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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 로버트 A. 하인라인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SF 소설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한국 SF 소설들의 힘 덕분일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유행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기쁠 따름이다.(어린아이들에게 SF 소설은 과학자의 꿈을 길러주기 마련이니까.) 점점 발전해가는 한국 SF 소설계의 흐름에 발맞춰 오랜만에 SF 소설을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집어 든 책이 바로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이었다. 이 소설의 저자인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SF 문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이 소설의 가장 뒷부분에 나오는 작품 해설 및 역자 후기 부분을 보면 아시모프는 SF를 통해 박학다식과 위트를, 클라크는 SF에 과학적 엄밀성과 철학적 깊이를 더했고 하인라인은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SF의 재미가 무엇인지 보여줬다고 한다.(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이란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박학다식은 몰라도 위트 하나는 확실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인라인의 대표작인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을 읽고 가장 먼저 남은 감상은 아쉬움이었다. 그것도 과학적 깊이나 오류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SF의 '재미' 부분에서 다가오는 아쉬움이라 안타까웠다. 소설의 주인공은 킵이라는 남학생이다. 이제 곧 대학을 가야 할 나이의 킵은 달에 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달 여행을 상품으로 건 비누 회사의 표어 선발 이벤트에 5,000 여장의 표어를 보내지만 중복 당첨이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표어가 도착한 사람에게 달 여행 기회를 준다는 규칙에 의해 달 여행의 기회가 아니라 중고 우주복(실제로 우주인이 우주에서 입었던)을 받게 된다. 언젠가 달에 가겠다는 의지로 우주복을 고치고 닦아 새것처럼 만든 킵은 대학에 갈 돈을 벌기 위해 우주복을 팔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입어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들판에서 우주복을 입고 교신 장치를 건드리며 논다. 그때 갑자기 잡힌 신호에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응답을 보낸 킵. (이런 소설에서는 으레) 당연하게도 우주선이 착륙하고 킵은 납치당한다.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 벌레 머리에게. 끔찍하게 생긴 벌레 머리는 엄마 생물이라는 외계인(킵에게 우호적이며 엄마 생물이라는 명칭처럼 가까이 가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생명체다.)과 피위라는 여자 아이도 함께 납치한 상태였다. 킵과 피위 그리고 엄마 생물이 힘을 합쳐 벌레 머리에게서 탈출하는 우주 활극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벌레 머리에게서 킵과 피위, 엄마 생물이 힘을 합쳐 탈출하는 내용이 소설의 중후반까지 쭉 이어진다. 탈출과 좌절의 반복이 계속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에서 그리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보통 재밌다고 느끼는 장르 소설들의 경우 서사에 이끌려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되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야 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못 덮겠어!"가 아니라 "자야 되니까 덮고 내일 보지 뭐." 하는 느낌이랄까. SF 3대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의 대표작이라 너무 기대를 한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설정과 묘사는 흥미로웠다. 엄마 생물이라는 생명체와 그들의 특이한 의사소통 방식, 오스카(킵이 자신의 우주복에 붙인 이름이다.)에 대한 세세한 묘사, 달과 명왕성 등 미지의 행성에 대한 실감 나는 설명 등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에서 끝이었다. 그 흥미가 서사의 재미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히, 예상 가능하게 흘러간다. 필사의 탈출, 좌절, 또 한 번의 탈출, 좌절, 다시 또 탈출, 좌절......  끝없이 탈출과 좌절의 반복이 이어질 뿐, 무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긴장되는 순간이 없었다. 그건 아마 이 소설이 60년도 더 된 1958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이라 그런 듯하다. 긴 시간 동안 이미 너무나 많은 SF 소설, 영화,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과거에는 너무나 흥미로웠을 서사가 지금은 당연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60년도 더 지난 소설에 지금의 시각으로 재미를 찾는 것이 조금은 매정할 수도 있지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앞부분은 재미없었다 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중후반을 넘어서서 지루한 탈출 과정을 지나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외계 종족과 인류, 행성과 별의 존망, 생명의 존재 의의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갑자기 엮여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상상력과 이야기 진행, 질문을 던지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주제 의식은 하인라인이 SF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납득시켰다. 후반부가 앞의 탈출 과정에 비해 짧은 것이 엄청나게 아쉬울 정도였다. "뭐야, 이게 끝이야? 킵이랑 피위 지구로 돌려보내지 말고 더 장황하게 써 달라고!"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반부만큼은 바로 어제 이 소설이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뛰어난 SF 소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부까지의 지루함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60년이 넘은 소설이 이 정도의 감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이 지닌 가치와 생명력의 대단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탈출 과정도 재미없어서 덮어버리고 싶은 정도는 아니고 충분히 읽을 만하다. 하인라인의 명성과 내 기대에 비해 아쉬운 정도라고 말하면 되려나.)  좋은 SF 소설이고 60년의 세월을 감안하면 아주 뛰어난 SF 소설이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한 문장 "... 당신은 우리에게 예술이 없다고 했습니다. 파르테논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들이 전쟁 중에 폭파했지."
