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imanistars
5,000+ Views

부족함과 결핍의 사이에서

*위의 사진은 군산 해저에 침몰한 일본 화물선에서 나온 중화민국과 홍콩의 주화입니다.
군산의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었던 '군산 근대건축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족함과 결핍의 사이에서 만나는 돈의 무게
1999년 12월 31일 밤, 꼭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었던 그 밤의 자정이 지나고 먼 미래 같았던 2000년이 시작되었다. 2000년 1월 1일 00:01... 시간은 변함없이 1999년과 똑같이 시작되고 있었고, TV에서는 '밀레니엄 베이비'의 타이틀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 '특별한' 아기들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1999년 1월 1일의 시작과 1998년의 1월 1일의 시작과 별 다를 바가 없는 2000년의 시작은 약간 허탈하기까지 했다. 어느 종교 집단의 말처럼 휴거를 기대한 것도 세상의 종말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왠지 2000년대는 1990년대와 다를 거 같았다. 손가락만 튕기면 SF영화에 나오는 먼 미래의 모습으로 마법처럼 바뀌어 있을 거 같았지만, 그로부터 16번의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모습처럼 바뀌지는 않았다.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씩 달라지는 작은 것들에 익숙해져서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다.
얼마 전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들처럼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는 삐삐에서부터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지나오는 변화를 온전히 경험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단 1년 사이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에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만 보아도 그 시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언더우드 부인의 결혼은 1889년이었고, 매티 노블의 일기는 1892년이다. 이 당시만 해도 조랑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으므로 "돈"은 그 무게만으로도 "짐"이 되었다. 조선을 여행하기 위해 달러를 조선의 돈으로 바꾸어야 했던 서양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돈의 무게"때문에, 여행 경비를 실을 말과 마부까지 필요했다.( 그 후 당오전, 당백전등의 발행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화폐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1890년쯤의 돈의 무게는 20달러만 되어도 짐꾼이 필요할 정도로 무거웠다. 부가 짐이 되는 것이다.
2016년 지금, 오늘의 돈의 무게는 몇 kg일까?
"0"이다.
DOS에서 window 10으로, 공중전화에서 삐삐(무선호출기)를 거쳐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동안 우리의 지갑 속도 달라졌다. 우리의 지갑은 현금 대신 카드로 채워졌다. 그리고 또다시 달라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전자거래와 비트 코인, 오프라인에서는 신용카드를 벗어나 스마트폰의 앱을 통한 결제는 또 다른 세상이다. 실물 카드도 통장도 필요 없는 온라인은 SF영화에서처럼 카드도 스마트폰의 앱조차도 필요 없는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예감하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 실제로 보이지 않는, 만질 수 없는 화면상의 숫자에 불과한 돈이지만 우리가 느끼는 진짜 무게도 "0"일까?
조선시대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 시절엔 미친 소리였겠지만 우린 물을 사 먹는다. 집에서 쓰는 물에도 수도 요금을 내며, 버리는 쓰레기의 양만큼, 내가 가진 것의 가치 만큼 세금을 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돈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할수록 더 '고급진' 것을 얻으며, '흙수저', '금수저'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우린 '돈'에 민감해졌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도,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단지 명품을 위해 몇십 배나 되는 돈을 쓰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이유이든 각자 다르겠지만 "만족"을 위해서라는 것만은 같을 것이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신조어, 부족함과 결핍, 지나침과 넘침, 무소유와 욕심, 자급자족과 물물교환, 돈의 가치 대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고민했다. 나 역시 돈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하나의 "인간"이기에 억지로 포장하거나 이상적인 말을 싶지 않았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말이다.
망설이던 나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 글을 쓰던 밤, 그녀는 내가 있었던 24시간 롯데리아에서 나의 건너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여러 개의 장바구니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 팔짱을 낀 채 앉아서 잠이 들었다. 그녀의 개인적인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단지 그녀의 피곤한 며칠간의 길 위에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거나 정말 돈이 없었기에 가장 저렴한 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명절의 아이들과 식구들의 번잡함을 피해 온 곳에서 그녀를 만난 나는 덕분에 글을 마저 쓸 수 있었다.
