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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1932년 4월 29일, 독립운동가 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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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사내 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故 윤봉길 의사의 신념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84년 전 오늘은 故 윤봉길 의사가 중국 훙커우 공원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도시락 폭탄'으로 당시 일본 제국의 인사들을 저격한 사건이 있던 날입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당신에게 이 그림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윤봉길 의사님.
ps) 故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 을 던졌다고 많이들 알고 있지만, 사실 '물통 폭탄'을 던졌습니다. '도시락 폭탄' 은 자결용으로 가져갔으나 자결에는 실패, 일본군에게 현장에서 심하게 폭행을 당한 채 체포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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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pen on paper + digital art
1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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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이런 글을 읽을때마다 이 시대를 잘 살고 있는지 반성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런 우리 조상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도 있겠죠....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_()_
오늘 시험이 끝나서 놀 생각만 가득한 제 모습이 너무 쪽팔렸어요..윤봉길 의사가 폭탄 던진 날이 오늘인지도 몰랐고요..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thddkwl1998 시험이 끝났으면 놀아야죠. 그대신 윤봉길 의사님도 잠시 생각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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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사건
1. 5월부터 대량 메뚜기때 상륙, 당시 영의정이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다" 라고 까지 했으나 이건 시작에 불과 2. 8차례나 기우제를 지냈지만 6월이 넘도록 비가 안옴, 농작물이 다 말라죽고 파종도 못함 3. 하필 하늘에서 내리긴 내리는데 그게 우박...초목이 다 병이들고 서리,냉해로 있는 농장물까지 다 죽음 4. 7월 9일 드디어 비가 내리긴 하였으나... 그 동안 못내린 비를 쏟아내는지 어마어마한 폭우 발생, 초가삼간 다 떠내려감, 전국적 산사태 발생, 가축과 사람이 꽤 죽었으며 겨우 심은 농작물 다시 다 썩음 5. 여기서 부터 레알 헬게이트, 여름부터 가을까지 큰 태풍이 6차례나 한반도에 상륙 ㄷㄷㄷ 조선팔도 쑥대밭을 만듬 6. 지진이 거의 나지 않는 나라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수시로 발생, 백성부터 조정까지 아비규환 7. 이지경인데 전염1병이 안돌 수가...특히 신해년(1671년)엔 궁궐도 뚫려 사대부가 사망하고 종친들이 질병으로 죽는 사태까지 발생 8.아직 더 있다. 7월 말 부터 구제역이 창괄하여 8월 한 달에 폐사한 소만 1만 6천마리가 넘어갔다. 당시 소는 농경의 상징이였으니 남아있는 땅떵어리에서도 수확하기가 거진 불가능인 상황. 나라가 마비되었다. 9. 이지경이 2년동안 반복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조선인구 약 5분의 1인 100만명이 사망 이유는 바로 이것때문이었음... 오늘날 밝혀진 이러한 사실의 원인으로 경신 대기근 일화 몇가지 조선 8도 전체의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사람이 아무리 이성의 동물이라지만 생존조차도 불가능한 벼랑 끝에 몰리면 천륜도, 인륜도 저버릴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전국에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일 정도의 비상식적인, 실로 유교사회에서는 있을수도 없는 패륜적인 사건들이 속속 보고되었다. 부모들이 아이를 도랑이나 강물에 던져버리고 가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아이를 그냥 나무둥치에 묶어놓고 가는건 그래도 마지막 양심은 남아있는 수준. 배식을 받기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서 기다리다가 남편은 결국 쓰러져 죽었는데 아내는 그 옆에 남아있는 죽을 모조리 긁어먹은 뒤에야 곡을 했다. 어머니를 업고 다니며 구걸하던 아들이 어느 순간 어머니를 버리고 가버렸는데, 어머니는 오랫동안 아들을 기다려도 오지 않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굶주림 앞에서는 가족이고 인륜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우려하던 서로 잡아먹는 상황, 즉 인육을 먹는 식인 사고까지도 보고되었다. 충청도 깊은 산골에서 한 어머니가 5살 된 딸과 3살 된 아들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같으면 나라 전체가 완전히 뒤집힐 만한 엄청난 사건이었으나, 이때는 워낙 흔한 일인지라 별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승정원에서는 "굶주림이 절박했고 진휼이 허술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할 정도였다 심지어 경신대기근 기간동안 공주, 재상급 인사들마저 죽어나갔다.