파리는 지금 괜찮은가요?
오늘 이동제한 조치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외출을 하였다. 조금 작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서 일주일 동안 구멍이 조금 뚫린 성벽을 다시 바를 무언가를 사 오기 위해서였다. 커플이라도 가족이라도 되도록 한 명만 외출을 하여 장을 보고 오라는 게 정부의 지침이어서 프랑스에 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서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파리와 남쪽 벙리우를 연결하는 꽤 큰 도로 근처에 있어서 이동제한이 실시된 후의 풍경 변화를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었다. 아이의 필통처럼 색색의 볼펜으로 가득 차던 버스는 정류장에 멈춰 조금의 공기를 빼고 채우곤 금세 가벼운 배기음으로 정류장을 떠났다. 점심때와 해 질 녘 장바구니를 메고 끄는 이들이 몇 분에 한 사람씩 괘종시계처럼 우리의 창을 좌우로 가를 뿐 큰 사건도 사건에 걸맞은 소음도 없었다.  우리 건물과 마주 보며 서 있는 건물은 겨울 내내 덧창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제는 덧창을 걷고 해가 지면 은은한 노란빛을 우리의 방안에 보태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담은 지난 주말 하루 종일 이층의 창들을 물걸레로 닦으셨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괜스레 나도 세탁기를 다 밀어내고 전 거주민들의 역사를 닦아내었다. 사실 내게는 꽤 큰일이 하나 생겼는데 내가 즐겨 바라보던 길 건너 세차장이 그만 폐쇄를 한 것이었다. 상점 영업이 종료된 이후로도 한 이틀 영업을 해서 계속 열 수 있는 건가 했었는데 지난 수요일 아침 일어나 덧창을 열어보니 그 널찍한 공간을 가느다란 줄 몇 가닥으로 막아 두고 있었다. 너무나 큰일이라 내가 쓰고 있는 글에 한 페이지나 써넣었다. “ 주말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던 집 앞 세차장이 폐쇄되었다. 처음에는 축구 경기가 중지가 되었고 공연들이 그리고 학교가 앞을 다투듯이 문을 닫았다. 그리곤 채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카페와 바, 상점들이 강제로 폐쇄가 되었고, 햇빛이 잔인하던 그 주말, 터지는 봄 꽃 같은 방종이 있은 후, 벌처럼 전 거주민들의 이동이 금지되었다. 아주 먼 곳 내가 이름도 처음 들어 본 곳에서 터진 화산재가 바람을 갈아타며 나의 유일한 재미를 덮쳐버린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가십이었는데 계절을 채 못 벗고 모든 곳들의 일면짜리 뉴스가 되었다. 세차장은 일주일 이주일에 한번 덧창을 열고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어느 마담의 2층 집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은 별 다른 구조랄 것도 없이 중앙에 작은 사무실이 있고 그 위에 갓처럼 넓고 평평한 지붕이 얹어져 있는 게 고작이다. 그 날개 같은 지붕 아래의 공간을 차의 넓이에서 조금씩 여유를 두고 칸막이로 쪼개어 놓아 한번에 5대의 차들이 주차하듯 차를 세워 두고 지붕에서 뿌려 주는 물과 거품으로 차를 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사무실 앞 동전교환기로 가서 코인을 바꾸는 일부터 지붕에 달린 호스를 돌려가며 차에 물을 뿌리고 밀대로 차에 거품을 두르는 일 차를 헹궈내고 걸레로 물기를 닦는 일까지 그전에 차에 앉아서 앞차를 기다리는 일 조금씩 차를 앞으로 당겨 대는 일 그 모든 일들은 각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 햇볕이 좋은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도 세차장은 차를 받았다. 헬스장이라도 되는 듯 심심한 얼굴의 사람들이 기꺼이 차를 몰고 와서 한참을 앉아 기다리다가 자신의 키만 한 호스와 밀대를 온몸으로 움직이며 차를 씻는 모습, 그런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가만히 창 앞에 서서 10분이고 20분이고 지켜보는 것은 무척 우스운 일이다. 그런 우리의 가마 위로 하늘은 늘 너무 밝거나 장엄한 구름이 뒤덮었거나 아이의 그림에서 처럼 명암도 없이 하얀 구름들이 장난처럼 머물러 있거나 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할 만한 날은 없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지켜볼 만한 날은 없었다.  “ 마트를 가는 길은 길어야 5분, 종종걸음으로도 몇 백 걸음이 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초식동물인 나는 어젯밤부터 긴장을 했다. 뒤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없게끔 후드 모자를 덮어써 검은 머리를 가렸고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선 공격성을 조금이라도 일찍 찾아내기 위해 오감을 다 끌어 썼다.  마트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서로 2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피하라고 했기에 줄은 사람의 수보다 훨씬 긴 길이로 늘어져 있었다. 