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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두수] 한 여자의 고백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컨설팅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들의 행동 자체가 그 사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여성 클라이언트의 경우는 특히나 그녀라는 사람을 도드라지게 보여주었습니다. 서면으로 자신이 조언을 받고 싶은 분야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제출하였는데, 예전에 배웠던 SWOT이 떠오를 정도로 분석에 능한 여성이었습니다. 자미두수 명반을 보지 않아도 천상성이 밝게 빛나는 여성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컨설팅은 잘 흘러갔습니다. 저는 본래 좌뇌를 사용하는데 익숙한 사람이고, 직관과 감수성은 후천적으로 발달시킨 케이스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렇게 논리적인 클라이언트와의 대화는 쉽게 느껴집니다.
그녀의 자미두수 명반을 지배하는 것은 "커리어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관록궁과 노복궁에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복덕궁의 기운이 너무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현재 그녀에게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그녀는 여의도의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넌지시 권했습니다. 시간을 내서, 고향을 한 번 둘러보고 오라고 말이지요. 방위상으로도 훌륭한 여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답은 "생각해볼게요." 였습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하루를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되기 때문이죠.
조언에 감사하다며 예의있게 인사를 하고 나갔으나 왠지 모르게 사무적인 뒷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생경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기억하던 그녀의 이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아주 따뜻하고 감성이 풍부한 소녀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고향에 다녀왔다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내리 한 시간을 통화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우리가 이렇게 전화로 오래 대화하게 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지요.
초등학생 시절,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바닷가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조개 껍질을 줍는 것이었습니다. 맨발에 까슬까슬하게 닿는 젖은 모래의 감촉도 좋았습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또 밀려가는 그 소리를 역시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지요. 그렇게 해변을 걸으면서 얼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도, 갈매기 소리도 정겹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바위에 앉아, 뜨거운 태양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보면 왠지 모르게 뭉클해지기도 하였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녀는 씩씩한 여성이 되어갔습니다. 홀어머니를 부양하는 것도 그녀이고, 눈감으면 코베어가는 서울 생활을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것도 자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학교 생활에 이어, 직장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두 배를 해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커리어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고향의 해변으로는 점점 오지 못하게 됩니다. 엄마와의 통화도 짧아지고, 의무감이 생기는 현실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저를 찾아오기 전, 신인 화가에게 의뢰해 자신의 고향의 노을을 그려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녀의 집에 큼지막히 걸려있게 된 그 그림은 멋진 그림이었지만, 고향의 느낌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몸이 으슬으슬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고, 저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뉴에이지 음악도, 인공적인 파도소리도 위안이 되긴 커녕 마음을 써늘하게 만들기만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신도 모르게 자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더이상 지체하지 않고, 저에게 연락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저와의 대화 이후, 그녀는 다음날 곧장 월차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KTX 안에서도 일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고, 한 편으로는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녀는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결국 해변에 도착하였습니다.
십대의 그녀가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구두와 스타킹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채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걸어 다녔습니다. 밀려오는 파도가 그녀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고, 상쾌한 바닷바람은 가슴 속 깊이 가득찬 눅눅하고 뜨거운 무언가를 날려주었습니다. 몸이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이 가벼워졌습니다.
엄마와 함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선생님 덕분에 너무나 좋았다며,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컨설팅 당일에 그녀가 했던 사무적인 감사의 표시가 아닌, 소녀의 진심이 담긴 인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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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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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eonhwang0 온라인으로 만난 인연은 온라인에서만 뵙기로 했답니다 ^^ 양해부탁드려요~
저두 가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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