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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페퍼톤스🌸 BUT꽃 PICNIC FESTIVAL
주말에는 라이프플러스벚꽃피크닉페스티벌을 다녀 왔습니다. 꽃을 보러? 아니죠. 꽃보다 페퍼톤스 아니겠습니까. 페퍼톤스를 만나고 왔단 말이지요 헤헤 *_* 자. 거두절미하고 인사를 하는 페퍼톤스 이장원을 따라해 보시죠 "라이프 플러스 벚꽃 피크닉 페스티벌!" 두번은 쉽지만 세번은 발음하기 힘든 '라이프플러스벚꽃피크닉페스티벌'. 여의도 벚꽃 축제 현장의 한 복판에서 펼쳐 졌습니다. 무대에서 티켓부스까지 도보 15분 실화? 아무 생각 없이 무대쪽으로 갔다가 티켓부스까지 15분 걸어갔다 와야해서 공연 전 이미 왕복 30분을 걷고 앓아 누울 뻔... 덕분에 꽃구경은 제대로 했다 싶겠지만 이미 감기몸살 기운으로 헤롱대고 있었는걸요. 벚꽃이 정말이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만 아시잖아요. 꽃보다 페퍼톤스. 내 눈과 마음 속엔 페퍼톤스를 담을 공간만 두고 나갔기 때문에 벚꽃 사진은 요것만 담아옴... 눈에 벚꽃을 담을 겨를이 없었단 말입니다 헤헤. 그럼 본격적으로 후기를 시작해 볼까요오? 입장부터 넘나 사이 좋은 둘을 보세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 진짜. 뉴히피제너레이션으로 꿈처럼 시작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이로군요! 감기 몸살 기운이 으슬으슬 목구멍을 간지럽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펩톤을 보는 동안은 씻은 듯 나았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효과 좋은 감기약이 어디 있나요? 비타민이 진짜 따로 필요가 없네. 그러니까 영상에서 들리는 앓는 소리는 아파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물론 리허설 때는 따로 입장했습니다 (비밀) 이전 팀까지는 없던 연기 무대효과가 계속 해서 자욱하게 깔렸고,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페퍼톤스를 볼 때 항상 개안하는 경험을 하는데요, 이번엔 개안의 기적을 겪기도 전에 뿌려진 연기로 펩톤이 흐리게 보여서 좌절. 왜죠. 왜 나와 펩톤 사이를 가로막는거죠 연기따위가? 연기가 깔리니까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해서 '언니,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내 마음이 타고 있나 봐요!' 드립도 날려 보았습니다 헤헤. 속상한 기분은 드립으로 치유한다. 그리하여 첫곡은 '카우보이의 바다'. 올해 야외는 처음이니까 쬐끔 찍어 봤어요. 너무 짧은가 싶어 더해보는 미장원 오빠의 봄같은 사진.jpg 아이 고와라. 우째 이렇게 봄처럼 웃죠? 설레게... 어우 이 사진 진짜 스무번은 더 봤는데 자꾸 봐도 또 설레네요 ㅠㅠㅠ 그리하여 다음은 '긴 여행의 끝'. 언제나 설레는 노래지 않겠습니까. (이쯤되면 대체 뭐가 안 설레는 건지) 두곡을 마무리하고 그렇게 기다리던 멘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후후. 저는 펩톤이 노래하는거 보는 만큼 말하는거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가끔은 더 좋아함). 웃겨서 뒤지겄어 진짜 토크쇼 한번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물론 한번 해주면 또 소원이 생기겠죠 한번 더 해달라고... 아까 맨 처음에 보여드렸던 영상 속에서처럼 인사를 하고, 라이프플러스벚꽃피크닉페스티벌을 되뇌이고 난 후 쌀쌀해 지는 날씨에 여느때처럼 드립을 날려 줍니다. '페퍼톤스와 함께라면, 그 곳이 바로 여름이죠.' 암요. 함께라면 제 마음도 항상 용광로처럼 불 타 오릅니다 선생님! 페퍼톤스에게 언제나 고마운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THANK YOU'를 들려 주네요. 진짜 항상 너무 고맙다 정말 ㅜ.ㅜ 내 낙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ㅠㅠㅠㅠㅠ 봄날에 당연히 선곡될거라 생각했던 '스커트가 불어온다'를 흩날리는 꽃잎들 너머로 들으니 어찌나 행복하던지. 선생님 여기가 바로 천국인가요...? 두곡을 불렀더니 따뜻해 진 것 같다고 말을 하려다 갑자기 불어대는 강풍에 급히 사과를 하고(어디다?) 건강에 유의하라는 말을 덧붙여서 또 귀여워... 