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OD
10,000+ Views

인터넷전문은행 잘 될 수 있을까?

지난해 말 국내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은 ‘카카오뱅크’, ‘케이(K)뱅크’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의 준비 작업도 빨라지고 있다. 이들 컨소시엄은 현재 인터넷 전문은행의 핵심인 시스템 구축과 함께 내부 규정, 업무 지침 등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최근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을 주도할 인재 모시기를 하고 있다는 데 오는 4일까지 정보기술(IT), 수신, 여신, 신용평가시스템(CSS), 리스크 관리 등 총 21개 분야에서 경력자를 모집한다고 한다. 관련 기사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11624 참조 은행업이란 것이 워낙 거대 사업인데다 인터넷전문은행의 특수성 때문에 컨소시엄 구성을 해야만 가능하게끔 정책당국이 정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컨소시엄 참여자 들 간에는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최근 K뱅크는 전산시스템의 구축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한창인 듯 하다. KT와 우리은행간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산시스템이 은행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점포 은행이므로 모든 경쟁력은 인터넷과 전산시스템에 결집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73202 참조
인터넷 전문은행은의 승패에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할 것이고 필자는 은행업 전문가도 아니므로 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몇 가지만 언급해보고자 한다. 우선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을 나열해보자. 자본력, 인력, 시스템 구축, 운영 능력 가장 일반적인 요소이며 당연히 구비되어야 할 요소이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개업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시장수요 은행일 잘 보던 소비자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이라고 하여 더 선호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결국 예금이자와 대출이자, 접근성, 편리함 등에 대한 수요일 것이다. 즉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수요라기 보다 더 나은 조건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이다. 사실 기존의 전통 금융기관은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나 고객이면서 을의 위치에 있는 서민들에게는 은행이 공공기관보다 더 부담스런 서비스 기업이다. 다시 말해 비대면 은행에 대한 수요는 잠재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장수요 요소도 마련되어 있다. 수요에 부합하는 서비스 창조 이것은 순전히 역량의 문제이다. 새로 출범하는 조직에서 얼마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기존 상품을 그저 온라인으로 이전하고 이자율 조정만 한다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런 서비스와 사업모델로 남게 될 것이다. 마케팅 및 영업 세상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인터넷 전문은행도 결국은 고객을 유치하고 매출을 올려야 하는 것임은 동일하다. 문제는 어던 차별적인 상품을 가지고 고객에게 어필할 것인가 이다. 결국 새로운 서비스의 창조 능력과 불가분 관계이다. 또한 기존의 매스마케팅 적 광고 홍보로는 고객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SNS와 같은 다자간 공개 채널에서 고객의 신뢰를 얻는 마케팅이 필요할 것이다. 그냥 하면 되겠지 가 아니라 이를 중요시하는 인식이 먼저 우선되어야 하며 각종SNS를 이용할 능력이 구비되어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SNS를 이용한 일방적 주입식 마케팅은 언젠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엔 신기하나 나중엔 성가신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객의 마음을 읽고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고객만족 금전 거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이므로 심하게는 급하거나 불안할 경우 달려가서 담당자를 만나서 따지거나 확인을 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터넷전문은행이라서 그런 건 안해요” 라는 식의 고압적 자세를 보인다면 고객들은 순식간에 이탈할 것이며 구전을 통해 SNS를 통해 삽시간에 소문으로 번질 것이다. 수익모델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영원한 비즈니스 모델이 돈장사라고 했다. 수익모델을 못 만든다면 당장 접어야 할 것이다.

보안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보안이다. 보안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인증보안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인터넷 전문은행의 특성상 인증보안을 거치지 않고 처리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객을 만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모든 프로세스에 인증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피할 방법은 오프라인에 매장을 여는 방법밖에는 없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인증보안

은행이 하는 일을 크게 두 가지로 말하자면 수신과 여신이다. 수신은 예금을 수취하는 것이고 여신은 대출을 해주소 이자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수신을 받으려면 예금계좌를 개설해줘야 하는데 금융실명제법 상 대면실명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장이 없는 인터넷은행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필자가 본인확인 인증에 대하여 여러 번 다른 Card들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실명확인은 본인확인의 수준이 아니라 대면하여 본인확인을 하라는 것이다.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인터넷 은행은 개점 휴업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비대면실명확인 방법에 대하여 금융당국이 몇 가지 인증방법 중 두 가지 이상을 적용하는 것으로 대체하도록 규제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비대면실명확인 금융위원회가 해외 인터넷전문은행 사례를 참고해 제시한 방안은 크게 4가지다. 고객확인증표 제출 방식은 주민등록증, 면허증과 같은 증표발급기관을 통해 본인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고객이 자신의 주민증, 면허증 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은행에 보내면 관련 정보를 관할하는 행정자치부에서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행자부의 주민등록DB를 이용하자는 것인데 이 역시 국민의 공감대나 동의 절차를 무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는 실시간 영상통화를 통해 해당 은행 직원이 고객이 제시한 신분증을 촬영한 뒤 실제 얼굴과 같은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프랑스 소재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용하는 중이다. 나름 의미 있지만 참 불편한 방식이다.​ 세번째로 계좌개설을 위한 현금카드를 전달할 때 택배회사직원 등이 고객이 맞는지 증표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확인이 제대로 될런지 의문이다. 요식행위가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끝으로 기존에 개설한 계좌를 활용해 소액을 본인의 인터넷전문은행계좌로 이체해 본인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기존의 계좌이체 인증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데 구지 실제 소액을 이체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어차피 공인인증서와 OTP를 이용하여 인즈아고 이체하는 것이므로 그냥 인증만 받아도 되는 것 아닌가?. 아무튼 비대면실명확인은 인터넷은행이 수신계좌를 오픈하는 절차로서 어떻게던 이 장애물을 넘어야 고객을 유치하고 영업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절차적인 불편함으로 인하여 고객의 호응이 얼마나 있을지 상당히 의문시 된다. 그냥 집 앞 매장에 가서 계좌 하나 만드는 것이 나을 듯 싶다. 그런데 문제는 비대면 실명확인만이 아니다.

