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라 의지의 고찰
닥터 매드의 허세 월드 - 티아라의 의지
벌써 한물 간지도 모르겠는데 티아라가 화영을 왕따시키는 것 때문에 큰 소란이 났었지. 티아라를 해체하라는 소리도 나오고 코어 엔터테이먼트 사장을 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연예계쪽이나 사건 사고쪽에 별 관심을 안 갖는 성격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의지’, 의지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되면서 퍼져나가는 것 때문에 관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생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니체에 대한 동경으로 어려운 책을 졸면서 읽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길지는 않은 글이고 어렵지 않지만 읽어가면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버거울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난 내 글이 부족한 만큼 똑똑한 사람들이 내 글에 반박해줬으면 좋겠다. 좀 재수 없을 수도 있는데 이 글이 이해가 안 되면 아직 삶에 대한 고찰이 없이 시키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해. 비판은 좋지만 무시는 안 돼.
삶은 권력의지야. 그보다 더 앞서서 쇼펜하우어라는 사람이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가 사람이 사는 이유라는 말을 했고 니체는 쇼펜하우어에게 이어지는 사람이라 의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겠지. 사람은 각각 두 가지를 갖고 있어. 힘과 권력의지. 힘은 할 수 있는 것이고, 권력의지는 원하는 것이다. 티아라는 의지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성과 더 적합한 것 같다. 영어로 하면 스트롱 윌. 트위터에서 함은정이란 사람이 ‘의지가 사람을 만들 수도 있는건데..’라고 한 말은 맥락만 빼고 이 문장만 보면 정말 생철학을 꿰뚫은 진리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사람을 만든다. 삶이 의지이기 때문에.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깨달음도, 의도도 없겠지만 아무튼 충격이었다. 의지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티아라 왕따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의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은 인간이 평등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말에 굉장히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약자와 병신들. 사실 평등이라는 말은 약자가 만든 환상이다. 자기위안을 위한 실패자의 아편이지. 결국은 우리 모두 저열한 존재라는 인식, 이것이 약자의 방식이다. 내가 병신인 만큼 너도 병신임에 틀림없다고 약자들은 믿고 싶다. 당연하지 않을까?
볼테르는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고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욕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약자만. 약자이기 때문에 타인이 나보다 우월함을 인정할 수 없다. 욕은 인간이 가진 효과적인 평등화 전략이다. 티아라가 왕따를 한 것도 아마 그러한 맥락이겠지. 뭐 내가 직접 그 상황을 보고 들은 것은 아니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티아라 멤버들이 화영이라는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 것이 원인일 것이다. 질투라고 하는 감정이라고. 근데 이것도 의지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욕을 한다. 인터넷 댓글로 어떻게든 성공한 인생의 허점을 공략한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일 뿐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 고작 자위행위에 불과한 것을.
마르크스가 생산력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나눌 수 있다고 했지. 변증법적 유물론 어쩌구 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거야.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검색해보니 상부구조는 생각하는 방식, 정치 제도, 법률, 종교, 도덕, 예술, 철학, 과학이고 하부구조는 물질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의미한다고 하더군. 마르크스는 물질적 하부가 사상적 상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대. 즉 경제적인 구조가 변하면 자동적으로 문화나 법률도 바뀌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거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삶의 양식을 상부로, 의지를 하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당연히 하부가 상부를 결정하는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 의지란 ‘증오, 질투, 지배, 소유’의 정서야. 즉 우월해지려는 의지가 인간 삶을 결정한다고. 혹자는 야망이라고도 부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내 안의 괴물이라고 부르겠지. 겸손하라고, 겸손이 미덕이라고 하고. 근데 한편으로 이게 나쁜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의지가 있다는 뜻이잖아. 강자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라구. 의지라는 것은 지배하고 우월해지고 성장하기 위한 힘의 성질이야. 나는 티아라 멤버들이 진정한 강자의 의지를 따른다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행동으로 질투의 의지를 사용하리라 봐.
