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ubon
10,000+ Views

공화당의 분열

Nah, I’m kidding, you know i’ve got to talk about Trump!
어째서 미국 공화당이 이런 지경이 됐는지 여러 기사가 있지만, 아무래도 이 글이 제일 마음에 든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가 썼으며, 시간이 좀 있다면 번역도 할 만한 글인데… 뉴스페퍼민트의 누군가가 하지 싶기도 하고, 상황이 또 변했다. 트럼프가 실질적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됐기 때문이다.
핵심은 바로, 보통은 공화당을 지지했던 Middle Americans이다. 쉽게 말해서 중하류층/백인/중년. 바꿔 말하자면 ARS에서 “영어는 1번, 스페인어는 2번…”이라는 말이 나올 때 짜증내는 이들이다. 미국은 과거에 Great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공화당이 자기들을 배신했다고 느꼈다. 그 결과가 트럼프다.
이들이 공화당에 분노했다고 하여 민주당을 찍을 가능성은 낮다(공화당 엘리트들은 차라리 힐러리를 선택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민주당은 그나마 남아 있는 자기들 재산을 재분배할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 가난한 사람들 주는 건 이들도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바라보는 민주당은, “받을 자격이 없는 놈들”에게 재분배를 할 것이라는 이미지이다.
저 “받을 자격이 없는 놈들”이 누굴까? 이민자다. 하지만 공화당 주류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이민에 호의적일 수 밖에 없다. 저임금 노동자를 끊임 없이 공급해 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여러 친-공화당 재벌 기업들과 공화당 지지층이 나뉜다.
그리고 공화당 지지층은 기억하고 있다. 저 기업들이 우리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자른 사람”이라고 말이다(참조 1).
물론 민주당도 공화당 만큼이나 분열되어 있다(참조 2). 하지만 공화당 지지 계층의 경우 특히 2009년 Great recession이 끝난 이후로 심화됐다. 워낙 가구 소득이 오르지 않아서이다(대공황 이후 최대급이라고 한다). 이들이 처음에는 어디에 마음을 줬던가?
티파티다. 이들은 가난한 공화당 지지자들이기 때문에,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옹호하는 가치인 작은 정부나 자유 무역, 정부 불개입, 기업 우선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일 하는 자”는 복지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메디케어를 강화한 오바마의 의료보험정책의 주된 혜택자들이다. 심지어 이들은 “부유한 이들에게 중과세”를 지지하기도 한다.
즉, 공화당 지도부들은 티파티를 만들어낸 공화당 지지 민초집단의 민의를 완전히 잘못 읽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 어줍잖게 젭 부시 등등은 라티노의 지지를 받겠다고 이민에 호의적이라는 이미지도 심어줬다. 소득이 오르지 않는 이 시기에 들어오는 이민자들은 중하층의 적인데 말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럴 때 타이밍 좋게 나타나서 이민자를 공격하고, 일반인들에게 적대적인 공화당의 대규모 자금 지원 기업가들(가령 Koch 형제나 셸던 아델슨)을 “자기들이 알아듣는 단어”를 통해 공격했다. 환호할 수 밖에 없다. 티파티의 과격함을 싫어하던 공화당 지지자들도 대거 트럼프 진영으로 옮겨 갔다(참조 3).
트럼프가 자기들의 “보호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정리할 수 있다. “미들 어메리칸”의 소박한 “일하는 자를 보호한다”는 가치에 제일 잘 맞는 후보가 트럼프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 엘리트들마저 이들에게는 적이다.
당연히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지식인들은 골치아플 수 밖에 없다. 옛날 얘기를 하자면, 알렉산더 해밀튼은 같은 연방주의자였지만 존 애덤스를 너무나 경멸했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공화주의자인 토마스 제퍼슨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지지했고 실제로 제퍼슨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오바마도 한 마디 거들었다.
You may not like steak or fish, but that’s your choice.
----------
참조
1. 2008년 전 아칸소 주지사이자 당시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마이크 허커비가 했던 말이다.
2. 와인 트랙(track)과 비어 트랙이 있다. 전자는 인텔리, 후자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와인 트랙의 대표자가 오바마, 비어 트랙의 대표자가 클린턴.