거래인증

계좌를 개설하고 나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이용하여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인터넷뱅킹이나 지불결재 또는 계좌정보 조회 등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만약 기존의 인터넷뱅킹과 동일한 인증방식을 적용한다면 승산이 없을 것이다. 기존 보다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인증방법을 적용하여야 할 것이며 그것은 보안성, 편의성, 범용성, 친화성의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잠재시장을 잃어 버리거나 애써 모집한 고조차 이용을 하지 않게 되어 매출과 수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의 주장

비대면 실명확인 절차는 본인확인인증의 범주에 포함 적용하여야 인터넷 은행이 성공할 수 있다. 또한 필자가 주장하는 본인인증센터는 패스콘으로 인증을 처리하며 비대면실명확인 방법이나 생체인증보다도 보안성이 오히려 높기 때문에 목적하는 실명계좌의 취지에도 충분히 부합한다. 계좌를 개설한 후 또는 여신 거래 등을 처리할 때의 인증도 패스콘으로 충분하다. 어렵게 개설한 계좌의 사용이 거래시점에서의 인증 절차로 인하여 불편하다면 이용자가 없을 것이다. 즉 매출이 없을 것이란 뜻이다. 이용은 간편한데 보안성이 결여되면 신뢰를 얻지 못하여 역시 아무도 사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편리하고 보안성이 높다 하더라도 범용성이 결여된다면 즉, 일부 계층의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면 잠재 시장 자체가 몰락할 것이다. 예를 들면 생체인증이 그러하다. 또한 인증 방법은 사용자 친화적이어야 한다. 과거의 공인인증서 처럼 반 강제적으로 인증방법을 적용해도 될 것이란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 인터넷은행이던 오프라인 은행이던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열려있고 민감한 프라이버시 문제를 무시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고객의 마음을 열 수 없을 것이다.
패스콘 관련 자료 참조 Card#1 - 컨셉 - PASSCon 인증보안기술 http://www.vingle.net/posts/1444244?shsrc=v 참조 Card#2 - 인증시드 - PASSCon 인증보안기술 http://www.vingle.net/posts/1447571?shsrc=v 참조 Card#3 – PASS Code - PASSCon 인증보안기술 http://www.vingle.net/posts/1451364?shsrc=v 참조 Card#4 – UI/UX - PASSCon 인증보안기술 http://www.vingle.net/posts/1456596?shsrc=v 참조 Card#5 – 알고리즘 - PASSCon 인증보안기술 http://www.vingle.net/posts/1459098?shsrc=v 참조 Card#6 – 주요특징 - PASSCon 지식인증에 대한 발상의 전환 http://www.vingle.net/posts/1460803?shsrc=v 참조 Card#7 – 인증Factor – PASSCon 멀티팩터 강력인증 http://www.vingle.net/posts/1463878?shsrc=v 참조 Card#8 – 정의– PASSCon http://www.vingle.net/posts/1472036?shsrc=v 참조 Card#9 – 시스템인증 – PASSCon 시스템 프로세스 기반 인증 http://www.vingle.net/posts/1474040?shsrc=v 참조 Card#10 – 공인인증서,OTP,지문인증과 비교 – PASSCon의 비교 우월성 http://www.vingle.net/posts/1479380?shsrc=v 참조 Card#11 – 전자서명– PASSCon http://www.vingle.net/posts/1485231?shsrc=v 참조 Card#12 – 보안성– PASSCon http://www.vingle.net/posts/1489393?shsrc=v 참조 Card#13 – 기억– PASSCon http://www.vingle.net/posts/1492010?shsrc=v 참조 Card#14 – 같은 비밀Icon사용– PASSCon http://www.vingle.net/posts/1503831?shsrc=v 참조 인증의 구조 http://www.vingle.net/posts/1427690?shsrc=v 참조 #GCOD #PASSCon #패스콘 #보안 #인증 #인증보안 #비대면인증 #본인확인 #인증서비스 #인증센터 #Security #authentication #LTAuth #엘타우스 #CQLock #시큐락 #CirCLock #서클락 #핀테크 #Fintech #IOT #Bigdata #임용훈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직장인 돈 관리 하는 법 (통장 4개 굴리기)
1. 급여통장 : 잔액은 항상 0으로 유지 급여가 들어오면 1차적으로 월세나 통신비 같은 고정 지출을 자동납부하도록 해둡니다. (자동납부를 하지않으면 자칫 잊어버려서 밀리게 되고, 이는 곧 목돈이 되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 통장의 경우,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형태를 골라야겠죠. 중요한건 급여통장은 '절대' 잔액이 남아선 안 됩니다. 월급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퍼가요~♡"의 성지가 되도록. 물론 퍼가는 주체가 카드 할부금이 되어선 안 되겠죠. 급여통장이 ‘0’이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 노는 돈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영부영 하다가 쓸데없는 곳으로 새기 십상이지요. 2. 투자통장 : 자동이체 날짜는 모든 통장을 동일하게 설정 적금, 펀드, 주택청약, 보험, 연금 등을 관리하는 통장입니다. 저축도 큰 의미의 투자로 본다면 여기에 포함되겠죠? 