손씻기의 선구자 솀멜베이시
주말 특집, 손씻기이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HBO 산하 CINEMAX 채널에서 방영됐던 미국 드라마 The Knicks(참조 1)의 제일 인상적인 포스터가 바로 의사들이 모두 손을 하늘 위로 치켜든 모습이다. 이 포즈가 괜히 나오지 않았다. 깨끗이 씻은 후, 아무 것도 안 만지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손을 올린 것이다(참조 2). 그런데 의사들이 언제부터 손을 씻었을까? https://brasil.elpais.com/ciencia/2020-03-20/ignaz-semmelweis-o-medico-que-descobriu-como-evitar-contagios-apenas-lavando-as-maos.html 놀랍게도 이걸 처음 주장했던 인물이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헝가리인 의사 솀멜베이시 이그나츠(Semmelweis Ignác Fülöp, 1818-1865)이다. 원래 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전공을 의학으로 바꾼 케이스인데, 사실 이런 경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상당히 드물다. 의학을 공부했다가 법학으로 바꾸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말이다. -------------- 핵심은 그가 빈 종합병원(Allgemeines Krankenhaus der Stadt Wien)의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는 기묘한 광경을 목격한다. 당시 빈 종합병원(이거 지금 19세기 중반 이야기입니다)의 산부인과 병동은 1동과 2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동은 의대생들 훈련을 위한 곳이었고, 2동은 산파들의 훈련을 위한 곳이었다. 19세기 중반 당시는 아직 세균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이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이 아픈 이유가, 주변 공기의 독기에 있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문에 구멍을 뚫는 식으로 대처했었다. 당연히 산부인과 병동의 사망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그가 관찰을 해보니 1동의 임산부 사망율이 2동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었다(참조 3). 빈 종합병원에서만 그때 매년 700여 명의 임산부가 사망해서 산부인과 병동의 별명이 “죽음의 집”일 정도였다. 그러나 벽에 구멍 뚫는 정도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난망했고, 이전에 수술했던 환자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수술대가 놓여 있는 수술실은 그 자체로 더러웠으며, 산부들이 누워있는 침대 또한 곤충들이 많고 체액 때문에 끈적거렸다. 혹시 1동의 의대생 훈련에 있어서 시체 해부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이전까지 의대생들은 마네킹으로 실습했었지만 당시는 시체를 해부하는 것으로 실습하던 시기였다. 산욕열에 걸리는 산부들은 대체로 1동에서 시체 해부하던 의대생들이 그대로 환자를 다루기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닐까? 심지어 병원 오다가 거리에서 출산하는 임산부들의 사망률도 1동보다 낮았었다. 그러나 위대한 발견에는 희생이 필요한 법, 1847년 동료 의대 교수가 해부 실습을 가르치다가 우연찮게 해부하던 학생의 칼로 찔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교수가 산욕열로 죽은 산부들과 동일한 증세로 사망했었다. 해부하는 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 그래서 그는 1동에서 해부하던 의대생들과 의사들 모두 묽은 염산으로 손씻기를 시킨다. 그렇게 조치를 한 다음, 임산부들을 돌보게 했더니 1동의 산부 사망률이 무려 90%가 감소됐다. 문제는 당시 의학계에 있었다. 그때의 의학계는 모든 환자에게는 각자의 병이 있을 따름이어서 환자 개개인마다의 치료법이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다. 모두 손이나 씻으면 된다는 식의 해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당대나 지금이나 의사들은 최고 엘리트라는 느낌적 느낌이 있는 집단인지라, 손이나 씻으라는 제안에 대해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안 씻으려 했었다. 솀멜베이시의 제자들은 스승의 제안이 배척받는 광경을 참을 수 없었다. 유럽 각국에 서한을 보내고 그의 발견에 대해 알리기에 나선다. 문제는 그가 직접 논문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동료나 제자들이 알리는 바람에, 유럽 각국의 의료계는 혼동스러워했다. 이유가 있었다. 그의 지위가 불안정했었다. 그의 계약기간이 끝났고 연장이 안 된 것이다. 