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2015년)은 세이코 다이버 워치 탄생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시계 분야에서 스위스의 거대한 시계제조 시스템에 대항할 만 한 국가는 이제 일본과 독일 정도만 남아있고, 특히 세이코는 일본의 시계 제조 역사와 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그 중 세이코 다이버 워치는 시계 애호가들은 물론 일반인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제품으로 그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해보려 합니다.

마린마스터 프로페셔널 1000m 다이버
50주년을 맞이한 다이버 라인의 핵심 모델은 마린마스터 프로페셔널이었습니다. 포화잠수에 대응하는 1000m 방수 능력을 갖춘 프로페셔널 사양으로 세이코 다이버 워치의 특징인 헬륨가스 배출 밸브가 없는 구조에 한번 더 아우터 케이스가 본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기계식 칼리버 8L35를 탑재합니다. 세이코의 다이버 워치, 기계식과 쿼츠식 각 하나씩의 시계는 실제로 잠수함 카이코(KAIKO) 7000 II의 외부에 부착되어 바다 속으로 들어가 극한의 테스트를 거친바 있습니다. 테스트 영상에서 ISO 6425 규격에 대응하므로 1250m를 견디면 충분하지만 둘 모두 3000m를 견디며 오버 엔지니러닝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메이드 인 스위스 다이버 워치 중 ISO 6425 규격으로 만들어지는 모델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대단히 매력적인 다이버 워치임에 틀림없습니다. 케이스는 티타늄을 기본으로 로즈 골드, 블랙 코팅을 했으며 세라믹도 사용합니다. 지름은 48.2mm.

'세이코 다이버 워치 역사가 그렇게나 오래 되었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세이코5, SKX007, SBDC001(일명 '스모'), 몬스터, 마린마스터, 튜나 시리즈 등 세이코의 주요 베스트셀러 다이버 워치는 적어도 한번쯤 본적이 있거나 경험해봤을 듯 합니다.
세이코 다이버 워치는 흔히 '가성비' 면에서 독보적인 명성과 입지를 자랑합니다. 일례로 SKX007 내지 SKX779 모델만 보더라도 20~30만원대에 200m 방수 사양과 뛰어난 야광 성능, 그리고 매뉴팩처 자동 칼리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무라이(SBDA001)나 스모 시리즈를 포함한 프로스펙스(Prospex) 라인은 유저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중저가 다이버 워치 카테고리에서 클래식이 되었고, 마린마스터 시리즈와 그랜드 세이코 다이버 모델들은 전 세계 다이버 시계 매니아들이 한번쯤 경험하고 싶어하는 머스트 해브 다이버 워치로 언급됩니다.
이런 점은 반 세기 동안 꾸준히 다이버 워치를 제조해 왔다는 것은 세이코의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이버 워치는 기본 정장용 시계보다 케이스부터 더 두껍고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는데다 이중 삼중의 방수 패킹 처리와 스크류 다운 설계는 물론 다이얼에 발광성 도료까지 수차례 도포해야 하고 단방향 회전 베젤과 포화 잠수를 위한 헬륨 가스 방출 밸브까지 고려해야하는 등 제조 단계 자체가 까다롭습니다. 그럼에도 세이코가 포기하지 않고 다이버 워치 제조에 끊임없는 투자와 개발을 지속해 온 것은 한편으로는 시대를 앞서 내다본 선구안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세이코 다이버 워치의 역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965년 발표한 세이코 최초의 다이버 워치
사진처럼 현재의 기준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모던한 디자인과 150m 방수가 가능한 일본 최초의 나아가 동양 최초의 본격 다이버 워치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가치를 자랑합니다. 굵직한 바 인덱스와 핸즈 내부에는 트리튬계 야광 도료를 겹겹이 채워넣어 심해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날짜 표시 기능과 다이빙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눈금을 새긴 단방향 회전 베젤을 사용했으며, 방수 케이스 내부에는 기계식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해 실용성까지 더했습니다. 브랜드 첫 다이버 시계임에도 현대적인 다이버 시계로서 갖춰야 할 대부분의 요소들을 충족했다는 점에서 성취도가 높습니다.
또한 이 시계는 1966~1968년까지 계속된 제8차 남극 관측대의 극지 탐험에 사용되며 그 내구성을 충분히 인정받았습니다.