벚꽃이 생각보다 강인한 것은 이미 이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But)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굴하기 않고 꽃을 피워내는 거라는 아재개그를 날렸지만 그것 조차 귀엽잖아요 But꽃이라니... 이런 아재개그 이르케 귀엽게 하는 사람 어디서 봤어요? 난 못 봤어 이장원이 처음이야 부르다 보면 한번은 꼭 틀려서 신나서 꼭 찍게 되는 노래 Fast지만 요즘엔 틀리는 날이 드물어서 또 시무룩하게 하는 노래랍니다. 틀릴 때 짓는 표정이 진짜 귀엽거든요. 근데 이 날도 못 봤네 아쉬워... 이 다음은 역시나 봄에 꼭 맞는 노래 '청춘'이었는데요, 제가 또 눈에만 담았는지 찍지를 않았네요 그려. 그래서 청춘같은 신제품 오빠의 사진으로 대신 합니다. 아니 이 엄청난 노이즈 속에서도 우째 이리 소년미 넘치나요. 이 청량함이 39세에서 나올 수 있다니. 매번 감탄하고 갑니다. 콧물 가득 머금은 목소리까지 더해져서 소년미는 진짜 신재평이 최고야. 아 이 날은 추워서 콧물 훌찌럭대며 노래를 한지라 더 더 코맹맹이 목소리여서 너무 좋았더랬어요. 진짜 너무 좋아 그 목소리 ㅠㅠㅠㅠㅠㅠㅠㅠ 마지막은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 '행운을 빌어요' 항상 이 부분은 꼭 찍으려고 노력하거든요. 21세기의 어떤날에서 오늘 날짜를 외치는 부분과 행빌에서 '행운을 빌어요'라고 미장원오빠가 읊조리는 부분은 제 최애 파트. 라고 쓰고 보니 이 날은 21세기의 어떤날이 없었군요! 어쩐지 뭔가 아쉽더라. 같이 외쳐줘야 기운이 난단 말이에요. 그걸 외치려면 아직 한달 가까이 남았는데 어떻게 기다린담... 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 카드를 써 봤습니다. 여러분, (이장꾸오빠가 말했듯) '아름다운 봄이에요.' 아니 근데 진짜 뷰민라까지 어떻게 기다리죠...? ㅜ.ㅜ 덧) 이왕 찍은 것 올리는 게 안 올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괜히 두고 가보는 리허설 영상 몇개입니다. 헤헤. 영상이 마구 마구 흔들리는 건 제 마음에 지진이 났기 때문이에요. 펩톤이 내 마음을 흔들었으니ㄲ... 헿 리허설도 마냥 좋습니다 리허설도 마냥 좋습니다 2 리허설도 마냥 좋습니다 3
퀸은 영화 배우 뺨치게 잘생긴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볼 만한 게 없다
퀸이 초기 시절 어느 평론가에게 들은 말  '영화 배우 뺨치게 잘생긴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볼 만한 게 없다' 에서 영화 배우 뺨치게 잘생긴 드러머는 로저 테일러! 만화 캐릭터도 이렇게 만들면 사기라고 할 것 같은데... 얼굴만 존잘이 아니라 본업까지 핵존잘 작곡 드럼 기타 베이스 보컬 다 가능한 레알 먼치킨 Radio Ga Ga(레디오 가가)를 만든게 로저♡ 거기에다 치대생 출신이고, 나중에 적성에 안맞아서 식물학으로 전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성격은 존나쎄 그 자체인 로저 공연 전에 염색을 잘못 해서 머리가 녹색이 됐는데 프레디가 이걸로 내내 놀려먹어서 드럼 집어던짐ㅋㅋㅋㅋ 퀸 음악 악평한 롤링스톤지에 친필 쌍욕 편지도 보냄ㄷㄷㄷ 비행기 구토용 봉투에 편지를 써서 보내는 성질머리;; 기자가 콘서트 제대로 안보고 공연 전 음향체크만 듣고 후기 써서 씅질이 남! 씨익씨익;;; 180.3cm / 60.3kg의 슬랜더 프레디가 라이브때 키 낮춰서 노래해도 본인은 드럼치며 꿋꿋이 원키 고음 지른게 로저 예전에 고향에서 밴드를 했었는데 보컬이 나가고 보컬, 드럼을 동시에 맡은 경험이 있음ㅋㅋㅋㅋ 보컬도 제일 안정적인건 로저였다고 함 고음이 젤 높이 올라가는것도 로저! 로저 테일러에게 겸손함이란?| 전혀 없음ㅇㅇ (난 좀 짱이니까) 로저는 참지않긔. 우리 로저는 안 참고 찢어요 사기캐는 나이들어서도 존잘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지금은 카카오톡, 과거에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DM, 페이스북 메신저 등을 우리는 의사소통의 채널로 많이 사용하고 있죠! 과거에도 이와 같은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다양한 메신저들이 존재했습니다 지금부터 메신저의 변천사를 하나하나 살펴보시죠! 1. MSN - 1999년도 9월에 처음 등장한 Microsoft 사의 MSN은 주로 대학생과 회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2004년 국내 이용자 수가 700만 명에 달할정도로 큰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본인 인증 제도가 없었기에 아이디를 한번 까먹으면 찾을 수가 없었다네요,,,ㄷ (이건 제가 태어나고 한창 한글을 배울 때라 잘 모르는 메신저네요,,,,;;;ㅎㅎ) 2. 