1895년을 살았던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보다 더 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시대는 땅과 자연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자급자족적인 삶의 비중이 더 컸으며 모든 것이 돈으로 지불되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6년을 사는 우리에게 "돈"은 "필요악"이다.
현대 사회는 "돈"이 지나치게 모자라면 삶을 영위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먼저 살아남고서야 그 이후에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돈"은 생존의 필요조건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생존이 아니라 "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생존이었으며,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잊고 있다.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이었지만, 이제 돈 그 자체가 목적이고 행복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었던 돈이 목적이 되고, 돈에게 지배당하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원했던 삶을 살 수 없다.
플라톤의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을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기가 생각한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겨뤄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절반만 박수하는 말솜씨
라고 했다.
플라톤은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을 꼽으며 , 적당한 "부족함"은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알게 해주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지나치게 부족하다면 그것 또한 고단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그녀처럼 말이다.
그녀는 고단해 보였다.
새벽에 내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그녀는 앉은 자세로 가방을 끌어 앉은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돈이던 다른 무엇이던 부족함이 지나쳐 결핍이라 말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른다면 우린 결코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며, 오히려 더 그것을 원하고 갈망하게 될 것이다.
2016년의 돈의 실제 무게는 "0"이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느끼는 돈에 대한 마음의 무게는 조랑말에 싣던 그 무게보다 절대 가벼울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1895년을 살았던 사람들보다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행복한 것일까?
1895년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유와 편리함과 풍족함을 누리는 우리는,
어쩌면 "부족함"을 모르며 "부족함"으로 인한 "불편함"도 참을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부족함이 "결핍"된 지금, 2016년을 사는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겠다.
돈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진짜 행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Comment
Suggested
Recent
돈의 무게는 0이 되었지만 우리 삶에 그 비중은 납보다 더 무거워져서 우리가 이렇게 끌려다니는 삶을 삶고있너요 ~ㅜ 네 없어도 죽는게 아니니까 좀 없이 살려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것 같아요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프랑스, 벨기에에 가려진 또다른 유럽의 쓰레기국가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이 히틀러의 자살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막을 내린 후 나치 독일의 파시즘 광기를 초장부터 온몸으로 받아내야했던 네덜란드는 전쟁의 여파로 전국토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당시 나치 독일은 조선총독부와 비슷한 '네덜란드 국가판무관부'를 세워 수많은 네덜란드인들을 탄압했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 일가가 숨어살았던 곳도 네덜란드고 그들은 결국 나치에게 발각되어 수용소로 끌려갔는데 비단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현지 네덜란드인들도 그와 다를바 없는 탄압을 받았다 국왕 빌헬미나는 나치 치하에 맞서 영국으로 망명을 가 네덜란드 국민들의 저항정신을 고취시켰고 끝내 나치 독일은 패망했으나 네덜란드는 독일의 옆동네였던 만큼 전쟁으로 온국토가 잿더미가 되었고 이 나라의 미래는 답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미합중국느님 되시겠다 유럽의 공산화를 막고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을 부흥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마셜 플랜 네덜란드는 전국토가 잿더미가 된 만큼 마셜 플랜의 혜택도 가장 많이 보았다 액수 자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밀려보이지만 네덜란드와 다른 유럽 국가들 사이의 국토 면적 + 인구수 비율을 생각해보면 결코 적은 액수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지원금을 받고 겨우 살아나기 시작한 네덜란드는 행복하게 하우디 치즈나 만들면서 풍차를 돌리며 경제재건에 힘썼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그랬으면 이 글이 쓰여지지도 않았을 것 돈받고 좀 살만해지기 시작한 네덜란드는 바로 자기네 식민지 재관리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시 동남아시아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들이닥쳤는데 본국들이 나치독일과 싸우느라 식민지 관리가 될리가 없는 상황에서 일본군은 무혈입성을 하게 되고 일본군이 패망하게 되자 일종의 권력 공백이 찾아온 상황이었다 당연히 식민지들은 이틈을 타서 독립을 하려 했고 기존의 유럽 열강들은 