급여가 들어오면 고정지출과 함께 투자통장을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동이체 및 투자상품 이체 날짜를 모두 동일하게 하는 것! 생각보다 많은 초년생들이 각종 자동이체 날짜를 우후죽순으로 설정하곤 하는데요. 이체 날짜가 동일해야 자금의 흐름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급여의 절반은 투자통장으로 흘러가도록 세팅해 주세요. 3. 소비통장 : 당신의 자제력을 믿지 마라 애초에 쓸 수 있는 돈이 적다면, 자연스레 소비도 줄게 됩니다. 소비통장에 한달에 쓸 돈만 딱 넣어두면 되겠죠? 소비통장은 체크카드와 연결시키도록 합니다. 한 달에 5만 원만 덜 쓰기!라고 하기 보단, 소비통장에 5만 원을 덜 이체시키는 게 훨씬 지키기 쉬울 겁니다. 주의할 점은, 쓸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추가로 잔고를 늘리기 없기! 소비통장에 넣을 돈은 급여의20~30%를 넘지 않도록 해주세요. 4. 예비통장: 소득의 10%, 평소 지출의 3배를 유지  급여통장에서 투자통장, 소비통장으로 돈을 돌린 후 남은 금액은 예비통장에 넣어둡니다. 만약 이 예비통장이 없다면, 친구 결혼식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갑자기 쓸 돈을 구하기 힘들겠죠. 적금을 깨야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단순히 이자가 아까운 걸 떠나서, 자신의 재무 계획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겠죠. 예비자금은 급여의 10% 정도로 산정하는 것이 좋으며, 평소 한 달 지출의 3배 정도의 금액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시 입출금이 가능하며 상대적으로 단기 고금리에 속하는 CMA를 초년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너무 핵꿀팁이라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퍼옴 출처는 요기 클립할 때는 댓 하나씩 남기깅 댓글냠냠~
습관을 연구한 공학자, 길브레스 부부 (2)
지난 글에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습니다. 괴짜 부부에 얽힌 일화를 나열했을 뿐이고, 어쩌면 지루할 법한 얘기인데도 말예요. 하지만 저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프랭크 길브레스와 동작 연구에 대해 알아보다가, 우연히 이들 부부의 가정사 얘기를 보게 되었죠.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싶은 뜨악함과 함께, 이들 가족에 대한 흥미도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지난 글을 적은 이유도 그런 감상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지만, 과연 얼마나 의도가 통했을까요? 각설하고 다시 길브레스 부부 얘기입니다. 흐름대로라면 릴리언 길브레스의 삶에 대해 얘기해야겠지만, 우선은 프랭크 길브레스 얘기부터 하죠. 한 가지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올바른 습관을 익히면, 다른 작업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습관은 하는 일의 종류와 상관없이 중요하다. 한 가지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습관을 익히는 방법을 알게 된 사람은 당연히 다른 일에도 같은 방법으로 좋은 습관을 지니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헨리 간트의 책, <일과 임금 그리고 이익>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헨리 간트는 오늘날 간트 차트로 알려진 일정 관리 도표를 창안한 인물인데, 세계 최초의 컨설턴트이자 과학적 관리론을 창시한 프레데릭 테일러의 제자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테일러나 길브레스 부부와도 생각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겠죠. 때는 1907년, 아직 프랭크 길브레스가 살아 있을 때 얘기입니다. 길브레스 부부는 무언가를 계기로 프레데릭 테일러와 만날 기회를 얻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두 거장은 이내 서로가 하는 연구가 거의 유사하단 걸 눈치채죠. 테일러의 <시간 연구>와 길브레스 부부의 <동작 연구>는 다소 차이점이 있었지만 노동자의 능력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 방식을 개선한다는 발상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프레데릭 테일러 개인적으로도 살면서 지금껏 걸어온 길이 프랭크와 유사했습니다. 우수한 성적을 올린 학생이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든 점도,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이윽고 자신만의 분야로 독립하게 된 것도 비슷했죠. 프랭크와 테일러 사이에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던지, 1912년 프랭크는 <과학적 관리 입문>이라는 문답 해설서를 출간해 테일러의 이론에 관심과 지지를 보였습니다. 프레데릭 윈슬로우 테일러. 세계 최초의 컨설턴트. 부유한 집안 출신에 직장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특허로 많은 돈을 벌었고, 은퇴 후 강연, 자문,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수행했습니다. 작업장에 스톱워치를 끌어들여 노동자의 작업과 휴식 시간을 통제한 게 그의 업적 중 하나인데, 이후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1912년 미 의회에서 작업장에서 스톱워치를 쓰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제정했다고 하죠. 