지니 - 1999년 11월 MSN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던 지니 메신저는 고객층이 10대였습니다. 쪽지로 간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파일 전송 기능이 있어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참, 2002년 3월 지니의 하루 접속자 수는 110만명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3. 세이클럽 -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아바타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이클럽은 10~20대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메신저 기능 이외에 동호회, 인터넷 방송 서비스 등 놀거리가 연동돼 40-50대 사이의 연령층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실제로 2004년에는 동호회 수가 50만개를 넘겼다고 하네요! 4. 버디버디 - 여기서부터는 제가 아는 메신저네요,,,호우~~~ 등 많은 분들의 흑역사를 가지고 있는 버디버디, 메신저에서 이모티콘 등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기에 10~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젊은 층들에서 인기를 끌었다보니 유저가 사용하는 닉네임이 참 독특했죠. 가령 Σ딸㉠|겅듀™ 등 (저는 Zㅣ존**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크흠) 처음에는 접속이 힘들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2011년부터 금격히 쇠퇴하면서 접속이 굉장히 원활해졌다고 하네요.. 5. 네이트온 - 혹시 아실까요? 싸이월드라고,,, 싸이월드는 홈피를 꾸미고, 방명록과 일촌평 등을 남기고 그개수가 곧 인기의 척도가 되었던,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그런 사이트입니다. 그런 사이트와 연동이 가능했던 네이트온은 2002년 말에 등장해 2005년 MSN을 꺾고 메신저 1위를 등극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생일알람, 선물조르기, 원격제어 등 다양한 기능이 있었기에 직장에서도 많이 사용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 자, 이 시기가 지나고 2009년을 시작으로 갤럭시 S1, 아이폰 등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을 원활하게 컴퓨터 없이 내 손에서 다룰 수 있게 만들어준 스마트폰은 메신저계에도 엄청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6. 카카오톡 - 2010년 3월 처음 출범한 카카오톡은 피처폰 시대의 막을 내리게 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실시간으로 채팅이 가능했으며, 그룹 채팅, 음성메시지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고객들의 피드백을 매우 빠르게 반영하였기에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에는 더 많은 기능이 생기고 전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7.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 페이스북 메신저 - 이후 싸이월드와 같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Social Network Service가 등장하였고 이와 함께 다른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한 메신저들이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맺음말 이 모든 과정이 약 20년만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겪으면서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보니 시간이 엄청 빠르다고 느껴지네요 ... 허허허헣 앞으로 또 어떤 다양한 메신저들이 등장하고 세상 바뀔지 기대가 됩니다! 그 환경에 잘 맞춰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 되겠네요!!
