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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K리그 클래식 2016 4R 인천 유나이티드 vs 성남FC
현대 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4R 성남 FC vs 인천 유나이티드 경기장: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그라운동장 일 시 : 2016-04-09 토요일 킥오프: 16:00 리그 1위 유지를 노리는 성남 FC와 리그 최하위 탈출을 노리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만난다. 리그순위표의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두 팀은 이번 주말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그라운동장에서 K리그 클래식 4R 경기를 치른다. 시즌 시작 전 전문가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성남은 전북과 서울의 양강 체제를 깰 수 있는다크호스로 지목 됐다. 반면 인천은 강등권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 했다. 성남은 5년만에 리그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상승세의 분위기를 탔다. 지난해부터 성남은 선제골을 넣은 후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 했다. 특히 한점 차 승부에서 매우 강했다.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서 승률이 90%가 넘을 정도로 지키는 축구에 강했다. 올해도 그 흐름을 이어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서 실점은 단 1점으로 막았다. 2승 1무로 승점 7점을 획득해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핵심 선수를 뺏겨 전력이 약화된 인천은 리그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김도훈 감독이 처음 부임 할 당시에도 팀의 주축들이 대부분 이적하여 선수 구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리그 9경기만에 승리를 거둘 정도로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올해도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리그 3경기에서 모두 패배 하여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시작 하고 있다. 지난해와 비슷한 여건과 출발을 보였지만 경기 내용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실점이 늘어났다는 점은 인천에게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4경기 연속골에 도전한다. 성남 공격수 티아고 성남의 시즌 초반 상승세의 원동력은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한 티아고 이다. 지난해 포항에서 리그 4골 3도움을 기록 하였다. 포항 시절과 비교 하였을 때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페이스 자체가 다르다. 지난해 히-조-루라는 조롱거리 별명이 붙여질 만큼 외국인 농사에 실패 한 성남은 티아고의 활약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외국인 공격수의 공격 포인트와 공격 기여도에 따라 리그 순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리그 특성상 티아고의 활약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리그 4경기 연속골에 도전하는 티아고는 지난해 포항 유니폼을 입고 인천 원정에서 골을 기록한 경험이 있다. 인천, 주축의 이적. 대체 선수들의 활약이 필요하다. 인천은 지난해까지 뒷문을 든든히 지킨 유현 골키퍼가 팀을 떠났다. 팀의 중심으로 굳은 일을 성실히 해낸 수비형 미드필더 김원식은 임대 만료로 원 소속팀인 FC서울로 복귀 하였다. 공격에서 팀에 큰 기여를 한 김인성도 울산으로 팀을 옮겼다. 팀의 주축이 빠저 나간 자리는 남은 선수들이 대체 했다. 그러나 앞선 3경기에서 그들의 공백은 매우 크게 느껴졌다. 김원식이 빠진 자리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역습을 끊어 낼 선수의 부재가 눈에 띄었다. 골키퍼는 경험이 부족한 골키퍼가 선발 출장 중이다. 이태희, 김다솔 골키퍼는 실점의 빌미를 제공 하는 등 안정감이 떨어졌다. 아직 조수혁 골키퍼가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 중 이기 때문에 이태희, 김다솔 골키퍼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사후 징계, 전력의 손실을 입다 성남 측면 수비수 이태희는 지난 포항전 패널티 박스 안에서 골문으로 향하는 볼을 고의적으로 손으로 막아 사후 징계로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개막전부터 좋은 활약을 펼쳐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남 입장에서 전력적인 손실을 입게 됐다. 특히나 성남은 이태희를 활용 하여 중앙 미드필더들의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패스 능력을 커버하기 위해 상대 진형 깊숙한 위치까지 오버래핑, 중앙으로 움직여 공격에 가담하는 공격 루트로 득점과 가장 가까운 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어 냈다. 공격과 수비 모든 부분에서 팀의 큰 영향을 끼친 선수의 부재는 팀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태희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박용지가 대체 선수와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선 3경기에서 실망스러웠던 공격적인 능력을 보여줘야 할 차례가 왔다. 이번에도 쓰리백? 인천의 중앙을 책임지는 김도혁은 성남의 뒷공간을 허물 수 있는 킥 능력을 보유 했다. 지난 3R서울전에서도 몇 차례 서울의 수비 라인 배후공간으로 침투 패스를 시도 하여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 냈다. 최전방에 위치한 진성욱은 준수한 라인 브레이킹 능력을 갖췄다. 외국인 공격수 케빈은 제공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선수이다. 성남의 수비라인의 부담을 줄 수 있는 인천의 핵심들이다. 