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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습제 활용팁 >

♥더 많은 건강한 정보를 보시려면..
영양제, 건강식품을 비롯해 김, 다시마 건조식품 등을 뜯으면
‘먹지마세요(Do Not Eat)' 경고문구가 적힌 방습제가 들어있다.
무색무취의 구슬 알갱이로 이뤄진 일명 '실리카젤'이라고 하는데,
물이나 냄새 등을 흡수하여 식품에 수분이 생겨
내용물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해당제품을 다 쓴 뒤 혹은 뜯자마자
이 실리카젤 방습제는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일쑤다.
그런데 실리카젤 방습제가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제품을 뜯고 이 방습제를 발견했다면 버리지 말고 모아뒀다
지혜롭게 사용해보자.
영국 인디펜던트가 생활 속 실리카젤 활용 10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1. 휴대폰이 물에 젖었을 때
휴대폰을 물에 빠뜨렸다면 여간 골치가 아닐 수 없다.
빨리 휴대폰을 꺼내 마른 수건으로 닦은 다음,
모아둔 여러 실리카젤 방습제를 통에 채우고 휴대폰을 그 속에 넣어둔다.
실리카젤이 휴대폰 속 물기를 빠르게 흡수해 위기를 면할 수 있다.
쌀에다 넣어 두는 것도 젖은 휴대폰 물기를 빼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실리카젤의 흡수력이 쌀보다 10배는 더 효과적이다.
2. 파우치 안 화장품을 뽀송하게
컨실러, 파우더, 아이샤도우 등 화장품 상태를 뽀송뽀송 유지하고 싶다면,
파우치 안에 실리카젤 2-3개를 넣고 다녀보자.
습기로 인해 눅눅해지는 것을 막아 화장품 수명까지 늘릴 수 있다.
3. 우산 말릴 때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닌 후
물기 많은 우산을 어떻게 보관해야할지 고민일 때가 많다.
우산을 펴둔 채로 물기가 없어질 때 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때라면? 물기를 한번 털고 난 우산을 접고,
우산 섬유 위에 실리카젤을 몇 개 놓으면 남은 물기를 빨리 없앨 수 있다.
4. 신발의 발 냄새도 싹~
발의 땀으로 인해 냄새까지 지독해진 신발!
습기와 발 냄새로부터 신발을 구제하는데도 실리카젤을 활용할 수 있다.
하루 밤사이 신발에 실리카젤을 각각 몇 개씩 넣어둬 보자.
다음날 신발을 신을 때 보다 뽀송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5. 은수저를 더욱 빛나게
은수저 등의 은으로 된 식기류가 광택을 잃거나
변색되는 것을 막는데도 실리카젤을 이용할 수 있다.
은식기류가 보관된 서랍장에 실리카젤을 함께 넣어두면
반짝반짝 광택을 유지할 수 있다.
6. 자주 쓰는 수건, 늘 축축 눅눅하다면
목욕 수건이나 손 닦는 수건은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금방 축축해지기 쉽다. 몇 번 사용하고 나면 물 냄새가 나기도 한다.
수건을 개어 보관할 때 실리카젤을 수건 사이로 하나씩 넣어두면
사용 시 뽀송한 느낌을 오래 유지하고 금방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7. 땀으로 범벅 운동복 보관할 때
헬스장에 다니면 트레이닝복이 한 벌씩 있기 마련.
늘 빨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나 땀 냄새만 제거해
몇 번 더 입어도 될 것 같을 때가 있다.
트레이닝복 가방에 실리카젤을 항상 넣고 다녀보자.
트레이닝복 섬유의 수분과 냄새를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8. 수영복 말릴 때
트레이닝복 보관법과 마찬가지로
수영복의 물기와 습기를 잘 말리고 싶을 때도 실리카젤을 놓아두면
습기 제거와 함께 수영복 방수기능을 더 극대화 시킬 수 있다.
