를 위해 군산에 왔고, 1896년 4월 정식으로 선교부가 개설되었다.
그 당시 군산은 100채 남짓의 초가집뿐이던 작은 어촌이었고, 선창가에 있었던 두 채의 초가집은 끊임없이 홍수에 시달려야 했었다. 드류는 하루 종일 햇살 한 줄 비치지 않는 곳에서 종일 환자들을 돌보았고, 작은 배를 타고 금강을 위아래로 다니고, 또 섬들로 순회진료를 다녔다.
군산은 남장로교 선교부가 세운 스테이션 중 가장 열악하고 힘든 곳이었다. 결국 전킨 선교사의 두 아이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선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묻혔다.(전주에 있는 선교사 묘역의 비석은 후일 묘비만 옮겨진 것이다)
내 말이 다리에서 떨어져 나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이 때문에 절개 수술을 했는데 그것이 편도선염을 가져왔다. 내 어린것은 의사도 없이 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며칠 후 폐렴으로 죽었다.....
덕분에 드류는 건강이 악화되어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갔으나 다시 돌아올 만큼 회복되지 못했으며, 전킨 선교사는 전주에서 숨을 거두었다(전주의 동락원).
혹독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 위에 병원과 학교, 그리고 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중 군산의 구암교회는 개항으로 인해 사라진 군산 교회 이후 군산 최초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1899년의 구암교회이고, 현재 3.1 운동 기념관으로 사용되는 예배당 건물이다. 길 건너편의 새로 지은 교회 건물도 보였고 마당의 기념비도 보았지만, 초기의 건물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기념관 안의 자료는 사진이나 인쇄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잘 정리되어 있었다.
1919년 3월 5일의 군산 만세운동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국사책의 한 줄이었던 것 같다. 작은 박물관을 돌아보는 동안 내가 국사 시간에 외웠던 '1919.3.5 군산 만세운동'은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더 이상 한 줄 역사가 아니게 되었다. 작은 도시 군산과 그들의 상처를 돌보고 치유했고, 학교를 세우고 가르침을 통해 우리를 섬겼던 선교사들이 그 역사의 뒤에 이름 없이 묵묵히 남아있는 것도 보았다.
가슴의 묵직함을 담고, 기념관을 뒤로 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이 월요일이 이기에 대부분의 박물관이 휴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 날 가려고 했던 근대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군산 근대역사 벨트 스탬프 투어'를 시작했다.
근대역사박물관에서 낯익은 전킨 선교사의 이름을 발견했다. "전킨((William M. Junkin, 전위렴)"선교사가 군산에 세운 영명학교와 멜볼딘 여학교의 옛 사진도 보았다.
근대 역사박물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토담집"이다.
"토담집"은 우리의 슬픈 현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 설명에 쓰여있는 도시 빈민이었을 것이다.
토담집을 기억하고 싶었다. 우리의 지나온 진짜 역사이기에 말이다.
근대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우리는 옛 군산세관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군산시에 정말로 항의하고 싶어 졌다.
옛 군산세관은 휴관일이 근대 역사박물관과 달랐다. 옛 군산세관은 토요일, 일요일이 휴관이었고, 근대역사박물관은 월요일이 휴관이었다. 예정보다 하루 더 군산에 머물러야 옛 군산세관을 볼 수 있었다. "군산 근대역사 벨트 투어"라는 근사한 이름의 관광지로 조성을 해놓고 스탬프 투어까지 있지만 주말에는 갈 수 없고, 월요일에는 근대 역사박물관을 갈 수 없다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을 한 번에 보려면 화, 수, 목, 금요일에만 오세요!라고 광고를 해야 할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옛 군산세관을 관리하는 곳이 시청이라 근대 역사박물관과 휴관일이 다르다는 설명을 납득하려고 노력하며, 관람객이 제일 많은 주말을 휴관일로 정해놓은, 도무지 시민들의 편의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에 또 한번 실망했다. 옛 군산세관 건물은 1908년 벨기에에서 수입한 적벽돌로 지었으며,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기에 들어가 내부를 보고 싶었다.
아쉽지만 길 건너에서 사진만 찍고는 발길을 돌렸다.
옛 군산세관을 지나 1박 2일에 나왔던(구) 미즈상사, 그리고 근대미술관(구) 일본은행 군산지점)을 거쳐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향했다.
<경술국치를 추념하기 위한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근대건축관>
<민족의 함성>오천년 우리 역사에 도움을 주신 인물들을 표현한 강용면의 작품
건축관 내부의 조선은행 금고에 써진 문구가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했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

쉼 없이 '군산 근대역사 벨트 스탬프 투어'를 달리고 있었다.