성남 선수들이 후반 막판에 체력과 집중력 저하를 보이고 있는 점은 인천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단, 인천이 선제 실점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서울전에는 쓰리백을 사용한 김도훈 감독은 황의조를 원톱으로 사용하는 성남에 대비하여 포백으로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지난해 10월, 스플릿이 결정 되는 중요한 경기에서 쓰리백 전술을 시도 하다가 황의조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김두현의 부상 복귀 성남의 두목까치 김두현은 경미한 부상에서 회복하여 훈련에 합류 했다. 그러나 인천전 출전은 확실하지 않다. 김두현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피투와 조재철은 지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무리하게 출전 시킬 가능성은 떨어질 것으로 예상 된다. 관전 포인트 1. 두번의 클린시트 vs 리그 최다 실점 성남은 박준혁의 공백을 프로 경험이 없는 김동준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맡겼다. 경험의 부족으로 김학범 감독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대학과 프로의 슛 파워와 타이밍의 차원이 다르다는게 그 이유 였다. 그 평가는 시즌 시작과 함께 감독의 노파심으로 바뀌고 있다. 김동준의 안정적인 핸들링 능력과 세이브 능력은 성남의 3경기 중 2경기에서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천은 지난해 32실점으로 리그 최소실점으로 시즌을 마감 했다. 짠물수비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가장 큰 역할이었다. 그런데 올 시즌 시작은 리그 8실점으로 최다 실점을 기록 하고 있다. 개막전 3실점에 이어 2실점 - 3실점으로 경기당 2.7골을 허용 하고 있다. 티아고가 연속 골을 기록하고 있고 경기력이 좋아지고 있는 성남의 공격진을 실점 없이 막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 황의조의 첫 득점은 언제? 황의조는 지난해 리그 15골로 득점 랭킹 3위로 시즌을 마쳤다. 리그에서의 첫 필드골은 3월 말에 열린 수원 삼성과의 3R 였다. 당시 PK 실축 후 리바운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 했다. 그 이어 열린 4월 초 4R 대전 원정에서 헤더 골로 리그 연속골에 성공 했다. 득점을 시작한 후로 분위기를 타는 모습을 보였다는 반증이다. 시즌 첫 골을 언제 넣는가에 따라 시즌 활약상이 달라질 수 있다. 올해 앞선 3경기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황의조는 리그 최다 실점 팀을 상대로 올 시즌 마수걸이 골에 도전 한다.
[ACL REVIEW] FC서울 한일전의 새 역사를 쓰다(동영상 有)
[청춘스포츠3기 김성태] 140분간의 롤러코스터가 멈췄을 때 웃고 있는 쪽은 FC서울이었다. 26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6 AFC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FC서울이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승부 끝에 우라와 레즈를 1,2차전 합계 3-3(승부차기7-6)으로 제압하며 8강에 진출했다 사진 :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는 FC서울 선수들 [선발라인업] [전반전 - 1차전 패배를 원점으로돌리다] 서울은 1점 열세를 따라 잡기 위해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전반 2분 주세종이 오른발로 감아 찬 프리킥이 아쉽게 골대를 외면했다. 선발로 나선 데드리아노(데얀+아드리아노) 투톱은 초반부터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 11분 주세종이 중앙선 오른쪽 부근에서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길게 넘겨준 공에 아드리아노가 몸을 날려 달려들어 보았으나 간발의 차이로 머리에 닿지 못하고 흘러나갔다. 다카하기와 주세종은 중원에서 공을 소유하며 지속적으로 공격진에게 찬스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지키기만 해도 8강에 진출하는 우라와의 밀집수비 탓에 쉽게 골이 터지지 않았다. 전반 29분 서울의 집념이 빛을 발했다. 니시카와의 골킥을 짧게 이어받은 중앙 수비수 엔도의 미숙한 볼 처리를 아드리아노가 놓치지 않고 잽싸게 공을 낚아채 돌파해 들어간 후 데얀에게 연결했고 데얀이 가볍게 밀어 넣으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서울은 선제골의 흐름을 타고 공격해 보았으나 추가골은 득점하지 못한 채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 - 연장전까지 내다 본 최용수 감독] 후반 46분 서울에게 꿀 흐르는 찬스가 찾아왔다. 김동우가 수비진영에서 앞으로 길게 넘겨준 공이 문전으로 쇄도하던 데얀의 발 앞에 떨어졌다. 1대1찬스를 맞은 데얀은 지체없이 발등을 갔다 댔으나 공은 골키퍼의 정면으로 향하고 말았다. 일찌감치 3명의 교체선수를 모두 활용해 총 공세를 펼친 우라와의 페트로비치 감독과 달리 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교체카드를 매우 신중하게 활용하며 연장전으로 승부를 끌고 갈 준비를 했다. 이로 인해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후반 82분 서울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진 틈을 타 우라와의 즐라탄이 페널티 박스 왼쪽을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기습적인 슛을 날렸으나 정확히 차지 못해 빗나갔다. 서울은 경기 종료 직전 결정적인 기회를 두 번 맞았다. 후반 89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예리한 프리킥이 박주영 쪽으로 향했으나 높이가 어중간해서 박주영이 정확히 헤딩하지 못했다. 추가시간이 끝나기 몇 초 전인 후반 93분 아드리아노가 수비 한 명을 벗겨내고 찬 슛이 골키퍼의 정면으로 향했다. 오른쪽에 박주영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1,2라운드 통합스코어 1-1을 기록한 양팀은 연장전에 돌입했다. AFC챔피언스리그는 연장전부터 원정다득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연장전의 승자가 곧 8강에 티켓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연장전반 - 서울극장의 서막] 연장전이 시작하고 서울이 리드를 잡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장4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주세종의 침투패스를 받은 박주영이 완벽한 타이밍으로 문전 앞 아드리아노에게 배달했고 아드리아노는 맛있게 떠먹으며 득점했다. 