이에 반발했는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독립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던 네덜란드는 국토도 아직 복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를 다시 '침공' 하는데 이게 바로 인도네시아 재침략전쟁(1945~1949)이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의지는 '죽어도 못잃어'였기 때문에 전쟁 당시 네덜란드 침략군의 숫자는 무려 12만명에 달했다 참고로 당시 네덜란드 인구는 고작 천만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라 자체가 빵빵하게 먹고 살만한 것도 아니고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식민지 하나 독립시켜주기 싫어서 12만명이나 되는 군대를 지구 반대편까지 보낸 네덜란드도 참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전쟁이란게 항상 그렇지만 곱게 흘러가질 않았다 인도네시아가 공백이 있었다곤 하나 기본적으로 식민지에 불과했고 경험이라곤 일본군이 자기네 총알받이로 써먹으려고 가르친 기초 군사교육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인들은 독립을 위해 엽총과 죽창까지 동원해서 싸우게 된다 네덜란드도 이렇게 악에 받힌 인도네시아인들을 가만두지 않았고 민간인 학살과 참혹한 전쟁범죄도 서슴치 않았다 위의 사진은 당시의 학살을 묘사한 부조상이다 아무리 네덜란드 본국 상황이 개판이어도 인도네시아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황은 네덜란드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인도네시아 수뇌부까지 포로로 잡히고 절박한 상황속에서 미국과 유엔이 개입한다 미국은 자기네 비싼 돈 들여가며 지원해준 나라가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그림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결국 네덜란드가 다이긴 상황에서 미국이 '그냥 놔줄래 맞고 놔줄래?'를 시전하자 네덜란드는 울며 겨자먹기로 독립을 승인하게 되고 4년간의 전쟁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으로 끝을 맺는다 이걸 보면 식민지를 운영한 나라중에서 정상이었던 나라가 없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독립한 인도네시아가 자기 국력 믿고 옆나라 동티모르를 강제 합병하고 70만 국민 중 1/3을 추방하거나 잔혹하게 학살해버리지만 그것은 나중의 이야기다 (출처) 식민지에 있어서만은 여윽시 갓메리카
회개에 대한 개신교적 교리.banbak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간다." 아주 간단한 명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 명제만큼 어려운 명제도 없으며, 이 단순한 명제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신학자들이 몇인지는 샐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단순한 명제에는 그에 따르는 수많은 대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삼각김밥 하나에 1000원입니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수많은 대전제가 있다 '삼각김밥'이라는 물질적 개념 '하나'라는 수치적 개념 '1000원'이라는 경재적 개념 등 심지어 거래라는 방법적 개념까지 너무나 많은 대전제가 서로 합의를 이루어야만 이 단순한 명제는 효력을 얻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간다."를 생각해보자 이 명제는 예수, 믿음, 회개, 천국이라는 개념이 대전재가 되어야만 성립이 된다 기본적인 대전제인만큼 기본적인 개신교적 개념으로만 살펴본다면, 예수는 곧 신 그 자체이며 믿음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회개는 믿음에 대한 신자의 결과적 행위이며 천국은 신자가 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신의 나라이다 즉, 이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보충해보면 이러하다 "예수라는 신을 신적 의지에 의해 인간이 믿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밖에 없게 되며 회개한 신자는 죄로부터 자유한 신의 나라에 입성한다." 풀어쓴 명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위 사람들의 고백은 이상해진다 회개란 믿음으로부터 발산하는 결과적 행위인데 죄를 즐기는 행위는 예수를 믿는 신자의 행위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죄를 즐기는 자는 회개할 수 없다 회개는 전적으로 믿는 자가 도달하는 결론이지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즉,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이야기하는 회개와 다르다 마치 같은 숫자가 쓰여있다고 한국 화폐를 미국 달러로 쓸 수 없듯이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절대 사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회개란 신앙의 결과이지 신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예수가 이야기한 "내 명령을 듣고"는  신자가 지켜야 할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신자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설교이다 신자니 죄를 짓지말고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닌 착한 사람이야말로 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자만이 회개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진다 화자는 교리를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회를 비판할 생각도, 종교적 진리를 정확무오한 진리라고 수호할 생각도 없다 단지, 잘못된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자 설명이다 요약하지 못한 긴글을 써 미안하게 생각한다 3줄 요약 1. 기독교적 개념으로 회개는 신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2. 신자란 죄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하는 존재이지 회개할 수 있다며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3. 그러니 죄를 짓고 회개하면 천국이다라는 말은 교리적 대전제를 무시한 잡소리에 불과하다 (출처) 재밌는 글이라 퍼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나도 같은 생각 ㅋㅋ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