약자는 증오, 질투, 지배라는 감정으로 타인이 가지고 있는 ‘힘’을 욕망하게 되지. 힘을 가질 수 없다면 힘을 부정할테구. 화영이라는 친구가 얼굴도 예쁘고 키도 커서 멤버들 나름대로는 그것을 ‘힘’으로 인식하고 질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키기 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왕따를 시켜서 화영의 힘을 부정했겠지. 그러나 약자의 의지는 성장이 없어. 그래서 평생 약자야. 강자의 의지는 성장이 있지. 왜냐하면 강자는 차이 자체를 욕망하거든. 존재 자체에서 차이의 의지를 보는 것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세상에 오직 유일한 하나의 존재가 있다고 해보자. 비교할 대상이 없어. 이 사물의 특이성은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딸기 우유 같은 거라면 ‘이건 우윤데 딸기 향이 나는 거야’라고 인식할 수 있을 텐데. 유일무이한 존재는 ‘본성상의 차이’로 인식할 수 있어. 다른 사물과 다른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다른 것. 이 사물이 바로 이 사물로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려면 스스로 차이를 만들어야 해. 스스로가 변화함을 통해서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거야.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존재는 당연히 ‘나’라는 존재. 나는 인간이지. 하지만 그 전에 나의 이름이 있고 나의 존재가 있어. 나는 나지 나는 인간이 아니야. ‘쟤는 반에서 꼴지하는 얘야.’ 라고 나를 부른다면 그것은 나를 올바로 표현한 게 아냐. 아니 그럼 세상에 반에서 꼴지하는 존재는 다 똑같단 말이야?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지.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인데.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 나는 나를 변화시켜가는 거야. 내가 움직일 때 마다 나는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거든. 항상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나는 나를 몰라. 방학에 잠이 오지 않을 때 까지 자다가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 켜고 인터넷, 게임 하다가 적당히 배고파지면 밥 먹고 졸리면 잔다고 해 보자. 자기 직전에 눈을 감고 물어보는거야. 나는 뭐지? 이런 생활을 한다면 이에 대해서 절대로 답을 할 수 없어. 하지만 의지에 따라 운동선수로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면 답할 수 있지.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해서.
근데 약자들은 본성상의 차이로 나를 인식하는 걸 포기하고 타인의 가치로 나를 인식하려고 해. 그게 쉽잖아. 쉬운 것만 찾으니까 당연히 약자가 되었겠지만. 세상이 돈 많고, 예쁘고, 명품을 들고,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면 강자라고 부르니까 그 가치를 이용해서 나를 인식해. 그러다 보니 그 가치를 갖지 못하면 나는 쓰레기라고 생각해. 근데 더 무서운 건 막상 갖게 되어도 결과적으론 그런 가치가 나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나를 몰라. 그래서 허무하지. 권태 권태 권태. 어딘가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제자리만 빙글 빙글 돌았던 거야.
결국 강자로서의 의지는(우월해지려는 욕망) 본질의 차이를 인식하여 나를 인식하고, 인식된 나를 끊임없이 깨 나감으로써 이뤄지는 거야. 비교할 대상은 나. 언제나 나. 강자는 다른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 스스로 차이를 만들 수 있는데, 그리고 차이를 내는 것이 존재의 본성인 걸 아는데 왜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이런 존재만이 타인과의 경쟁에서도 원한이나 증오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권력의지는 결국 차이에 대한 욕망이야.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기를 절실히 소망하는 것. 의지가 원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차이야. 돈, 명예, 인기가 아니라고. 내가 일초 일초 지날 때 마다 과거의 나로부터 우월해지고 있다는 믿음, 이것을 욕망하는 자. 새롭게 가치를 창조하길 바라는 존재가 강자야. 그렇기 때문에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닐지. 그리고 그 아브락사스라는 신의 이름은 결국 약자에서 강자로 변한 나 자신일 것이고.
세속의 가치를 통해서 자신이 고귀하다고 느끼는 것은 영혼이 궁핍한 자들이야. 인기라는 가치로 나를 인식하고 느끼는 것. 나는 티아라에서 욕을 먹는 멤버들이 영혼이 궁핍한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노예와 약자로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았잖아. 분명히 화영을 왕따시키면서도 느꼈을 걸. “이렇게 해서 전혀 행복해지지 않잖아. 힘을 가진 사람에게 힘을 뺐으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근데 더 화만 나...”
근대는 약자가 지배하는 세상이야. 한국이라는 나라의 높은 분들은 명예와 돈을 극한으로 추구하더라고. 이런 사람이 지배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의 가치는 약자의 가치평가에서 비롯되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슬프다.
삶은 불공평하고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불과 10초 전과 나는 겉모습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면 삶은 180도 달라진다.
그래, 정말로 의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