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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원 인생 vs 5억원 인생의 차이>

“당신이 만약 쇳덩어리 하나를 있는 그대로 그냥 팔면 5천원 정도를 받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쇳덩어리를 가지고 말발굽을 만들어 판다면 1만원까지 가치를 높여 팔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발굽 대신 바늘을 만들어 팔면 5백만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시계의 부속품인 스프링을 만들어 판다면 5억원 정도까지 그 값어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만화가로, 인류학자로, 사업가로,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미국 로버트 리플리(1890∼1949)가 남긴 명언입니다. 똑같은 원료를 갖고 있더라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쓰임새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 말입니다. 1년은, 12개월, 365일, 8,760시간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이 엄청난 시간을 누가 주었습니까? 이 시간은 부자나 지식인에게만 주어진 것도 아니며, 권력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 그리고 노인이나 어린이 그 모두에게 똑같이 매일 24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얻기 위하여 특별히 한일도 없습니다. 1초를 얻기 위하여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인다면 바로 내 인생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노 교수님이 옛 제자들한테 “이렇게 아흔까지 살줄 알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일세.. 65세에 대학교수를 은퇴하고 25년을 잉여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산 세월이 참으로 아깝다. 자네들은 그렇게 살지 말게나” 5천원 인생으로 사느냐 아니면 5억 인생으로 사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전반전 인생을 어떻게 살았든 앞으로 남은 후반전 인생이 더 중요합니다. 전반전에 실수하고 무의미하게 보냈다면 후반전은 멋지게 마무리 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충분합니다. 지금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이시간을 값지게 사용할때 우리 인생은 달라질것 입니다. 후반전 인생을 명품으로 멋지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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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뭉클한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한 남성과 반려견의 이야이기입니다. 1년 전, 한 남성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가족의 신고로 구급대원들이 출동해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남편과 아버지의 사망에 망연자실하며 눈물을 흘렸고, 가족의 반려견 새디는 들것에 실려가는 보호자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새디는 며칠 동안 식사를 거르며, 온종일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들것에 실려나가던 보호자의 모습만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은 새디는 자신의 오랜 친구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남성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 유가족들은 새디와 보호자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장례식으로 함께 향했습니다. 조문객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남성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새디의 차례가 되었을 때, 새디는 두 발로 서 관 안에 들어있는 친구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의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새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새디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그렇게 둘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새디는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새디의 사례와 달리, 대부분의 장례식장과 사람들은 '장례식에 개를 데려오는 것이 상식에 어긋난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세상을 떠난다면, 상실감에 오래 시달리지 않도록 반려동물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풍부한 동물입니다. 자신의 보호자와 친구들을 한없이 기다리며 상처받지 않도록,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