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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들이 시집가서 살림하고 사는 거 비극이라 생각해.
외모에 집착 하지마. 자기 능력으로 사는 거지 남자에게 선택받아 사는 거 아니잖아. 난 여자들이 시집가서 살림하고 사는 거 비극이라 생각해. 왜 시집가서 남자 종 되는데? 공부만이 너를 구원할 수 있을 거야. 넌 이렇게 살면 창녀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창녀는 하룻밤 놀아주면 화대를 받지만, 넌 한밑천 싸들고 가고도 파출부일 해줘 애 낳아줘 가끔 남편의 노리개가 되어줘. 그런 인생이 내 눈 앞에 보인다. 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 니가 근본적으로 바꿔보고 싶으면 나랑 공부하던지. 아니면 한마디만 하면 돼. "나가". 나 아직 니네 엄마한테 돈 안 받았어. 20년전인2001년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이 서울대 재학시절,   잠원동 한신아파트 사는 여자 제자에게 한 말 과외 시작했을 때 처음 만나자마자 한 말 이후 그 여학생은 이대에 간다 대학 졸업 후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행시 합격 후 국무총리실에 근무하게 된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ojh919/220233160017 워딩이 쎄지만 저게 현실 "공부만이 널 구원할꺼야" =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내 자신 뿐 이 글이 비혼권장하는 글이라기 보다는 결혼을 해도 애를 낳아도 제발 전업주부 하지 말고 공부하고 일해서 스스로 구원하라는거임 자기 스스로를 부양 할 경제력을 가지는것, 자기능력을 썩히지 말고 활용하는것을 하라는 의미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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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중인 한 시인의 시집 원고를 교정 보고 있노라면, 그의 언어 감각이 참 좋다는 생각이다. 그의 몇몇 시편들은 지역 방언들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는데, 유려한 언어 감각으로 그것들을 잘 통제하고 있어서 시가 리드미컬해진다. 중년의 시인 중 방언을 구사하는 시인들은 많다. 그러나 방언이 시에서 생명력을 얻으려면 시인의 탁월한 언어 감각과 철저히 통제된 문어체 구사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감각이 좋은 시인들은 방언을 거의 음악의 경지까지 밀고 나간다. 시인뿐만은 아니다. 언젠가 정지아 소설가의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이라는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화려하면서도 리듬감 충만한 사투리 대사들을 들으며 거의 음악을 듣는 느낌이 들어버렸던 거다. 다시 말하지만, 방언의 효과를 작품에 활용한 시인이나 작가들은 많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활용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리듬감을 최근에 유독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시는 사실 리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장르다. 한때 몇몇 원로시인들은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리듬의 부재를 꽤 많이 지적했는데, 나 역시 그 말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오랜 습작 기간 동안 시를 쓸 때 회화성을 기반으로 수사적 이미지에만 골똘했던 것이 맞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랜 기간 나는 시의 리듬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만 인식했지, 실제로 공감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시는 회화성만이 아니라 음악성, 그러니까 리듬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의 행갈이 사용은 리듬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꼭 행갈이만이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인은 산문시를 써도 특유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배우던, 누가 봐도 리듬을 위한 형식으로서의 정형시나 시조 같은 것들만이 리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 거다. 여전히 시의 리듬은 내게 정복할 대상이지만, 형식적으로 구분이 없는 산문시가 리듬을 만들어내는 근거는 ‘말맛’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단어를 고르는 감각이나 어미를 다루는 감각 같은 거. 개인적으로는 내 첫 시집의 절반은 형식적으로 산문시다. 사실 요즘은 일부러 산문시 형식을 피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리듬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내 시집에 실린 산문시를 포함, 여러 시편을 두고 주변 시인들의 의견은 엇갈린 편이었다. 그러니까 리듬이 없다고 하는 시인들과 리듬이 있다고 하는 시인들. 이렇게 갈리는 것은 아마도, 말맛에 대한 상대적인 취향들이 대립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사실 나의 옛 시들을 두고 리듬이 있다 없다 할 형편은 못 된다. 리듬을 의도하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므로.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내가 단어를 고를 때 말맛을 염두에 두기는 한다는 사실이다. 한때 우리나라의 우리말 신화는 참 대단했다. 한자어나 외래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이 가장 위대하다는 착각. 나는 지금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은 정말 아름답다. 정말 인정하지만, 우리말만이 절대적으로 최고의 아름다운 언어는 아니다. 나는 그때그때 시마다의 자리에 어울릴 단어를 고를 뿐, 어떻게든 우리말을 쓰려고 혈안이 돼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어떤 시에서 우리말을 활용해 쓰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말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시인은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고르는 사람이지, 우리말 봉사자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말이 더 경쟁력을 갖추려면, 모든 언어와 우리말을 같은 선상에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말이 다소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여하튼 요즘은 시의 리듬,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말 자체의 리듬을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에도 저마다의 리듬이 있다. 말을 의사전달의 도구로만이 아니라, 그 자체의 음악성을 인식하며 즐긴다면 우리의 일상 대화들은 훨씬 더 품격 있어질 거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언어는 공공재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유심히 들어보는 게 오랜 습관이지만, 이제는 그것이 시 쓰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시 이전에 말맛에 유독 집중하는 요즘이다.