9. 앨범 속 사진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디지털 사진의 일상화로 사진을 보관할 때
USB, 내장하드,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이 대세라지만,
소중한 순간이 찍힌 사진들은 인화해서 앨범으로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을 빛바래지 않게 오래 보관하려면
앨범에 실리카젤을 페이지 곳곳에 끼어놓자.
습기로 인해 사진이 변질되는 것을 천천히 막아준다.
10. 귀금속 오래 보관할 때
아끼는 크고 작은 귀금속들,
반짝반짝 광이 나게 오래 보관하고 싶다면
귀금속 상자에 실리카젤 한 두 개 넣어볼 것을 권한다.
녹스는 것을 방지해준다.
♥더 많은 건강한 정보를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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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박정희(오까모또 미노루)] 1917년 경북 선산출생. 1925년 구미보통학교 입학. 1932년 대구사범입학. 이 해에 일본제국의 괴뢰정권 만주국수립. 1935년 5월 만주수학여행. 일본제국 지배 때 만주견문. 같은 해 김호남과 결혼. 1937년 대구사범 졸업 후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부임. 같은 해 큰 딸인 박재옥 출생. 1939년 교직을 떠남. 1940년 만주신경군관학교 입학(혈서지원으로 특혜 입학 허용). 1942년 만주군관학교에 일제에 대한 충성을 인정받고 일본육사 3년 편입. 1944년 일본육사 졸업 후 만주군 보병 제8단 배속, 중국항일군토벌종사. 1945년 일제패망, 만군이탈, 북경에서 조선인 광복군에 편승, 이 당시부터 친일행적 은폐. ⊙1947년 소위에서 대위로 승진 사관학교 중대장 근무. ⊙1948년 소령진급.10월 여순반란사건 발발,11월 남로당간부사실이 발각되었으나 수사협조(밀고)로 처형모면하고 석방. ⊙그 후 6.25전쟁 전까지 육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보도연맹원 처리안 기획. 이 사실은 미국정보공개에 의한 문서조사에서 드러났다. 월간 ‘말’2001년 5월호에 실린 이도영의 ‘제주도민 예비검속은 이승만 피신을 위한 정지작업’이란 글을 보면 박정희와 김종필은 전쟁 후에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의 주역으로 그 육군본부정보국 작전 과장이었다. 이 사실은 피살자 유족이기도한 제주도 교사인 이도영의 미국에서 공개된 문서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1950년 박정희 소령지위 회복. 중령진급.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결혼.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준장으로 진급. ⊙1957년 제7사단장. ⊙1958년 소장진급. ⊙1960년 부산군수기지사령관. 2군 부사령관. ⊙1960년 4-19혁명으로 전쟁전후의 민간인학살과 친일파죄과에 대한 조사 성토로 불안을 느낀 박정희 등 친일파의 반혁명 음모가 싹틈. ⊙1961년 군사반란인 5-16 쿠데타를 일으킴. 박정희 가계도 가계(家系) 증조부: 박이찬 조부: 박영규(1840년~ 1914년, 호는 일부당(一斧當)) 조모: 성산 이씨(星山 李氏) 숙부: 박용빈 숙부: 박일빈 부: 박성빈(1871년 ~ 1938년) 모: 백남의(1872년 ~ 1949년) 형: 박동희(1895년 ~ 1967년) 조카: 박재홍, 박재선 형: 박무희(1898년 ~ 1960년) 조카: 박재석(1922년 ~ ), 박재호 누나: 박귀희(1902년 ~ 1974년) 의 아들, 은봉남과 은희만 조카: 은봉남(첫째1918년 ~ 1994년), 은희만(둘째,은지원의 부친)약력:단국대,연세대대학원,한국전력지점장,국무총리비서관,청와대, 보광개발(주)회장,현자영업. 형: 박상희(1906년 ~ 1946년) 조카: 박준홍, 박영옥, 박계옥, 박금자, 박설자 형: 박한생(박한희, 1910년 ~ 1928년)[287] 누나: 박재희(1913년 ~ 1996년) 첫 번째 아내: 김호남(1920년 ~ 1990년, 1950년 11월에 박정희와 이혼) 딸: 박재옥(1937년 ~ ) 본처 몰래, 박정희,이현란과(1948년) 약혼 (이현란과~ 3년간 동거)그후 본처와 이혼. 세 번째 아내: 육영수(1925년 ~ 1974년, 1950년 12월에 박정희와 결혼) 딸: 박근혜(1952년 ~ ) 딸: 박서영(1954년 ~ )근령에서 서영으로 개명. 