3. 사족이지만, 해외로 자식들을 파병 보낸 공화당 지지 “미들 어메리칸” 가족들도 트럼프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쓸데없이 군대 내보내지 않겠다고 하니 말이다.
4 Comments
Suggested
Recent
누가 대통령이 될지 흥미진진하면서도 무섭기돠네요
분열속에 변화와 창조가~ 다가오는 대선에는 민주당 힐러리가 여성최초 대통령이 될거라 믿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커다란 변화와 혼란보다는 안전과 유지를 선택하는 거죠
@hululup 무섭지는 않습니다. 다만 매우 재미나는 선거가 될 듯. ㅋ
@blueijak 저도 그렇게 보기는 하는데... 샌더스 지지자들이 힐러리를 안 찍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힐 할매의 승리를 자신하진 못 하겠습니다.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현재 막을 수 없는 일본 내 회전초밥 테러 챌린지 유행 근황
이 영상의 주인공은 고딩이라는거 이미 털려서 잘알려졌는데... 해당 체인점 이름은 '스시로' 라는 회전초밥집임 근데 이사건으로 시총액이 160억엔이 날아갔음 ㄷㄷㄷ 해당 영상의 주인공 부모가 사과를 했지만  스시로는 절대로 안 물러나고 민 형사 고소 준비 한다고함 최근 개드립에도 종종 언급된 일본 내 '회전초밥 테러 챌린지' 몇년 전에도 해당 챌린지가 유행해 특정 회전초밥기업의 주식이 박살날 정도로 이슈가 되었는데 요즘 해당 챌린지가 다시 유행하는 중 최근 일본언론에서도 자주 보도하여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어제 테러 당했던 회전초밥집 '스시로'에서  소스통에 이물질을 넣는 테러영상이 틱톡에 또 올라옴 이미 야후재팬에서는 댓글 3천개가 넘을정도로 이슈가 되는 중.  일본 내 회전초밥 불안해서 안가겠다는 여론도 꽤 커지고 있음 타인이 주문한 디저트 일부분만 먹고 다시 되돌리는 빌런 ㄷㄷㄷ 소스통에 간장 섞는 빌런 ㄷㄷㄷ 전에 회전초밥 할짝할짝 사건때문에 난리난 스시로에서 또 발생했다함. SNS에 미친놈들인가... 퍼온곳-개드립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일본인 존 만지로 이야기
1827년, 만지로는 일본 도사시미즈 시에서 (당시 도사 번 카카하마무라) 가난한 농민 집안의 둘째로 태어난다 만지로의 형이자 장남인 토키초는 병약해 별 보탬이 되지못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된다 돈이 없어 데라코야(서당)에도 다니지 못하고 9살 때 아버지가 죽어 10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어업을 하러 바다에 나가게 된다 14살이던 정월 5일 새벽, 고등어와 전갱이를 잡으러 다른 형제들과 같이 7.5미터의 배를 타고 나왔다가 폭풍우를 만나 10일 간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된다 배에 실려있던 건 쌀 두 말과 약간의 물과 장작 뿐. 급작스런 북서풍을 만나 흘러서 도착하게 된 곳은 일본에서 남쪽으로 760km 떨어진 둘레 8km의 작은 무인도 도리시마 섬 만지로와 동료들은 해초와 물고기, 알바트로스, 오줌물을 먹으며 이 섬에서 143일을 연명했다 그러다 1841년 6월 27일, 만지로 일행은 동남쪽 근방을 지나던 미국의 포경선 존 하울랜드(John Howland) 호에 의해 구출된다 "다섯 명의 초라한 피곤한 인간을 발견. 