모델 뺨 때리는 페스티벌 요정들
안녕, 빙글러들~? 하루에 두 번은 좀 부담스럽지^^? ㅎㅎ미안,, 그래두 니들 나 막 싫어하구 그러면 넘 서운해ㅠ 울어보릴꼬야ㅠ 출처 - giphy (https://giphy.com/) 5월은 모오다아~? 😆😆😆😆😆😆😆😆😆😆 "페스티벌의 계절"인 거 다 알구 있지? 모두 소리 벗구 팬티 질뤄어~~~~!~!~!~!~!~>< 산산한 바람이 부는 5월의 어느 날,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던 거 알랑가 몰라ㅎㅎㅎ 특히, 이번 SZF는 로린 힐 언냐가 와서 더욱!! 화제가 되었었다궁~ㅎ^-^ 출처 - giphy (https://giphy.com/) 하이? ㅋ 나 로린 힐. 오늘은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만난 페스티벌룩!! 짱짱한 라인업과 함께 따뜻한 날씨 속에서 진행된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사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ㅎ 언냐들이 많았어>< (아! 요정이 여자 요정들만 있는 게 아닌 건 알쥐~?) 그럼 같이 한번 확인스~해볼과~ㅎ 어때 어때? 당장 예쁘게 차려입고 페스티벌을 즐기고 싶지 않아????????? 우웅,,,왜냐묜,,,사실,,,나는 여기 못ㅠ,,,갔고둔,,, 흐엉어어엉어엉어어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흐어엉어어어엉 다들 "서울 재즈 페스티벌 룩" 확인하구 나 대신 예쁘고 멋지게 페스티벌 즐기기 바랄게^.^ - 더 많은 페스티벌 룩은 요기서스 확인스↓ ▶ [FESTIVAL] 2018 페스티벌 룩 with 브라바도 (@서울 재즈 페스티벌) - https://bit.ly/2H8dIdF
전 세계 15억을 흔든 레전드 록 페스티벌,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당시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의 모습 (출처: 리치몬드 타임즈) 1985년 7월 13일 낮 12시, 단어 그대로 하늘색을 띠는 하늘과 빛나는 태양 아래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는 록 음악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세기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시각,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경기장에서도 라이브 에이드 중계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는데요. 33년 전, 뜨거운 여름의 중턱에 아프리카 구호 기금 모금을 위해 수많은 관중과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전 세계로 중계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방송계에서도 혁신적인 사례로 회자되곤 합니다. 무려 147개국 15억 명이 TV로 이 공연을 시청했습니다. 이로 인해 약 700만 장의 음반이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라이브 에이드 당시 라인업이 적힌 홍보 포스터. 기타와 아프리카 지도를 활용한 콤비네이션 로고가 눈에 띈다.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공연이었던 만큼 유럽에서는 BBC, 미국에서는 ABC, MTV 등이 중계했는데요. 공연 중간중간 방송에서는 여러 인터뷰와 토크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1985년 7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라이브 에이드 기사 (출처: 동아일보) 우리나라에서도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TV로 볼 수 있었는데요. 7월 14일 밤 9시 30분, MBC가 '세계는 한가족'이라는 프로그램명으로 방송했습니다. 공연이 이루어진 13일 인공위성을 통해 실황을 중계받아 14일 방송 시간까지 밤새 편성국, 제작국, 기술국 직원 약 20명이 밤새 제작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야근공화국의 역사는 이때부터 일까요...?)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관람하는 다이애나 왕비, 찰스왕자의 모습.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라이브 에이드의 기획자인 밥 겔로프 라이브 에이드의 기획은 에티오피아의 기근이라는 국제적 이슈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1974년도부터 기근이 극심해져 1980년대 초반까지만 수십만 명이 굶어죽었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성사되기 1년 전인 1984년부터 1985년 사이에는 에티오피아의 가뭄이 더욱 심화되어 2년 동안 60여만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984년 심각한 기근으로 인해 구호 현장에 나와있는 에티오피아인의 모습 (출처: BBC) 이러한 사태가 지속되자 심각성을 느낀 세계 각국에서는 가뭄에 따른 기근 문제를 돕기 위해 원조를 하거나, 구호 활동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극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고심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사회 운동가인 밥 겔도프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기아와 난민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범세계적인 자선공연을 기획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기획자로서 공헌을 인정 받아 1986년 명예 대영 제국 훈장 2등급을 얻었습니다. 