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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채용, 스타트업스럽게!

스타트업이 좋은 개발자를 구하기란 항상 어려운 일이죠. IT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면 우선 개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다시 더 많은 개발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좋은 개발자 구하기는 늘 어려운 일일 수밖에요.
지금도 뭐 없긴 하지만, 이화랑 대표와 둘이서 처음 스타트업을 시작하던 2014년 초엔 저흰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채용공고를 올려보고, 소개를 부탁해도 아무도 연락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건 당연했습니다. 내세울 제품 하나 없고, 이 바닥에 흔하디흔한 명문대─대기업 출신도 아닌 우리를 누가 덜컥 믿고 함께 하자고 했겠어요.

“형, 평범한 공고로는 안 되겠어요, 좀 특이하게 해보죠.”

이화랑 대표는 눈에 띄는 독특한 채용공고를 원했습니다. 그날 온종일 컨셉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웹에서 슬램덩크 사진을 보고 빡 느낌이 왔습니다.
북산은 평범한 사람들, 아니 세상의 기준에 비춰보면 어쩌면 평균 이하의 인생들이 모여 근성 하나로 전설을 만든 팀입니다. 끈끈한 근성, 불꽃 같은 열정! 우리가 원하는 스타트업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올린 실제 채용공고

“북산 같은 스타트업에서 강백호 같은 개발자 찾습니다”
누구에게나 팀이 필요합니다.
마음 맞는 팀이, 필요합니다.
만약 북산을 만나지 않았다면
강백호의 인생은 한낱 철모르는 양아치로
끝났을 겁니다.
정대만도 그냥
동네 깡패였을지 모릅니다.
실력 좋은 서태웅도 마찬가집니다.
실력이야 나무랄 데 없겠지만,
모난 성격을 받아준 북산이 아니라
다른 팀이었다면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스타트업계의 북산’을 같이 만들어갈 분을 찾습니다.
부족한 실력을 근성으로 이겨내는 강백호,
묵묵하게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채치수,
실력으로 꿀리는 건 절대 용납 못 하는 서태웅,
불꽃 같은 열정으로 밤새워 타오르는 정대만,
단신 핸디캡을 노력과 스피드로 극복한 송태섭.
이 다섯 사람 중 한 명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면, 연락주세요.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모집분야•모바일 (안드로이드 / 아이폰) 개발자 0명•웹 개발자 0명 필요기술 및 언어•모바일 : android, ios, restful•웹 : node.js, angular.js, mongodb, express(MEAN Stack), javascript, jQuery, 웹 표준, css3, html5, AWS, restful•아니면 저거 다 몰라도 그냥 알고리즘 및 객체지향에 능숙하신 분(한땀 한땀 알려드림). 지원 전형1. 강백호 전형 : 연봉 or 연봉+지분 협의•불타는 열정과 똘끼급 도전정신으로 충만하신 분. 실력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근성 하나는 비밀병기급이라고 자부하시는 분. 유쾌하고 즐겁게 일하면서 6개월, 1년 만에 몰라보게 성장하고 싶으신 분. 휴학할 의사가 있으시다면 재학생도 가능.2. 서태웅 전형 : 연봉 최대 4천만원 + 지분 + @ (협의, 포트폴리오 필수)•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개발 실력이라 자부하시는 분. 무슨 문제만 생기면 모두가 나를 찾는 분위기에 익숙하신 분이자, 그런 분위기에 속에서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시는 분. 오만하지만 그럴만해서 겁나 쿨해보이는, 수퍼 개발자에 근접하신 분. 모집형태•직원 : 현재 종이 쪼가리인 스톡옵션 따윈 필요 없다. 100% 연봉으로 달라.•동업자 : 나 먹고 살 돈만 달라, 나머진 지분으로 달라.•직원 + 동업자 : 돈도 좀 벌고 싶은데, 창업도 관심 있다. 적당히 믹싱하자. 우대사항•웹, 모바일 및 백엔드 – 프론트엔드를 자유롭게 넘나드실 수 있는 분.•웹, 모바일 경험 별로 없어도 자료구조나 객체지향 등에 능숙하신 분.•대학생의 경우 자료구조 및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이수, 성적이 A 이상이신 분.•게임 프로그래밍을 해보신 분(3D면 더 좋음).•프로그래밍 공부하는 걸 낙으로 삼으시는 분. 근무여건•근무지: 마포구 상수동•복지: 4대 보험, 식사, 간식, 자기계발 적극 지원•업무환경: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 주 5일 10시 출근-6시 퇴근. 개인 의사에 따라 자유롭고 유연하게 근무 시간 조정 가능.•특전: 야식비 지원, 도서비 지원, 소개팅 지원. 간략한 회사 소개•팀원 현재 3명. 개발자와 마케터 그리고 기획 및 자금 지원을 해주는 현직 의사 한 명으로 구성. 평균 연령 20대 후반. 배우는 걸 즐기며, 각자 자기 분야에서 쪽팔리지 않을 만한 실력은 갖추고 있음.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 엄청나게 긍정적이며, 때때로 조울증 증세를 반복하지만 삘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폭풍같이 일함. 말 잘 통함. 정말 보기 드물 만큼 커뮤니케이션과 서로 간의 배려가 좋은 팀. 성공 의지와 근성, 책임감은 그냥 기본. 현재 약 3가지 아이템 보유 중이며, 하나씩 진행해 나갈 계획. 커피 한잔 하며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연락주세요. 지원 방법•recruit@slogup.com으로 아래 양식의 간략한 이력서를 보내주세요. 자소서, 포트폴리오 등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뭔가를 같이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이 글이 떠 있으면 아직 구인 중입니다.•기술 면접 있음. (부담 없이 개발자의 기본 자질이 있는지만 테스트)•문의 환영:010-XXXX-XXXX 이화랑010-XXXX-XXXX 김상천