근대건축관을 나올 즈음 우리들은 그만 멈추고 싶었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어 진포 해양공원으로 "차를 타고" 향했다. 너무 힘들어서 최대한 가까운 곳까지 차를 타고 갔다.
그리고 부잔교를 만났다.
앞서 만났던 토담집과 금고 안의 문구가 떠올랐다.
혹자는 우리 민족이 정당하게 쌀을 수출한 거라고 써놓은 글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헐벗고 굶주려가면서 쌀을 수출하고 땅을 내어주는 데에 전혀 폭력도, 강압도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군산에 온지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부잔교의 바로 옆에는 6.25 참전 평화기가 있었고, 민족의 상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무거운 마음에 이어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해양공원의 끝에는 퇴역 함선을 전시관으로 꾸며놓은 곳이 있었으나, 나는 손을 들어버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탬프를 완성하고 상품을 받더니 새로운 힘이 솟아 구경하러 뛰어가버렸고, 나는 주저앉아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후회했다.
생각보다 볼 것도 많았고, 찬찬히 살피면서 읽어보면 좋을 거 같은 8개의 코스를 시간에 쫓겨 가며 사진을 찍고, 지친 아이들을 채근해 결국 그날의 목표대로 단시간에 스탬프 투어를 마쳤다. 분명 목록에 있는 것들을 보기는 다 봤지만 무언가 빠트린 것 같았고, 남은 것은 돌덩이 같은 다리, 주린 배와 탈진 직전인 아이들과, 그리고 보리쌀 두 봉지였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군산의 유명한 짬뽕을 먹기 위해 갔지만, 하필이면 개인 사정으로 하루 문을 닫는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고민 끝에 다른 중국집을 찾아갔지만, 최악이었다.
정말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이성당을 향했던 우리는 저녁 때가 다되어 살민한 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이성당과 비슷한,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영국빵집에 들려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고 숙소로 향했다. 전주의 초코파이에 실망했던 우리는 그 유명한 단팥빵에 또 실망했다. 좋은 단팥이 많이 들은 건 알겠지만 우리에겐 너무 달았고 지나치게 많은 팥은 빵의 부족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야채빵은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니 나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정말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전에 가본 곳을 가지 않는다고 해도 생각보다 가야 할 곳이 많았다.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서 놀고 싶은 아이들과 바닷가라도 한번 가고 싶은 나는 망설였다
결국 우린 군산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모두 잠들고 나는 조명이 있는 곳을 찾아 컴퓨터와 책상이 갖추어진 곳을 찾았다. 가져온 자료들을 읽던 나는 갑자기 불이 꺼져서 깜짝 놀랐다. 한층 아래 대각선으로 보이는 프런트에서 불을 꺼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계단 밑의 로비로 내려가려던 나는 멈추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 자기로 했다.
새로운 아침, 우리는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아펜젤러 기념관으로 향했다. 아펜젤러 기념관은 아펜젤러 기념교회와 함께 새로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인데, 도착해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안내 전화로 전화를 하니 10시부터 관람시간이라고 하셨다. 정말 서둘러 나온 우리에겐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남는 시간을 해변에서 산책을 하기로 한 우리는 호텔에 해변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호텔에 묵는 숙박객들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뭔가 특별할 것 같도 조용할 것 같았다. 분명 차로 5분이라고 한 곳을 우리는 10분~20분을 헤매기 시작했다.
길이 복잡한 곳도 아닌 곳에서 헤매던 우리는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곳에서 군부대 표지판까지 만나자 계속 가도 되나 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막다른 길을 빠져나가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풍력 발전기들이 나타났다.
호텔에서 말해준 해변으로 향하던 우리는 해변은 가지 못했지만 조선소와 풍력발전소 사이로 와버렸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지만 풍력발전기가 줄을 서있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 처음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달렸다. 덤으로 조선소의 크레인과 건조 중인 요트도 볼 수 있었다.
방조제를 따라 바다도 걷고 사람이 와도 날아가지 않는 갈매기와 함께 모처럼 여행 온 기분을 만끽했다.
끝이 없어 보이는 파란 하늘은 시원한 숨을 쉬게 했다.
시원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맨위의 사진은 군산에 남아 있는 일본식 신사인 "동국사"입니다.
<군산 여행 정보>
군산 여행정보 사이트 주소입니다.
군산도 여행정보가 많고, 블로그 후기도 많습니다.
군산에 가보기 전에 1박 2일이나 영화를 통해 군산에 대해 먼저 보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군산은 TV 화면에 비추어진 단지 먹거리나 특이한 건물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 군산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시고, 아이들에게 잊혀가는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군산은 생각보다 가볼 곳이 많습니다. 구불길이라 이름 지어진 길들 위주로 코스를 잡으셔도 되고, 일정에 맞추어 그중에 가보고 싶으신 곳들만 가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아직 금강 쪽은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제 일정표의 다음 군산 여행의 출발지이지요.