아들: 박지만(1958년 ~ ) 손자: 박세현(2005년 ~ ) 첫 결혼 후 협의 이혼... 한국전쟁 중 육영수 만나 재혼 박정희는 대구사범 4학년 때인 1935년 여름 부친의 강권으로 억지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대구사범 교칙에 재학생은 결혼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비밀결혼을 한 셈이죠. 상대는 선산군 도개면에 사는 김호남(金浩南, 1920~1990)으로 그보다 세 살 아래였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 후 여름방학이 돼 귀국해서도 처자가 있는 고향집 대신에 교사 시절에 머물렀던 문경 하숙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50년 11월 협의 이혼하였는데, 그 사이에 딸을 하나 두었습니다. 박재옥(朴在玉)이 그 주인공인데, 박재옥의 남편 한병기(韓丙基)씨는 3공 시절 민주공화당 국회의원과 UN대사 등을 지내며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박정희가 두 번째 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만난 것은 한국전쟁 중이었습니다. 1950년 8월 하순 피난지 부산에서 송재천(宋在千) 소위의 소개로 맞선을 보았는데, 4개월 뒤인 그해 12월 대구 계산성당에서 허억 당시 대구시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박정희-육영수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일화가 몇 가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선 육 여사 부친의 불참으로 박정희의 대구사범 스승이 대신 신부를 인도했습니다. 또 주례가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은…"이라며 신랑신부의 이름을 바꿔 불러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으며, 또 신부의 예물반지를 갖고 있던 송재천이 이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김재춘이 급히 나가서 새로 하나 사오기도 했습니다. 박-육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근혜, 근영, 지만 등 2녀1남을 두었습니다.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 여대생과 동거 한편 박정희는 육영수와 결혼하기 직전에 한 여대생과 동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산 루시여고 출신으로 당시 이화여대 1학년이던 이현란(당시 24세)이 그 주인공인데, 이현란은 이국적인 외모에다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해 박정희 눈에 든 모양입니다. 이들 두 사람은 1948년부터 1950년 초까지 약 3년가량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데요, 1947년 12월 경리장교였던 박경원(朴璟遠, 작고)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육군 대위로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현란과 약혼한 후 곧 이현란을 용산 관사로 데리고 와서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여순사건에 연루돼 감옥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으며, 이후 이현란이 수차례의 가출과 방황을 해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습니다. 박정희와 동거녀 이현란에 대해 그간 알려진 내용은 이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펌) 스압) 7년간의 탈모 극복기