이 공연으로 '음악계의 성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라이브 에이드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쥔 데이빗 보위와 밥 겔로프, 사이에 있는 인물들은 폴 매카트니와 린다 매카트니, 조지 마이클, 피트 타운센드 밥 겔로프는 당시 라이브 에이드를 통해 1 백만 파운드 모금을 희망했으나 실제로는 1백만 파운드의 100배가 넘는 1 억 5 천만 파운드를 모았습니다. (현재 물가로 치면 6400억원에 해당하는 모금액!) 그 중 절반은 식량과 장기간의 개발에 지출되었다고 하니 국제사회의 문제를 문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선순환이 무엇인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라이브 에이드 공연 프로그램 북 표지 공연은 범지구적 주크박스 콘셉트로 모든 가수들이 약 20분 정도의 공연시간을 받았습니다. 웸블리의 약 7만 2000명과 JFK의 약 9만명의 관중들은 16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그들의 무대를 즐기며 열렬한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관람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진정한 리스너의 표본은 바로 라·에(라이브 에이드)의 관중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85년도로 백 투 더 퓨처하게 해주세요...) 미국 필라델피아 존 F. 케네디 스타디움에 운집한 관중 첫 순서로 콜드스트림 근위대의 God Save the Queen 연주로 시작된 라이브 에이드는 스팅, U2, 퀸, 데이빗 보위, 엘튼 존 등의 무대로 이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다시 한 번 신드롬을 일으킨 퀸(Queen)은 당시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사심을 가득 담아 사랑해요, 프레디 머큐리!) https://youtu.be/A22oy8dFjqc 약 24분 간 뜨거운 열기가 이어진 퀸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무대 실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굿즈로 판매되었던 T-셔츠 라이브 에이드 T셔츠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안경 쓴 소년은 인디 밴드 중심의 음악 잡지, 마그넷의(Magnet Magazine) 편집장 에릭 밀러 (출처: 마그넷 매거진) 한편, 미국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마지막 피날레로는 모든 뮤지션들이 올라와 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를 불렀습니다. 16시간만에 화려한 끝을 '전 세계인 모두 함께' 장식한 것입니다. ▲ 당시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티나 터너, 라이오넬 리치, 신디 로퍼 등 45명의 미국 팝 가수들이 참여했던 'We are the world' 앨범의 재킷 사진 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 뮤직비디오 메이킹 장면. 왼쪽부터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 허스키한 보이스의 싱어송 라이터 킴 칸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영화 드림걸즈에서 비욘세가 연기했던 인물인 다이애나 로스 USA for AFRICA 팀의 멤버로는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퀸시 존스, 조니 미첼 등이 있습니다. 오로지 에티오피아 난민을 돕기 위해 프로젝트에 합류한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여 아프리카 난민을 위한 노래를 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라이브 에이드 캠페인이 'We are the world'라는 명곡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들의 수익금은 모두 아프리카 결식아동을 위한 자선기금으로 보내졌습니다. https://youtu.be/M9BNoNFKCBI Team USA for AFRICA가 부르는 'We are the world'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록 페스티벌, 에티오피아 기아 및 난민 구호 기금 모금을 위한 자선행사, 전 세계의 15억명 이상의 시청자가 시청한 실시간 위성 중계 TV 방송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진 채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라이브 에이드. 1985년 7월 14일, MBC는 라이브 에이드를 3시간 분량으로 편집하여 <세계는 한가족>이라는 프로그램명으로 방영했다. MBC의 라이브 에이드 재방영 홍보 포스터 (출처: MBC 인스타그램) MBC는 12월 2일 밤, 100분 동안 1985년 당시의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새롭게 편집하여 방송했는데요. 