데려오지만 그들이 배고프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 항해 일지 만지로 일행은 처음 보는 범선에서 흑인 선원도 처음 보고 각종 항해 도구, 세계 지도, 서양 가구도 처음 보고 놀라게 된다 만지로는 구조되었지만 엄한 쇄국 체제인 일본으로 돌아가면 중죄 처벌을 받을 것이었기에 존 하울랜드호의 다음 기항지인 하와이로 따라가게 된다 /당시 일본은 귀찮게 굴던 포경선 때문에 1825년 발효된 이국선 타격령(異国船打払令)때문에 접근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배의 선장 윌리엄 윗필드와 선원들은 낯선 동양인 무리에 우호적이어서 소년 만지로는 갑판 청소, 가축 돌보기 등을 하고 고래잡이 일도 배우며 영어도 조금씩 배운다 반년 만에 하와이 호눌룰루 항에 도착해 만지로의 동료들은 하와이의 선교사에게 맡겨졌는데 지식욕이 높은 만지로는 세계지도의 작은 일본을 보고 놀란 후 포경선의 선원이 되고싶다고해 모험을 계속하게 된다 선장 왓필드는 배의 이름을 따 그에게 John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그때부터 만지로는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일본어도 못 쓰던 그가 일본어-영어 학습자가 전무하던 시절 글을 익히는 것은 최초인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만지로의 머리가 좋은 걸 눈치 챈 선장은 미국에 가서 교육을 받는게 어떠냐 권유했고 만지로는 꼭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존 하울랜드호는 괌 섬, 대만 근해에서 포경을 마치고 남미의 드레이크 해협을 거쳐 미국(13개 주 시절) 메사추세츠 주 뉴 베드포드 항에 도착한다 1843년 5월, 당시 이곳은 세계 최대의 고래잡이 기지였고 윗필드 선장은 만지로를 모두에게 소개했다 만지로는 윗필드 선장의 고향 페어헤븐에서 양자처럼 같이 살며 영어, 수학, 측량, 항해술을 배운다 최초의 일>영 학습 교재가 된 '영미대화첩경'을 저술하기도 하고 고등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할 만큼 낯선 땅에서 만지로의 학습욕은 불타올랐다 포경업 및 귀국 편에서 계속... 일본여행-관동이외갤러리 비기뇽님 펌
"文대통령 하는 거 봐서"…썰전 나경원 태도에 네티즌 비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발언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11일 방송한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에는 나경원 의원과 전화 인터뷰가 전파를 탔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인 10일 오전 7시부터 녹화한 썰전 측은 '썰전' 측은 대선 이슈를 반영하기 위해 나 의원을 섭외, 전화통화를 나눴다. 유시민 작가는 "노무현 집권 초기부터 당시 한나라당에서 대통령으로 인정 안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어떤 태도로 초기 단계에 임하실 계획이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그건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께서 어떻게 하시느냐에 따라 야당의 입장은 달라진다"고 답변했다. 이에 유 작가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라고 반문했다. 해당 발언을 두고 네티즌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른 정당도 아니고, 지난 박근혜 정권하에서 벌어진 국정농단의 책임이 절대적으로 있는 자유한국당이 자성하거나 쇄신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야당이면 야당답게 우리나라에 발전되는 비판을 해야지 잘못하기만 해봐라 눈에 쌍심지 켜고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게 야당인가"(sjle****), "바른정당과 비교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너희들이 싼 똥 치우는데 최선을 다해 일하는 정부에 최대한 협조해라. 그게 너희들이 살길이다"(arc9****), "다 같이 힘을 합해도 무너진 나라 복원시키기 힘든 판국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한다는 소리가. 정말 실망스럽습니다"(hand****)고 지적했다.