그리고 돌아온 3주간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반응

놀랍게도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공고를 올린 지 40분 만에 한 개발자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녁이 되자 수십 통의 지원서가 이메일함을 새파랗게 물들였습니다
며칠 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분은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지원 PT’를 만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언제 만나면 좋을지 여쭙자 지금 사무실 앞이라고 하더군요. 잠깐 당황스러웠지만, 때마침 점심시간이고 해서 그럼 식사를 함께 하시면 어떻겠냐고 말했습니다.
얼굴도장 찍자마자 우리는 김치찜을 먹으러 갔습니다. ^^;
으아니, 소연이라니. 그분께서 만들어온 입사지원 PT는 ‘채소연 전형’이었습니다.
물론 공고에 그런 건 없었습니다. 이분의 이름은 종열이 형입니다. 종열이 형은 두 번의 창업 경험이 있고, 개발과 기획에 영업까지 두루 경험해본 사람이었습니다.
종열이 형은 그런 자신이 강백호도 서태웅도 아닌 또 다른 캐릭터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함께하고 싶어서 공고를 보자마자 없는 전형을 만들어 불쑥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종열이 형을 보내고 저희 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도위형(슬로그업 전략팀장)에게 그날 저녁 전화를 걸어 이런 사람이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셋은 만장일치로 즉시 종열이 형을 팀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은 이때 30명 넘는 지원자분들이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볼 것도 없이 종열이 형과 함께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이화랑 대표는 앞으로의 면접에서 더 좋은 지원자가 나타나면 없는 TO를 만들어서 종열이 형을 추가로 채용하자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무리해서 외주 하나 더 하면 월급 줄 수 있다고. (이 남자는 늘 이런 식입니다. 아마 저보다 일찍 죽을 것 같네요.)
재밌는 점은 이렇게 없는 전형을 만들어 오신 분들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송태섭 전형’ ‘정대만 전형’은 물론 심지어 ‘안경 선배 전형’까지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면접 × ‘티타임’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 찾아주시는지, 정말 너무 감사해서 우리는 몇 주간 한분 한분 모두를 만나 뵙고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눴습니다.
면접이라기보다는 티타임을 가지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한분 한분께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게 지원해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면접형태와 달리 역으로 저희도 저희를 소개하는 PT 자료를 만들어 보여드리며 지원자들께 계획을 설명드렸습니다. 없는 돈을 털어 면접선물(개발자의 필수품 머그잔)도 드렸어요. ㅎㅎ
이 업계에 첫발을 디디며 이쪽 사람들을 최대한 만나 뵙는 것은 우리에게도 값진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한 분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그건 정말로 큰 공부였습니다.
아쉽게도 그 후 막 일을 시작해보려는 때 ‘채소연 전형’ 종열이 형과는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 서로의 건승을 빌며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열이 형과는 지금도 연락하며 잘 지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준 재능 있는 개발자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다른 2명의 개발자 승중 님(슬로그업 iOS 개발자)과 인정 님(Android 개발자)과 팀을 꾸려 무사히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분에 넘치게 함께 하고픈 좋은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결정하는데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채용공고도 마케팅이다

