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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 성인 광고

올리는 종자들하고 얘기하면 머한다요ㅋ 아이디 바꿔서 다시 올리면 그만인것을 대화 조금 오갔다고 좋게 말로 이해하는것처럼 하면 어쿠야~ 죄송합니다. 안올릴께요(이 아이디로) 가 되는것뿐이지… 그냥 하던데로 신고해요. 어짜피 상대할 가치가 없는것을. 멋하러 대화하고 좋게 해결하는것처럼 인증하는건지 당췌 이해를 못하겠으니. 진짜 쓰잘데없는거에 예의바르게 좋은 빙글만들자는 포장을 하는게 어이가 없어서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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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의방법이 그래서 해결책이 되었나요? 작은 관심과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는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
작은관심과 사랑도 말이통하는 상대에게나? 도움이 필요한 상대에게나? 그 관심 쓸데없는데 쏟는게 이해가 안갈뿐;; 쟤네들이 관심과 사랑원합니까?ㅋㅋ 아.무.데.나. 작은관심과 사랑운운 하실게 아니죠. 그리고~ 해결책은 관리자들이 찾아내는거고, 못찾는다 그럼 유저들에게 의견을 받아서 찾아내게끔 하는것이지 그외에 행동은 쓸데없는 심력소모~ 아~ 내 심력인데 먼 상관? 이라한다면 할말없지만ㅋㅋㅋㅋㅋㅋ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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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오은영이 쓴 육아 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 여러 상황에서 아이에게 해줄 만 한 적합한 말들을 가르쳐준다. 나는 자식도 없는데. 모르겠다. 문득 궁금해졌다. 육아 관련 서적이지만 나이 불문하고 인간 보편에 적용될 만한 심리 서적으로 볼 수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제 두 챕터를 읽었을 뿐이다.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왜 저런 문제가 생겼을지 유추해보곤 하는데, 그런 응용 데이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문제들도 돌이켜보며 내가 왜 그런지, 혹은 오래전에 왜 그랬었는지 유추하기를 즐기며, 예상외로 납득할 만한 근거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고 싶다면 나 자신은 아주 좋은 실험 대상이다. 내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지, 내가 취약한 지점은 어떤 것인지, 나의 진짜 욕망은 무엇인지.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무턱대고 갑자기 육아 서적이 읽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계기가 있었다. 책 욕심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해봤을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떤 여성분이 책을 읽고 있기에 무슨 책일까 하고 유심히 쳐다본 적이 있는데, 물론 대놓고는 아니지만, 간신히 표지를 보게 되었고 바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그 책이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어쩌다 책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어떤 책을 읽는지 호기심이 인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그 책이 내가 읽은 책일 경우, 뭐야, 그 책을 이제 읽는다고? 풋. 이러거나 반대로 내가 읽지 않은 책일 경우, 으 분하다, 나도 읽고 말 테다. 이러며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도서 검색을 하기도 한다. 정신에 문제가 온 듯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거다. 또한 내가 읽지는 않았지만 너무 유치한 책을 읽고 있을 경우, 저런 책은 줘도 안 읽는다. 싶기도 한데, 뭐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나 스스로가 괜한 책 욕심만 많은 초보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낯선 이들을 보면, 그가 고른 도서를 통해, 독서 취향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보곤 한다. 이 역시 어차피 지나갈 사람이니 일종의 상상 훈련을 해보는 것일 뿐이다. 책을 선택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꼭 그의 독서 취향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육아 서적을 읽는 내가 아이의 양육자는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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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주 끝. 어제는 봉준호의 <괴물>을 다시 보았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전 그 영화를 보았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공공재로서의 타임캡슐이기 때문이다. 2006년 <괴물>의 개봉 날짜만 기다렸다가 개봉 첫날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영화 초반 한가로운 한강공원에 괴물이 드디어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탄성마저 질렀던 기억이 난다. 와아! 그리고 내가 만든 영화라도 되는 양 나직이 읊조렸다. 아, 천만 관객은 그냥 넘겠구나. 그리고는 천만을 넘어 한동안 꽤 오랫동안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로서 기록을 유지했던 것으로 안다.  당시로써는 아주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CG에 쓰인 것으로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각에서 볼 때는 아주 어설프기가 그지없다. 그런데 봉준호가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어설픈 CG로라도 모험을 감행한 봉준호에게 정말 감사할 지경이다. 그렇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로서는 다소 어설픈 테크닉이라도 그것을 통해 뭔가를 도모해볼 수 있다면 시도해야 한다. 저곳을 오르면 무언가가 보일 것 같은데, 아주 허약한 사다리밖에 없으니 조금 더 견고한 사다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게 아니라, 이 허약한 사다리라도 딛고, 위험을 감수하며 가보는 거다. 봉준호는 많은 것을 미리 내다봤다. 한강에 괴물이라니, 이 지극히 한국적인 사회에 벌어진 괴생명체 스토리라니. 이러한 황당무계한 설정은 할리우드나 되어야 수긍이 가던 시대였다. 지금이야 한국 영화가 우주까지 나아갔지만, 정말로 그때는 이런 설정이 모험에 가까웠던 것이다. 미국인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한국인 특유의 방식으로, 한국인 특유의 유머로,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에 없던 새로운 상황에 던져지는 것.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상수 역시 어떤 점에서 유사한 지점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킨 작품 가운데 <생활의 발견>이 그렇다.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홍상수는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 감독과 상당히 비슷한 문법을 구사할 때가 있는데, <생활의 발견> 역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식이 홍상수만의 것이 아닌 에릭 로메르의 것이라고 해도, 공간 자체가 한국이며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또한 한국의 전설을 그대로 시나리오에 활용한다. 한국이라는 재료로 만드는 에릭 로메르 풍의 영화. 그것은 이미 로메르 풍을 넘어선다. 전혀 새로운 것이 돼버리는 거다. 이것은 굉장히 영리한 방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상수는 그렇게 에릭 로메르의 동양식 아류가 아니라 홍상수 그 자체가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과 유사한 방식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상황에 스스로 던져지는 것. 그것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도, 성공할 확률은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 볼 때 <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사람은 변희봉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이롭다는 느낌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