태아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내면서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에서 포근히 떠 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도 걱정 없습니다. 어머니의 탯줄을 통하여 알맞게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태아는 아마도 그곳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열 달이 채워지고 태아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 드디어 그 시간이 찾아오고, 태아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온 힘을 다해 어둠의 터널을 지납니다. ​ 그렇게 모든 것이 낯선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또다시 유일한 영양공급원이던 탯줄마저 끊겨버립니다. ​ 뱃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더 넓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이 구절은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안락하게 만들어 놓은 생각과 고집을 깨트려야 함을 말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자신에게 물어보라. 난 지금 무엇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었는가를. – 잭 캔필드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변화#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토박이말 살리기]-살얼음 살얼음길
[토박이말 살리기]-살얼음 살얼음길 지난 이렛날(7일)이 눈이 많이 내린다는 한눈(대설)이었습니다만 제가 있는 곳에서는 눈은커녕 한낮에는 봄 날씨라고 해도 될 만큼 포근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높은 고장에는 올해에도 몇 차례 눈이 내렸다고 하지요. 날씨가 추운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듣는 기별이 있습니다. 지난 이레에도 다른 고장에서 이것 때문에 수레가 부서지고 사람도 다쳤다는 기별을 봤습니다. 그 기별 속에 나온 말은 다름 아닌 ‘블랙 아이스’였습니다.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보고 듣기 때문에 수레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낯익은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블랙 아이스’라는 말이 우리말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은 ‘검다’는 뜻의 영어 ‘black’에 ‘얼음’이라는 뜻의 ‘ice’를 더한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곧바로 뒤쳐 직역하면 ‘검은 얼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블랙 아이스’를 ‘검은 얼음’으로 뒤쳐 쓰자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말하면 좋다고 할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말과 비슷한 토박이말이 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을 좀 해 보자는 것입니다. ‘블랙 아이스’를 흔히 ‘겨울철 비가 온 뒤 빗물이나 녹은 눈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길 위에 얇게 얼어붙은 현상’이라고 풀이하곤 합니다. 한마디로 ‘얇게 살짝 언 얼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얇게 살짝 언 얼음’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바로 ‘살얼음’입니다. 말집 사전에도 2014년 5월 7일 열린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회의에서 ‘블랙 아이스’를 ‘노면살얼음’ 또는 ‘살얼음’으로 다듬었다는 풀이가 나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제까지 모르고 있을까요? 저는 신문, 방송에서 이 말을 써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드려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블랙 아이스’라는 말이 익어서 어렵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살얼음’과 ‘블랙 아이스’라는 말이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도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살얼음길’을 썼으면 합니다. 길 위에 살얼음이 얼어 있으니 말입니다. 알고 있던 말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을 만드는 일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오늘날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이렇게 들온말을 그대로 쓰는 때가 많고 새로운 말을 만드는 데 힘을 쓰지 않다 보니 우리 토박이말이 갈수록 더 설 자리를 잃고 우리 삶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범칙금을 매기고 그런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서 갈수록 교통법규를 어기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처럼 우리말이 있는데도 우리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하면 훨씬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토박이말을 넉넉하게 가르치고 배우며 널리 알려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알고 쓰게 되면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날도 언젠가는 올 거라 믿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함께 힘과 슬기를 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온겨울달 여드레 삿날(2021년 12월 8일 수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블랙아이스 #살얼음 #살얼음길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이 글은 경남일보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