이후 콘서트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자막 삭제, 화질 보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지상 최대의 공연인 라이브 에이드가 펼쳐졌던 1985년의 감동을 그대로 재현하여 많은 록 덕후들의 눈물샘을 건드렸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글쓴이인 건 비밀) 라이브 에이드의 피날레 무대. 조지 마이클, 밥 겔도프, 보노, 프레디 머큐리, 앤드류 리즐리, 하워드 존스 등의 모습 2014년에는 영국문화원이 발표한 '지난 80년간 세상을 형성한 가장 중요한 사건 80가지'에 선정되며 그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지금 당장 영상을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면, 글 읽는 내내 록뽕이 차올랐다면, 오늘 밤 라이브 에이드로 달려봅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실화(퀸)에 대한 이야기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영국 락밴드 '퀸' 특히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이야기 프레디 머큐리 합류 직전, 스마일의 초기 멤버였다가 스마일을 나갔던 '팀 스테필 (맨 오른쪽)'은 합류했던 밴드 '험피 봉' 해체 후 디자인 쪽에서 일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토마스와 친구들'이라고(!!) 70세인 현재도 음악 활동 중이다 퀸의 로고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프레디 머큐리가 디자인 했다 (첫번째)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A Night at the Opera 앨범의 자켓도 프레디가 만들었다고. (두번째) 무대 의상들도 직접 디자인 한 게 많았다고 함 퀸은 멤버 전원이 학사 학위를 가진 밴드이다 브라이언 메이는 2007년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땄으며, 후에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의 총장이 되기도 했다 존 디콘은 퀸 2집까지 중학교 교사였다 프레디는 영화처럼 냥집사인데, 키우는 고양이들은 대부분 길냥이들이었다고. 길냥이들에게 안락한 환경 마련해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새긴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줬었다고. 그중 '딜라일라'라는 고양이를 위해 노래 "Delilah"를 쓰기도 했다 프레디 : (((내 고양이))) 고양이 : “이 앨범을 나의 고양이 제리에게 바친다. 톰과 오스카, 티파니에게도. 그리고 세상에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은 다 꺼져라.” < 딜라일라 > - 1985년 앨범 <Mr. Bad Guy> 감사의 말 중에서 (출처 : http://www.petzzi.com/bbs/board.php?bo_table=ency_culture&wr_id=374 ) '프레디'라는 이름은 학창시절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칭이라고 한다 작곡할 때는 떠올랐던 멜로디가 머리속에 안 남으면 선율이 허접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고 한다. 주로 피아노로 작곡을 하고 기타 코드는 3개밖에 연주하지 못한다고 말해왔지만 목욕하다가 떠올라서 기타로 뚝딱 만든 노래 =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보헤미안 랩소디'의 코러스는 무려 180번을 오버더빙(녹음한 것 위에 또 녹음) 했고, 마지막에는 테이프의 산화철 부분이 거의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에 10~12시간씩 녹음한 결과였다고. 곡의 다양한 부분들은 면도칼로 잘라 합친 것이라고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기타소리와 드럼소리는 실제 퀸의 멤버이자 영화의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한 브라이언, 로저가 연주한 것이라고 둘은 현재도 퀸으로 활동 중 퀸의 기타 음색은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것으로 유명한데 브라이언의 기타가 10대 시절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50년 넘도록 사용 중이며, 100년 된 벽난로의 목재, 자전거 스프링 등을 사용했다. 퀸은 초기 시절 어느 평론가에게  '영화 배우 뺨치게 잘생긴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볼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로저 테일러는 'The Reactions'라는 밴드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했는데 보컬 멤버가 탈퇴하여 직접 보컬을 하기도 했었다. 고향에서 공연했을 때 입장료를 받아도 관객이 2~300명 수준이었다고 함 프레디는 학창 시절 밴드를 했었는데 그때는 보컬이 아닌 키보드 연주자였다 이후 60년대에 아마추어 밴드 '아이벡스'에서 리드 보컬로 활동. 