이곳엔 제가 다녀온 곳의 정보만 올리겠습니다.
+군산시에서 제공하는 구불길의 주소입니다. 군산 여행 계획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세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063-454-7870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0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67)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입니다. 11월~이듬해 2월)
※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의 통합권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참!!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 얼마 전 전국 5대 공립박물관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옛 군산세관(구 군산세관 본관) 063-730-8721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4-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49-38)
○ 관람시간 :월요일~금요일 9:00~18:00
※ 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
※ 저는 매주 토요일, 일요일 휴관이고 법정 공휴일 또한 휴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체관람일 경우 미리 예약하면 문을 열어준다는 직원분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군산관광정보 사이트에는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처럼 <화요일~일요일 9:00~18:00>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저처럼 꼭 군산세관 내부를 관람하실 분은 미리 전화로 확인하시고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근대역사박물관의 홈피에는 문의전화가 063-450-6110(군산시청 관관진흥과)로 되어 있습니다.
+구) 미즈상사 063-446-2867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32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8-2)
○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7:00
+장미갤러리 063-454-7870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0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67)
○ 관람시간 :월요일~일요일 10:00~17:00
+근대미술관(구 일본제 18 은행 군산지점) 063-446-9812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30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32)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입니다. 11월~이듬해 2월)
※ 등록문화재 제372호
※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의 통합권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장미공연장
전라북도 군산시 내항 1길 5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7-2)
○ 관람시간 :월요일~일요일 10:00~17:00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063-446-9811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14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23-1)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입니다. 11월~이듬해 2월)
※ 등록문화재 제374호
※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의 통합권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진포 해양공원 063-450-6110(군산시청 관관진흥과)
전라북도 군산시 내항 2길 32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4)
해양공원의 자세한 정보입니다.
+군산 아펜젤러 기념교회 063-467-2478, 010-6576-8000
전라북도 군산시 내초동 109-16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
교회와 기념관 외에도 작은 카페도 있습니다. 또 게스트 하우스와 단체 숙소도 있습니다.
○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홈페이지에는 관람시간이 저렇게 써져 있지만, 미리 전화해서 확인을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성당 063-445-2772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17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1가 12-2)
○ 운영시간 : 매일 07:30~22:00 첫째 주, 셋째 주 일요일 휴무.
※ 전화로 미리 예약하면, 줄 서지 않고 사실 수도 있답니다.
+영국빵집 063-466-3477~8
전라북도 군산시 대학로 144-1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신풍동 1001-11)
○ 운영시간 : 매일 8:00~22:00 휴무일은 신정과 구정 설날 당일만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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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간다." 아주 간단한 명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 명제만큼 어려운 명제도 없으며, 이 단순한 명제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신학자들이 몇인지는 샐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단순한 명제에는 그에 따르는 수많은 대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삼각김밥 하나에 1000원입니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수많은 대전제가 있다 '삼각김밥'이라는 물질적 개념 '하나'라는 수치적 개념 '1000원'이라는 경재적 개념 등 심지어 거래라는 방법적 개념까지 너무나 많은 대전제가 서로 합의를 이루어야만 이 단순한 명제는 효력을 얻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간다."를 생각해보자 이 명제는 예수, 믿음, 회개, 천국이라는 개념이 대전재가 되어야만 성립이 된다 기본적인 대전제인만큼 기본적인 개신교적 개념으로만 살펴본다면, 예수는 곧 신 그 자체이며 믿음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회개는 믿음에 대한 신자의 결과적 행위이며 천국은 신자가 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신의 나라이다 즉, 이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보충해보면 이러하다 "예수라는 신을 신적 의지에 의해 인간이 믿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밖에 없게 되며 회개한 신자는 죄로부터 자유한 신의 나라에 입성한다." 