빙글에도 탈모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예전에 저장해뒀던 글 가져와 봅니다. 물론 저는 풍성충이고 부모님도 다 풍성풍성이시지만 앞날 모를 일이니까...ㅎ - 이번 글은 2013년 1차 모발이식 후 7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머리를 유지했고,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앞으로 그러면 안되겠지만 탈모를 걸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일단, 제 머리는 할아버지-아부지-나 유전적으로 탈모집안 입니다. 그리고 태생에 M자 머리, 정수리탈모에 이마도 넓고, 머리도 가늘한 최악의 조건을 가진 머리라고 자부함.. 그래서 올린 머리가 안됨, 무조건 머리를 내려서 관리해야함. 일단 사진은 모발이식 전부터, 지금 까지 사진 올릴수 있는 용량이 정해져 있으니, 최대한 올릴 수 있을만큼만 올리겠습니다. 년도 별로 전/후 사진을 많이 올릴테니 사진용량 제한이 있으니 최대한 간추려서 올릴께 수술 정보) 2014년 4월 1차 수술 - 압구정 절개 5200모 470만 2016년 7월 2차수술 - 부산 절개 1900모 360만 2019년 9월 3차수술 - 부산 비절갤 900모 200만 먹는약 - 프로스카 1/4 등분, 비오틴, 엘시스테인 샴푸 - 닥터 포헤어 폴리겐 샴푸 (2013년 4월 1차 수술 직전) 이 당시 나이는 29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집은 부산이였음. 5년전 군전역후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모발이 자라지 않는것을 알게 되었고,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으며 학교생활에 취직을 위한 취업준비 이런것들로 항상 머리는 등한시하고 있었습니다. 막상 취업이 되서 회사생활을 해보니 탈모가 마음의 병이라고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  대인관계 모든걸 내려놓게 되더라구요. 발모제인 프로페시아나 마이녹실 같은 약은 복용한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던 상태였습니다. 그때 당시 헤어스타일은 오른쪽 구렛나루를 길게길러 왼쪽으로 넘겨 스프레이 고정하는식 이해가 안되신다면 사진 참조해주세요  (2대8가르마?)  항상 미용실갈때도 뒷머리랑 왼쪽 구렛나루만 짤라달라 ㅎ 어느순간 머리를 보니 오른쪽 구렛나루는 엄청나게 길더라구요. 대다수의 탈모인 사람들이 보통 나처럼 머리를 기르는게 국룰이였죠. 완벽한 M자 + O자 모습입니다 <1차 수술 후> <2013년 10월 1차 수술 6개월 후> <1차수술 후 1년 후> 어느정도 이제 인간이 되었지만 , 2차 수술을 다짐하는 계기가 생겼는데.. 바로 앞머리에 대한 집착.. 위에도 설명했지만은 난 이마가 넓고 그래서 머리를 무조건 내리고 싶었음.. 그래서 2차 수술을 하기 위해 다시 모발이식 센터에 방문함 당시 2014년 12월 2014년 4월 1차 수술 - 압구정 절개 5200모를 심으면서 정수리에 거의 몰빵을 해서 M자를 메꿀 수가 없었음 그래서 취직을 다시 하고 돈을 열심히 모음.. <2015년 6월 2차 수술> O + M 탈모라 1차 수술땐 정수리 위주로 이식한다고 가진 모수의 범위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M자는 듬성듬성 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2차 수술은 M자에만 수술 하기로 하고 1870모를 이식하였습니다. 헤어라인을 내리지 않고 위의 사진처럼 듬성듬성 된 부위를 메꾸는 방향으로 하여 수술 하기로 하고 1800모 가량이면 충분했습니다. 만약 라인을 내린다면 3000~4000모가 되는 대량이식 수술이 되었겠죠. 금전적인 부분과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인해 M자 라인만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다시 찾아온 암흑기.. 모발이식을 하면서 가장 힘든시기입니다. 기존모와 심은모가 같이 동반 탈락하여 더 탈모처럼 보이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끝날줄만 알았던 2차 모발이식도 결국 아쉽게 느껴지더라구요 머리를 내렸을떄 양옆이 갈라지는게 너무나 보기가 싫어서.. 나름 완벽해지고 싶었음... 다른사람들은 정상처럼 보인다고 하였지만, 탈모인사람들은 앞머리에 대한 로망? 이런게 있으니까.. 그래서, 2차수술 후 4년이 지나고 나서, 3차수술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3차 수술은 비절개로.. 절개로 수술했던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니 대량이식이 아니고 600~800모낭을 권하시더라구요.. 