영화 속 프레디의 노래하는 음성은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과 마크 마텔의 목소리를 사용했다고. (마크 마텔 = 프레디와 목소리가 매우 비슷해서 화제가 된 퀸의 공식 트리뷰트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는 캐나다 가수) 프레디를 연기한 라미 말렉은 메리를 연기한 루시 보인턴과 데이트 중이라고 함! 존잘존예가 만났네 라미 말렉은 안무가 뿐만 아니라 무브먼트 코치의 도움을 받았는데 덕분에 프레디의 작은 행동, 습관, 시선, 마이크를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를 파고들었다고 함 영화 속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길다고 한 음반사 관계자에게 캐릭터들이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을 언급한 이유 : 그 음반 6분 넘는 곡만 3곡이라서. 게다가 가장 긴 곡은 7분 50초 퀸과 마이클 잭슨은 만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작업도 함께 했다. 2014년에 마이클 잭슨과의 듀엣곡이 발표되었다. (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 ) 1984년에 퀸이 내한할 뻔한 적이 있었다. 적당한 공연장도 못찾은데다 금지곡이 많아서 실패했다고 공연은 안 했지만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내한했었다. 이후 2014년에 내한공연을 했다 프레디만의 관객 소통 방법인 '에~오'는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 전광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존 디콘은 프레디가 없으면 퀸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는 듯. 실제로 1997년 은퇴하였다 브라이언 메이는 투병 중이던 프레디를 보러 가던 때,  300야드 (274m)를 남겨두고 '올 필요 없다. 사망했다'는 부고 전화를 받았다 프레디의 어머니 제르 불사라는 2016년에 94세로 별세하였다. 당시 브라이언 메이는 공식 활동을 중지하고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프레디의 어머니와 알고 지낸 시간만 50년이 넘었고 어머님은 프레디처럼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아버지가 가수의 길을 반대할 때에도 아들을 응원했고 마지막까지 모든 활동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모든 활동에 프레디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대단히 기뻐했다'는 내용 (출처 : https://whitequeen.tistory.com/2148) 프레디는 투병하던 때 불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병이 악화될수록 일을 더 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브라이언 메이 : 프레디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고 전혀 불평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저녁에 다 같이 나갔는데 다리가 많이 안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보고 있는 걸 알고는 "브라이언, 어떤지 한 번 볼래?" 그러고는 보여줬어요. 그리고 제 표정에 대해 오히려 프레디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네가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라고 말하면서요. -  프레디가 말했어요. "곡을 만들어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 가사도 계속 써줘. 계속 일을 줘.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싶어." "나중엔 너희들이 알아서 하면 돼. 나중에 완성하면 돼." - "프레디 머큐리, 인생을 사랑한 사람. 노래를 부른 사람." 저에게는 그게 프레디였어요.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살았어요. 그 나머지도 모두 포함해서요. ] ( 출처 : https://blog.naver.com/kngjoo/120152157305 ) 프레디의 생전 마지막 퀸 정규 앨범인 Innuendo는 프레디가 언제쯤 스튜디오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멤버들에게 연락하면 나머지 세 멤버들이 데모 버전을 미리 만들어 놓고, 프레디는 컨디션이 좋을 때 스튜디오에 와서 보컬을 녹음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생전 마지막 싱글인 <The Show Must Go On>는 음이 높아서 브라이언 메이는 프레디가 이 곡을 부를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하는데, 프레디는 "I'll fuckin' do it, darling('씨X, 하지 뭐' 정도의 뉘앙스.)"이라고 내뱉은 후,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한 보드카를 쭉 들이키더니 삑사리 없이 한 큐에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 출처 : https://namu.wiki/w/%ED%94%84%EB%A0%88%EB%94%94%20%EB%A8%B8%ED%81%90%EB%A6%AC ) Q. 퀸 음악 모르는데 랩소디 보러 가도 되나요? 쿵쿵(짝) 쿵쿵(짝) 위윌위윌뢐유~!!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