풀어쓴 명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위 사람들의 고백은 이상해진다 회개란 믿음으로부터 발산하는 결과적 행위인데 죄를 즐기는 행위는 예수를 믿는 신자의 행위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죄를 즐기는 자는 회개할 수 없다 회개는 전적으로 믿는 자가 도달하는 결론이지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즉,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이야기하는 회개와 다르다 마치 같은 숫자가 쓰여있다고 한국 화폐를 미국 달러로 쓸 수 없듯이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절대 사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회개란 신앙의 결과이지 신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예수가 이야기한 "내 명령을 듣고"는  신자가 지켜야 할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신자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설교이다 신자니 죄를 짓지말고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닌 착한 사람이야말로 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자만이 회개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진다 화자는 교리를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회를 비판할 생각도, 종교적 진리를 정확무오한 진리라고 수호할 생각도 없다 단지, 잘못된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자 설명이다 요약하지 못한 긴글을 써 미안하게 생각한다 3줄 요약 1. 기독교적 개념으로 회개는 신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2. 신자란 죄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하는 존재이지 회개할 수 있다며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3. 그러니 죄를 짓고 회개하면 천국이다라는 말은 교리적 대전제를 무시한 잡소리에 불과하다 (출처) 재밌는 글이라 퍼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나도 같은 생각 ㅋㅋ
조선 후기 미녀 기생들
이난향 조선 후기 유일 1패 기생 1패 기생은 왕 앞에서만 유일하게 공연을 할 수 있는 특급 기생 (참고로 황진이는 양반들만 상대하는 2패 기생으로 이난향보다 급이 낮음) 이난향은 대한제국 시절 순종의 전속 기생이었음 고향은 평앙인데 기생학교는 경성의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를 나왔음 참고로 당시 기생학교 투 톱이  경성의 조선권번 평양의 평양권번임 이건 당시 기생학교 수업시간표인데 기생들은 생각보다 많은 공부를 해야했음 상대해야 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대부호나 지식인 계층이었기에 그렇다고 함 특히 이난향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역사상 최고 미모 그리고 최고 실력을 가진 천재 일본 샤미센, 가야금, 심지어 피아노까지 잘 쳤음 게다가 조선 전통무용부터 서양 왈츠까지 모두 마스터했다고 함 이난향은 얼굴이 설리하고 빼박이라 더 유명함 설리처럼 이난향도 당시 여자 기준으로 장신인 165cm 였음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이난향은 경성 최고 기생집이었던 '명월관'으로 스카웃되는데 이때 매주 이난향을 보러 왔던 지명 손님들이 위 3명임 이난향의 회상에 따르면 이광수는 올 때마다 취해있어서 얼굴이 붉었고 최남선은 덩치는 큰데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는데 가끔 한마디하면 쇳소리가 나서 특이했다고 함 나중에 이난향은 20대 중반 나이에 본인이 졸업한 조선기생학교 최연소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이후 중앙일보 기자와 결혼한 뒤 조용히 가정주부로 살았음 김옥엽 평양권번(평양기생학교) 출신 중 제일 유명했던 기생 판소리와 가곡에 있어서 당대 최고였다고 함 특히 김옥엽은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김동인의 애인으로도 유명했음 박온실 박온실은 평양기생학교 출신 우리나라 최초 미스코리아인 미스 조선 진 출신이기도 함 포미닛 전 멤버 남지현과 빼박 미모로도 유명함 장연홍 평양기생학교 출신 기생 평양에서만 활동했고 거기서 넘버원으로 유명했음 당대 수많은 재력가들이 애첩으로 삼으려고 유혹했지만 단 1명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음 원래 부잣집 딸이었는데 갑자기 집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 슬픈 과거가 있음 23살 때 홀로 중국 상해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실종됨 오산월 평양기생학교 출신 당시에는 남자들 사이에서 기생들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구매하는게 유행이었는데 제일 많이 팔린 엽서가 바로 오산월 사진 엽서였다고 함 이옥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기생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한데 '꽃 같은 내 순정' 이라는 가곡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있음 윤채선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조선 전통무용의 실력자로 알려져있음 키가 무려 168cm로 당시 웬만한 남자들보다 컸고 매우 풍만한고 글래머한 서양 스타일의 육감몸매였다고 함 펌) 당시의 기생들은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야 하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소만 기생학교가 있는 줄은 몰랐구려. 대화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 같소.
아버지의 비밀 노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보물처럼 보관해온 노트 한 권이 있었습니다. 다른 일엔 비밀이 없던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그 노트에 대해서는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비밀 노트를 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노트에 적힌 것은 가족들의 이름과 친구들의 이름, 그리고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아버지의 노트에 무언가 대단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에게 어머니가 다가왔습니다. ​ “어머니도 이 노트를 아세요?” ​ 어머니는 그 노트를 보고는 잠시 추억에 잠기는 듯했습니다. ​ “이건 너희 아버지의 기도 노트란다. 매일 밤 한 사람씩 이름을 조용히 불러가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곤 하셨지.” ​ 아들은 궁금해서 다시 낯선 이름들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 “그럼 이분들은 누구신가요?” ​ “아버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란다. 아버지는 매일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올리셨지.” 당신의 용서는 용서를 낳고 그 용서는 다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그 사람을 용서해 주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용서는 원망의 응어리로부터 자유로워지며, 행복으로 새 출발을 하기 위한 꼭 필요한 삶의 과정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 톨스토이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상처#용서#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