등불을 든 남자
한 남자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등불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같은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이 유심히 살펴보니 등불을 든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 사람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이 등불이 왜 필요할지 의아했기에 붙잡아 물어봤습니다. ​ “저기요, 앞을 못 보는데 등불이 왜 필요합니까?” ​ 그러자 그는 등불을 자기 얼굴에 가까이 대며 말했습니다. ​ “저에게는 등불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저를 보고 부딪히지 않고 잘 피해 갈 수 있잖습니까?” 탈무드에 나오는 배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주위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론 순수한 배려와 호의를 잊기도 하고 스스로 손해 보지 않으려 더 강하게 움켜쥐기만 합니다. ​ 하지만 내가 먼저 바뀌어 선의를 행한다면 세상과 타인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거니와 오직 마음뿐이다. – 마크 트웨인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타인#배려#함께#더불어살기#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좌절하지 않는 마음 가져보기
사진 출처 : flickr - burntfeather 서커스단 코끼리의 발목에 밧줄을 묶어두면 도망가지 못한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끼 때부터 발목에 밧줄을 걸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게 하면, 밧줄 따윈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 큰 코끼리가 되어서도 그 밧줄을 끊을 생각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더 강한 줄로 단 한 번 강하게 구속했다면 코끼리가 이렇게 좌절한 상태에 빠졌을까요? 좌절은 그렇게 서서히 마음이 얼어붙어버린 겁니다. 원래의 자신과 잠재력을 잊고 그냥 멈춰버린 시간입니다. 목표를 방해받고 분노하다 분노조차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며 목표를 잃고 좌절에 빠집니다. 좌절은 이런 무기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생을 병들게 합니다. 자, 그럼 여러분이라면 밧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코끼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 같은가요? 좌절감을 이겨내도록 설득해 도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끊어보라고, 끊을 수 있다고 말해줄 수도 있겠죠. 실은 그 말이 맞습니다. 끊을 수 있고 일단 해보면 너무 우스운 일이었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아마 이렇게 말하겠죠. “불가능해요. 예전에 이미 많이 시도해봤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다른 밧줄을 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코끼리는 이런 항변을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강하잖아요. 나는 서커스단에 계속 묶여 있던 약한 코끼리라고요. 그리고 당신이 썼던 그 밧줄은 약했을지도 모르고요.” 네가 더 강하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겠군요. 포기하고 그냥 묶여 있으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좀 더 시도해봐야겠죠.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요? “너는 약해도 코끼리야. 자신을 좀 더 믿어봐. 할 수 있어.” 코끼리가 스스로 찾아와 방법을 물었다면, 변화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코끼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겠죠. “안 된다니까요. 당신은 말로만 하니까 될 것 같은 거예요. 나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답답하죠. 그런데 실제로 좌절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지금의 말에 공감가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물론 공감이 된다고 그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니죠. 자, 그럼 이렇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밧줄을 끊으려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발을 조금 움직여보는 건 어때? 지금껏 한 자리에는 있을 만큼 있었잖아? 매일 어제와 다른 곳에 발을 둬보는 거야. 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보는 거야. 그냥 지금 조금 움직여보는 거야.” 혹시 여러분 마음에도 밧줄이 있지는 않은가요? 스스로 얽어맨 부정적 신념이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한번 그 마음을 설득해보세요. 얼핏 생각하면 좌절에 빠진 코끼리를 설득하는 것이 쉬운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코끼리는 엄청나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밧줄은 과거에는 거대한 존재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죠. 코끼리가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있든 없든 아무 상관없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엄청나게 큰 존재로 의식하고 있죠. 밧줄을 끊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실제로 코끼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현재의 밧줄이 아니고 과거의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 밧줄이 너무 강하고 자신은 힘이 없다고 생각하죠. 자신의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이게 코끼리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모두 자신의 밧줄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자신은 특별하게 약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믿게 만들어놨죠.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내면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것 같아도 항상 조금 더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보다 더 할 수도 있죠. 그것이 무엇이든 한계인 것 같다가도 해보면 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코끼리보다 더 강합니다. 밧줄처럼 한계라고 믿는 무언가가 생기기 전까지 한계는 없습니다. 결국, 무엇을 믿느냐의 차이입니다. 밧줄은 없습니다.
[토박이말 살리기]1-68 뒷배
[토박이말 살리기]1-68 뒷배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뒷배'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겉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보살펴 주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기월 다음과 같은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에 있는 보기를 들고 있습니다. 필순이는 가게를 보게 하고 부모는 안에서 살림을 하며 뒷배나 보아 달라 하기에 십상 알맞았다.(염상섭의 삼대) 구가가 뒷배 봐 주고 무대에 서고 할 땐 장사 참 잘됐다.(박완서, 도시의 흉년) 전라도 천지를 다 돌아보아야 조정에 조병갑이만큼 뒷배가 든든한 사람도 찾기가 드물었다.(송기숙, 녹두장군)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겉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드러나지 않게 보살펴 주는 일'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으나 보기월은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말로 '뒷받침'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두 가지 풀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뒷배: 겉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드러나지 않게 보살펴 주는 일. 또는 그런 사람. 위의 풀이를 놓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나날살이에서 자주 쓰는 '백(back)'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 갈음해 쓰면 좋겠습니다. 좀 더 나아가 '백'의 풀이에 같은 "뜻을 가진 토박이말 '뒷배'를 쓰기 바람."이라는 것을 덧붙여 놓으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견(後見)'이라는 말을 비슷한 뜻으로 쓰니까 이 말을 써야 할 때도 떠올려 써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들가을달 닷새 낫날(2021년 8월 5일 목요일)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뒷배 #백 #후견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