또 테니스와 골프를 잘 쳐서 1881년 미 테니스 복식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따는가 하면, 1900년 하계 올림픽에서 골프 종목 4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골프채를 손수 디자인하기도 했다네요! 테일러와 만남을 가진 지 몇 년 후, 프랭크는 <동작 연구(1911년)>라는 저서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재미있게도 1911년은 테일러가 <과학적 방법론>을 출간한 해이기도 합니다. 이 <동작 연구>에서, 프랭크는 작업자의 동작을 분석해 가장 기초 단위 요소 17개로 분류하고, 이들 각각에 부호를 붙이는 한편 효율적인 행동과 비효율적인 행동을 구분합니다. 자신이 고안한 이 새로운 체계를, 프랭크 길브레스는 서블릭therblig이라고 지칭합니다. 혹시 눈치채셨나요? 서블릭이란 이름은, 바로 길브레스gilbreth 성을 뒤집어 쓴 거란 사실을요. 이것 또한 그가 남긴 묘한 기행 중 하나입니다. 1912년 이들 부부에게 또 한 번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인 릴리언이 그동안 부부가 함께 연구한 바를 토대로 산업심리학 논문 한 편을 써서 대학 측에 학위논문으로 제출합니다. 하지만 대학 당국이 논문 접수에 조건을 걸죠. 대학 측 논리는 이렇습니다. 릴리언의 주전공은 영문학이고, 따라서 제출한 논문은 학위 취득에 부적합하다. 하지만 릴리언이 본교로 돌아와 1년간 산업 공학 전문 실습을 수료한다면 논문을 접수받겠다. 문제는 미 동부에 사는 릴리언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교로 홀로 돌아가 수업을 수료하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단 사실이었죠. 고민하는 릴리언을 위해 프랭크가 아이디어를 내죠. 그는 출판업자를 찾아가 설득한 후, <산업공학잡지>에 릴리언의 논문을 1년간 연재할 수 있도록 허가를 따냅니다. 릴리언의 논문은 1914년 <경영심리학>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판됩니다. 이 책에서 릴리언은 여러 기업들이 권위와 수직적 명령에만 의존하는 전통적 체제에서 탈피해 과학적인 관리방법론에 기반한 새 체제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고 역설하죠. 책에 적은 저자명은 L.M.Gilbreth였습니다. 저자가 여자인 게 알려지면 불리한 대우를 받을까 우려해서 필명처럼 이름을 적은 거죠. 그러다보니 평소 길브레스 부부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대체 저자가 누구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입니다. 그럴 때면 프랭크 길브레스는 자신에게 질문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했다지요. '우린 결혼한 사이입니다.' 마치 두 사람은 일심동체이니 누가 썼느냐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처럼 말이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학 측은 새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릴리언이 경영 혹은 심리학 학위를 주는 어느 대학에서건 전문 실습을 받는다면 학위를 수여하겠다고요. 그 제안을 받아들여 릴리언은 1915년 브라운 대학 응용경영관리 박사 학위를 무사히 취득합니다. 학위를 취득한지 불과 3일 후에 출산을 하게 됐지만요. 1916년 부부는 노동자의 피로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분석한 <피로 연구>를 발표합니다. 1917년엔 <응용동작연구>를 내놓으면서 동작연구를 위해 활동사진기 촬영, 작업자 몸에 꼬마전구를 달아 행동 궤적을 찍는 사진 등 독창적인 방법론을 제시했고요.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프랭크는 육군 소령으로 입대합니다. 릴리언은 부상 군인의 재활 연구에 뛰어들죠. 장애인들을 위해 몇몇 장치를 새로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팔만 가지고도 쓸 수 있는 타자기 같은 거죠. 부부는 전쟁 후 상이 군인들의 재활을 돕는 전쟁위험보험법 통과에도 협력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1920년 <장애인을 위한 동작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죠. 친구 프레데릭 테일러도 그랬지만, 길브레스 부부는 동작 연구가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더 나은 처우를 받게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건 프랭크 자신의 개인적 경험 탓이기도 했죠. 건축 일을 할 때, 프랭크는 자신의 동작 연구 성과를 실제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프랭크의 저서 <동작 연구>는 벽돌 쌓기나 건축에 관계된 사례가 많습니다. 예컨대 벽돌쌓기의 경우 동작연구를 적용했을 때 사용하는 동작 수는 18개에서 5개로 줄고, 시간당 쌓는 벽돌 수는 175개에서 350개로 크게 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작업 생산량은 두 배가 증가했죠. 한편, 테일러는 작업자의 근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올바른 작업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이면, 그 혜택이 곧 작업자에게 돌아가도록 설계한 거죠. 또 작업자 개개인의 효율이 증진되면 회사 전체의 수익성도 높아집니다. 결과적으로 노사 모두 윈윈이죠. 정작 노동자들에게는 기계적 수탈과 착취를 위한 이론으로 비판받았지만, 프랭크의 저서에는 작업자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동작 연구>의 몇몇 구절을 아래 옮겨 적을까 합니다. 작업자가 맡은 일 이외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전적으로 회사 복지 부서의 담당이다(...) 