이대로 끝난다면 서울이 8강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역전골이 터진 이후 서울 선수들은 급격하게 체력적으로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연장후반 - 다 된 이충성에 고요한 뿌리기] 연장후반이 시작되자 우라와의 이충성이 치열한 승부의 주인공으로 등극할 뻔 했다. 서울 선수들이 체력과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틈을 타 연장 22분과 25분 연달아 골을 터뜨렸다. 두 번 모두 외곽에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높게 패스가 들어왔고 이충성은 무인지경이었다. 이로써 통합 스코어 2-3이 되어 우라와의 8강행이 유력해졌다. 최용수 감독은 주세종을 빼고 심우연을 투입하며 아껴두었던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심우연은 장기인 높이를 활용해 우라와의 수비를 교란시켰다. 그러나 결정적인 장면은 만들어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사진 : 고요한의 왼발은 경기종료 직전 불을 뿜었다 연장후반 정규시간이 끝나고 추가시간도 1분이 지났을 때 페널티박스 오른쪽 외곽에서 공을 잡은 고요한의 발재간이 시작되었다. 한 명을 몸싸움으로 떨쳐낸 고요한은 공을 툭툭 치며 타이밍을 보다가 기습적인 왼발 중겨리슛을 때렸다. 공은 바깥쪽으로 살짝 감기며 골키퍼 손을 거쳐 왼쪽 골네트에 꽂혔다. 통합스코어 3-3으로 양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승부차기] 서울은 캡틴 오스마르가 실축하며 끌려가게 됐지만 유상훈 골키퍼가 침착한 선방으로 5번째 키커인 니시카와의 킥을 막아내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유상훈은 8번 키커인 코마이의 슛도 막아내며 승리의 폭죽을 서울의 키커인 김동우에게 건냈고 김동우가 시원하게 터뜨리며 서울은 드라마 같은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 : 유상훈은 결정적인 두 개의 선방을 하며 승리를 견인했다 [2분 하이라이트] [매치팩트] *경기결과(1,2차전 통합) 서울 3:3 우라와 (PK 서울 7:6 우라와) *득점 서울 : 데얀(전29), 아드리아노(연4), 고요한(연31) 우라와 : 이충성(연22, 연25) *선수교체 서울 : 박주영-윤일록(후30), 박용우-데얀(후36), 심우연-주세종(연25) 우라와 : 즐라탄-엔도(후1), 코마이-세키네(후17), 우메사키-우가진(후29) *경고 서울 : 김동우, 김원식 우라와 : 카시와기, 즐라탄 *MOM 고요한(서울) 그래픽 = 청춘스포츠 김성태 사진=AFC, FC서울 영상=AFC We Make Sports Media 청춘스포츠 ⓒ청춘스포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V에까지 나온 데얀 골수팬 근황
데얀의 수원 삼성 이적이 오피셜로 발표되면서 꽤 많은 파급효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KBS 예능 프로그램인 안녕하세요에 나온 데얀의 소녀팬이 새삼 화제입니다. 당시에 FC서울 팬으로 나와 데얀에 대한 팬심을 뿜뿜했던 아이팬이었는데, 실제로 이 방송이 나간 직후 데얀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이 아이팬을 수소문했고, 결국 FC서울에 초청돼 시축까지 하며 성덕 of 성덕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던 데얀이 라이벌팀인 수원으로 이적하게 됐습니다.... 이적 소식을 접한 아이팬은 현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는거 졸귀ㅠㅠㅠㅠ 아이팬의 엄마 인스타그램에 올라온거라고 하는데 아이고 ㅠㅠㅠ 짠한데 왜케 귀엽나요ㅠ ㅠㅠ 사실 이런건 해외축구에서 주로 봐왔던 양상들입니다. 당장 기억나는건 반페르시 이적때문에 대성통곡 하는 아이팬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ㅋㅋㅋ 이것도 봤을때 짠하면서 졸귀였는데 ㅠㅠㅠ 데얀 덕분에 축구팬으로서 EPL 감성을 느끼게 되네요 ㅋㅋㅋㅋ 사실 그간 K리그 클래식도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이런 일이 없었던거지 앞으로 역사가 쌓이고 쌓이면 EPL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유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당장 데얀만 보더라도 레전드급 선수가 소속팀과 감정적인 이유로 라이벌팀으로 이적해버린 상황이니 말이죠. 만약 데얀이 '아데바요르'해버린다면 진짜 이번시즌 K리그 클래식 제대로 흥행할 수 있을듯 합니다 ㅋㅋㅋㅋ 물론 데얀이 아데바요르 같은 인성은 아니기때문에 실현가능성은 낮지만 말이죠 ㅋㅋ 이번 슈퍼매치는 여러모로 볼거리가 더 많을듯 합니다!
가지고 와야할 개념을 유럽에 두고온 선수들
혹시 어제 AFC 챔피언스 리그 보신 분들 있으신가요? 전북과 장쑤의 경기에서 장쑤의 하미레즈가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후반전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중국 선수와 최철순 선수가 헤딩 경합을 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 선수가 고통을 호소하며 박스 바로 바깥에 넘어져있습니다. 전북은 한시가 아까운 시간이었기에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지요. 페어플레이로 볼을 바깥으로 내보낼 수도 있엇지만 승부욕이 강한 선수들은 이따금씩 이런 과정을 생략하곤 합니다. 패스미스로 볼이 나갔고 갑자기 장쑤의 하미레즈와 테세이라가 이동국 선수에게 달려듭니다. 쾅 아무리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다지만 이렇게 선수들을 공격하는 법은 없습니다. 나중에 달려든 테세이라도 강한 제스쳐를 취하는게 보이실 겁니다. 1차적으로는 하미레즈가 밀었고 그 다음 테세이라가 가세합니다. 하미레즈는 이 행동으로 다이렉트 퇴장을 받습니다. 테세이라는 추가적인 징계를 받진 않았지만 하미레즈는 자동적으로 다음 AFc 챔스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물론 1차전으로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은 전북의 책임이 있을수 있지만 페어플레이는 의무가 아닙니다. 선수들 사이에 권장되는 행동이긴 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하미레즈가 보인 행동 역시 역설적이게도 페어플레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거칠고 야만적인 행동이지요. 유럽에서 선진적인 축구를 배워왔다는 선수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벌써 중국 현지화 완료한건가요?