마트는 실내에 머무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놀이기구처럼 몇 명씩 단위를 끊어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지겨운 대기 동안 줄줄이 폐쇄된 상점들을 바라보았다. 철문이 다 내려진 거리 속에 유일하게 햇볕을 토해내는 긴 창 옆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날씨가 모진 날 굳이 놀이공원에 놀러 와서 겨우 운영하는 몇 안 되는 기구에 매달려 있는 이들의 모습 같았다. 언짢고 다행이고.. 날씨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사정들. 기막힌 교차. 차례가 되어 마트에 들어가 엠마가 메모해준 쪽지를 보며 장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이 쪽지와 상품을 산만한 눈빛으로 대조하고 있었다. 다행히 과일과 채소 등은 수량이 꽤 풍부했다. 다만 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계란은 재고가 없어 사질 못했다. 다들 서로 피하듯 배려하듯 사람이 없는 칸들을 찾아 들어서고 금세 넘겨주고 하면서 미션처럼 장을 보았다.  마트 안의 사람 수를 제한하다 보니 계산대에서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바구니에 담아 온 물건들을 다 스캔하고 이미 내 가방에다 다 담았는데 뒤져 봐도 내 주머니 어디에도 지갑이 없었다. 소매치기는 아니었다.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자물쇠를 허리에 거는 루틴을 빠뜨렸다는 사실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떡하지 이 물건들을 다시 가져다 놓고 집으로 가 지갑을 가지고 온 다음 다시 줄을 서서 장을 봐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아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걸맞은 프랑스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묻는 점원에게 이렇다 할 대답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렸다.  “아이 돈 헤브 뽁뜨페이으.” 그 간단한 프랑스어 문장도 완성하지 못해 영어와 섞어 버리는 꼴이라니.. “뽁뜨페이으? 알레지.” 죄송하다며 장 본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두려고 하자 직원이 나를 만류하며 얼른 지갑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운동 부족을 실감하며 집으로 달려갔다. 깜짝 놀라는 엠마에게 지갑을 건네받고 혹시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이 기다리진 않을까 염려하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마트로 달려갔다. 별로 효과도 없었겠지만 카드의 비번을 재빨리 누르고 물건들도 최대한 빨리 가방에 넣었다.  “멕시! 오흐부아.”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마트의 문을 나섰다. 조금 더 길어진 줄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슈퍼에 가기 위해 엠마와 어깨를 한 사람 분만큼 붙이고 걷던 길이 눈에 들어왔다. 대중교통 파업 때 “쿠쿠” 하며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타시던 할머니와 함께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던 버스정류장도 눈에 들어왔다. 감상도 위험한 시기라 고개를 젓고 장바구니를 고쳐 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걸음에 어떤 목적도 담겨있지 않아 보이는 어느 흑인 분을 나도 모르게 경계했다. 못 된 버릇이다. 집 앞 작은 사거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줬던 나무의 꽃이 골목에 바람과 중력을 그리며 떨어져 있었다. 이미 몇몇은 걸음에 짓이겨 있었다. 나무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외출의 목적과 관계가 없는 리스트에도 없는 걸음과 손짓.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여 채 몇 장 찍지도 못하고 얼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나를 인식하고 나를 따라오는 어느 흑인 분의 모습이 보였다. 신경을 안 쓰는 듯 신경을 쓰며 집 현관을 열었다. 지나가겠지 했는데 그 흑인 분이 나를 따라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섰다. 순간 나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차분히 현관에 놓인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흑인 분이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봉쥬흐.” 