작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작업자의 개인 생활을 살펴보는 일도 복지 담당 부서의 역할이다. 복지 부서는 작업자가 개인은 물론 속한 집단에서 더욱 가치 있는 경제인이 되도록 지원한다. ...따라서 작업자를 배치할 때는 작업자가 일을 대하는 태도와 성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작업자는 자신의 성향에 적합한 작업에 배치될 때 작업 지시를 더 잘 지키며 더 높은 성과를 낸다. 수습공이 당장 오늘 해야 할 일을 훈련하면 그 훈련은 무조건 실패한다. 수습공은 이론적인 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실습에 적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실습이 없으면 수습공은 실제 작업에서 연습을 하게 되고 결국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미국의 건축 분야에서 수습공이 훈련을 받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3년 정도이며 때로는 21세가 될 때까지 훈련을 받기도 한다. 최상의 조명은 작업자가 피로를 해소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준다. 가장 좋은 조명과 가장 나쁜 조명의 설치비용 차이는 눈의 피로를 줄여 휴식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절약되는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많은 생산량을 달성하려면 작업자가 개인 공구를 쓰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작업자에게 개인 공구를 쓰게 하면, 작업자는 공구 구매 비용을 아끼고 도난을 당할 경우 손해를 줄이기 위해 같은 종류의 공구는 한 가지 크기만을 구입한다. 그러나 대부분 작업에서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다양한 크기의 공구를 사용해야만 보다 많은 생산성을 얻을 수 있다. 1910년대 인물의 시각으로 적은 것이기에 오늘날 현실과는 다소 맞지 않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프랭크 길브레스가 얼마나 꼼꼼하게 작업자들을 봐오고 개선책을 나름대로 궁리했는지를 알 수 있는 구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ridibooks.com/books/2602000003 프랭크 길브레스의 <동작 연구>. 이 책이 번역 출판되어 있단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미 출간된 지 100년도 넘은 고전이라 할 만한 책이네요. 릴리언 길브레스 이야기는 이 다음 글에서 적겠습니다.
'유령' 영양사, 식재료 재탕…"터질 게 터졌다"
CBS노컷뉴스 이준석 기자 '무늬'만 영양사에, 식재료 재활용까지 사립유치원 10곳 중 4곳 영양사 부재 이재정 경기교육감 "영양‧보건교사 배치" 강조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경기도 안산시의 한 유치원에 29일 일시폐쇄명령서가 붙어 있다.(사진=연합뉴스) 경기도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시작된 식중독 유증상자가 100명 넘게 발생한 가운데 유아교육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일부 사립유치원들에서는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유령' 영양사를 두는가 하면, 먹다 남은 식재료를 재활용한다는 믿기 힘든 증언들이 쏟아졌다. 급식으로 나온 빵을 먹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자료사진) ◇ '무늬'만 영양사에, 식재료 재활용까지 올해 초 경기도 용인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A 교사는 원장으로부터 황당한 요청을 받았다. 4세 반 교육과 함께 급식 업무까지 맡아달라는 명령 같은 부탁이었다. 이때부터 A씨는 전문 영양사들이 해야 할 식단을 짜는 일부터 식자재 구매는 물론 때로는 조리까지 거들어야 했다. A씨는 "이 유치원은 막내 교사가 영양사를 함께 맡는 게 관행처럼 돼 있었다"며 "나중에 알게 사실인데, 유치원 영양사는 원장의 가족 중 누군가 등록돼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영양사를 본적이 없다"고 전했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사립유치원 교사 B씨는 지난해 충격적인 광경을 한 번 목격한 이후 급식 먹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B씨는 "조리사들이 조리하지 않은 제육볶음용 고기를 물로 씻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왜 씻냐고 물었더니, '원장이 식자재 비용을 아껴야 하니 남은 재료를 재사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믿기 힘든 답변이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B씨에 따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유치원에서는 제육볶음이 다시 메뉴로 올라왔다. 그는 "사립유치원의 급식 문제는 일부 유치원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다른 유치원 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들한테 먹이기 미안할 정도의 음식으로 나올 때도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부실급식 퍼포먼스 중인 학부모들.