1968년 세계 최초로 하이비트(10진동)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한 다이버 워치 발표
더욱 향상된 300m 방수 기능을 갖추고 있었으며, 1970년 일본의 산악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에베레스트 등정에도 사용돼 유명해졌습니다. 2015년 바젤월드서 공개한 700개 한정의 마린마스터 프로페셔널 1000m 하이비트 36000 리미티드 에디션도 1968년 오리지널 모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어 1970년대 초·중반에는 비대칭 쿠션형 케이스에 역시나 단방향 회전 베젤을 장착하고 150m 방수 사양을 갖춘 일련의 다이버 모델들이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됩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장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세이코 다이버 시계의 명성을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 기여했고,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 특수부대 윌라드 대위 역을 맡은 배우 마틴 쉰이 세이코의 다이버(6105-8110) 시계를 착용해 훗날 컬트 다이버 시계로 분류됩니다.

1975년 세계 최초로 티타늄 소재의 수심 600m 포화잠수용 프로페셔널 다이버 워치 발표
손목 전체를 덮는 큼지막한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스틸에 비해 3배 이상 가볍고 내부식성이 우수한 티타늄 소재로 전문 다이버 시계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한 덩어리 형태로 제작된 모노 블럭 케이스 외부를 별도의 보호 케이스(Shroud)로 감싸 한층 탁월한 내구성과 방수 성능을 보장했습니다. 특히 외장 케이스 설계와 소재 선택과 관련해 무려 20개의 특허를 등록했을 만큼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델을 기점으로 세이코 다이버 시계의 주요한 요소가 된 주름이 있는 우레탄 스트랩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1978년 600m 방수 성능을 갖춘 세계 최초로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한 다이버 워치 발표
1983년 심해 탐사 잠수함 ‘신카이(Shinkai) 2000호’와 함께 심해 1,062m까지 잠수
이렇듯 1975년과 1978년 발표한 세이코의 프로페셔널 다이버 시계는 견고하면서도 개성적인 케이스 설계로 훗날 세이코 다이버 시계 마니아들로부터 ‘튜나(Tuna)’ 혹은 ‘튜나 캔(Tuna Can)'이라는 별칭을 얻게 됩니다. 말 그대로 참치 캔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실린드리컬(Cylindrical, 원통형) 케이스 덕분입니다. 튜나 시리즈는 1986년에는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방수 성능을 1,000m로 비약적으로 향상, 외부 프로텍터를 블랙 세라믹 소재를 사용한 모델로 이어졌습니다.

1992년 첫 키네틱 다이버 워치 발표
1995년 24시 GMT 핸드를 갖춘 200m 방수 사양의 키네틱 다이버 모델을 발표
이 시계는 1997년 프리다이빙 챔피언 피핀 페레라스가 152.5m 프리 다이빙 세계기록 달성시 착용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1995년 스쿠버마스터 200m 모델
이 시계는 세계 최초 수심·수압 등 다양한 계측이 가능하고 아날로그 방식의 수심계를 적용했습니다.

1990년 최초로 LCD 디스플레이 다이얼과 다이브 컴퓨터 기능을 갖춘 200m 방수 다이버 워치 발표
한편, 시대의 요구에 맞춰 다양하고 심화된 잠수 계측 기술과 디지털의 접목이 시도되었는데 현대 다이브 컴퓨터의 조상같은 모델입니다.
2000년 신형 다이버 컴퓨터 발표
1990년 출시한 다이브 컴퓨터를 잠수 프로파일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질소와 산소를 혼합한 기체를 사용해 무감압 한계시간을 늘리는 등 한층 개선된 성능을 보였습니다.

2005년 고정밀 스프링 드라이브 무브먼트를 탑재한 600m 방수 사양의 전문 다이버 워치 출시

2014년 키네틱 GMT 다이버 SUN021 모델 발표
이렇듯 세이코 다이버 시계의 역사는 연대별 대표 모델만 추려서 살펴 봐도 할 말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 언급되지 않은 다이버 시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세이코는 언젠가부터 세이코5, 프로스펙스, 기타 스포츠 라인에 레퍼런스조차 헷갈리는 방대한 베리에이션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해 역시 새로운 다이버 워치들이 출시되어 시계 애호가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