우편함이 있는 현관을 지나면 다시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 어찌해야 할까 다시 현관 밖을 나가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분이 그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분명 연기이겠지?’  문이 열렸다.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우편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놀란 것을 그분도 느끼셨을 텐데.. 미안함과 씁쓸함에 한참을 더 현관에 머물러 있다가 비밀번호를 풀고 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가려는 층에 멈춰 있었다.  “나와 같은 층에 사시는구나.” 이 곳에서 인종차별도 몇 번 당했지만 떳떳하게 분노하지 못 한 이유는 내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너무나 분명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표현을 안 하고 공격을 안 했지만 나는 그들을 신경 쓰고 있었고 피하고도 있었다. 그것이 과연 그렇게나 큰 차이인 걸까. 선과 악이 분명한 사람들.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과 달리 나는 그 어떤 것들에도 그다지 멀리 있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한다. 정치는 하지 못하고 참여도 하지 못하고 싸움은 진작에 그만두었고 생각만 한다. 비겁한 시간들이다. 너무나 잘 알았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씁쓸한 사실 말고는 모든 게 지워져 버렸다. 긴 비행이 있었고 너무 많은 바람이 나를 흘러갔다. 장만 보고 왔는데 하루가 다 지났다. 어느 산, 겨울이 늦게 물러나는 나무 아래에 앉아 사람들은 벌써 잊었을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조용한 곳이라 나는 내가 더 뚜렷이 보이고 너무 뚜렷한 나는 부끄러워 쉽게 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다.  우울한 얘기들만 넘쳐나던 유학생 커뮤니티에 프랑스인들로부터 받은 도움이나 두려움을 풀어지게 만드는 친절함 등을 담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짐을 다 못 담는 이에게 자신의 장바구니를 나눠주거나 트램과 버스를 오르내릴 때 생수통을 대신 들어주거나 하는 몇 주 전이라면 일상의 배경을 그릴 사소함들이었겠지만 지금은 모르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게끔 만드는 소중함이 되었다. 공포도 일상이 되면 조금씩 패닉은 사라지고 우리가 노력해서 되고 싶은 모습이 조금씩 우리의 얼굴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사재기는 줄어들고 인사는 늘어난다. 그러한 것들이 전부 다 가식인 걸까. 나는 그러한 노력들이 반갑다. 공포와 혐오는 분명 우린 안에 있다.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얼굴을 잘 모르거나 애를 써 스스로를 속이는 거겠지. 분명 어둠은 우리 안에 기원처럼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훨씬 넓은 땅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가만히 둔다 해도 완전히 어두운 땅이 되기 위해선 낮이 밤이 될 만큼 시간이 흘러야 한다. 
예금과 적금, 무엇이 더 나을까?
※ 이자가 많은 예금 vs. 이자가 적은 적금 | 예금과 적금 | 예금은 목돈을 일정 기간 넣어두고 이자를 받는 상품을 말한다.  가령 1,000만 원을 한꺼번 에 넣어두고 1년 후에 찾으면 예금이다.  적금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저금해서 일정한 기간이 흐른 후에 목돈으로 찾는 상품을 말한다.  가령 매월 10만 원씩 저금한 후, 1년 뒤에 원금 120만 원과 이자를 받는 상품이 있다면 적금이다. 우리는 예금이나 적금을 이용할 때 ‘~%의 이자를 준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여기서 ‘~%의 이자’는 정확히는 ‘연 ~%’의 의미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연 2%의 이자를 주는 예금에 가입했다면 1년 동안 1,000만 원을 넣어 둔 대가로 은행에서원금 1,000만 원의 2%에 해당하는 20만 원의 이자를 지급한다.  그렇다면 1년이 아닌 6개월만 넣어두면 이자는 어떻게 될까?  1년간 넣어뒀을 때의 절반인 10만 원의 이자를 받는다.  같은 조건으로 1개월만 맡기면 이자는 1년간 받는 이자 20만 원의 1/12인 16,666원을 받게 된다. 은행뿐 아니라 증권사나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은 돈을 맡기면 1년을 맡기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이자율을 표시하되, 1년 이하일 경우에는 돈을 넣어둔 기간을 계산해서 그 기간 동안에 발생하는 이자만을 지급한다. 이런 원리를 이해했다면 예금과 적금의 이자율 차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연 2%의 이자를 주는 적금에 매월 100만 원씩 불입한다면, 원금은 1년간 1,200만 원이 된다.  하지만 매월 불입하는 100만 원은 통장에 넣어둔 기간에 따라 이자액이 각각 달라진다.  