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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는 조연이다." 2015년 가을 내가 〈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를 시작하면서 했던 말이다. 해당 페이지에 올리는 대부분의 글이 그렇듯, 선거운동용 버스에 올라타서 전국을 누비며 후보들을 밀착취재하는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쏟아내는 기사를 읽고 나름대로 정리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2016년 3월 1일 슈퍼화요일이 지난 지금, 버니 샌더스에 대해서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 맞았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버니 샌더스의 슈퍼화요일 성적이 힐러리 클린턴만큼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다(힐러리는 남부 주를 휩쓸었지만 버니 샌더스는 4개 주에서 승리를 했다. 예상보다 좋은 성적이다). 나는 여전히 버니 샌더스가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목표가 힐러리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샌더스 ‘지지자들’에 대한 내 생각이 맞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가진 지지자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세대의 절망 이른바 ‘샌더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념적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라는 호칭을 자랑스럽게 달고 등장한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고, 유리천정을 부수어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할 젊은 여성들이 힐러리를 버리고 샌더스를 지지하는 현상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땅에 들어섰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사용하던 우리의 지도가 더 이상 맞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샌더스 현상을 취재한 일간지 〈렉싱턴헤럴드리더〉의 제스 노세라 기자는 샌더스를 가리켜 “2000년을 전후해서 성인이 된 ‘밀레니엄 세대’들의 미래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후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말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성과를 가져오는 진보 세력’의 대명사인 힐러리가 밀레니엄 세대들 사이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그만큼 완벽하게 설명해준 표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세대가 느끼는 사회주의는 부모 세대의 사회주의와 전혀 다르다. 부모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상당히 좋은 직장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일만 열심히 하면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런 안전한 사회를 살아온 세대에게 사회주의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대학 졸업과 함께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 사회에 나선다.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들어선 사회의 일자리들은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스티븐 호킹이 정확하게 지적했듯, 인류의 위협은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로봇이 아니다. 진정한 위협은 창출된 부를 소수가 독점하도록 방치하는 현대 자본주의다. 밀레니엄 세대들에게 사회주의는 기존의 방식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아이디어’일 뿐이다. 혹자는 밀레니엄 세대가 이미 사회주의의 맛을 봤기 때문에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평한다. 바로 2007년과 2008년의 미국 경제위기 때였다. 그 경제위기는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이 사실상 정부에서 보증을 선 돈으로 도박을 하다가 거덜나게 되자 다시 정부의 돈을 받아 살아난 사건이다. 이른바 ‘하위 99%’가 세금과 실직과 파산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고, 그렇게 살아난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듯 임원들에게 고액의 보너스를 안겨주었다. 밀레니엄 세대는 그렇게 구세대가 ‘수익은 자본주의적으로 챙기고, 손실은 사회주의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는 것이다. 버니 샌더스의 등장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만을 위한 자본주의에 반대해서 장장 8시간 반 동안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필리버스터를 했던 노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버니 샌더스’라는 이름이 밀레니엄 세대에게 각인된 건, 2010년 ‘부시 세금감면안 연장’에 반대하며 진행한 이 필리버스터 때문이었다. 밀세니엄 세대는 버몬트라는 아무도 관심없는 작은 주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워싱턴 정치판의 구세대보다 더 늙은 노인에게서 미래를 본 것이다. 샌더스가 하는 말은 마치 앞선 유럽의 사상가들의 생각이 간직된 타임캡슐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샌더스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던지게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 후보가 될까? 민주당 후보가 되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손에 쥘 때쯤이면 거의 결론이 나고 있거나 이미 났겠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현재의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샌더스가 힐러리를 누르고 민주당 대선후보 티켓을 손에 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대선은 거의 2년 동안 전국을 쉴 새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올해 74세인 그의 나이를 봤을 때, 이번 선거에서 지면 다시 대선에 나오기는 사실상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샌더스는 평생을 추구했던 이상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버니 샌더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후보는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독립된 개인인 동시에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하나의 통로다. 불만에 가득 찬 미국 보수층이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라는 통로를 찾은 것처럼,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샌더스에게서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대변해줄 대표자를 발견했을 뿐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떻게든 통로를 찾을 것이다. 그들 앞에 있는 미래의 전망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새롭게 선거연령에 도달할 미국의 젊은이들은 다음 대선에서, 그다음 대선에서 제2, 제3의 샌더스를 찾아낼 것이다. 훗날 그 모든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돌이켜보면서 우리는 버니 샌더스를 이야기할 것이다.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샌더스의 주장과 이야기에 한 번쯤 귀를 기울여봐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 내러티브를 지키고 챙기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후세에 대해서 가져야 할 책임이다. _ 박상현 (페이스북 페이지 〈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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