답답하면 니가 뛰던지를 실제로 실행한 사람
1994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와 친선 경기가 있었다. 당시 경기 도중에 웨스트햄 공격수였던 ‘리 채프먼’ 선수에게 욕을 하던 남성이 있었다. 해당 남성은 리 채프먼 선수에게 “내가 뛰어도 그것보다는 더 잘 뛰겠다”라며 비아냥거렸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 때 팬의 욕을 들은 수석코치 해리 레드냅은 남성에게 “당신이 뛰면 정말 잘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해당 남성은 “당연하다”고 대답했으며 코치는 “그럼 네가 직접 뛰어보던지”라고 했다. 결국 남성은 웨스트햄 유니폼을 입게 됐고 후반전 경기에 투입됐다. 프로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남성은 어떻게 됐을까? 실력이 프로 선수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물론 공도 못 건들고 나올 것이라고 예상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남성은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골을 넣었다. 그는 웨스트햄의 열성팬이었으며 아마추어 축구 경기를 다수 했었던 선수였다. 경기가 끝나자 경기장에 있던 기자들은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남성 팬은 “경기 시작 후 5분 동안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라며 “내가 했던 말들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환호성이 들렸고 골을 넣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헤프닝이 일어난 이후 ‘선수 등록법’이라는 규정이 생기면서 관중이 갑자기 경기에 난입해 뛸 수 없게 됐다. ㅊㅊ 지식의 정석 모야 이왜진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실력자 ㅎㄷㄷㄷ 진짜로 골 넣은 게 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울산 레전드 특집]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사람들에게 있어 팀에서 '레전드' 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공통분모격으로 해당되는 기준이 '해당팀의 원클럽맨' 이라거나, 아니면 '최소 그 팀에서 오랫동안 뛴 선수' 로 클럽에서 얼만큼 뛰었는지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물론 그 클럽에서 오랫동안 뛴 시간은 중요하다. 그만큼 클럽을 지지하는 이들과 오랫동안 추억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나 국내나 레전드로 꼽는 선수들에게 '멘탈' 부분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즉,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피치 위에서의 행동이라던지,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모습이 프로의식이 투철해야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 또한 선수들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예외도 분명 존재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에릭 칸토나,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출신인 슈테판 에펜부르크의 경우에는 각각 맨유와 바이에른에서 5시즌 이상 뛴 것도 아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혈질이며, 어느 순간에는 시한폭탄같은 분노를 피치에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두 클럽의 레전드 반열에 올라있으며 팀의 영광과 함께했다.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4번째 울산의 레전드는 이것과는 정반대격인 스타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유상철, 김현석, 김병지와 달리 오랫동안 울산에서 뛴 것도 아니며, 진중하거나 겸손한 스타일이 아닌, 화끈하면서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이 선수는 울산 팬덤 내에서는 말그대로 '언터쳐블(Untouchable)' 이며, 2000년대 이후 울산 팬이 된 사람들이 울산에 빠져들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쯤되면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밀레니엄 특급' 이자, '2000년대 K리그 대표 사기유닛' 으로 언급되는 이천수다. 이천수의 일대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울산 레전드 특집 -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1. 모든 이들로부터 주목받던 '밀레니엄 특급' 10대 소년, 그렇게 2002년 월드컵까지 종횡무진 이천수는 프로 데뷔하기 전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주목받는 '슈퍼 탤런트' 였다. 그가 고등학생 신분일 당시인 1990년대 후반에 고교리그는 이천수가 다녔던 부평고가 주름잡고 있었고, 이천수와 더불어 최태욱-박용호를 '부평고 귀각 3인중' 이라 불렸다. 그들을 앞세운 부평고는 국내 대회를 제패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청소년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1999년에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방가반두 컵에 청소년대표팀 주전으로 참가하였고, 태국 올림픽 대표팀을 7대2로 대파하였고(이천수가 무려 4골을 기록하였다),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까지 격파하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비록 일본 실업리그 팀에게 2대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에서 통합 8골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올라섰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천수를 '밀레니엄 특급' 이라 불렀고, 그는 10대의 나이에도 벌써부터 전국의 축구팬들이 주목하는 유망주로 등극했다. 이천수는 곧바로 1년 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고 동시에 국가대표팀 데뷔까지 끝마쳤는데, 그 때 그의 나이 겨우 19세에 불과했다. 이천수는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고, 2년 뒤인 2002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당당히 엔트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물론 비슷한 연령대였던 박지성처럼 주전선수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대표팀이 치뤘던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 주로 그는 교체선수로 투입되곤 했는데, 득점이나 도움을 기록하진 않았지만 폭발력 있는 스피드와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역할을 하였고,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동점골을 기록하고 쇼트트랙 세러모니를 할 때 오노 역할로 전파를 타기도 하였고, 이탈리아전에서는 최고 수비수로 평가받는 파올로 말디니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등 팬들 뇌리에도 상당히 강렬하게 남았다. 