(사진=자료사진) ◇ 운영비 아끼려고…영양사, 조리사 태부족 30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경기도내 사립유치원 930곳 중 영양사가 배치된 곳은 88곳, 5개 유치원이 영양사 1명을 공동 고용하는 곳이 525곳으로 조사됐고, 미배치한 곳도 371곳에 달했다. 10곳 중 4곳은 영양사가 없는 유치원으로 비전문가가 아이들의 식단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영양교사(정규교원 및 기간제 교사)와 영양사(무기계약직인 교육공무직)는 원아들에게 제공하는 급식 전반을 관리하며 식단 연구, 조리 및 위생 지도, 식자재 검수 등을 책임진다. 그만큼 영양사가 제대로 배치된 유치원은 식중독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번 집단 식중독 사태가 발생한 안산 유치원도 인근 유치원 5곳과 공동영양사 1명을 고용한 상태였고, 매주 금요일 하루 영양사가 유치원을 찾아 일주일치 식단을 준비해야하는 실정이었다. 영양사뿐만 아니라 조리 인력 부족도 이번 사태와 같은 식중독 발생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조리사는 영양사를 도와 위생적이고 안전한 급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안산 유치원에서는 2명의 조리사가 근무했고, 이들이 매일 준비해야 할 급식은 원생 184명에 교직원 18명을 합쳐 200명분이 넘었다. 과도한 노동은 불가피하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2005년 유아교육법 제정 당시부터 유치원에도 전담 영양교사가 의무적으로 배치돼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지속돼왔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이종남 조직국장은 "일선 학교, 유치원 등의 식수 인원에 비해 영양사와 조리사 등 급식종사자의 수는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교육 당국에 적절한 배치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인건비를 부담하기 싫어하는 사립유치원의 눈치를 보느라 적정인원 보장을 안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지난 29일 기자 간담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영양 및 보건교육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모든 유아교육기관에도 영양교사와 보건교사가 들어가는 게 옳다고 본다"며 "교육감 재임하는 동안 유치원에 영양 및 보건교사 배치가 관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내가 필요해서 펌) 컴퓨터로 특수기호 쉽게 쓰는법
한글로 문서를 작성할 때 가운뎃점(·)이 상당히 많이 쓰이지만 정작 키보드에는 없음 그래서 'ㄱ + 한자 + 2페이지 8번'으로 입력하거나 문자표에서 찾아 쓰거나 다른 곳에서 복사+붙여넣기 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됨 아래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빠르게 가운뎃점을 입력할 수 있음 왼쪽 Alt (누른 채로) + 넘버 패드 183 주의 1. Num Lock이 켜있어야 함 2. 반드시 '왼쪽' Alt를 누른 상태에서 숫자를 입력해야 함 (오른쪽 Alt 불가) 3. 숫자는 반드시 넘버 패드의 숫자를 입력해야 함 (텐키리스 키보드는 사용 불가) 4. MS Office(Word, Excel)에서는 'Alt + 0183'으로 앞에 0을 하나 붙여야 함 이 외에도 자신이 자주 쓰는 특수기호가 있다면 아래에서 찾아서 외워두면 편함 다른 숫자 128 : € 130 : ‚ 131 : ƒ 132 : „ 133 : … 134 : † 135 : ‡ 136 : ˆ 137 : ‰ 139 : ‹ 145 : ‘ 146 : ’ 147 : “ 148 : ” 149 : • 150 : – 151 : — 152 : ˜ 153 : ™ 155 : › 160 : (공백) 161 : ¡ 162 : ¢ 163 : £ 164 : ¤ 165 : ¥ 167 : § 168 : ¨ 169 : © 170 : ª 171 : « 172 : ¬ 174 : ® 175 : ¯ 176 : ° 177 : ± 178 : ² 179 : ³ 180 : ´ 182 : ¶ 183 : · 184 : ¸ 185 : ¹ 186 : º 187 : » 188 : ¼ 189 : ½ 190 : ¾ 191 : ¿ 215 : × 247 : ÷ --- 138 : Š 140 : Œ 142 : Ž 154 : š 156 : œ 158 : ž 159 : Ÿ 181 : µ 192 : À 193 : Á 194 :  195 : à 196 : Ä 197 : Å 198 : Æ 199 : Ç 200 : È 201 : É 202 : Ê 203 : Ë 204 : Ì 205 : Í 206 : Î 207 : Ï 208 : Ð 209 : Ñ 210 : Ò 211 : Ó 212 : Ô 213 : Õ 214 : Ö 216 : Ø 217 : Ù 218 : Ú 219 : Û 220 : Ü 221 : Ý 222 : Þ 223 : ß 224 : à 225 : á 226 : â 227 : ã 228 : ä 229 : å 230 : æ 231 : ç 232 : è 233 : é 234 : ê 235 : ë 236 : ì 237 : í 238 : î 239 : ï 240 : ð 241 : ñ 242 : ò 243 : ó 244 : ô 245 : õ 246 : ö 248 : ø 249 : ù 250 : ú 251 : û 252 : ü 253 : ý 254 : þ 255 : ÿ (출처)
습관을 연구한 공학자, 길브레스 부부 (1)
