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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보았다. 가능성이 많은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하는데, 결정적인 순간들에 클리셰가 고개를 내밀어서 아쉬웠다. 그건 마치 예쁜 옷에 뚫린 몇몇 구멍들을 촌스럽고 조악한 무늬의 천 조각으로 엉성하게 덧대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사를 구성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겠지만, 장면들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구성하도록 조금 더 고민을 거듭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영화를 구성하는 그 예쁜 요소들이 아쉬워서이다. 일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착오로 시작되는 서사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가능성을 품는다. 단순한 착오로 인해 아주 영리하게 확장되는 서사들이 종종 있고, 그중 수작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정도일 듯하다. 뭐 그 이후로, 특히 최근 그의 작품들은 <러브레터>를 만든 사람이 맞나 의심 들 정도로 안타까운 수준이지만. 여튼, 하지만 나는 용서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어떤 특별할 것 없는 드라마에 대한 인상적인 평을 본 적이 있는데, 크게 악한 인물이 없어서 좋더라, 요즘은 너무 잔인하고 악한 이야기들은 보기 힘들다는 식의 말이었다. 그렇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그런 것들이 가끔은 필요하다. 순수한 어떤 것들. 순수를 가장한 엉성한 이야기들이나, 올바름을 흉내 내는 영악한 상업 논리 말고. 여튼, 영화를 보는 내내, 옛날이지만 너무 옛날은 아닌, 과거지만 너무 과거는 아닌, 그 근과거가 자꾸만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자꾸만 뭉클해져서 혼났다. 앞으로 계속 더 나이가 들면 그땐 정말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 감당해야 할까. 자꾸만 그 시절을 더 잘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아름다운 시절들에 회한이 남아서, 미치겠다. 어떻게 살아도 지난 시절은 안타깝고 눈부시겠지만. 지금 이 순간도 이미 한 시절로 지나가 버리고 있는, 이 가혹한 시간들을 다 어떡해야 할까. 흘러가는 강물에 손을 넣고 하염없이 놓쳐버리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매 순간이 호시절인 것을 모르고.
이동진의 삶 한줄평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작은 하루와 부분들이, 우리 전체, 인생을 이룬다.” 자연 과학에서 프랙탈이라는 게 있습니다. 프랙탈이 뭔가 하면, 나무의 작은 가지를 하나 꺾어 세워보면 그게 큰 나무의 형태랑 같다는 거예요. 혹은 해안선에서 1센티쯤 되는 부분을 아주 크게 확대하면 전체 해안선의 크기와 비슷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부분이 전체의 형상을 반복한다는 말을 프랙탈이라고 해요. 저는 인생도 정말 프랙탈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지금 천사가 있고, 천사가 어떤 한 사람의 일생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의 일생을 처음부터 다 보면 좋겠지만, 천사는 바쁘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게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천사는 아무 단위나 고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게 저라고 한다면, 저의 2008년 어느 날을 고르는 겁니다. 그리고 그 24시간을 천사가 스캐닝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날 제가 누구한테 화를 낼 수도 있고, 그날따라 일을 잘 해서 상을 받았을 수도 있죠. 어찌 됐건 그 24시간을 천사가 본다면, 이걸로 그 사람의 일생을 판단할 확률이 95%는 될 것 같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성실한 사람은 아무리 재수 없는 날도 성실합니다.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수능 전 날이라고 할지라도 성실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이렇게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만들어지는 거지 인생에 거대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매진해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제 인생 블로그에 대문구가 있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인생 전체를 우리가 플래닝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변화도 많고, 우리를 좌절시키는 일 투성이인 인생에서 어떻게 해서 그나마 실패 확률을 줄일것 인가? 그것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것밖에 없다는 거죠. -영화평론가 이동진
행운과 불운의 구슬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은 사랑했던 여인이 떠나고, 난청이 찾아오면서 한때 절망에 빠졌습니다. 현실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어느 수도원을 찾아가 힘들었던 사정을 털어놓으며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을 간청했습니다. ​ 한참을 고민하던 수사는 방으로 들어가 나무 상자를 들고 나와 말했습니다. ​ “여기서 구슬 하나를 꺼내 보게.” ​ 베토벤이 꺼낸 구슬은 검은색이었습니다. 수사는 다시 한번 상자에서 구슬을 꺼내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베토벤이 꺼낸 구슬은 검은 구슬이었습니다. 그러자 수사가 말했습니다. ​ “이 상자 안에는 열 개의 구슬이 들어있는데 여덟 개는 검은색이고 나머지 두 개는 흰색이라네. 검은 구슬은 불행과 고통을, 흰 구슬은 행운과 희망을 의미하지. 어떤 사람은 흰 구슬을 먼저 뽑아서 행복과 성공을 빨리 붙잡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네처럼 연속으로 검은 구슬을 뽑기도 한다네.” ​ 수사는 힘들어하는 베토벤을 향해서 다시 말했습니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상자 안에는 아직 여덟 개의 구슬이 남아 있고, 그 속에는 분명 흰 구슬이 있다는 거네.” 행복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같은 량의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 지금까지 고통스러운 일만 많았다면 오늘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 ‘앞으로는 내 인생에서는 불행보다 행복할 일이 더 많이 남았다.’ ​ ​ # 오늘의 명언 언제까지 계속되는 불행이란 없다. – 로맹 롤랑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불행#행복#행복총량의법칙#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