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onerkim
2 years ago10,000+ Views
초등학교 2~3학년 즈음이었다. 방학을 맞아 평소 자주 왕래하지 않았던 한 친척집에서 며칠 묵게 됐다. 그 집엔 나보다 서너살 많은 5촌뻘 누나가 있었고 (보통 아이들이 그렇듯) 누나와 난 금방 가까워졌다. 우린 밤마다 거실 바닥에서 한 이불을 덮고 함께 잤다.
한번은 잠자리에서 누나가 내게 “우리 신혼여행 놀이 할까?”라고 제안했다. 알고 보니 ‘신혼여행 놀이’란 그저 서로를 바짝 껴안은 채 꼼짝않고 누워 있는 것 뿐이었는데, 그게 참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누나의 달콤한 내음과 따스한 콧바람, 묵직한 젖가슴의 감촉에 알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다가 방에서 주무시던 이모할머니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거실로 나온 순간 우린 왠지 화들짝 놀라 서로 떨어졌다. 다음날이 되자 나는 이상하게 어색한 기분이 들어 누나를 퉁명스레 대했고, 우린 사소한 일로 다툰 것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평생 잊을 수 없을만큼 생애 가장 강렬한 이성과의 기억 중 하나. 영화 <사돈의 팔촌>은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자 기억 그 자체다. 어린 시절 이모 집에 놀러간 태익은 사촌 여동생 아리와 장난치며 놀다가 알 수 없는 충동에 아리를 껴안는다. 12년이 흘러, 말년 휴가를 나온 군인 태익과 해외 유학을 앞둔 아리는 가족 모임에서 오랜만에 재회한다. 이후 둘 사이에는 다시 한번 미묘한 감정이 싹트고, 이들은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점점 혼란을 겪는다.
연애가 뭔지도 모를 어린아이에게 있어, 어쩌면 이성인 또래 친척과의 관계야말로 가장 ‘연애스러운’교감인지 모른다. 가족처럼 함께 살지도 않고 학교 친구들처럼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특별한 날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친밀한 이성. 그래서 그(그녀)와의 짧은 만남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고 즐거우며 일분 일초가 강렬하게 각인되는 경험 말이다.
“어떤 감정을 느껴봤자 아이 때 느낀 감정만큼 크지 않대”라고, 영화 속 아리는 아쉬운 듯 태익에게 말한다. 그리고 태익은 “사랑이란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엄마의 말에 “사랑은 그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라고 되뇌인다. 결국 둘의 감정은 처음 서로를 껴안은 12년 전, 무언가에 대해 의미를 규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마음을 쏟을 수 있었던 그 시절 자신들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메가폰을 잡은 장현성 감독은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다녀온 한 선임이 "사촌동생이 정말 예뻐졌다"며 손가락으로 촌수를 계산하는 모습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 MBC 드라마 <가화만사성>, 영화 <해어화> 등에 출연한 배우 장인섭이 주인공 태익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여기에 발랄한 아리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완성한 배우 배소은과 태익의 현실적인 여자친구 서희 역 주예린의 연기도 볼만하다. 2016년 5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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