독특한 채용공고 하나로 우리는 산뜻하게 스타트업으로서의 첫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일이 무척 재밌고 기분 좋은 경험이라 기록으로 남기려고 채용과정을 보도자료로 내기도 했습니다 .
개발자 구하기 어려운 이쪽 사정을 잘 아시는 여러 기자분들께서 감사하게도 기사로 내주셨습니다. 일전엔 기사를 본 한 기업의 인사팀에서 케이스 스터디로 활용하고 싶다고 인터뷰를 요청해오기도 했습니다.
마케팅으로서의 채용공고’라는 접근법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우리를 만족스런 팀원 모집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왜 이력서가 안 오지? 라고 혹시 지금 생각하고 계신 초기 스타트업분들이 계시다면, 저희의 작은 사례가 용기를 내는 힘이 됐으면 좋겠네요.
출처:pp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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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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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10 필사모임 <쓸모있씀!> 열 번째 카드 (+ 글씨 잘쓰는 꿀팁)
안녕하세요 :) 필사모임 쓸모있씀이 벌써 열번째 카드를 맞았습니다!!! 👏 무사히 열 번째 카드까지 오게되어 뿌듯해요. 처음 시작할 땐 그냥 호기롭게 시작했었는데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네요 ㅎㅎ 이번 카드도 잘 부탁드려요! 그동안 참여 못하신 분들도 이번 카드에는 댓글 한번 남겨주고 가세요 😊 오늘은 좋은 문장 대신에, 글씨를 잘 쓰는 법을 소개해볼까 해요. 저도 어디서 꿀리지않는 악필인지라 ㅎㅎ 악필 교정에 관심이 많은데요. 글씨 교정하는 꿀팁을 찾아보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많은 유튜버분들의 강의를 찾아봤는데요. 모두 공통된 팁을 알려주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정리를 잘해주신 유튜버 두분의 영상을 소개해드릴게요. 우리 같이 예쁜 글씨로 필사 해봐요 ~! 첫번째로 유튜버 '샒의 삶' 님 1. 모눈연습장 활용 글씨의 여백과 간격을 맞추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해요. 그걸 맞추는데에 모눈연습장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칸에 맞춰서 일정한 간격으로 쓰는 것을 추천했어요! 2. 자음, 모음 통일감 있게 쓰기. 사람마다 글씨체 스타일이 있는데, 어떤 글씨체건 중요한건 통일감 이라고 해요. 정자체면 자음 모음 모두 정자로, 흘림체면 모두 흘리게 쓰는 게 나만의 글씨체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상황에 따라 여러 굵기, 색 활용 글씨체가 예쁘지 않다면? 제목, 내용에 따라 굵기와 색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추천해주셨어요! 이건 다이어리를 쓸 때 기준이긴 하지만, 필사를 할 때도 중요한 단어는 더 굵게 쓴다던가 제목은 다른 색으로 쓴다든가 한다면 보기에는 더 좋겠죠?!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영상도 첨부할게요! 두번째는 '나인'이라는 글씨체로 유명하신 유튜버의 영상이에요! 마찬가지로 원본 영상 함께 첨부할게요 :) 너무 좋은 강의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1. 모눈연습장 활용 이 분도 마찬가지로 모눈연습장을 추천해주셨어요. 글씨크기, 간격 맞추기 어려운 분들에게 추천! 2. 핵심은 글씨의 높이 / 크기 / 간격 이 세가지만 일정하게 하면 예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아주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어요. 자세한 설명은 바로 아래로! 1. 높이 글씨의 높이를 일정하게 해야해요! 그러니까 세로 길이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죠. 글씨를 평행선에 가둘 수 있도록! 2. 크기 글자 하나하나의 크기를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해요. 11pt 로 쓰던 글씨는 그대로 11pt로 써야지, 한글자는 11pt, 그 다음 글자는 12pt 이런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말! 3. 간격 마지막은 간격인데요! 간격에도 여러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해주셨습니다. 3-1. 띄어쓰기 간격 글자 간격이 일정하듯, 띄어쓰기 간격도 일정하게 쓰도록 주의! 3-2. 자음, 모음 간격 이거 보면 정말 글씨 잘쓰시는 분들은 여러 부분을 신경써서 정성들여 쓴다는게 느껴져요 😭 음절 하나하나의 간격을 일정하게 해야하듯, 음소 하나하나의 간격도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바로 이렇게말이죠! 어렵네요 😂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3-3. 글자 간격 자간이라고도 하죠! 넓은 것 <<< 좁은 것 이 더 정갈해보인다고 해요. 그리고 이 역시 일정해야 하고요! 4. 이것만은 절대금지! 마지막으로 설명해주신 절대 하면 안되는 세가지입니다. 1. 겹쳐서 쓰기 2. 끊어서 쓰기 3. 연속해서 쓰기 인데요! 놀랍게도 저는 세가지를 모두 하고 있었어요 하하 예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제 글씨라서요 푸하하 이거 완전 제 글씨체 같은걸요? 이렇게 보니 제가 왜 악필이었는지, 제 글씨가 왜 못나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영상으로 보고싶으신 분들을 위해! 영상으로 보면 더 이해가 쏙쏙된답니다.ㅎㅎ 이 자료는 오로지 두분의 내용을 가져온 것이랍니다! 좋은 영상 올려주신 샒님과 나인님 감사합니다!!! : ) 오늘의 문장은 간단하게 윤동주의 <서시>를 놓고갈게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이 카드의 댓글로 필사사진 달아주세요!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참여하지 못하신분들도 오늘은 꼬옥~! 댓글 기다릴게요!!! 고럼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 신규 참여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