시모노세키의 복어 이야기
북규슈와 혼슈를 잇는 지리 상의 거점이자 메이지 유신 때 사쓰마 번(가고시마)와 연합해 260년의 에도 막부를 끝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조슈 번(長州藩)의 도시기도 했던 '시모노세키' 간몬 해협을 사이에 두고 가마쿠라 막부를 연 단노우라 전쟁(1185)이 일어나기도 했고 왜란 후의 조선통신사들이 일본 본토에 처음 기항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 곳 시모노세키 바다에는 예로부터 복어가 많이 잡혀 이 지역의 향토음식이었다 관짝 짜놓고 먹는다고 '관 요리'라고 불렀다고 1592년 히데요시가 각 지방의 다이묘들을 들들 볶아 마련한 노인과 아이를 제외한 15만 8천 7백명의 조선 침략군이 이 곳, 시모노세키 항구에 집결했다 일본 각 지역에서 모인 다양한 장정들이었으니 바다를 처음 보는 산골 출신들도 많았는데 복어에 맹독이 있다는 걸 모르는 병사들이 독이 든 알과 내장까지 먹으며 하나둘 죽어나가자 히데요시는 ㅈㄴ 빡쳐서 그렇게 죽고싶으면 조선에 가서 싸우다 죽으라며 복어금식령읕 내리기에 이른다 그 후, 복어를 먹고 죽는 이는 없어졌지만 전쟁이 끝나도 복어 금식령은 300년 동안 남아있었다 근대화 중이던 1882년에도 지방 영주에 의해 복어를 먹으면 구류 or 벌금형에 처한다는 법령이 있었다 이 복어금식령이 해금된 것은 1892년, 당시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서다 총리가 되고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이토는 춘범루(春帆樓)라는 여관에 머물게 된다 춘범루는 원래 안과의사 후지노 겐요가 1877년에 '츠키야마 의원'을 개원한 곳인데 그가 죽자 그의 아내 미치가 여관으로 운영하던 곳이다 여튼 이토가 여관에 있을 때 태풍이 불어 조업이 어렵게 되자 대접할 게 없어서 주방장은 금지된 생선인 복어를 이토에게 주었고 이토가 그 맛에 감탄해 이 집 한정으로 복어 판매를 허용했는데 이를 계기로 금식령이 풀리게 된다 그 이듬해인 1895년, 이토 히로부미와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을 이기고 춘범루에서 청나라 북양함대 대신 이홍장과 정전협정을 맺게 된다 왼쪽 세번째 수염 풍성한 놈이 무쓰 무네미쓰 그 옆이 이토 무쓰는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봉기)에 대한 외교 문제를 일본 입장에서 저술한 '건건록'을 남겼다 춘범루 앞에는 회담이 이뤄진 곳을 전시해놓은 '일청교류기념관'이 생겼다 이 조약으로 청은 조선에서 완전 발 빼고 막대한 전쟁 보상금, 요동 반도와 대만을 할양받고 서구 열강과 같은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된다 이홍장은 숨이 턱턱 막히는 요구에 하얗게 질려 "가혹! 가혹!"을 외쳤다고... 쨌든 그 후 복어 요리는 발전했고 점점 다양화해졌다 도쿄의 츠키지 어시장처럼 시모노세키엔 가라토 어시장이 유명한데 이 곳에서 여러 복어요리를 찾아볼 수 있다 끝 일본여행-관동이외갤러리 비기뇽님 펌
자식농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 선조.jpg
선조 아들들 중에서 그나마 정상이라고 쳐줄만한 아들은 둘이 있음. 신성군 - 워낙 어려서 요절해서 병크 터트리고 말고도 없음 선조가 물고 빨고 예뻐죽던 아들이라 전쟁 안터지고 명줄 길었으면 얘가 세자 했을지도 모름 광해군 -군왕자 시절에도 클린했고 세자로 빛나는 업적을 남겼지만 애비의 땡조급 갈굼으로 인해 흑화 빼고는 하나같이 가관이었음 그 중 3대장이 1. 임해군 이진 공빈 김씨 소생, 선조 서장자. 