거스 히딩크가 이끌었던 한국대표팀은 '월드컵 4강' 이라는 한국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23인에 대한 해외 클럽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져갔다. 월드컵 때 모두의 시선을 끌었던 박지성과 이영표는 히딩크의 부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따라 네덜란드로 날아갔고, 차두리도 아버지인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에 성공했으며, 이을용은 한국인 최초로 터키 수페르리가 진출을 하는 등 대표팀 선수들의 해외이적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에 맞물려 이천수 또한 월드컵 직후 곧바로 해외이적을 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였다(월드컵 시작하기 이전에 이천수는 2001년에도 유럽 진출할 기회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의 달리, 그는 해외보단 국내리그를 택했다. 이미 그는 월드컵이 시작하기 이전에 국내 프로팀 입단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 반시즌만에 K리그를 접수한 '사기 유닛' 으로 등극하다(2002 ~ 2003 여름) 2001년 말, 고려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천수는 학교를 자퇴하고 울산과 계약하면서 프로 선수가 되었다. 계약금 3억원에 연봉 2000만원, 당시 신인선수가 받을 수 있는 역대 최고액을 갱신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계약에 붙어있는 특별조항들이다. 우선 울산은 이천수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의 이적료 전액을 이천수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당시 이적료의 10%를 선수에게 주는 관례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뿐만 아니다. CF 광고시에도 이천수에게 전액 보장되었다. 예를 들어, 그가 이천수의 이적료가 10억원이고 CF 광고를 몇차례 촬영한다고 가정하면 그는 1년에 무려 20억원을 버는 구조인 셈이다. 사실 그는 모교였던 부평고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입단하길 갈망했었고, 함께 뛰었던 최태욱은 졸업 후 안양 입단을 확정지었다. 집안형편도 어려웠던 상황이었기에, 그는 하루빨리 집안에 큰 힘을 보태기 위해 프로전향을 강력히 원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교 진학을 택하기 되었던 케이스였다. 그렇게 오매불망 프로선수를 꿈꿔왔던 이천수는 실질적인 프로데뷔는 2002년 여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그 전까지는 히딩크 감독 지도 하에 월드컵 이전까지 대표팀 선수들을 합숙식 해외 전지훈련이 연달아 소화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반시즌간 공백이, 울산이나 이천수 양 쪽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후반기에 울산은 무시무시한 팀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가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순간, K리그 모든 클럽들은 그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는데 2002년 시즌 그의 기록이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18경기 출전에 7골에 9도움으로 데뷔 첫 해에 K리그 도움왕과 신인상, 나아가 AFC 신인상까지 거머쥐었고, 그는 유상철과 함께 팀을 리그 준우승까지 끌어올렸다. 만약 울산이 성남을 제치고 2002년에 리그 챔피언에 올랐더라면 이천수가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쥘 뻔 했을 것이다. 데뷔 첫 시즌에 보여준 그의 능력 때문에 그의 별칭이 괜히 '밀레니엄 특급' 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각인시켜주었다. 울산에서의 두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이천수, 그를 막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03년 여름이 되기 전까지 이천수가 기록한 스탯은 18경기 출전 8골 6도움, 가히 "리그를 씹어먹는다" 는 표현의 적절한 예시였다. 그렇기에 이천수를 보는 상대팀은 그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2003년 5월 21일, 상대팀이 얼마나 이천수를 견제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던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당시 울산은 수원 원정을 왔던 상황이었고 후반 23분, 이천수는 수원 수비수와 충돌하다가 어깨가 빠져 한동안 피치 위에 누워있었다. 그 때, 수원 서포터즈는 이천수를 도발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던 이천수는 화가 나서 서포터즈를 향하여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응수했다. 이에 뒤질세라 수원 서포터즈는 '삽질개천수' 라는 플랜카드를 내걸며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그 날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마쳤고, 이천수는 이후 벌금 3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수원 쪽에서 이천수를 도발했던 것은 그가 수원킬러로 유명할 정도로 수원전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지난 시즌 7골 중 2골은 수원이었고, 공교롭게도 데뷔무대도 빅버드였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천수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천수는 참지 못하고 화답해버린 셈이다. 그 후, 이천수는 수원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천수가 울산 선수로 있는 동안 수원은 거의 이겨본 적이 없었다. 이 당시엔 서로가 몰랐을 것이다. 몇 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이다. 3. 한국인 최초 프리메라리가 1호, 하지만 순탄치 않았던 스페인 생활(2003 여름 ~ 2005 여름) 워낙 국내무대를 손바닥 위를 내다보듯이 마음껏 휘젓고 있던 이천수, 그는 분명 국내에서 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이천수에게 뜻하지 않는 손님이 스페인에서 찾아왔다. 그를 보러 멀리서 온 손님은 바로 레알 소시에다드. 소시에다드는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줄곧 이천수의 모습을 지켜봤었고, 그의 K리그 활약상을 보고 확신을 가져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기본 3년 계약에 이적료 42억원에 연봉 6억원, 의식주 부분 모든 것을 지원받게 되었다. 먼저 유럽으로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이었고, 울산 입단 시에 체결한 계약 조건이 발효되어 그는 이적료의 70%인 27억 3천만원을 챙기게 되었다. 성남과 리그 우승경쟁을 벌이고 있던 울산 입장에서는 전력상 상당한 타격이지만, 울산 성향이 선수들의 해외진출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의 스페인 진출은 마치 1990년대 후반에 안정환이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하는 것과 맞먹을 만큼의 이슈를 몰고 왔다. 