처음에 비절개가 비싸다는 인식때문에 이번에도 절개수술을 생각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후두부 상태 확인 후 비절개를 권유 하셨고 전 절개수술때 여기서 했기 때문에 15% 할인, 절개수술로 하게되면 기본 절개수술비용이 있지만 비절개는 모낭수로 계산되기때문에 비절개가 더 싸다고 하셧습니다~ <3차수술 2019년 9월> 그렇게 암흑기를 버티고.. < 수술 후 7개월 뒤  2020.04> 전부다 자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 선풍기로만 말린, 자연스러운 상태임. (이 사진은 머리말린후 앞머리를 일자로 빗질했을때) ------ 마치며.. 수술 정보) 2014년 4월 1차 수술 - 압구정 절개 5200모 470만 2016년 7월 2차수술 - 부산 절개 1900모 360만 2019년 9월 3차수술 - 부산 비절개 900모 200만 먹는약 - 프로스카 1/4 등분, 비오틴, 엘시스테인 샴푸 - 닥터 포헤어 폴리겐 샴푸 술은 전혀 안마시고, 흡연은 하루에 한갑핌. 무슨 일이 있어도 잠들기 전에 머리 꼭감고 완벽하게 말리고 잠 담배는 펴도 전혀 이상없었습니다. 3번 수술 전부 모낭분리 후 쉴때도 흡연했음 내가 이글을 적는 궁극적인 이유.. 요새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탈모라고 검색하면 정보글, 관리법, 탈모펌 이런거 되게 많잖아.. 그거 보고 맞는것도 있고, 그사람들은 나처럼 절박하게 7년이라는 시간동안 투자를 했으며, 나처럼 수술도 3번이나 했나? 경험담으로 말하는건가? 아니면 어디서 검색질로 주워들은 걸로 정보글이라고 적는걸까.. 난 탈모엿던 사람이엿고 ,,그것도 악질이였던 유전+M자+O자+머리 가늠 이라는 4콤보엿는데 이정도로 극복했으면, 적어도 이런글은 적을 자격은 된다 생각해서 적게 되었네.. 내가 비추하는거,  추천하는거만 금전적으로만 해당되는것만 간략하게 마지막에 적겠습니다. <비추> 1. 한의원 가지마라  2. 피부과가서 두피클리닉 가지마라 3. 레이져치료기 쓰지마라 4. 엘라스틴 이런거 쓰지마라 -- <추천> 1. 한의원,피부과 갈돈으로 모발이식 해라 2. 샴푸 뻑뻑한거 써라(폴리젠샴푸, TS샴푸..) 3. 탈모약 (본인은 프로스카 1/4등분) -- <7년동안 매일 지켜왔던것> 1. 하루에 물 1.5리터 마시기 2. 자기전에 무조건 머리 꼭 말리고 잠자기 3. 주말아닌 이상 무조건 밤12시 전에 자기 4. 우유 많이 마시기 5. 탈모약은 무슨일이 있어도 꼭 빼먹지 말고 먹기 -- 난 지금 머리에 염색 한번도 안해봤고 펌도 안해봤다. 요새 스왈로펌이나 그런것들로 탈모커버 많이 시켜주지? 그거 가격보니까 3개월~5개월 유지되는 비용이 20~30사이더라.. 그것도 어떻게 보면 너무 인위적이고 자괴감이 심하게 느껴질것 같아서 일부로 안했어.. 가격도 너무 비싸고 평생 그리 살수 없으니까.. 글 더 적고 싶은데.. 바카요코 미션깨러 가야해서..ㅠ 일단 댓글이나 쪽지 주면 최대한 답변 해줄께.. 다들 탈모 극복하자.. 나도 극복했으니까 너희들고 시간만 투자한다면 나처럼 될꺼야. 화이팅 +) 그리고 현재 (2020.7.6) 모발이식 비절개 10개월 됐다.. 예전 후기남겼을때 한 펨코인이 머리가 너무 무거운거 아니냐고 숱이랑 층좀 내라고 지적을 해서. 나는 탈모인으로써 거의 10년을 고생을 해서리.. 숱이랑 층내는건 엄두도 못냈는데 확실히 숱이랑 정수리 부분만 층내고 가볍게 자르니까 좀 괜찮아 진것 같다. 일단 방금 샴푸 후 아무것도 안바르고 찬바람으로 드라이만 한 상태고 9월되면 1년차되는데 무료로 보강as 받기로 해서 이것만 받고 모발이식은 끝내야 겟다.. 그리고 머리 딱 고정될려고 출근전에 스프레이를 엄청 뿌렷는데 그게 머리떡지는 지름길이라는걸 얼마전에 알았고 그동안 앞머리에 대한 집착을 조금이나마 버려서 기분이 홀가분하더라.. 중고딩도 아니고 바가지머리, 커텐머리를 왜이리 고집했던지...ㅠ 스프레이는 앞에 소량으로 뿌리니까 자연스럽게 되더라.. 다운펌, 파마이런거 해본적이없는데 다운펌은 해보고싶더라.. 일주일만 지나면 옆머리가 너무 떠서.. 옆머리 뜨는거 죽이는거 맞지?.. 다음에 커트할때 한번 시도 해볼려고.. 반곱슬이라 앞머리가 휘는게 좀 스트레스인데.. 요새 드라이 스킬도 좀 늘어서 롤빗으로 하니까 고데기보다 볼륨이 잘 살더 앞머리 정리도 잘되더라.... 아무튼 탈모인들아 힘내자 ~ 진짜 한의원이랑 탈모펌은 하지말고 약물, 수술로 극복하자.. (출처) 이 이 머리가 된다니 아빠에서 아들로 변신이 됐군요 내가 다 기분이 좋네 ㅋㅋ 대단하지 않나요. 장장 7년에 걸친 탈모 극복기. 천만원으로 이렇게 멀쩡해 진다면 딱히 큰 돈도 아니지 않나 싶고요... 세상 모든 탈모인들 화이팅! 그리고 아보다트나 프로페시아는 꼭 시도해 보세요. 적어도 6개월은 먹어보고 포기할지 말지 판단해 보시길. 주변 탈모인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더라고요. 둘 다 꾸준히 먹으면 진짜 효과 있다고.