광해군 형임에도 인성이 가관이라 그 누구도 세자 후보로 생각 안함, 얘라면 물고 빨고 했던 선조도 세자는 쫌하면서 신성군과 광해군 사이에서 저울질;;; 확인되는 범죄 행위들만 따져도 구타, 강도, 권력을 이용한 재산 강탈은 기본에 공물 약탈, 기록에 의하면 임해군은 궁노를 풀어 토지를 멋대로 차지하고 궁노의 입을 막기위해 남의 지아비를 죽이고 그의 처를 궁노에게 짝지어줬다함. 심지어는 첩실을 빼앗기 위해 강도로 위장해 도승지 유희서를 살해하기 까지 함. 이때 선조는 크게 질책했다고 하지만 지 아들새끼라고 싸고 돌아서 처벌은 안 받음 사람을 죽였는데 참고로 세종대왕때는 공주의 남편인 부마가 종을 때려죽였다가 귀양까지 갔음 임진왜란때도 동생 광해군이 피땀흘려 의병들 독려하고 전투할때, 기생끼고 놀고 갑질해대다가 참다참다 백성들이 얘랑 얘 이복 동생 세트로다가 왜한테 넘겨버림. 광해군은 이런 형을 극도로 증오했다고 함, 기록상 신하들이, 서인,동인 할것 없이 당파를 조월해서 쟤 죽이라고 상소를 올려댔는데 광해군이 상당히 미온적으고 동정적인 태도로 나왔음, 그러나 이런 광해군의 행동이 그냥 동복형제를 죽이기에는 쫌 그러니까 못이기는 척 하려고 했다는게 학계의 정설 (태종이 잘했던 짓 분위기 만들어 놓고 빼는 척 하다가 킬) 심지어 반정이후에도 영창대군 죽인 것만 문제삼고 얘 죽인건 아무도 문제 안 삼음. 2.정원군 인조 애비, 얘도 임해군이랑 하는 행동거지가 똑같았음. 후술할 순화군의 졸기에 정원군이나 임해군보다는 행동거지가 나았다고 서술했을 정도로 개 막장.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과거 시험에 처남을 합격시켜 사헌부에 탄핵당하거나 군적 회피자를 돈 받고 자기 집에 숨겨주거나 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정도고.. 선조 35년 9월 13일조를 보면 정원군의 가노들이 선조의 형수이자 덕흥대원군 봉사손이었던 하원군의 부인을 납치하는 강력 범죄도 저질렀다고 함. 노복들과 창기(娼妓) 대여섯명이 하원군 집 앞을 지나다가 하원군의 노비와 싸우게 되었는데 하원군 부인이 나와서 말리려다가 도리어 집이 습격당하고 노비들한테 끌려가 감금된거임 하원군의 부인은 참고로 큰어머니뻘인데ㅋㅋ 유교의 나라에서 참ㅋㅋㅋ가지 가지 이새끼 아들이 인조임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원종으로 추존됨...... 콩콩 팥팥ㅋㅋㅋㅋ 3. 순화군 역대 최고의 사이코패스 사이코들이 늘상 그렇듯 동물을 잔혹히 죽이는 걸 꼬꼬마 시절부터 즐겼다는 기록이 있음. 포로 생활 1년만에 안그래도 개 막장이었던 인성이 완전 찌그러져버려서는 ㅋㅋㅋ 인성자체가 소멸되서 사람들 막 죽이고 댕김. 저 임해군이 야..나도 나지만 너 쫌 심하다..했을 정도. 어러서부터 쌩트집을 잡아서 자기한테 인사할때 허리를 너무 조금 굽혔다거나 덜 굽혔다거나 등 말도 안되는 진짜 말그래도 쌩트집 잡아서 잔혹하게 형장을 치는걸 즐겨했다고 함ㅋㅋㅋ 참고로 이때 대략 14~15살ㅋㅋㅋ중2병 개 지랄 맞게 왔음ㅋㅋ 참다 못한 신하들이 처벌을 주청해서 삭탈관직 몇년 받고 끝ㅋㅋ 그러다 10대 후반에는 이미 얘 손에 죽은 피해자만 양손에는 꼽지도 못할만큼ㅋㅋ 쌓이고 완벽한 사이코패스겸 연쇄살인마가 됨. 1년에 10명씩은 죽이고 다닌다는 소리가 돌았고. 백성들은 호환마마보다 순화군을 더 무서워했음. 그러거나 말거나 선조새끼는 어화둥둥 내 새끼 ^^ 처벌도 조또 안하고 사람만 계속 죽어감ㅋ 그러다가 법모이자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를 모시던 궁녀를 강간하는 일이 생김, 심지어 왕후의 관이 모셔진 곳 앞에서 벌어진 범죄임. 이는 아부지인 선조도 절대 쉴드 못쳐주는 극대죄였음. 효를 버린 폐륜적 행동이었기 때문임. 드디어 귀양길에 오르는데 귀양지 가서도 지 왕자라고 고개 쳐 들고 갑질하고 사람 죽이고 다님ㅋㅋㅋㅋ 그래서 다시 서울로 잡혀 올라오는데 다시 그지랄하고 다님 그래도 꿋꿋하게 자가 아들 부둥부둥하는 선조.. 그러다가 더는 지도 안되겠다 했던지 가택연금시켰는데 그러다 풍 맞아 뒤짐ㅋㅋㅋ 선조-정원군-인조는 조선왕조에서 다른 의미로 역대급 3대임 출처