등번호 19번을 받은 이천수, 때마침 레알 소시에다드가 지난시즌 리그 2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무대까지 진출한 상황이었기에 그는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출전할 수 있는 영광까지 누렸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렀는데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진출하는 것이 꿈" 이라는 발언이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레알 마드리드와 앙숙 관계였는데 이천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인터뷰 도중 실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가 입단할 당시 매우 환영했던 현지 팬들과 구단은 그의 인터뷰 때문에 소시에다드를 그저 "거쳐가는 클럽"으로 생각한다며 반감이 생겼다. 논란 속에서 레알 소시에다드 선수로서 라리가에 모습을 드러낸 이천수, 하지만 K리그에서 보여줬던 이천수 특유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오히려 위축되어 있었다. 2003/04 시즌, 그는 총 13경기에 무득점으로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쳤고, 팀 또한 중위권으로 추락하며 시즌을 마쳤다.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소집될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2004/05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 2부리그에서 갓 승격된 팀인 누만시아로 임대가게 되었다. 당시 소시에다드에선 Non-EU 규정 때문에 카르핀, 니하트, 코바체비치 등에 밀려 출전기회가 다소 적었고, 반면 누만시아는 스쿼드가 빈약했기 때문에 다소 출전기회는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누만시아로 임대가서도 이천수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누만시아와의 임대가 끝난 후, 국내로 복귀할 준비를 하였다. 그의 유럽 진출기는 실패로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4. 한국으로 돌아온 '사기 유닛' 울산의 제2 전성기를 만들다(2005 여름 ~ 2007 여름) 국내 복귀를 모색하던 이천수, 그에게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바로 친정팀이었던 울산이었다. 이천수가 떠난 이후, 울산은 막강한 수비를 앞세워 최강방패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경기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거나 상대의 심장을 꿰뚫을 창끝이 무뎠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울산이 번번히 우승으로 가는 문턱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고, 팀을 이끌던 김정남 감독의 발목을 잡고 있던 주요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김정남은 이 문제를 이천수로 해결하기로 결심한 셈이다. 그렇게 2005년 여름, 그는 호랑이굴로 컴백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으로 컴백할 때, 사람들은 과연 이천수가 스페인 생활동안 잃어버렸던 감각과 자신감을 재빠르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고 보통 웬만한 선수들은 복귀하고 난 뒤에 적응하는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이것은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론의 상식을 완전 뛰어넘어버렸다. 이천수를 다루는 법을 잘 알았던 김정남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고, 그는 최대한 이천수를 최전방에 배치하면서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천수는 그에 보답하는 듯한 모습으로 반시즌 밖에 소화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7골 5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 선보였던 그의 모습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플레이오프 3경기동안 무려 3골 2도움을 기록했고 그 중 챔피언결정전이었던 인천과의 홈&어웨이 경기 중 1차전에서 3골 1도움으로 혼자서 인천을 초전박살내는 말그대로 끝판왕의 아우라였다(이것이 후에 제작된 인천의 다큐멘터리인 '비상'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졌다). 결국 울산은 이천수의 맹활약 덕분에 2005년 두번째 별을 달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이천수처럼 반시즌동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건 이전에도 없었고, 오늘날까지도 찾아볼 수 없다. 리그 MVP와 베스트 11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이천수, 그 다음해인 2006년에도 선봉장에 선 그는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들을 여러가지 만들어냈다. 짧고 굵직한 족적이 바탕이 되어 그는 딕 아드보카트의 간택을 받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첫 경기인 토고전에서는 안정환이,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서는 박지성, 그리고 마지막 조별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는 심판판정 논란이 부각되긴 했지만, 이천수는 박지성에 버금가는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였고, 토고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4년 전 무득점의 한을 풀기도 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가 나오니 바로 A3 챔피언스컵 대회였는데, 울산은 한국 대표로 출전하였고, 감바 오사카와 제프 유나이티드, 그리고 다롄 스더와 풀 리그 형식으로 치뤘다. 특히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가 이천수라는 이름을 아시아 전역에 떨치는 경기가 되었는데, 당시 이천수는 감기기운으로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교체출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전에 무려 해트트릭을 달성하면서 감바 오사카를 6대0으로 격파하는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다롄 스더 경기에서도 2골을 쓸어담아 울산이 대회 우승을 하는 데 1등 공신으로 떠오르면서 득점왕과 MVP까지 싹쓸이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울산은 '아시아 깡패' 라는 별칭까지 탄생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울산의 위용은 대단했다. 특히나 8강전이었던 알 샤밥(사우디)와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로, 1차전에서 6대0 대승, 그리고 2차전에 1대0 승리로 통합 7대0 승리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선사하였다. 