언제나 이기는 멘탈 갑의 비법
01. 탓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유감스러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탓하며 빈둥거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인생이란 쉬운 것도, 항상 공정한 것도 아니란 사실을 이해한다.   02. 자신의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은 “직장상사 때문에 기분 나빠 죽겠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며 어떤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선택하는 것도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03. 변화를 피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변화를 환영하며 어떤 변화가 닥치든 유연하게 대처하려 한다. 그들은 변화란 불가피하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04. 어쩔 수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교통체증이나 공항에서 잃어버린 수하물 때문에 열 받지 않는다.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때론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태도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05.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필요할 때 ‘절대 안돼’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06. 계산된 리스크라면 떠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무모하거나 어리석게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단, 리스크를 떠안았을 때 최대 어떤 손해를 입어야 하는지 철저히 평가한 뒤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행동에 나선다.   07.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고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좋았던 옛날’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과거로부터 배웠다고 말하며 현재와 미래에 집중한다.   08.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진다. 따라서 과거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09.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잘됐을 때 분개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에만 집중할 뿐이다.   10. 한두번의 실패로 포기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실패했다고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11.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외로움과 고요함을 견딜 수 있다. 그들은 엔터테인먼트를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혼자서도 재미있고 행복하다.   12. 세상이 자신에게 빚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멘탈 갑은 세상이, 혹은 인생이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의 역량과 장점을 토대로 기회를 노릴 뿐이다.   13.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멘탈 갑은 건강이나 사업이나 일에서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아도 초조해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