시즈오카현의 흥미로운 이야기 (feat.녹차)
전근대 일본의 고속도로, 도카이도는 1601년 마련된 에도와 간사이 지방을 잇는 약 500km의 길 이 길을 따라 53개의 역참(휴게소)가 세워졌고 수도를 향한 행렬이 통하며 역참 근처로 상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는데 현재의 도카이도 신칸센과 1번 국도도 거의 이 길과 비슷한 경로를 따라간다 참근교대(参勤交代)를 위해 가는 다이묘 행렬이 도카이도를 따라가다보면 여러 고개들도 난관이지만 가장 큰 장애물이 가로막는데.. (참근교대 : 각 번의 다이묘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볼모로 잡아두고 다이묘가 없을 때는 아내나 자식 등 친족을 에도에 보내 견제하는 제도, 에도까지 가는데도 돈이 많이 들어서 재정적 부담도 듦) 바로 시즈오카현 시마다시의 오오이 강이다 이 강을 기준으로 당시 지명 상 도토미국과 스루가국이 나뉘었다 미나미알프스에서 발원해 스루가 만으로 빠지는 이 강을 건너기 위해선 인부들을 이용해 도하해야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에도 방향으로는 시마다(島田)쥬쿠 쿄토 방향으로는 카나야(金谷)쥬쿠라는 역참이 있었다 이 강을 건너고 23개의 역참을 지나면 에도 니혼바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았지만 오오이 강에 다리가 생기진 않았고 천 명이 넘는 인부가 강을 건너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고 이 산업이 막부에 바치는 세금도 쏠쏠했다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는 일반 여행객들의 수요도 늘어 서민들은 가마가 아닌 인부에게 목마를 타고 가기도 했다 오오이 강은 수심이 깊진 않지만 물살이 빨라 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가면 위험했다 강의 수심에 따라 도하 비용은 달라졌는데 (위험 수당) 강의 수심이 136cm가 넘으면 '가와도메'라는 도하 금지령이 떨어졌다 1년 중 50일 정도는 도하가 금지되었고 최장 28일 간 도하가 금지된 기록이 있다 오오이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카와카이쇼라는 티켓 오피스에서 티켓을 사야했다 1인 가마는 네명, 2인 가마는 여섯 명, 다이묘들이 쓰는 렌다이 가마는 스물네명의 인부가 필요했다 시마다의 인부들은 1번부터 10번까지의 쉼터에 모여 대기하며 얘기를 하곤 했다 인부들은 수요가 많아지자 힘들어져서 인부 개인이 하루 최대 3번 도하하게 제한을 두었다 오오이 강의 도하 제도는 메이지 정부 출범 후 3년 뒤인 1870년에 강에 배를 띄울 수 있게하며 인부들은 졸지에 다 실업자가 되었다 배로 강을 건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1879년엔 강에 목조 다리가 건설되는데, 이 다리가 바로 897m 길이의 '호라이바시'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긴 목재 다리이다 한편 근대 일본에 처음 해군을 만든 카츠 카이슈는 1860년 서양을 돌아보고 일본의 차가 상품 가치를 갖겠구나 생각해 1869년 시즈오카 마키노하라 일대에 1,425ha의 녹차밭을 개간하게 명령한다 도하 산업을 잃은 시마다의 인부들도 1873년부터 이 녹차 산업에 뛰어들어 30ha의 녹차밭을 개간하며 지금의 시즈오카 일대는 녹차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일본여행-관동이외갤러리 비기뇽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