첫 달에 넣어둔 100만 원은 1년간 통장에 있게 되니까 연 2%에 해당하는 2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 다음달에 들어가는 100만 원은 1년이 아닌 11개월만 있게 되니까 1년 기준으로 1개월 동안의 이자를 빼고 준다.  즉, 100만 원에 대한 1년 이자 2만 원에서 1달 이자인 1,643원(30일 기준)을 빼고 18,357원만 이자로 받는다.  이후에 넣은 돈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1년을 못 채운 만큼의 이자를 기간별로 빼고 받는다. 이런 식으로 1년간 적금에 불입하면 원금 1,200만 원에 대해 받는 실제 이자의 합계는 13만 원이 되고,  이는 원금 대비 1.08% 정도여서 겉으로 표시된 이자율 2%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적금의 이자율이 2%라고 해서 실제로 내가 받는 이자가 원금의 2%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년간 목돈 1,000만 원을 예금에 넣어두고 적금도 매월 100만 원씩 붓고 싶다면, 아래의 은행 중 어디가 유리할지 따져보자. (이자소득세 15.4%는 무시한다.)   1. Olive은행 : 예금금리 2%, 적금금리 3%  2. Jin은행 : 예금금리 3%, 적금금리 2% 둘 중 어느 은행을 찾아가는 게 유리할까?  정답은 Jin은행이다. 언뜻 보면 Olive은행의 적금금리가 Jin은행보다 높은 데다 적금의 경우 원금이 1,200만 원(100만 원 × 12개월)이고, 예금은 1,000만 원이기 때문에 Olive은행이 조금 더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실제 받는 이자금액은 이자율이 같을 경우, 적금이 예금이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금금리를 더 주는 Jin은행이 돈을 불리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 A) Olive은행에 맡겼을 경우 이자 총액 : 39만 5,000원       예금이자 200,000원 + 적금이자 195,000원 = 395,000원 B) Jin은행에 맡겼을 경우 이자 총액 : 43만 원      예금이자 300,000원 + 적금이자 130,000원 = 430,000원
채널A 기자, "가족 지키려면 유시민 비위 내놔라"
세줄 요약 1. 채널A 기자가 윤석열 최측근, 윤석열 라인과의 친분을 내세워 2. 수감중인 신라젠 전 대주주에게 접근한 후 유시민이나 여권 인사를 엮어달라며 협박 3. 협조 안 하면 가족까지 죽는다며 협박 한 사실을 MBC가 보도했습니다. (아래는 해당 기사 동영상) 그리고 제일 아래는 이에 대한 채널A의 입장도 있습니다 ㅎㅎ (그리고 기사 원문) 그리고 바로 채널 A가 입장을 내 놨네요. 채널A의 뉴스A 클로징 멘트에서 입장 표명을 했군요. https://youtu.be/N-vdtSysG6E 간추리면 우리가 잘못한 건 맞는데 불법으로 녹취한 MBC 취재방법도 잘못 됐다는 거네요 ㅎㅎㅎ (아래는 전문 텍스트) 방금 전 MBC가 보도한 채널A의 신라젠 사건 정관계 연루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채널A의 입장을 밝혀드리겠습니다. 채널A는 지난 22일 사회부 이모(이동재 사회부 법조팀) 기자가 신라젠 전 대주주인 VIK 이철 전 대표의 지인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취재원을 접촉해 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 피의자인 이철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선처 약속을 받아달라는 부적절한 요구를 받아온 사실도 파악하고 즉각 취재를 중단시켰습니다. 이철 전 대표의 지인이라는 인물에게도 23일 이 전 대표의 선처 약속 보장은 가능하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전달하고 취재 중단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채널A는 해당 기자가 취재원의 선처 약속 보장 등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인 적은 없으나, 취재원에 대응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전반적인 진상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채널A는 취재과정 조사 결과와 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MBC는 검찰에 선처 약속을 요구한 취재원과 채널A 기자가 만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고, 해당 취재원으로부터 기자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내용을 제공받아 보도했습니다. MBC가 사안의 본류인 신라젠 사건 정관계 연루 의혹과 무관한 취재에 집착한 의도와 배경은 무엇인지 의심스러우며,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게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채널A는 MBC 보도내용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나 왜곡 과장한 부분은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입니다. 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