그는 빈 종합병원을 떠나 헝가리로 옮겨야 했고 이때부터 그의 수난이 시작된다. 정신적으로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공개서한을 통해 자기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의사들을 “살인마”로 규탄했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일종의 치매 증상도 보였다. 그의 부인과 동료들은, 그를 새로 지은 병원에 가보자고 꼬셔서, 그대로 빈 정신병원에 수감시켜버린다. 정신병 담당의가 아닌 세 명의 의사가 그가 정신병 상황임을 진단내리고, 구속복을 입혔으며, 정신병원의 직원들이 그를 어두운 병실로 데려가서 매우 때렸다. 이때의 후유증으로 2주 후 사망한다. 솀멜베이시(참조 4)의 방법은 그가 사망한 직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하고, 영국의 조셉 리스터가 손씻기를 포함한 수술 전 세균 절차를 마련하면서, 그때서야 과학적인 방식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도 이제 “어머니들의 구세주”라는 호칭을 받으며 부다페스트 병원 앞에 동상도 세워졌다. 현재의 COVID-19 사태에서 구글이 그를 기념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참조 5). https://youtu.be/h8OX0FNWANM -------------- 참조 1. The Knick (2014) 시즌 1(2014년 10월 20일): https://link.medium.com/O7ybA0Rx24 2. 물론 이 드라마가 그리는 20세기 초의 미국 외과 의사들은 수술 시에 수술 장갑을 끼고 했었다고 한다. 고증에 안 맞는 셈이지만, 극적 효과를 위해 일부러 씻은 맨손을 보였다. 3. 그에 대해 다룬 위키피디어(https://en.wikipedia.org/wiki/Ignaz_Semmelweis)에 데이터가 나와 있다. 1동의 사망률은 2동 사망율의 두 배가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1846년의 경우는 무려 세 배가 넘었다. 4. 독일어 이름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로 알려져 있기는 한데, 그는 독일어를 완벽히 익히지는 못 했다고 한다. 게다가 빈 종합병원에서 쫓겨난 이유 중 하나가, 그가 “헝가리인”이라는 것. 그래서 그의 이름을 솀멜베이시로 표기했다. 5. https://www.google.com/doodles/recognizing-ignaz-semmelweis-and-handwashing
언제나 당신 편
예순이 넘은 내 아내는 요즘 자꾸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 모임은 물론이고 친구들 부부동반 모임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이랑 말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곤 합니다. 며느리와 사위의 표정이 이상해지고,  친구들도 뭔가 잘못 먹은 얼굴로 바라보지만, 그럴 때마다 난 미안해하며 물건을  그들 곁으로 도로 놔줍니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로써 이야기하지만  가끔은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아내는 원래 늘 남을 배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길을 가거나, 문을 열 때도 뒷사람을 위해 양보하고 웃음도 많고, 정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늘 산만하고, 때로는 내 것 네 것을 못 가리고  만지는 증세가 생겼습니다. 병 때문에 그런 건데도  저희 부부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실 확인도  안 하고 화부터 내기 시작합니다. 그런 아내의 행동에 나는 눈물이 나옵니다. 아내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아내를 꼭 껴안고 말했습니다. "어떤 욕을 들어도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 난 끝까지 당신 편이니까!" 네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나 힘든 시간 날 지켜준 사람 이제는 내가 그댈 지킬 테니 (중략)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해 -폴킴,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남편, 내 아내... 가장 가까이 있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얼마나 눈부신 사람인지  모르곤 합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을 함께 해온  내 남편, 내 아내에게 끝까지  힘이 되어 주세요. # 오늘의 명언 행복한 결혼은 약속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지루하지 않는 기나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 앙드레 모루아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