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ga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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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0

이런 말다툼이 벌어진 것은 절대 표면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도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내가 스페인 시골을 뱅뱅 맴도는 것에 짜증을 낸 것도 사실이었지만, 핵심은 훨씬 더 깊은 곳에 자리잡은 불안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지독한 비난을 퍼부었다는 점, 그럼에도 사실 그 비난이 말도 안되는 것이 었다는 점은 우리가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싸웠음을 보여준다.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우리는 그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싸운 것이다. 우리의 비난에는 복잡한 이면의 의미가 깔려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것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는 근본적인 주장과 통한다. 어떤 사람에 의존하는 기쁨은 그런 의존에 수반되는, 몸이 마비될 듯한 두려움에 비교하면 빛이 바랜다. 우리가 발렌시아를 돌면서 이따금씩 격렬하게, 또 약간은 까닭 없이 말다툼했던 것은 우리 둘 다 서로의 바구니에 달걀을 모두 집어넜었다는 것 ㅡ좀더 건전한 가계 관리를 목표로 삼기에는 무력한 처지라는 것ㅡ 을 깨달았기 때문에 생긴 긴장을 방출하는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우리의 말다툼은 때때로 극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그릇을 깨고, 문을 쾅쾅 닫으며 기쁨과 충만함을 드러내곤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를 이런 식으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네가 이것을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놓여. 내가 너한테 꺼지라고 말하면 너는 나한테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 소리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생존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서로 파괴하려고 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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