1904년 10월 19일, 미 오클랜드. 막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혼부부가 기차에 올라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는 몇이나 낳았으면 좋겠어?' '글쎄, 한 다스만 낳지. 기왕이면 남녀 각각 여섯 명씩.' 대화 내용이 살짝 소름끼치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 말은 실제로 실현됩니다. 평생 길브레스 부부는 여섯 명의 아들과 여섯 명의 딸을 가졌고, 개중 다섯째 아들과 일곱째 딸에게 자신들 이름을 각각 붙여줬죠(프랭크 2세, 릴리언 2세). 비록 둘째는 1912년 디프테리아로 사망하지만,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모두 잘 성장해 주었습니다. 길브레스 부부와 11명의 자식들. 자녀들은 부부의 실험 연구 대상이자 참가자였습니다. 부부는 여러 번 자녀들이 접시를 닦는 동작을 촬영해 분석하거나, 그들이 개발한 방식으로 타자기 사용을 보름 만에 숙지하게 교육하는 등 일상 생활에 그들의 연구를 접목했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기억하는 부모는 유머러스하고 자상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네요. 어째서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가 열두 명 자식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프랭크 길브레스는 매번 가족들을 데리고 국립공원이나 영화관에 입장할 때, 혹은 기차나 차편을 타야 할 때면 항상 단체 할인을 받아냈다고 하네요. 나중에 프랭크는 아이들 중에 쌍둥이나 세쌍둥이가 없어서 섭섭해했답니다. 여러 명 아이들을 한 번에 낳아 한 번에 기르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나요? 뉴저지 몽클레어에 집을 한 채 마련해 두고, '과학적 관리법과 낭비의 동작을 없애는 학교'라고 이름붙인 집에서 길브레스 부부는 평생 자신들의 연구를 그 자신과 자기 자식들에게 적용했습니다. 나중에 셋째 어네스틴과 다섯째 프랭크 2세는 자기 가족들이 그 집에서 살았던 경험담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는데요. 이 책이 어찌나 유행했던지 속편에 영화, 뮤지컬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기억하는 프랭크 길브레스는 자상하고 유쾌한 가장이었던 모양이지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혁신주의 운동이 미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떨칠 때가 1900년대 초 일입니다. 최초의 경영 컨설턴트 프레데릭 테일러가 활발하게 강연, 저술 활동을 하며 자신의 소위 과학적 관리론을 설파하고 다닌 때도 이 즈음이죠. 1904년 결혼한 길브레스 부부가 어떻게 평생에 걸쳐 공동연구를 수행했는지는 잠시 미뤄 두고, 먼저 프랭크 길브레스에 대해 잠깐 조명을 해보겠습니다. 프랭크는 메인 주 페어필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아났습니다.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결과 MIT에 입학 허가를 획득하지만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하기를 선택했죠. 17세이던 그가 선택한 첫 직업은 벽돌공 수습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차 능력을 인정받아 현장감독으로 승진했고, 나중엔 아예 독립해 건축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이때 프랭크 나이가 34세였습니다. 사장이 된 프랭크가 집요하게 파고든 건, 바로 벽돌쌓기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수단으로 현장 연구를 실시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불필요한 작업 동작을 선별해내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동작 연구였죠. 프랭크는 자기 연구를 바탕으로 건설업계의 작업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여러 방안을 줄줄이 내놓았습니다. <현장 시스템(1901)>, <콘크리트 시스템(1908)>, <벽돌쌓기(1909)> 3부작 저서가 바로 그 방안이었죠. 운명적인 만남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1903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부유한 집안 여성이 미 동부로 여행을 옵니다. 그녀 응접을 맡은 안내원 미니 번커는 프랭크의 친척이었죠. 결국 미니 번커의 소개로 여성은 프랭크 길브레스와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 뒤 약 1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서로 마음이 맞음을 확인한 두 남녀는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 여성이 바로 프랭크의 영원한 반려, 릴리언 길브레스였죠. 릴리언의 아버지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으로 설탕 정제업으로 나름대로 부를 쌓은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약해 집안일에서 자주 릴리언의 도움을 받았죠. 릴리언은 학업 성적이 뛰어났는데, 부모는 대학 진학을 반대했습니다. 자기 딸이 형편 넉넉한 집 자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게 두 사람의 바람이었죠. 릴리언은 그런 부모를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너무 평범해서, 부자들은 아무도 저와 선뜻 결혼하려 하지 않을 거에요.' 설득이 먹힌 건지, 아니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건지, 릴리언은 소원대로 근처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은 주 시민은 누구든지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형 강의가 많아서 심지어 건물 밖에 텐트를 치고 진행하는 수업도 있었다고 하네요. 또 학교에 기숙사가 따로 없어서 릴리언은 매번 집에서 통학을 해야 했습니다. 전공은 영문학이었는데, 심리학 등에도 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릴리언은 대학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올려, 졸업식 연사로 연단에 올랐죠. 캘리포니아 대학에선 처음으로 여성이 졸업 연사를 맡은 사례였습니다. 