이천수는 역시나 이 경기에서도 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록 4강전인 전북과의 두 차례 경기에서 통합 6대4로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천수의 역량이 가장 만개하던 시기가 아니었나하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2007년 2월,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그리스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골은 후에 팬들이 선정한 아름다운 골이 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못다 핀 꿈이었던 유럽 진출을 다시 한 번 노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 무대였고, 송종국이 뛰었던 페예노로트였고, 그 해 8월에 이적완료하였다. 5. 날개가 꺾인 비호(飛虎), 악마의 재능으로 불리게 되다(2007 여름 ~ 2012) 페예노르트에서 등번호까지 부여받은 이천수, 하지만 그는 페예노르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새 팀에 적응해야할 시기에 한국에서 소송문제로 심적으로 묶여있는 상태였고, 이천수가 여기에 신경쓰다보니 페예노르트에 제대로 녹아들 리가 없었다. 그의 부진한 모습에 네덜란드 현지 언론들과 팀에서는 당연히 그를 곱게 보질 않았다. 결국 2008년 7월, 이천수는 한시즌만에 페예노르트를 떠나 다른 팀으로 임대가야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그는 K리그 무대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울산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를 가장 껄끄러워했던 수원이 당시 차범근 감독의 요청 하에 그를 임대영입한 것이다. 가장 싫어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빅버드에서 뛰게 되었으니 당시 수원팬들은 말그대로 '충격' 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이천수가 부진과 부상으로 3경기 밖에 소화하지 못한데다가 팀 내 항명사건까지 일으키니 그를 증오 수준으로 배척하였다. 항명 도중 팀 내 동료 폭행을 저질러으니 차범근 또한 억누르던 분노를 참지 않고, 그를 임의탈퇴로 공시해버렸다. 임의탈퇴 처분을 받게 된다는 것은, 사실상 이천수는 더이상 K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고, 그의 선수생활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위기에 봉착했던 이천수를 구원해준 인물은 바로 과거 2002년 월드컵 때 함께했던 전남의 박항서 감독이었고, 극적으로 임의탈퇴까지 가진 않았다. 이천수는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전남으로 임대가는 모양새로 광양에 둥지를 틀었다. 7경기 4골을 기록하는 등 기량은 서서히 예전의 모습으로 찾아나가는 듯 했지만, 다른 문제가 이천수의 발목을 잡았다. 쉽게 설명하면, 2009년 2월, 이천수가 전남에서 뛰기 직전에 선수 본인 동의 없이 에이전트와 전남이 말도 안되는 계약을 체결했었다. 그러던 와중, 원소속팀인 페예노르트는 그 해 여름 사우디의 알 나스르로 이천수를 이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천수 또한 알 나스르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이 사실을 안 전남은 이천수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껴 그의 이적에 제동을 걸려고 했었고, 이천수는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려고 하는 전남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한 번 그는 코치스태프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고,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면서 전남의 뒤통수를 쳤다. 전남은 이에 이천수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였고, 연맹은 그것을 받아들여 그를 임의탈퇴로 처분하였다. 사실 이 문제는, 양 측의 잘못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전남은 선수가 알지 못하게 어떻게 해서든 갑의 입장에 서기 위해 치졸한 모습을 이적과정에서 보여주었고, 이천수는 전남에서 뛸 때에도 적잖게 사건사고를 일으킨 데다가 떠나는 과정까지도 트러블을 만들어 모든 이의 비난을 샀던 것이다. 모든 논란을 만들고 사우디로 떠났던 이천수, 알 나스르 선수로서의 삶도 그렇지 평탄치 못했다. 알 나스르에서 15경기 출장하여 3골을 기록하며 나쁘진 않았으나, 문제는 구단에서 급여를 제 기한에 맞춰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 체불이 길어지자, 이천수는 이 명목 하에 무단 이탈하였고, 다음 행선지는 J리그의 오미야로 정했다. 이천수는 오미야에서 연습생 신분부터 시작하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했었던 시절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말 계약이 종료되면서 그는 무적신세가 되어 새로운 팀을 알아봐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듬해 호주 A리그의 어느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이천수는 거절했다. 그는 K리그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타향살이가 힘들었던지, 이천수의 마음 한 켠에는 'K리그에 복귀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국내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바로 전남과의 틀어진 관계를 되돌려놓아야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가 간단해보이면서도 쉽지 않았다. 비록 전남 또한 잘못한 점은 있지만, 이천수가 전남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부분 등이 합리화시킬 수는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고, 전남의 공식 입장 또한 "진정성이 부족하다" 고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전남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감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그러던 2012년 10월, 이천수는 직접 광양까지 내려가 전남의 홈경기를 보러온 관중들 한 명 한 명 대상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것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천수는 이후에도 본인이 용서받을 때까지 홈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와서 사과하겠다고 말했으나, 축구인 상당수는 그의 진정성을 여전히 의심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3년 2월 5일, 프로축구연맹에서 그의 임의탈퇴 신분을 풀어주었고, 22일에는 전남도 그를 풀어주기로 확정지은 것이다. 드디어 이천수의 고난의 연속이 끝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6.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마음으로, 고향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2013 ~ 2015) 극적으로 K리그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천수, 전남이 임의탈퇴를 풀어주기로 한 소식과 동시에 그의 입단소식이 보도되었다. 