1900년 릴리언은 콜롬비아 대학의 대학원에 지원하는데요. 본인은 영문학 전공을 희망했지만, 지도 교수 소개를 받아 찾아간 영문학 교수는 여학생을 제자로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그녀는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 진학하는데요. 도중에 건강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902년 모교인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돌아와 기어이 석사 학위를 마친 후, 릴리언은 바로 박사 과정을 지원합니다. 이때 지원한 전공은 영문학,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선택했죠. 이후 1903년 동부 여행 도중 소개받은 프랭크와 1904년 결혼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앞서 적은 그대로입니다. 결혼 이후 프랭크의 연구는 부부 공동의 연구가 되었습니다. 프랭크는 릴리언에게 산업심리학 분야를 공부해 보라고 권유하죠. 릴리언 역시 그 편이 프랭크의 일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 동의합니다. 결혼 당시 이미 프랭크는 길브레스 사Gilbreth inc.라는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두 사람이 꾸리는 가정 생활은 여러모로 독특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1. 그 집에선 항상 심부름거리가 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용돈이 추가로 필요한 아이들은 자신이 할 심부름거리를 골라 길브레스 부부에게만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입찰액을 적어 제시했는데요. 부부는 이중에 최저입찰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응찰해 심부름을 맡기고 용돈을 주었다네요. 2. 프랭크는 매번 조끼를 입을 때면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며 단추를 채웠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위에서 아래로 끼우면 7초가 허비되지만, 아래서부터 채워 올라가면 고작 3초밖에 안 걸린다나요? 3. 한번은 면도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면도솔 두 개로 거품을 낸 후, 면도칼 두 자루로 한꺼번에 면도를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걸 확인하려고 직접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당연히 면도칼에 목이 베여서 피가 났는데, 자녀들 증언에 따르면 프랭크는 베인 것 자체보다 그걸로 인해 목에 붕대를 감느라 2분이 오히려 허비된 것에 실망한 듯 보였다네요. 4. 평소에 프랭크는 가족 집합 신호로 휘파람을 정해 놓고 스톱워치까지 동원해서 신호 즉시 모든 가족이 무슨 일이 있어도 모이도록 훈련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전체가 모여야 할 일이 있거나 손님이 와서 가족을 소개시킬 때 등 여러 상황에서 휘파람 신호를 이용했다는데요. 어느날 이들 가족이 길가에서 낙엽을 태우던 중, 그만 불이 나무 벽에 옮겨 붙었다고 합니다. 프랭크가 즉시 휘파람을 불자, 불과 14초만에 온 가족이 밖으로 뛰쳐나왔죠. 불은 소방수에게 채 연락할 틈도 없이 꺼졌답니다. 5. 프랭크 길브레스가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성격이 아니었냐고요? 화장실에는 가족들이 매일 할 일과 공정표가 붙어 있었는데요. 이건 부부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각종 가사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연구한 결과였습니다. 아이들은 밤에 자기 전 체중을 달아 그래프에 적고, 숙제를 마무리하고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으면 또 도표에 표시를 했습니다. 이때 아내 릴리언 길브레스는 스케줄에 기도하는 것도 표시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요. 프랭크는 심사숙고 끝에 각자 자유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네요. 특이한 성격은 부부 양쪽 모두였던 모양입니다. 1924년 프랭크 길브레스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제 1회 국제경영컨퍼런스에 참석하려고 여행길에 오릅니다. 도중에 그는 무언가를 문득 떠올리고 근처 공중전화로 아내이자 파트너인 릴리언에게 전화하죠. '오는 도중에 가루비누 담는 동작을 생략할 좋은 생각이 났는데 어떻게 생각해?' 믿기지 않지만, 그게 프랭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되었습니다. 슬로바키아에 가기도 전에 프랭크 길브레스는 심장병으로 사망합니다. 홀로 남은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11명의 자녀와 집, 남편이 남긴 사업체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맡은 일이 남아 있었죠. 프랭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돌자, 심지어 그동안 길브레스 사와 거래해 온 업체들이 컨설팅 계약 중지를 통보했습니다.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두 선택지가 있었죠. 모든 일을 접고 고향에 가서 남편 잃은 미망인으로 평생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남편의 업무 파트너로서 그의 연구와 일을 이어갈 것인가. 릴리언 길브레스는 남편의 모든 것을 자신이 잇기로 결심했습니다. 산업 공학의 퍼스트 레이디는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