팀은 자신의 고향팀인 인천이었고, 등번호는 10번을 받았다. 4년만의 복귀라 그런지, 이천수는 절주선언에 이어 오로지 가족과 축구에만 전념하겠다고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1년동안 무적신세였던 탓이 예전같은 기량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당시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절실히 필요했던 인천 입장에서는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팀 전력에 충분히 보탬이 되었다. 그러던 4월 16일,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풀타임 소화한 후에 전남 서포터들이 포진하고 있던 원정석으로 다가가 깍듯이 인사하였고, 이에 박수로 화답하는 등 서로간의 앙금이 완전히 풀렸다. 그 후 4일 뒤에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면서 1,428일만에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급작스런 현역복귀로 몸이 적응안되었는지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적도 있지만, K리그 복귀 후 첫시즌은 19경기 2골 5도움으로 팀 성적을 고려하면 제법 괜찮은 스탯이었다. 그리고 이천수는 연봉 삭감까지 감수하면서 인천과 2015년까지 함께하며 인천과의 의리를 과시함과 동시에 팀 내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풍미하던 사기유닛도 나이에는 장사 없었고, 예전과 달리 날카로움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가 부상 빈도 또한 높아져서 출전 횟수조차 점점 줄어들었다. 부상으로 인천이 FA컵 결승전에 진출하던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5년 11월 5일 JTBC 뉴스룸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고, 11월 28일인 마지막 홈경기는 부상으로 인해서 은퇴식으로 대체하여 그의 파란만장했던 선수로서의 생활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이천수는 "게으른 천재", 또는 "트러블메이커" 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는 적합하지 않다. 그가 경기 때마다 번뜩이는 모습이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그는 승부욕이 강해서 그 어떤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 악바리 스타일이며 이천수 본인 또한 악바리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트러블메이커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도 조금 억울한 것이, 해외 사례만 하더라도 이천수보다도 더 심하면 심한 선수는 끝도 없다. 호마리우, 안토니오 카사노, 조이 바튼, 아드리아노, 마리오 발로텔리, 하르템 벤아르파 등 피치 밖에서 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으면서도 잘만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국내에서 이천수 같은 유형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가 비록 언론에서 보여줬던 인터뷰 방식 등이 경솔했던 것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이천수의 업적이나 기량 등을 폄하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하는 바다. 인천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통해 개과천선 했으니 이만하면 훈훈한 결말이다. 은퇴식을 치르고 나서 인천 서포터즈는 "풍운아를 품은 우리가 행운아" 라는 걸개를 내걸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플레이어를 배웅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쓰고 싶었던 것은 울산 쪽이 아니었나 싶다. 이천수의 전성기는 곧 울산의 전성기 중 하나로 꼽힐만큼 일종의 공동운명체로 함께 해왔다. 김정남 감독이 이천수에게 모든 걸 맡기듯이, 울산에게 있어서 이천수는 "쟤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이천수는 무언가 해줄 것이다." 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고, 이천수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여 결국 울산을 리그 챔피언에 올려놓은 후에 아시아 깡패라는 칭호까지 선사했다. 실제로 이천수가 임의탈퇴 신분으로 K리그에서 한동안 떠나있을 때에도 남들은 다 적으로 돌아서도 항상 그의 편에 서있었던 것은 울산 팬들이었고, 그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오더라도 집 나갔던 자식이 돌아온 것마냥 환호해주곤 했다(심지어 울산으로 돌아오라는 걸개도 걸렸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JTBC 해설위원으로 종종 울산 문수경기장을 방문할 때마다 울산 팬들로부터 이천수콜을 받는다. 누가 뭐래도 그는 울산의 또 하나의 레전드였고,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K리그 사기 유닛' 이다. 두고두고 기억하리, 이.천.수.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성남FC 선수들의 선행
지난 7일부터 전지훈련지인 일본 구마모토로 떠난 성남FC 선수들. 그런데 이곳에서 발생한 일이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일본 축구 매체 게키사커는 9일 "K리그 성남FC의 미드필더 남준재와 김성준, 골키퍼 박준혁과 정산, 수비수인 윤영선 등 5명이 7일 길가에 쓰러진 여고생을 구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당시 5명의 성남 선수는 식사 후 구마모토 시내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 위 사진과 해당 사건은 무관 그때 횡단보도에서 한 여고생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습니다. 이를 목격한 성남 선수들은 여고생을 도왔습니다. 특히 일본 오사카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김성준이 일본어로 주변 주민들에게 구급차를 부를 것을 요청해 별 탈 없이 일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해당 소식은 9일 야후 포털 사이트에 톱 기사로 등재되는 한편 SNS 사용자 사이에서 2000여회 공유되며 널리 퍼졌습니다. 한 일본인 사용자는 차분하게 일본어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던 김성준에게 ‘지난 한해만 일본에서 활동을 했음에도 차분하게 일어를 사용하며 여학생을 구조해서 감사하다’는 훈훈한 내용의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이용자는 ‘해당 여고생에게 운이 따랐다. 적극적으로 도와준 K-리그 선수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한다’고 적었습니다. 이번 선수들의 선행은 팬들과의 소통 및 투명한 구단운영을 통해 시민구단의 롤모델로 성장하는 목표를 설정한 성남FC에 호재가 될 전망입니다. 매일 국위선양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진정한 국위선양은 거창한 업적보다 이런 선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여고생을 구한 성남FC 선수들 명단> 성남 골기퍼 박준혁, 정산, 수비수 윤영선, 미드필더 남준재, 김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